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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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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1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
 
 
2
최치원이 무덤 앞 석문(石門)에 다음과 같이 시(詩)를 지어 썼다.
 
 
3
誰家二女此遺墳 (수가이녀차유분)
4
寂寂泉扃幾怨春 (적적천경기원춘)
5
形影空留溪畔月 (형영공유계반월)
6
姓名難問塚頭塵 (성명난문총두진)
 
7
뉘 집 두 딸이 묻혀 있는 무덤인가
8
적막한 황천에서 봄을 원망하기 몇 해던고.
9
아름다운 그 모습, 시냇물에 비치는 달 속에 머무르고
10
이름이 무어냐고 무덤 가 먼지에게 묻기조차 어렵구나.
 
 
11
芳情儻許通幽夢 (방정당허통유몽)
12
永夜何妨慰旅人 (영야하방위여인)
13
孤館若逢雲雨會 (고관약봉운우회)
14
與君繼賦洛川神 (여군계부낙천신)
 
15
꽃다운 정이(情誼). 그윽한 꿈속에서 만날 수 있다면
16
기나긴 밤 나그네를 위로한들 어떠하리.
17
외로운 관사(館舍)에서 운우의 밀회를즐길 수 있다면
18
그대에게 낙천부1)를 이어 불러 주리라.
 
 
19
시(詩)를 써 놓고 초현관으로 들어오니 때마침 달은 밝고 바람은 시원하여 명아주 지팡이를 끌며 천천히 거니는데 홀연이 한 여인이 나타났다. 작약꽃처럼 아름다운 모습의 그 여인은 손에 붉은 주머니를 들고 앞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20
“팔낭자(八娘子)와 구낭자(九娘子)께서 선생님께 말씀을 전하랍니다. 아침에 특별히 어려운 걸음하시고 겸하여 좋은 글까지 주셨으므로 두 낭자께서 화답하신 글이 여기에 들어 있으므로 명령을 받드려 올리나이다.”
 
21
하였다. 최치원은 그녀를 돌아다 보고 깜짝 놀라며 아가씨가 사는 곳이 어디냐고 거듭 물으니 그녀는
 
22
“아침나절 수풀을 헤치고 돌을 닦아 시를 써 놓으신 그곳이 두 낭자께서 사시는 곳입니다”
 
23
라고 한다. 최치원은 그제서야 깨닫고 첫 번째 주머니를 열어보니 팔낭자가 최치원에게 회답한 시였다. 그 시에는
 
 
24
幽魂離恨寄孤墳 (유혼이한기고분)
25
桃臉柳眉猶帶春 (도검유미유대춘)
26
鶴駕難尋三島2)(학가난심삼도로)
27
鳳釵空墮九泉塵 (봉채공타구천진)
 
28
저승의 혼령이 이별의 원한을 외로운 무덤에 의탁하고 있으나
29
복사꽃 같은 얼굴, 버들잎 같은 눈썹엔 아직도 봄빛을 띄었나이다.
30
학의 수래는 삼신산(三神山)가는 길 찾기가 어렵고
31
봉황무늬 새긴 비녀 부질없이 구천의 먼지 속에 떨어져 있나이다.
 
 
32
堂時在世長羞客 (당시재세장수객)
33
今日含嬌未識人 (금일함교미식인)
34
深愧詩詞知妾意 (심괴시사지첩의)
35
一回延首一傷神 (일회연수일상신)
 
36
살아있을 당시에는 나그네 대하기를 몹시 부끄러워 하였는데
37
오늘은 알지 못하는 이에게 교태를 품나이다.
38
시로써 저의 뜻을 알림을 깊이 부끄럽게 여기며
39
한번 고개 떨구어 기다리고 한편 마음 아파하나이다.
 
 
40
라고 쓰여 있다. 이어서 두 번째 주머니를 열어보니 바로 구낭자의 것이었다. 그 시에는
 
 
41
往來誰顧路傍墳 (왕래수고노방분)
42
鸞鏡鴛衾盡惹塵 (난경원가진야진)
43
一死一生天上命 (일사일생천상명)
44
花開花落世間春 (화개화락세간춘)
 
45
왕래하는 그 누가 길가의 무덤 돌아 보겠나이까
46
난새를 새긴 경대와 원앙새 수놓은 이불엔 먼지만 일고 있나이다.
47
한 번 죽고 한 번 태어남은 하늘이 정한 운명이요
48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은 세간의 봄이로소이다.
 
 
49
每希秦女能抛 (매희진여능포속)
50
不學任姬愛媚人 (불학임희애미인)
51
欲薦襄王雲雨夢 (욕천양왕운우몽)
52
千思萬憶損精神 (천사만억손정신)
 
53
매양 진여(秦女)3)가 속세를 벗어날 수있음만 바랐고
54
임희(任姬)4)처럼 아양떪을 배우지 못했나이다.
55
양왕(襄王)5)을 모시고 운우의 꿈을 꾸고자 하나
56
천만가지 생각이 정신을 어지럽히나 이다.
 
 
57
하였다. 그리고 또 뒤 폭(幅)에도 글이 쓰여 있었다.
 
 
58
莫怪藏姓名 (막괴장성명)
59
孤魂畏俗人 (고혼외속인)
60
欲將心事說 (욕장심사설)
61
能許暫相親 (능허잠상친)
 
62
이름 숨김을 괴상히 여기지 마옵소서
63
외로운 영혼이 속세의 인간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64
장차 심사를 모두 말씀드리고자 하오니
65
잠시 서로 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66
라고 쓰여 있었다. 최치원은 이미 아름다운 시(詩)를 보고 자못 희색이 만면하여 심부름 온 그녀의 이름을 물으니 취금(翠襟)이라고 했다.
 
67
그는 기쁜 나머지 약간 희롱하는 말을 던지니 취금이 화를 내면서 말했다.
 
68
“선생께서는 답장을 써 주셔야 합당한데 공연히 사람을 괴롭히려 드십니다.”
 
69
했다. 최치원은 곧 시를 적어 취금에게 주었다.
 
 
70
偶把狂詞題孤墳 (우파광사제고분)
71
豈期仙女問風塵 (개기선녀문풍진)
72
翠襟猶帶瓊花艶 (취금유대경화염)
73
紅袖應含玉樹春 (홍수응함옥수춘)
 
74
우연히 경솔한 글을 오래된 무덤에 쓴 것이
75
어찌 선녀가 속세 일을 묻는 기회가 될 줄이야.
76
취금도 오히려 구슬꽃 같은 아름다움을 띠었으니
77
붉은 소매는 응당 옥같은 나무에 깃든 봄을 품었으리라.
 
 
78
偏隱姓名斯俗客 (편은성명사속객)
79
巧裁文字惱詩人 (교재문자뇌시인)
80
斷腸唯願陪歡笑 (단장유원배환소)
81
祝禱千靈與萬神 (축도천령여만신)
 
82
문득 이름을 숨겨 속세의 나그네를 속이더니
83
교묘히 문자를 지어 시인을 괴롭히는구려.
84
애타게 모시고 환소하기를 바라오며
85
천만 신령에게 빌고 또 비나이다.
 
 
86
하고 끝 폭에다 이어 쓰기를
 
 
87
靑鳥無端報事由 (청조무단보사유)
88
暫時相億淚雙流 (잠시상억루쌍류)
89
今宵若不逢仙質 (금소약불봉선질)
90
判卻殘生入地求 (판각잔생입지구)
 
91
청조6)가 뜻밖에 까닭을 알려주니
92
잠시 생각에 잠겨 두 줄기 눈물 흘립니다.
93
오늘밤 만약에 그대 선녀 만나지 못한다면
94
남은 생을 버려 지하에 구하리다.
 
 
95
라고 썼다. 취금이 시를 가지고 돌아가는데 빠르기가 마치 회오리바람과 같았다. 최지원은 홀로 서서 애달피 시를 읊조리는데 한참이 되어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단가(短歌)를 읊어 그것을 마치려는데 갑자기 은은한 향기가 풍기더니 조금 후에 두 여인이 가지런히 다가오는데 분명히 한 쌍의 밝은 구슬이요, 두송이 상서로운 연꽃이었다. 최치원은 마치 꿈인 듯 놀라고 기뻐하면서 말했다.
 
96
“이 최치원은 섬나라의 보잘것 없는 선비요, 속세의 말단 관리라, 어찌 선녀에게 외람되이 누추한 곳까지 찾아주시기를 바랐겠나이까. 무심코 장난삼아 써 봤던 글이온데 이렇게 꽃다운 발걸음을 하시었습니다.”
 
97
하니 두 여인은 방긋이 웃기만 하고 아무런 말이 없으니 최치원이 다시 시를 지었다.
 
 
98
芳宵幸得暫相親 (방소행득잠상친)
99
何事無言對暮春 (하사무언대모춘)
100
將謂得知秦室婦 (장위득지진실부)
101
不知元是息夫人 (부지원시식부인)
 
102
꽃다운 밤 잠시나마 친해질 기회 다행히 얻었는데
103
무슨 일로 말이 없이 늦은 봄만 대하고 있나이까.
104
장차 진실부(秦室婦)7)라 생각했을 뿐
105
원래 식부인(息夫人)8)인 줄 몰랐나이다.
 
 
106
이때 붉은 치마의 여인이 화를 내면서 말하기를
 
107
“처음에는 웃으면서 말하려고 하였는데 갑자기 경멸함을 당했습니다. 식부인은 일찍이 두 남편을 섬겼지만 천첩은 아직 한 남편도 섬기지 않았나이다.”
 
108
라고 한다. 최치원은 이 말을 듣고
 
109
“부인은 말씀을 안 하시면 몰라도 하시면 틀림없는 말씀만 하시는군요.”
 
110
하니 두 여인이 모두 웃었다. 최치원이 곧 다시 묻기를
 
111
“낭자들께서는 어디에 사셨고 친족은 어느 집안입니까?”
 
112
하니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다.
 
113
“저와 제 동생은 율수현(溧水縣) 초성향(楚城鄕) 장씨(張氏)집안의 두 딸입니다.
114
돌아가신 아버님께서는 고을의 관리노릇도 하지 않으시고 유독 고을의 부호(富豪)되기만을 힘썼으므로 넉넉하기가 동산(銅山)처럼 부를 누렸고 호화롭기가 금곡(今谷)처럼 사치를 부렸나이다.
115
저의 나이 18세였고 동생의 나이 16세 되던 해에 부모님께서는 혼처를 의논하시고 저는 소금장수와 정혼하고 아우는 차(茶)장수에게 혼인을 허락하셨습니다.
116
그래서 저희들은 여러 번 남편감을 바꿔 달라고 조르다가 울적한 마음이 맺혀 급기야 요절하게 되었습니다. 어진 사람 만나기를 바랄 뿐이오니 그대께서는 의심하거나 혐의를 두지 마십시오.”
 
117
라고 했다.
 
118
최치원이 말했다.
 
119
“옥 같은 목소리 뚜렷한데 어찌 혐의를 두겠습니까”
 
120
하고 두 여인에게 다시 묻기를
 
121
“무덤에 의지한지 오래 되었고(134년) 초현관에서 그리 멀지 아니하니 많은 영웅들과 만나신 일이 있을 터인데 어떤 아름다운 사연이라도 있었는지요?”
 
122
붉은 소매의 여인이 말한다.
 
123
“여태까지 왕래하던 사람들은 모두가 비루한 남자들 뿐이였습니다. 이제 다행히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대의 기품이 오산(鰲山)처럼 넉넉하여 함께 현묘한 이치를 말할 수 있겠나이다.”
 
124
최치원은 술을 갖다놓고 두 여인에게 물었다.
 
125
“세속 음식을 물외지인(物外之人)에게 드려도 괜찮을는지요?”
 
126
하니 붉은 소매의 여인이 말했다.
 
127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위대한 분을 모셨고, 아름다운 음식 받았사오니 어찌 감히 사양하겠나이까?”
 
128
한다. 이에 서로 술을 권해 마시며 각각 시를 지었는데 모두가 맑고 빼어나 세상에 없는 절세(絶世)의 시구였다. 이때 달의 밝기가 대낮 같고 맑은 바람은 가을날 같이 시원하였다.
 
129
언니가 다시 제안하기를 곡조(曲調)를 바꾸자고 하였다.
 
130
“달로 제목을 삼고 풍(風)의 운(韻)을 써서 시를 지읍시다.”
 
131
라고 한다. 이에 최치원이 먼저 연구(聯句)를 지었다.
 
 
132
金波滿目泛長空 (금파만목범장공)
133
千里愁心處處同 (천리수심처처동)
 
134
금빛 물결에 눈에 가득 장공에 넘치니
135
천리나 되는 근심 곳곳마다 같도다.
 
 
136
팔랑(八娘)이 읊었다.
 
 
137
輪影動無迷舊路 (륜영동무미구로)
138
桂花開不待春風 (계화개불대춘풍)
 
139
달 그림자는 움직이면서도 옛길을 잃지 않고
140
계수나무꽃은 피면서도 봄바람 기다리지 않네.
 
 
141
구랑(九娘)이 읊었다.
 
 
142
圓輝漸皎三更外 (원휘점교삼경외)
143
離思偏傷一望中 (이사편상일망중)
 
144
둥근 달빛은 삼경을 넘어 점점 희어지는데
145
이별의 생각은 한결같이 바라보는 가운데 애닲도다.
 
 
146
최치원이 읊었다.
 
 
147
練色舒時分錦帳 (련색서시분금장)
148
珪模映處透珠櫳 (규모영처투주농)
 
149
뿌연 새벽빛이 펼쳐질 때 비단 장막걷히고
150
밝은 빛 비치는 곳 구슬창문 뚫어오네.
 
 
151
팔랑(八娘)이 읊었다.
 
 
152
人間遠別腸堪斷 (인간원별장감단)
153
泉下孤眠恨莫窮 (천하고면한막궁)
 
154
인간세상 멀리 이별함에 애간장 끊어질 듯
155
황천에서 외로운 잠 한도 끝도 없어라.
 
 
156
또 구랑(九娘)이 읊었다.
 
 
157
每羨嫦娥多計校 (매선항아다계교)
158
能抛香閣到仙宮 (능포향각도선궁)
 
159
상아9)의 많은 계교 못내 부러워하노니
160
향각10)을 버리고 선궁에 이르렀네.
 
 
161
최치원이 더욱 감탄하여 말하기를
 
162
“이러한 때 연주하는 음악이 없으니 구색을 다 갖추지 못하는 것이 섭섭합니다.”
 
163
하니, 이에 붉은 소매의 여인이 하녀 취금을 돌아보고서 최치원에게 말하기를
 
164
“현악기가 관악기만 못하고 관악기가 성악만 못합니다. 이 아이가 노래를 잘 부른답니다.”
 
165
하고 곧 충정(衷情)의 노래를 부르라고 말한다.
 
166
취금이 옷깃을 여미고 한 곡조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맑고 청아하여 세상에는 다시 없을 것 같았다.
 
167
이에 세 사람은 얼큰히 취했다. 최치원이 두 여인을 희롱하면서
 
168
“전에 듣자니 노충(盧充)11)은 사냥하러 나갔다가 우연히 좋은 짝을 얻었고 완조(阮肇)12)는 신선을 찾다가 아름다운 배필을 만났다고 하더이다. 이제 아름다운 그대들의 꽃다운 마음을 허락한다면 좋은 연분을 맺고 싶습니다.”
 
169
하니, 두 여인 모두가 허락하며 말하였다.
 
170
“순(舜)임금도 임금이 될 때에 두 여자가 모시었고 주량(周良)이 장수가 되었을 때도 두 여자가 따랐지요. 옛날에도 그랬는데 이젠들 그렇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171
최치원이 뜻밖의 허락에 기뻐하였다. 곧 정갈한 베개 셋을 늘어놓고 새 이불 한 채를 펴놓았다.
 
172
세 사람이 한 이불 속에 누우니 그 곡진한 사연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최치원이 두 여인에게 장난스레 말하였다.
 
173
“규방(閨房)에 가서 황공(黃公)13)의 사위가 되지 못하고 도리어 무덤가에 와서 진씨(陳氏)14)의 여자를 껴안았으니 무슨 인연으로 이런 만남 이루었는지 모르겠도다.”
 
174
하니 언니가 시를 지어 말했다.
 
 
175
聞語知君不是賢 (문어지군불시현)
176
應緣慣與女奴眠 (응연관여여노면)
 
177
그대의 말 들으니 어질지 못하군요
178
인연 따라 여종과 함께 잔들 어떠리요.
 
 
179
동생이 그 뒤를 이어 읊었다.
 
 
180
無端嫁得風狂漢 (무단가득풍광한)
181
强被輕言辱地仙 (강피경언욕지선)
 
182
까닭 없이 바람둥이와 인연을 맺었으니
183
억지로 지선(地仙)을 모욕하는 경박한 말 듣겠네.
 
 
184
최치원이 회답시를 지어 읊었는데
 
 
185
五百年來始遇賢 (오백년래시우현)
186
且歡今夜得雙眠 (차환금야득쌍면)
187
芳心莫怪親狂客 (방심막괴친광객)
188
曾向春風占謫仙 (증향춘풍점적선)
 
189
오백년 만에 처음으로 어진 이 만나
190
오늘 밤 나란히 잠자리 즐겼네.
191
꽃다운 순정 광객(狂客)과 친한 것 괴상해 마오
192
일찍이 봄바람에 적선(謫仙)15) 이되었도다.
 
 
193
잠시 후에 달이 지고 닭이 울자 두 여인 모두 놀라며 최치원에게 말했다.
 
194
“즐거움이 다 하면 슬픔이 오는 것이요, 이별이 길고 만남이 짧은 것은 인간세상 귀천을 막론하고 다같이 애달파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삶과 죽음의 길이 다르고, 오르고(昇), 잠기는(沈) 길이 구별되어 언제나 환한 대낮을 꺼리어 꽃다운 시절 헛되이 보냄에랴! 다만 오늘 하룻밤을 모시게 된 즐거움으로 천년의 한을 풀었습니다. 처음에는 동침의 행복 있음을 기뻐하였지만 이제는 그것도 끝나 다시 기약 없음을 탄식할 뿐입니다.”
 
195
하고 두 여인은 각기 시를 지어 주었다.
 
 
196
星斗初回更漏闌 (성두초회갱누란)
197
欲言離緖淚欄干 (욕언이서누난간)
198
從茲便結千年恨 (종자편결천년한)
199
無計重尋五夜歡 (무계중심오야환)
 
200
북두(北斗)는 돌고 시간은 늦어 가는데
201
이별의 말하려니 눈물 먼저 흐르네.
202
이로부터 천년의 기나긴 한탄만 맺히고
203
아득한 합환(合歡)의 밤 찾을 기약 없어라.
 
 
204
또 이어서
 
 
205
斜月照窓紅臉冷 (사월조창홍검냉)
206
曉風飄岫翠眉攢 (효풍표수취미찬)
207
辭君步步偏腸斷 (사군보보편장단)
208
雨散雲歸入夢難 (우산운귀입몽란)
 
209
기운 달 창에 비춰 붉은 뺨 차가옵고
210
새벽바람 옷깃에 스쳐 비취눈썹 감기네.
211
그대와 이별하는 걸음걸음 애간장 끊어지고
212
비 흩어지고 구름 돌아가니 꿈에 들기 어려워라.
 
 
213
최치원이 시를 보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두 여인이 최치원에게 말했다.
 
214
“혹시라도 다른 날 이곳을 지나게 되신다면 황폐한 무덤을 쓸고 돌보아 주옵소서.(徜或他時 重經此處 修掃荒塚)”
 
215
하고 말이 끝나자 바람같이 사라져 버렸다.
 
216
다음날 아침 최치원은 무덤을 다시 찾아 쓸쓸히 거닐면서 읊조렸다. 깊이 탄식하면서 긴 시를 지어 자신을 위로했다.
 
 
217
草暗塵昏雙女墳 (초암진혼쌍녀분)
218
古來名迹竟誰聞 (고래명적경수문)
219
唯傷廣野千秋月 (유상광야천추월)
220
空鎖巫山兩片雲 (공쇄무산양편운)
 
221
풀 우거지고 먼지 덮혀 컴컴한 두 여인의 무덤
222
예부터 이름난 유적인 줄 그 뉘가 들었던가.
223
넓은 들판에 변함없이 떠 있는 달만 애달프고
224
부질없이 무산에 두 조각구름만이 떠 있네.
 
 
225
自恨雄才爲遠吏 (차한웅재위원리)
226
偶來孤館尋幽邃 (우래고관심유수)
227
戱將詞句向門題 (회장사구향문제)
228
感得仙姿侵夜至 (감득선자침야지)
 
229
한 하노니 웅재로서 타국 땅에 관리되어
230
우연히 외로운 관사(館舍)에 왔다가 저승의 깊숙한 곳 찾았네.
231
장난삼아 석문에다 시구를 썼더니
232
감동한 선녀 깊은 밤에 찾아왔네.
 
 
233
紅錦袖紫羅裙 (홍금수자라군)
234
坐來蘭麝逼人薰 (좌래난사핍인훈)
235
翠眉丹頰皆超俗 (취미단협개초속)
236
飮態詩情又出群 (음태시정우출군)
 
237
붉은 비단 소매의 여인, 붉은 비단 치마의 여인
238
앉아 있으니 난초향기 사향향기 사람냄새 풍기네.
239
비취 눈썹 붉은 뺨 모두가 속세를 벗어났고
240
마시는 태도 시 읊는 정서 또한 출중하였네.
 
 
241
對殘花傾美酒 (대잔화경미주)
242
雙雙妙舞呈纖手 (쌍쌍묘무정섬수)
243
狂心已亂不知羞 (광심기란부지수)
244
芳意試看相許否 (방의시간상허부)
 
245
지고 남은 꽃 마주하여 좋은 술 기울이고
246
한 쌍의 묘한 춤에 섬섬옥수 드러나네.
247
미친 듯 산란한 마음 부끄러움 마저 잊고
248
꽃다운 뜻 허락할지 시험해 보았다네.
 
 
249
美人顔色久低迷 (미인안색구저미)
250
半含笑能半含啼 (반함소태반함제)
251
面熟自然心似火 (면숙자연심사화)
252
臉紅寧假醉如泥 (검홍녕가취여니)
 
253
미인의 안색 보니 오래도록 어둡더니
254
반은 웃는 자태 반은 우는 듯 하네.
255
낯은 익어 마음은 불같이 타오르고
256
붉은 뺨은 진흙처럼 취한 듯 하네.
 
 
257
歌艶詞打懽合 (가염사타환합)
258
芳宵良會應前定 (방소양회응전정)
259
纔聞謝女啓淸談 (재문사녀계청담)
260
又見班姬推雅詠 (우견반의금아영)
 
261
아름다운 노래 부르며 기쁨 함께 누리니
262
꽃다운 밤 좋은 만남 전생이 정함인가.
263
사녀의 맑은 담론 모두 다 듣고 나니
264
반희가 고운 노래 읊는 것 보겠도다.
 
 
265
情深意密始求親 (정심의밀시구친)
266
正是艶陽桃李辰 (정시염양도리진)
267
明月倍添衾枕恩 (명월배첨금침사)
268
香風偏惹綺羅身 (향풍편야기라신)
 
269
정이 깊어지고 뜻이 친해지기 시작하니
270
바로 늦은 봄날 도리꽃 만발한 때이로다.
271
명월은 베게 맡 생각 곱으로 더하고
272
향기로운 바람 비단 같은 몸 덮어 주었네.
 
 
273
綺羅身衾枕恩 (기라신금침사)
274
幽歡未已離愁至 (유환미기이수지)
275
數聲餘歌斷孤魂 (수성여가단고혼)
276
一點殘燈照雙淚 (일점잔등조쌍누)
 
277
비단 같은 몸 금침속의 간절한 생각이여
278
그윽한 즐거움 다하지 않았는데 이별의 근심 왔네.
279
몇 가락 남은 노래는 외로운 혼을 끊 는 듯
280
가물거리는 등잔불은 두 줄기 눈물 비추네.
 
 
281
曉天鸞鶴各西東 (효천난학각서동)
282
獨坐思量疑夢中 (독좌사량의몽중)
283
沈思疑夢又非夢 (심사의몽우비몽)
284
愁對朝雲歸碧空 (수대조운귀벽공)
 
285
새벽 하늘에 난새와 학은 동과 서로 날아가고
286
홀로 앉아 생각하니 꿈인 듯도 아닌 듯.
287
곰곰이 생각하니 꿈인가 하나 꿈은 아니라
288
시름 속에 아침을 대하니 푸른 하늘 구름만이 가고 있네.
 
 
289
匹馬長嘶望行路 (필마장시망행로)
290
狂生猶再尋遺墓 (광생유재심유묘)
291
不逢羅襪步芳塵 (불봉라말보방진)
292
但見花枝泣朝露 (단견화지읍조로)
 
293
말은 길게 울며 가야 할 길 바라보나
294
이 사람은 오히려 버려진 무덤 다시 찾았네.
295
버선발로 흙먼지 밟으며 걸어 나옴 못 만나고
296
다만 아침 이슬에 흐느끼는 꽃가지만 보았네.
 
 
297
腸欲斷首頻回 (장욕단수빈회)
298
泉戶寂寥誰爲聞 (천호적요수위개)
299
頓轡望時無限淚 (돈비망시무한누)
300
垂鞭吟處有餘哀 (수편음처유여애)
 
301
애간장 끊어질 듯 머리 돌려 바라보니
302
적막한 황청문 뉘라서 열어주랴.
303
고삐 잡고 바라 볼 때 한없이 눈물만 흘러내리고
304
채찍 드리우고 시 읊던 곳에 슬픔만 남았구나.
 
 
305
暮春風暮春日 (모춘풍모춘일)
306
柳花撩亂迎風疾 (유화요란영품질)
307
常將旅思怨韶光 (상장여사원소광)
308
況是離情念芳質 (황시이정렴방질)
 
309
봄바람 따스해진 늦은 봄날에
310
버들 꽃만 어지러이 바람에 나부끼네.
311
늘 나그네의 시름으로 봄빛을 원망하는데
312
하물며 이별의 정이 꽃다운 그대를 그리워함에랴.
 
 
313
人間事愁殺人 (인간사수살인)
314
始聞達路又迷津 (시문달로우미진)
315
草沒銅臺千古恨 (초몰동대천고한)
316
花開金谷一朝春 (화개금곡일조춘)
 
317
인간 세상의 일. 수심은 할 짓이 아닌 것
318
비로소 통하는 길을 들었는데 또 나루가 아득하네.
319
잡초 우거진 동대(銅臺)엔 천년의 한 서려있고
320
꽃 만발한 금곡(金谷)은 하루 아침의 봄이로다.
 
 
321
阮肇劉晨是凡物 (완조유신시범물)
322
秦皇漢帝非仙骨 (진황한제비선골)
323
當時嘉會杳難追 (당시가회묘난추)
324
後代遺名徒可悲 (후대유명도가비)
 
325
완조(阮肇)와 유신(劉晨)은 평범한 인물이요
326
진시황과 한무제도 신선이 아니라네.
327
그때의 아름다운 만남 아득하여 쫓아 가기 어렵고
328
후세에 이름만 남김이 부질없이 슬프네.
 
 
329
悠然來忽然倨 (유연래홀연거)
330
是知風雨無常主 (시지풍우무상주)
331
我來此地逢雙女 (아래차지봉쌍녀)
332
遙似襄王雲雨夢 (요사양왕운우몽)
 
333
유유히 왔다가 홀연히 가버리니
334
비바람은 언제나 덧없음을 알겠노라.
335
이 땅에 내가 와서 두 여인을 만난 것은
336
양왕(襄王)의 운우몽과 어이 다르랴.
 
 
337
大丈夫大丈夫 (대장부대장부)
338
壯氣須除兒女恨 (장기수제아녀한)
339
莫將心事戀妖狐 (막장심사연요호)
 
340
대장부여 대장부여
341
장부의 기백으로 꽃다운 여인의 한 풀어줬을 뿐
342
앞으로는 마음을 요괴 같은 여우에게 연연하지 않겠노라.
 
 
343
그 후 최치원은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시를 지어 읊었다.
 
 
344
浮世榮華夢中夢 (부세영화몽중몽)
345
白雲深處好安身 (백운심처호안신)
 
346
뜬 세상 영화란 꿈속의 꿈이요
347
흰 구름 깊은 곳에 안신함이 좋겠도다.
 
 
348
이어서 물러나 아주 속세를 떠나 산림과 강과 바다로 스님을 찾아갔다. 작은 집을 짓고 대(臺)를 쌓아 옛 글을 탐독하고 풍월을 읊조리며 그 사이에서 유유자적하게 살았다.
 
349
남산의 청량사(淸凉寺). 합포현(合浦縣)의 월영대(月影臺). 지리산의 쌍계사(雙磎寺). 석남사(石南寺). 묵천석대(墨泉石臺)에 모란을 심어 놓은 것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데 모두 그가 노닐던 곳이다. 최후에는 가야산 해인사에 은거하여 그 모형인 대덕(大德) 현준(賢俊)과 남악사(南岳師) 정현(定玄)과 더불어 경론(經論)을 탐구하며 담담한 경지에서 여생을 마쳤다.
 

 
350
주석
 
351
1) 위(魏)나라 조식(曺植)이 견일(甄逸)의 딸을 사모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견후(甄后)가 낙수(洛水)에 빠져 죽어버렸다. 그 후 조식이 낙수가에서 견후를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여인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본래 당신을 사모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 베개는 제가 집에 있을 때 만들었던 것이므로 당신에게 드리오니 쓰시기 바랍니다.” 하고서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조식이 견후를 새악하여 낙신부(洛神賦)를 지었다 한다.
352
2) 전설상의 삼신산(三神山)을 말한다. 곧 봉래산(蓬萊山) ․ 방장산(方丈山) ․ 영주산(瀛州山)으로 그곳에는 신선이 산다고 한다.
353
3)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목공(穆公)의 딸 농옥(弄玉)을 말한다. 소사라는 사람이 진나라 목공 때 퉁소를 잘 불었다. 목공의 딸 농옥이 그를 좋아하자 공이 사위로 삼았다. 어느날 아침 둘은 봉황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열선전 : 列仙傳)
354
4)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 부덕(婦德)이 높은 여자로 유교에서 이상적인 여자로 일컬어진다. 혹은 “태평광기”권 452 임씨(任氏)의 여주인공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355
5) 중국 춘추시대 초(楚)나라 송옥(宋玉)이 지은 신녀부(神女賦)에 나오는 주인공 초양왕(楚襄王)을 말함. 초양왕이 꿈에 선녀를 만난 것을 초양왕의 청에 의하여 송옥이 부(賦)로 읊었다고 한다.
356
6) 발이 세 개 달린 새. 사자(使者) 또는 서간(書簡)의 뜻으로 쓰인다.
357
7) 중국 전국시대 조왕(趙王)의 아내로 성은 진(秦), 이름은 나부(羅敷). 한단(邯鄲)의 사람이었다. 그녀가 언덕 위에서 뽕잎을 딸 때 조왕이 보고 미모에 흘려 겁탈하려 하자, 나부는 쟁(箏)을 타면서 “맥상상(陌上桑)”이라는 노래를 지어 자기의 남편을 자랑했음.
358
“나으리는 스스로 아내가 있고 이 나부는 스스로 남편이 있소이다.(使君自有婦 羅敷自有夫)”라는 구절에 감탄하여 조왕이 행동을 멈추었다고 함.
359
8) 춘추시대 식(息)이라는 나라 왕의 부인. 성이 규(嬀氏)이므로 식규(息嬀)라고도 부름. 초(楚)나라 문왕(文王)이 식(息)나라를 멸망하고 이 식부인을 데리고 가서 아내를 삼아 도교(堵敎)와 성왕(成王)을 낳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때까지 통 말이 없었다. 초왕이 까닭을 물으니 “내 한 부인으로서 두 남편을 섬겼으니 비록 죽지는 못할망정 또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하였다고, 좌전(左傳) 장공(莊公) 14년 조에 기록되어 있음.
360
9) 보통 항아(姮娥)라고 한다. 또 예(羿)가 서왕모(西王母)에게 불사약(不死藥)을 청했는데 항아가 이것을 훔쳐서 달나라로 도망가서 선인(仙人)이 되어 달의 정령이 되었다. 항아는 곧 예의 아내이며 한문제(漢文帝)의 이름이 항(恒)이므로 한나라 사람이 이를 피해서 상아로 고쳤음.
361
10) 아가씨가 거처하는 규방(閨房).
362
11) 한(漢)나라 때 범양(范陽) 사람이다. 최소부(崔少府)의 딸 무덤 곁에서 사냥을 하다가 그녀의 영혼을 만나 결혼하여 아들을 얻었다는 고사(故事)임.
363
12) 후한(後漢) 때의 사람이다. 영평(永平) 연간에 유신(劉晨)과 더불어 약을 캐러 산으로 갔는데 길을 잃어 계허(溪滸)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두 여인이 나타나 동굴속에서 들어갔다. 후에 돌아가기를 청하니 그 여인들이 원래의 길을 가르쳐 주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그동안 세월이 흘러 그 자손이 7대의 후손이 되어 있었다. “상우록(尙友錄)” 15.
364
13)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 황공이 두 딸을 두었는데 그는 원래 겸손하여 말하기를 자기의 딸이 아주 못났다고 낮추어 말했다. 그런 소문이 널리 퍼지자 아무도 그의 딸에게 장가를 들려고 하지 않았다. 위(衛)나라의 한 홀아비가 그런 평판을 무시하고 장가를 들었더니 천하의 절색이었다고 한다.
365
14) 선화부인(宣華夫人)을 말한다. 진(陳)나라 선제(宣帝)의 딸인데 용모가 몹시 아름다워 수나라 문제(文帝)의 궁빈(宮嬪)이 되어 총애를 받고 선화부인의 칭호를 받았다. 문제가 죽자 태자 광(廣)에게 욕을 당하고 1년 만에 죽었는데 그때 나이가 29세였다. 수나라 양제(煬帝)가 몹시 슬퍼하고 애도하여 신상부(神傷賦)를 지었다.
366
15) 당나라 때 이태백(李太白)이 천상(天上)에게 속계(俗界)로 귀양살이하러 온 신선이라는 데서 이태백을 일컬음.
【원문】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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