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에 율리(栗里)라는 동리에 사는 빈한한 설(薛)씨의 집에 한 처녀가 있었으니 그는 집안은 비록 가난하고 천하여도 얼굴이 아름답고 단정하므로 보는 이마다 그를 칭탄ㅎ지 아니하는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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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의 늙은 아버지 설노인은 정곡(正谷)이란 곳으로 수자리를 살러 가야만 하게 되었다. 그러나 딸은 참아 늙고 병든 아버지를 멀리 보내드리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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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여자의 몸이라 함께 모시고 갈 수도 없으므로 혼자 어쩔 줄 모르고 조그마한 어린 가슴을 태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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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 중에 가실(嘉實)이라는 젊은 사나이가 있었으니 그는 차량부(沙梁部)에 사는 총각으로 일찍부터 이 설처녀를 몹시도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가실은 노인의 집을 찾아가서 자기가 자리를 대신 가겠노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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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마디에 설처녀는 무론 노인도 기쁨을 참지 못하였다. 그래서 설노인은 가실에게 돌아오는 날에는 자기 딸로써 짝을 지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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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처녀는 가실에게 무한한 감사의 말을 하며 거울 하나를 가져다 두 조각에 내어 한쪽은 자기 품에 넣고 다른 한 조각은 가실에게 주면서 다시 말을 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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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언약의 표를 삼아 뒷날 만나는 때에 서로 맞추어 보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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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실은 한 손으로 거울 쪽을 받아 넣으며 한 손으로 타고 왔던 말(馬)을 설처녀에게 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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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천하의 양마(良馬)라 이후에 반드시 쓰일 날이 있을 것이요. 지금은 내가 걸어갈 테니 그동안 이 말을 잘 먹여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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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두 사람이 나누인 뒤로 기약한 三년 세월은 어느덧 다 지나고 또 삼년이 더 지나도록 와야 할 가실은 돌아오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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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에 설처녀는 그 가슴이 얼마나 탔으랴. 그러나 그는 조금도 그 뜻을 변하지 않고 언제까지든 돌아오기를 기다리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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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 가실을 기다려서 자기 딸을 헛되히 늙히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여나 강제로 다른 곳에 시집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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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정한 그 잔치날은 왔다. 설처녀는 울음과 말로 몇 十번이나 그 아버지에게 간청하였으나 일이 필경 이렇게 되고 말므로 할 수 없이 도망이나 해 나가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뜻을 이루기가 어려워 애끊이는 아픔을 참지 못하여 뒷곁에 있는 마구로 갔다. 가실의 맡겨 두고 간 말을 쓰다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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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아 네 주인은 어이하여 못 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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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문안으로 어떠한 사나이가 하나 뛰어 들어왔다. 그의 옷은 모두 해어졌다. 그 얼굴은 몹시도 여위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가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처녀도 역시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가실이었다. 수자리 六년에 갖은 풍상을 겪고 돌아온 가실이었다.
20
『나를 모르오? 나는 가실이요. 정곡으로 수자리 살러 갔던 가실이요』
21
하면서 떠나던 날 정표로 갈라 가졌던 거울 쪽을 내어 설처녀에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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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처녀는 그 거울을 받아 쥐고 너무나 기쁘고 놀라 소리치며 서로 붙들고 어쩔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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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노인도 면목은 없는 채로 반가히 맞아들이고 다시 좋은 날을 가려 언약한 두 사람의 잔치를 이루었다.
24
뒷날 역사상에 이름난 여러 사람들이 다 이 설씨 처녀의 신의 있는 사랑을 칭송하였다. 특히 고려 이규보(李奎報) 선생의 파경합(破境合)이란 긴 시는 세상에 유명한 것이다. — (東國通鑑)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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