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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충비(忠婢)는 명종조(明宗朝)에 어진 재상으로 유명한 유문정공 인숙(柳文正公 仁淑)의 집 사비(私婢)다. 몸이 그렇게 남의 집 천한 종이니만큼 성명도 전하지 못하고 다못 그 주인에게 충성스럽게 한 까닭에 그저 유씨 집 충비라고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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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러 대 유씨 집 사비로 있었다가 을사사화(乙巳士禍) 때에 유씨가 여러 소인에게 모함을 입어서 전 가족이 일시에 살육지변을 당하고 처자 권속은 모두 관비 속공을 하고 가산집물은 적물을 당하며 노비와 전장은 또한 분할되어 당시에 소위 유공하다는 여러 간신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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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그 공신 중에 정순붕(鄭順鵬)이란 사람은 제일 수공자로서 유씨의 집 노비를 전부 차지하게 되었는데 여러 노비들은 자기의 상전이 무죄하게 원통히 죽고 자기네 역시 자기 주인을 버리고 남의 집으로 가는 것을 비통하게 생각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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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독 충비 한 사람만은 전보다도 더 모양을 내고 얼굴에 기쁜 기색을 띠우며 또 자기의 동류더러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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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 종이 되기는 마찬가지인데 너희들은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슬퍼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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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정씨에 대하여 무슨 일에나 부지런하고 충성스럽게 하니 정씨가 특히 총애하고 신용하여 항상 좌우에다 두고 심부름을 시키며 여러 해가 되도록 책망 한 번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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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가 그렇게 여러 해 동안을 화평한 속에서 지내더니 하루는 정씨가 우연히 꿈을 꾼즉 무서운 귀신이 와서 자기의 머리를 막 눌렀다. 정씨는 깜짝 놀라서 그 굼을 깬 뒤부터는 온몸이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고 눈만 감으면 으레 그 귀신이 뵈었다. 일이 그렇게 되니 온 집안이 모두 불안공황한 중 그 부인이 어떤 무당에게 물어본즉 벼개 속에 무슨 요물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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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그 벼개를 뜯고 보니 과연 죽은 사람의 두골이 들어있는데 그것이 반드시 충비의 소위로 의심하고 시험 삼아 충비를 잡아다가 심문하려 하니 그 충비가 먼저 나서서 소리를 지르며 말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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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내가 한 일이다. 우리의 유씨 상전이 무슨 죄가 있기로 너의 집 늙은 놈이 모함하여 그렇게 몹시 죽이고 그 전 가족까지 멸살을 시켰단 말이냐. 내가 비록 천한 종이나마 어찌 원수 놈의 집에 와서 종 노릇을 하고 있으랴. 내가 그 원수를 갚으려고 별별 짓을 다하며 일구월심에 애를 쓰다가 다행히 너의 집 문객과 사정을 통하게 되어 남의 죽은 두골을 얻어다가 방예를 하였더니 그것이 요행히 잘 들어맞아서 집주인이 죽게 되었은즉 나의 원수는 다 갚은 셈이라. 이제는 죽어도 한을 풀었으니 나를 속히 죽여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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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호령을 하니 정씨의 자제들이 그 충비를 정씨의 시체 옆에서 따려 죽이고 그것을 비밀에 부쳐서 당시에 누구나 그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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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그 뒤에 정순봉의 아들 정작(鄭碏—號 北窓) 이 나이 七十이 넘어서 죽었는데 그가 죽을 때에 자기 집 사람더러 그런 말을 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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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자기 집 비밀한 일이기 때문에 평소에 참아 누구에 대하여 말을 하지 못하였으나 그 여자의 의열이 너무도 가상하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매몰시킬까 염려하여 이제 죽을 때 와서야 처음으로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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