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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공원(達城公園)에 꽃이 만발하고 팔공산(八公山)에 달이 두렷이 밝은 좋은 날 밤이면 대구 일대(大邱 一帶)의 어여쁜 소년 소녀들은 삼삼오오로 짝을 지어 고운 목소리로 한 노래를 불른다— 마치 서울 아이들의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노던 달아—』의 노래 부르듯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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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작지는 뜻이 자서ㅎ지 못하나 안동(安東) 부근에서는 호작지란 그것을 오색실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호작지는 오색실의 그릇된 음인지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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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소위 쌍금 노래라 하는 것인데 이 노래의 생겨난 유래를 들으면 참으로 눈물겨운 애화가 숨어 있다. 시대는 어느 시대였는지 알 수 없으나 옛날 대구(大邱)에는 홍도(紅桃)라는 어여쁜 소녀가 있었는데 일찌기 부모를 잃고 자기의 오빠와 단 두 남매가 비둘기(鳩) 모양으로 한 집에서 같이 자라고 있었다. 홍도는 차차 자라서 나이 방년(芳年)에 달하매 자색이 절대의 가인이요 재질이 또한 특출하여 침선 방적 이외에 시문서화(詩文書畵)까지 모두 겸비하니 일향이 모두 그 처녀를 칭송하고 아들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며느리를 삼으려고 경쟁을 하였다. 그러나 홍도는 자기의 부모가 없고 다만 두 남매가 서로 의지하고 살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 올아버니가 장가를 들어서 한 집을 이루기 전에는 먼저 출가를 할 수가 없게 경우가 되었다. 그리하여 아무리 좋은 혼처가 있어도 출가를 못하고 나이 과년하도록 처녀로 있었다. 그의 두 남매는 남유달리 부모 없이 자란 불쌍한 남매요 다른 남매보다 더 정다운 남매이지마는 남녀 칠세에 부동석(七歲 不同席)이란 조선의 유래 예절을 남매간에도 어디까지던지 엄격하게 지켜서 자기의 오빠는 안방에서 거처하고 자기는 건너방에서 거처하였다. 홍도는 남매간에도 그와 같이 엄격하게 지내니 더구나 다른 남성들과야 말이나 한 번 서로 하여 본 적이 있었으랴. 그러나 홍도는 원래가 과년한 처녀요 이름난 미인인데다가 가정이 너무도 사고무친의 외로운 가정인 까닭에 자기의 오빠는 항상 홍도의 신변에 혹여 무슨 일이나 생기지나 않을까 염려하고 밤이면 몇 번씩 홍도가 자고 있는 방을 순시 감독하고 낮에도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을 보게 되면 항상 홍도를 염려하고 보던 일도 못 다보고 돌아왔다. 홍도도 또한 자기 오빠를 친아버지같이 신뢰하여 어디를 가면 속히 오기를 기다리고 밤에도 자기의 오빠가 있으면 안심하고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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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내던 차 어느 해 이른 봄철 어느 날 밤이었다. 눈이 함박꽃같이 쏟아지고 동남풍이 살살 불기 시작하더니 새벽에 이르러서는 눈이 그치고 달이 백주같이 밝아서 그야말로 월백 설백 천지백(月白 雪白 天地白)하게 되었다. 홍도의 오빠는 안방에서 잠을 자다가 설월이 밝은 바람에 잠을 깨어 들은즉 홍도의 자는 방에서 천만뜻밖에 전에 듣지 못하던 남자의 코고는 소리가 드르렁 드르렁 들리었다. 홍도의 올아비는 깜짝 놀라서 창문을 열고 홍도의 자는 방문을 바라보니 난데없는 무슨 그림자가 획하고 담으로 넘어갔다. 홍도의 올아비는 그것을 보고 놀라다 못하여 분하고 분하다 못하여 또 울며 혼자 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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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 인제는 우리 집안이 망했구나 우리 두 남매가 부모도 없이 어려서부터 서로 고생을 하며 자라나서 장래에 잘 살기를 바랬더니 천만뜻밖에 홍도가 저 모양을 하니 어찌 하잔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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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또 이어서 우니 건너방에서 잠을 자던 홍도는 자기의 올아비가 우는 바람에 또한 놀라 뛰어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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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오빠 아닌 밤중에 울기는 왜 우오 자다가 꿈에 어머니를 만나 뵈었소 글쎄 울기는 왜 우오 오빠가 울면 나도 울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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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의 오빠는 울다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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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아 집안을 망하게 하면 그저 망하게 하지 그것이 무슨 꼴이란 말이냐. 인제는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다 죽어서 땅속에 가서 부모님께 사죄나 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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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청천의 벽력을 만난 홍도는 그것이 무슨 까닭인지 알지 못하고 자기의 오빠를 끌어안고 마주 울며 이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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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오빠 그것이 무슨 말씀이요 내가 무슨 죄가 있거던 그 죄를 자서히 말씀하고 나를 죽이든지 살리든지 하여 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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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의 오빠는 최후에 이런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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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년 시집이 가고 싶으면 정당하게 갈 것이지 그래도 소위 행세를 한다는 집 자손으로 편발의 규중처녀가 어떤 놈과 상관이란 말이 웬 말이냐. 아까 내가 자다가 깨어 들은즉 네 방에서 남자의 코고는 소리가 날 뿐 아니라 내가 마루로 뛰어나가 본즉 무엇인지 그림자가 휙 하더니 담을 넘어가더라. 내가 아무리 잠을 곤하게 잔들 그까진 것이야 짐작을 못할 줄 아느냐. 이년 아무 잔말도 말고 너의 양심이 있고 부모께 욕을 뵈지 않으려거던 당장에 칼을 물고서라도 죽어라. 너와 나의 정의는 아무리 남매라도 의리는 벌써 끊졌으니 내 눈에 뵈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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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그렇게 나아가니 홍도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아무 변명도 못하고 혼자 울며 골방으로 들어가서 비산을 먹고 자결을 하려다가 그래도 죽지 않으니까 최후에 면주 전대에다 자기의 목을 매고 애처롭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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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 누구나 다 같이 궁금하고 답답하시겠지요. 대체 홍도의 방에서 코를 골던 것이 과연 어떠한 남자이며 또 담을 넘어 갔다는 것이 과연 사람이겠읍니까? 그리고 홍도의 죽은 것이 또한 원통한 죽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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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의 진부는 그 이튿날 밤에야 아주 명백하게 변명이 되었다. 홍도의 올아비는 분한 김에 홍도를 그렇게 책망하여 죽게까지 하였으나 홍도가 죽은 뒤에 다시 뉘우처 생각하여 보니 평소에 홍도는 그렇게 품행이 부정한 여자가 아닐 뿐 아니라 남녀가 마음을 놓고 한 방에서 잠을 자며 코까지 골게 되었다면 그 두 남녀의 교제가 결코 일조일석의 일이 아니요 적어도 몇 달 그렇지 않으면 며칠이라도 되어 필경 자기 눈에 거칠게 뵈는 일이 있을 터인데 이때까지 남성과의 교제가 없을 뿐 아니라 사람이 원래 단정하고 정숙한 터에 그리 될 이는 만무한 것인즉 그것은 필경 귀신이나 무슨 다른 탓이라 하고 그 이튿날 밤에 홍도의 올아비는 홍도의 방에 가서 홍도의 자던 그 자리에서 잠을 자는 듯하고 동정을 살피니 아무 인적도 없고 다만 문틈으로 불어 드는 바람이 문풍지를 들둘 울려서 마치 사람의 코고는 소리와 같은데 전날 홍도 갈 때에 듣던 소리와 조금도 차이가 없고 또 조금 있다가 창밖으로 무슨 그림자가 휙 지내기에 뛰어나가 보니 안마당에 있는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려서 창을 시치고 다시 담을 지나가는데 전날 밤에 자기가 사람으로 인식하던 그것과 조금도 틀림이 없었다. 홍도 올아비는 그것을 보고 그제야 깜짝 놀라 깨닫고 자기가 경솔하게 홍도를 의심한 것과 또 자기의 잘못으로 홍도가 원통히 죽은 것을 크게 뉘우치며 홍도의 시체를 끌어안고 일장의 통곡을 하다가 홍도의 원통히 죽은 사실과 또 자기의 회과한다는 유서를 그 곁에 써놓고 자기도 또한 칼로 목을 찔러 죽으니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서 그 남매를 같이 내주고 이 쌍금 노래를 지어서 지금까지 전하여 불러온다고 한다. 그 노래 사설에 『먼 데 보니 달일러라 곁에 보니 처자더라』는 말은 홍도의 잘 생긴 것을 말함이요 그 아래는 모두 홍도의 원통히 죽은 사실을 말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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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과거 봉건시대— 처녀의 정조를 절대 신성하게 여길 시대에 생긴 한 전설과 같이 생긴 이야기로 특별한 가치는 없는 것이나 조선민요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한 참고가 될까 하여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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