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洋宇 든 것이 다 좋와도 洋 쌀밥은 좋지 못하다는 것과 같이 서울 것이 다 좋와도 女子의 얼골만은 서울 女子의 얼골이 볼 것이 없다는 말을 나는 어떤 시골 사람에게 들었다. 과연 그렇다 서울의 女子는 얼골이 별로 좋와 뵈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女子의 美라 하는것은 다만 얼골 한 가지만 보는 것은 아니다. 얼골도 물론 곻와야 美人이 될 것은 事實이지만은 그보다도 몸 全體의 美卽肉色 姿勢 行動 言語 等이 모다 美를 具備하여야만 美人이 될 것이다. (形式美로서) 貫那와 黃眞, 楊貴妃, 크리오파트라, 같은 女子들은 天下의 美人이라 하지만은 그 女子의 얼골만 띄여다가 諸葛亮 夫人(黃髮 夫人)이나 無鹽 같은 婦女의 몸똥이에다 붙여 놓는다면 그것을 누가 美人이라 하며 牧丹과 芙蓉은 花中名花라 하지만은 花瓣만 뜯어다가 가시덤불에다 붙여놓으면 그것을 누가 곻은 꽃이라 하랴. 서울의 女子는 잠깐 보면 얼골이 그다지 곻은 人物이 별로 없는 것 같지만은 실상 그 몸 全體의 美卽肉色의 좋은 것이라던지 몸맵시라던지 거름 것는 본새라던지 怜悧하고 경위 밝고 목소리 좋은 말씨는 到底히 다른 곳 女子로는 같이 比하야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 양금채같이 호리호리하게 가는 몸에다 맵시 있게 지은 옷을 떨처 입고 외씨 같은 버선으로 비오리 같은 곻은 신을 엎어 신고 대명전(大明殿) 대들보 우에 명맥이(紫鸞) 거름 같이 행똥 행똥 거러가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月宮에서 나려 온 仙女 같고 水宮에서 솟아온 龍女와도 같어서 제아모리 徐花潭, 李退溪 같은 道德君子라도 한 번 치여다 보지 않고는 못 견딀 것이다. 그밖에도 거름을 거러 가다가 머리를 돌치여서 흘깃 한 번 도라다 보는 態度는 可謂 一顧에 傾人城이오 再顧에 傾人國이라 하겠다. 只今 서울의 옛 都城이 모다 묺어지고 宮殿이 頺廢하게 됨은 이러한 傾國傾城의 妖艶美人이 있는 까닭이 아니라고 누가 壯談할 수 있으랴. 세상 사람들은 서울의 女子는 얼골이 곱지 못하고 맵시만 좋와서 앞으로 보니 한 푼 자리요 뒤로 보니 萬兩 판이라는 말을 흔이 한다. 그러나 서울의 女子인들 어찌 얼골 곻은 女子가 없으랴. 서울이 서울이니만치 自來로 얼골이 곻은 女子가 많지만은 다른 곳보다 內外가 甚한 까닭에 相當한 家庭의 女子 卽美人들은 外出을 아니하고 低級家庭 卽 아즉 美化가 되지 못한 家庭의 女子들과 鄕村에서 올나온 女子들이 얼골은 입부지 못하면서도 서울 美人의 모양 보는 것만 배워 가지고 出入을 하니까 그것만을 보고 그리 하는 말이다. 마치 시골 사람이 서울에 와서 床밥이나 설넝湯을 사 먹고서는 서울의 음식이 좋지 못하다고 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이 어찌 公平한 觀評이라 할 수 있으랴. 서울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서울 美人의 어떠한 것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實際 서울의 女子를 잘 아는 사람은 반듯이 칭찬을 한다. 그것은 色鄕이라는 平安道 사람도 그렇고 其外 어듸 사람도 다 그런다. 맵시 나는 女子를 얻고 싶으면 서울의 女子 말씨 좋은 女子를 얻으랴거던 서울의 女子 바누질 잘한 옷과 맛있는 된장찌개 깍뚝이를 맛보랴거던 서울의 女子 남편의 대접을 잘 받으려 하야도 서울의 女子라고 하야 모도 서울의 女子를 讃美한다. 서울이 서울이니만치 서울의 女子는 그 머리의 좋은 것과 한 가지로 長處가 또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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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安道는 朝鮮의 色鄕이다. 江界에도 美人이 많고 成川에도 美人이 많고 宣川 安州에도 美人이 많다. 妙香山 높은 峰에서 고비 고사리 캐는 女子던지 鴨綠江邊에서 빨내하는 女子던지 十二 三千坪 沃野에서 모 심으는 女子나 天摩山 深谷에서 강낭이밭 감자밭 매는 女子나 楚山碧潼에서 송아지 먹이는 女子도 모도 美人이다. 그런데 惟獨 平壤의 美人만을 論評한다면 나는 다른 곳 美人들에게 꽃방맹이로 매를 마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只今은 美人도 都會로 集中한다. 道知事 大監 모양으로 道廳 所在地로만 向한다. 여기에 平壤의 美人을 말하는 것도 平壤이 西道 美人의 集中之地인 까닭에 代表的으로 말하는 것이다. 平壤은 참으로 美人이 많다. 옛날의 義妓 桂月香 名歌妓의 梅花, 春雪, 名詩妓의 溫亭, 竹香, 竹西, 詩歌 姿色을 兼有한 國色, 蘆花도 다 이 平壤의 美人이어니와 只今의 各 都市에 散在한 名妓와 富豪의 妾들도 大部分은 平壤의 美人이다. 各 女學校에 말숙말숙한 女子들도 대개가 平壤 出生이다. 西道 사람들은 前日 서울 兩班의 郡守 監司가 西道 사람의 財產을 橫奪하였다고 하지만은 실상은 西道의 娘子軍들이 서울 兩班 富豪를 征伏하였다. 試 하야 보라 서울에 所謂 勢力이 있던 某某 家庭에 平壤 女子가 없는 집이 있는가를 身分은 비록 妾이나 特別한 寵愛를 받는 까닭에 財政權은 다 그들이 찾이하였다. 洪景來의 檄文에 「細柳營中에 曲眉豊頰이 無非關西之產이라」 云云함도 이것을 이름이다. 只今은 兩班 富豪를 이미 다 征伏하고 또 南伐軍을 組織하야 全羅, 慶尙의 富豪를 征伏하는 中이다. 平壤의 美人이 이와 같이 勢力이 큰 것은 元來에 手段과 交際가 能한 것도 能한 것이어니와 妖艶한 姿態와 行動이 能히 사람을 魔殺 식히는 까닭이다. 가을 물에 씨처낸 배추대 모양으로 허여말숙한 그 얼골에다 삼딴 같이 좋은 머리를 곱게 빗어 틀어 언고 白色의 비단 手巾을 멋있게 둘러 쓴 다음에 素服淡粧으로 綾羅島 垂楊버들처럼 날슨날슨한 허리를 흔들며 다니는 態度를 보면 그 누가 誘惑 되지 않으랴. 옛날에 어떤 오입쟁이 詩人이 살어서 平壤 監司를 못 하거던 죽어서 蟬姸洞(妓生의 北亡山)의 鬼神이 되라는 말과 平壤 俗談에 平壤은 三代 遺産이 없다는 말은 亦是 無理의 말이 아니다. 其中에도 多情多恨한 態度로 平壤 사투리를 써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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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개개— 이 얼마 만입니까 大同江이 말으기 前에는 못 볼 줄 알었더니 또 오섯쉐다 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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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半開한 모란이 春風 흔날리덧 벙굿 벙굿 웃는 것은 아모리 鐵石의 肝腸을 가진 남자라도 白銀灘의 봄 어름 살어지덧 녹고 말 것이다. 아— 美人兮 美人이여! 西方之人兮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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滑膩한 錦江은 卓文君과 薛濤를 鍾出하고 秀麗한 荆門의 山村에는 明妃가 生長하였다. 人傑은 地靈이라고 옛날부터 山水가 佳麗한 곳에는 반듯이 美人이 많다. 海州는 西部 朝鮮의 山水鄕이다. 芙蓉 같은 首陽山은 구름 밖에 솟아있고 白玉 같은 石潭水는 九曲으로 흘러 있다. 이만한 水鄕에 美人인들 어찌 없으랴. 海州는 自來 美人鄕이라 치는 곳이다. 옛날에 天下 奸臣 南袞이가 一道의 監司로서 金郊驛에서 終夜不寢한 것도 이 海州의 美人 雙伊(南袞 愛妾)의 愛情을 익이지 못함이오 近來에 朝鮮 甲富 某 大監이 養子를 薄待하고 아들에게 全財産權을 맥기게 된 것도 이 海州 美人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이 두 美人은 다 妓生의 出身이지만은 妓生 以外에도 이름난 美人이 많다. 옛날은 그만 해 두고 只今 京城에 있어서도 或은 學生으로 或은 敎員으로 或은 家庭夫人으로 評判있는 美人이 많다. (姓名은 구태여 露出치 않는다) 海州 美人은 體格이 비교적 크고 白哲豊頰한 것이 한 特徵이다. 平壤의 美人을 半開 牧丹에 比할 것 같으면 海州의 美人은 滿開 芙蓉과 같이 탐스럽고 흐드락 스럽다. 만일 芙蓉堂 연못에 芙蓉이 滿開하였을 때에 海州의 美人들이 그 못가에 作隊幷立 한다면 美人이 芙蓉인지 芙蓉이 美人인지 잘 알 수 없을 것이다. 妓生은 그만 두고 普通의 여염집 夫人이라도 여름철 같은 때에 그 후리후리하고 큰 키에다 白哲豊頰한 얼 골을 手巾으로 반쯤 가리우고 白石淸溪 맑은 물가에서 빨내를 하야 가지고 풀밭에다 마전질을 하너라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면 아모리 高潔하기로 有名한 伯夷 叔齊의 魂이라도 淸聖廟(在海州) 안에 安心하고 있지 못할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海州의 美人은 妖艶妙麗하다는 것보다도 優雅淸閒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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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邱라 하면 세상 사람들은 依例히 문둥이를 연상하고 藥令을 연상하고 물 없는 것을 연상하야 慶尙道 中에서 自來色鄕으로 치는 晉州나 昌原 慶州보다는 아주 乾燥無味한 沙漠의 都市로 알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時代의 變遷은 이 美人界에도 大變動을 이르켰다. 담바귀 타령이 流行되며 京釜鐵道가 南北을 縱貫하고 또 近來에는 晉州의 道廳이 釜山 왜風에 날어가고 慶州의 古跡이 探訪客을 吸收함을 따라서 南國의 娘子軍도 해마다 嶺南의 大都市요 南北交通의 要衝인 大邱로 모라든다. 거리 거리에 香粉紅脂가 靑春 男子의눈을 眩亂 식히고 골목마다 伽倻琴 長鼓 소리가 끈치지 않아서 異域 孤客으로 南國의 情趣를 깨닫게 되었다. 더구나 新式 모던의 女 流 美人들이 三三五五로 짝을 지여 劇場이나 達城公園 같은 곳으로 도라 다니는 것을 보면 어느덧 沙漠의 都市도 花都市로 化한 感이 있다. 大邱와 平壤은 地理 人情 風俗이 서로 다르니만큼 美人의 特徵도 또한 다르다. 平壤의 美人은 浮華輕快함에 反하야 大邱의 美人은 質素沈重하다. 겉으로는 平壤 美人모양으로 多情스럽고 親切치 못한 것 같지만은 속으로 은근하고 귀염성 있기는 到底히 平壤 美人으로서는 따르지 못할 것이다. 平壤의 美人이 多嬌多態하다면 大邱의 美人은 多情多恨하다. 이것은 性格上에 關한 말이어니와 外形으로도 全然 다르다 (勿論 大部分의 標準) 平壤 美人의 얼골은 외씨(茄實) 모양으로 히고도 길지만은 大邱의 美人은 雲中의 月과 같이 둥글고 또 약간의 검은 빛이 있다. 平壤의美人은 키가 후리후리하고 허리가 버들같이 날슨하지만 大邱의 美人은 키가 앙바름하고 허리도 장구통 모양으로 짤막하다. 化粧도 平壤은 輕軟한 것을 좋와 하나 大邱는 濃厚한 것을 좋와 하며 衣服의 色態도 平壤은 淺淡한 것을 좋와 하나 大邱는 深濃한 것을 좋와 하는 것 같다. 何如間 大邱의 美人은 南道의 代表的 美人이다. 京鄕에 勢力 分布도 또 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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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男北女라고 咸鏡道에는 元來에 物色이 좋고 이름난 美人이 많다. 近來에 本夫 毒殺 美人으로 세상이 떠드던 金貞弼 같은 女子는 造化翁이 맨긴 天然의 美人보다도 好奇心 만은 新聞記者들의 붓끝으로 맨긴 美가 많으니까 아즉까지 確實한 定評을 나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評判인즉 近來에 第一 많었던 것은 事實이다. 成宗 때에 名歌妓로 成宗의 寵愛를 받고 노래를 樂府에까지 올리여 至今까지 一般 風流客에게 膾煑을 받는 笑春風도 咸鏡道 永興의 美人이오 壬辰亂 때에 烈烈한 節死를하야 內外人의 耳目을 驚動한 東萊府使 宋象賢의 愛妾으로 宋氏를 따러서 또한 節死(一說에 生存하였다는말도 있다)한 金蟾도 咸鏡道 (咸興의) 美人이요 近世에 黃承旨 奎河의 愛妾으로 節을 守한 晩香도 咸鏡道(咸興)의 美人이오 其他 文章 崔孤竹 慶昌의 愛妾 洪娘(洪原妓) 徐評事 命彬의 妾 翠蓮도 女流 詩人인 同時에 當代 美人이였다. 大金 皇帝 李澄玉도 이 咸鏡道의 美人에 팔니어서 越江을 躊躇하다가 大陸의 皇帝를 꿈꾸던 大業을 失敗하고 革命家 會寧府使 李施愛도 失敗逃走하는 中에 또한 美人을 携帶하다가 鬼門關(鏡城) 外에서 捕據의 寃魂이 되었다. 何如間 咸鏡道는 美人 많은 것이 事實이다. 化粧보다도 天然의 美가 豐富하야 그 桃花色과 같은 血色과 四技의 骨格과 筋肉이 고로히 發達된 肉體의 美는 到底히 他道의 美人으로 敢히 同日에 語치도 못할 것이다. 特히 貞操의 觀念이 強하야 一般의 女子는 勿論이고 비록 花柳界의 女子라도 다른 곳 女子 모양으로 飄絮飛花의 行動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京鄕의 花柳卷이나 其他 남의 妾窟에서 咸鏡道 女子의 影子를 보기 어려운 것을 보와도 足히 證明할 것이다. 自來로 美人이 多薄命이라던지 美人이 無貞操라 하는 말은 이 咸鏡道 女子에 對하야는 適評이라 할 수 없다. 語音이 뚝뚝하고 交際性 적은 것이 美人 資格에 한 欠點이라 하지만은 그것은 南道 사람이 하는 말이지 그 地方에서는 그것이 도로혀 美人의 特色일는지도 알 수 없다. 물래틀(文萊機) 같이 트른 머리에 함박 수건을 눌너 쓰고 울긋불긋한 옷고름에 말굴네 같은 銀가락지를 주렁주렁 차고 巨大한 體格에다 外國 女子보다도 더 발달된 큰 발을 그대로 드러내고 앉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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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봅세 이 손님— 그— 어찌 그래 오한쟁기들 생겼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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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떠드는 것을 보면 아모리 美人이라도 南方 사람이 처음 보면 情이 떠러진다고 하겠지만은 실상 親하야 보면 그러한 態度와 말이 도로혀 天然스럽고 귀염성이 있어서 漸漸 親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咸鏡道 中에는 南部보다도 北部로 드러갈사록 美人이 많어 茂山 같은 데는 所謂 茂山 仙女라고 評判이 높지만은 그래도 都市가 都市이니만치 數가 많은 것으로나 時代的 美化가 된 것으로나 咸興의 美人으로 第一指를 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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