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金君剛叔吾友也,乃於蒼溪之上,寒松之下,得一麓,構小亭,柱其隅,空其中,苫以白茅,翼以凉簟,望之如羽盖畫舫,以爲吾休息之所,請名於先生。先生曰:“汝聞莊氏之言乎?周之言曰‘昔者畏影者,走日下,其走愈急而影終不息,及就樹陰下,影忽不見。’夫影之爲物,一隨人形,人俯則俯,人仰則仰,其他往來行止,惟形之爲。然陰與夜則無,火與晝則生,人之處世亦此類也。古語有之曰‘夢幻泡影’。人之生也,受形於造物,造物之弄戲人,豈止形之使影?影之千變,在形之處分,人之千變,亦在造物之處分。爲人者當隨造物之使,於吾何與哉!朝富而暮貧,昔貴而今賤,皆造化兒爐錘中事也。以吾一身觀之,昔之峨冠大帶出入金馬玉堂,今之竹杖芒鞋逍遙蒼松白石,五鼎之棄而一瓢之甘,皐夔之絶而麋鹿之伴。此皆有物弄戲其間,而吾自不之知也,有何喜慍於其間哉!” 剛叔曰:“影則固不能自爲,若先生,屈伸由我,非世之棄。遭聖明之時,潜光晦迹,無乃果乎?” 先生應之曰:“乘流則行,得坎則止,行止非人所能。吾之入林,天也,非徒息影,吾泠然御風,與造物爲徒,遊於大荒之野,滅沒倒影,人不得望而指之,名而息影,亦不可乎?剛叔曰:“今始知先生之志,請書其言以爲誌。”
3
김군 강숙(金君剛叔)은 나의 벗이다. 그가 창계(蒼溪) 가, 언제나 푸른 소나무 아래 산기슭 한 곳을 구해 작은 정자를 지었는데 각 모퉁이에 기둥을 세우고 가운데는 비워두고 띠로 이엉을 얹고 대나무를 엮어서 측벽을 만드니 멀리서 바라보면 깃으로 장식한 일산(日傘)을 꽂은 놀잇배 같았다. 이 정자를 내가 휴식할 곳으로 삼고서 선생에게 그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였다.
5
“그대는 장씨(莊氏)의 말을 들어보았는가. 장주(莊周)가 ‘옛날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햇빛 아래에서 도망쳤는데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더니만, 나무 그늘에 가자 그림자가 돌연 보이지 않았다’라고 했다.
6
대개 그림자란 것은 한결같이 사람의 형체를 따르니, 사람이 고개를 숙이면 그림자도 고개를 숙이고, 사람이 고개를 치켜들면 그림자도 고개를 치켜들며, 그 밖의 왕래와 행동거지를 오로지 형체가 하는 대로 따른다. 그러나 그늘 속과 밤에는 없어지고 불빛 아래와 낮에는 살아나니, 사람의 처세도 이와 유사하다. 그래서 옛말에 ‘몽환포영(夢幻泡影)’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조물주에게서 형체를 받으니, 조물주가 사람에게 장난치는 것이 어찌 형체가 그림자를 부리는 것 정도에 그치겠는가.
7
그림자가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것은 형체의 처분에 달렸고, 사람이 천변만화하는 것도 조물주의 처분에 달렸다. 사람 된 자는 당연히 조물주의 부림에 따라야지 내가 무슨 간여할 것이 있겠는가. 아침에 부유했다가 저녁에 가난해지고, 예전에 귀한 사람이었다가 지금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모두 조물주가 풀무질하고 단련하면서 만들어지는 일이다. 나의 일신으로 본다면, 예전에 높은 관을 쓰고 큰 띠를 띠고 금마문(金馬門)ㆍ옥당(玉堂)을 출입했다가 지금은 죽장망혜 차림으로 임학(林壑)을 소요하고, 고관의 후한 녹봉을 버리고 빈한한 생활을 달게 받아들이며, 조정의 어진 신하와도 단절하고 고라니며 사슴과 짝이 되었다. 이 모두가 그 사이에서 뭔가 장난을 쳐서 그렇게 되는데도 내가 스스로 알지 못하니, 이에 대해 무슨 기뻐하고 성낼 것이 있겠는가.”
9
“그림자는 진실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선생의 경우는 인생의 실의와 득의가 자신에 달렸으니, 세상에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밝은 시대를 만났으면서도 재능을 숨기고 자취를 감추는 것은 어찌 단호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11
“흐름을 타면 가고 구덩이를 만나면 그치는데, 가고 그치는 것은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산림에 들어온 것은 하늘의 뜻이니, 비단 그림자를 쉴 뿐만이 아니라 나는 서늘한 바람을 타고 조물주와 벗이 되어 까마득히 먼 들판에 노닐고 거꾸로 비치는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면 사람들이 보고 손가락질하지는 않을 터이니, ‘식영(息影)’으로 이름 지으면 안 되겠는가.”
13
“이제야 선생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 말씀을 적어주시면 기문(記文)으로 삼겠습니다.”
15
계해년(1563, 명종18) 7월 하의도인(荷衣道人)은 쓰다.
16
惟我石川先祖,勇退而終老斯亭也。有記文及題咏,則宜乎揭板,而不知毀於何年代,心常慨然,謀欲重揭者,因循末就,今賤齒垂暮,一朝溘露,則亦恐湮沒,故登榟梓而懸諸楣。神短眼眩,至若手工之未得精緻,有不暇顧爾。
17
우리 석천 선조께서는 조정에서 용퇴하고 이 정자에서 노년을 보내셨다. 기문과 제영(題詠)이 있었으니 판자에 새겨 걸려있어야 마땅하건만 언제 훼손되었는지도 알지 못하였다. 마음이 항상 개연하여 다시 걸고자 하였으나 머뭇거리다가 이루지 못하였다. 이 못난 사람도 나이가 늘그막이라 하루아침에 이슬처럼 사라진다면 매몰될까 두려웠으므로 판자에 새겨 문미(門楣)에 매달았다. 정신은 몽롱하고 눈은 침침하여 솜씨가 정치하지는 못한 지경이지만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18
여섯 번 계해년을 맞고 다시 27년이 지난 경인년(1950) 3월에 불초(不肖)한 후손 임태우(林泰釪)는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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