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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아득한 옛날 일은 알지 못합니다. 오늘날 조선 땅에 본디 살던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이것조차 아직은 아는 수 없읍니다. 다만 시방 우리 조선 사람의 조상은 본디 먼 서녘으로부터 차차 동녘으로 옮아 나오다가, 마침내 대륙에서 반도에까지 들어와 살게 된 사람임을 알 수 있읍니다. 우리의 조상이 대륙의 동녘 끝에까지 오기는 퍽 오랜 옛날의 일이지요마는, 백두산 남녘으로 홀쭉한 반도에까지 들어오기는 오천 년 이짝의 일이요, 다시 제법 한 나라를 차리기는 더 훨씬 후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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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조상이 처음 동녘으로 와서, 바다를 보고 거기서 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이곳에 날이 먼저 샘을 보고서 자기네의 사는 땅을 조선이라고 이름하였읍니다. 조선이라 함은, 처음으로 밝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동방에 온 우리의 조상네들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조선이란 이름으로 불러서, 시방으로 말하여 만주 전체와 북방 지나의 일부까지도 다 조선이란 범위에 들던 것입니다. 이것이 뒤에 땅 이름으로부터 민족의 이름이 되고, 다시 나라의 이름이 되면서 차차 테가 좁아져서, 나중에는 백두산 남녘의 반도만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기까지 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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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의 조상이 서녘의 그 고향으로부터 동녘으로 옮아 나온 것은 물론 여러 차례이었읍니다. 먼저 온 떼와 나중 온 떼의 사이가 여러 백년으로 여러 천년까지 떨어져서, 본디 한 뿌리로서 나왔건마는, 풍속과 말에 얼마만큼씩 틀림이 생기게 되고, 또 사는 땅의 형편이 서로 같지 아니함을 인하여 이 빌미가 더욱 심하여졌읍니다. 그리하여 같은 조선 사람의 가운데 많은 겨례가 생기고, 너냐 나다 하는 싸움도 차차 일어나게 되었읍니다. 이때의 조선 사람들은 시방 흑룡강 이남, 홍안령 이동의 북방 대륙으로부터 발해·황해를 사이에 두고, 이쪽의 조선반도와 저쪽의 산동 지방에 걸쳐서 무수한 「발그」를 만들었읍니다. 또 좀 뒤져서는 동해·남해를 건너서 시방 일본의 서남 지방에 들어가서도 여기저기 「발그」를 지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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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그」란 것은 시방 말로 하면 도읍이라고 한 것이요, 그때로 보면 조금조금한 한 나라들이던 것입니다. 이 「발그」는 혹 산 하나를 짊어지고 생기기도 하였으며, 골 하나를 잡아 가지고 생기기도 하였으며, 물 하나를 끼고 생기기도 하였으며, 큰 산중과 벌판에서는 이귀 저귀를 떼어가지고, 여러 「발그」가 마주 보고 있기도 하였읍니다. 그 큰 것은 후세의 고을 하나만이나 하고, 작은 것은 마을 밖에 아니되었읍니다. 이 「발그」란 말이 여러 가지로 사투리가 생겨서, 혹 「발」「벌」「불」이 되기도 하고, 혹 「박」「백」「븍」이 되기도 하고, 혹 「부루」「부리」「부유」「부여」 「배」가 되기도 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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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이 이렇게 「발그」를 만들어 가지고 사는 한편에서는, 조선 사람 아닌 다른 종족도 없지 아니하였으나, 그 정도가 낮고 세력이 적어서 대개는 조선 사람의 밑에 눌려서 지내므로, 조선 사람의 「발그」살림은 오랫동안 심히 안온하고 즐거웠읍니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지매, 만만하던 것이 뻣뻣해지기도 하고, 또 먼 데로부터 강대한 다른 종족이 덤비기도 하여, 조선 사람의 「발그」들이 차차 남에게 물려 지낼 걱정을 하게 되었읍니다. 그래서 조그만큼씩 뿔뿔이 헤어져 지내다가는 큰일이 나겠다하는 생각이 나서, 작은 「발그」들이 차차 모여서 「발그」의 덩어리를 만드니, 이렇게 「발그」의 자란 것이 나라라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나라라고는 하여도 후세와 같이 권력적 관계로써 생긴 것이 아니요, 그때의 나라는 말하자면 조상의 내력과 위하는 신명과 말과 버릇이 서로 같은 「발그」들이, 종교적 행사 곧 제사를 중심으로 하여 통일과 연락을 지녀가던 것입니다. 그때에 있어서는 이 종교적 감정보다 더 강대한 단체력이 무론 없었읍니다. 조선 본토에서 「발그」가 자라서 나라들이 될 동안에, 지나의 내지에 있던 「발그」들은 차차 지나 민족하고 화동해 버리고, 일본 섬에 있던 것은 남방 해상으로서 들어온 여러 다른 종족을 합하여, 다른 나라 한판을 따로 차려 나가게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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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대개 시방부터 삼천 년 전쯤까지의 형편입니다. 여기 주의할 일은, 한옆으로 나라가 생길 때와, 또 생긴 뒤에도 지방을 따라가서는 오랜 뒤에 까지, 따로 도는 작은 「발그」들이 그대로 남아 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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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전해 오는 말을 듣건대, 조선에서 처음 나라를 배포하신 이는 하늘에서 내려 온 종족 가운데서 나신 단군이란 어른이시니, 신령한 덕이 있으시므로 백성들의 떠받듦을 받아서 임금이 되사, 여러 가지 백성들의 살기 좋은 방법을 마련하여 놓으셨다 합니다. 조선이 이때로부터 나라의 이름을 지었다 합니다. 「단군」이란 것은 그때 말로 하늘사람이란 뜻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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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은 천지간에 무엇인지 모르는 신령한 위력이 있어서, 이것이 사람에게고 짐승에게고, 나무나 돌에고 들어가서, 여러 가지 조화를 부리는 줄로 생각하였읍니다. 이 위력이 많이 든 줄로 생각되는 사람과 물건은, 만인에게 걸구한 대접을 받아서 숭배를 받고, 치성과 기도를 받게까지 되니, 이러한 사람이 살아서는 신인이란 것이요, 죽어서는 신령이란 것이요, 이러한 산천 초목·금석 금수가 또한 차차 신령 노릇을 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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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절에는 이러한 신령을 아무쪼록 덧내지 말고, 또 할 수 있으면 친근하게 할 양으로 온 세상이 모두 신도를 숭상하여, 인간 만사를 도무지 신에게 제사지냄으로써 근본을 삼았읍니다. 시방 말로 하여 정치고 법률이고, 예절이고 학문이고, 예술이고 오락이고, 무엇이든지 다 제사에 붙여 있고, 제사를 끼고 돌았읍니다. 그리하여 나라라는 것은 제사를 한가지로 지내는 큰 단체요, 서울이란 것은 제사를 모여서 지내는 거룩한 곳이요, 임금이란 것은 제사를 맡아서 지내는 신령한 사람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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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이란 어른은 이러한 세상에서, 종교를 중심으로 하여 모든 지방을 거느려 다스리시던 거룩한 임금이십니다. 처음에 한 지방마다 그 땅을 지키고 사는 겨레가 있고, 겨레마다 어른이 있어 백성들을 거느리다가, 여러 가지로 같은 종족끼리의 단합할 필요를 깨달았을 때, 모든 지방과 겨레의 중심되는 곳에, 종교적으로 특별히 신성한 위력을 가진 거룩한 어른이 생겨나매, 이 어른을 하늘과 신령을 섬기는 꼭대기 어른으로 모시고, 일종의 신앙적 종족 연락을 지니게 된 것이, 조선이란 나라와 단군이란 임금의 생겨난 내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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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시절의 문화는 종교가 중심이요, 그 종교는 무론 원시적의 신앙이었읍니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이 천지간에 「신」이라 하는 신성 영묘한 힘이 있어, 사람과 만물의 속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조화를 부리는데, 높은 산과 깊은 굴과, 이상한 바위와, 물과 샘에는 이 「신」이잘 들고, 특히 태양은 이 「신」을 가장 많이 받아서 천지의 어른이 되었음을 믿었읍니다. 또 세계에는 「직힘」이니, 「업」이니 하는 善神[선신]과, 「뜬것」이니 「굿것」이니 하는 惡神[악신]이 있어, 사람의 화복이 그네들에게서 옴을 믿었읍니다. 그러나 뒤에 가서 태양을 천지의 임자라 하여 「한우님」이라 하고, 또 그 위덕을 좇아서 「밝은네」라고도 일컬으면서, 다른 모든 작은 신령이 다 이 밑에 들게 되었는데, 이 어른은 실상 우리들의 도조상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풍년과 안락을 주시는 고마운 神[신]으로 생각되어, 간 곳마다 큰 숭배를 받았읍니다. 그리하여 「발그」마다 이 태양인 하느님을 섬기는 신성한 곳이 있어, 매양 높은 산 꼭대기를 이에 쓰니, 시방 어느 지방에든지 거기서 가장 높은 산에 白[백]이란 글자의 붙는 산은 대개 옛날의 신성한 산이던 곳입니다. 단군시절의 여러 「발그」마다 이 「밝은」이라 하여 하느님이요 조상으로 모시는 신앙이니, 「발그」마다 이 「밝은」의 제사터가 제각기 있는 중에, 시방 백두산은 인간에 있는 하늘의 한 조각이라 하는 것으로 가장 신성한 큰 제사터이었읍니다. 단군의 조선은 처음 이 산을 의지하여 나라를 세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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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옛날에는 다 그렇던 것처럼, 단군 시절의 조선 사람은 모든 연장과 물건을 많이 돌로써 만들어서, 칼과 도끼와 몽치와 화살촉이 다 돌이요, 이 밖에는 나무와 짐승의 뼈나 뿔로 만들어 쓰는 것이 있었을 뿐입니다. 같은 조선에서도 지방을 따라서는 단군시절의 하대에 이미 쇠를 불려서 쇠그릇을 만들어 쓰게 된 곳도 있었겠지만, 대개는 석기시대를 벗지 못한 것이 사실이며, 또 어느 지방은 단군 시절의 훨씬 뒤까지도 석기를 썼읍니다. 그때의 석기는 조선 안 여기저기서 시방 많이 발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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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옛날 사람들은 돌에 신령한 힘이 있음을 믿어서, 그것을 많이 종교적 의미로 썼읍니다. 시방 남도에 많이 남아 있는 「선돌」이란 것과, 북도에 많이 남아 있는 「고인돌」이란 것은 다 석기시대 사람의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선돌」이란 것은 마을이나 고을의 옆에 우뚝한 돌을 세워 놓고 치성을 드리는 것이며, 「고인돌」이란 것은 커다란 돌장을 책상 같이 만들어 놓은 것이니, 옛날 사람의 무덤이라고도 하고, 제터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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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시절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아직 사냥질과 짐승치기로만 먹을 것 입을 것을 장만하는 중에, 조선 사람은 이미 밭을 갈고, 씨를 뿌려서 열매를 거두어 먹는 농사를 할 줄 알았읍니다. 사냥질과 짐승치기로 생업을 삼는 백성은 이리저리 옮아 다니기를 잘 하지마는, 생무지 땅을 길들여서 농사를 짓는 백성은 손때 먹인 땅을 오래 지키고 살게 되므로, 사는 땅을 사랑하는 마음도 깊고, 또한 지방에서 자손이 번성하여지므로, 어언간 부족으로부터 국가로까지 발달하기가 쉬우니, 이렇게 조선 사람이 일찍부터 농업을 안 것은, 실로 그때에 있어서 남에 비하여 놀라운 문화인 동시에, 또 아무보다도 국가 생활을 먼저 시작하게 된 까닭입니다. 도읍 만듦과 성 쌓고 사는 것은 다 농업으로 사는 관계로서 나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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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조선은 천년이 넘도록 계속하였다 합니다. 그런즉 단군이라는 일컬음은 마찬가지라도, 첫대로부터 끝까지 대수가 많이 갈렸을 것은 무론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큰일이 없던 시절이라, 자세한 것은 전하지 아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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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조선의 강토는 널리 말하면, 위에 적은 모든 조선 사람의 사는 곳을 휘몰이한 것이라고도 할 것이지마는, 그 뿌리되는 곳은 대개 시방 백두산 북편이고, 송화강 흘러 나가는 골짜기일까 합니다. 조선을 옛날에는 「한울」이라고도 하였는데, 백두산의 둘레에 큰 벌과 깊은 골이 연하여, 시방도 「한울 벌」(天坪[천평])이라는 이름을 전해 오는 것이 실상 우연한 일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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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시절 일천 수백 년 동안은 조선 사람이 편안히 살 땅을 잡고, 조선이란 나라의 주초를 놓고, 조선 사람이란 민족의 씨를 뿌린 시기입니다. 통틀어 말하여 조선이 생기려고 못자리 잡던 동안입니다. 이동안에 부지런과 꼼꼼함과 어짊과 슬기로움으로써 이 못자리를 살피신 거룩한 농군이 단군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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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조선 일천 년이 지나는 동안에, 조선 사람의 나라가 여러 가지 관계로 차차 두 갈래에 나기 시작하니, 곧 백두산을 가운데 두고 북쪽으로 모여드는 「부여」라는 한 끄덩이와, 남쪽으로 모여드는 「한」이라는 한 끄덩이입니다. 여러 가지 새로 생긴 사정이 종교적 연락만으로는 탄탄한 통일을 지니기 어려움도 그 하나요, 대륙과 반도의 지세상으로 틀리는 것도 그 하나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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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한 일은, 단군의 지위를 대신하녀 한 새로운 나라가 부여와 한의 중간에 생겨나서, 자칫하면 끊길 듯한 온 조선 사람의 연쇄가 되니, 이것은 시방 대동강을 중심으로 하여 전에 없이 진보한 나라를 만들었던 「개지」의 이름으로 다스리던 둘째 조선입니다. 「개지」란 것은, 그때 말로 태양의 아들이란 뜻이니, 그대로 임금의 이름으로 쓰기를 단군과 같이하여, 단군의 다스리던 나라를 단군 조선이라고 하듯이, 「개지」의 다스리는 조선을 「개지 조선」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또한 특별한 큰일이 없으므로 역대 임금의 각기 이름은 전하지 아니합니다. 이 「개지」를 뒤에 와전하여 「기자」라고 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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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지」조선도 대략 일천 년을 계속하였는데, 이 동안 북의 부여와 남의 한에는 특별히 들출 일이 없고, 또 생활과 문화에도 아무 눈뜨이는 일이 없으며, 다만 중간에 있는 「개지」조선만이 모든 것으로 놀랍게 발달하여, 동방에 있는 최초의 문명국을 이루었읍니다. 그것은 첫째, 위치가 적당하여 북방의 근심이 압록강을 넘는 일 없고, 남방의 걱정이 한강을 지나지 않고, 또 동방에는 태령이 하늘에 닿아서 염려 둘 일이 본디부터 있지 아니하므로, 평화한 가운데 사회의 생장이 계속할 수 있음과, 둘째, 토리가 좋아서 시방의 황해도 일대 지방만 하여도 곡식의 농리가 무진장으로 컸음과, 세째, 교통이 편리하여 사방의 물건이 이리로 모여들어서, 내외 무역의 단물이 많이 이 땅에 떨어짐과, 네째, 그때의 문화적 선진이요 경제상 은인인 지나하고의 교통이 오로지 대동강 중심으로 행하여, 허다한 지식과 재화가 항상 이리로 모여들었음과, 다섯째, 이 지방에 사는 겨레는 특별히 진취적 기상을 많이 가졌음 등을 말미암아서 차츰 차츰 성취된 것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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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은 이때까지 제 땅을 지어서 제가 먹고 살기만 하던 백성이었읍니다. 그러므로 먹을 만큼 땅을 지을 뿐이요. 그 이상을 생각하고 힘쓸 줄 몰랐읍니다. 그러다가 곡식과 다른 產物[산물]이 무역품으로 돈을 사게 된 것을, 대동강에 모여드는 지나 사람에게 알았읍니다. 그리하여 농업적으로 제 살림이나 하던 백성이 , 무역으로 남의 돈과 물건과 재주를 바꾸어 들이는 단맛을 보았읍니다. 온 조선 안의 천산품을 모아다가 대동강에 띄워서 바다 건너 지나 편으로 보내고, 지나의 비단과 그릇과 금·은·보배를 가져다가 자기네들도 쓰거니와 한옆으로는 깊이 있는 여러 겨레에게 되팔기도 하여, 두 겹 세 겹으로 이익을 보았읍니다. 이렇게 전에 없던 상업적 활동으로부터, 「개지」조선의 문명과 부강이 남보다 우월하게 와짝 늘어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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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지」조선의 발달은 조선 사람 스스로의 노력도 노력이어니와, 지나 사람에게 큰 힘을 입은 것입니다. 무역이란 것부터 지나 사람이 가르쳤거니와, 무역품 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시방 황해도 평야에서 나는 곡식인데, 이 큰 벌의 개척은 대개 지나 사람의 노력과 기술을 이용한 것이었으며, 이 이곳을 보고 물밀듯 몰려들어 오는 지나 사람의 몸에 묻어서 많은 재물과 한가지 진보한 문화도 수입되었읍니다. 지나 사람은 조선 백성에게 손재주를 가르치고, 누에치기와 비단짜기를 가르쳤으며, 글을 가르치고, 지나 본새의 예절을 가르치고, 진보한 국가 생활의 방식을 가르쳐서, 그 덕에 조선이 원시 시대의 티를 벗고 말쓱하게 깎인 나라를 이루었읍니다. 말하자면, 충실한 지나의 더부살이는, 우리 뱃가죽에 살을 올려 주면서 한쪽으로는 마음의 문짝까지를 열어 주고, 들 밖의 일을 맡아 하면서 겸하여 방속의 치장까지도 보살펴 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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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지」조선 사람은, 터수가 펴임과 외국 문화의 이용을 말미암아서 생활하는 본새에 급작스러운 혁명이 생겼읍니다. 움이 집이 되고, 베옷이 비단옷이 되고, 음식먹는 그릇이 갖가지로 구비해지고, 공사생활에 예절이 분명해져서, 「개지」조선 사람은 다만 조선 안의 다른 겨레에 비해서 뿐 아니라, 지나의 문명한 지방을 어울려서 그때에 있는 가장 고등의 살림살이를 하였읍니다. 대륙과 반도를 통하여 깊이 있는 다른 겨레의 일반 정도는 이 뒤 얼마까지도 매우 유치하게 갔지마는, 「개지」조선만은 혼자 줄달음질의 진보를 하여, 당시에 있어서 남부럽지 아니할 훌륭한 문명국을 이루었으며, 이것이 온 조선 사람의 생활에 좋은 영향을 주고, 그 발달에 큰 자극을 주었음은 무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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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있는 곳에 해가 따름은 면하지 못할 일이었읍니다. 문명과 재화를 가져다 준 지나 사람은, 한쪽으로 우리에게서 고유한 도덕과 염치를 많이 빼앗았읍니다. 아낙네는 더러운 일을 모르고, 사나이는 훔치개질이 없던 조선의 깨끗한 땅에, 죄악의 더러운 씨가 그네의 손에서 떨어졌읍니다. 사회가 어수선해지면, 인심이 저절로 순박한 대로 있지도 못하는 것이겠지마는, 지나 사람의 흘리는 구정물에 조선의 깨끗이 급작스러이 깨어졌음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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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의 야박해지는 것은 오히려 작은 일이라고도 하겠지마는, 지나 사람의 들이밀린 결과로 가장 기막히는 일은, 남에게 흘려서 제 정신을 잃어버리는 빌미가 커감입니다. 남을 배우기에 바빠서 나를 잊어버리고, 남을 좋아 하기에 바빠서 저를 내어버림이었읍니다. 그때 지나 사람의 생활과 문화가 조선에 비하여 우월함이 사실이요, 조선 사람이 그것을 배우기에 힘써야 할 것도 무론이지마는, 그 정도가 지나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로 빠져버리고,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 항복을 하면, 그 결과가 파칙할 것은 두말도 할 것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나보다 나은 남하고 다닥뜨리는 마당에, 자칫하면 빠지기 쉬운 것이 저와 제 정신과 제 살림을 온통으로 빠뜨리는 구렁입니다. 취하지 아니할 것까지를 취하고, 버리지 못할 것까지를 버림에 이르러서, 남의 것을 얻기는 새로에 제 것만을 잃어버리기가 첩경입니다. 산다고 하다가 팔리고만 마는 것입니다. 「개지」조선의 사람은 정히 이러한 위기에 임하여, 자기의 총명을 시험하게 되었읍니다. 그리하여 보암즉하게 실패를 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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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틈엔지 「개지」조선 사람, 특별히 임금으로부터 벼슬하는 이들까지의 상류 사회란 데에 무엇이고 지나가 제일이라는 생각이 굳어졌읍니다. 그리하여 지나 사람에게 힘입지 못할 일까지를 힘입으려 하며, 바라고 믿지 못할 일까지를 바라고 믿었읍니다. 번연한 도적을 좋은 보호자로 생각하였읍니다. 혼이 나가다 나가다 못하여, 조선 사람의 조상이 지나에서 오고, 조선 임금의 근본이 지나에 있는 줄 알라 하매, 그것도 옳은 말이라고 믿게까지 되었읍니다. 「개지」란 것이 분명히 태양의 아들이요 하늘 사람이라는 말로서, 겨레 이름이 되고 임금 이름이 된 것이어늘, 지나 사람이 들어온 뒤에 「개지」를 왕이란 지나 말로 대신하고, 이러한 지가 오래서 「개지」의 뜻을 잊어버려서 다만 옛날 조상의 이름으로만 기억하다가, 지나 사람이 와서 「개지」란 실상 지나의 옛날 성인인 기자요, 조선 왕실은 이 갸륵한 이의 자손이니라 하매, 지나 좋아하는 마음에 옳구나 하고 믿어 버린 것 같음이 그 두러진 일입니다. 위에서 이러하매 아래서는 더 심하여, 좀 똑똑한 겨레라는 것들은 아무쪼록 제 조상을 지나에 끄집어댐이 큰 유행을 짓고, 비뚤어진 정신이 다른 모든 일에 번져서, 이러구러 동방에 거짓 지나가 하나 생기면서, 참 조선이라는 것은 차차 그림자를 감추게까지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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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이쯤 가는 중에서 무서운 사실이 알배게 되었읍니다. 무엇이냐 하면 지나 사람이 조선의 , 마음뿐 아니라, 몸뚱이를 온통으로 집어삼키려 하는 음모를 베푼 것입니다. 대저 지나 사람의 조선 반도로 들어옴은 두 가지 필요에 말미암은 것이니, 하나는 무역상의 이익을 취하려는 적극적 필요요, 또 하나는 관리에 부대껴서 편안히 살 고장을 얻으려는 소극적 필요입니다. 「개지」조선의 시절은 지나로 말하면 周[주]라 하는 나라가 생겨서, 지나 고대의 작은 나라들을 한때 통일하였다가, 그 뒤에 그 쐐기가 튼튼하지 못하여 작은 나라들이 다시 기승들을 부리기 시작하고, 그리하여 이놈 저놈들이 세력을 다투기에 난리가 끊이지 아니하여, 마침내 전국시대란 것을 나타내는 시기에 당하여, 「개지」조선의 하대가 이 전국시대에 마주서니, 전국시대로 말하면 그 주권자들은 싸워서 이기기 위하여 군사를 강하게 하고, 군사를 강하게 하기 위하여 나라를 부하게 할 필요가 있어서, 크게 사업의 발달을 꾀하고, 할 수 있으면 외국 무역의 길을 터서, 물자의 공급을 아무쪼록 풍부하게 하려 하는데, 전국 중의 濟[제]와 燕[연]은 다행히 조선 방면의 풍부한 산물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이쪽의 무역이 나날이 번성을 이루고, 따라서 지나 사람의 반도로 옮아와서 사는 것이 차차 많아졌으며, 또 그 백성들은 오래 두고 끊이지 아니하는 심한 난리에 쪼들리다 못하여, 아무것보다 편안히 살 곳을 찾아서 조선의 복 트임을 알고 떼떼이 밀려 들어와서 시방 평안도·황해도로, 차차 경기도 한 부분에까지 막대한 수효가 뿌리를 박고 살게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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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형세는 전국시대가 끝나고 秦[진]을 거쳐 漢[한]에 이르면서 더욱 커서, 이럭저럭 지나 사람의 반도로 옮아와서 사는 수는 나날이 늘었는데, 처음에야말로 땅뙈기나 얻어 부치면 감지덕지 하여 살았지마는, 차차 덩어리가 크고 세력이 생기매, 먹고 사는 이상의 엉뚱한 생각이 저절로 나게 되었읍니다. 형세가 있으면 이용하는 인물이 나는 셈으로, 정히 이때에 한 야심가가 그네의 중에 나타났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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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누구냐 하면 衛滿[위만]이란 이입니다. 위만은 본디 漢[한]에서 정치적으로 활동을 하다가 실패하고, 망명하여 조선으로 와서, 조선왕에게 북방 근심을 담당하겠노라고 자청하니, 왕이 以夷制以[이이제이]가 해롭지 않다하여 시방 청천강 근처에 백리 땅을 비어 주고, 앞문의 개 노롯을 잘하라고 부탁하였읍니다. 그러나 위만의 속에는 본디부터 먹장 같은 딴 것이 있었읍니다. 무엇이냐 하면, 지나 본토에서 실의한 정치적 욕망을 조선에 와서 한번 채워 보자 함입니다. 위만이 조선으로 오기는, 본디부터 조선의 본토 사람은 지나 사람이라면 허겁제신을 하여 살이라도 베어 먹이려 드니 속이기가 좋고, 조선에 와서 사는 지나 사람은 땅을 지어 먹는 밖에 권력까지도 잡아 버리려는 욕심이 탱중하여 있으니, 세력을 만들기가 쉬움을 본 것입니다. 위만의 계호기은 생각한 것보다 더 손쉽게 진행되었읍니다. 아무것보다도 조선왕의 저를 턱없이 신임함이, 그로 하여금 웬 떡이냐고 얼른 손을 내밀게 하였읍니다. 세력을 뭉칠만큼 뭉쳐 가지매, 漢[한]나라 군사가 오니 도성을 보호하여야 하겠다는 핑계로 불시에 왕도를 들어쳤읍니다. 기르는 개에게 발등을 물린 조선왕은 어이가 없는 채로 쪽겨서 남방으로 달아나고, 그 자리에 위만이가 들어서서 세째 조선의 왕이 되었읍니다. 이것은 더부살이를 너무 많이 붙인 자연한 결과라고도 하겠지마는, 또 남을 깊이 믿다가 패를 본 첫 경험입니다. 그러나 이치로 말하면 「개지」조선의 망한 것은 위만의 이번 변에 말미암은 것 아니라, 조선 나라의 조정에 지나 사람의 벼슬아치가 그득하고, 조선 사람의 마음에 지나 제일이라는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쳤을 때에, 조선의 고갱이는 벌써 시들었던 것입니다. 위만의 손에 망한 것은 「개지」조선의 꺼풀뿐입니다. 위만의 새 나라 배판은 조선이 처녀의 깨끗을 잃어버리던 처음 일로, 조선 역사상에 전에 없는 큰 변동인 동시에, 조선 사람이 정신상으로 지내 보지 못하던 큰 격동을 받은 일대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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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에서도 문명과 재화의 곳집이던 「개지」조선이 남의 손에 돌아간 것은, 조선 사람의 발달상에 큰 방해 아님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동강 중심의 일대 지방만을 보고 하는 말이요, 실상 온 조선의 골고루 발달해 나가는 위로는 도리어 다행의 일이라고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원체 온 반도의 중에서 「개지」조선이 우뚝하여진 것은, 사람에 비유하여 말하면 손이나 발 같은 신체의 한 부분이 병신으로 발달하고, 다른데는 의연히 어린애대로 있는 것과 같았읍니다. 「개지」조선과 그 주위에 있는 다른 겨레들과의 사이에는 너무도 큰 차등이 있던 것인데, 「개지」조선이 망하면서 임금과 큰 백성들이 쫓겨서 사방으로 흩어져 나감을 말미암아, 조선에 몰려 있던 문화와 재물이 반도 안에 골고루 널리 퍼져서, 그 사회의 발달에 큰 자극을 주게 되었읍니다. 얼른 말하면 조선 하나만이 뾰죽하게 내밀었던 질을, 반도 전체에 널리 펴는 양으로 변해 놓게 되었읍니다. 대저 단군의 뒤를 이은 「개지」조선의 일천 년 동안은 얼른 말하면 단군 시절에 베어서 낳은 조선이란 나라와 사람이, 차차 걸음마를 타서 자라가는 시기입니다. 단군 시절에 부락으로부터 나라로 발전한 조선이, 「개지」시절에 들어와서 원시적 국가로부터 다시 문명한 나라로까지 한 걸음을 내키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 발육되어 가는 아이에게 젖이 되고 양분이 된 것이 지나의 문명과 재력이었읍니다. 다만 젖먹은 기운이 온 몸에 골고루 퍼지지 못하여 문명의 따뜻한 빛은 , 대동강 일대에 그치고, 다른 겨레들은 불행히 뒤에 떨어졌던 것인데, 「개지」조선의 흐너져 헤어짐이, 진보한 문명에 대한 기회를 균등하게 만들었읍니다. 이것이 조선의 자라남에 대하여 중대한 새 기회임은 무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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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지」조선 일천 년 동안의 조선이 자라가는 모양은 극히 느리고 더디었읍니다. 그러나 그런 대로 그 의미는 깊었읍니다. 단군 시절의 나라난 것은 실상 일종의 신성 동맹에 지나지 못한다 할 것이려니, 「개지」시절에 와서는 제법 권력적 분자가 붙게 되었으며, 따라서 단군시절의 나라란 것은 외형으로는 일종의 통일체를 나타내었지마는, 실상은 제풀대로 따로 노는 각개의 부락에 지나치 못한다 할 것이어늘, 「개지」시절에 들어와서는, 나라의 중심이 여럿으로 찢기기는 하였을망정, 중심마다의 결속한 힘은 자못 탄탄한 것이 있어, 전에 비하면 형식과 실질이 다 매우 나라다와졌음을 봅니다. 푸석하던 통일로부터 단단해지려는 분화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북방의 「부여」와, 남방의 「한」과 또 중부에 있는 「조선」의 삼대중심에서 다시 허다한 작은 중심이 생기게 되니 「개지」조선 하대의 대세를 말하건대, 「부여」는 北夫餘[북부여]·東夫餘[동부여]·卒本夫餘[졸본부여] 등으로 분화되고, 「한」은 馬韓[마한]·辰韓[진한]·弁韓[변한] 等[등]으로 분화하고, 朝鮮[조선]은 眞番[진번]·臨屯[임둔]·沃沮[옥저]·薉[예] 등으로 분화를 하였읍니다. 이것들은, 앞으로 대조선이란 큰 집을 이룩하는 데 장차 한쪽 기둥씩을 담당할 것으로 매우 중요한 직책들을 메었읍니다. 그런데 이 여러 새 중심의 생성은 항상 「개지」조선의 자극을 받은 것입니다. 「개지」조선의 문명과 재력을 그대로 나누어 가지지들은 못하였어도, 역시 「개지」조선이 자꾸 진보해 가는 데 끌려들어서 그네들의 사회도 속이 퍽 튼튼하여졌읍니다. 그러므로 혹 빠르고 크며, 혹 더디고 작은 차별은 있을 법하되, 「개지」조선 일천 년 동안에 어느 겨레고 일어서서 걷도록 자라나지 아니한 것은 하나도 없읍니다. 단군 시절을 못자리 부은 때라 하면, 「개지」조선은 모를 내어서 이 논 저 논에 심어놓은 시기입니다. 그중의 「개지」조선은 거름이 좋아서 남보다 일찍 좋은 실험을 많이 하였는데, 「개지」조선의 망함과 한가지 그것이 다른 여러 논으로 골고루 퍼지는 기틀이 생긴 것입니다. 「개지」조선의 문화상 공적으로 말하면, 지나의 문명을 반도로 수입하여서 다만 한 부분엘망정 매우 진보한 사회를 만들어낸 것이 가장 두드러진 것이지마는, 또 한 가지 중대한 것은 단군 시절부터 내려오는 「발근의 신앙을 더한층 발달시켜서 거의 고등의 종교를 이루게 한 것이니, 태양이 하느님이 되어 만신을 거느리고 인류를 위하여 행복을 , 주시기에 애쓴다는 관념과, 인간의 임금은 태양의 힘을 받아서 세상과 백성을 밝고 따뜻한 데로 끌고 가는 이라는 사상은 다 이 시절에 성립한 것입니다. 또 하늘과 인간과의 교통은 높은 산을 말미암는다 하고, 인하여 높은 산을 하늘의 한 부분과 같이 알고, 그리하여 높은 산을 신성한 곳으로 생각하는 풍기는 이 시절에 들어와서 더욱 성대하여져서, 산에 들어가 도를 닦는 행자들이 생기게 되었읍니다. 산에서 천신을 접하는 조선의 이 도가, 바다를 건너 지나의 燕[연]과 劑[제]의 지방으로 들어가서, 그 신선의 도를 열어 준 것은 매우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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