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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亂[임진란]과 傳說[전설] (下[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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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畿道[경기도] 坡州郡[파주군] 坡平面[파평면]에 火跡亭[화적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李鍾翊[이종익] 君[군]의 報告[보고]에 依[의]하면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傳說[전설]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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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亂[임진란] 爆發[폭발] 直前[직전]에 어느 날 밤 宣祖大王[선조대왕] 꿈에 女子[여자]가 베ㅅ단을 머리에 이고 南門[남문] 안으로 가득이 걸어 들어왔다. 하도 怪異[괴이]하야 王[왕]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튼날 朝禮[조례]를 苦待[고대]하야 文武百官[문무백관]들 앞에서 그 꿈 이야기를 하고 解夢[해몽]을 求[구]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 자리에서는 解夢[해몽]하지 못하고 얼마 후에야 그때의 重臣[중신]이며 西人[서인]이었든 李栗谷[이율곡]이 解夢[해몽]하야 아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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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은 大端[대단]히 不吉[불길]합니다. 베ㅅ단을 머리에 인 女人[여인]이니 글자로는 ‘倭[왜]’字[자]며 南門[남문] 안으로 가득이 들어오니 아마 倭國[왜국]이 南[남]쪽으로부터 처들어올 것을 意味[의미]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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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이 對答[대답]은 臣下[신하]들 사이에 是非[시비]를 이르키어 結局[결국]은 栗谷[율곡]은 平安道[평안도]로 流刑[유형]의 處罰[처벌]을 받게 되었다. 栗谷[율곡]의 本宅[본댁]은 그 때 前記[전기] 火跡亭 近方[화적정근방]에 있었는데 그 곳은 開城[개성] 平壤[평양]으로 通[통]하는 國路[국로]인 關係[관계]로 栗谷[율곡]은 流刑[유형] 가는 途中[도중]에 여기를 지나게 되었다. 그래서 栗谷[율곡]의 家族[가족]들이 이 所聞[소문]을 듣고 모다 길가로 배웅을 나와서 栗谷[율곡]을 만났는데 栗谷[율곡]은 子孫[자손]들에게 付託[부탁]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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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아무 데에(지금 火跡亭[화적정]) 材木[재목]에 기름을 맥이어 지붕은 짚으로 이어 정자를 하나 지어두었다가 壬辰年[임진년] 十二月[십이월] 末[말] 子正[자정]에 불을 질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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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家族[가족]들이 그 理由[이유]를 물으니 그 때 큰 난리가 있을 것이다고만 말하고 그 以上[이상] 仔細[자세]한 것은 말하지 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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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後[후]에 果然[과연] 壬辰年[임진년]에 倭兵[왜병]이 侵入[침입]하였으며 栗谷[율곡]의 子孫[자손]들은(栗谷[율곡]은 流刑[유형] 가서 얼마 안 있다가 別世[별세]하였다.) 그의 遺言[유언]대로 그 해 末[말] 子正[자정]에 그 정자에 불을 놓았다. 그 때는 그믐 밤중인데 눈바람이 지동치듯하야 불ㅅ길은 하늘을 찔늘 듯 盛[성]하야 은저리를 환 ― 하게 비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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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에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王[왕]이 不意[불의]의 變[변]을 만나 京城[경성]서 開城[개성]으로 避難[피난]하여 가는 판에 어둔 밤중에 臨津江[임진강] 나루터에 이르러 (火跡亭[화적정]은 바루 이 언덕에 있다.) 어둠과 눈바람에 건느지를 못하고 한참 困難[곤란]을 겪는 터이었다. 그 때 난데없는 火光[화광]이 衝天[충천]하며 은저리를 환 - 하게 밝히어주어 王[왕]은 겨우 無事[무사]히 江[강]을 건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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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강]을 건너서 이 怪異[괴이]한 事由[사유]를 물으니 어느 臣下[신하]가 事實[사실]대로 아뢰었다. 王[왕]이 길이 嘆息[탄식]하고 새삼스러히 栗谷[율곡]을 아까워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정자를 세우게 되니 그것이 오늘까지도 남어있는 火跡亭[화적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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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上[이상]은 同君[동군]의 報告[보고]를 거의 그대로 옴기었는데 이것을 黑龍錄[흑룡록]에 비치어 얼마큼 닯은가를 檢討[검토]하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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黑龍錄[흑룡록]에는 火跡亭[화적정]의 이야기는 없으나 解夢[해몽]의 이야기는 비슷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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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 이 때 조선 대왕께옵서 한 몽사를 얻었으니 어떠한 게집이 지장을 자루에 느어 이고 완연이 들어와 날이어놓거늘 상이 놀래 깨달으시니 일장춘몽이라. 상이 제신을 불러 몽사를 설화하고 제신을 돌아보아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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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몽사를 신이 해득하오니 가장 불길하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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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잠ㅅ간 해득하오니 인(人) 변에 베 화(禾)하고 그 아래에 게집녀(女)자 하였으니 그 글자는 왜인(倭人)자오니 아마도 왜놈이 들러올듯하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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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태평한 것을 경은 어찌 요망한 말을 하야 인심을 요란케 하고 짐의 마음을 불안케 하나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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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夢[해몽]한 臣下[신하]의 일흠이 李栗谷[이율곡]이 아니고 崔一令[최일영]일 뿐으로 꿈의 內容[내용]은 거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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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亂[임진란]에 對[대]한 豫言[예언]은 李退溪[이퇴계]도 하였다는 것을 어데선가 들은 記憶[기억]도 있고 읽은 記憶[기억]도 있으나 지금 確實[확실]치 않고 또 너머 번거러움으로 그만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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要[요]컨대 여기서 李栗谷[이율곡]이니 李退溪[이퇴계]니 하는 儒敎[유교]의 巨頭[거두]들이 一般 民衆[일반 민중]에게 얼마간의 勢力[세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의 高遠[고원]한 性理學說[성리학설]이 絶對[절대]로 아니고 그들로서는 夢想[몽상]도 못하든 道術[도술]을 가진 預言者[예언자]로서다. 松都[송도]의 徐敬德[서경덕]의 이야기는 너무나 有名[유명]하다. 怪力亂神[괴력난신]을 말하지 안는다는 儒學者[유학자]들이 怪力亂神[괴력난신]으로서만 民衆[민중]에게 容納[용납]되니 實[실]로 온갖 矛盾[모순]이 이 속에 內包[내포]되어 있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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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敎[유교]는 元來[원래]는 決[결]코 宗敎[종교]가 아니다. 그것이 一般民衆[일반 민중]에 浸透[침투]될여면 반듯이 宗敎[종교]의 形式[형식]을 빌리었다. 現在[현재] 시골 漢學者[한학자]의 大部分[대부분]이 鄭鑑錄[정감록]의 信奉者[신봉자]인 怪異[괴이]한 事實[사실]도 이것으로서만 理解[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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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亂[임진란]에 關[관]한 傳說[전설]에 있어 關羽神將[관우신장]의 比重[비중]은 相當[상당]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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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서 가장 有名[유명]한 것은 서울 東廟[동묘]의 傳說[전설]이다. 不意[불의]의 兵亂[병란]을 當[당]하야 王[왕]은 平壤[평양] 義州[의주]로 도망하고 서울은 倭敵[왜적]의 蹂躪[유린]되어 宮闕[궁궐]도 寶物[보물]도 모다 廢墟[폐허]가 되어버려 國家[국가]가 存亡[존망]의 一大 危機[일대 위기]에 直面[직면]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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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突然[돌연] 南方[남방] 하늘에 黑雲[흑운]이 뭉기드니 千萬兵馬[천만병마]가 그 속으로부터 뛰어나오며 그 軍卒[군졸]들을 거느리고 일원 大將[대장]이 나타났다. 그는 鳳[봉]의 눈을 부릅뜨고 靑龍刀[청룡도]를 휘둘르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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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三國時代[삼국시대]의 名將[명장] 關雲長[관운장]인데 漢族[한족]의 危急[위급]함을 救[구]하러 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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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야 關羽神將[관우신장]은 軍卒[군졸]을 催促[최촉]하야 倭軍[왜군]을 질러니 漢陽[한양]에서 大敗[대패]하게 하고 東便[동편] 하늘로 사라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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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因[인]하야 朝野[조야]에서는 關羽神將[관우신장]을 尊重[존중]하며 漢陽[한양]을 守護[수호]하는 意味[의미]로 東西南北[동서남북] 四方[사방]에다가 關羽廟[관우묘]를 建立[건립]하야 各〃[각각] 東廟[동묘] 西廟[서묘] 南廟[남묘] 北廟[북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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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의 功[공]을 感謝[감사]하게 역이어 皇帝[황제]의 稱號[칭호]를 올리고 皇帝[황제]의 儀仗[의장]을 만들어 祭祀[제사]하도록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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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存[현존]하는 것은 東廟[동묘] 南廟[남묘]뿐인데 그 속에 있는 關羽像[관우상]은 南方[남방]에서 나타났음으로 南廟[남묘]에는 산 그림을 걸고, 東方[동방]으로 사라젓음으로 東廟[동묘]에는 죽은 그림을 걸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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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上[이상]은 朱英和[주영화] 君[군]의 報告[보고]에 依[의]한 것인데 壬辰錄[임진록]에는 關羽神將[관우신장]이 여러 차례 出現[출현]하야 朝鮮[조선]을 도와 倭軍[왜군]의 將兵[장병]을 홍구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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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黑龍錄[흑룡록]에서 한 구절만 紹介[소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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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도적이 조선왕이 피란한 줄 모르고 토성만 둘러싸고 크게 외여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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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소리 토성이 무너지는 듯하니 성중에 있는 사람이야 그 아니 망극한가. 서로 부뜰고 통곡하며 물 굶 듯하더니 문득 남대문으로 오색구름이 일어나며 일원장이 억만 대병을 거나리고 왜진을 헤치어 소래를 질르며 청정을 불러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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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선국 사직이 사백년이 넉넉하거날 너는 방장이 전운을 모르고 불상한 백성만 주기어 시절을 요란케 하나뇨. 바삐 물러가라. 나는 삼국지 관운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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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날 청정이 대경하야 바라보니 일원대장이 적도말을 타고 삼각수를 거사리고 봉의 눈을 부루뜨고 청용도를 비껴들고 천병 만마를 거느리고 섰으니 완연한 관운장이라. 황겁하야 말에서 나리어 평안도로 행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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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廟[동묘]의 傳說[전설]과 別[별]로 달른 점이 없다. 둘 다 漢陽[한양]의 守護神[수호신]으로서의 關羽神將[관우신상]의 面目[면목]은 充分[충분]히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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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文本[한문본]은 壬辰錄[임진록]에도 關羽神將[관우신장]은 여러 번 나타났는데 여기서는 그 첫 대문에 나타난 것만 簡單[간단]히 紹介[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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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임진] 秋[추] 七月[칠월] 十五日[십오일] 夜[야]에 王[왕]의 夢中[몽중]에 一將軍[일장군]이 杖劍被甲[장검피갑]하고 南[남]으로부터 飛來[비래]하야 門[문]을 두달이며 大呼[대호]하야 가로대 “王[왕]은 자는가 안자는가.” 王[왕]이 “누구냐.” 물으니 對答[대답]하되 “나는 古漢中將[고한중장] 關雲長[관운장]이라. 名日[명일] 君[군]의 國內[국내]에 大患[대환]이 있을 것이라. 兩朝 先陵[양조 선릉]과 漢江 以東[한강 이동]은 人煙[인연]이 杜絶[두절]될 것이다. 어찌 다리를 뻣고 코를 골고 자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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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왕]이 木枕[목침]을 밀고 놀라 일어나 四方[사방]을 돌아보니 사람은 없고 불빛만 환한지라. 꿈을 생각하니 毛髮[모발]이 숭굿하며 머리가 쫄어드는 듯하다. 다시 木枕[목침]을 베고 누으니 良久[양구]에 또 불러 가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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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군]은 믿지 못하는가. 國內[국내]의 擾亂[요란]이 금방 일어날 것이라.” 王[왕]이 再拜[재배]하고 묻되 “웬 緣故[연고]로 그러한가. 奸臣[간신]의 作孼[작얼]함이 없고 그럴 수가 있을가.” 對答[대답]하야 가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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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卽今[즉금] 倭僧[왜승] 叔舟[숙주]가 刻木[각목]으로 萬古[만고] 名將[명장]을 만들어 籠中[농중]에 감추고 明日[명일] 午後[오후] 南門[남문] 밖에 그 籠[농]을 싣고 올 것이니 그 곳에 伏兵[복병]하였다가 그 倭僧[왜승]을 結縛[결박]하야 죽이라.”(以下 原文 二行 不明[이하 원문 이행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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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라 깨달으니 꿈이라. 그러나 將軍[장군]의 言語[언어]는 귀에 歷〃[역력]한지라. 東方[동방]이 밝이를 기다리어 五軍門將[오군문장]에 命[명]하야 輕騎銳卒[경기예졸]을 거늘이고 入見[입견]케 하니라. 群臣[군신]이 모다 두려워 奔走怖慄[분주포율]할 때에 五軍門[오군문] 都摠[도총]인 崔致白[최치백]이 入見[입견]하니 王[왕]이 그 손을 잡고 가로대 “今日[금일] 南門[남문] 밖에 一僧[일승]이 行籠[행롱]을 실고 南[남]으로부터 올 것이니 君[군]은 곧 그 곳에 伏兵[복병]하였다가 그 僧을 結縛[결박]하고 그 籠[농]을 불살러 버리라. 그 僧[승]은 곧 倭僧[왜승]이라. 君[군]은 疎忽[소홀]히 하지 말라.”命[명]을 바뜰고 나와서 門外[문외]에 伏兵[복병]하니라, 이 날 午後[오후]에 과연 僧[승]이 籠[농]을 싣고 오는 것이 있어 드듸어 兵[병]을 發[발]하야 結縛[결박]하야 버렸다. 그리하였드니 그 僧[승]이 慨然[개연]히 눈물을 흘리며 가로대 “이것이 關羽[관우]의 짓일지라. 昨日[작일]에 불렀으나 나타나지 않었다. 刻木[각목]하야 사람을 만들어 다 사람으로 化[화]하되 홀로 關羽[관우]만 사람으로 變[변]하지 않드니 누가 今日[금일]의 이러한 變[변]이 있을 줄을 알었으랴. 哀惜[애석]다. 나의 行李[행리]를 汝等[여등]이 죽이지 않으면 天下[천하]의 兵丁[병정]을 만난다 하야도 可當[가당]할가 보냐.”드듸어 自剄[자경]하야 죽었다. 籠[농]을 열어보니 과연 刻木[각목]으로 人形[인형]을 만들었는데 그 背上[배상]에는 千古[천고]의 名將[명장]의 일홈이 삭이어 있었다. 그 籠[농]을 불살러 버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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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에 依[의]하면 萬若[만약] 關羽神將[관우신장]의 豫告[예고]가 없었든들 朝鮮[조선]은 倭僧[왜승]의 道術[도술]로 말미아마 倭兵[왜병]의 侵入[침입]이 있기 前[전]에 全滅[전멸]하였을 것이다. 關羽[관우]는 朝鮮[조선]의 守護神[수호신]이며 救世主[구세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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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都大體[도대체] 中國[중국]에서 救援兵[구원병]이 나오게 되어 社稷[사직]을 依支[의지]하게 된 그 原動力[원동력]이 黑龍錄[흑룡록]에 依[의]하면 오로지 이 關羽[관우]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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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대국 천자께옵서 청병사신을 그저 보내고 주야로 염려하시드니 어느날 밤에 동대로서 일원대장이 나려와 탑전에 복지 주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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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어찌 청병을 보내지 아니하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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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귀신인가 사람인가. 어찌 날더러 형님이라 하나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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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은 삼국 적 관운장이옵고 형님은 유현덕으로 환생하야 천자가 되고 장비는 환생하야 조선 왕이 되고 소장은 위부인을 모시고 조조히 갓삽다가 무죄한 사람을 죽이므로 환생치 못하옵고 조선지경을 지키압드니 지금 왜적이 조선을 덮어 거의 땅을 다 빼앗기옵고 종묘사직이 조모간에 망ㅎ게 되압고 조선 왕명이 시각에 잇읍거날. 형님은 어찌 청병을 아니 보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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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그 말을 들으시고 마음이 비창하야 대경 통곡하시고 그 장수를 살펴보니 신장은 구척이요 손에 청용도를 빗겨들고 봉의 눈을 부릅뜨고 삼각수를 거사리고 왔으니 분명한 운장일너라. 천자 용상에 나려와 재배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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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병은 팔십만만 보내고 장수난 당나라 이여송(李如松)을 보내시면 왜적을 물리치고 조선을 구하고 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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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이 만일 내 말을 아니 들으면 무사치 못하리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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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문득 간 데 없거날, 천자 대경하야 공중을 향하야 재배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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勿論[물론] 우리는 여기서 李朝[이조] 中葉[중엽] 以後[이후]에 얼마나 三國志[삼국지]가 朝鮮[조선]서 盛行[성행]하였으며 이 關羽神將[관우신장]의 出現[출현]도 그 直接的[직접적]인 影響[영향]임을 指摘[지적]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보다도 먼저 中國[중국]에 대한 事大主義[사대주의]를 한번 反省[반성]하고 警戒[경계]할 必要[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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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亂[임진란]에 中國[중국]의 救援兵[구원병]의 總大將[총대장]은 李如松[이여송]이었는데 李如松[이여송]에 關[관]한 傳說[전설]도 적지 않으며 壬辰錄[임진록] 속에도 그 英雄譚[영웅담]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 李如松[이여송]은 朝鮮[조선]의 名將[명장] 金德齡[김덕령]이나 李舜臣[이순신]보다는 아주 格[격]이 다른 宏壯[굉장]한 英雄[영웅]으로 取扱[취급]되었다. 四溟堂[사명당]만이 겨우 道僧[도승]인 關係[관계]인지 李如松[이여송]에게 獨立[독립]된 別個[별개]의 存在[존재]로서 그 面目[면목]을 依支[의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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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중국]으로 請兵[청병] 간 使臣[사신]들의 中國 天子에 對한 態度[태도]는 너무나 露骨的[노골적]인 事大主義[사대주의]의 表現[표현]에 참으로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그리고 李如松[이여송]을 爲始[위시]한 中國[중국]의 大將[대장]들이 朝鮮[조선]에 나와서는 眼下無人[안하무인]의 傲慢[오만]한 行動[행동]을 함부로 하야 이들의 비위를 맞후느라고 王[왕]을 爲始[위시]하야 各[각] 大臣[대신]들이 쩔쩔맨다. ─ 이러한 壬辰錄[임진록]의 대문을 읽을 때 우리는 事大主義[사대주의]를 是認[시인]하기는 커냥 熱〃[열렬]한 反感[반감]을 품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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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錄[임진록]에 있어 事大主義[사대주의]는 朝鮮[조선]으로서는 거의 運命的[운명적]인 것인지도 모르나 그러하 어찟든 한 번은 決然[결연]히 止揚[지양]하여야 할 한 개의 民族的[민족적] 弱點[약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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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族[민족]의 英雄[영웅]으로서 우리는 關羽[관우]를 云〃[운운]하기 前[전]에 우리는 먼저 우리의 英雄[영웅]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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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協同[협동]』2호, 금융협동조합, 194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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