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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뒤에 앉아서 한국 제일 호걸대왕 고구려 영락대왕(永樂大王)의 묘비문(墓碑文)을 읽으니, 글자마다 제국(帝國)의 위무(威武)가 밝게 비치고 구절마다 영웅의 역사가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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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묘비문은 압록강 왼쪽 회인현(懷仁縣) 분구(坌溝)에서 발견한 것이니, 무려 1799자이다. 그 비문을 받들어 읽고 그 공업(功業)을 추상(追想)하니, 후세 사람으로 하여금 옛날을 돌아보고 현재를 슬퍼하여 탄식만 금하지 못하겠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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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영락대왕(곧 廣開土王[광개토왕])은 고구려 동명성왕(東明聖王)의 17세손이다. 18세에 왕위에 올라 39세에 세상을 떠났으니 구구한 20년의 짧은 기간에 그 영무(英武)을 빛내며, 그 웅도(雄圖)를 펴서 한국 억만세의 큰 기초를 공고히 하며, 한국 억만세의 대영주(大英主)가 되며, 한국 억만세의 크게 빛나고 크게 기념할 역사를 만들었으니, 아아, 그 장함이 어찌 이와 같은가. 이제 그 비문을 간략히 베껴 그 역사를 간략하게 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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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이 하늘이 내려준 용기와 지혜로 아시아 동쪽 한모퉁이 고구려 왕위에 앉아 여러 대의 요란스런 뒤를 이어받아 여러 영웅이 각축하는 때를 만나니, 나라 영토는 좁아서 영웅이 활보할 땅이 부족하며 국세는 약하여 천자(天子)의 위엄이 부족한 것이었다. 이러므로 군사를 훈련시켜 용감한 무예를 닦으며 농공(農工)을 권하여 실력을 기르다가 성을 벌컥 내고 떨쳐 일어나 큰 활극만 시도하니 나려(裸麗)를 공격하여 몇만 명을 사로잡고 백제를 격파하여 108성(城)을 취하고, 남쪽으로 왜구를 소탕하여 신라를 구하고 동쪽으로 부여를 겁탈하여 옛 영토를 회복하고 왜구를 다시 섬멸하여 대방(帶方)의 경계를 안정시키니 초목이 그 위풍(威風)을 두려워하고, 백제를 연거푸 깨뜨려 왜적과 내통한 죄를 물으니 산과 바다가 그 호령에 떨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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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사방 이웃나라가 바람에 수그리고 구이(九夷)가 문을 두드리나 오직 연(燕)나라가 옛날의 거만함을 빙자하여 납공(納貢)을 거부하므로 대왕의 큰 규모는 천하 만국이 고구려를 향하여 신하를 칭하고 고개 숙이기 전에는 마음에 불쾌한데 하물며 대대로 원수인 연나라리요. 이에 긴 채찍을 휘둘러 요동 연나라 큰 벌판으로 향하니 장수와 군졸이 매같이 날리고 피리와 북소리 우뢰같이 움직이는지라, 한두 번 싸움에 평주(平州)을 빼앗고 모용귀(慕容歸)를 쫓아내 짧은 동안에 수천리 판도를 개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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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7천리 강토가 있으며 몇백만 정병(精兵)이 있으며 백성은 임금의 덕을 노래하며 사방에 국위(國威)를 떨쳐 대동(大東)의 건국 수천년에 전무후무한 큰 광채를 번쩍이었으니, 저 비문의 “은택이 황천(皇天)에 두루 미치고 위세가 사해(四海)에 떨쳤다.(恩澤洽于皇天[은택흡우황천] 威武拂被四海[위무불피사해])”함이 실로 헛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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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하늘이 고구려를 위하여 이와 같은 대영웅을 산출하였다가 그 빼앗음이 어찌 이와 같이 빠른가. 대왕이 그 장대한 계획을 다 시험하지 못하고 귀신 같은 계책을 다 운용하지 못하고 그 영기(英氣)를 다 떨치지 못하고 39세에 영령이 하늘로 돌아갔으니, 아깝도다. 하늘이 대왕의 수명을 10년 혹은 몇십년을 빌려주었더라면 그 공렬(功烈)이 구라파·아시아 대륙을 유린하던 징기스칸에 지나칠 것이며, 그 세력이 구라파 열강을 두려워 항복시키던 나폴레옹에 지나칠 것이며, 그 기업(基業)이 동구 대제국을 건설하던 피터대제에 지나칠 것이었거늘, 아깝다 대왕이며, 큰뜻을 펼치지 못하고 중도에 돌아가셨으니 이는 대왕의 불행이며, 대왕의 불행일 뿐 아니라 고구려의 불행이며, 한때의 고구려의 불행일 뿐 아니라 만세 우리나라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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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벼락소리 번쩍이던 하늘 같은 위세를 거두며, 아침해가 조금 떠오르다가 황업(皇業)을 버리고 무기를 빼어 버리고 황천 아래로 돌아감은 실로 대왕의 만고 유감이다. 우리들도 이에 이르러 슬그머니 붓을 던지고 한소리 울음을 그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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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금을 우러러보아 제왕(帝王)을 차례로 헤아려보건대 땅은 작고 군사는 약한 국가로 그 국력을 확장함이 대왕과 같은 자가 몇 사람이며, 1,20년의 세월로 그 제업(帝業)을 굳게 함이 대왕과 같은 자가 몇 사람이며, 큰 재주와 무예와 지략이 함께 갖추어져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명을 반드시 취함이 대왕과 같은 자가 몇 사람이며, 먼 나라를 회유하고 강한 적을 소탕함이 대왕과 같은 자가 몇 사람이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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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한국에 앉아서 제일 호걸대왕을 꼽고자 할진대 대왕을 버리고 누구를 꼽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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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도다 대왕이여, 대왕의 역사가 알렉산더대왕과 어찌 그리 비슷한가. 그 영무(英武)가 알렉산더대왕과 같으며, 그 지략이 알렉산더대왕과 같으며, 그 사상이 알렉산더대왕과 같으며, 그 규모가 알렉산더대왕과 같으며, 그 일찍 왕위에 오른 것이 알렉산더대왕과 같으며, 그 일찍 돌아가심이 알렉산더대왕과 같으며, 그 요란스런 뒤를 이어받음이 알렉산더대왕과 같으며, 그 각축의 때를 만남이 알렉산더대왕과 같으며, 그 백전백승이 알렉산더대왕과 같으며, 그 원수의 나라를 꺾어 멸망시킴이 알렉산더대왕과 같으며, 그 나라의 빛남을 울리고 국토를 넓게 개척함이 알렉산더대왕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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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동방의 영락대왕은 서방의 알렉산더대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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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닯다. 이와 같이 위대한 영주(英主)가 있되 후세 사람이 이를 노래하는 자가 없으며, 이와 같이 휘황찬란한 역사가 있되 후세에 갖추어 전하는 자가 적어서 대왕의 빛나는 큰 공덕(功德)이 뜬구름같이 흩어지며 늠름한 큰 위엄이 먼지나 흙같이 묻히매, 이로 인하여 인민의 기운이 엷고 약해지고이로 인하여 국력이 사그러들어 필경 만주 수천리가 홍수에 떠내려가고 반도 옛 제국이 한순간에 위태로워졌으니, 아아, 대왕의 자손된 한국 동포가 그 못나서 조상을 욕되게 함이 어찌 이런 지경에 이르렀나. 저 일본인을 보지 못하는가. 풍신수길(豐臣秀吉)이 한국에 쳐들어왔다가 백전백패하여 마관(馬關) 추풍에 어지럽게 달아난 것이 무슨 기이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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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들이 이것을 숭배하며 이것을 찬미하며 이것을 전기(傳記)로 만들어 그 인물을 천신(天神)같이 받들며 그 유사(遺史)를 금옥같이 아낌은 오직 그 외국과의 경쟁사상을 고취하며 조국의 권위를 발휘키 위함이거늘, 오직 이 한국 동포는 세계 절대 영주 영락대왕(永樂大王)의 유적을 능히 기술치 못하여 조왕(祖王)의 끼친 꾀를 잊으며 조국의 명예를 가리었으니, 이러고서야 어찌 외국과의 경쟁사상을 능히 분발하여 조국의 권위를 떨어뜨리지 않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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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 이 묘비가 천여 년을 거친 들판 가을풀 속에서 고구려 당시의 면목을 고치지 않고 우뚝 홀로 서 있으나 이른바 대왕의 자손은 한 사람도 지나쳐 물어보지 않고 다만 들불 찬바람에 닳아 없어지기에 맡기며 초동과 목동의 손으로 어루만짐을 당하다가 마침내 일본인 좌천(左川)씨가 발견하고 청나라 선비 영희(榮禧)씨가 판독하여 대왕의 역사가 그 빛을 세계에 비로소 내놓였으니, 내가 고구려 유민인 영락대왕의 자손 한국 동포를 위하여 매우 슬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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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비문이 한번 나오자 대왕의 역사가 자손의 눈에 다시 비치어 대왕의 공덕이 자손의 뇌리에 다시 배어드니 지금으로부터 대왕의 유족 2천만이 대왕의 천안(天顏)을 뵌 듯이 대왕의 명령을 받든 듯이 대왕의 훈계를 받은 듯이 대왕의 영무(英武)를 이으며 대왕의 품은 뜻을 기술하면 미래 한국에 몇천 대영웅이 산출될 것이니, 내가 또 한국 동포를 위하여 축하하노라. 최진사(崔進士) 평양 회고시(懷古詩)에 “산과 강의 형세가 오히려 옛날과 같은데, 제왕과 패왕·영웅·호걸은 어디에 있는가.(山河形勢猶如此[산하형세유여차] 王霸雄豪安在哉[왕패웅호안재재])” 함과 같이 산하(山河)는 옛날과 같은데 영웅은 어디 있나. 내가 강개한 일필로 과거 영웅의 역사를 기리어 미래 영웅의 산출을 재촉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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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每日申報 1909. 2.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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