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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석과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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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6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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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昭和) 16년 정월에 나는 고향 가까운 어느 시골 온천에서 효석의 편지를 받았다. 몸이 불편해서 주을(朱乙)서 정양을 하던 중 부인이 갑자기 편치 않다는 기별이 와서 시방 평양으로 돌아왔는데 병명이 복막염이어서 구하기 힘들 것 같다는 총망중에 쓴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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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부인의 병을 간호하면서 쓴 간단한 엽서를 한 장 더 받고는 이내 부고였다. 그 엽서에는, 내가 부인의 병환도 병환이려니와 효석의 건강이 염려된다고 쓴 데 대해서, 부인의 병은 거진 절망 상태여서 인제 기적이나 나타나기를 기다린다는 것과 자기의 건강은 충분히 회복이 되었다는 것 등이 적혀 있었다. 부고는 시골집에서 받아서 자동차편으로 온천에 있는 나에게 회송이 된 것으로 발인(發靷) 날자가 얼마간 지난 뒤었다. 몹시 추운 날이었던 것 같다. 부인은 수년 전에 잠깐동안 한 번밖에 뵈온 적이 없어서 뚜렷한 인상은 없고 그저 퍽 건강하였던 것만 같이 생각되었다. 그런 관계로 부고를 받아들고도, 나는 내가 아내를 잃은 것이 역시 평양이요 이렇게 추운 엄동이었던 것을 생각하며, 부인을 잃고 아이들을 지키고 앉았을 효석의 모양만을 자꾸 구슬프게 눈앞에 그리었었다. 부고 뒤에 조위(弔慰)에 대한 사의(謝意)를 박은 인쇄물이 오고 그것과 전후해서 그의 엽서를 역시 눈 속에 파묻힌 온천의 객사에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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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척되지 않는 원고 뭉텅이를 안은 채 2월 한 달을 더 그 곳에서 울울(鬱鬱)히 보내다가 나는 3월 초에 고향을 떠나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평양에 들렀다. 3월 초사흘(이 날이 효석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 되고 말았다) 마침 중학을 나오는 내 아우의 졸업식날이어서 일찍감치 아침을 먹어 치우고 나는 바람이 거세게 내리부는 만수대로 효석의 집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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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인도 드물고 언덕에 바람이 있어서 몹시 쓸쓸하게 느껴졌다. 쪽대문 밖에서 잠시 엉거주춤히 섰노라니 갑자기 대문이 열리고 배낭을 둘러진 효석의 딸이(아마 부고에 적힌 장녀 나미가 이 아이가 아니었는지) 총총한 걸음으로 뛰어 나왔다. 학교에 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멈칫 물러서서, 아부지 일어나셨냐고 물으려다가 정작 아무말도 건네지 못하고 그가 언덕 밑으로 사라지는 뒷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다 보았다. 아이들의 고독한 운명 같은 것을 잠시 생각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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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으로 나온 효석의 잠바 소매 끝으로 희게 내밀은 여위고 가느다란 손목을 나는 아무말도 않고 쥐었다. 그는 가냘프게 미소하며 난로에 불을 피우지 않아서 냉랭한 서재로 나를 안내하였다. 주부가 없어서 이렇게 차고 쓸쓸한 것만 같아서 나는 마음이 공연히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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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를 가운데로 마주 앉아서 덤덤하였다가, 아이들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나의 경험 같은 것을 물었다. 그리고 현민한테서도(효석은 현민을 그저 ‘유’하고 부르기를 즐겼다) 아이를 위하여 수이 결혼치 말라는 편지가 왔는데 자기도 역시 동감이라는 뜻을 말하였다. 나는 재혼을 않는 것도 아이를 위한 하나의 길인지 모르나 아이들을 위하여 결혼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재혼에 대한 생각이 아내를 잃은 직후와 얼마간 시일이 지난 뒤가 퍽 다르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속으로 가만히 효석처럼 현란(絢爛)하고 색채 있는 미적 생활을 즐기는 분이 혼자서 윤택없는 주부 없는 생활을 계속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라고, 막연히 그런 것을 생각하였다. 효석의 건강을 물었더니, 일을 치르고 나서 긴장한 탓인지 되려 몸이 가벼워졌다고 미소하였다. 장례 때에 평야 인사들의 따뜻한 후의를 사무치게 느꼈다는 것도 말하였다. 끝의 아이는 그 때 시골로 보냈다고 들은 법한데 혹은 내 기억을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두루 그런 것을 이야기하고는 거진 낡은 질서가 무너져 버리려는 문단의 동정에 대해서 서로 얻어들은 소식을 나누고, 바른 문학의 융성에 힘쓰자고 손을 잡아 흔들고 나는 그의 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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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나는 사정으로 문단을 떠나서 효석과의 약속을 어기고 동시에 문통(文通)도 거진 끊어져 있었다. 효석의 가끔 쓰는 논문을 보면 그는 근래에 드물게 분투하였던 것 같다. 또 수필이나 소설을 보면 그의 생활이 다시금 윤택을 가진 것 같은 인상을 받았는데, 전혀 뜻밖인 뇌막염으로 서른 여섯의 청청한 목숨을 앗기었다는 것은 절통하기 비길 데 없는 소식이다. 거리에서 소식을 듣고 놀라 집으로 오니까 꺼먼 테두리의 부고가 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들고 어머니를 잃고 또 1년만에 아버지를 잃은 제 아이를 오랫동안 생각하였다. 효석의 명복을 빌고 아이들의 다행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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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1942년 6월
【원문】효석과 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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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1942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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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