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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 대서사시의 영웅적 주인공 박헌영 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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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6.30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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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대서사시의 영웅적 주인공 박헌영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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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장편소설 붓을 든 것은 일제가 만주 침략을 끝내고 중국에 대한 일층 광범한 약탈을 준비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문학에 대한 누를 수 없는 욕망이 극도로 팽창했을 때 불행하게도 총독 정책은 차츰 조선말과 역사와 그리고 조선민족의 생활감정을 정화하게 반영하려는 문학도의 어떤 문학형식에 의하여 해결지울 수 있으며 처리할 수 잇을 것이냐 - 내가 자나깨나 생각하고 염원한 과제는 이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이러한 결론을 얻었던 것이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이래(爾來) 수십 년 민족의 자유와 독립과 해방을 위하여 싸운‘피의 대서사시’를 장편소설의 형식으로 쓰자. 물론 이러한 염원 밑에 붓을 들었으나 악독한 일제 검열 하에 제대로 이루어졌을 리 만무였었다. 그래도 근본 의도는 오랫동안 붓을 던지고 휴식하는 동안 한때도 내 머리를 떠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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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제와 적극적으로 혁명적으로 싸울 만한 기혈(氣血)이 없는 나로서는 청년시절의 약간의 경험과 또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옥중생활에서 접한 혁명가와 투사들의 면영(面影)과 의지와 피로 얼크러진 그분들의 투쟁생활에 대하여 앙모와 동경을 누를 길이 없었다. 그래서 항일과 수난의 대민족 서사시를 구성해보며 혼자 즐길 때 나는 언제나 소설의 위대한 영웅적 주인공으로 어떤 이상적이요 또 완전한 인격을 머릿속에 형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나는 서슴지 않고 그러한 분으로 박헌영 선생을 생각한다. 민족 수난의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감람산으로 향한다는 아름다운 어구(語句)는 일제시대 내가 항상 즐겨서 써오든 표현이었다. 지금 나는 이러한 표현의 적확(適確)한 형상적 대상으로 삼일운동 즉후부터 문자 그대로 피투성의 항쟁을 몸으로써 체험한 박헌영 선생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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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다방에서 소다수를 빨며 보고 온 영화의 이야기를 애인과 더불어 지껄이고 있을 때 박 선생은 감옥에서 단식으로 싸우고 계셨다. 우리들이 책상 앞에서 커피차를 마시며 시적 공상에 잠겨 있을 때 박 선생은 홀로 재판정에서 안경을 던져 재판장을 갈기며 공판투쟁을 계속하고 계셔다. 우리들이 도서관장한테 끌려다니며‘미영격멸(米英擊滅)’의 글을 쓰라고 강요받으며 쓰느니 안쓰니 하고 망설이며 지낼 때 박 선생은 지하 삼천 척 땅굴에서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지도하며 손수 벽돌 운반에 종사하고 계셨다. 아! 어느 혁명가 어느 독립운동가 있어 사십 반생을 감옥과 지하와 민족의 대오 가운데서 하루 한 시각의 ‘자기’를 가지지 않은 채 피의 항쟁을 전개 하였는가 묻노라. 자칭 애국투사여 자칭 국부(國父)여 자칭 민족의 지도자여! 박헌영 선생이 일제와 싸우고 계실 때 그대들의 생활은 어떠하였으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그리고 다시 한번 외쳐 보라!“내가 애국자요”“내가 지도자요”라고 대답할 용기가 있느냐. 박 선생이 지하에서 옥중에서 민족의 옆에서 아니 그 가운데 묻혀서 싸울 때 그대들은 호텔에서 삼지창으로 ‘비프스테이크’를 썰면서 맥주를 먹고 있지는 않았을까. 어디 먼 곳 살롱에서 헛되이 세계지도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을까. 나는 박헌영 선생보다 으뜸간다는 애국자를 찾아낼 수는 없는 것이다. 솔직하게 단언한다. 민족의 수난과 항쟁의 대서사시의 영웅적 주인공은 박헌영 선생이라고. 나는 불행히 해방되었다는 하늘 밑에서도 박 선생을 친히 뵌 적이 없었다. 해방 뒤 민주전선 민족통일전선 삼상결정 지지 공위(共委) 재개(再開)를 위한 모든 투쟁의 노선 등이 또한 박 선생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면 이 위에 어느 민족의 지도자가 있을 것이냐. 나는 이 분에게 뵈이고 싶었다. 그리고 선생의 투쟁기를 쓰는 것으로 또 장편서사시의 주인공으로 박 선생을 쓰는 것으로 작가 일대의 최고 영광을 삼고 싶다. 나는 그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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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위가 열리고 정부 수립의 공론(公論)도 무르녹아 가고 있다. 이 결정적인 시각에 이 역사적인 순간에 최고 지대(至大)의 애국자요 지도자인 박 선생을 빼고 어떤 논정(論定)이 있을 수 있을 것이냐. 나는 민주 건국을 바라는 한 사람의 민족의 성원으로서 또 그분을 서사시의 주인공으로 하는 것으로 문학가의 최대 영예로 생각하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선생이 태양같이 어엿이 나타나시기를 원하여 마지않는 것이다. 남로당 중앙의 체포령 철폐 요청 성명을 읽고 의분을 참을 수 없어 두어 자 무문(蕪文)을 초(草)하였다. 미지의 박 선생이여 관서(寬恕)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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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1947. 6. 30)
【원문】민족 대서사시의 영웅적 주인공 박헌영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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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1947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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