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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창작방법에 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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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2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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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창작방법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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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이후의 조선 문학이나 또는 문학자가 당면한 문제는 전 민족이 거족적으로 총역량을 집결하여 해결해야 할 민주주의 건설의 중심과제로 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민족문학의 건설을 위하여 의거하여야 할 새로운 창작방법으로 혁명적 로맨티시즘과 진보적 리얼리즘을 내걸 때, 이것은 기본적으로는 우리 삼천만 총 성원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가하여야 할 진보적 민주주의 건설을 위한 투쟁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창작방법이란 것이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어서 실로 이 새로운 술어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이래 논의와 논쟁의 끊임없는 계속이 우리의 논단을 번거롭게 하였고, 그 성과에 있어 괄목할 만한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개념규정이라는 초보적인 문제에도 적지 않은 혼란을 남고 있을 만큼 그것은 귀찮게 복잡하고 그만큼 또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신창작 슬로건에 대한 약간의 해설적인 의견을 가해보는 정도로 문제를 국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후의 문제는 금후의 우선적인 활발한 논의를 거침으로써 그 내용이 충실히 되고 명확히 되고 동시에 직접 붓을 드는 문학자의 양식과 혈육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돌이켜 보건대 창작방법을 위한 논의는 과거 이에 종사하였던 이론가들의 약간의 과오로 인하여 실제로 창조적인 사업에 종사하는 작가와 시인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냉정한 대우를 받아 온 것이 사실이고, 더구나 일부에 있어서는 그것은 할 일없는 논자의 공소한 의논거리요 문학의 창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라고 조소거리조차 되어 온 것이 사실일까 한다. 물론 여기에는 창작방법이 무슨 엄중하고 변통 없는 규범이나 법칙처럼 오해될 수 있는 용어를 남용한 논자의 공식주의인 과오와, 문제설정의 기초나 토대 내지 자료를 우리 조선 문학의 현실 가운데서 발견하고 추진시키지 아니하고 소련이나 기타 선진국의 이론을 그대로 수입하여 한낱 그것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태도로 부터 유래된 점도 없지 않으나, 이에 대한 작가, 시인의 무이해와 몰각성이 또한 큰 원인이 되었던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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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대체 우리에게 있어 창작방법이란 어떠한 의미에서 필요한 것인가. 리얼리즘이니 아이디얼리즘이니 하여 작가를 양대 진영으로 갈라놓고 반동이니 소시민이니 하는 레테르를 붙이기 위하여서 그것이 요구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요, 한 둘의 범주나 규범을 만들어 놓고 천분(天分)이나 개성이나 장르의 특수성을 무시하면서 작가와 시인을 채찍질하여 이 모양대로 써라, 여기에 맞지 않으면 낙제다 하는 식으로 재판하고 판정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도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이러한 모든 비평의 과오로부터 작가와 작품을 지키고 작가의 생활내용을 충실히 하고 사상내용을 풍부히 하기 위하여서 요구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므로 과거의 논의가 여러가지 잘못을 범하였다고 하여도 의연히 그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기본적인 기여와 공훈을 남겼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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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그것은 작가의 사회적 실천이 사물관찰과 그 표현에 있어 결정적인 의의를 가지는 것을 명확히 한 데 큰 공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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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그것은 세계관과 작가 및 작품의 뗄 수 없는 연관성에 대한 명확한 논증에서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특히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론의 수입과 함께, 종래 유물변증법적 창작방법 시대에 세계관만 바르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든가 유물변증법만 터득하면 좋고 바른 문학을 쓸 수 있다든가 리얼리즘은 유물론이오 아이디얼리즘은 관념론이요 하는 등류의 소박한 공식주의 대신에, 세계관과 창작방법의 상호침투에 관해서 또는 세계관과 창작방법의 복잡하고 비비드한 제 관계의 천명에 있어서 확실히 우리 창조하는 작가부대에 커다란 문제 해명의 공로를 끼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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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그것은 예술적 표현, 양식, 기교, 창작기술 같은 데 대하여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주장을 제시하여 비평계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고 또 그것을 주목한 작단(作壇)에 대하여 특히 독창성과 개성적인 면과 특수성의 면에서 커다란 문제해결의 계기를 줄 수 있었던 것이다. 통틀어 우리들이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단순히 어떻게 예술적으로 표현하는가 하는 예술적 표현법의 문제로 국한해서 생각한다든가 또는 단순히 현실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인식의 일반적 방법의 문제로 국한해서 생각한다든가 하는 종래의 소박하고 피상적인 생각으로부터 떠나서, 표현과 인식을 통일된 예술의 특수한 창작방법의 문제로서 이해함에 이르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논의를 거쳐서 문학자, 예술가가 자연이나 역사나 인간의 사유를 어떻게 예술적 진실성을 가지고 표현하는가 하는 것과 이러한 제대상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것이 상호관련된 뗄 수 없는 문제로서 이해함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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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창작방법은 창작에 있어서의 규범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창조적 부면(部面)에 있어서 작가의 능력과 사회적 투쟁을 인도할 수 있는 원칙적인 것, 다시 말하면 예술적 창작의 기본적인 방법이라는 데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라 믿어진다. 물론 창작방법은 고래불변인 것도 아니오 또 만인 공통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문학 예술가가 민주주의 조선의 탄생과 육성이라는 위대한 역사적 시대에 처해서 그가 무엇을 들고 이에 이바지하고자 하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공통인 것이며, 이것이 토대가 되어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창작이론인 혁명적 로맨티시즘을 자체 내의 커다란 계기로 하는 진보적 리얼리즘의 제시가 그 의의를 완전히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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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혁명적 로맨티시즘을 계기로서 내포하는 진보적 리얼리즘의 현실적 문학적 토대를 천명하기 전에, 우리는 창작방법의 개념이 혼란한 상태하에 놓여있는 현상에 비추어 우선 그것의 개념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규정이 없이는 진보적 리얼리즘 자체의 개념 규정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위대한 내용에 대해서도 명확한 이해를 가지기 힘이 들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체 창작방법은 몇가지가 있는가. 또 그것은 어떠한 것인가. 우선 이것의 해명으로 들어가기 전에 창작방법 그 자체의 개념규정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창작방법은 세계관과 뗄 수 없는 관련성에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세계관과 창작방법’이라고 갈라서 이야기하는 것이 보통이듯이, 우리도 세계관과 형식적으로는 분리 내지는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창작방법의 개념을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세계관과 형식적으로 구별한 개념으로서 창작방법을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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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세계관과 형식적으로 구별되는 창작방법이 그 내용으로 하는 기본적 방향은 무엇이며 또 그것은 몇 개나 되는 것일까. 여기에서 나는 창작방법의 기본적 방향으로서 리얼리즘과 아이디얼리즘의 두 개만을 단정하고 싶다. 이 두 가지 외에 또 다른 기본적인 창작방법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로맨티시즘은 그러므로 이것과 병립될 수 있는 기본적인 창작방법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시대에 하나의 실제상의 유파이거나 또는 기본적 창작방법의 계기로서밖에는 불리워질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리얼리즘과 아이디얼리즘의 분류는 객관적 현실과 주관적 관념이라는 두 개의 대립하는 관계로서 성립될 것이요, 그러므로 이 양자는 단순한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질적인 원리적인 차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개념규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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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리얼리즘이란 무엇며, 아이디얼리즘이란 무엇이냐. 리얼리즘은 객관적 현실을 주로 해서 주관을 그에 종속시키는 것이요, 아이디얼리즘은 그 반대로 주관적 관념을 주로 해서 객관적 현실을 이에 종속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또 창작방법의 기본 방향은 둘 중의 하나만일 수도 없는 것이며 둘이상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때에 있어 주관이란, 혹은 객관이란 것은 상대적 의미로서 사용되는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객관적이라고 생각되는 관념일지라도 그것이 만약 창조상 실제 있어서 현실을 재단하는 선입견으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역시 주관적 관념이라고 불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해되고 혼란스러워지기 쉬운 주관, 객관의 용어를 피한다면 현실을 선입견을 갖지 않고 현실의 있는 그대로를 그리려고 하는 태도가 리얼리즘이요, 현실에 선입견을 가지고 임하여 그것으로써 현실을 재단하려는 창작태도가, 즉 아이디얼리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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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러한 세계관과 분리된 창작방법이 어떤 세계관과, 다시 말하면 철학, 정치관, 도덕관 등과 맞붙을 때에 여러 가지 구체적인 경향이 생기는 것이다. 예컨대 도덕적·생물학적 세계관과 맞붙은 리얼리즘은 자연주의요, 불가지론과 맞붙은 리얼리즘은 즉물주의요, 심리주의나 의식의 유동파는 말하자면 주관적 관념과 맞붙은 리얼리즘인 것이다. 그리고 소위 낭만주의라는 것은 주로 관념론과 맞붙은 아이디얼리즘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 진보적 리얼리즘에 관해 언급한다면 그것은 과학적 유물론과 맞붙은 리얼리즘이오, 더 명확히는 진보적 민주주의 건립을 역사적 임무로 하는 시대의 유물변증법과 맞붙은 리얼리즘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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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 두 가지 기본적 창작태도 중 선악이나 우열은 가릴 수 없는 것 일까. 우선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동등한 관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세계관에 대한 반작용에 있어서 우리는 리얼리즘이 아이디얼리즘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결론을 얻음에 이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리얼리스트는 그가 가지는 세계관에 반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나 아이디얼리즘은 주관과 선입견이 앞서는 때문에 세계관에 대한 반작용은 기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오아통파의 반동적 사상을 가졌던 발자크는 리얼리스트인 덕분에 그 작품에 있어 도리어 자기의 세계관을 넘을 수 있었으나 아무리 훌륭한 유물변증법적 세계관을 가졌다는 경향파의 작가일지라도 만약 그가 아이디얼리스트라면 현실은 공식적으로 재단되어 현실 자체를 왜곡하여 반영할는지도 모르는 것이요, 더구나 그릇된 선입견을 가진 아이디얼리스트는 그 그릇된 선입견을 가지고 현실을 재단함에 그칠 뿐 그의 세계관에 반작용을 일으킬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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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을 주관적인 통일에서가 아니고 대상 그 자신의 통일에 의하여 포착하려는 리얼리즘의 우위성은 주로 이 점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리얼리스틱한 작가에 있어서 작품은 여태껏의 생활적 실천의 경험의 결과일 뿐 아니라 창작하는 것 그 자체가 가장 풍부한 경험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적 실천은 그의 사회생활과 한가지로 그의 세계관을 영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개의 창작방법은 어떤 작가나 작품을 일관하여 분류하는 규범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상대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같은 작가에 있어서도 청년시대에는 리얼리스트이었던 것이 노경(老境)에 들어 아이디얼리스틱하게 되는 수도 있으며 또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것이요. 같은 작품 안에서도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전자일 수도 있고 또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후자일 수 있듯이 뒤섞여 있을 수도 있는 것이요, 대체로 정도의 차(差)는 있어도 서로 섞여 있는 경우가 또한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둔한 비평가가 공식을 휘두르고 곤봉을 남용할 때에 보듯이 이러한 분류의 기계적 공식은 왕왕 작품평에 있어 위험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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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러한 리얼리즘이 현실적으로 진보적 리얼리즘이어야 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으며 또 그것이 혁명적 로맨티시즘을 계기로서 내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첫째로 우리가 거족적으로 총역량을 집결해서 싸우고 승리적으로 해결해야 할 민족적 역사적 과제가 진보적 민주주의의 건설이라는 데 있지 않으면 안되겠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조선 혁명의 성질이 진보적 민주주의 혁명의 단계라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면 안되겠다. 왜냐하면 창작방법으로서의 리얼리즘이 문학작품으로서 창조되고 또 그것을 중심하여 거대한 운동으로서 전개되는 경우에는 그것은 언제나 역사적으로 시대적으로 특정되는 경향을 가지고 구체화되는 것이 사실이요, 그렇다면 현재의 역사적 시대에 있어서도 진보적 민주주의 건립의 민족적 과제와 떠나서 여하한 구체적인 리얼리즘도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또한 과거의 문학사상에 나타난 여하한 리얼리즘과도 우리의 그것을 구별하는 하나의 성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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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그것은 과학적 유물론, 더 명확하게는 유물변증법과 맞부는 리얼리즘이 아니면 안되겠다. 왜 그런고 하면 리얼리즘은 언제나 그대로 리얼리즘이 아니요 구체적으로는 어떤 세계관과 관련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현실을 유동성과 발전성에 있어서 파악하는 과학적 유물론의 무장 없이 진정한 진보적 리얼리즘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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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그것이 혁명적 로맨티시즘을 커다란 계기로 하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로맨티시즘의 토대가 되는 것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명일과 미래에로의 부단한 전진, 다시 말하면 현실적인 몽상, 미래를 위한 의지, 가능을 위한 치열한 꿈 등인 것인데, 일본 제국주의에 의하여 해방은 되었으나 국수주의와 봉건적 잔재와 일본 제국주의적 잔재를 소탕하고 토지 문제의 혁명적 해결과 전취(戰取)에 의하여 비로소 민주주의적 과제의 해결을 볼 수 있는 현재의 민족적 과제야말로 이것을 위하여 싸우는 민족의 거대한 꿈과 영웅적인 정신과 함께 정히 민족의 위대한 로맨티시즘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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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한마디로 말하여 혁명적 로맨티시즘을 계기로 내포한 진보적 리얼리즘이란 하나의 종합적인 스타일을 갖추는 민족문학 수립의 커다란 기본적 창작태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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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문』, 1946. 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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