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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光洙流[이광수류]의 文學[문학]을 埋葬[매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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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조선문학이 잇는지 약 십년이다. 이 약 십년이라는 것은 나의 계산 으로 조선 청년으로서 일본에 가 공부하든 이가 동경에 『학지광(學之光 )』, 『창조(創造)』, 『현대(現代)』 등의 잡지 혹은 내지(內地)의 수종(數種) 신간잡지(新聞雜誌)에 투고하야 글쓰기 시작한 뒤로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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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近) 십년을 지낸 오늘 조선 문단에도 새 기운(氣運)이 왓다. 신문이나 잡지 혹은 단행본으로 창작과 비평이 성행하고 더구나 근년(近年)붓터는 시대의식에 몬저 절실한 ‘계급문학시비론(階級文學是非論)’지 이러낫다. 이광수의 지적이 아니라도 문학의 융성, 그 침윤성(浸潤性), 그 광포상 (廣布狀)이 조선 문단이 생긴 이후 처음으로 미증유(未曾有)의 현상을 일우 엇다. 일우엇기 문에 또 모(某) 신문의 사설란(社說欄)에 낫하나는 문인 아닌 국외자지라도 문예의 가치에 용훼(容喙)하게지 되엿기 문에 그만치나 오늘 문예가 오늘 조선 사람의 내면적(內面的) 생활에 큰 관계와 영향이 잇기 문에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웨 그런고 하니 이갓치 조선의 새 문예가 발흥(勃興), 융성하엿다 하여도 내가 보기에는 소위 문인들이 악경향(惡傾向)으로서의 져―날이슴과 피상(皮相)과 인생관 업는 회색태도 (灰色態度), 불란서류(佛蘭西流)의 계몽문학에 시종(始終)하야 잇는 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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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필연이고 결정(決定)이고 과정을 가즌 궤로(軌路)이다. 문단에 역사도 그렇다. 그러므로 근십년의 조선 문단 역사가 한편에서는 새 맹아를 가젓스면서도 십년 전 당시보다 지금은 늙어진 문인들의 압도에 그 맹아의 출현을 촉진식히지 못하게 되엿다. 제군(諸君)이 경성(京城) 안의 문인이나 문학 청년들만 볼 것이 아니라 지방의 문인, 문학 청년지라도 사궤 보라. 이광수류(流)의 안이(安易)한 이상주의적 사상과 시대에 반치(反馳)되는 인생관으로써 문단을 대하고 조선을 보고 인생을 보는 이가 얼마나 마는가. 이광수가 조선 문단에 대한 공로를 말하는 이가 잇다. 그러나 그 공 (功)은 공(功)이오, 문단은 문단이다. 하물며 이광수는 이광수요 새 문단은 새 문단이다. 그이의 일홈은 쎈디멘탈한 〈개척자(開拓者)〉, 독개비 화상 (畵像) 갓흔 〈무정(無情)〉과 갓치 후일(後日)에 남어갈 지 모르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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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조선 사람의 누구보다 몬저 소설을 쓰고 시를 쓰고 재조 잇는 글을 썻든 점으로 보아서만 그런대, 오늘 새 인생관, 새 시대의식, 새 세계의 창조를 요구할 이광수류의 공중누각의 이상주의가 만연함을 방관하고 잇을수 잇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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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조선문단관(朝鮮文壇觀)만콤이나 그이의 소설, 시 평론을 아니 실닌 신문, 잡지가 업고 그이의 일홈을 아니 말하는 독자 계급(讀者階級)이 업슬 그만한 이광수의 경향이 업지 아니한다. 조선 문단을 말하는 이는 그만콤이나 잡지 『조선문단(朝鮮文壇)』을 말한다. 이 이광수류의 문학 청년의 운집(雲集)하는 상(狀)을 보아라. 그이가 쓰는 글이 가진 특성, 물갓치 순하고 굴엉이 담 넘어가듯 걸님 업는 고흔 글, 문학생(文學生)이 조와하는 화려한 재화(才華), 그런 것을 내가 시기해서는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이광수를 조선문단에서 매장(埋葬)하라는 부르지즘은 이광수류의 인생 관, 사상, 재조(才操)만 가진 덕이 문학을 절멸(絶滅)하라는 요구다. 웨 그런고 하니 문예의 형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이니.
2. □ 선입견 ‘제일 중병(第一重病)을 알코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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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그이는 『중용과 철저』를 썼다. 이것은 그이의 과거 작품을 이론 화해 노은 글이오, 동시에 그이의 현재 인생관과 사상을 적실(適實)히 표백한 글이다 이 안에서 그이의 날근 계몽기적(啓蒙期的) 사상과 시대에 러젓다는 것보다도 반치(反馳)되는 인생관을 볼 수가 잇다. 몬저 그이는 두가 지의 선입견 혹은 자긍(自矜)에서 출발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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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재는 즉 “중병을 알코난 조선인의게” 신선한 음식, 일광(日光) 운동을 자기가 주겟다고 별으는 점이다. 물론 평범하고 상식적인 것을 구가(謳歌) 하는 문인이닛가. 조선인의 이 시대를 육체적 중환(重患)을 지내고 난 사람 에게 비(比)해서 구제책을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겟지. 그만치나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겟지. 그러나 자긍을 가진 동시에 선입견을 가젓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육체와 시대를 너무나 동일하게 생각하는 독단이란 말이다. 조선 민족의 과거와 장래를 논(論)한 그가 이럿케 수월하게도 시대를 생각햇는가. 그이의 얼골을 한번 갓가히 드려다보고 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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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인류생활의 물질적 관계, 즉 사회와 정신적 관계를 장황(長 荒)히 말할 필요가 업다. 다만 이 한 마듸면 족하겟다. 즉 ―테의 ‘시대 정신(時代精神)’을 진리라면서, 그 다음에 가서는 그 “진리만을 확대하고 과장하고 마치 그것이 다른 모든 진리를 병합(倂合)하여 버릴 듯이 폭위(暴 威)를 부린다”는 말을 생각해보자. ‘시대정신’이란 진리가 잇고 다른 곳에 해변(海邊)가 모래 수(數)와 갓치 만흔 진리가 잇다는 말이다. 여기지 오면 이 진리란 대체 무엇을 가르처 하는 말인가 하고 그이에게 뭇고 십다. ‘일후(日後)에 그이가 열심이 잇으면 이 진리란 괴물의 계통적 배열표 (排列表)를 그려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시대정신’이란 한 개의 진리는 오패자(吳佩字)·장작림(張作霖)·빙옥상(憑玉祥)이 차례로 성쇠하는 모양으로 일시적인 동시에, “인생에게 항구불변하는 상적(常的) 생활이란” 영원한 진리가 잇다는 은 그 글에 명확히 기록햇으니 알아듯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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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이상주의자의 망상을 알어보겟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항구불변하는 진리란 행복된 가정생활(남녀의 애(愛), 자녀에 대한 애, 종족적 애) 밋 여기서 오는 깃붐과 희망과 이를 위하야 노력하는 활동과 그것이 불여의 (不如意)한 대서 오는 ‘실망과 비애’를 가르처 하는 말인 줄도 알겟다. 그리고 이런 항구불변하는 진리를 포함한 문학으로서 그이는 테니손, 워 ― 스워 ― 드의 전(傳)을 논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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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손은 자본주의적 영국(英國)의 극히 산문적인 빅토리아 여왕의 계관시 인(桂冠詩人)인 줄은 그이가 아는지 모르겟다. 테니손이야말로 이광수의 선망(羨望)하는 시인이겟지만, 테니손을 질거하는 영국인이 ‘중병치(重病治)의 조선’ 민(民)과 동일할지도 의문이다. 그이는 워―스워―드가 구라파 전체를 흔들든 불란서 혁명을 구경하려고 불란서로 건너갓다가 다시 도라와서는 반동적으로 안강(安康)한 영국 안에서 불란서 혁명을 주저(呪詛) 햇든 이임을 알고 잇는가. 그러기에 산수(山水) 곱다는 소격란(蘇格蘭) 촌 (村) 구석 호수(湖水)가에서 애인 비스럼한 누이동생과 동서(同棲)하면서 자연이니, 영혼이니, 영원한 진리니 하고 시만 쓰다가 죽엇다는 이 점은 이광수의 엇더한 점과 흡사하지 안는가. 매튜 아―놀드는 근 이십년을 문부성(文部省) 학관(學官)으로 지내든 이다. 그러면서 국가의, 기실(其實) 자본주의가 난숙해 가든 십구세기의 영국 국가의 목적(?)에 합리(合理)한 교육정책을 채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신교(新敎)를 미워해서 영국 국교 회복에 전념햇든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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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아―놀드가 바이론을 일시적이라고 하고 워―스워―드와 테니손을 찬양햇든 것도 수긍하겟다. 다만 저러한 시대적 비평가 아―놀드가 찬양햇든 워―스워―드의 범신론적(汎神論的) 인생관과 테니손의 기독교적 신앙이 ‘중병치(重病治)인 조선’인(人)을 구제할 만한가 의문이다. 웨 그런고 하니 ‘중병치의 조선”에 필요한 것은 “신선한 공기, 일광, 동작”이란 대범신론적(大汎神論的) 인생관과 기독교적 신앙이 그 대신 노릇을 할 지가 모를 터이닛가. 그리고 그이는 썩어 가는 실천 도덕가의 이론을 비러다가 ‘중용(中庸)’을 찬미햇다. 춘추전국시대 자사(子思)가 ‘중용’을 말한 것이나, 살벌한 무용국(武勇國) 나마(羅馬)의 시인이 중용을 황금에 비 (比)한 것이나 다 시대의 반영(反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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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대 중용의 반진리(反眞理)를 찬미케 햇듯 춘추전국시대의 살기(殺氣) 와 나마시대(羅馬時代)의 용기가 중병치의 조선에 잇다면 이론적 모순을 면치 못하겟다. 웨 그런고 하니 그이의 눈에는 조선이 지금 극히 평범한 공기·일광·동작을 구할만치나 중병치의 피로·무기력, 눈 멀건이 고 쟈리에 드러누어 평화만, 사랑을 찻고 잇는 것으로만 뵈이는 것인 고(故)이다. 이러한 얼토당토 안는 ‘중병치의 주선’을 생각하기 문에 당연한 경로(經路)로써 그이는 ‘중용’을 찬미하야, 소위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유교적 문학을 요구하고 ‘시대정신’을 한 개의 농담으로 녁여서 실인생(實人生)을 초월한 아푸리오리한 진리가 잇는 줄노 알고, 혁명을 일시의 한산한 유산(遊山)으로 아러 ‘갓금 고가(高價)를 주고 구하는 요염한 창기 (娼妓)’로써 말하려 한다.
3. □ 선입견 제이(第二) ‘일상생활의 특생(特牲)은 평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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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는 “일상생활의 특색은 상식적이고 밥과 갓고 일광과 갓고 맹물과 갓다.”고 밋는다. 이 말 을 닑고 나는 이광수의 예술가적 통찰이 빈약함에 놀냇다. 그이가 동일한 의견을 가젓다고 인용햇든 매듀 아―놀드의 말을 아니 들엇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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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인생의 비평이다.”고 그이에게 아―놀드만한 시인적 비평력이 잇섯드면 소위 “평범한 인생”, “평범하고 건전한 문학”을 운위하지 안을 터인대. 아― 그이가 이 밧게 인생을 통찰하지 못하얏는가. 이러케지 상식적인가. 그이가 메―테르링크만치도 인생의 비극이 극히 평범한 인상 (人常) 생활 뒤에 숨어 잇는 것을 보지 못햇나. (내가 그이를 아―놀드나 메―테르링크에 붓처 규탄하는 것은 그 외국인들이 모두 이광수류의 서양 문인인 닭이다.) 그러한대 이 동양의 일우(一隅)에 소위 ‘중병치의 조선’에 잇는 문인은 가엽게도 “열렬한 문학, 자릿자릿한 문학, 심각한 문학, 신통하고 기이하야 입을 버리게 하는 문학, 기상(奇想)의 천외(天外)에서 러져 귀신(鬼神)이 곡할 문학”은 모도 “문학의 상(常)은 아니오, 정도(正道)는 아니다.” 한다. 그이의게는 문학이 한 상식이고 옷깃을 단정히 한 촌서당 선생님의 하는 짓으로 뵈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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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유자(儒者)의 시문(詩文)과 갓치 세상 생활에 초월한 한 개의 유희(遊戱)로 뵈이는 게다. 시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지도하는 새로운 사회의 폭탄이 못되고 화평한 가정에서 밥 먹으면서 단정하게 러안저서 읽는 소한(消閒)거리로 뵈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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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에 와서 부드치는 창파(蒼波)를 보지 못햇나. 그 물결의 힘은 자타(自 他)가 스스로 막지 못할 힘으로 와서 부드친다. ‘살육 · 전투 · 주저(呪咀)가 열등감정(劣等感情)’임을 자각하엿을진대 창파는 태고 에 발서 굉정 (浤靜)한 니수(泥水)물이 되얏을 것이오, 인류의 역사적 발전도 한 개의 공상에 머물넛을 것이다. 사람의 생활에 이러한 막지 못할 생(生)의 충동이 업슬진대, 천상무위(天上無爲)의 천국과 갓치 인간생활은 극히 ‘평범하고 맹물 갓고, 밥과 갓고 상식적인’ 한 폭의 죽은 그림에 불과햇을 것이다. 이광수가 역시 “변적(變的) 혁명시인”으로 선고(宣告)한 버―나드 쇼는 이광수보다 똑똑하게 “천국은 우주창조물 중에 제일 맛업는 심심한 곳이 다.”라고 말햇다. 이 세상이야말로 만일 이광수 요구대로 “상식적이고, 맹물과 갓고, 일광과 갓고, 밥과 갓흔” 곳이 된다면, 그이는 드러누워서 사랑을 찻고 가정에 취하고 종족애(宗族愛)에 만족만 하면서, 시도 쓰고 이상이니 최선이니 하고 안젓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싸움이다. 자연과의 싸움, 계급과의 싸움, 이것 업시는 인생이란 소, 말과 갓치 ‘제일 심심하고 맛업는 천당’으로 화(化)할 것이다. 이런 천당이 지금지 과거 인류 세계에 순시간(瞬時間)이라도 실현햇든 적이 잇섯는가. 잇섯슨들 이광수의 이상주의적 문학이 소위 ‘영원한 진리와 가치’를 가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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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인생에 대한 태도의 특색인 안이한 인도주의, 평범한 계몽기적 이상주의, 반동적인 예술상의 평범주의는 이러한 인생에 대한 통찰의 부족으로부터 나왓다. 더구나 그는 이러한 인생의 평범주의에 안저서 오늘 조선 문학도 그러한 평범문학이 되여야 한다고 선전한다. 이 평범이랑 그의 말 속에는 다만 한가한 가정의 한가한 소일거리가 될 만한 문학이라야 “영구 불변한 가치를 갓는 예술가”가 될 수 잇다는 주장이다. 그리해서 그이는 ‘춘원(春園)’을 만대(萬代)에 냄길냐고 이 흔 누더기 탈 쓴 정조관념(貞操觀念)으로 일관된 『춘향(春香)』을 썼든 것도 한가지 고소(苦笑)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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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단(第二段), 삼단에서 말한 선입견은, 말할 것 갓트면, 그 선입견만 버리게 되면 그이의 사상이, 인생관이, 는 예술에 대한 태도가 일변(一變)할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웨 그런고 하니 이상의 두가지 선입견은 결국 그의 성격 · 환경 · 수양, 맨 끗헤 가서는 그의 생명력이 맨드러 주엇든 것이지, 결코 하느님이 이광수를 기특히 녁여서 인스피레―손으로 너어준 것이 아닐 테이닛가. 그러나 그의 성격·환경·수양 혹은 그의 생명력에 대해서는 우리가 자세히 알지도 못할 더러 알 필요도 업스니, 산출한 기록에 의지하야만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첫재로는 시대에 대한 관념이, 지식이 틀엿고, 둘재로는 인생에 대한 통찰이 부족햇기 문에 이상에서 말해온 이상주의적 · 계몽기적 안이하고 도피적인 특색을 갓게 되엿다. 이러한 특색이 지금 조선 사람의게 엇더한 관계를 가젓는가를 생각해 보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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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는 바이론을 “문학의 상(常)과 정도(正道)가 아니고 이단(異端)이요, 서자(庶子)요, 기형아(畸形兒)요, 괴물(怪物)이고, 인(仁)함이 업는 색은행괴(索隱行怪)를 하는” 시인으로 말햇다. 그리고 워―스워―드는 “영원한 진리와 평범한 인생과 자연의 진리와 미를 찻는” 시인이라고 햇다. 그리고 그들의 시 자체는 들어내지 안코, 매튜 아―놀드의 말만 비러 그 우열을 단정한 후, 자기 에는 조선이 갓고 십흔 문학을 요구햇다. 나는 몬저 그가 말한 이상의 삼인(三人)을 드러 ‘평범하고 상식’인 것을 대이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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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아―놀드는 그래도 이광수보다는 시인과 시대 혹은 사회와의 관계를 볼 줄 알어 이럿케 말햇다. (원문(原文)대로 인용하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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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ime-Spirit, of Zeit-Geist, he would himself have said was working just then for Byron. This working of the Zeit-Geist in his favour was an advantage added to Byron's other advantages, an advantage of which he had a right to get the benefit …… Byron found our nation, after its long and viconary France, fixed in a system of established facts and dominant ideas which revolted him. The mental bondage of the most powerful part of our nation, of its strong middle-class, to a narrow and false system of this kind, is what we call British Philistinism. That bondage is unbroken to this hour, but in Byron's time it was even far more deep and dark than it is now. …… English life is the most conventional in the world and at once they saluted with respect the habits and ideas of British Philistinism as if they were a part of the order of creation, and as if in public no sane man would think of warring against them with Byron, it was diffe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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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갓치 바이론은 시대정신이 응합(應合)하야 그이의 독특한 천재를 발휘햇슴에 비하야, 이광수는 ‘일부(一部)의 진리(眞理)’를 포함햇거니와 다른 진리(즉 가정애(家庭愛) · 자녀애 · 종족애)를 압박한다고 하야 시대정신을 폭군시(暴君視)하고, 가치 업는 것으로 단정하엿다. 시대정신이란 폭군시를 피하야 가정 안에서 『춘향(春香)』이나 읽고, 사랑의 『무정(無 情)』이나 늣기고, 영원한 진리·평범한 생활이나 노래하란 말이다. 이런 위의 진리를 가진 문학을 오늘 ‘중병치의 조선’을 위해서 맨들나는 말이다. 그는 워―스워―드를 말햇다. 이 범신론적(汎神論的) 시인은 불란서 혁명을 동경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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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iss was in that dawn to be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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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to be young very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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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도 아놀드의 말한 바와 갓흔, 기성 현실과 인습(因襲)에 억매인 소강 (小康)의 영국 사회에 만족하야 소위 평범한 진리, 불후의 미를 차지면서, 시를 썼고 계관시인지 되엿다. 이 시인이 그러케 된 것도 사회엿다. 당시의 반동(反動) 기분과 구대륙(歐大陸)과 고립해 잇는 처지로써이다. 십구세 기의 영국의 식민정책이 그 독아(毒牙)를 널리고 자본주의 문명이 난숙해 가던 영국의 배경을 가지고 잇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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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소위 심적(心的) 개조의 정신(기선(旣先) 아―놀드의 필이스틴이슴 공격)이 잇섯으나, 대체로는 영(英) 사회가 애담 스미스의 경제상 자본주의적 이론을 순조(順調)하게 실현하고 잇섯섯다. 이러한대 워―스워―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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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joy in widest commonalty sp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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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열심(悅心)이 되여 잇섯슬 것도 당연하지 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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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대 이광수씨여. ‘중병치의 조선’의 오늘이 워―스워―드가 사러잇슬 의 영국과 갓헛는가. 조선이 그 자본으로, 그 공업으로 년년(年年) 증가 (增加)해 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엇던 경제학자 이순택(李順擇)의 지적과 갓치 그 실력은 조선 사람의 것이 아니다. 십구세기 자본주의의 난숙해 가든 영국과 오늘 조선이 갓흘 리가 만무(萬無)하다. 만일 그대가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초월해서 영원불후한 진리를 차질 수가 잇다면 엇저자고 시대를 통관(通觀)한 드시 조선민(朝鮮民)의 운명을 점치고, 오늘 ‘중병치의 조선’ 의게 구주(救主)를 자긍(自矜)하려고 하느냐. 그리고 하야 망국 (亡國) 근성만 남앗다는 조선(「문예찬담(文藝瓚談)」)을 구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온정과 열루(熱淚)로써 서로 권(勸)하고 간(諫)함”이 올코 “비방하고 무함(誣陷)하고 악담하고 조소하고”, “증오하고 살육하고 저주(咀呪)하고 쟁투”하는 것이 열등감정이라고만 하느냐. 삼천년 전 공자 사러나서 자사(子思)와 한가지로 ‘중용’이나 찻고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나 찻지, 오늘 안저서 사회니 민족이니 하는 것은 큰 실수가 아니냐. 여기지 와서는 나는 이러한 ‘열등감정’으로 비방하기를 앗기지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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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끗흐로 이광수의 평범주의에 대해서는 길게 쓸 필요가 업다. 이 평범이 야말로 개인의 취미에 잇으니. 그러나 한 마듸 그의게 이 평범주의가 잇기 문에 이러나는 태도의 그릇됨을 지적하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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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는 평범과 상식을 조와하기 문에 계몽기적 인생관에서 버서나지 못한다. 미직지근한 온정주의, 열(熱)과 힘이 업는 소강(小康)의 세계에서 버서나지 못한다. 발효(醱酵)가 업고 맹물과 갓흔 사랑, 이상, 평화 속에서 국척(跼蹐)한다. 덥허노코 사랑하라 하며, 현실도 모르고 보지도 안으려면 서, 이상을 말하고 불철저한 무저항주의를 내두른다. 그이가 쉑스피어, 테니슨을 들어 영인(英人)의 정신을 올애 지배하기는, 그 평범한 제재와 평범한 기교를 가지고 썼음에 인(因)한다고 한다. 쉑스피어나 테니슨을 평범하 다고 하는 것은 그의 보는 눈이 거기에 지나지 못하니 그럿치마는, 그 을 밀우어 이광수의 글을 보면, 그것은 평범이 아니고 열범(劣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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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물’ 도 못 되고 기운 진 ‘증류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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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은 맥힘이 업고, 수월하게 유수(流水)갓치 곱고 여유(餘裕)가 잇다. 이것은 그의 글재주에 잇다고 하겟지만, 그 글재주 문인지 그이는 잇다금 남의게로서 인용을 잘 한다. 한문 고전에서, 라틴에서, 영인(英人)에 서, 불인(佛人)에서, 독인(獨人)에서, 일인(日人)에서 닥치는 대로 읽는 대로 가저온다. 그것도 그이가 자기의 생각을 보증하기 위해서 하겟지만, 기실(其實)인즉 문자에 나타난 만 보고 소양(素養)업시 그 배경, 피인용자의 사상·성격·시대를 알지도 못하고 하는 짓이다. 이것은 재화(才華)가 그이로 하여금 화(禍)를 부르케 하는 것이며 내용이 단단치 못한 덕이 문 (文)을 쓰게 되며, 그러한 작품을 맨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문장의 묘사, 화려만 배우려고, 내용으로 깁히 파고 들어가려는 노력이 업는 이광수류의 문인이 만음을 보면, 적실(適實)히 그의 말과 갓치 ‘오늘 이 조선처럼 문세(文勢)의 세력이 큰 것을’ 통한(痛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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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지금 요구하는 것은 형식이 아니오, 미문(美文)이 아니오, 재화(才 華)가 아니오, 백과사전이 아니오, 다만 내용, 것칠드라도 생명의 속을 파고 들어갈녀는 생명력, 우둔하더라도 힘과 발효(醱酵)에 는 반발력, 넓은 벌판 우의 노래가 아니오, 한곳 을 파면서 통곡하는 부르지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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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씨여, 그대의 글과 그대의 인생에 대한 태도가 지금갓치 변환(變換) 이 업슬진대, 찰아리 중병치의 조선을 위해서 그 재조 잇는 글만을 가지고 신문기자로나 되여라. 그러치 아느면 새 ‘시대정신’ 의 ‘열등감정’ 을 가진 이들은 그대를 그대로 두지 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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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나니 『조선지광(朝鮮之光)』이 왓다. 여러분은 이 호(號)에서 지상(地上)의 조적어(鳥賊漁)의 이계(異計)를 논(論)한 것은 기어이 읽어 보기를 원한다. 『주간(週刊) 조선지광(朝鮮之光)』 일월 구일 발행호 내(發行號內) 『중용(中庸)과 반중용(反中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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