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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긴 유정(裕貞)을 울면서 나는 그를 부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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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벽사(開闢社)의 일을 보고 있을 땐데 작품으로 먼저 유정을 알았고 대하기는 그 뒤 안회남(安懷南) 군에게서 얼굴만 본 것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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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안군을 찾아가 한담을 하느라니까 생김새며 옷 입음새며 순박해 보이는 젊은 사람 하나가 안군한테 농짓거리를 하면서 떠들고 들어오더니 내가 있는 것을 보고 시무룩하기는 해도 기색이 좋지 않은 게 어쩌면 텃세를 하는 눈치 같았다. 그가 유정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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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상인즉 유정은 내 얼굴을 알았고 그런데 마침 술이 거나한 판에 허물없는 안군만 여겨 터덜거리고 들어오다가 초면인사도 미처 하지못한 선배(名色)인 내가 있으니까 제딴에는 무렴도 하고 그래 조심을 한다는 것이 신경 애브노멀한 나한테 그러한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고 그 뒤 안군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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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 뒤에 새잡이로 인사를 하고 한 번 만나 두 번 만나 하려니까 세상에 법 없이도 살 사람은 유정이라고 나는 절절히 느꼈다. 공순하되 허식이 아니요 다정하되 그냥 정(情)이요 유정에게 어디 교만이 있으리요. 그는 진실로 똘스또이였었다.(유정의 마지막 逸作「따라지」중의 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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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정의 작품들을 존경은 아니했어도 사랑은 했었다. (그것이 도리어 내게는 기쁜 일이었었다) 그러나 인간 유정은 더 사랑했다. 아니 사랑하고 싶었지만 못했었고 못한 것은 내가 인간으로 유정만 ‘성(誠)’치 못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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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을 떠나서야 비로소 병든 유정을 찾았다. 나는 내가 무정했음을 뉘우치고 그에게 빌었다. 병 치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유리하고 비용도 절약되는 방법이 있길래 알으켜 주었더니 그는 바로 회답을 해주었었다. 꼭 그렇게 해보겠노라고 그리고 기어코 병을 정복하겠노라고 약속해 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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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은 아깝게 그리고 불쌍하게 궂겼다. 나 같은 명색없는 문단꾼이면 여남은 갖다 주고 도로 물러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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