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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신극운동(新劇運動)의 첫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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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7.25~
김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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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新劇運動[신극운동]의 첫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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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海星[홍해성]
3
金水山[김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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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극 운동이 우리에게 얼마나 긴절(緊切)한 생활 문제인가를 장황히 여긔서 말할 필요는 업다. 누구나 다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생각하고 요구하고 그 이상을, 그 추구를 가지고 잇는 것인 닭이다. 지금 이 방면에 을 가티 하는 이들에게 어케 하면 결과잇게, 힘잇게 해 나갈 수 잇슬가를 숙려(熟慮)하기를 희망하는 동시에 우리리 토의한 결과를 여긔서 젹어보고저 하는 바다.
 
 

1. A. 신극에 대한 정열(情熱)의 일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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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과 희곡가(戱曲家)와 관중은 불가리(不可離)한 세 솟발이다. 그 중 하나가 결핍되여도 기우러지기는 명약관화(明若觀火)다. 그러나 신극 운동의 실제에 잇서서 관중이란 것을 제일 먼저 예상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 업시는 아모러한 다른 솟발이 구비하여 잇서도 기울어짐은 피치 못할 일이다. 엘이사베스조(朝)의 영국 루네산스민(民)이 섹스피어와 그 무대를 맨든 것이오, 섹스피어가 엘이사베스조의 무대나 극을 맨든 것이 아니다. 맛찬가지로 근대극에 잇서서도 안퇀이 그 소극장식(小劇場式)의 신극 운동을 일으킨 것이 아니오, 그 당시의 상류 귀족계급이 만족해 잇는 극장과 다른 일반 민중의 새로운 요구가 안퇀을 불러댄 것이다(『개벽(開闢)』오월호 수산(水山)의「자유극(自由劇)이야기」참조). 는 일본(日本)서 예술좌(藝術座)나 자유극장(自由劇場)이 신극 운동을 일으키엿다는 것보다도 재래의 가부끼(歌舞伎)나 전통의 무대가 아닌, 엇던 신흥계급의 새로운 요구가 서양극의 복사(複寫)인 신극 운동을 결정(結晶)해 노앗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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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물론 신극 운동을 전연(全然)히 아즉 뒤러진 조선 민중을 표준(標準)하여 가지고 시작하자는 은 아니다. 선구자가 민중을 지도하는 것인가, 민중이 선구자를 불너내는 것인가를 여긔서 대구(對究)할 생각은 업다. 다만 우리가 신극 운동을 일으킬려고 전(全) 생명을 밧친 이들이 오늘 현실을 보고 안저서 이 모양으로 이런 관중을 압헤 노코는 신극 운동은 커녕 신극이란 것도 알리기 어렵다는 을 고조(高調)코저 하는 바다. 확실히 이 자리에 안저서 조선 민중도 참다운 새 시대의 새 인생을 창조하는 한길로 무엇보다도 먼저 신극 운동을 이르켜야 하겟다는 요구는 누구나 암암리에 다 가지고 잇다는 것을 단언한다. 그러나 요구만이 전부가 아니라 요구를 실현코저 하면은 엇던 조건이 필요하다는 으로 우리는 먼저 관중을 맨들자는 제언(提言)을 가지고 잇다. 가정을 해 보자. 오늘 이 자리에서 상당한 극장과 무대, 예술가와 희곡가가 잇서서 즉, 상당한 엇더한 각본 한 개를 연출하는 모든 조건이 구비되여서 제군(諸君)의 압헤 연출이 된다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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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 현재의 조선 관중을 압헤 두고 누가 하우프트만, 체호푸의 자연주의극을, 는 표현주의극을, 피란델오나 노농(勞農) 노서아(露西亞)의 극을 용기잇게 내 놀 수 잇슬가. 입장자(入場者)가 잇거나 말거나 일반 관중의 이해나 동정이 잇거나 업거나 다만 무대 우에서 짓거리고 나면 고만이다 할 만큼 막대한 비용을 앳기지 안코 초월하게 무대 예술 궁전에 들어안저 잇스면 몰으겟다. 그러나 관중과 한가지로 안저서 감격과 힘과 눈물과 환희를 어들야면 오늘 이 현상(現狀)의 관중으로서는 확실히 실패의 첫 길일 것이다. 이 점을 등한히 녁이고 신극 운동이니 무대 예술이니 날다가 만 것으로 우리는 모(某) 회(會)를 눈압헤 보지 안헛는가? 그이들은 소위 신파객(新派客)을 만히 어야 수지(收支)가 맛겟다는 한 편 눈과 신극이라는 ‘하이가라’에 취해서 오는 소수(少數)의 극청년(劇靑年)의 환심을 살여는 다른 편 눈과를 한거번에 맛촐야다가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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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대수(多大數)의 관중들의 극장에서 엇고저 하는 요구가 벌서 그이들의 요구와 틀렷거든 수지(收支) 상반(相反)은 정(定)한 일이 아닌가.  이런 관중을 염두에 두고 수지를 기우(杞憂)하거든 새 극에 대한 순진한 열정에 마처 줄 극이 상연될 리가 업고 연출될 리도 업지 안흔가. 한거번에 두 가지 청(請)을 마춰줄 수가 전혀 업거든 그이들은 이 점을 예민히 바라볼 틈도 업시 덥허노코 ‘극만 하면’ 될 줄 안 것이다. 엇던 이는 그 회(會)의 우리 신극 운동에 대한 공헌을 운위(云謂)하는 이가 잇다. 그러나 우리는 그 회가 우에 말한 관중의 표준을 가르쳐 준 외(外)에 아모 공로도 효과도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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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극장이 잇던 표준으로 관중에게 대할가 하는 문제는 큰 문제다. 흥행상, 정책상, 영리상으로  아니라 극예술의 연출 그것에 대해서도 관중이란 큰 문제다. 그러나 우리가 여긔서 제언하려는 점, 즉 오늘 현상대로의 민중을 압헤 두고 신극 운동으로서 엇던 관중을 표준으로 해야 할가 하는 점에서만 고려하기를 청한다. 이 점에 잇서서 우리는 이가티 단언한다. 오늘 관극(觀劇)하는, 는 극에 대해서 흥미를 늣기는 이들은 그 대부분이 기생 연주회나 신파극이나 남사당패 노름이나 는 창루(娼樓)에 가는 호남자(好男者)들, 한량군들, 외입장이들, 호사(好事) 기분으로 행동하는 소위 향락주의자들 …… 그러한 이와 동일 레에서 일보(一步)도 더 나가지 못하는 군중들이다. 제군은 이 말을 노(怒)히 녁이기 전에 한번 기존 극장의 관객석에 안저서 그 극장 안의 공기(空氣), 갈채(喝采)의 초점(焦點), 야지의 기분(氣分), 남녀석(男女席)을 바라다보는 그 눈짓,  벌리고 안졋는 그 입 모습의 육기(肉氣)를 잘 듸려다보면 우리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것이다. 이런 관객과는 우리는 연(緣)이 멀다는 각오가 아니면 신극 운동자의 첫 발길부터 틀려먹는 수작이다. 연극은 술이나 화류(花柳)장이나 창녀(娼女)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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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은 사회의 학교”라는 말이 잇다. 그만큼 절실하고 단적(端的)이고 엄숙한 기분이 아니면 우리에게는 신극 운동보다도 한 장(張)의 비라, 한마듸의 토론(討論), 한 개의 자선과(慈善鍋)가 더 필요하다. 무대 예술이니 미(美)니 인생이니 하는 것보다 주권(株券)이니 회사니 종로(鐘路) 네 거리의 상점이니 공장이니가 더 필요한 제목이 되지 안흐면 안 된다. 이 을 제군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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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극 운동에 하는 제군은 이 점에 잇서서 관중이란 것을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 오늘 이 관중을 그대로 압헤 두고 무대를 공개한다하면 그것은 극히 무의미한 일이 되거나 는 모(某) 회(會)의 전철(前轍)을 다시 밟는 것에 불과하게 될 것을 우리는 밋는다. 이런 치두(稚頭)의 민중을 구축(驅逐)하고 신극 운동의 기(旗) 아래서 가티 일하고 가티 자극하고 가티 힘 어둘 선구자가 되기를 바랄 관중의 양성, 각성, 초환(招還)이 우리들의 걸어야할 첫 길인 줄 안다. 무대가 생기고 극장이 열리고 무대 예술가가 나오고 위대한 작가와 장대(壯大)한 인생이 생기기 전에 가티 일하는 데 한 분자(分子)된 관중의 양성이 시작되지 안는 동안 시기상조의 실패는 명약관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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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의 양성, 이 제목(題目)을 극히 간단하게 말하면 근대극이란 어한 경로(經路)를 가저 왓스며 오날 우리의 처지(處地)로 안저서 엇던 이상으로 우리가창작하고 연출해야 할가를 가티 토구(討究) 선전(宣傳)할 동지(同志)의 단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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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잡지나 기타 간행물로서 소개와 토의와 연구와 사건을 육속(陸續) 공표(公表)하는 동시에 각 전문학교 안에 잇는 연극연구회(演劇硏究會) 가튼 것과 제하여 순진한 극예술에 대한 열정을 환기(喚起)하기 위하야 강연회와 전람회 혹은 사연회(私演會)를 개최할 일, 는 재래의 극장과 사도(邪道)로 들어간 관중을 박멸하고 도태하기 위하야 신문, 잡지사에 연극에 관한 상식을 가진 기자를 두도록 종용할 일, 는 조건만 허락하면 극예술에 관한 잡지를 간행할 일, 그것이 못 되면 각 신문에 다만 몃 난(欄)에 불과하드라도 순연(純然)한 연극란(演劇欄)을 둘 일 등을 우리는 여긔서 제언한다. 일을 가티 하기에는 제군과의 토의에 잇다.
 
 
 

2. B. 외국극과 창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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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극이라면 구미(歐米)나 일본의 선진(先進) 극단의 작품을 가르침이다.  창작극이라면 우리의 손에서 나온 순연(純然)한 우리의 극을 가르침이다. 전자는 수입이고, 소개이고, 모방이고, 는 비판이다. 후자는 창작이고 신생명의 창조다. 그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몬저 신극 운동의 첫 길로 발버야 할가? 는 두 가지를 혼합해야 할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가지의 입장과 관찰에 러서 여러 가지의 의논이 잇슬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안저서 외국극, 소위 선진 극단의 근대극의 수입을 몬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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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늬 시대를 물론하고 과도기나 전환기에 잇서서 창작보다 비평의 시대가 먼저 오는 이치는 이러한 점에 잇다. 인생이란 결국은 한번 구더진 사상과 관념이 부단한 약진과 창조를 요구하는 생명을 질박해 놋는 것이다. 이 곳에서 신고(新古)의 충돌, 계급의 쟁투, 혁명과 보수의 피다툼이 생긴다. 그러나 그 힘이 극(極)할 에도 일반은 늙은이의 구더진 머리 속 모양으로 자기 생명의 본류(本流)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새 생명 새 사상은 이것에 대해 대항한다. 이 곳에서 비평이 생긴다. 비평은 싸움이고 전투다. 역사상의 모든 새 조류(潮流)와 새 사변(事變)의 압헤 반드시 이 비평의 시대가 잇섯던 것을 발견할 수가 잇다. 더구나 오늘 조선, 입대것 참으로 극장과 무대와 연출가와 희곡이 전무햇든 이 황무지 벌판에서 다른 곳으로부터 수입해오는 새 종자(種子)가 아니면 무엇으로써 신극 운동을 일으킬가? 부단단 새 생명의 창조에 잇서서는 모방이니, 복사니, 수입이니가 단순한 모방, 복사, 수입에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일본서는 명치(明治) 사십년 전후 신극 운동이 도촌포월(島村抱月), 평내소요(坪內逍遙), 소산내훈(小山內薰)들의 손에서 일어낫다. 그러면 그이들은 재래의 극적 전통이 업서서 서양극의 복사를 하게 된 것인가? 는 그것에 불만을 가지고 반항한 것인가? 우리는 그이들의 신극 운동이 단순한 복사나 반항이 아니엿슴을 역사상(歷史上)으로 본다. 지금까지의 그 복사와 반항이 설령 새 일본극을 창조하는 데 현저한 효과가 아즉것 나터나지 안헛드래도 창작가(創作家)의 출현, 신(新) 일본극의 발흥(勃興)에 잇서서는 그이들의 일이 헛됨이 아니엿슴을 확실히 볼 수 잇다. 는 구주(歐洲)의 근대극 운동은 무대상에서 안퇀의 운동이 잇다. 이것은 확실히 기성의 극 전통에 대한 반항에서 시작되엿다. 모든 문화나, 사상이나, 생활의 조류가 반동에서 시종한 구미(歐米)의 사회이닛가 근대극 운동에서도 이 반동은 역연(歷然)한 사실이엿다. 그럴  그이들은 외국극과 한가지로 창작극을 상연한 것도 사실이엿다. 그러나 외국극, 북구(北歐)의 신(新) 극작가들의 작품 즉 입센, 스트린드베리, 뵤른손, 톨스토이 등의 자연주의극의 수입이 재래의 로맨티시슴의 반항으로 나타난 십구세기말의 신(新) 불작가(佛作家)들에게 도표(道標)가 될 것도 역연한 사실이다. 원래 네 것, 내 것의 구별을 찻는 것이 부당한일이고 자만(自慢)의 짓이다. 보라, 역사상 엇던 나라든지 생활상의 큰 변동에 잇서서 외국으로부터 들어 온 사상과 생활의 영향이 업섯든곳이 하나나 잇섯는가? 도리혀 외국의영향 업시 자기의 문화만을 자랑하든 희랍은 고만 북방 민족의 침입으로 몰락해버리지 안헛는가? 그리고 그 민족이 몰락한 뒤의 문화만은 다시 서방 만족(蠻族)의 로마국에 들어가고, 이태리에, 서구의 제 신흥국민(新興國民)들에게 들어가 문예부흥을 일으키지 안헛는가? 만일 그이들이 우리 것, 내 것만 찻고 잇섯슨들 그러한 정치적 활기에 는 라마(羅馬) 문화나 모든 근대 사상의 직원(直援) 원연(源淵)인 루네산스는 나오지 안헛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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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도 잠간 말햇지만 우리의 처지로서는 신극 운동상 재래의 전통에서 어들 아모것도 업다. 황무지 벌판이다. 창작만, 우리 작가만 찻다가는 커지고 성(盛)할 것은 다만 황무지 잡초 밧게 업슬 것이다. 우리는 몬저 외국 선진(先進) 극단의 근대극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할 점을 보고 잇다. 외국극의 수입, 물론 이것이 최후가 아니다. 보다 더 위대한 생명의 창조를 엇기 위한 출발점에 안저서 우리는 구미와 일본의 근대극의 수입과 연출과 비판을 몬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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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에 잇서서도 만흔 소개자, 비평가, 번역가가 나오기를 열망한다. 연구자가 나오고 평론가가 나오고 역자가 나오기를 열망한다. 한 편의 글이 곳 A단(段)에서 말한 신극에 대한 순정(純情)의 보편화에 공헌이 될 것이다. 한 마듸 소개나 비판이 곳 신극 운동의 거산(巨山)의 한 줌 흙이 될 것이다. 황무지인 이 땅, 허무한 ○극단을 생각하면 이 감(感)이 업지 안을 것이 아닌가. 자만(自慢)과 공리(空理)에서 떠나 속히 나와 일하자. 숨어잇서 낫잠 자는 동무들의여!
 
 
 

3. C. 무대예술가의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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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즉 인물과 그에 부수(附隨)한 경제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닛가 별로 이약이할 필요도 업슬 것 갓지만 우리들 관견(管見)으로 해서 수언(數言)해 두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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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튼 는 독일 가튼 곳에서는 이 방면에 만, 동경(憧憬)만 잇느니면 곳 연기라든지 무대장치라든지 배광(配光)이라든지 경영(經營)이라든지 혹은 희곡작법이라든지 자기의 전문으로 하구 십흔 과정을 연구할 수 잇는 수만흔 학교나 연구 등으로 드러갈 수 잇고 는 각 극장에 가서 견학할 수도 잇서서 그 재능을 발휘할 수가 용이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곳에서는 이것 역(亦) 여간 큰 난관이 아니다. 난관에 부닥치면 포장(包藏)해 잇든 재능도 발휘할 것이 업시 정력 낭비와 고생만 하다가 고만 시드러지게 된다. 더구나 호사기분(好事氣分)이 만은 현상(現象)으로서는 전직(轉職)에 여념(餘念)이 업고 소위 예술가적 배가본드의 운명으로 마치는 이가 만케 될 것은 사실로 볼 수 밧게 업다. 대체로 보아서 이 방면에 을 두느니는 그 정력이 누구보다도 더할 것이 필요하지만 그러타고 호사기분에 , 는 성실이 업는 혹은 무대 전후의 여간 아닌 간난신고(艱難辛苦)에 견듸지 못하는 종류의 인물은 대금물(大禁物)이다. 좀 철저하게 말하면 일평생의 전업(專業)으로 심신을 밧치고 예술가적 통찰과 불요불굴하는 기백을 구비한 이가 아니면 무대예술이란 방면에는 큰 저해물이 되면 되엇지 소무이익(少無利益)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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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인격 문제는 물론 엇던 부문이든지 인간의 사회적 활동에 잇서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더구나 무대예술에서는 인격의 성실순직(誠實純直)을 요구한다. 원래가 화려하게 뵈이고 곱게 뵈이닛가 그것으로만 라오는 자는 반드시 여름 등잔의 버러지의 운명에 나게 뵈는 것이니 피차(彼此) 이 운동에 제휴하는 이는 주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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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더우기 근년(近年)에 와서 무대예술의 가치 표준에 잇서서 연출가 중심과 배우 중심의 두 경향이 잇다. 소위 신극운동이 이러나기 전에는 배우 중심이 세어졋섯다. 관객은 희곡, 그것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고 그것에 출연하는 주역, 즉 화형배우(花形俳優)를 보러 갓섯다. 불란서의 고전극, 영국의 엘리사베쓰조 이후 는 일본의 가부끼(歌舞伎)나 신파의 극에서 다 그랫다. 각본의 사활은 문제가 되지 안코 주역 그 사람의 성공에만 가치와 표준을 두엇섯다. 그러닛가 이 주역 되는 배우의 연기 그것에만 모든 무대상의 속성―광선, 장치, 회화적(繪畵的) 혹은 음악적요소 ― 등이 부수하여 갓섯다. 라서 이 속성의 예술에 대해서 특별한 전문적 지식이나 고려가 필요치 안헛다. 그러나 근대극에 와서는 작가가 배우의 상위에 서게 되야 그 작가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만 배우가 잇고, 장치가 잇고, 효과가 잇고, 배광(配光)과 음악이 잇게 되엿다. 그래서 이 작가의 정신을 이해하고 해석해서 무대상에다가 연출하는 레지스슬이 출연하게 되는 동시에그 레지스슬의 연출을 보좌키 위하야 모든 무대상의 속성이 분담과 전념을 요구케 되엿다. 이 연출자 중심은 자연히 전문(專門)과 분화(分化)를 요구케 된다. (요새 더구나 노서아(露西亞) 가튼 데서는 다시 배우 중심의 경향이 나타나긴 하나 아즉 문제이다. 연출자나 작가의 중심과 배우중심의 문제는 후일 기회를 보아 다시 쓰겟다.) 그러면 이러한 전문가를 우리는 엇더케 양성해야 할가? 인재 양성이란 결국 인물과 경제의 문제다. 이것은 만히 고려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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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재로 인물은 우에 말한 성격과 성실과 결심을 가진 이가 되기를 필요로 한다. 이런 이를 발견하면 그 용기에서 그 포부에서 을 가티하기는 상사(常事)이지만 엇더케 서로 공부해나갈가, 엇더케 후일 일을 위해 서로 상부상조(相扶相助)를 할가. 이 곳에서 경제 문제가 온다. 오늘의 사회의 현상(現狀)으로 해서는 남에게 구조를 바라기는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지금지 광대와 방종(放縱)으로만 극이란 것에 대해온 인습적 두뇌를 가진 이가 만흔 데에서야 다시 무슨 말이 잇스랴. 이 난관을 지나서 목적에 달(達)키 위하는 방법에 우리는 두 가지 관견(管見)을 가지고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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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 전문학교나 대학에서 연극 강좌(혹은 수의과(隨意科)를 두도록 학생들이 중심으로 하야 힘쓸 일. 그리하는 동시에 학교나 기타의 도서관을 이용하거나 는 사소한 기부금이나 출연금(出捐金)으로라도 무대예술에 관한 (초보라도) 클업 가튼 형식으로 연구회를 조직할 일. 이 연구회에서는 반드시 그 성질상으로나 는 내두(來頭)의 큰 포부를 위하야 재래의 극장이나 극단(즉 신파극)이라는 내용으로 아모 제휴(提携)가 업서야 할 일. 그리하야 일정한 연구와 연습의 기간을 지내면 반드시 사연회(私演會) 형식으로 공연을 할 일. 특별히 학생이란 졂은이에게 기대를 갓는 점은 현재 문단이나 극단에서는 소위 명사들이 극에 대한 여간 포부와 지식이 잇는 이가 잇서도 경험으로 추측하면 모두 연기(衍氣)와 자부(自負)와 불철저(不徹底)에 억매여 잇는 닭이다. 학생들에게는 힘과 열정이 넘치고 잇는 동시에 무엇보다도 순직(純直)한 기분이 제일 세인 닭이다. 오늘 우리들의 일에 피차(彼此)를 물론하고 무식이나 유치는 조금도 관계치 아니하고, 다만 조직, 순직성실(純直誠實)에 뛰는 열성이 몬저 필요한 닭이다. 이러한 학생의 연구 관계는 연구, 사연(私演)은 물론 하기휴학(夏期休學) 가튼 것을 이용하야 중화(中華)나 일본의 극단을 순회 견학할 기회도 잇다. 그리하야 그 학생들 중에는 설령 문과(文科)나 연극에 관한 전문학과인 공부를 하지 안는 학생이 잇드라도 졸업 후에는 생활을 어드면서 전문으로 극 운동에 종사할 이들에게 큰 상부상조가 될 동지가 만흘 것이다. 는 생활에 안정만 잇는 이로서 신극 운동에 순진한 열성만 가진 이는 능히 전력을 앗기지 아니할 이도 나올 것이다. 지금지의 서울 각 전문학교에서 바사나 크리스마스나 기타 기념될 기회에 하는 학생연극이란 신극이라는 철저한 관념도 업시다만 호사기분과 한산기분(閑散氣分)으로 해 나온 것에 불과하다. 이 몽롱한 호기소한(好奇消閑) 기분에서 나 참으로 극다운 극에 대한 열성의 단결이 되는 연구회가 나오기를 우리는 크게 기대하고 바라고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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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러한 학생단체에서 출현한 재능 잇고 열성 잇는 이는 누구든, 무대예술의 부문적 연구로서 결심한 이면 서로 모아서 신극운동을 일으킬 수가 잇다. 철저한 신극단체가 한 번 출현되는 동시(同時)면 그이들은 분담과 전문을 마터서 연구하게 된다. 는 약간의 시일과 경제로 외국의 극장에 가서 연구할 수가 잇다. 이 시일과 경제라는 것에 약간이라는 형용사를 부치는 것은 서책이나 회화(繪畵)나 사진만으로도 넉넉히 될 연구를 외국 극장 안에 드러가서 반개년(半個年) 혹은 일개년(一個年) 견습으로 넉넉할 줄 아는 닭이다. 일본 가튼 데서는 예정기간에 의식(衣食)만 자기가 부담하면 견습 연구케 할 극장이 잇다. 그러나 결심은 든든히 해야 한다.  일어(日語)와 구어(歐語)도 충분히 아러야 한다. 무대란 보기에는 화미안일(華美安逸)하게 뵈이지만 그 이면의 여간 아닌 고통과 곤란에 저항할 만한 인내심이 업스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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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긔 부수하야 다시 말하고저 하는 바는 여우(女優) 문제다. 이것은 참 큰 두통거리가 될 난관이다. 우리들 의견으로서 “나 여배우 되겟소.”하고 나와서 그 주위와 가족의 반대 업는 이는 대개 엇던 경로를 발버온 여자가 대부분이다. 이런 여자들은 항사(巷斜)의 거리에서 우슴을 파는, 인생의 순실(純實)에 대한 가능성이 업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는 이러한 경로를 가지고 온 여자들 중에서도 상당히 재간 잇고 또는 순실(純實) 맛이 잇느니도 잇겟지만 그 여자들은  오늘 현상(現狀)으로 안저서 여배우 되기를 바라지 안흘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벌서 사정에 려 생에 대한 회의, 자책이 잇거든 오늘 현상(現狀)의 여배우란 것들의 생활 그것만으로 생각하고 잇스니 “나 여배우 되겟소.”하고 나올 여자가 몃이나 잇슬가. 는 이런 경로안 가지고 참으로 재간 잇고 성실한 여자로는 대개 그 주위와 가정이 허락치 않을 것이다. 이것은 어느 곳에서든지 그러켓치만 더욱 조선 사람의 가정에서 탄생한 여자로서는 더 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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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배우의 양성을 그대지 급히 지 안는다. 성격과 큰 천재는 눌러도 반드시 나올 것이고 다만 현재에 안저서 여배우로 쓸 인물 선택에서 엄중히 하야 가능성으로써 불러내면 고만이다. 다만 가능성으로 불러내는 신극 운동에 참가하는 그이들에게 전부를 미더야 할 일이다. 그이들은 전 생명을 바친 이라, 상당한 싹만 뵈이면 엇지 그 처자로라도 가티 나오기를 주저하겟느냐.
 
 
 

4. D. 소극장식(小劇場式)과 회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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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더니는 신극운동을 일르키랴면 그 자체의 극장을 가저야 한다고 말하니가 잇다. 물론 호의견(好意見)이나 그러나 엇더케? 누가 돈을 주어서? 이 의견은 돈 나올 지 기대리고 잇스라는 말이다. 힘써서 주선하면 나온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이것이 오늘 현상(現狀)으로써 멧년을 걸녀서, 멧십년을 걸너서 돈 나올 지 기대릴가?  극장을 세우고 나서 그 안에서 일하는 일군과 관중도 아즉 채 미숙한데 무슨 힘과 재간으로 해 나갈가? 극장만 가지게 되면 물론 재간과 힘도 그 속에서 나올 것이지만 극장 세울 돈이 먼저 잇스면 인물 양성에 먼저 써야 할 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오늘 돈 가진 조선인으로서 극 운동이나 극장을 위해 돈을 내놋는 이가 잇다면 그이는 바보가 아니면 이익을 보고자하는 이에 불과할 것이다. 웨 그런고니 오늘 안저서 진정한 의미의 신극 운동을 일으키면 경제로는 반드시 처음에는 실패될 것을 가정해 논 연후의 일이닛 말이다. 이 가정을 하지 안는 동안 누가 돈 내놀 바보가 잇겟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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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처음에는 극장을 가질 필요가 업다는 이유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아라메에서 나온 의견이다. 안퇀이 그랫고 그 뒤를 이어 일어난 독일의 자유무대(自由舞臺)가 그랫다. 미국 각 지방에서 이러난 소극장이 그랫다. 그이들은 영리가 목적이 아니고 새 일이 목적이엿다. 우리도 이러한 각오를 가저야 일이 된다. 영리는 이저버리자. 돈 몃 분(分) 드린 후에 설령 그 돈이 다 사라지고 우리는 거러지가 된다고 하자. 그러나 다만 그 에 신극운동의 새 종자(種子)를 러트린 점만 잇스면 고만이다. 새 종자가 러지는 동시에 그 원(元) 가지는 말너지는 것을 우리는 초목(草木)에서 보지 안는가. 공회당도 조타. 혹은 야외의 가옥(假屋)으로도 조타. 그런 곳에서 하는 일이 만일 눈 잇는 이에게 감동만 주면 돈도 나올 수가 잇다. 그 가서는 극장도 세우자. 학교도 두자. 배광(配光)이나 장치에도 마음껏 설비해보자. 외국에지 가서 기구도 사요자. 그러나 오늘 현상으로서 이런 것을 바라는 것은 이다. 만일 이 아님을 증명할 용기가 잇느니가 잇스면 누구든지 나오너라. 우리는 신극운동의 은인으로써 환영하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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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극장 업시 엇더케 우리는 극단 조직을 할가? 우리는 몬저 회원조직을 입안(立案)하고 잇다. 회원조직으로 된 선진 극단의 처지와 우리의 일하려는 처지는 좀 다르다. 그이들은 본래의 큰 영리적 극장 는 재래의 전통극에 생금(生擒)된 다수의 관중을 대적(對敵)으로 하기 위하야 회원제도(會員制度)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이와 가튼 형편에 잇기는 하지만 제일 큰 수는 방도(邦道)로 드러간 관중, 그것들이다. 이런 이들을 상대로 하는 이상, 신극운동이 무결과(無結果)하게 실패될 것은 정(定)한 일이다. 학교에 등교하는 것과 가튼, 엄중하고 절실하고 순실한 기분으로 극장에 나오는 관중이 설령 하나가 되드라도 그 한 사람을 위해 몬저 연출을 하자. 그 한 사람이 곳 우리의 동지다. 이 한 동지에서 다른 동지가 생기고 그 다른 동지에서 다시 수 느러가는 동지가 생길 것이다. 이 소수(少數)의 동지를 위해 연출할 것은 얼는 생각하면 일반 민중을 무시하거나 배타적 행동으로 뵈일 터이지만 신극운동의 봉화를 든 이로서는 맨 처음으로 발불 길이 이것 외에 업는 줄 안다. 이곳에 입각이 업기 문에 헤여진 모(某) 회(會)가 신극운동에 아모 효과나 씨알머리 한 개도 안 남겨준 무의미한 일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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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제로 시작하여 크게 영향을 주고 힘을 준 선진 각국 극단의 이, 삼 실례를 간단히 여긔 좀 기록해 두겟다.
 
 

4.1. 1. 불(佛)의‘자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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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자 안드레 안퇀. 1887~1894년 팔개년간 이것이 창설되자느면 안될 형편과 는 결사적 용기로 백난(百難)과 결핍을 돌관(突貫)해 나간 事實[사실]은『개벽』오월호 수산(水山)의「자유극장(自由劇場) 이약이」를 참조하기를 바란다.
 
 

4.2. 2. 독(獨)의 ‘자유무대’, ‘자유민중무대’와‘신(新)자유민중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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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佛)의‘자유극장’이 된 후 이년 안에 어늬 곳보다도 몬저 독일에서 ‘자유무대’가 생겻다. 1889년 옷토 브람의 지도로 입센의 <유령(幽靈)>을 비롯하야 콩쿨 형제, 뵤른손, 스트린베리, 톨스토이 등 외국 작가의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국작가(自國作家)(만히는 잇섯스나)에게 지금보다 더 광대한 취재(取材)와 인생에 대한 충실을 가르처 주엇다. 거장(巨匠) 하우프트만의 처녀작이 처음으로 연출된 것도 이 곳에서다. 이 뒤를 이어 나온 ‘자유민중무대’와‘신자유민중무대’도 다 이러한 공적을 가지고  근대극의 큰 발달을 촉진식힌 것이지만 여긔서 자세히 쓸 여가는 업고 후일을 미룬다. (싸움 잘 하는 독일인이닛가 신극국(新劇國)이 생길 마다 소동이 치지 안헛다.) 즉‘Theatre Scandal’이라는 말이 생길 만큼 그 소동이 심햇고  그만큼 사회상 영향이 컷섯다.
 
 

4.3. 3. 영(英)의‘독립극장’,‘무대협회’,‘쿠트극장’‘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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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케 그란인의 창설. 1890 ― 1897년 7개월간 처음으로 입센의 <유령(幽靈)>을 상연한 것과 버―나드 쇼―를 또 처음으로 불러낸 것이 유명하다. 입센을 상연해서 그란인은 "윤돈(倫敦) 제일의 치욕바들 놈"이라고 욕(辱) 어더먹엇고 엇던 가정에는 교제지 넛다. 쇼―를 처음으로 소개한 것만으로도 이‘독립극장’의 공적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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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이년만인 1899년에‘독립극장’의 영향으로 나온 것이‘무대협회’다. 메테르링, 하우프트만, 프란솨와 드 큐렐, 고르키, 브류 등의 외국 작가를 육속(陸續) 소개하고 자국 작가로서 버―나드 쇼―와 그랜빌, 바―커를 유명(有名)하게 맨드럿다. 바―커, 오―브리, 스미스, 힐다, 트레우란 등의 신(新) 남녀배우도 맨드러냇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공적은 외국극을 충실하게 소개해 준 점에 잇다. 재래의 극장에서는 일본 신파나 조선(朝鮮)의 오늘 극장에서 모양으로 불(佛), 독(獨), 이(伊), 놀웨, 일본 등 외국의 제(諸) 명작을 출연은 햇지만 결국 번안도 아니오, 개작, 제멋대로의 개작으로 햇섯다. 그 예로 입센의 부인 문제에 큰 암시를 준 <인형의 가(家)>는 이러케 개작하엿단다. 란크 의사는 전연 출장(出場)을 안식혓다. 이것만으로 얼마나 상업적으로 연출햇는지 알 것이다. 크롬스탓드와 란덴 부인의 예전 정다운 사이도 전혀 고 심지어 이 극의 골자인 노라의 출가를 업새버리는 동시에 남편과 다시 타협을 해 가지고 호가정(好家庭)을 일운다는 것으로 매졋다고 한다. 아무러한 명작이기로 이러한 몰상식한 개작을 당하면 무슨 힘이 잇스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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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의‘독립극장’과‘무대협회’의 뒤를 이어 나온 것이 영국 무대 역사상에 큰 점적(點滴)을 러트린 ‘코 ― 트극장’이다. 근대적 머리로 안저서 고전극, 희랍극과 사옹극(沙翁劇)을 연출한 것과 쇼―를 비롯하여 핸킨, 갤스워―시, 예―쓰 등의 영·애(英·愛) 신작가를 소개, 유명케 한 것,  영국 배우 연기에 잇서서 극히 시대의 사상과 시대적 작품에 적합한 자연진실(自然眞實)한 열풍을 확립해 준 것도 이 극단의 공적이다. 돈이 업섯스닛가 장치는 아주 조악(粗惡)햇섯다고 한다. 그러나 이 극단의 연출을 보고는 누구든지 "영국에도 배우가 잇구나."할 만큼 연출상의 신사업(新事業)을 일우엇다.
 
 

4.4. 4. 일본의 ‘자유극장’과 ‘문예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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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회원 조직이 아니고 무형극장(無形劇場)이지만 소극장식(小劇場式)의 근대 극장 운동에 와서 적지 안흔 공헌을 준 점으로 여기에 첨가한다. 누구나 다 아는 바와 가티 전자는 소산내기(小山內冀)과 시천좌단차(市川左團次)의 일이고, 후자는 평내소요(坪內逍遙)와 도촌포월(島村抱月)의 일이다. 엇더니의 말을 빌면 전자는 "배우를 소인(素人)으로", 후자는 "소인(素人)을 배우로" 맨들 것을 햇다고 한다. 당시의 일본 극단을 보면 잘 아러드를 말이다. 소산내훈(小山內薰)은 배우 양행(俳優 洋行)하여 귀국한 시천좌단차(市川左團次)의 일족(一族)과 제휴햇고, 평내(坪內)와 도촌(島村)은 새로 남녀 배우들을 양성하면서 시작햇다. 그 출발점은 다르다. 그러나 결국은 재래의 가부끼(歌舞伎)에 반항도 아니하면서 전연히 새로운 신극(新劇)을 일으키고, 새로운 창작도 아닌 서양 복사(複寫)의 극을 이르키면서 일본 신극 작가를 불러내랴고 한 점에서 일치된 것이다. 오늘은 한편으로 엄연한 재래극의 전당이 그대로 나머 잇고, 다른 편으로는 서양 그대로 무대가 사러 잇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넓게는 사실(寫實)과 물질의 것과 계통적(系統的)이고 정서적인 일본의 것이 어느 정도지 어느  가서 융합된다거나 는 본체를 나타낼가는 미지의 문제다. 그러나 이 신극 운동이 일본의 새 시대적 정신과 조응하랴는 청년 극작가에게 지향을 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업는 사실이다. 결코 오락으로나 통(通:ツウ)로나 구경거리로 가는 교오겐(古狂言) 작가가 아니 가진 전적(全的) 생명의 숨을 쉬고 잇는 현대 일본 극단만은 이즐 수 업다. 이 나라도 아즉 창작 시대는 오지 안헛다.
 
 

4.5. 5. 미국의 근대극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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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돈 만흔 나라다. 규모와 설비가 굉장한 극장이 만흔 만큼 진실미(眞實味)에 넘치는 근대극이 적엇다. 그러나 이 세기(世紀) 초부터 그이들도 구라파의 신극 운동의 영향을 바더서 무수한 소극장, 무형극장, 시립극장, 대학생의 연구적(硏究的) 극단이 생겻다. 그런 것을 일일히 들추움은 업지만 우리에게 암시와 힘을 주는 점으로 오늘 세계적 작가 유―진 오―닐을 낸 ‘프로스 타운’극단을 여긔 잠간 소개하겟다. 이것은 수산(水山)이가 유월 중『시대일보』에서 오―닐과 관련하여 기록해 논 일이 잇지만 그이들도 큰 규모와 세력을 가진 뉴육(紐育)의 브로―드웨이의 영리극장과 경쟁할 힘이 업는 줄 알고서 참다운 미국 신극작가를 불러내려는 목적으로 된 것이다. 연극에 대한 타는 열(熱)과 진실을 요구하고 잇지만 돈과 능력이 부족한 그이들은 뉴육에서도 멀게 러진 대서양안(岸) ‘프로딘스 타운’이라는 일(一) 소도(小島)에서 시작한 용기와 각오는 실로 장하다. 어촌(漁村)인 이 섬에서 부두의 소(小) 어물창고를 수리하야 무대로 삼고 모도 소인(素人)으로만 모인 극 청년들이 회원이 되여 가지고 연출햇다. 지금은 뉴육으로 드러와서 큰 극장을 빌어서 하는 직업적 극단이 되엿지만 창설시의 진실한 열성은 아즉도 사러지지 안코 잇다. 유―진 오―닐, 수―산 글라스펠, 프랭크세이, 죠―지 크랙크 등의 미국 극작가는 모도 이 극단으로서 출세한 이들이다. 미국 극작가의 확립과 산출, 이 점에 그이들의 목적이 잇섯든 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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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朝鮮日報)』, 1926. 5.
【원문】우리 신극운동(新劇運動)의 첫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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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6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