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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朝鮮)의 신화(神話)와 일본(日本)의 신화(神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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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4월
최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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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조선]의 神話[신화]와 日本[일본]의 神話[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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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옛날 일들이 근래에 많이 여러 방면으로부터 밝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마는, 오직 신화 방면에서는 힘을 쓰시는 분들이 적은 것 같습니다. 약간의 支葉[지엽]이 비교 재료로서 例引[예인]으로 끌려 나오기도 하며, 또 목적한 바가 있어 조리가 맞지 않는 牽强附會[견강부회]를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나, 이들을 제외하고는 아직 학리적인 업적의 볼 만한 것이 없는 것은 매우 유감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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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떤 민족도 그 문화의 연원, 역사의 서광은 오로지 신화 속에서 찾을 수가 있을 것이며, 이를 제외하고는 그 원시 사회의 상태 즉 그 민족 생활의 어린 모습을 생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와 꼭 같이 조선의 역사적 발전을 근본에 소급하여 음미하고 硏覈연핵)해서 그 본질ㆍ특색을 밝혀내려고 생각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원시 문화의 如實的[여실적] 寫象[사상]이며, 종합적 표현일 것이 틀림없는 신화의 寶庫[보고]부터 열어 헤쳐야 한다는 것은 贅言(췌언)할 나위도 없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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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신화가 원시 조선 및 그 構成者[구성자]의 사상ㆍ감정ㆍ지식ㆍ행위 등을 담은 것으로서 절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는 바입니다마는, 나아가 동방 문화의 本支[본지] 관계를 尋究[심구]함에 좋은 안내가 되고, 특히 그 지리적 직능에 의한 대륙 문화와 해상 주민과의 관계를 지극히 명료하게 證示[증시]해 주는 점에 있어 우리들의 흥미를 더 한층 돋우어주는 바가 있읍니다. 이리해서 조선의 신화는 조선뿐 아니라 적어도 전동방적인 큰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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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신화는 전혀 학계에서 돌보지 아니한 未墾地[미간지]이기 때문에, 알파에서 오메가에 이르기까지 전부 다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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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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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특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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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교 연구상의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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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화 과학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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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립ㆍ발전 내지 決裂[결렬]ㆍ散滅[산멸]의 동기ㆍ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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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극히 대범한 점도 하나 밝혀진 것이 없는 형편입니다. 이들 문제에는 물론 재미있는 사실들이 포함되어 있고, 약간 조사해 본 바도 있읍니다마는, 이번에 그 중에서 조선과 일본의 신화적 교섭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을 다소 말해 보고 싶습니다. 조선과 일본의 신화를 학리적으로 취급한다는 것은 본래 까다로운 일이며, 또 그 전반에 걸치는 考說[고설]은 매우 번잡하므로, 나는 그 중에서 疎枝大葉的[소지대엽적]인 일치점 二[이],三[삼]을 들어 이론은 빼고 극히 통속적으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무릇 조선의 신화와 일본의 신화는 全般[전반]에 걸쳐 너무나 그 機構[기구]ㆍ내용을 같이 하고 있는 바이므로, 세심한 독자는 쉽게 <三國史記[삼국사기]>나 <三國遺事[삼국유사]>와 같은 조선의 문헌 중에서 일본의 神代史[신대사]를 玩味[완미]하고 <日本書紀[일본서기]>나 <古事記[고사기]> 중에서 원시 조선의 모습을 그려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나아가 조선 신화의 상실 片貌[편모]를 일본에 구하여 보고, 일본 신화의 해석하기 어려운 것을 조선의 신화에서 해명하는 것이 분명히 적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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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현저한 예증으로서 조선과 일본 양국을 통하여 가장 중요한 신화적 특색 건국설화 ─ 개국의 고사가 얼마나 같은 모티프에 속하는 것이며, 또 필연적 이유에 연유하는가를 거론해 보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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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天降傳說[천강전설] ─ 天帝[천제]의 명을 받들어 그 아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의 나라를 開創[개창]하였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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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조선의 壇君[단군] 신화에 있어서는 맨 시초에 천상계를 의미하는 桓[환]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主神[주신]의 많은 아드님 중의 한 분인 桓雄(환웅)님이 弘益人間[홍익인간]을 하기 위하여 늘 인간계에 내려가고 싶어 하는 것을 天帝[천제]가 아시고, 下界[하계]에서 태백산이라는 곳이야말로 아드님의 국토로서 가장 적당하다는 것을 인정하시고, 天[천]의 상징인 三[삼]개의 물건을 갖고 三[삼]천의 徒輩[도배]를 거느려 인간계에 내려가시게 하였읍니다. 그래서 이 명을 받든 桓雄[환웅]은 태백산정에 내려와서 神市[신시]를 건설하고 天王[천왕]으로서 여러 가지 政事[정사]를 행하였으며, 한편 인간으로서 妃[비]를 맞이하여 그에게 아들을 낳게 하니 이 아들이 壇君[단군]이시며, 뒤에 순인간적인 새로운 나라를 세워 人皇[인황]으로서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합니다(이미 여기에 天降傳說[천강전설]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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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시작해서) 夫餘[부여]의 국조인 解慕漱(해모수)는 天帝[천제]의 子[자]로서 熊心山[웅심산]이라는 곳에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 나라를 開創[개창]하고 高句麗[고구려]의 시조 高朱蒙[고주몽]도 같은 전설을 가지고 있으며, 加良[가량] 諸國[제국] 辰韓[진한] 諸國[제국]이 다 같이 그 시조가 하늘로부터 神山[신산]으로 내려와 국토를 경영한 것을 전하고 있읍니다. 이와 같이 대체적으로 말씀하면 조선 고대의 나라들은 시조의 神山天降說[신산천강설]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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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본의 고대 史話[사화]가 역시 天降[천강]설화로써 그 제일의 機構[기구]를 삼고 있음은 누구나 잘 아는 바입니다. 우선 이자나기(イザナギ), 이자나미(イザナミ)의 두 神[신]이 천신들로부터「이 漂浮[표부]하고 있는 나라를 固定[고정]시켜라」라는 大命[대명]을 받들어 天沼矛[천소모](アメノヌマボコ아메노누마보코)를 얻어 오노고로(オノゴロ)島[도]에 天降[천강]하신 것을 비롯해서 須佐之男命[수좌지남명](スサノオノミコト스사노오노미코토) 신이 鳥上山[조상산] 熊成峰[웅성봉]에 天津日番能邇邇藝命[천진일번능이이예명](アマツヒコホノニニギノミコト아 마쓰히코호노니니기노미코토) 신이 高千穗[고천수(타카치호)] 쿠시부루(クシブル) 嶽[악]에, 饒速日命[요속일명]이 哮峰[효봉] 내지는 白庭山[백정산]에 하강하였다는 것은 모두 천명을 받아 神山[신산]에 하강하여 각기 나라를 다스렸다는 전설입니다. 이러한 天降[천강] 전설은 또 이 이외에도 많이 있을 터이지마는, 일본의 신화 문헌이 본시 황실 중심주의에 의하여 예술적으로 편찬된 관계상 많은 것을 잃게 되었다는 것은 학자들의 통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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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조선이나 일본이 그 건국 신화가 꼭 같은 機構[기구]로 되어 있고 또 지리적 조건에 의한 약간의 요소를 제외하고는 미세한 점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이 일치하고 있으며, 그리고 오늘날 알 수 있는 범위내에서는 북으로는 몽고ㆍ만주로부터 반도를 관통하여 남으로는 해상의 諸住民[제주민] ─ 야마토(大和[대화])는 말할 것도 없이 아이누(アイヌ)ㆍ琉球[유구]에 이르기까지 용하게도 同型[동형]의 건국 설화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 ─ 偶合[우합]도 아니요, 暗合[암합]도 아니며, 아무래도 오래 전에 그 원형 설화가 동방 대륙에 존재하여 이것이 종족ㆍ교통 등의 이유로 인하여 여러 방면으로 전파되었다고 보는 것이 아마 편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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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祖先[조선] 天降[천강]의 전설은 지나ㆍ인도 등에도 있고 남양제도 ─ 예를 들면 셀레베스 같은 곳에서도 이것을 인정할 수가 있읍니다마는, 조선과 일본 그리고 조선 일본을 중심으로한 동방 지역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부가 다 딱 들어맞게 부합 일치하는 것은, 단순히 설화학상에서 말하는 이른바 세계사적 경향으로서 간과할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 사이에 분명한 계통적 전통적 관계를 인정치 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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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측에서부터 말씀을 한다면은 국조인 壇君[단군]과 다음 왕조인 箕子[기자]와의 사이에 이미 禪讓(선양)의 형식으로 國命[국명]이 개혁된 양으로 되어 있고, 그 후 북쪽에 있어서는 북부여와 동부여와의 교체라든지, 고구려와 松讓[송양]과의 교체라든지, 남에 있어서는 瓠公(호공)과 脫解[탈해] 내지는 脫解[탈해]와 儒理[유리] 사이에 있어서의 지위의 互讓[호양]이라든지, 저 加良國[가량국]에 있어서는 처음에는 九[구]인의 추장이 있었는데 天[천]이 내려보내었다는 首露王[수로왕] 및 그 형제 五[오]인이 출생하자 이를 神異[신이]한 분이라 해서 각기가 다 주권을 양도해 주었다는 이야기 등이 다 같은 궤도를 밟은 것입니다. 전설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살펴보아도 신라 대 고려, 고려 대 조선의 교체는 다 병사 하나 다치게 함이 없이 讓與[양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읍니다(韓國[한국]의 末運[말운] 같은 것도 의식적이건 혹은 그렇지 않건 표면상으로는 讓[양]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읍니다). 이와 같이 조선에 있어서는 왕조와 왕조의 교체가 전쟁이나 탈취의 수단에 의하지 않고 많이 평화적인 양도ㆍ양수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은 전설이나 역사가 다 일치하고 있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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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 일본에 있어서도 꼭같은 형편이며, 일본 건국의 초창적인 대사건인 天孫[천손] 대 國神[국신]의 관계가 이미 그렇게 되어 있읍니다. 고대 일본에 있어서의 최초의 주권이 出雲族[출운족]인 國津神[국진신]의 수중에 있었다는 것은 諸種[제종]의 기록이나 實蹟[실적]에 비추어 명백한 바입니다마는, 天照大神[천조대신]이 그 황손을 하늘에서 내려 보내어 豐葦原[풍위원]의 瑞穗國[서수국]을 통치케 하기 위해서는 出雲[출운]에 있는 道早荒振振國神[도조황진진국신]을 自己[자기] 편으로 만들어야 할 사정에 있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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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서 상당히 오랫동안 많은 고심을 거듭하게 되었음은 <古事記[고사기]>에 전하는 天比神[천비신](アメノホヒノカミ아메노호히노카미), 天若日子[천약일자](アメワカヒコ아메와카히코), 建御雷之男神[건어뢰지남신](タケミカヅチノオノカミ타케미카즈치노오노카미) 및 天鳥船神[천조선신](アメノトリフネノカミ아메노토리호네노카미)과 言代主神[언대주신] 및 建御名方神[건어명방신] 등을 에워싼 여러 설화 표현에 있는 대로입니다마는, 그것도 國津神[국진신]이 天神[천신]의 유시를 적극적으로 반대한 것은 아니고, 신천의 使者[사자]들이 國津神[국진신]에 媚態[미태]를 부리고 思慕[사모]를 해서 감히 복명을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며, 맨 마지막 최후의 使者[사자]인 建御雷神[건어뢰신]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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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照大神[천조대신]과 高木神[고목신]과의 명령이신데 그대의 영역인 葦原中國[위원중국(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는 우리 天照大神[천조대신]의 자손들이 지배하셔야 할 나라라고 말씀하셨다. 어떠냐 승낙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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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직접 담판을 하게 되자, 大國主神[대국주신(오오쿠니누시카미)] 부자는 서로 의논한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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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매우 황공한 일입니다. 이 나라는 곧 天津神[천진신]의 아드님에게 헌납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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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하고, 각기 그럴 만한 곳에 숨어버린 것으로 되어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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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事記[고사기]>에 大國主神[대국주신]의 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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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葦原中國[위원중국]은 말씀에 따라서 전부 헌상해 올리겠읍니다. 그러나 나의 사는 곳만은 天神子孫[천신자손]이 皇祖神[황조신]을 제사모시는 바 성대한 膳殿[선전]과 같이 宏壯[굉장] 견고한 家宅[가택]을 대반석 위에 세워서 나를 제사모셔 주면 나는 즐거이 먼 幽界[유계]에 숨어서 은거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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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한 바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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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라의 양도는 이때 天神[천신] 대 國神[국신] 사이에서 처음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 때 양도를 한 出雲[출운]의 국토는 본래 大國主神[대국주신]도 다른 이로부터 양도를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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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事記[고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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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大國主神[대국주신]의 형제분 八[팔]○神[신]이 계시었다. 그러나 다 인퇴하여 나라는 大國主神[대국주신]에게 바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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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大國主神[대국주신]의 형제는 八[팔]○신이라 할 정도로 많이 있었는데 大國主神[대국주신]은 仁慈心[인자심]이 깊고 인내심이 많아 여러 형제들이 인퇴하여 그에게 국토를 양도하게 되었읍니다. <古事記[고사기]>의 이 段[단]에는 유명한 토끼(兎[토])가 鰐魚[악어]를 기만한 이야기라든지, 手間山[수간산]의 赤猪[적저]의 전설, 須勢理姬[수세리희]와의 결혼 과정에 있어 여러 가지 시련을 겪는 이야기와 같은 많은 遊離[유리] 설화가 부착되어, 이것을 종합적으로 결론짓는 의미에서 소위「追伏[추복](オイフセ오이후세)」,「追撥[추발](オイハライ오이하라이)」라는 약간 살벌한 일이 형제들 사이에서 일어나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들 독립성을 가진 민간 설화가 어떤 인연으로 大國主神[대국주신]에 결부되는 동시에, 이야기의 결말을 맺는 형편상 이런 變轉[변전]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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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大國主神[대국주신]의 나라 양도가 끝나고, 드디어 天照大神[천조대신]과 高木神[고목신]은 太子[태자] 正勝吾勝勝速曰天忍穗耳命[정승오승승속왈천인수이명]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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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葦原中國[위원중국]도 평정되었다는 이야기이니 처음에 말해 둔 바와 같이 그 나라에 내려가서 잘 통치를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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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분부를 내리니 天忍穗耳命[천인수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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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막 출발을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차에 마침 天邇岐志國邇岐志天津日高日子番能邇邇藝命[천이기지국이기지천진일고일자번능이이예명] (아메니기시 쿠니니기시아마쓰히타카히코호노니니기노미코토)라는 자식이 출생하였으니 이 자식이 적당하다고 생각하옵는바 그를 내려 보내었으면 좋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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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였더니, 天照大神[천조대신]도 이 제의에 따라 다시「日子番能邇邇藝命[일자번능이이예명](히코호노니니기노미코토)를 豐葦原水穗國[풍위원수수국]에 하늘로부터 내려보내기로 하였읍니다. 즉 이 사이에 또 한 번 나라를 양도하는 일이 있었던 셈입니다. 설화상의 통례에 의하여 형제 혹은 부자라는 것이 한 시대 혹은 한 왕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것 같으면 이 미코(子[자])와 미마고(孫[손])사이에 있어서의 位[위]의 양도도 그대로 일종의 나라의 양도라고 보아 상관이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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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씀한 바와 같이 일본의 신화는 황실 중심으로 편찬되어 있으며, 이 主義[주의]에 위배되는 부분은 모두 제거된 모양이므로, 현존 기록상으로는 나라와 나라와의 승계 관계는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大國主命神[대국주명신]을 중심으로 한 유일의 주권 변동은 완전히 상호 양보라는 형식으로 전후가 일관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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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국권의 양보도 견해의 여하에 따라서는 특히 조선이나 일본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중국의 上代[상대]에서 잘 보이는 禪讓[선양] ─ 예를 들면 堯[요]가 舜[순]에게, 舜[순]이 禹[우]에게 帝位[제위]를 양도한 것도 그 전설적 의미는 壇君[단군]의 나라 讓渡[양도], 大國主神[대국주신]의 나라 양도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과 일본의 전설에 있어서의 나라 양도라는 일이 심상치 아니한 연락을 갖고 있음은 그 설화 구성의 특수한 요소가 首尾一貫[수미일관]해서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정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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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이들 설화에 있어서는 기이한 由緖[유서]를 가진 후래자에게 선주자는 그 국토와 권력을 모두 바치는 것이 거의 예정된 일과 같이 진행되고 있는데 , 이 경우 후래자가 과연 神明[신명]의 후예인지 어떤지 ─ 다시 말해서 나라의 양도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를 시험해 보는 일이 전형적인 나라 양도의 전설에서는 으례 붙어 다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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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고구려의 시조 仲牟(중모)가 淹㴲水(엄사수)를 건너 卒本[졸본]의 땅에 나라를 세웠을 때, 거기에는 松讓[송양]이라는 前住[전주]의 국왕이 있었읍니다마는, 松讓[송양]이 국토를 넘기기에 앞서 朱蒙[주몽]이 과연 天帝[천제]의 孫[손]인지 그 증거를 구하는 한줄기의 이야기가 있읍니다. 朱蒙[주몽]이 오자마자 나는 天帝[천제]의 孫[손]이다, 물러가라 하였더니, 松讓[송양] 국왕이 말하기를, 네가 天帝[천제]의 孫[손]이라면 반드시 異術[이술]을 지니고 있을 터이니, 자 서로 시합을 해 보자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松讓王[송양왕]은 백보 안에 있는 사슴(鹿[록])의 그림에 활을 쏘아 맞히지 못하였는데, 朱蒙王[주몽왕]은 백보 밖에 玉指環[옥지환]을 걸어 놓고 이것을 쏘아 맞췄읍니다. 朱蒙王[주몽왕]의 신하가 나라의 위엄을 보이기 위하여 松讓王[송양왕]으로부터 북(鼓[고])을 빼앗아 왔는데, 松讓[송양]의 사람들이 와서 항의를 해서 말하기를 우리 복을 내어놓아라 하니 (朱蒙王[주몽왕]측에서는)「아니 그런 무법한 말은 말아라, 그 북은 옛날부터 우리들 전래의 북이야, 그 증거로서 시커멓게 그으른 빛깔을 보라」하고 말하면서 씻어 보였더니, 과연 북의 색깔이 낡고 오랜 것으로 보였는지라, 松讓部[송양부] 사람들은 그 이상 시비를 걸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읍니다. 또 朱蒙[주몽]이 사냥을 하러 나가 흰 사슴을 잡아 이것을 좀 높은 어덕 위에 걸어 놓고 呪言[주언]을 하여 말하되 「하늘이 큰 비를 내려 松讓[송양]의 도읍을 물속에 빠지게 하지 않으면 너는 방면해 주지 않겠다」고 말하니, 사슴의 슬픈 울음 소리를 듣고 하늘이 비을 내리어 七[칠]일간 계속 비가 와서 松讓[송양]의 도읍이 물 위에 뜨게 되자 松讓王[송양왕]이 놀라서 항복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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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前段[전단]에서 북부여의 신래자 解慕漱(해모수)가 天帝子[천제자]라는 것을 자랑하자, 상대편인 河伯[하백]이 그렇다면 그 증거로서 神變[신변]을 시험해 보자고 서로 약속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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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伯[하백]이 잉어가 되어 물 속에서 헤엄을 치면 解慕漱[해모수]는 水獺[수달]이 되어 잡으려 하고, 꿩이 되면 매가 되고, 사슴이 되면 이리가 된다는 식으로 항상 解慕漱[해모수]가 河伯[하백]을 누르고 나오기 때문에 河伯[하백]이 궁지에 빠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먼젓것과 같은 趣向[취향]의 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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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앞에 말한 이야기를 거꾸로 뒤집어 이런 전설도 있읍니다. 신라 四[사]대째의 국왕인 脫解[탈해]가 서쪽에서 신라에 오는 도중에 加良國[가량국]에 그대로 주저앉기 위하여 그 국왕에게 자리를 양도할 것을 강요하였읍니다. 그런데 이 곳에는 막 하늘에서 내려온 지 얼마 아니되는 首露[수로]라는 천제의 아들이 있어 쉽게 승낙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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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首露[수로]는 말하기를)그것은 안될 말이오, 나는 天[천]의 명을 받들어 중국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나라를 세웠으니, 이 나라와 이 나라의 백성을 그대에게 양도할 수는 없노라고 거절을 하니, 脫解[탈해]가 말하기를 기술의 시합을 해 보자, 자 덤벼라하고 다투었는데, 脫解[탈해]가 매(鷹[응])가 되면 首露[수로]는 독수리(鷲[취])가 되고, 脫解[탈해]가 참새(雀[작])가 되면 首露[수로]는 새매(鸇전])가 되어 서로 신통력을 겨누었읍니다. 이리해서 脫解[탈해]는 도저히 적대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물러나서 신라로 향하여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天帝[천제]의 자손은 神術[신술]이 있기 때문에 이에 의하여 他[타]의 양여는 받지만 他[타]에게 양보는 하지 않아도 좋다는 같은 모티프의 表裏[표리]를 이루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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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大國主神[대국주신]의 경우에 비겨 보건대, 建御雷神[건어뢰신]이 大國主神[대국주신]의 아들 言代主神[언대주신]을 납득시켜 또 다른 아들인 建御名方神[건어명방신]을 설득하기 위하여 행차를 하려는데, 마침 建御名方神[건어명방신]이 천명의 힘을 빌지 않고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큰 바위를 두 손으로 번쩍 들고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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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내 나라에 와서 수군수군 이야기를 하는 놈은? 희망이라면 힘의 경기를 해 보자. 자 내가 먼저 너의 손을 잡아 힘을 시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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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하면서 建御雷神[건어뢰신]의 손을 꾹 잡으니, 그 손은 순식간에 얼음 기둥처럼 화하였다. 그러자 곧 이번에는 劒刄[검인]으로 변하였다. 建御名神[건어명신]도 어지간한 이었지마는, 당할 도리가 없어 숨어버리고 말았다. 建御雷神[건어뢰신]이 (建御名神[건어명신]에게) 이번에는 네가 손을 내밀어라 하고 손을 잡자마자 마치 새싹이 돋은 연한 蘆草[노초]라도 잡는 듯이 잡아 뭉개어 내던지고 말았다. 이에 놀라서 달아나는 建御名神[건어명신]을 建御雷神[건어뢰신]이 추격해서 마침내 그를 굴복시킨다는 이야기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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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힘의 경기로써 事理[사리]의 시비를 결판하는 것은 원시 사회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며, 또 이러한 모티프는 각국의 설화에 흔하게 있는 것이지마는 이와 같이 , 나라 양도에 관한 이야기 뒤에 이것이 삽입되고, 또 조선과 일본을 통하여 그 趣向[취향]이 符節[부절]을 합한 듯이 같다는 것은 이것은 우연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기이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신기한 일치는 역시 우리들로 하여금 훨씬 오랜 시대에 이러한 건국 설화의 모체가 동방 일대에 있어 가지고 각 국민 사이에 전파되고 또 襲用[습용]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생각케 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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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화 圈內[권내]에 있어서의 건국 신화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동방 欣求[흔구] ─ 즉 동에 대한 憧憬[동경]이며, 조선ㆍ일본이 다 같이 이 요소에 있어 완전한 일치를 보이고 있읍니다. 그리고 이 동쪽으로 향하는 행진은 일단 하늘로부터 神山[신산]에 내려온 이후 인간으로서 국토를 구하고 또 확대하는 때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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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미리 말해 두어야 할 것은, 이 설화 권내의 어느 부분 ─ 예를 들면 白山黑水[백산흑수]로 불리어지는 지역에 있어서는 지리적 이유에 의한 민족 이동의 자연 방향과의 관련에 있어 동과 남이 그 방향상의 가치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 설화 권내의 주민을 그 옛날에 멀고 먼 서방 ─ 아마 아시아의 서단에서 출발해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동해 왔는데, 마침내 동쪽 끝에 도착해 보니 거기에는 지금까지 경험해 본 일이 없는 바다 큰 푸른 滄海[창해]가 있어 앞길을 가로막았읍니다. 여기에 있어 그 중에서 용감한 자는 이른바 破天荒的[파천황적]인 일대 결의를 해서 河水[하수]를 건너는 통나무 배를 확대해서 河湖[하호]나 마찬가지로 바다를 정복하려고 하였읍니다마는, 안전 제일의 信者[신자]라고 할 사람들은 동쪽에 버려야 할 바다가 있는 반면에 남쪽에는 새로 얻을 수 있는 육지내지는 반도가 있음을 알게 되어, 심기일전해서 뒤로 돌아섰을 듯하여 동방으로 가던 자들이 宗旨[종지]를 바꾸어 남쪽으로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읍니다. 이리하여 이 설화권, 혹은 민족 이동선에 있어서는 남은 즉 동의 연장으로서의 존재이며, 실질상으로 동 이퀄 남으로 되어버렸읍니다. 이것이 설화상에 있어서는 東進[동진]과 南進[남진]이 같은 의미로 나타난다는 것을 주의해 드리는 바입니다.
 
52
조선의 건국 설화 중에서 제대로 동방 欣求[흔구]의 정신을 표현한 예부터 말씀을 해 드린다며는, 우선 <三國史記[삼국사기]>의 高句麗[고구려] 本紀[본기]에 보이는 부여의 국토 遷移[천이]가 바로 그것입니다. 즉 부여의 老王[노왕] 解夫婁[해부루]가 신기한 인연으로 金蛙(금와)라는 하늘이 주신 아들을 얻어 그 후계로 삼았는데, 어느때 그 國相[국상]인 阿蘭弗[아란불]이 왕에 말하여 가로되, 근자에 천신으로부터「그네들이 사는 땅은 나의 자손들로 하여금 나라를 세우게 되어 있으니, 그네들은 모름지기 물러가라」는 고시가 있었읍니다. 그런데 동해의 해변에는 아름다운 토지가 있어 迦葉原[가섭원]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토양도 비옥하고 농작에도 적당하니, 이곳에 도읍을 옮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왕에 권하여 마침내 遷都[천도]를 결행하고 국호를 東扶餘[동부여]라고 했읍니다. (그리고)舊都[구도]에는 天帝子[천제자]라고 稱[칭]하는 解慕漱[해모수]가 와서 나라를 세우고, 解夫婁[해부루]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金蛙[금와]가 그 뒤를 이어 位[위]에 올라, 그 후 여러 가지의 역사적 발전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전설은 다분히 <三國史記[삼국사기]>의 편집자의 史料[사료] 취급상의 손질에 의한 것 같은 여러 설화적 錯綜[착종]이 있는 것 같은데, 지금 여기와서는 단지 부여의 나라가 天命[천명]에 인하여 동방의 迦葉原[가섭원](三國史記[삼국사기]의 文字[문자]는 佛弟子[불제자]인 迦葉[가섭]의 字[자]를 감히 쓰고 있다) 아마 원어는「가시의 原[원]」이라고 되어 있을 것이 분명한 곳에 국토를 정했음을 알아 두면 좋습니다. 그리고 그 도읍을 옮긴 곳이 동방의「가시하라」였다는 것을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53
그리고 또 하나 天帝子[천제자]인 解慕漱[해모수]의 아들 朱蒙[주몽]은 그 모국 부여에서 용납되지 아니하여 가만히 出奔[출분]하여 남쪽으로 향하여 淹㴲水[엄사수]를 건너서 卒本[졸본]의 谷[곡]에 새로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 <三國史記[삼국사기]> 이하의 많은 기록의 文面[문면]입니다마는, 이 朱蒙[주몽]의 新國[신국]에의 進取線[진취선]은 어떤 방향이었을까요. <三國史記[삼국사기]> 등에는 이 방향의 표시가 없고, <梁書[양서]>에는 남방이라 했고, 支那[지나] 문헌중에서 고구려의 고사를 전한 가장 상세한 <後漢書[후한서]>에는 동남이라 했고, 이에 관해서 조선측의 가장 오랜, 가장 상세한 기록인 李奎報[이규보]의 <東明王篇[동명왕편]>에는 韻文[운문] 중에서는 남으로 향하였다고 하고 산문 脚註[각주]에서는 서쪽에서 왔다고 한 바와 같이, 남ㆍ동남ㆍ동으로 되어 諸書[제서]의 指示[지시]가 일정하지는 아니하나, 대체의 의미를 음미해 보면 역시 동방에의 방향을 표시하고 있음을 간취할 수가 있읍니다. 그리고 그나라의 기반이 되었다는 淹㴲水[엄사수]에는 盖斯[개사]라는 한 이름이 있었다는 것을 <東明王篇[동명왕편]><三國史記[삼국사기]>등이 다 전하고 있으니, 그 유역에는「가이시原[원]」이라는 이름이 있었으리라는 것쯤은 능히 想定[상정]할 수 있는 바입니다. 요컨대 仲牟[중모]의 고구려 건국도 史記[사기]는 어떻든 전설상으로는 역시 동쪽 즉「가시하라」에 진출하였으리라고 인정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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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고구려에서 남하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 漢江[한강] 유역에서의 건국은 沸流[비류] ─ 지금의 仁川[인천]에서 慰禮[위례] ─ 지금은 廣州[광주]로, 동방으로 향해서 이동을 했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저 신라의 전설에 있어서도 교체 주권의 향유자인 三姓[삼성]의 귀족 중에서 朴[박]씨는 어떤지 알 수 없으나 昔[석]씨, 金[김]씨는 다 서에서 동으로 遷移[천이]하여 온 전설을 갖고 있읍니다. 또 加良[가량]의 건국 전설에서도 그 최초의 왕후는 서쪽에서 오신 것으로 되어 있음에 역시 동방 欣求[흔구]의 면모가 느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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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조선에 있어서의 건국 신화는 거의 모두가 양으로 음으로 직접 간접으로 동방을 동경하고 동방을 향한다는 특이한 공통 機構[기구]를 보이고 있읍니다. 물론 여기에는 민족 생활상의 경험, 역사적 사실의 반영도 있지마는, 그러나 그 근본의 모티프는 실은 민족 심리의 신화적 표현 ─ 이른바 신화적 감각의 역사에의 투영일 뿐입니다. 무릇 민족의 이동 방향과 이에 의한 역사적 발전의 추세가 대체로 동남을 향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역사의 사실 그 자체는 그렇게 규칙적 획일적인 것일 리가 없으니, 이것이나 저것이 다 같은 궤도 위를 달리는 것처럼 모두 다 동쪽으로 국토를 구하였다기보다는 오히려 많이 설화 心理[심리]로부터의 誘導[유도]이라고 보는 것이 정당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본의 신화에 있어서는 이 동방 欣求[흔구]의 공통 태도가 어떠한 형태로 어느 정도 선명하게 그것을 寫象[사상]하고 있겠읍니까. 우선 먼저 天孫[천손] 강림의 땅을 일본에서의 서남단인 高千穗[고천수]의 山峰[산봉]에 擬[의]한 것이 이에 대한 하나의 암시로 보여진다고 생각됩니다. 도대체 일본 역사의 요람지가 어디냐하면 전설로 보거나 實蹟[실적]으로 보거나, 그것이 筑紫[축자]에서 出雲[출운] ─ 즉 九州[구주]의 북부로부터 山陰[산음]의 연안에 걸친 지역이며, 더군다나 慶州[경주]ㆍ蔚山[울산]과 대안을 이루고 있는 지금의 鳥取[조취]ㆍ島根[도근] 兩縣[양현]의 接境[접경] 지대가 그 중심이었다는 것이 쉽게 추찰되는 바입니다. 소위 天神[천신] 대 國神[국신], 高天原[고천원] 대 葦原中國[위원중국], 顯國[현국](ウスシクニ) 대 黃泉國[황천국](ヌモツクニ) 등으로 표현된 대립 세력이 신화상에서 맹렬히 반발하여, 사실에 있어서도 일본 건국의 전제가 되는 二大[이대] 세력의 접촉점으로서 일본 역사의 苗床[묘상]으로 된 것이 이 出雲[출운] 지방이올시다.
 
56
天孫[천손]과 大國主[대국주]와의 사이에 있어서의 나라 양도 또 소급해 올라가서는 素戔鳴尊[소잔명존]의 出雲經營[출운경영]이라는 일본 古史[고사] 신화의 중추부는 다 이 역사적 사실인 일들의 신화적 표현으로 생각되는 바입니다.
 
57
이와 같이 일본의 역사가 실제에 있어서 出雲[출운] 지방을 출발로 하고 있고, 전설상으로도 분명히 寫象[사상]되어 있으며, 더 절실히는 天孫[천손] 강림의 준비 과정이 역시 出雲[출운]을 무대로 하여 연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天孫[천손] 강림이 실현되는 계제에 이르러서는, 무대가 급히 회전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筑紫[축자]의 日向[일향]의 땅이 天孫[천손]의 발을 처음으로 맞이한 것으로 되어 있읍니다.
 
58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이것은 심히 기괴한 일이며,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하여 고래로 많은 학자들이 어지간히 여러 가지의 학설을 제출하고 있읍니다. 예를 들면 天孫[천손] 니니기노命[명]이 서쪽 邊陲변수]인 襲[습]의 나라에 하늘로부터 내린 것은 韓國[한국]에 대한 邊境[변경] 要害[요해]의 땅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든지(大八洲記[대팔주기]), 伊弉諾[이장낙]이 祓除[발제]의 자취를 뒤쫓아 黃泉國[황천국]에서 돌아와서 그 더러움을 씻기 위하여 筑紫[축자] 日向[일향]의 橘小門[귤소문] 阿波岐原[아파기원]에 臨御[임어]하여 禊祓계발](潔齋[결재])을 한 고사를 三女神[삼여신]이 降居[강거]한 것같이 연결짓는 등(書紀通證[서기통증]), 과히 신통치 못한 군색한 推量[추량]이 행하여졌읍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바에 의하면, 出雲[출운]에 있어서의 國神[국신]과의 갈등은 그렇다 치고서라도, 天孫[천손] 강림의 지점을 서쪽 끝으로 가져간 것은 분명히 신화 구성상의 깊은 사연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찰되는 점이 있읍니다. 쉽게 이야기를 해서 그것은 동방 설화권에 있어서의 동방에의 憧憬[동경]의 약속에 위배되지 않기 위한 설화 기교에 의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59
이것은 여러 가지의 예증을 들어서 동방은 왜 동경의 표적이 되었는가, 건국 신화에는 왜 그 관념을 삽입치 않으면 아니되었는가 하는 따위의 의문을 풀지 않으면 그 의의가 밝혀지지 아니할 것이며, 이 점은 뒤에 언급할 생각입니다마는, 우선 여기서 주의해 두고 싶은 것은
 
60
<古事記[고사기>의 天孫[천손] 강림을 전하는 文[문] 중에,
 
61
「故[고]로 天忍日命[천인일명], 天津久米命[천진구미명]은 살 곳을 구하여 竺沙[축사]의 岬[갑]에 오시어
62
「여기는 멀리 『 韓國[한국]을 바라볼 수 있고 아침해 저녁해가 잘 비치어 밝고 살기 좋은 곳』이라 하여 견고한 반석 위에 광대한 궁전을 짓고 그 속에 드시었다.」
 
63
라고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韓國[한국]을 바라다보는 지점에서 어디가 국도로서 적당한 것일까 하고 찾아다니다가 笠沙[입사]의 岬[갑]에 이르러
 
64
「여기는 아침해 저녁해가 잘 비치는 맑고 좋은 곳이라.」
 
65
하여 宮居[궁거]를 造營[조영]하였다는 의미입니다.
 
66
그런데 이 중의 天孫[천손] 최초의 국도로서 선정된 땅이 카사사라고 불리어진 곳이라는 것과, 그 땅이 아침 햇빛이 잘 비치는 해변가였었다는 것이, 앞서 말한 동부여의 건국 설화에 명칭ㆍ사실이 다 신기한 부합을 보이는 것은 누구나 다 마땅히 주의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 전체의 명칭이 히무가(日向[일향]) ― 해를 향한다, 해가 향한다는 의미라는 것도 우연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67
그러나 이것만으로서는 아직 부여의 국도 이전, 일본의 천손 강림의 兩[양] 신화 사이에 말하는 바와 같은 연락을 인정함에 주저하는 사람이 없지도 않을 것이므로, 나는 여기서 더 한층 유력한 자료에 대해서 일단 음미를 시도해 볼까 합니다. 그리고 일본에 있어서의 유일한 역사적 건국 사실이라는
 
68
「神倭伊波禮毘古命[신왜이파례비고명]カムヤマトイワレビコノミコト」즉 神武天皇[신무천황]의 事蹟[사적] 위에 무엇보다도 선명하고 잘된 兩[양] 신화의 일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69
관례에 따라서 <古事記[고사기]>의 글을 읽어 보기로 하겠읍니다.
 
70
「神倭伊波禮毘古命[신왜이파례비고명], 그 同母兄[동모형] 五瀨命[오뢰명]과 두 분이 高千穗宮[고천수궁]에 거둥하시어 의논하시기를, 어디로 가면 천하의 政事[정사]를 잘 들을 수 있겠느냐, 더욱 더 동쪽으로 가자고 하여, 즉 日向[일향]을 출발해서 筑紫[축자]로 나아가셨다.」
 
71
라고 하고 있읍니다. 이와 같이 史[사]에서 말하는 東征[동정]이 시작되어 많은 파란곡절을 겪은 끝에 大倭[대왜]를 평정하고 마침내 즉위하여 입국의 대업을 성취한 곳이 橿原[강원]입니다.
 
72
<古事記[고사기]>에,
 
73
「그 분이 이와 같이 거친 神[신]들을 자기 편으로 만드시옵고 항복치 아니하는 자들을 掃平[소평]하여 畝火[무화]의 白檮原[백도원]카시하라 宮[궁]에 드시어 천하를 다스리셨다.」
 
74
라고 하였고, <日本書紀[일본서기]>에는,
 
75
「武午之歲[무오지세]에 皇師[황사]가 難波[난파]에 들이와서 二[이]년이 되어 戰火[전화]가 바야흐로 멈추어지고 己未之歲[기미지세]에 영을 내리시어 橿原[강원]에 帝宅[제택]을 經營[경영]키 시작하셨다. 西洲[서주]를 發舟[발주]하여 이에 이르기까지 무릇 六[육]년, 辛酉之歲[신유지세] 春正月庚辰朔旦[춘정월경진삭단]에 橿原宮[강원궁]에서 즉위의 儀[의]를 올리시었다.」
 
76
라고 하였읍니다. 말하자면 맨 처음에 지목한 곳 혹은 究極[구극]의 奠都地[전도지]가 橿原[강원]라는 곳이었다는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 사실인지 혹은 一[일] 전설인지는 여기서 문제삼을 필요가 없는 것이며, 여기에서는 단지 동쪽으로 橿原[강원]의 땅을 향하여 그 곳에 새로운 국토를 구하였다는 것만 인정하면 좋은 것입니다.
 
77
이른바 국토 평정의 의논이 있었던 당초에,
 
78
「天照大御神[천조대어신]의 명을 받들어 豐葦原之千秋長五百秋之水穗國[풍위원지천추장오백추지수수국]은 나의 아들 正勝吾勝勝速日天忍穗耳命[정승오승승속일천인수이명]이 다스려야 하는 나라라고 위임을 해서 하늘로부터 내려보내었다.」
 
79
라고 한 데서 시작하여, 드디어 천손 강림 때에는,
 
80
「이 豐葦原水穗國[풍위원수수국]은 그대가 통치할 나라라 하여 위임하였다.」
 
81
라고 되어 있으며, 드디어 笠佐[입좌]의 岬[갑]에 최초의 국토를 구하고는
 
82
「이 곳은 아침 햇빛이 잘 비치는 나라, 저녁 햇빛이 잘 쬐는 나라이다. 그는 이 곳이야말로 정말 좋은 곳이라고 말씀하시고 云云[운운].」
 
83
이라고 하였읍니다. 이것을 前段[전단]으로 해서 다시 거의 같은 동일 사건을 前書[전서]는 說話色[설화색]을 잔뜩 넣어 설명하고, 이번에는 역사의 색채를 농후히 띠게 하여,
 
84
「어디로 가면 政事[정사]를 잘 들을 수 있을까. 東[동]쪽으로 감이 아마 편리할 것이다.」
 
85
라고 하여 도처에서 앞서 살던 사람들을 내쫓고 마침내 카시하라(橿原[강원]) 땅에서 國基[국기]를 굳게 하였다고 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전설의 機構[기구]를 쭉 살펴보고 또 그 구성 요소를 檢覈검핵]해 보건대, 이것과 앞서 말한 부여의 전설에,
 
86
「……其相阿蘭弗曰[기상아란불왈] 日者[일자] 天降我曰將史吾子孫立國於此[천강아왈장사오자손입국어차] 汝其避之[여기피지] 東海之濱有地[동해지빈유지] 號曰[호왈] 迦葉原[가섭원] 土壤膏腴토양고유] 宜五穀可都也[의오곡가도야] 阿蘭弗遂勸王[아란불수권왕] 移都於彼[이도어피] 國號東夫餘[국호동부여]……」
 
87
이라 한 것과는 一詳[일상] 一略[일략]의 차이는 있지마는, 얼마나 그 대강이 잘 일치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부여의 迦葉原[가섭원]을 비롯해서 고구려의 盖斯[개사], 濊(예)의 河西良[하서량] 등과 니니기노 尊[존]의 가사사(笠佐[입좌]), 神武天皇[신무천황]의 카시하라(橿原[강원]), 이것은 모두 선주지보다 동쪽에 있다는 점에서 명실공히 일치하고 있읍니다.
 
88
또 일본의 신화에는 神代[신대]에 있어서의 유력한 一[일]건국자인 大國主神[대국주신]에 관해서도 동방 欣求[흔구]의 흔적이 이야기되어 있읍니다. 즉 大國主神[대국주신]은 나라를 만든「大己貴[대기귀]」혹은 천하를 만든 大神[대신]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마는, 이 분이 出雲[출운]의 국토를 만들려 할 때, 뒤의 三諸山[삼제산] 즉 三輪山[삼륜산]의 신이 나타나서 천하를 잘 다스리려 하거든 나를 倭國[왜국]의 靑垣東[청원동]의 산 위에 잘 모셔라고 말하였다는 것이 그 片鱗[편린]이올시다. 그리고 이 신화에는 쿠시クシ라는 말이 변형되어 나타나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암시를 던지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이 이상 언급지 않기로 하겠읍니다. 또 일본어에서 동방을 하가시라 하고 천손 강림의 땅을 히무카라고 하는 어원에 있어서도, 나의 견해로서는 일본 민족의 동방에의 심리와 천손 강림을 日向[일향]이라고 하는 이유가 보이는 것으로 생각되지마는 이 점도 생략하기로 하겠읍니다.
 
89
도대체 무엇 때문에 동방 제민족의 건국 신화에는 이와 같이 동방이라는, 「카시하라」라는 것이 붙어 다니는 것일까. 이것은 신화의 구성을 음미하고 또 신화군의 문화적 類緣狀態[유연상태]를 생각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단 이것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신화와 자매 관계에 있는 이 문화 권내의 원시 신앙을 피력하지 않으면 아니되는데, 지금 그럴 겨를이 없으므로 극히 간단히 그 골자만 말씀드리기로 한다면, 태양 숭배를 基調[기조]로 하던 원시 신앙이 신화적 상상을 갖고 건국 신화 중에 투영된 것입니다.
 
90
태양은 우리들에게 광명과 溫熱[온열]과 그리고 생장과 愉悅(유열)을 공급하는 생명의 원천으로서, 또 아침 동쪽에서 떠서 저녁에 서쪽에 질 때까지 우주를 섭리하는 천주로서, 원시인의 신앙에서 무엇보다도 더 큰 숭배의 대상이 되었으며 , 소위 태양숭배교는 여러 곳의 고대 민족 사이에서 인정되는 바입니다. 그런데 특히 이 설화 권내에 있어서는 극히 열렬히 잘 세련된 신앙체로 그 민족 심리의 전영역을 점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해를 숭배하고 해를 사모하는 감정이 행동으로서 나타나면 그것은 해의 나라, 분명히 행복과 풍요의 원천인 天主[천주] 太陽[태양]의 나라의 欣求[흔구]로 되고, 이것이 다시 一轉[일전]하면 해의 자리로서의 동방 동경, 동방 숭배, 동방 欣求[흔구] 즉 동방을 흠모하는 精進行[정진행]으로 되는 것입니다.
 
91
이뿐 아니라, 이 문화권 중의 주민은 그 민족 이동의 실제 경로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역시 동방 欣求[흔구]의 심리와 병행해서 서에서 동으로 북에서 남으로 태양의 나라를 향해서 진행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념과 실제가 하나로 되어 극히 강고한 신화 의식을 형성하고, 그것이 원시 예술을 통하여 오늘 동방 제국민 사이에 보이는 바와 같은 평등 보편한 동방 건국의 전설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92
그러면 동방인 동경의 국토를 통틀어「카시」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 이에 관해서는 어지간히 많은 고증이 거듭되어 있으나, 역시 그 결론만을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카시라는 것은 요컨대「神事[신사]」라는 것이며, 옛 말로써 표현하자면 政敎[정교]를 통틀어 말하는「祭事[제사]」라는 것, 새로운 학술어로써 표현하자면 마술, 주술 즉 매직이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카시하라라는 것은 政事[정사]를 보는 곳, 마술적 군주가 다스리는 곳이라는 의미인 것이며, 이른바 매지고 릴리져스의 사회에 있어서의 政敎[정교]의 본원지 즉 국도 내지는 神都[신도]라는 정도의 것입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매지고 릴리져스의 시대에 있어 같은 문화 계통 혹은 언어 계통을 갖는 범위 내에 있어서는 그 주권의 소재지를 한결같이 다 카시하라라고 한 것은 하등 기괴한 일도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은 설화적인 표현인 동시에 일면에 있어서는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것을 쉽게 추찰할 수 있는 바입니다.
 
93
이것으로써 대략 동방에의 동경과 동쪽에 있다는 그 국도를 카시하라라고 하는 이유는 대개 해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러한 사실의 배경을 갖는 신화상의 符合一致[부합일치]가 단순한 偶合[우합] 혹은 暗合[암합]이라고 해 두어버릴 것인지 어떤지를 다시 한 번 더 음미하여 보건대, 적어도 조선과 일본과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한 동방 일대 제국민 사이에 있어서의 신화적 일치는 필연적인 것이며, 혹은 同源[동원] 관계에 의한 것임을 인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94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일(天降[천강]), 나라를 양도하는 일(國讓[국양])은 비록 동일 단계에 있는 원시 심리의 발로에 의한 우연한 일치라고 본다 하더라도, 이 최후의「동쪽 카시하라」라는 설화와 사실과의 양면을 겸한 극히 뿌리 깊은 일치까지를 偶合[우합] 暗合[암합]으로 취급하는 것은 어려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좀 더 분발해서 이 설화권ㆍ문화권에 있어서의 신화 전설 全視野[전시야]에 서서 더 綿密[면밀]한 탐구 광범한 부합을 말씀드리면, 내가 말하고자하는 의미는 한층 더 명백히 될 것이오나, 이것은 오늘의 命題[명제]중에 충분히 이야기하지 못한 점과 더불어 뒷날에 미루기로 하겠읍니다.
 
95
이야기의 순서로부터 말한다면 도대체 조선의 신화와 일본의 신화 사이에 있는 이러한 친밀한 類似[유사]는 어떻게 설명하여야 할 것인가를 여기에서 첨언해 두지 않으면 안될 일이지마는, 이것도 문제의 성질상 매우 광범하고 또 세밀한 이론과 실례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하겠읍니다. 단 一言[일언] 이것은 조선과 일본 내지는 동범위 내의 제민족들이 그 문화의 원천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씀해 드리는 바입니다. 이와 같이 신화 전설이 일치하거나 풍속 습관이 일치하거나 유물 유적 ─ 즉 고고학적인 많은 일치를 본다거나 하더라도, 이러한 것들은 요컨대 문화상의 일이며 민족의 본질 내지는 그 연원 그 자체는 아니니, (여기서) 문화론과 민족론은 별개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밝혀 두고자 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조선과 일본이 문화적으로 同源[동원] 관계에 있다는 것은 인정되지마는, 민족적 異同[이동]여하라는 문제가 되면 학술적으로 아직 불명한 것이므로, 오히려 경솔하게 동원론을 농하는 것이 매우 不謹愼[불근신]하고 불충실하다는 것을 여기서 첨부해서 말씀해 두는 바입니다. 이것은 조선에 支那[지나] 문화의 침윤이 깊다고 해서 이것이 조선인과 지나인과의 민족 異同論[이동론]에 하등의 영향을 줄 수가 없으며, 오늘 일본에 서양의 문화가 보급해서 그 흔적이 후세에 전하여지더라도 그것이 일본인대 서양인의 민족론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으로써 오늘의 이야기는 끝내겠읍니다.
 
96
(本文日文[본문일문]) ─ (姜晋哲譯[강진철역])
 
97
<一九三○年[일구삼공년] 四月二五[사월이오]~二六日[이육일] 방송>
【원문】조선(朝鮮)의 신화(神話)와 일본(日本)의 신화(神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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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남선(崔南善) [저자]
 
  1930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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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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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7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