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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천리의 남지나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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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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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리의 남지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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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海[상해]에서 廣東[광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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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생활 2년간 ─ 얼마나 괴롭고 지루한 생활이냐? 한마리 새가되어 창공에 날듯이, 오늘은 이 상해를 시원하게 떠나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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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탄 ‘센홍소’ 호는 시커먼 상해 부두의 물결을 헤치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개미때 같이 우물거리는 인파의 물결, 사랑과 눈물로 얽매인 테프의 난무(亂舞) ─ 상해는 그래도 떠나는 이 배에게 애도의 눈물을 남기려고 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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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홍소호는 그들에게 한마디 답례를 하는듯이 웅! 하고 소리를 치고는, 나는 바다속에 사는 한마리 고래라는 듯이 창파를 헤치고 항해를 시작한다. 검은 연기와 훤조(喧燥)와 굉음과 피와 쇳덩어리로 묻혀있던 생활에서 나는 매미 껍질 벗듯이 벗어나서, 이 창해(倉海)위의 한 마리 물새가 된듯하다. 시원도 하거니와 또는 아름다운 출발의 첫 코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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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판위의 의자에 앉아 다시금 상해를 바라보았다. 군함, 대소기선, 탱크 등, 대포와 주판(珠板)과 창부의 웃음으로써 둘러있고, 다시 환락과 비명과 격투와 죽음과 허위로서 뭉쳐있는 그곳이건마는, 멀리서 바라보니 꿈같이 아름답고 그림같이 서늘하지 않는가? 상해에 남겨둔 그 여자의 가슴, 또는 따려다가 따지 못한 별과 황금 ─ 나의 젊은 욕망의 꿈은 모든 사람의 상정(常情)이지만, 따려다가 따지 못하고, 낚으려다가 낚지못한 희망의 진주여! 네가 숨은 곳은 어디인가? 정열의 꿀과 분투의 음악으로 너를 따려 했으나, 너 있는 곳을 찾지 못한 젊은이 마음이여! 오늘날 한 줄기 한숨과 한 방울 눈물로서, 지나간 그날의 시체를 묻어버리고 상해를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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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여! 부디 잘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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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기선은 벌써 상해도 구름속에 남겨놓고 남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바라보면 아득한 수평선. 바다를 못잊어 떠도는 물새들. 그러나 하늘에는 백견(白絹)같은 구름이 꽃처럼 피었다 뭉쳤다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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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에 남긴 님이 구름되어 따라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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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같은 덩이마다 님 웃음 숨었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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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님이시거던 이 배까지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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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잊는 님의 얼굴 한 마리 새가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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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파의 몇 만리를 오고가며 날으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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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길손의 마음 님을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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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려던 진주를 따지 못하고 캐려던 산호를 캐지못한 나의 마음은, 어쩐지 한모퉁이가 빈듯하고 또는 아름다운 새를 손에 쥐었다 놓쳐 버린듯 하다. 아, 저 물위에 날고있는 눈빛 새여! 너는 지나간 나의 희망의 상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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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처럼 좋은 님이 새 날개치고 간곳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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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숨어었나, 저 바다에 날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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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슴 울리던 새 자취 조차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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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실패와 애상을 몇 만번 노래하고 되풀이한들 얻은 것이 무엇이냐? 신기루는 그만두고 장차 세우려는 희망의 집이나 모래위에 세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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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란한 마음을 진정하기 위하여 식당에 가서 빵과 스프를 먹고 다시 술 몇 잔을 마신후 또 갑판위로 뛰어 나갔다. 어떤 중국 청년이 신여성을 데리고 의자에 앉아서 호금(胡琴)을 뜯고 있다. 나는 그옆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유유무한장(悠悠無限長)한 바다의 풍경을 찬미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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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저쪽! 끝없는 수평선. 하늘과 바다가 한데 붙은 영원의 밀회장이여! 구름이 잠기고, 물안개가 몽몽한 꿈의 로대(露臺)여! 마음을 헐어내어 한떨기 구름이 되고, 이몸을 쪼개어 한 마리 새가 된후, 저 영원의 밀회장에 떠도는 무희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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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있는 청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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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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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에게 말을 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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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까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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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대답 하였더니 그는 옆에있는 과자까지 나에게 권하며 이말 저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은 이번 신혼으로 광동까지 신혼여행을 간다고 한다. 좀 달콤한 여행이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나는 다시 선실로 내려가서 郭沫若[곽말약]의 소설을 뒤적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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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쯤 자다가 깨고보니 저녁이었다. 선실 유리창에는 붉그레한 석양이 가득하다. 갑판위로 뛰어 나가니 아름다운 황혼이다. 해가 바로 바다위에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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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전면에는 불이 붙은듯 피빛같은 물결에는 하늘이라도 태울듯한 붉은 열정이 넘쳐 흐른다. 아롱아롱 흔들리는 물결마다 화주(火珠)가 아니면 금주(金珠)이다. 하늘의 구름까지 붉은 빛으로 물들어, 오로지 바다의 일면(一面)을 정열과 감격과 긴장으로 덮어놓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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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도 타고, 바위도 타고, 하늘도 타고, 구름도 타는 석조(夕昭)의 한장면. 아! 높은 그 정열밑에 아니 탈리가 어디 있는가? 나의 마음까지 한 덩어리 불이되고야 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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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내려 온 바다가 불같이 붉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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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 꽃보다도 짙은 물결 더 고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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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하늘 타버리려는듯 내 마음 어이 안 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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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바다 마음깊어 이 저녁 불타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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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으신 그 정열을 뉘게보라 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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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타고 불이 되어서 님계신 곳 가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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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지니 하늘에는 아름다운 오렌지 빛이 길게 가로 비치며, 하늘의 표정은 행복에 취한듯 환희에 넘치는 것이다. 만리장공(萬里長空)에 홍운이 누구를 못잊는 듯 혼자 유유히 떠다니고, 바다에는 물새들이 갈곳을 찾는듯이 슬픈 소리를 외치니 밤의 서곡은 차차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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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조(夕昭)의 여광(餘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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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노을이 퍼지고 또 퍼지며 멀고 먼 하늘 저편으로 그 길다란 줄기를 뻗히기 시작하니, 하늘빛도 차츰 홍옥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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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저편 몇 억만리 붉은 노을 흘러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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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의 몇 줄기기가 님 계신 곳 따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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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흘러 끝이 없어서 이 한밤 다 저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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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은 하나하나 구슬같이 눈을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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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안개같이 바다를 휩싸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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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음도 갈곳없어서 눈물속에 숨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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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황혼이란 착실히 아름답다. 오늘날까지 바다의 황혼을 별로 보지못한 나는 그만 취하고 말았다. 사람이란 고요할때 또 외로울때, 그는 비로소 시인이되고 문인이 되는가 보다. 자연을 즐길줄도 알고 하늘과 바다를 바라 볼 줄도 안다. 나는 상해 생활 2년간 ─ 나는 그동안 불빛을 보고, 네온의 색등을 보았으나 한번도 하늘을 바라볼때가 없고 또는 별들을 쳐다 볼 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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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은 제법 시인처럼 황혼을 찬미하고 별들의 모양을 노래하지 않는가? 사람은 자연과 친하고 따라서 시적 마음을 가질때에 비로소 보다높은 인생의 전당을 찾을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괴롭고 예술은 아름답다. 우리는 언제나 시를 알고 시적감흥을 가질 수 있는 높은 정열의 사람이 되어보자. 나는 갑판위에 서서 바다만보며 덧없는 공상에 취하였다. 바다는 차차 컴컴해 오고 바람까지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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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저무나니 이 마음 새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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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의 외로운 정을 저 별밑에 매어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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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라 지나는 길손 마음 슬퍼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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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새 불러타고 저 하늘 내려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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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마음 별이되어 하늘까지 흐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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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고운 별들을 내가 딸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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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동안 거닐다가 나는 몸이 선선하여 선실로 들어왔다. 선실에는 선객들이 대부분 잠이들고, 그 중 몇 몇 사람은 장기를 두고있다. 나는 조금전에 이야기하던 중국 청년과 장기를 두기로 했다. 그 조건은 지는 사람은 맥주를 내기로 하였다. 한판 두판 세판 세판에, 나는 한판을 지고 두판을 이겼다. 그래서 두 사람은 허허 웃고 식당에 가서 맥주를 마시며 잡담을 하였다. 상해(上海)서 잡화상을 하는 사람으로 몇 십만원의 자산을 가졌으며, 광동과 홍콩을 들러 마닐라까지 가볼 작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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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 이야기, 술 이야기, 도박 이야기를 술기운에 그는 한참이나 기운을 토하며, 여자 치고는 광동 여자가 정열적이고 재미가 있다고 풍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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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 가시거던 미인 하나 얻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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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중에는 권면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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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물찬 제비같이 예쁜놈만 있으면 한번 손을 넣어 보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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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도 웃었다. 다시 선실로 돌아오니 고요한 감방과 같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꿈을안고 그 꿈을따라 고요히 잠든 것이다. 그 중국청년도 자기 부인옆에 가서 부인의 얼굴을 기쁜듯이 바라보더니 그도 역시 그 옆에 잠들고 만다. 나도 누워서 자려고 했으나 도시(都是) 잠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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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뒤척 저리뒤척하며 눈을감고 있으면 쿵쿵하는 배의 기관 소리가 나의 신경을 어즈럽게 하는 것이다. 아, 나에게는 잠조차 오지않은 것인가? 아름다운 꿈을 잃은 나는 꿈이라도 찾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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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까지 잃은 마음 잠들려도 잠못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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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밤 길고길어 말벗 조차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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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하늘위에서 별이나 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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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고 꿈도깊어 온 누리 잠이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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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아니자고 별 아래 슬피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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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어디 계신고? 이몸 굽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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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갑판위로 뛰어나가니 유난히도 빛나는 남십자성이 하늘의 진주처럼 가로 걸려있다. 별, 하늘, 바다 그리고 나 ─ 아, 신비스러운 장막밑에 고요한 밀회장이여! 저 별에 마음이 있다면 분명히 나에게 무어라 한마디 이야기를 던져 줄 것이다. 그러나 칠흑빛 하늘에 혼자 빛나는 커다란 흑요석. 아? 그는 하늘의 처녀가 가슴에 안은 하나의 아름다운 보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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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빛 하늘위에 등장한 하늘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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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품은 보석 한개의 별이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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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늘 비칠적마다 마음 그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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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편 풍선(風船) 되어 그 진주 내가 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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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만리장성을 쌓고 내가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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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려도 못따는 마음 안타까와 합니다.
 
73
남지나해의 고요한 밤을 저 남십자성이 외로히 지키고 있다. 배는 컴컴한 밤이라도 내 갈길을 내가 간다는듯이 멈추지 않고 달아난다.
 
 
74
한참 동안이나 시적공상에 취했던 나는 다시 광동에 가서 내가 밥벌이 할 일을 생각하고 또 마음이 산란하였다. 먹어야 지내는 동물! 그나마 하루에도 세끼씩이나 먹어야 사는 사람! 지나온 30반생이 이 먹기위한 고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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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군인도 되어 보고, 전쟁에도 나가보고, 장사도 해보고, 별별 짓을 다 해봤지만, 오늘까지 또 이루어 놓은것은 무엇인가? 돈 천원하나 손에 없으니 앞길이 막막하다. 광동서 또 열려야할 생활의 전선(戰線). 아, 나는 차라리 한마리 물새가 되어 아무 근심없이 떠도는 바다의 생활이 부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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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실에 들어와 잠을자고 눈을뜨니 벌써 아침 열시. 우리 배는 복주(福州)를 들러 하문(夏門)에 도착 하였다. 손님이 오르고 내리고, 짐을 풀고 싣고 ─ 인생의 복잡한 그림자 하문은 배에서 바라보니 상당히 큰 항구이다. 약한시간 후에 배는 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77
오늘은 여로에 벌써 지쳐서 갑판위에 나갈힘이 없었다. 선실에 누워, 이리둥굴 저리둥굴하며 하루를 지냈다. 아, 지루한날이었다. 지난날의 그림자를 눈물과 한숨의 캠퍼스위에 다시 그리며 또는 알지못할 미래를 빨간빛으로 주판(珠板)질 하여보며 하루를 보냈다.
 
78
밤에는 잠깐 갑판위에 나가서 또 남십자성의 빛나는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아, 한번 따고싶은 별이다. 나의 반생중에 저 별같은 빛나는 희망을 따려다 따지 못한것이 얼마나 많은가? 꿈은 지나가고 밤은 흘러가서 싸늘한 육체만이 이 배에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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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아름다운 별은 수평선 저 끝에 영원히 묻쳐 버렸는가? 미지의 꿈속에 깊이묻힌 아름다운 진주의 별들을 내가 한번 캐보리라. 나는 이렇게 생각하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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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려다 못딴 진주, 꿈속에 숨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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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라면 깨지말라, 깊은밤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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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수평선밑에 내 발자욱 印[인]칠까?
 
83
그 밤을 역시 배에서 지내고, 다음날 12시 경에야 홍콩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기차를 타고 광동으로 가는 것이다.
【원문】5천리의 남지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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