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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계산의 반달 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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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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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산의 반달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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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한 모퉁이에 있는 몽금포 금모래하면 대강 지리를 아는 사람은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십리일대에 뭉쳐있는 은가루 같은 세사(細砂)! 그위에 금빛 해가 비치면 모래는 금으로 변하고 이것을 이름하여 금사(金砂)라 하는 것이다. 황금이 섞인 모래위에 해당화가 피고 바람이 불면 샛빨간 꽃위에 모래바람을 날리니 그때 해당화야말로 하얀 면사포에 싸인 어여쁜 아씨가 비단 자리에서 무릎을 굽히는 모양이라. 그 광경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니 이 까닭에 매년 4~5월이 되면 그것을 보러오는 사람이 실로 적지않다. 친구 세사람과 함께 황금이 섞인 모래의 해당화를 찾았던 나는 다시 금계산(金鷄山)의 반달못을 찾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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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계획이라 황금모래의 해당화만 구경하고 몽금포에서 기선을 타고 그만 인천으로 가려고 하였지만 친구들이 반달못이 좋다는 권유에는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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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사람에게 무슨 계획이 있으랴. 내일이라도 죽으면 그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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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는 가기를 승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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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금포에서 풍범선을 잡아 탔다. 서늘한 날이었다. 산들산들 남풍이 큰바다의 가슴을 흔들고 간다. 기름 바다가 유유히 침묵의 눈동자를 떳다, 감았다 한다. 구름 한조각 가지않는 봄날의 그림자는 물결위에 한없이 떨어지며 감벽(紺碧)의 빛을 돋우고 있다. 끝없이 양양한 바다의 평화였다. 진정 갈매기 떼가 물속에서, 헤엄을 치고 저편 하늘아래 수평선을 이어서 적은 배가 움직일뿐. 우리가 가려고하는 장산곳에는 돌산의 그림자가 물위에 가로 비치어 묵화폭같이 떠오르고 그 옆으로 바다의 신비인 신기루가 화려하게 펼쳐 지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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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한(Reo Smith Han) 씨는 우마(牛馬)라도 바다를 대하면 오히려 침묵의 말을 가진다 하였다. 과연 그렇다. 바다는 결코 사물(死物)이 아니다. 그에게는 혼이 있고 표정이 있는 것이다. 어찌 일개 동물인들 바다의 혼에 느끼고 바다의 령(靈)에 부딪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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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엽선(一葉船) 위에 몸을 담그고 바다를 바라볼때 우리는 공간의 광대와 무한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이 큰바다 저쪽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곳에도 사람사는 나라 있다할까? 우리는 이러한 것을 생각할때 우리의 마음은 삭막하고 덧없는 공허의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 이것이 자연의 웅대를 느끼고 자신의 미약을 탄식하는 마음이랄까? 그렇지 않으면 신을 생각하는 영원의 마음이라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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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산의 연산(連山)! 영암봉(靈岩峰)에서 뚝 떨어져 치륜과 같이 혹은 높았다. 혹은 얕았다. 곡선미를 그리며 바다로 뻗어나간 장산곳은 무량의 바다에 몸을 담그고 서천의 구름을 바라보며 사뭇 무엇을 깊이 생각할뿐. 아, 그는 결코 무감각한 물건이 아닐 것이다. 장차 그는 하늘 뚫고 올라 가려는가? 바다를 차고 건너 가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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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곳의 이 구비 저 구비는 들어오고 나와서 세인이 말하는 99곡이라는 동곡(洞谷)을 이루었으니, 구비마다 물결이 차고 물결마다 금은이 날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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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풍에 고개짓을 하며 장산곳을 쫓아서 삐걱삐걱 달아나는 우리 풍범선은 갑자기 그 방향을 돌리기 시작한다. 이로부터 99동곡중에 있는 제87곡을 향하여 들어가는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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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같은 만곡(灣曲)에는 이따금 출렁출렁하며 파도가 부딪치니 동구(洞口)에는 물거품이 실실이 일어나며, 흐르는 햇빛을 받아 그야말로 오색이 영롱한 무지개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배가 차차 동곡(洞曲)으로 가까워옴에 따라 무지개는 스쳐지며 굽이굽이 들어간 만구(灣口)가 보일뿐이다. 절벽과 절벽을 뚫어 이리구불 저리구불 나선형으로 엉킨 곡구(曲口)에는 천고의 신비를 노래하는 그 무슨 소리가 들리는듯, 잔잔한 봄날이 나마 파도는 뛰고 거품은 나니 우리의 풍범선은 무서워 떠는듯,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정말 그 동요가 심하여 우리는 자연의 위력을 길게 느끼게 되었다. 아, 신의 전당 같이 엄숙하고 신비스러운 이 만곡(灣曲)! 이곳에도 사람이 많이 다녔다는 말인가? 예쁘고 애처로운 반달못의 아름다움을 감춘곳에 이러한 험곡의 보호가 있었음을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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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파도를 무릎쓰고 절벽을 질러 몇 분간을 나가니 어언간 눈앞에 나타나는것은 반석(盤石)으로 싸인 원형의 호수였다. 사면에는 늙은 소나무들이 이따금 드문드문 서 있고, 그 사이에는 철죽과 진달래가 한창이다. 남성적의 검푸른 솔그늘 아래는 여성적의 담홍색 자홍색의 꽃송이가 구름과 같이 엉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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桃花流水杏然去(도화류수행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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躑躅花流杏然去(척촉화류행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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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철죽꽃이 떨어져 둥실둥실 흘러오는 것을 보고 어떤 어부의 손에 이 호수가 발견되었던가? 그러나 우리의 배는 이 거울같이 고요한 넓은 호수를 지나 다시 서남방으로 기울어진다. 아, 이것이야말로 딴 세상에 있는 비인간 이로구나! 우리의 배가 가는 곳은 어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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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절벽을 돌아오니 넓은 호수가 있었고, 다시 호수 서쪽으로는 굽이진 만곡의 흐르는 물이 보이는구나. 우리는 그 물을 따라 어기여차 다시 배를 저어간다. 양쪽에는 여전히 석벽이 있고, 그위에는 소나무와 진달래 꽃이 물에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우리는 소나무와 진달래 그림자를 타고 굽이를 돌아 배를 저어가는 것이다. 윌리엄 모어의 ‘유토피아’나 찾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석곡(石曲)을 네번 돌고 다시 얼마간 활등같이 된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니 어언간 물줄기는 직선이 되며, 직선이 되는 그 물옆에는 깍아 세운듯한 절벽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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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절벽 맞은편으로는 물길이 빙글빙글 그냥 돌아가며 반원형의 넓은 호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물길은 여기서 끊기고 절벽 언덕에는 거인같이 서있는 암석 아래로부터 10여척이나 되는 폭포가 고요한 산곡(山谷)을 울리며 벼락같이 떨어진다. 아, 이곳이 우리가 찾아온 반달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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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을 뚫을듯한 절벽의 모양도 볼만하려니와 공산의 적막을 깨는 폭포 소리는 더욱 우리의 가슴에 무슨 위압감을 준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에는 돗자리 같은 반석(盤石)이 있고, 반석에서는 다시 물줄기가 천 갈래 만 갈래도 흩어져 분말(噴沫)을 날리며 호수로 흘러든다. 천조만사(千條萬絲)의 날리는 물방울이 햇빛을 받으니 푸르다고 할까? 하얗다 할까? 그렇지 않으면 빨갛다 할까? 빛나는 무지개는 하늘을 향하여 예쁜 바퀴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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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폭포 아래 호수 한쪽에는 방울방울 떠오르는 하얀 거품이 수없이 덮히고, 이따금 윙윙도는 돌개바람이 호수위에서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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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호수 전체에는 평화의 막이 가득히 잠겨있다. 절벽의 석벽을 비롯하여 뭉클뭉클한 돌산이 있을 뿐이나, 그 돌산에는 소나무와 단풍나무와 또는 싸리나무와 철죽꽃이 조화있게 들어섰으니, 싸리꽃과 철죽꽃과 소나무 그늘이 호수 연안에 꿈빛같은 그늘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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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 물속에는 꽃 그늘이 반영되어 마치 어여쁜 아씨가 비단 포장을 헤치고 하늘을 바라 보는듯한 모양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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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를 뒤 흔드는 폭포수의 울음. 그러나 그 울음은 결코, 포악한 마귀의 울음은 아니었다. 호수에 비친 어여쁜 꽃송이들을 보고 찬탄에 못이기는 애착의 소리였다. 어찌 그에게 웅장한 힘의 아름다움이 없다고 하랴! 三五夜來[삼오야래]에 달이 비치고 하늘에서 별이 흐르면 호수의 물은 금파은파(金波銀波)로 변하여지리니, 새소리 하나 없는 적막 공산(空山)에 그 홀로 물속에 달을보며 기뻐뛰는 찬탄의 소리야, 그 얼마나 웅장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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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반달못의 폭포! 심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호수의 주위는 40여간(間)이나 되고 폭포의 수량은 적어도 몇 십입방 킬로미터나 되니 폭포는 흘러 황해에 가고 철죽꽃은 바다에 떨어져 바다에 봄을 전하니, 해우일벽(海隅一僻)에 이같은 절경을 버려놓은 조물주의 뜻이 그 어디 있다하리! 동쪽 전원의 복숭아와 배꽃이 바야흐로 피려할때 바다에 흐르는 철죽꽃을 보고, 그 꽃송이를 물에서 건지는 어부의 마음이 어떻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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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못! 듣기에도 매우 로멘틱한 이름이다. 그러나 그 반달못을 이룬 폭포는 그 어디서 흘러 오는가? 십여척이나 되는 석벽 뒤에는 처녀성의 석산이 있으니 그 이름이 금계산이라는 것이었다. 그 석산에는 바위마다 빨간 진달래가 그야말로 점점붉게 빛나고, 다래넝쿨, 동백나무 등이 푸른빛을 자랑하는구나. 산봉우리가 닭 머리 같이 생겼으니 그래서 산 이름을 금계산이라 하였던가? 그 산허리에 분우동(噴牛洞)이라는 석굴이 있으니 청구슬 같은 활천(活泉)이 그 곳에서 솟아나 석벽에 떨어지며 마침내 공산을 울리는 폭포가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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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금계산 반달못이여! 지금까지 너를 구경 온 사람이 몇만이나 되더냐? 그러나 너는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맑은 진주속에 든 고운 처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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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본 사람은 그야말로 꽃에 취하여 달을 희롱하는 몇몇 시인이던지, 그렇지 않으면 이 근방에 사는 얼마 안되는 농민일 것이다. 절승(絶勝)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바다 저 편에 숨은 어여쁜 반달못아. 이곳에 숨은 뜻은 멀고 먼 그 옛날에 세상의 이목을 피하여 너의 애인과 함께 이곳으로 도망왔음인가? 그리고 세상에 아무도 없는 고요한 이곳에서, 너 혼자만이 봄바람 가을비에 네 애인과 함께 뛰고 춤추려 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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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반달못이여! 나는 너를 찾기 전부터 이러한 전설을 들었구나. 아, 이 말이 정말이던가? 너는 멀고먼 그 옛날에 중화천지를 뒤 흔들던 어떤 임금의 딸이었다고. 그리하여 봄바람에 복숭아, 배꽃이 날리고 가을비에 오동잎 질때 너는 어떤 신화의 아들과 고운 사랑에 빠졌었다는구나. 그러나 네 부친은 네 사랑에 반대하여 너를 딴곳에 혼약하였다고. 그래서 이것을 안 네 애인은 철천(徹天)의 한을 품고 그만 독약을 먹고 죽었다는구나. 그러나 너는 심히 다정한 사람이었고 또는, 네 전 생명을 그이에게 바쳤던 사람이었다고. 이 때문에 너는 부친이 정한데로 할 수 없이 그 수레를 타고 신랑을 맞으러 가기는 가나, 그 수레를 타고가는 길 중에 거부(車夫)에게 애원하여 네 애인의 무덤을 마지막으로 찾았다는구나. 그러나 네가 수레에서 내려 무덤앞에 몸을 꿇고 주먹같은 눈물을 흘릴때에 네 애인의 혼은 너를 붙잡아 무덤속으로 끌고 들어갔다는구나. 그리하여 너는 돌연 몸이 변하여 그곳에서 몸을 숨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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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밝은 밤에 둘이서 노래를 부르고 꽃피는 저녁에 둘이서 뛰고 춤을 추려고, 너는 애인과 함께 그 부자유한 곳을 떠나 산을 넘고 황해를 건너 이 장산곳으로 왔다는구나. 그래서 너와 네 애인은 그때 얼마나 자유의 기쁨을 느꼈는지 그때 느낀 기쁨의 눈물이 분우동(噴牛洞) 이라는 석굴에 떨어져서 그때부터 활천이 솟아 났다는구나. 그리하여 그 활천(活泉)이 떨어져 폭포가 되고 폭포가 흘러서 반달못이 되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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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고 달뜨는 세월이 흐르고 흐르고 영원히 흘러서 무구한 세상을 전하고 있을때 너는 오늘날까지 이곳에서 너의 애인과 함께 뛰고 춤추었더냐? 웃고 속삭였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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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반달못이여! 나는 금모래를 찾던 길에 어떤 순박한 농부에게서 이 같이 아름다운 전설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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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세상의 부자유를 원망하여 네 혼이나마 애인과 함께 영원히 이곳에 숨어 너의 사랑을 빛나게 하려므나. 꽃피는 봄이 언제인들 아니오랴. 달뜨는 밤이 언제인들 아니 비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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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엽풍선(一葉風船)을 폭포 한곳에 대고 반월못 전경을 바라보던 나는 이러한 명상에 깊이 빠졌었다. 아, 매우 고요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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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여! 나에게도 애인을 주시면 시커먼 이 세상, 부자유한 세상을 던져 버리고 나의 혼이 쉴만한 새세상을 찾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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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모든것이 뜬 구름 이로다. 공산야화(空山野花)에 고운 호수를 등에 지고 무한의 감정에 길이 살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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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공상이었다. 샛빨간 현실의 아들인 나는 시커먼 이 세상에서 울어야 한다. 먼지를 뒤집어 쓰고 흙덩이에 깔리면서 싸워야 한다. 그리하여 빵을 구하고 옷을 구하여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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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것이 사람으로 타고난 그의 운명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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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가 떨어지는 석벽위로 기어 올라가서 우리들은 도시락을 먹으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점심을 먹고 금계산 봉우리까지 올라 가보자. 그리고 저녁때에 달빛을 등에지고 몽금포로 돌아가자!
【원문】금계산의 반달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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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7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