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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포클레스로부터 고리키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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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 1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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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로부터 고리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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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면적으로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좁은 독서 범위 - 가난한 창고 속을 들치더라도 작품의 그 어느 한면, 혹은 그 어느 한 각도로 보면 심금을 울린 작품은 상당히 많다고 생각한다 - 엄밀한 의미에서 예술내지 문학을 말할 때에는 다면적 - 혹은 다원적이라고 할까 - 이란 어제(語題)가 용인될 수는 없겠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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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한 의미에서의 문학이란 항상 사회적 궤도를 벗어나거나 역사적 발전의 바른 방향을 떠나는 법 없이 시대의 진보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문학이라야 하겠고, 한 시대의 사회적 모순의 똑바른 편에 서서 양심적으로 철저하게 생활한다면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문학은 이데올로기, 즉 예술, 환언하면 생활, 즉 기술의 융합 일체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이 고귀한 경지에 있어서는 다원은 용납되지 못하고 문학은 정히 일원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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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준엄한 궤약을 떠나 잠시 너그러운 태도로 낡은 고전을 들칠 때에는, 즉 시대적 의의를 떠나서 ‘문학’만을 사랑할 때에는 심금을 울리는 작품은 퍽이나 많이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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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낡은 데에서는 희랍의 극작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의 만고의 대걸작은 그 예술이 시대를 넘어서 나뿐 아니라 만인의 흉금을 울리기에 족하리라고 생각한다. 온전히 과실로 인하여 그인 줄 모르고 부왕을 토살(討殺)하고 나아가 역시 그인 줄 모르고 왕비인 자기의 모친과 혼인하여 소생까지 얻은 오이디푸스 왕이 나중에 이 기막힌 문륜(紊倫)의 죄악을 깨닫고 그 속죄로 참혹한 죄를 진 세상에 눈을 뜨고 살 염치가 없다하여 쇠몽둥이를 새빨갛게 달궈 가지고 제 손으로 두 눈동자를 에워내는 이 끔찍한 비극, 셰익스피어의 비극의 천재를 가져와도, 혹은 라신의 비극의 심각미를 가져와도 이 비극에는 스스로 일주(一籌)를 사양해야 할 것이다. 형식의 여러 가지 점은 생각하지 말고 이 비극의 시추에이션 - 거기에 이 비극의 비극된 무비(無比)의 심각미와 참혹미가 있는 것이다. 실로 인간의 비극의 극이요, 세계문학 - 문학에 관한 한 - 의 최고봉이라 하겠다. 심금의 줄을 울릴 뿐이랴. 가슴의 살을 졸기졸기 짓이기는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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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애욕 갈등을 그린 작품 중에서도 골육 간의 애욕내지 친간(親姦)을 그린 작품은 그 자체 이미 비극적 경우를 구성하여 가장 마음을 찌르고 훌륭한 문학을 짓는 때가 많다. 고래의 명문학 중에서 이런 것을 집어내보면 상당한 수에 오를 것이나 현대에 있어서도 가령 콕토의 「레장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들) - 친남매 간의 애욕을 그린 이 소설을 나는 이러한 범주내의 작품으로서 확실히 명문학의 하나라고 손꼽으려 한다. 물론 작품의 소산이 현대인만큼 작품의 행동이 고대의 비극과 같이 추근추근하고 참혹하지 아니하고 담하고 순하고 내면적이다. 고대 비극에서는 쇠몽둥이로 눈을 빼거나 검투(劍鬪)끝에 장검으로 가슴을 찔러서 해하지만 현대에 있어서는 기껏 독약을 마시거나 권총을 겨누어 고요히 자진(自盡)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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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포클레스로부터 내려 더듬어 보면 셰익스피어의 수많은 비극, 라신의 제작 - 한 편이라도 심금을 울리지 않은 작품이 있던가. 쉴러의 「텔」에는 처참미가 있고, 위고의 제작 - 가령 낭만파 대두기를 획한 「에르나니」는 또한 그 얼마나 가슴을 울리는가. 모파상도 좋고, 하디 역시 좋다. 우리는 이러한 고전을 시대적 척도로 비판하기 전에 잠시 먼저 순진하게 그 속에 뛰놀기를 인색히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공리적이 아닌 진주라고 이것을 버리지 말고 실로 우리의 공리를 위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것을 집어 올려 완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찬란한 고전의 계열을 전망할 때에 나는 마치 가지각색의 구슬 속에 묻힌 어린아이 모양으로 어느것을 집을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것과 흡사한 꼴의 내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편벽된 마음으로 한둘을 고를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나는 솔직하게 한 편의「살로메」가 충분히 나의 심금을 울렸다는 것을 말하고 그 속에서 ‘문학’과 ‘예술’을 배우기에 급급하다는 것을 고백하기를 부끄러이 여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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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을 돌려 약 반세기 남짓한 러시아의 과거로 올라갈 때 거기에서도 나는 심금을 울린 가지가지의 것을 발견한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투르게네프의 여러 작품, 여기에서 벌써 우리는 훌륭한 ‘문학’만을 보는 것이 아니오, 직접적으로 울려오는 시대를 느끼기 시작한다 - 사회적 동감과 생활적 혈족감을 느끼게 된다. 라스코리니코프의 번뇌는 오늘(2자약(略)) 청년의 고민일 것이요, 바자로프의 사상은 오늘의 사상의 선구였고, 인자로프의 정열은 오늘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그것이 아닌가.「죄와 벌」「아버지와 아들」「그 전날 밤」등이 우리의 가슴을 의연히 울리고 일반으로 이 시대의 노문학(露文學)에 동시대의 다른 외국 문학에 보다도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물론 그때의 그와 오늘의 우리의 시대적 상사(相似)의 소이인 것이다. 전거(前擧)의 작품 중에서도 더욱이 「그 전날 밤」은 그 속에 비록 주인공 자신의 혁명적 활동의 구체적 면은 그리지 않았으나 이 한 불가리아의 민족적 투사의 기개와 열정은 바로 그대로 오늘의 계급적 투사의 그것으로 환치할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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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차차 내려옴을 따라 시대적 색채가 농후하여지며 오늘의 현실에 부합되는 우리의 생활이 요구하는 일의적으로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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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키의 초기에 속하는 「나락(奈落)」도 인상깊은 작품이지만 제2기에 속하는 「어머니」- 즉 제1기의 무정견의 룸펜물 시대에서 비약하여 나아간 계급적 각성의 제2기의 소산인 작품인 만큼 전위(前衛)의 노동자와 운동의 약동을 그려서 작품으로서 거의 완벽에 가깝다. 엄밀한 의미에서 청산하여야 할 요소도 품지 않은 바 아니겠지만 후기의 그의 「40년」을 제하고 그의 작품으로 가장 깊은 느낌과 생생한 인상을 주는 것은 이 「어머니」겠다. 어머니가 점심 그릇 속에 삐라를 묻어 가지고 공장으로 들어가던 장면, 아들이 가두에서 시위하다 붙들리는 장면 등등 수많은 장면이 언제까지든지 잊히지 않고 신선한 인상을 가지고 눈앞에 살아 나오리 만큼 감동 깊은 작품이었다. 진실로 진보적인 문학 일원적인 문학, 우리를 울리는 문학 그것을 나는 여기에서 찾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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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에서부터 고리키까지 쓰고 보니 고전의 찬(讚)이 되고 세계문학의 변이 되고 말았다. 과제에 어그러진 감이 없지 않아 있으나 주의(主義)에 인색하지 아니하고 각도를 달리할 때에는 사실 심금을 울리는 작품은 무수히 있는 것이다. 소포클레스와 고리키 - 시대적으로 역사적으로 극단이요, 양극인이 두 작가의 작품이 동시에 머리 속에 똑같이 떠오르는 것이 그렇기 때문에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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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1933. 1. 26~27
【원문】소포클레스로부터 고리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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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1933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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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