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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5와 한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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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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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와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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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를 맞을 때마다 나는 잊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다나까(田中英光[전중영광])라는 일본 작가다. 살인 명부 속에 내 이름을 기입하여 넣고 “어쩌다 만일 당신이 체포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건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나를 원망하지는 마시오.” 하고 사전에 나에게 호의나 보이는 것처럼 면접해서까지 대담하게 이야기를 하던 그 순간보다도 나는 이 다나까라는 작가를 못 잊는다. 그까짓 무식층의 발악쯤은 문제 삼을 것이 없다. 다나까라면 그래도 일본 문단에서는 우수한 작가 측에 속하는 소위 지다니 상(池谷賞[지곡상])까지 받은 소설가로 나도 소설도에 정진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 어느 부문 사람보다도 서로 마음이 통할 수 있게 느껴져서 만날 때마다 반갑게 대해 왔다. 그러나 그는 나로 하여금 그 반갑게 대하던 호의를 일조에 깨뜨려 주었고, 적의를 품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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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본정 (지금의 충무로)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더니 인사 끝에 차나 한 잔 하자고 메이지 제과 명치제과(明治製菓[명치제과]) 이층으로 나를 인도하였다. 별로히 친한 사이도 아니고 그저 인사나 하고 지나는 정도였으나, 같은 길을 걷는 동지라 오랜간만에 만난, 내가 그를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가움에서의 호의인 줄로만 알았더니 그것은 나 혼자 생각이었다. 전쟁의 도가니 속에서 그때 일본이 한창 우둔을 부리던 한글 말살 정책 그것이 이 소설가의 애국심에도 감염이 되었던 모양이다. 다짜고짜로 하는 말이 이제부터는 국어(일본어)로 소설을 쓰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위협이었다. 나는 국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제부터 배워가지고 써야지 현재의 실력으로는 중학생의 작문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당분간 어쩔 수 없을 거라고 대답을 하였더니 그것은 한글을 고집하겠다는 변명에 불과하다. 나의 사상을 이제 알겠노라, 정말 국어로 못 쓰겠느냐, 조선 사람의 소설은 중학생의 작문 정도라도 용인이 될 것이다, 국책에 협력을 아니 하면 너라는 존재도 머지않아 없어질 것이라고 위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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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언사가 소위 예술을 운위하는 작가라는 레텔이 붙은 사람의 입에서 나왔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나라 국민으로서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겠다는 그 심성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런 무식이 어떻게 조국을 구할 수가 있겠는가가 나에겐 우스웠다. 아무리 우리가 자기네에게 매여 산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조국을 건지겠다는 마음이 그처럼 두텁다면 어찌 조국을 잃은 사람의 마음은 어떠한 것인가쯤은 무식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상상이 갈 것이다. 하물며 신에 도달하는 길이 예술이라는, 그리고 인생을 탐구하는 길이 예술이라는 그 예술을 탐구하는 소설가로서 남의 나라의 말을 말살하겠다는 이런 놀라운 언사가 어디 있을까. 한 나라의 문화는 그것이 비단 그 나라의 문화일 뿐 아니라 전세계의 문화다. 한글의 말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 어떤 부분의 말살에 있다 하더라도 그러할 것이다. 나는 그를 그때 우리의 적으로서만 여기지 아니하고 전세계의 문화의 적으로 간주를 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무기를 든 배경이 있고, 나에게는 대항할 아무런 배경도 없다. 오직 도피의 길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로부터 노상에서의 위협을 두 번인가 받고는 나는 시골로 몸을 피하였다가 살인 명부에까지 올라가지고 8·15를 맞았거니와, 다나까의 우직하고 무식한 애국심이 패전을 하게 되자 자살을 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나, 들리는 말이 다이사이 오사무의 무덤 앞에 가서 목을 매었다니, 이러한 무지를 눈과 같이 결백한 다이사이 오사무(太宰治[태재치])의 예술혼이 과연 받아들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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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한글을 말살하려고 나를 위협하던 그 한글로 나는 지금 이 일문(一文)을 초(草)하여 아홉 번째 맞는 8·15를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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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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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단행본〕*『노인과 닭』 (범우사, 1976)
【원문】8·15와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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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용묵(桂鎔默) [저자]
 
  1954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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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