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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문문학의 일년간 (194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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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월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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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문학의 일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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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본지 (本誌) 상에서 지금과 같은 제목을 걸고 주로 중견작가의 업적을 보고한 일이 있었고 그 뒤 지난 2월호 본지 상에서 다시금 신진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약간의 성찰을 가져본 일이 있었는데 이 기록은 전기(前記) 두 차례의 기회에서 얻은 현역작가에 대한 필자의 이해에 기(基)하여, 소화 15년 10월호 잡지까지에 나타난 지난 1년 동안의 산문문학의 동태와 성과를 작가별로 살펴보려는 생각 밑에 초(草)하여지는 글이다. 제한 있는 지면인지라, 기술의 조략(粗略)과 불균형은 면키 어려웠고 작가의 순위도 장소의 편의에 쫓아서 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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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씨의 작품으로는 「봉황산(鳳凰山)」「왜가리」등을 읽었으나 이러한 것들은 어느 것이나 모두 이씨를 슬럼프에서 건져주는 작품들이 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만주를 다녀와서 새로운 기축(機軸)이 보여질 것으로 기대되었던 「대지의 아들」도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가족사연대기소설을 지향한다고 보아지는 연재소설 「봄」에 의하여 씨의 작품세계는 신생면(新生面)을 개척하는 것이나 아닐까. 소감투는 여러번 빨면 보기 흉해질 뿐더러 눙글어져서 쓸 수도 없어진다. 다시 새 것을 지어서 써야 하였다. 「고향」을 쓴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그만 했으면 낡은 소감투다. 같은 농촌이래도 새것이면 인상도 선명해지고 감명도 깊다. 거금(距今) 40년 전의 농촌, 이리하여 이씨에 있어서는 「봄」은, 연래(年來)의 슬럼프를 벗어날려는 적지 않은 야심에 의하여 쓰여지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그럴수록 씨가 「봄」을 좀더 철저하게 연대기가족사소설로서 준비하지 않은 것이 필자에게는 결함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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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설야 씨의 작품 중에서도 필자는 「탑」만을 주목하고 싶었다. 「태양은 병들다」는 작자의 현실에 대한 응석이다. 명우보다 억울한 죽음을 하는 사람이나, 명우 어머니보다 더 딱하고 불쌍한 부인네가 얼마나 많이 현실 속에 파묻혀 있는지, 그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러므로 작자가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서 현실의 껍질을 벗겨 보이려면 좀더 다른 화술을 배워야 할 것이었다. 이런 정도로는, 이런 일이 세상에 하도 많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러한 감명도 주지는 못하는 것이며, 또한 작자와 더불어 독자는 그것을 그다지 커다란 교훈이라고 생각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모색」은 자기 검토의 정신이 혼미한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작품, 역시 한씨도, 답답한 눈을 잠시 돌리고 근시상태(近視狀態)에서 숨을 돌리려면 「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탑은 지평선보다는 높은 데 있는 전망소(展望所)다. 자기세계의 답답한 방안도 내려다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전환기를 포착한 것으로 보아 연대기임이 분명하고, 시대정신을 가족의 역사 속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가족사소설임이 분명하다. 씨는 또한 풍속도 고려하였다. 연래(年來)의 신변세계에서 배운 삽화식 구성과 풍속의 나열과 잡설이 적지 않이 작품의 다이나믹한 맛을 감쇄시켜서 박진력을 덜었다. 연대기가족사소설의 의식을 한씨도 좀더 투철히 가질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가령, 이씨나 한씨가, 주인공을 모두 6, 7세의 소년으로 선택하였는데, 나는 이것이 연대(年代)에 대한 의식보다도 편의적인 생각에서 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석림이나 우길이는 모두 작자 자신들이다. 그들은 30년대의 대표인물이긴 할지언정 한말대(韓末代)의 대표인물은 되지 못한다. 작자 자신의 기억을 이용한다는 편의적인 생각과 작자 자신을 돌아본다는 회고정신에 의해서, 연대(年代)의 정신은 명확히 형상화되는데 장애를 받고 있다. 만약 씨 등이 이 같은 편의적인 생각에서가 아니고 연대기 가족사소설의 투철한 이념에서였더라면 「탑」은 훨씬 더 인물을 정비하고 잡설(雜說)도 제거하고, 풍속집(風俗集)이 되는 데서도 구원을 받았을 것이며, 「신개지(新開地)」에서 본 금점판과, 방개 어미와 같은 남술이 처와, 방개와 같은 국실이를 다시금 보여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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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편의적인 생각이 신인 김사량 씨의 「낙조(落照)」에도 나타나 있었다는 것은 일고(一考)해 볼일이 아닐 수 없었다. 김씨는 이씨나 한씨보다 연소(年少)한 분인 모양 같으다. 주인공 윤수일과 그의 소년시대의 설정은 기억의 이용 이외에 타의(他意)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작자의 기억이나 상고(詳考)가 또한 여간 엉망이 아니다. 풍속 습관에 대해서도 전맹(全盲)에 가깝지만 언어에 대한 관심도 여간 허술한 것이 아니다. 가령 맨 첫 장면을 보라. 작자에 의하면 1910년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그러나 윤대감은 궐부(厥父)의 횡사(橫死)를 듣고 서울로 급행할 때에 승교(乘轎)라는 느린 물건을 타고 ‘사무라이’처럼 달아나고 있다. 이미 경의선의 철도가 부설(敷設)된 지 7, 8년이 된다. 윤대감이 기차를 타지 않고 승교(乘轎)를 타여야 하는 이유는 아무데도 없다. 작자의 편의만이 아마 그것의 설명이 될 것이다. 서울 양반의 사랑을 보라. 소도구 하나 놓일 데 놓이지 않고 인물 하나 양반다운 양반이 없다. 양반에 대한 증오만으로 작품이 되는 건 아니다. 수일의 대화를 보면 작자가 지방어의 뉘앙스를 의도한 것이 사실인데, 평안도 사투리를 살리려면 영남 사투리와 서울말을 알지 못하고는 불가능한 것을 씨는 잊어버리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어린아이란 타처(他處)로 반이 해 가면 반년 (搬移) 안에 본토어를 버리게 된다는 상식도 잊어버리고 있다. 이대로 가면 윤수일은 아마 30이 넘어도 평양 사투리를 쓰고 있을 것이다. 동경서 활약한다는 소문이 자자한 김씨가 언어에 대한 감각이 이처럼 무딘 줄은 알지 못하였다. 이 방면에 대한 심심(深甚)한 자각이 있어야 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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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영 씨의 「흙의 노예」는 귀농 이후의 이씨가 얻은 가장 완성에 가까운 성과였다. 수택이와 같이 도회생활(都會生活)이 작가의 세계를 폐쇄해 버린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이 작품에서 보여준 이상으로 자신을 농민 속에 집어 넣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안술소전(安述小傳)」에 오면, 벌써 작중인물은 농촌이 결코 생각과 같지 않았다는 것을 뼈아프게 느끼며 도회(都會)로 취직처(就職處)를 구해보게 되는 것이다. 「흙의 노예」를 마루턱으로 하여, 귀농작가의 생활보고는 그가 받아야 할 최고의 선물을 받았으므로 이제 세계를 다시 옮겨야 할는지도 알 수 없다. 이 이상 궁촌기(宮村記)를 되풀이하면 혹은 씻은 소감투가 될는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금후(今後) 이씨는 어데로 갈 것인가. 씨에게는 또 하나 풍자소설이라고 이름할 수 있을 계보에 발을 들여놓은 작품들이 있다. 「이름 없는 사나이」라던가, 「민권」이라던가, 「딸과 아들과」같은 작품이 숫제 이런 명칭에 의하여 개괄해 버릴 수는 없다 하여도 이것의 밑을 흐르고 있는 작가의 정신은 역시 풍자라고 보아진다. 그러면 이씨는 금후(今後) 풍자로 갈 수 있을 것인가. 가면 얼마나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전기(前記) 몇 작품에서 느껴지는 어딘가 싱거운 생각, 공소(空疎)하고 소잡(素雜)한 느낌 - 이것은 이씨가 풍자에서 성공할 만큼 톨알진 시대감각을 아직 구비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나 아닐까. 「흙의 노예」의 종말을 흐르고 있는 정신도 또한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씨에게는 앞으로의 1년간이 적지 않은 고투를 요하는 중요한 시기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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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세계를 완전히 이동하여 보았으나 장차 적지 않은 고투를 경험하여야 할 작가로 김동리 씨가 있다. 김씨의 종래의 세계의 중심은 산중한사(山中寒寺)이었다. 동양적인 유현(幽玄), 그곳으로부터 씨는 민속을 거쳐서 토속으로 왔고, 금년에 들어서 완전히 속계시정항간(俗界市井巷間)으로 내려와 버린 것이다. 이러한 이동은 씨가 소설의 이념과 산문정신에 철저하려는 이상 필연적인 것이어서, 필자처럼 산문정신이 이루어지는 곳이 산중(山中)에 있지 아니하고 항간(巷間)생활 속에 있다고 믿어오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씨의 장래를 위하여 경하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속세에 내려와서 부딪친 최초의 것은 무엇이었을까. 씨 자신 그것을 「혼구(昏衢)」라고 표현하였다. 「제1장의 윤리」라고 부제를 붙인 것을 보면 더욱 흥미 있는 일이다. 이 현실을 어찌하랴! 현실이 이런 줄은 몰랐다! ‘가야 된다. 송가를 만나야 한다’고 이녕(泥濘을 밟으며 혼구(昏衢)를 헤매는 ‘로진 센세이’ 강정우는, 산문정신을 절간 으슥한 한 방에 묻어두었던 작자 김동리 그 사람이 아니었던가. 산문정신이 비로소 싸워야 할 대상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강정우 선생은 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으랴! 이 최초의 윤리의 앞에 서서 산문정신은 무엇을 경험하였을까? 다음 작품들을 보면 현실에 대한 약간의 체관(諦觀)이 흐르고 있지는 아니한가. 그러나 「다음 항구」나 「회계(會計)」에 이르면 현실에 대한 호도(糊塗)와 도폐(塗蔽)가 「제1장의 윤리」를 매장해 버린 느낌을 준다. 작가여! 송가를 찾으라! ‘가야 된다! 송가를 만나야 한다!’ 헛되이 딴 길을 밟으려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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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용서 없는 박탈이라는 무서운 정신을 김정한 씨의 「추산당(秋山堂)과 곁사람들」을 읽으면서 징글스럽도록 맛보았다. 월평(月評)에서도 말했지마는 김씨의 작품으론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내 「낙일홍(落日紅)」을 찾아 읽고 「월광한(月光恨)」을 뒤져보았다. 「추산당(秋山堂)과…」는 가혹한 현실박탈을 너무 강직하게 의식한 탓에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느낌이 있었는데, 「낙일홍(落日紅」엔 따뜻한 그것에의 애정이 느껴져서 독후감이 따사로웠다. 그러나 가열(苛烈)한 작가정신으로 보면 「낙일홍(落日紅」에서 「추산당(秋山堂)과…」로 발전해 나간 것이 확실하다. 이 가열(苛烈)한 작가정신을 적당히 달래면서 균형 잡힌 살커리를 붙여 나가면 씨의 현실박탈은 하나의 성과를 얻을 것이라 확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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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준 씨의 「유맹」은 인물설정에 있어서 일정한 확립된 관점을 끝까지 관철하지 못해서 도리어 실패한 작품이다. 인물의 성격이나 성품이 단시일에 개조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하면, 불충분한 발표력은 언제나 작중 인물을 선명하지 못하게 보여주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독자는 작자가 작중 인물에 대해서 통일된 태도를 견지하지 못했다는 감상을 품게 되는 것이다. 보고소설(報告小說)이 상상력을 가미할 때엔 꼭 주의하여야 할 일이다. 「첫사랑」같은 데로 가지 말고 역시 「유맹」을 문학수업의 도장(道場)으로 삼는 것이 씨의 장래를 위하여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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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씨의 중편 「냉동어」를 보면, 작자가 양(兩) 3년 전부터 하마 빠질 듯이 빠질 듯이, 물리치고 떠다밀고 하던 허무감에 함뿍이 뼈 속까지 젖어보았다는 느낌을 준다. 필자와 같이 몇 년 동안 채씨의 작품세계를 눈 여겨 보아온 사람은, 허무에 부딪쳐서는 그것을 극복해보려 애쓰고 혼신의 정력으로 그것과 겨루려 들던 작자가, 드디어 허무 속에 몸을 던져서 온몸뚱이를 그 속에 잠가 보겠다는 결심을 먹게 되었다는 것이 결코 사소(些少)한 일로 생각되어지지 않는 것이다. 중편을 택하여 그것을 시험하였다는 것도 작자가 얼마나 이 앞에 서서 긴장하였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작품 시초(始初)가 난삽하기 짝이 없는 것도, 심리란 심리, 의식이란 의식을 하나도 놓지 않고 쫓아가 보려는 작자의 지나친 긴장 때문에 되어진 결과다. 그러면 채 씨여! 허무 속에 몸을 잠가 갈턱까지 가본 결과, 들고 나온 것은 무엇인가. 속은 좀 후련해졌을 것이다.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작가의 생리를 통하여 변비를 뚫어 주었을 것이다. 「순공(巡公) 있는 일요일」은 이러한 긴장된 작가생활의 여가에 이루어져서 독자나 작자를 한가지로 답답한 세계에서 숨을 돌리도록 구해주는 작품이었다. 만약 나의 보는 바에 기분(幾分)의 진리라도 인정한다면 채씨가 금후(今後) 걸어가야 할 길은, 「당랑(螳螂)의 전설」을 소설로 실천하는 데 열려 있다는 것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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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오 씨의 금년도의 업적에서 작가의 피곤을 감득(感得)한다는 것은, 씨의 작품을 수량적으로 보고서 하는 말이 아니다. 「봄」외에 「주붕(酒朋)」도 있고 「우수(憂愁)의 뜰」도 있다. 나는 좀더 다른 각도로부터 이것을 느끼는 것이다. 나의 알기엔 우리 요우(僚友) 중에서도 모티브를 선명히 설정하는 작가로서 유씨는 결코 인후(人後)에 서지 않는 분이었다. 하다 못해 정관이래도 초점으로 세워 놓는다. 명확한 선과 확실한 뎃상을 가지려고 하는 때문에 가끔 문학청년들의 비위를 건드리는 작가였다. 그렇던 유씨가 「봄」에서는 선과 뎃상을 버린 것이다. 그 대신, 색조만으로 작품을 엮어 본 것이다. 이러한 창작심리에서 필자가 작가의 피곤을 느꼈다는 것은, 아마도 유씨가 색조에 몸을 맡겨버릴 수 없는 작가라는 것을 필자가 지나치게 잘 알고 있는 때문인지 모른다. 「주붕(酒朋)」은 물론 「봄」과는 다르다. 옅(低[저])거나 안이하거나 하나의 모티브를 가지고 초점을 명백히 한 작품이다. 그렇다고 「주붕(酒朋)」이 「봄」보다 으뜸가는 작품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그러한 사정 가운데서 작가의 피곤을 감득(感得)하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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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수고 실의고 돌볼 새 없이 현실의 커다란 불가항력 앞에 딱 마주서버렸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이태준 씨의 「밤길」이다. 「영월 영감」「농군(農軍)」을 거쳐서 이씨는 현실과 아주 직면해 선 것이다. 서 보고서 새삼스레 느끼는 것은 이 현실 앞에 선 인간의 무력이었다. ‘황서방은 그만 길 가운데 철벅 주저앉아 버렸다’고 작자는 묘사한다. 그러나 이 황서방은 실로 작자 자신이 아닌가, 앉아보니 주위는 어떠하였는가. ‘하늘은 그저 먹장이요 비소리속에 개구리와 맹꽁이 소리뿐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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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때 현실을 멀리 피하여 이국취미(異國趣味) 속에 가벼운 여장(旅裝)을 풀려는 작가는 이효석 씨였다. 「합이빈(哈爾濱)」은 씨의 유일의 작품이었다. 「화분(花粉)」이후 성(性)의 세계도 시들해져 버린 것일까. 「해바라기」의 세계를 돌아볼 만한 기력도 가지고 싶지 않은 것일까. 「여수(旅愁)」의 세계에 몸을 은신하여 기타이스카야의 거리에 가벼운 스틱이나 짚어본다. 이러한 것이 작금(昨今)의 이효석 씨의 심경인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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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씨는 외부묘사에서 오는 권태와 피로를 어떻게든 뚫고 나가려고 무한히 애를 태우며 1년간을 보내었다. 장편 「애경(愛經)」과 「음우(淫雨)」의 관계를 연결해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상일 것이다. 씨가 이미 모든 시정(市井)의 인물을 일률적으로 외부적 관찰만 할 수 없어졌다는데 문제의 핵심이 놓여 있다. 한가지 생활인일지라도 외면생활만을 가지는 사람과 정신생활을 내면적 깊이에 있어서 영위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있을 것이 아닌가. 박씨는 이러한 사람을 통틀어 한 줄의 선 위에 세워 놓고 외부적 교섭만 시켜버리는 것이었다. 「애경(愛經)」은 바로 그러한 작품이었다. 「애경(愛經)」중도에 박씨는 이러한 작가의 태도와 입장에 권태를 경험하기 비롯한 것이다. 그러면 어디로 갈 것인가? 심리세계로? 그러나 그것은 씨가 작가생활 초년(初年)에 이미 치른 세계였다. 씨에게 남은 길은 외부와 내부를 종합하는 길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길이야말로 박씨의 작품을 규격으로나 또는 정신적으로나 일단(一段) 고처(高處)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판국에 서서 박씨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그것은 오는 일년이 가지는 흥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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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남 씨가 심경세계와 가정 안을 벗어나가려고 애쓰는 것은 수년래(數年來) 있어온 일이다. 「기계」「그날 밤에 생긴 일」등이 그러한 노력의 과거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도시 안씨의 체질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을 느껴본다. 그러한 결과 다시 더듬어 본 것은 여급(女給)이 있는 세계였다. 마침 착한 아이를 하나 만났다. 그래서 집안의 세계와 다리를 놓아서 「애인」과 「탁류를 헤치고」를 써 보았다. 그러나 어쩐지 심경세계나 가정의 「온실」이 더럼을 타고 설뚱해져서 마음을 안정할 수가 없다. 어린놈을 잔등에 업히고 대청에서 말놀이를 하는 편이 훨씬 좋다. 그러나 다시 심경소설을 쓰기도 거북하고, 그래서 「병원」으로, 하류극장「어둠 속에서」 불량역사(不良力士)를 찾아보기로, 혹은 김유정전(金裕貞傳)을 써본 솜씨가 있으니 「소년」들께로, 「길」로, 「전원(田園)」으로 정처 없는 발걸음을 내쳐보는 것이다. 정처 없는 길이고 보니 제법 좋은 것을 만날 때도 있고, 아무 소용없는 돌맹이 같은 것을 집어볼 때도 있다. 안씨의 많은 작품 중에 옥도 있거니와 돌도 많은 것은 전혀 이 탓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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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갑 씨도 퍽 많은 작품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삼인행(三人行)」이 「공상기(空想記)」를 계승하여 약간의 성과를 얻었고, 「포설(飽說)」이 「추풍인(秋風引)」을 심화하여 어떤 결과를 얻었을 뿐, 그밖에 모든 실험과 탐구는 아직 남을 수긍시킬만한 정도에까지 이르지 못하였다.「무가(霧街)」「횡설(橫說)」「먼동이 트기 전에」가 모두 이러한 노력에 희생된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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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택 씨는 그 전날의 세계와 꼭 같으다. 다른 것은 작중인물이 그 전에는 어떤 신념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려 보았었는데 「범가족(凡家族)」「업고(業苦)」「우울증」의 작품에서는 한결로 이러한 신념이나 생활에 대해서 허탈한 생각 밖에는 품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다르다. 아예 그럴 바엔 속이라도 후련해지도록 무기력에 철저해 보는 것이 어떨까. 무기력 속에서 작가의 정신을 실컷 연소해 버리는 것이다. 독수리 같은 세찬 야심이 소생할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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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씨의 것으론 「밤」「해면(海面)」「풍랑」이 있는데 「밤」은 「소복(素服)」의 세계를 적다랗게 다시 인쇄한 것이고, 「해면(海面)」과 「풍랑」은 아내와의 사랑싸움을 그린 것이다. 그 중에서 「풍랑」은 아주 사랑싸움에 머물러버린 것이고, 「해면(海面)」은 무명작가와 가정 내에서의 무능력의 묘사를 통하여 다소 지식인의 정신세계를 엿보려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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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석 씨의 「삼대」는 신세대론을 작품으로 옮기려는 번역심리(飜譯心理)에서 쓰인 것인데, 이러한 기도가 언제나 사상의 피상(皮相)을 핥는 결과를 보게 되는 것은 적지 않이 교훈적이었다. 「고고(孤高)」, 「제3의 우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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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백철 씨가 연래(年來)의 휴머니즘론과 사실수리설(事實受理說), 신세대론을 얽어서 작품화하였는데, 중편 「전망」이 그것이다. 논리만은 이해할 수 있는데 형상화된 설득력이 아니어서 역시 감명 깊은 독후감을 가질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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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만 씨가 오래간만에 「초종기(初終記)」와 희곡 한 편을 발표하였다. 에피소드를 좀더 정리하고 시대감각을 대담히 휘둘렀으면 싶다. 오는 일년을 기대함이 예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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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촉망을 받아오던 신진작가 세 분이 일치하게 1년 동안 임시휴업을 하였다. 최명익, 허준, 현덕 등 제씨다. 이들이 한해동안 이렇게 궁경(窮境)에 빠진 데는 그 전날의 씨 등의 작품으로 보아서 얼마간의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나, 씨 등이 노력을 게을리하였다는 것도 사실이 아닌가 한다. 최, 허 양씨의 침묵은 심리주의적인 모더니즘이나 성격과 심리와 문장의 데포르마시옹이 이제 청산기에 이른 것을 알려주는 것이며, 현씨의 궁경(窮境)은 ‘노마’소년의 심리를 떠나서 지나치게 한계를 넓혀 보려는 데서 생겨난 결과라고 보아진다. 오는 새해부터는 휴업의 표찰(標札)을 떼고 대방(大方)의 기대에 부(副)하도록 노력이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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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세 분이 쉬는 동안 최태응, 유항림, 이석징, 김영석, 함세덕, 황순원, 김사량 등 제씨의 신인이 새로이 등장한 것은 경하(慶賀)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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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이석훈, 이근영, 최정희, 함대훈, 장덕조, 이선희, 엄홍섭, 춘원, 회월, 임영빈, 최인욱, 김소엽, 석인해, 계용묵, 최인준, 박계주, 김진수, 제씨의 작품이 있으나 지면관계로 언급치 못하게 되어 독자와 작자에게 미안하다. 다른 기회를 엿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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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辰[경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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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평론』제14호, 1941년 1월)
【원문】산문문학의 일년간 (19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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