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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일운동(運動)의 사적(史的) 고찰(考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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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2
최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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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三[삼]·一[일] 運動[운동]의 史的[사적] 考察[고찰]
 
2
目[목] 次[차]
 
3
韓半島[한반도]의 環境[환경] 條件[조건]
4
北暴東頑[북폭동완]의 歷史的[역사적] 約束[약속]
5
侵略者[침략자] 日本[일본]과의 相對[상대] 關係[관계]
6
韓日[한일] 關係[관계]를 表象[표상]하는 說話[설화]
7
恒久的[항구적] 漸進的[점진적]의 侵略[침략] 形態[형태]
8
韓民族[한민족]의 傳統的[전통적] 反撥[반발] 作用[작용]
9
民族的[민족적] 完成[완성]과 世界的[세계적] 進出[진출]
 

 
 

1. 韓半島[한반도]의 環境[환경] 條件[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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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半島[한반도]의 地理的[지리적] 位置[위치]에는 陸橋性[육교성]이 있으니, 곧 大陸[대륙]과 海上[해상]의 사이에서 人物[인물]·文化[문화]·政治勢力[정치세력] 모든 것의 中繼[중계]·傳達[전달]을 소임으로 하는 約束[약속]이다. 곧 古代[고대]에 있어서 大陸[대륙] 여러 系統[계통]의 人民[인민]·文化[문화] 등이 半島[반도]를 經由[경유]하여 日本列島[일본열도]로 流入[유입]한 것, 中葉[중엽]에 있어서 蒙古[몽고]의 壓力[압력]이 高麗[고려]를 통하여 日本[일본]으로 加被[가피]한 것, 近世[근세]에 있어서 豊臣秀吉[풍신수길]이 朝鮮[조선]을 通路[통로]로하여 明[명]으로 侵入[침입]하려 하고, 明治[명치] 以後[이후]의 帝國主義[제국주의] 日本[일본]이 淸[청]과 俄[아]에 대한 兩戰役[양전역]을 半島[반도]에서 일으켜서 大陸政策[대륙정책]을 遂行[수행]하려 한 것 등등이 이 實例[실례]에 屬[속]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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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半島[한반도]는 歷史的[역사적] 位置[위치]에 있어서는 民族勢力[민족세력]의 交會點[교회점] 또 大陸[대륙] 風雲[풍운]의 醞釀點[온양점]에 逼近[핍근]해 있다. 亞細亞[아세아] 北東[북동]의 지금 滿洲[만주]·蒙古[몽고] 一帶[일대] 地域[지역]은 世界[세계]에 有數[유수]한 民族[민족] 興亡[흥망]의 歷史的[역사적] 舞臺[무대]니, 太古[태고]로부터 「퉁구스」·凶奴[흉노]·濊貊[예맥]·鮮卑[선비]·突厥[돌궐]·契丹[계단]·女眞[여진]·蒙古[몽고] 등 許多[허다]한 民族[민족]이 겨끔내기로 起蹶盛衰[기궐성쇠]의 두꺼비 씨름을 하여 風雲[풍운]의 變幻[변환]이 走馬燈[주마등]에서 甚[심]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民族勢力[민족세력]의 氣流[기류]는 그대로 얼른 影響[영향]을 韓半島[한반도]로 傳道[전도] 波及[파급]하여서, 大小强弱[대소강약] 어느 程度[정도]의 擾攘[요양]을 誘發[유발[하지 아니한 적이 없었다. 高句麗[고구려] 對[대] 漢[한]·魏[위]·五胡十六國[오호십륙국]·南北朝[남북조]·隋[수]·唐[당], 高麗[고려] 對[대] 遼[요]·金[금]·元[원], 李朝[이조] 對[대] 北虜[북로] 南倭[남왜]의 對抗[대항][ 現想[현상]이 다 이 關係[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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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上[이상]의 두 가지 條件[조건]이 合[합]하여 朝鮮[조선] 全歷史[전역사] 進行[진행]의 推進力[추진력]이 되어서, 朝鮮[조선]의 歷史[역사]를 國難[국난] 또 國難[국난]의 記錄[기록]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兩大[양대] 條件[조건]에는 또 幾多[기다]의 第二次性[제이차성] 特徵[특징]이 있음을 發見[발견]할 수 있다. 南方[남방]에 있어서는 陸橋性[육교성]이 더 顯著[현저]히 發揚[발양]되고, 北方[북방]에 있어서는 諸勢力[제세력] 交會性[교회성]이 더 强大[강대]히 作用[작용]된 現象[현상]이 그 一[일]이며, 北方[북방] 勢力[세력]의 半島[반도] 侵陵[침릉]은 대개 支那[지나] 中原[중원]으로 發展[발전]하려 하는 途程[도정]에서 혹시 半島[반도]가 後方[후방] 攪亂[교란]을 할까 보아 두려워해서 한때 氣[기]를 지르고 마는 것이어늘, 南方[남방] 海上[해상]에서 들어오는 놈은 半島[반도] 上陸[상륙]에서 興廢死活[흥폐사활]을 태워놓고, 所欲[소욕]을 滿足[만족]하고서 말려 하는 傾向[경향]을 가졌음이 또 一[일]이다. 三[삼]·一運動[일운동]의 史的[사적] 意義[의의]를 闡明[천명]함에도 먼저 이 基點[기점]에 注意[주의]함을 要[요]한다.
 
 
 

2. 北暴東頑[북폭동완]의 歷史的[역사적] 約束[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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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半島는 地理的[지리적] 또 歷史的[역사적] 理由[이유]로 해서 매양 周圍[주위] 民族[민족]의 보채는 가운데서 反撥[반발] 抵抗[저항]의 歷史[역사]를 만들어 나갈 運命[운명]에 있었으니, 이것이 半島[반도] 古人[고인]의 「北暴東頑[북폭동완]」이라고 이르는 바로서, 李朝[이조] 世宗朝[세종조]의 樂章[악장]에 「北暴東頑[북폭동완], 蒳疑慕義爭來[납의모의쟁래」라고 나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北暴[북폭]는 截片的[절편적]·間歇的[간헐적] · 個別的[개별적]임에 比[비]하여, 東頑[동완]은 一連的[일련적] · 恒久的[항구적]·累進的[누진적]임에서 相異性[상이성]을 가지고 있었다. 곧 北方[북방]의 勢力[세력]은 契丹[계단]이고 女眞[여진]이고 蒙古[몽고]가 각각 그 盛時[성시]에 한참 跳梁[도량]하다가 勢力[세력]이 消滅[소멸]하면 그만이어늘, 南方[남방]에서는 倭乃至[왜내지] 日本[일본]의 一勢力[일세력]이 千年[천년] 一貫[일관]의 對抗[대항] 關係[관계]로써 忽來忽去[홀래홀거]도 하고, 愈往愈甚[유왕유심]도 하면서, 全歷史[전역사]를 통해서의 運命的[운명적] 侵略[침략]을 反復[반복]하되, 그 傾向[경향]이 갈수록 深刻性[심각성]을 띠어오고 있다. 그래서 韓半島[한반도]의 國民生活[국민생활]은 언제든 이 方面[방면]의 脅威下[협위하]에 直面[직면]해 있지 아니하면 아니되고, 거기 대한 緊張[긴장]과 弛緩[이완] 如何[여하]를 말미암아 國家[국가]의 安危[안위]와 民族[민족]의 興廢[흥폐]가 左右[좌우]되는 約束[약속]을 가지고 있다. 國土[국토]와 國土[국토], 民族[민족]과 民族[민족]의 歷史的[역사적] 對抗[대항] 關係[관계], 특히 陸橋[육교] 現象[현상]에서의 그 類例[유례]를 考察[고찰]하건대, 西洋[서양] 古代史[고대사]에 있어서 羅馬半島[라마반도] 對[대] 카르타고 勢力[세력], 中世史[중세사]에 있어서 이베리아 半島[반도] 對[대] 사라센 勢力[세력] 같은 것이 있지만, 그 한참 抗爭[항쟁]하다가 한쪽이 거꾸러지면 그만 終了[종료]하는 것이로되, 韓半島[한반도] 對[대] 日本[일본]은 이와 反[반]하여 차지고 검질기게 언제까지고 繼續[계속]하고 끊이지 아니할 性質[성질]을 가지고 있다. 마치 歐羅巴[구라파] 史上[사상]에 있는 英[영]·獨[독]·佛[불] 相互[상호] 關係[관계]에 比[비]함직하고도 훨씬 深刻[심각]하여 强靭[강인]한 樣相[양상]으로 進行[진행] 또 持續[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3. 侵略者[침략자] 日本[일본]과의 相對[상대] 關係[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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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한] · 倭(日本[일본])의 交涉[교섭]은 물론 神話時代[신화시대]로부터 시작하고, 또 그때부터 이미 平和性[평화성]이 아니라 抗爭性[항쟁성]의 것으로 展開[전개]되어 나왔다. 日本[일본]의 神話[신화]는 말하기를 天地[천지]가 배포될 때에 日本[일본]의 島地[도지]에는 모자라는 部分[부분]이 있더니, 韓半島[한반도]에 남는 군데 있는 것을 끌어다가 日本[일본]의 國土[국토]를 完成[완성]하였다 하며, 또 말하기를 日本國[일본국]의 神話的[신화적] 始祖[시조]인 男妹中[남매중]의 男性者[남성자]는 金銀[금은] 있는 韓國[한국]의 寶貨[보화]를 가져오기 위해 배를 먼저 만들어야 하리라고 自己[자기]의 鬚髥[수염]과 體毛[체모]를 뽑아 땅에 심어 良材[양재]를 만들어 배를 지어 가지고 半島[반도]의 物貨[물화] 掠奪者[약탈자]로 活動[활동]하였다고 하며, 또 말하기를 韓土[한토]는 財國[재국]이요 寶國[보국]이요 豊國[풍국]이요 金銀之國[금은지국]이라 하여서 艶羨[염선]과 貪欲[탐욕]의 意思[의사]를 廣設[광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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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話時代[신화시대]를 지내고 傳說的[전설적] 擬原史期[의원사기]에 들어와서도, 日本[일본] 古籍[고적]에 보이는 韓日[한일] 交涉[교섭]은 통히 物資[물자] 關係[관계]의 事實[사실]이요, 그것을 武力的[무력적]으로 掠奪[약탈]함이 아니면 平和的[평화적]으로 交易[교역[한 經過[경과]를 敍述[서술]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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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의 誇設[과설]하는 一傳說[일전설]에 息長帶[식장대](이끼나가 다라시)라는 女主[여주]는 九州地方[구주지방]에 征討[정토]로 왔다가 神話[신화]를 들어 본즉, 「이 虛妄[허망]한 고장보다 越等[월등]히 나은 寶國[보국]이 美人[미인]의 蛾眉[아미]처럼 건너편에 있으니, 곧 눈이 부시는 金銀[금은] 彩色[채색]이 많이 있는 新羅國[신라국]이라, 가서 取[취]할지어다」하는지라, 이에 胎中[태중]은 몸으로 越海[월해] 遠征[원정]하여 新羅國[신라국]을 屈服[굴복]시키고 永遠[영원]한 物資[물자] 供給[공급]을 언약하게 하였다 하며(日本書紀[일본서기], 仲哀[중애] 八[팔]년), 또 一說[일설]에는 息長帶[식장대]가 新羅遠征[신라원정]을 나갈 때에 肥前[비전]의 松浦郡[송포군]에 이르러 어느 川邊[천변]에서 낚시를 던지면서 祈祝[기축]하여 가로되, 이번 新羅[신라]의 征伐[정벌]은 彼[피]의 財寶[재보]를 求[구]함이오니, 成功[성공]이 되겠거든 細鱗魚[세린어]가 내 낚시줄을 뭅시사고 하여서 그대로 되었다고도 한 것이 있다(肥前風[비전풍] 土記[토기]). 息長帶[식장대]는 新羅[신라] 征伐[정벌]의 成功[성공]에 依[의]하여 後[후]에 神功后[신공후]라는 尊稱[존칭]을 받았다고 하는데, 要[요]하건대 이 傳說[전설]은 女性[여성]이요, 胎中[태중]에서도 越海[월해] 寇掠[구략]을 行[행]한 것이 장하다는 意味[의미]에 不外[불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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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켜서 眞正[진정]한 原史期[원사기]에 들어와서는 日本[일본]의 記錄[기록]이 굉장히 떠들어 말하기를, 日本[일본]은 우리 洛東江[낙동강] 下流[하류]의 지금 金海[김해] 地方[지방]을 中心[중심]으로 하여 一勢力[일세력] 根據地[근거지]를 두고 新羅[신라]·百濟[백제]와 戰和[전화] 兩樣[양양]의 接觸[접촉]으로써 鐵[철]·米穀[미곡] 등 物資[물자] 取得[취득[을 行[행]하니, 이들 半島[반도] 諸國[제국]은 다투어 需要[수요] 物資[물자]를 貢賦[공부]와 같이 日本[일본]으로 船運[선운]하여서, 日本[일본] 當時[당시]의 國際港[국제항]인 難波[난파](곧 지금 大阪[대판 附近[부근])에는 半島[반도]의 船隻[선척]이 數百[수백]씩 碇泊[정박]해 있었다고 한다. 그 記錄[기록]대로 말을 하면, 金海[김해] 當時名[당시명]으로 任那[임나]에는 日本[일본]의 官府[관부]가 있었고, 半島[반도]의 物貨[물화]는 貢納[공납]의 形式[형식]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대개 貿易[무역]의 利[이]를 위하여 物貨[물화] 交易船[교역선]의 往來[왕래]가 퍽 頻繁[빈번]하였던 것인 양하다. 여하간 古代[고대] 韓日[한일]의 關係[관계]는 半島[반도] 物資[물자]의 需要[수요]를 本位[본위]로 하는 것이요, 半島[반도]의 物資[물자]와 아울러 모든 技術[기술]은 當時[당시] 日本[일본]의 絶對[절대]로 必要[필요]로 하는 經國濟民[경국제민]의 資料[자료]이던 것이다. 보통 國際[국제] 關係[관계]는 「기브 엔드 테이크」를 原則[원칙]으로 하는 것이지마는, 古代[고대] 韓日[한일]의 關係[관계]는 半島[반도]는 언제든지 「기브」의 편이요, 日本[일본]은 언제든지 「테이크」의 편이어서 어느 편이고 一方的[일방적]으로 생긴 變態性[변태성]의 關係[관계]였음이 注意[주의]된다.
 
 
 

4. 韓日[한일] 關係[관계]를 表象[표상]하는 說話[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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뺏고 빼앗기는 交涉[교섭] 關係[관계]가 平和[평화]로울 수 없으며 韓日[한일]의 사이는 많은 境遇[경우]에 주먹이 말을 하고, 그러노라면 相互[상호]의 感情[감정]이 險惡[험악]할 밖에 없다. 古代[고대] 韓日[한일] 關係[관계]를 表象[표상]하던 同一[동일]한 意匠[의장]의 傳說[전설]이 두 편에 하나씩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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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신라]의 古記[고기]는 가로되, 新羅[신라]의 國力[국력]이 아직 弱[약]할 第十七代[제십칠대] 奈勿王[내물왕]의 때에 一[일]○歲[세] 一子[일자] 美海[미해]를 日本[일본]에 보내어 둔 일이 있더니, 王[왕[]이 죽고 이를 訥祗[눌지]가 嗣位[사위]하여 그 아우를 생각해 마지않거늘, 歃良州[삽량주] 太守[태수] 朴堤上[박재상]이 自願[자원]해 日本[일본]으로 가서 倭王[왜왕]에게 臣服[신복]하는 체하고 美海[미해]를 몰래 뽑아 歸國[귀국]시키고 倭王[왜왕]에게 잡혀 問招[문초]를 받을 때, 堤上[제상]이 美海[미해]를 보낸 것이 新羅[신라] 臣子[신자]로서 當然[당연]한 일이라고 한대, 倭王[왜왕]이 성내어 가로되, 네가 日本[일본] 臣下[신하]된지 오래거늘, 新羅[신라]의 臣子[신자]라 함이 웬 말이뇨? 다시 新羅[신라]의 臣子[신자]라 하면 惡刑[악형]을 더할 것이요, 倭國[왜국]의 臣下[신하]라 하면 重賞[중상]을 주리라. 堤上[제상]이 가로되, 차라리 新羅[신라]의 犬豚[견돈]이 될지언정 倭國[왜국]의 重賞[중상]을 받지 않겠노라 하였다. 倭王[왜왕]이 더욱 怒[노]하여 갈대를 베어다가 쌓고 그 위로 달음질시키며, 鐵板[철판]을 달구고 그 위에 세우면서 拷問[고문]하되 마침내 屈服[굴복]치 아니하므로, 木島[목도]라는 곳에서 堤上[제상]을 불에 태워 죽였다. 堤上[제상]이 倭國[왜국]에 가서 죽고 돌아오지 못하매, 그 妻[처]가 慶州[경주] 동편의 東海[동해]를 내려다보는 鵄述嶺[치술령]에 올라가서 望哭[망곡]하다가 죽으니, 新羅人[신라인]이 이 嶺上[영상]에 그의 祠堂[사당]을 지어 崇祀[숭사]하였다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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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일본]의 古籍[고적]에는 가로되, 新羅[신라]의 眞興王[진흥왕] 때에 國力[국력]이 充實[충실]하여, 任那[임나](곧 駕洛[가락])諸國[제국]이 壓迫[압박]을 받고 任那[임나]에 駐在[주재]해 있던 日本[일본] 官吏[관리]끼리의 사이가 좋지 못하여 마침내 眞興王[진흥왕] 二三[이삼]년에 任那[임나](駕洛[가락])國[국]이 新羅[신라]로 倂呑[병탄]되고 日人[일인] 多數[다수]가 新羅軍[신라군]에게 捕虜[포로]되었다. 이때 倭俘中[왜부중]에 調伊企儺[조이기나](쓰기노이기나)란 者[자]가 있어 爲人[위인]이 勇烈[용렬]하므로, 마침내 新羅[신라]에 降伏[항복]하지 않고, 新羅[신라]의 將[장]이 칼을 빼어 목베려 하면서 伊企儺[이기나]의 옷을 벗기고 궁둥이를 日本[일본]으로 대고 日本王[일본왕]아, 내 궁둥이를 먹어라 하라고 한대, 伊企儺[이기나]가 도리어 소리질러 가로되, 新羅王[신라왕]아, 내 궁둥이를 먹어라 하는지라, 다시 拷問[고문]을 더하되 여전히 그렇게 하므로, 마침내 죽여 버렸다. 伊企儺[이기나]의 妻[처] 大葉子[대엽자](오호바고)도 사로잡혔더니, 이것을 보고 「韓國[한국]의 海邊[해변]에 서서 나는 祖國[조국]을 向[향]하여 수건을 내두르노라」하는 意趣[의취]의 노래를 지어 불렀느니라고 하였다.
 
25
이 두 이야기가 얼마만큼 事實[사실]이요, 얼마만큼이 附益[부익]인지를 알 수 없지마는, 대개 兩國民[양국민]의 敵愾心[적개심]으로부터 이러한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만들어서 서로 옮기고 용을 쓴 것이 當時[당시] 韓日間[한일간]의 國際[국제] 空氣[공기]이던 것이다.
 
 
 

5. 恒久的[항구적] 漸進的[점진적]의 侵略[침략] 形態[형태]

 
27
韓日[한일]의 國際[국제] 交涉[교섭]은 遠古[원고]로부터 이렇게 平穩[평온]스럽지 못하게 開始[개시]되어서, 日本[일본]이 언제든지 掠奪者[약탈자]·侵擾者[침요자]로서 韓國[한국]을 보채어 옴이 그 常態[상태]이었다. 新羅末[신라말]로부터 高麗朝[고려조]에 걸쳐서 半島[반도]의 物資[물자]가 平和的[평화적]으로 需用[수용]되면 貿易[무역] 形態[형태]에 滿足[만족]도 하지마는, 어떠한 事情[사정]으로 需給[수급] 關係[관계]가 圓滑[원활]치 못한 때에는 그네는 금새 일어나 海賊[해적]의 形態[형태]로 우리의 民生[민생] 또 國家[국가] 經濟[경제]를 脅威[협위]하기를 忌憚[기탄]치 아니하였다. 이러한 反商半賊[반상반적]의 關係[관계]가 오래 持續[지속]되다가 高麗[고려] 第三[제삼]○代[대] 定王[정왕] 以來[이래]로 李氏朝鮮[이씨조선] 第四代[제사대] 世宗朝[세종조]에 걸치는 七[칠]○여 년 동안에 그 社會的[사회적] 內情[내정]에 因[인]하여 武士階級[무사계급] 多數[다수]가 盜賊[도적]으로 轉業[전업]하고, 그 餘勢[여세]가 바다 건너 我國[아국]으로 波及[파급]한 것이 史上[사상]의 이른바 倭寇[왜구]란 것이었다. 우리 世宗[세종] 前後[전후]에 一面[일면] 威壓[위압], 一面[일면 懷柔[회유]의 政策[정책]이 功[공]을 奏[주]하여, 倭寇[왜구]의 患[환]이 韓半島[한반도]로부터 遠離[원리]하였으되, 오히려 中宗[중종]·明宗間[명종간]의 여러 번 突發的[돌발적] 倭變[왜변]이 있었으며, 朝鮮[조선]에 內部分裂[내부분열]이 있을 때에 日本[일본]에는 豊臣秀吉[풍신수길]이라는 統一者[통일자]가 났었기 때문에 宣祖朝[선조조]에 壬辰[임진] 以後[이후] 七[칠]년간의 大兵亂[대병란]이 일어났었지마는, 朝鮮[조선]과 大陸勢力[대륙세력]과의 聯合軍[연합군]이 이를 防止[방지]하여 日本[일본]의 大陸[대륙] 野慾[야욕]이 할 수 없이 幻滅[환멸]되고 말았다.
 
28
그러나 壬辰亂[임진란]의 終局[종국]은 결코 韓日[한일] 相衝[상충] 關係[관계]의 消滅[소멸]을 意味[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亂後[난후]에도 日本[일본]의 前衛[전위]인 對馬[대마]·壹岐[일기]의 島衆[도중]은 依然[의연]히 釜山[부산]의 一角[일각]에 着足點[착족점]을 가지고서 平和[평화] 擬態[의태]의 勢力[세력]을 扶殖[부식]해 내려오다가 그 明治[명치] 以後[이후]의 國力[국력] 充實[충실]을 契機[계기]로 하여 가장 厚[후]한 根基[근기]와 大[대]한 規模[규모]의 大陸政策[대륙정책]이 半島[반도]를 橋頭堡[교두보]로 하여서 着着[착착]히 展開[전개]하였다. 丙子修護條規[병자수호조규]로써 壬午[임오]·甲申[갑신]의 政變[정변]에 걸쳐서 먼저 半島[반도] 政治[정치]에 대한 容喙權[용훼권]을 얻고, 다음 甲午[갑오] 淸日戰[청일전]으로써 淸國[청국]의 羈絆[기반]을 끊고, 다시 甲辰[갑진] 俄日戰[아일전]으로써 俄國[아국]의 勢力[세력]을 쫓고 一段一段[일단일단] 足臺[족대]를 높여서, 드디어 庚戌[경술] 韓日合邦[한일합방]이라는 結果[결과]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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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가 注意[주의]할 것은 우리 三國時代[삼국시대]에 있어서는 日本[일본]의 勢力[세력]이 半島[반도] 南岸[남안]에 기어올랐다가 쫓겨갔으며, 高麗時代[고려시대]에는 倭寇[왜구]로서 半島[반도] 腰部[요부]까지의 沿岸[연안]을 못견디게] 굴다가 말았으며, 壬辰亂[임진란]에는 그 진흙발이 西[서]에선 平壤[평양], 北[북]에선 會寧[회령]까지 밟았다가 물러난 것처럼, 그 侵略[침략]은 間斷[간단]없는 連續[연속]이며 一段[일단] 又[우] 一段[일단]의 漸進[점진]인 點[점]인데 韓日合邦[한일합방]은 곧 수천 년 營營不息[영영불식]하던 半島[반도] 呑噬탄서]의 兇圖[흉도]가 한때 全面的[전면적]으로 成功[성공]한 것을 意味[의미]하는 것이다.
 
 
 

6. 韓民族[한민족]의 傳統的[전통적] 反撥[반발] 作用[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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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조선]이 漢[한]의 武帝[무제], 魏[위]의 公孫氏[공손씨], 隋[수]의 煬帝[양제], 唐[당]의 太宗[태종] 以下[이하] 遼[요]·金[금]·元[원]·淸[청]의 侵略[침략]을 내리 받아왔으되, 畢竟[필경]은 外交的[외교적] 方法[방법]으로 卑己續命[비기속명]하는 結果[결과]에 그칠 따름이나, 長久[장구] 許多[허다]한 異民族[이민족] 抗爭[항쟁]에서 처음 經驗[경험]하는 바였다. 그런데 가장 寧嫌功憎[염혐공증]으로 내려오는 日本[일본]에게 當[당]하고 또 가장 狡詐[교사]하고 奸滑[간활]한 方法[방법]으로 當[당]하고, 또 그 結果[결과]에 있어서 國家[국가] 人民[인민]으로서의 一切[일체] 全般的[전반적] 權利[권리] 喪失[상실]·機會[기회] 杜塞[두색]이라는 深刻[심각] 透徹[투철]한 形態[형태]로 當[당]하였다. 이것은 朝鮮人[조선인]이 아닐지라도 可[가]히 堪耐[감내]할수 없는 일이겠거든 隋[수]를 薩水[살수]에서, 唐[당]을 安市城[안시성]에서, 契丹[계단]을 通州[통주]엣, 蒙古[몽고]를 龜州[귀주]에서 낙자없이 擊退[격퇴]하고, 壬辰[임진]·丁酉[정유]의 七[칠]년 大亂[대란]에 敵[적]의 一帆一卒[일범일졸]을 西海[서해]로 내보내주지 아니한 빛난 傳統[전통]을 가진 韓國民[한국민]이 이 日本[일본] 帝國主義[제국주의]의 毒禍[독화]를 어떻게 忍住[인주]하며 對應[대응]하려는 가는 진실로 歷史的[역사적] 意味[의미]에서 특히 注目[주목]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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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韓國[한국]과 日本[일본]과의 政治的[정치적]·軍事的[군사적]·經濟的[경제적]·國際的[국제적] 勢力[세력]을 比較[비교]해 볼 때에, 韓國[한국]의 遺民[유민]이 능히 얼마만한 反撥力[반발력]을 發揮[발휘]할까, 日本[일본]의 山岳[산악] 같은 壓制力[압제력]과 數罟촉고] 그물 같은 警察網[경찰망]에서 이를 무릅써 가면서 韓人[한인]이 얼마만한 民族精神[민족정신]을 宣揚[선양]할까, 이를 보통의 數學的[수학적] 物理學的[물리학적] 公式[공식]으로는 아무도 明快[명쾌]하게 算出[산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른바 一[일]○五人[오인] 事件[사건]을 始[시]로 하여 有實無實[유실무실]을 莫論[막론]하고 日本人[일본인]의 韓人[한인]에 대한 神經攻勢[신경공세]가 가장 慘刻[참각]한 形態[형태]로 續行[속행] 無休[무휴]하는 중에서 韓人[한인]된 者[자]가 常性[상성] 平心[평심]도 維持[유지]해 갈 수가 없거늘, 이러한 最惡條件[최악조건]의 下[하]에 民族精神[민족정신] 내지 政治運動[정치운동]이라는 것이 勃發[발발]하며, 또 능히 熾盛[치성]한다고 하는 것은 도리어 奇蹟[기적]에 가깝다고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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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韓國民[한국민]은 合邦[합방] 以後[이후]에 특별한 指導者[지도자]가 있는 것도 아니요, 따라서 一定[일정]한 企劃案[기획안]의 선 것이 없은 채로, 혹은 地下[지하], 혹은 海外[해외], 혹은 당당한 社會[사회] 表面[표면]에서 强靭[강인]하고 勇敢[용감]한 光復運動[광복운동]을 推進[추진]하여, 드디어 一[일]○년이 못 되는 短時日[단시일] 안에 맨손으로 말만으로 「朝鮮[조선]은 獨立國[독립국]이요, 朝鮮人[조선인]은 自由民[자유민]이라」는 상청목을 世界[세계]에 向[향]하여, 宇宙[우주] 公空[공공]에 向[향]하여 大聲高唱[대성고창]하였다. 그 心中[심중]에 大砲[대포]도 軍艦[군함]도 없었으며, 그 眼中[안중]에 帝國主義[제국주의] 日本[일본]도 資本主義[자본주의] 世界[세계]도 없었으며, 오직 있는 것은 歷史的[역사적] 根據[근거]와 道義的[도의적] 推進力[추진력]을 背景[배경]으로 하는 正當[정당]한 政治權[정치권]·生存[생존] 發展權[발전권]의 要求[요구] 하나 뿐이었다. 이 運動[운동]의 準備[준비]·經過[경과]·影響[영향] 등에 관한 것을 여기 煩提[번제]할 것이 없으며, 이 摩訶不可思議[마하불가사의]할 大運動[대운동]어떻게 日本[일본]의 心膽[심담]을 써늘하게 하고, 世界[세계]의 耳目[이목]을 聳動[용동]하였던지는 거의 想像[상상]에 絕[절]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默想[묵상]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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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人[조선인] 韓國民[한국민]의 性德[성덕]에는 무론 남과 같이 長點[장점]도 있고 短處[단처]도 있고 또 特質[특질]도 있다. 그중에서도 異民族[이민족]의 侵陵[침릉]에 대한 反撥性[반발성]·抵抗力[저항력]·國民的[국민적] 責務[책무] 完遂[완수] 意識[의식]에서는 진실로 世界[세계]에 類例[유례]를 보기 어려울 만큼 獨特[독특] 卓越[탁월]한 力量[역량]을 가진 것이 歷史[역사]에도 많은 證迹[증적]을 머물러 있거니와, 특히 日本[일본]에 대해서 그러하고, 또 특히 三[삼]·一運動[일운동]에 있어서 그러함을 確認[확인]치 아니하지 못할 것이다. 日本[일본]이 半島[반도]의 物資[물자]를 必要[필요]로 하고, 또 그 大陸[대륙] 發展[발전]의 意慾[의욕]을 버리지 않기까지 韓日[한일]의 交涉[교섭]에는 今後[금후]에도 許多[허다]한 摩擦[마찰]과 衝突[충돌]과 死活的[사활적] 鬪爭[투쟁]이 있겠지마는, 우리의 傳統[전통] 精神[정신]인 外力[외력] 反撥[반발]·自主[자주] 擁護[옹호]의 潛在力[잠재력]은 그때마다 猛烈[맹렬]히 涌起[용기]하여, 그를 排擊[배격] 退散[퇴산]하고 말기를 壬辰亂[임진란]·三[삼]·一運動[일운동]에서와 같은 것을 우리는 歷史[역사]의 등불에서 證明[증명]하며 信認[신인]하는 者[자]이다.
 
 
 

7. 民族的[민족적] 完成[완성]과 世界的[세계적] 進出[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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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上[이상]에서 우리는 三[삼]·一運動[일운동]의 主要[주요]한 史的[사적] 意義[의의]의 一端[일단]을 考察[고찰]하였거니와, 그 史的[사적] 意義[의의]가 여기 그치는 것 아님은 勿論[물론]이며, 이는 今後[금후] 두고두고 史學家[사학가]의 硏究[연구] 發明[발명]으로써 갈수록 範圍[범위]와 深度[심도]가 增加[증가]되어 갈것을 期待[기대]해야 될 것이다. 이왕이니 여기 그 對象[대상]될 一[일], 二名目[이명목]만을 附記[부기]하건대, 三[삼]·一運動[일운동]은 朝鮮民族[조선민족]의 完成[완성]을 意味[의미]하는 것이다. 朝鮮人[조선인]이 民族[민족]이라는 自覺[자각]을 가지게 되기는, 벌써 千累百年[천누백년] 前[전]에 漢民族[한민족]이 半島[반도]의 복장을 奪佔탈점]하여 四郡[사군] 또 二郡[이군]을 두고, 그전에 모르던 壓迫[압박]을 받은 때에 있었지마는, 그 以後[이후]에는 民族感情[민족감정]의 洗鍊[세련] 또 昇華[승화]할 機會[기회]가 充足[충족]하지 못하여서 新羅[신라]에서나 高麗[고려]에서나, 다 民族[민족] 一致[일치]의 實[실]을 나타낸 일이 없었으며, 더욱 李朝[이조]에 들어와서는 여러 가지 黨論[당론] 關係[관계]로 國內[국내]가 幾多[기다] 小獨立國[소독립국]의 對峙相[대치상]을 나타내고, 또 班[반]과 常[상], 嫡[적]과 庶[서], 文[문]과 武[무], 貧[빈]과 富[부] 등으로 쪽쪽이 分裂[분열]되어 있었는데, 三[삼]·一運動[일운동]에 있어서는 千枝萬派[천지만파]의 差異相[차이상]이 온통 깨끗이 泯絶[민절] 消滅[소멸]되고서, 다만 通日渾一[통일혼일]한 一朝鮮人[일조선인]으로서 조금도 빈틈 없는 民族自決[민족자결]의 意思[의사]를 表示[표시]하였다. 表裏[표리]는 好惡[호오]도 黑白[흑백]도 다 없는 一朝鮮民族[일조선민족]의 融合體[융합체]를 나타내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觀點[관점]에서 나는 三[삼]·一運動[일운동]을 朝鮮人[조선인]이 透徹[투철]한 民族的[민족적] 完成[완성]을 實現[실현]한 時期[시기]로서 重大視[중대시]하고자 하는 者[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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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朝鮮[조선]은 三世紀[삼세기]도 더 以前[이전]으로부터 世界[세계]로 더불어 聲息[성식]을 通[통]하고, 最近世[최근세]에 이르러서는 丙子修好[병자수호]로써 開國[개국]을 行[행]하고, 甲午更張[갑오경장]으로써 近代的[근대적] 體制[체제]를 採用[채용]하고, 더욱 韓日合邦期[한일합방기]에는 世界色[세계색]·近代色[근대색]이 꽤 많이 浸透[침투]도 되었다 하겠지마는, 이는 다 部分的[부분적]이요 被動的[피동적]이요, 自然[자연] 趨勢的[추세적]의 것이요, 참으로 朝鮮人조선인] 自身[자신]이 世界[세계]와 손을 잡고 呼吸[호흡]을 通[통]하려는 積極的[적극적] 態勢[태세]를 取[취]했다 할 事實[사실]은 아직은 있어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三[삼]·一運動[일운동]의 動機[동기]·過程[과정]은 完全[완전]히 世界的[세계적]·世界[세계] 歷史的[역사적] 潮流[조류]에 合一[합일]한 것이며, 특히 朝鮮人[조선인] 自身[자신]이 自進[자진]하여 世界[세계]의 大勢[대세]를 認識[인식]하고 그것을 把握[파악]하여다가 내 民族生活[민족생활]·國家運命[국가운명]에 適用[적용]·利用[이용]·活用[활용]한 點[점]에서 特異[특이]한 意味[의미]를 가지는 大事實[대사실]이다. 이것은 마땅히 朝鮮民族[조선민족] 生活史[생활사] 또 思想史[사상사]의 上[상]에 大書特筆[대서특필]되어야 할 現象[현상]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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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삼]·一運動[일운동]은 참으로 歷史的[역사적] 大事件[대사건]으로서, 그 經遇[경우]와 意義[의의]는 모름지기 多角[다각]·多面[다면]·多樣[다양]으로 剖析[부석]·綜合[종합]·闡明[천명]됨을 要[요]할 것이며, 이 簡素[간소]한 一文[일문]이 그 一隅[일우] 一端[일단]을 擧似[거사]치 못하였음은 따로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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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九五四年[일구오사년] 二月[이월] 月刊[월간] 現代公論[현대공론]>
【원문】삼·일운동(運動)의 사적(史的) 고찰(考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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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남선(崔南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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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7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