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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대장(訓練大將)과 총각(總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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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 2
최남선
1
訓練大將[훈련대장]과 總角[총각]
 
 
2
貞翼公[정익공] 李浣[이완]이 孝宗大王[효종대왕]의 특별하신 신임을 받자와, 북벌 ── 淸國[청국] 들이칠 계획을 진행할새, 먼저 인재를 얻어야 하겠으므로 비록 길로 지날 적에도 사람의 모습이 비범한 것을 보면, 반드시 집으로 데려다가펴 수작을 해 보아서 그 인품대로 조정에 천거하여 벼슬을 시켰다.
 
3
한번은 훈련대장으로 受由[수유]를 해 가지고 성묘를 내려갈새, 行[행]하여 龍仁[용인] 땅에 이르니, 한 주막집에 나이 三○[삼공]쯤 되어 보이는 총각 하나가 있어, 신장이 거의 一○[일공]척은 되고, 면장이 一[일]척은 하고, 몸은 여위어 홀쭉하고, 머리는 다박다박 푸수한데, 베잠방이로 겨우 앞만 가리고서 흙 봉당에 앉아서 뚝배기로 막걸리를 퍼먹기를 고래가 물켜듯 하거늘, 공이 마상에서 언뜻 보고 이상히 여겨서, 말에서 내려서 어느 등성이에 앉고 사람을 시켜 그 총각을 불러오라 하니, 총각이 와서 예도 없고 그냥 덜퍽 돌 위에 걸터앉았다.
 
4
공이 성명을 물은대, 대답하여 가로되
 
5
「성은 朴[박]가요 이름은 鐸[탁]이올시다」
 
6
또 묻되,
 
7
「너의 지체는 어떠하냐?」
 
8
대답하여 가로되
 
9
「양반이올시다. 다만 일찍 부친이 돌아가시고 편모 시하에 집이 구차하여 나무를 져다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합니다」
 
10
또 묻되,
 
11
「네가 술을 잘 먹으니 더 먹겠느냐?」
 
12
대답하여 가로되
 
13
「없어서 못 먹지요」
 
14
공이 하인을 시켜 돈 몇 꾸러미를 가지고 가서 술을 사 오라 하여, 이윽고 술 두 동이가 오거늘, 공이 한 대접 떠 먹고 총각더러 먹으라 하니, 그 총각이 조금도 사양하는 일이 없이 거푸 두 동이를 쭉 들이켰다.
 
15
공이 가로되
 
16
「네가 비록 초야에 파묻혀 구차에 쪼들렸을 법하되, 골격이 비범하니 크게 쓰일 만한 사람이다. 네 혹시 내 이름을 들었느냐. 나는 훈련 대장 李[이] 아무로다. 나라에서 바야흐로 대사를 경영하사, 널리 장수감을 찾으시나니, 네가 민일 나를 따라가면 부귀를 쉽게 이루리라」
 
17
총각이 가로되,
 
18
「노모가 집에 계시매, 이 몸을 남에게 허락하지 못하겠읍니다」
 
19
공이 가로되,
 
20
「그렇겠다. 그러면 내가 가서 너의 어머니께 뵙고 말씀할 것이니, 나를 데리고 가자」
 
21
하여, 行[행]한 지 一○[일공]여리에 그 집을 당도하니, 數間[수간] 斗屋[두옥]이 풍우도 가리지 못하는 집인데 총각이 먼저 들어가더니, 한참만에 나와서 헌 자리 한 장을 싸릿문 밖에고, 뒤좇아 늙은 아낙네 한 분이 나오는데 헙수룩한 머리에 베옷을 입고, 나이는 六○[육공]이나 됨직하였다.
 
22
서로 자리를 사양하다가 앉아서 공이 가로되,
 
23
「나는 훈련대장 李[이] 아무로, 성묘를 내려가다가 길에서 이 총각을 보고 일면에 그 비범함을 알았으니, 아주머니께서 아드님 잘 두신 것을 못내 치하합니다」
 
24
노부가 옷깃을 훌치며 대답하여 가로되,
 
25
「시골 구석 아비 없는 자식이 글자하나 배우지 못하였으니, 山禽野獸[산금야수]나 다른 것이 없거늘, 대감이 과도히 칭찬하시니 도리어 부끄럽습니다」
 
26
공이 가로되,
 
27
「아주머니께서도 혹시 들으셨을지 모르거니와, 조정에서 시방 대사를 경영하사 인재를 널리 구하시는데, 내가 이 총각을 보고 그대로 작별하고 갈 수 없어서 함께 가서 공명을 도모하자 한즉, 이 총각의 말이 어머니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그리할 수 없다 하기로, 시방 친히 와서 말씀을 하는 것이니 의향이 어떠실는지요?」
 
28
노부 가로되,
 
29
「鄕曲[향곡]의 무식한 아이가 무슨 주제에 대사를 감당하오리까」
 
30
하고 굳이 사양하는 것을 여러 번 간청하여 기어이 서울로 데리고 와서 詣闕(예궐)하여 請對[청대]를 하였다.
 
31
孝宗[효종]께서 들어오라 하여 분부하시기를
 
32
「卿[경]이 성묘를 내려간다 하더니, 어째 어느 새 돌아왔느뇨」
 
33
대답하여 가로되,
 
34
「소신이 시골 내려 가는 길에 一奇男子[일기남자]를 만났기로, 우선 데리고 왔읍니다」
 
35
상감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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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얼른 入侍[입시]를 시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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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들어오는 것을 보신즉, 떠꺼머리 총각의 한 걸인인데, 그냥 바로 榻前(탑전)으로 들어와서 예도 없이 덜컥 앉는지라, 상감께서 웃고 하교시기를
 
38
「네 몸이 어째 저리 여위냐」
 
39
대답하여 가로되,
 
40
「사내 자식이 세상에 不得志[불득지]를 하니 여위지 않을 수가 있읍니까」
 
41
上[상]이 가라사대
 
42
「그것 한 마디가 이미 기이하고 장하다」
 
43
하시고, 李公[이공]을 돌아보아 가라사대
 
44
「그래, 무슨 벼슬을 시킬고?」
 
45
하시거늘, 李公[이공]이 여쭈어 가로되,
 
46
「이 아이가 아직 山禽野獸[산금야수]의 태를 면치 못하오니, 신의 집에 데려다가 두고 온갖 범절을 가르친 뒤에나 벼슬을 물으올까 합니다」
 
47
上[상]이 그러라 하셔서 李公[이공]이 집에 데려다가 항상 좌우에 두고 세상 물정과 행세하는 법으로부터 정치·병법까지를 연방 가르치니, 원채 바탕이 있는지라, 聞一知十[문일지십]에 日就月長[일취월장]하여, 어언간 딴 사람이 되었으며, 上[상]께서 李公[이공]을 보시는 족족 朴鐸[박탁]의 성취가 어떻게 되어 가느냐고 물으시면, 李公[이공]은 반드시 멀지 않아 큰 인물이 됩니다고 여쭈어 오기를 周年[주년]이 되었다.
 
48
李公[이공]이 매양 朴鐸[박탁]으로 더불어 북벌 ── 淸國[청국] 들이 칠일을 의논하면 그 出謀發慮[출모발려]가 훨씬 李公[이공]보다 뛰어나니, 李公[이공]이 크게 기이하게 여겨, 장차 조정에 말씀하여 크게 쓰려 할 참에, 시운이 불행하여 孝宗大王[효종대왕]께서 그만 돌아가시니, 朴鐸[박탁]이 혼자 하늘 무너지는 설움을 당한 듯이 사람을 따라 哭班[곡반]에 참여하여 통곡하기를 말지 아니하고, 因山[인산]의 예를 다 지나매 李公[이공]께 하직을 고하니, 李公[이공]이 가로되,
 
49
「네가 어찌 나를 버리고 간다는 말을 하느뇨?」
 
50
朴鐸[박탁]이 가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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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감 은덕과 정리를 어찌 모르오리까마는 제가 세상에 나오기는 부귀 공명을 생각한 것 아니라, 영웅의 聖主[성주]가 위에 계시기로 한번 큰 일을 해 보자 함이러니, 시운이 이미 이렇게 된 바에 세상에 머물러 있어 무엇하오리까. 차라리 시골로 들어가 노모 봉양에나 전심하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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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 길로 눈물 뿌려 하직하고 돌아가, 어머니를 모시고 깊은 峽中[협중]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되었는지를 모른다. 宋尤菴[송우암]이 항상 사람들을 대하여 이런 말을 하고 차탄하기를 말지 않았다.
 
 
53
하는 이야기가 있읍니다. 국가의 世祿之臣[세록지신]과 허다한 양반의 자식에는 내어 쓸 만한 인물이 없고, 비렁뱅이 총각에 도리어 보배 구슬이 있었다 하는 풍자적 설화입니다. 李浣[이완] 대장이 사람 찾으러 다니는 이야기는 이 외에도 퍽 많습니다. 每期[매기] 북벌을 하자고 보니 그 일을 담당할 인물이 없더라는 사실을 반영하는 이야기들입니다.
 
54
민중의 이러한 감정 ── 북벌 북벌 하고 공연히 입으로만 떠들다가 孝宗大王[효종대왕]이 돌아가시기 때문에 모든 허물이 감추어진 것을 비웃고 딱하게 아는 민중의 감정이 이야기의 형식을 빌어서 이렇게 발표된 것이라 할 것입니다. 민중의 이렇게 억울한 회포를 죄다 모아 독 안에다 넣고 白炭[백탄] 숯불에 팔팔 끓여 고갱이만을 뽑아서 굳힌 것이 유명한 許生[허생]의 이야기입니다.
 
55
허생의 이야기가 大文豪[대문호] 朴燕岩[박연암]의 붓끝에 들어가서는 몇 층 더 雄渾[웅혼]한 내용과 몇 등 더 沈博[침박] 한 辭說[사설]이 되어서, 조선 文苑[문원]의 빛난 보옥을 이루었지마는, 〈溪西野談[계서야담]〉에는 다만 丙子年[병자년] 원수를 갚을 만한 정말 실력을 가진 사람이 기틀을 잡지 못하여 샌님으로 지내다가 마침내 천하라도 뒤흔들 큰 경륜을 가져다가 기생방 구석과 장돌뱅이 틈에 좀장난으로 녹여버리는 一[일]비극적 설화로 전하여 있읍니다. 그 자세한 말씀은 이미 여쭐 시간이 없읍니다.
 
 
56
〈一九二九年[일구이구년] 二月四日[이월사일] ∼ 十五日[십오일] 每日申報[매일신보]〉
【원문】훈련대장(訓練大將)과 총각(總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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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훈련대장과 총각 [제목]
 
  최남선(崔南善) [저자]
 
  야담(野談) [출처]
 
  1929년 [발표]
 
  설화(說話)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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