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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 20세 내외의 꿈꾸는 듯한 눈동자를 가진 청초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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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의 차부, 방물장사, 행랑어멈, 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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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 막이 열리면 화려한 중류 이상 가정 대청의 중앙 둥그런 탁자위에는 살구 꽃병이 놓여 있으며 좌우 옆에 벽을 의지하여 책을 가득가득 담은 책상들이 가즈런히 놓여 있고 동편으로는 큰방으로 가는 미닫이 덧문이 보이고 서편으로는 건넌방에 들어가는 미닫이와 둥그런 들창이 있다. 그 외에 뜰 아래로 중문과 부엌문도 있다. 대청 너머로 보이는 후원에는 살구꽃과 개나리가 난만히 피어 있으며 멀찍이 테를 잡은 벽돌담 밑에는 드물게 선 수양이 푸른 실을 느럭느럭 흔들고 봄새의 지저귀는 소리조차 노곤하다. 침모는 총채를 들고 책장과 탁자와 미닫이를 부지런히 털고 다니고 주인은 조선옷을 입고 탁자 가를 슬리퍼도 신지 않은 채 미심한 일이 있는 듯 거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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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그래 아씨 말씀이 이제부터는 안잠자기도 두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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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모 네. 그런 비용으로 더 공부하실 책을 사시든지 사회사업을 하신다고 하시면서 저더러도 마땅한 곳을 구해서 나가라고 하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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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그러면 살림살이를 손수 할 터이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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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모 그야 유모가 아직 늙지 않으셨으니까 그를 믿으시는 모양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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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그렇다 하더라도 내 의복은 어찌할 모양인고? 자기는 여학생 기분을 버리지도 않고 공부할 생각만을 가지고 있으면. (조끼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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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모 아마 나리께서는 양복만 입으시도록 하실 모양이신가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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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한심스러운 얼굴로 담배를 피우며 말없이 탁자 근처를 거닐고 있다)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자 처녀답게 청초한 복장을 한 아내가 조용히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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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반갑고 놀라운 얼굴로) 아 ― 기정이 어디를 갔다 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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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주인의 말에는 대답 없이 대문 밖을 내어다보고) 차부 그 책을 이리 들여다주. (명령한 후 천천히 댓돌 앞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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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부 (책을 한 아름 들고 들어와서) 어디 놓으랍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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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관후한 얼굴로) 응 책인가 이 마루 끝에 갖다 놓아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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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부 (책을 마루 끝에 놓고 땀을 씻으며, 사치한 집 장식을 돌아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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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부 종로에서 옵니다. (주인은 포켓트에서 돈을 꺼내 차부를 주니 차부 절을 하며 받아 가지고 나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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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차부가 돈 받아가는 것을 댓돌 위에 서서 바라보다가 말없이 구두를 벗고 건넌방 문 앞을 바라보며) 침모 저기 있는 슬리퍼 좀 집어다 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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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모 아이 참 또 잊어버렸습니다그려 외출하신 때는 마루 앞에 놓아두라고 하시던 것을 저는 정신이 그렇게 없답니다. (미안한 말을 하면서 건넌방 앞에 놓여 있던 빨간 슬리퍼를 집어다가 아내가 올라서려고 하는 마루 끝에 놓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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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차부가 갖다놓은 책을 이 책 저 책 펼쳐보다가) 여보 기정이 당신은 퓨리턴[淸敎徒(청교도)]이라도 되려는 셈이요? 여기 책들은 죄다 히브리의 주의(主義)의 서류들의 아니요 (아내 말없이 건넌방 앞으로 가서 방문을 열려고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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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여보 기정이 너무도 냉정하구려. 무슨 일로 노여웠기에 사람이 세번 네 번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단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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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괴로운 듯이 뒤를 돌아다보며) 왜 그러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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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괴로운 웃음을 띠고) 흥 오늘은 당신의 제일 첫 애인인 김춘영군을 만났구려. 그러니까 오늘만은 나도 당신의 금욕주의 연애 신성을 존경하여드릴 터이요. 하지만 과도한 침묵주의만은 더 참지를 못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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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대단한 노기를 ( 얼굴에 띠고) 무엇이라고요? 나는 책사에 갔다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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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여보 기정이 당신은 포군[暴君]같구려. (말을 마치고 다 탄 담배를 탁자 위 재떨이에 던지는 체하며 댓돌 옆에 내려서 있는 침모에게 눈짓을 한다. 침모는 부엌으로 들어가버린다. 주인 다시 돌아서며) 비록 이름뿐인 남편일지라도 내가 있는 이상 당신이 홀로 나아가 다니면서 설마 다른 남자와 밀회를 하였으리라고는 생각이 안 되오마는 당신이 전일부터 존경하는 주인 ― 나는 김춘영 군이 히브리주의자일지라도 당신이 하필 그 참혹한 이중생활을 본받을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이요? 김 군이야말로 참 영리한 남자이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주위의 인심을 잃지 않기 위하여서 더욱이 뭇사람의 동경이 초점이 되는 여자의 마음을 즐겁도록 조종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길 것이요. 그런 사람이 당신이 내게 하듯이 그 처자에게 냉혹히 하리라고는 생각이 되지를 않소. 그러니 기정이도 그이를 본받으려거든 내게도 너무 섭섭지 않도록 하여 보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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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참으로 괴로운 듯이 머리를 푹 숙이고) 제발 그런 잡소리를 마세요. 내 머리가 터질 것 같습니다. 나는 단지 더 잘살기 위하여 나의 이상을 찾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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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아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아내의 하얀 치맛자락을 붙잡으며) 이렇게 내가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비는 것이요. 제발 그 공상누각에서 좀 내려와서 이렇게 같이 살게 된 이상 부디 화평한 가정을 이루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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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무섭고 싫은 듯이 손으로 치맛자락을 떨치며) 놓으세요. 이것이 무슨 짓이어요? 이것이 화평한 가정주의라는 것이요? 사람과 사람사이에 굳이 약속된 조건을 무시하고 왜 축축이 남의 치맛자락을 잡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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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요. 사랑에는 조건이 없는 것이요. (말을 마치며 두 손으로 아내의 치맛자락을 잡아서 아내를 자기 품에 끌어안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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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냉정히 경멸하는 표정으로)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고 하지마는 순결이라는 요소는 구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저리 가세요! 저리 가세요!! 오늘부터 당신은 나와 약속을 깨뜨린 나와 아무것도 안 되는 남입니다. 저리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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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아내의 아랫도리를 점점 껴안는다. 아내 자기에게 점점 가까이 하는 남편의 어깨를 때려 물리치려 하며) 당신은 이성을 아주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나는 이성을 잃어버린 사람을 잘 처치할 줄 압니다. 유모! 유모! 이리 좀 와요. (유모 부엌으로부터 황황히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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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왜들 또 그러십니까? 사랑쌈이시지요. 아씨 너무 ― 서방님께 쌀쌀히 구시면 어멈의 죄까지 커집니다. (유모는 아내를 건넌방으로 모셔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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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절망한 듯이) 내가 눈이 어두운 사람이다. 세상에 이름만 부부생활을 하겠다고 손가락 하나 안 다치겠다는 조건을 붙여가지고 허위의 결혼을 하는 남자가 나밖에 또 어디 있을라고? 세상에 인심까지 잃고……. 아하 이날이 언제나 망해버릴 것인가? (대청마루 한복판에 서서 먼 하늘을 치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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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넌방으로부터 아내의 “이것이 다 누구의 죄인 줄 아나? 유모가 공연히 여자는 혼인을 해야 하느니 마느니 하고 사뭇 나를 꾀여낸 탓이 아닌가? 저이는 나를 아무 구속 없이 영원히 살린다는 약속을 어디 지키는 인가? 내가 이렇게 고난을 당하는 것이 그래 유모의 눈에는 보기 좋은가? 참 우습다! 저이가 그래 무조건으로 내 생존을 영원히 보장한다는 인가” 발악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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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 1장과 같으나 탁자 위에는 복숭아꽃이 꽂히었고 책상에 가득 가득 쌓이었던 책들이 세 무더기로 나뉘어 마루 위에 쌓였는데 유모는 마룻바닥에 앉아서 책을 이리저리 아내가 가리키는 대로 가려놓고 아내는 아래위로 옥색 옷을 하르르하게 입은 채로 빨간 교의 위에 올라서서 책을 내리어 유모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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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책을 차례차례 내리다 말고 양손으로 목덜미를 펴며) 유모! 내가 이렇게 세월을 보내는 동안에는 내 어머니께서 나를 고요히 쉬여 주시던 자장가를 잊어버리게 되는구려. 내가 어쩌자고 내 어머니의 방 안을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금방울 소리로 가득 채우던 시대에서 멀리멀리 지나왔던가! (소리를 높이어) 유모! 내가 육신의 정조만은 지켜 왔다 할지라도 이 남자의 환상에서 저 남자의 환상으로 뛰어다니며 온갖 행동을 좌우하는 것이 단지 잃어버린 내 어머니의 그 화평한 행복스러운 얼굴을 찾고자 하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라오 하건마는 서툰 화가가 사자를 그린다고 이리도 못 그리는 것같이 나는 행복을 찾노라 하는 것이 불행을 찾아드리는 것 같구려 아하 ! 하나님의 성단 앞에서 붉은 옷을 입고 어린 머리를 숙여 소원을 이뤄지라던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내 마음속 일찍이 아무도 이르지 못하게 한 자리에 어느 결점을 덮은 인격을 앉히고 내 희망 전부를 걸어? 아아 (숨찬 호흡을 간신히 하며 떨리는 손길을 가슴 위에 놓고) 유모! 이 숨찬 것을 좀 보아요. 내 맥은 무엇이라고 이렇게 뛰는지 내 손길이 떨리는 것을 좀 보아요. 유모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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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졸면서 내려놓은 책의 먼지를 털어 마루 끝에 놓다가 깜짝 놀라 손길에 들었던 책을 고만 무르팍에 떨어트리며) 아씨 왜 그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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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괴로운 듯이 웃으며) 유모 졸린 거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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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미안한 웃음을 웃으며) 이렇게 늙으니까 늘 졸린답니다. 그런데 아씨는 엊저녁에 한잠도 안 주무셨으니 좀 졸리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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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오 ― 참 유모는 엊저녁에 나리와 나와 말다툼하는 것을 말리노라고 한잠 못 잤구려. (가엾은 웃음을 입가에 띠고) 아이 가엾어라. 어서 하루바삐 내가 행복스러워져야 유모도 편한 잠을 자볼것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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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눈이 번쩍 띄는 듯이) 아씨께서 행복스러우시면 게서 더 어떻게 행복스러우시겠어요? 부자댁 외따님으로 태어나셔서 어머니께서 세상 떠나신 후 얼마 동안 고생은 하시었다 할지라도 이렇게 호화로운 댁 맏며느리로 남부러울 것이 없으시니 좀 좋으세요. 아내 (원망스러운 듯이) 유모도 역시 내편은 아니구려. 나는 결국 외로운 사람인 것이 분명하지. 어디다가 속말 한마디 할 곳이 없지. 그러니까 지금까지 유모도 내 심복이 아니었더란 말인가? 그러면 이때껏 내가 유모에게 이러니저러니 사정 이야기해온 것이 거의 다 유모의 비위에 거슬리었더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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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죄송스러운 듯이 얼굴을 숙이며) 제 생각에는 아씨께서 너무 팔자가 좋으시니까 딴 염려까지 하시는 것같이밖에 보이지 않는답니다. 그러나 저야 무엇을 압니까? 밥이나 먹으면 일이나 할 줄 알고. 시집가면 한 남편 섬길 줄 알고, 고용 가면 한 주인 섬길 줄 알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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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아이 어멈 그런 말을 좀 그쳐주어요. 나까지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런 괴상망측한 현실에 낯익어지는 것이 내게 될 뻔도 않은 일이 아닌가? 어서 아무 소리 말고 이 책의 먼지를 털어서 마루 끝에 내놓아요. 누가 이리로 시집오겠다고 맨 처음부터 하였더란 말인가? 모두 유모의 청승맞은 방정 때문에 이리로 와가지고 밤마다 싸움질이나 하고 별별 연극이 다 일어나는 것 아닌가? 그러기에 내가 처음부터 무엇이라고 하더란 말인가? 이 댁 나리께서 하도 간청을 하시니까 이리로 오기는 오더라도 어디 남녀의 관계로 온다고 하였던 것인가? 반드시 동성간 친구와 같이 지내자는 조건은 붙여가지고 온 것이지. (무엇을 낙심한 듯이 머리를 숙이다가) 그렇지만 나는 남편을 찾아 헤매는 것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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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심란한 듯이 책을 털어서는 마루 앞으로 내어놓다가) 아씨! 작은 아씨! 저보고 그렇게 대들지를 마세요. 저야 단지 작은아씨께서 더 잘되시기만 바라고 모든 일을 의논하여 드렸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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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좀 사그라져서) 그야 그렇지! 나도 유모가 내 속이야기 한마디도 잘 받아주지 않으니까 고만 열이 나서 하는 말이지 내가 어디 같이 살 남자를 찾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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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온 천만에 언제 어멈이 아씨 말을 잘 받아드리지 않았다고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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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아니 잘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좋게 생각하여주지를 않는다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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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비로소 화평한 낯을 지으며 어린이를 귀여워하는 눈으로 아내를 치어다보며) 저야 아씨께서 무슨 일을 하시든지 강보에서부터 받아 길러드린 아씨가 그저 귀여울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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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비로소 낙종하는 얼굴로) 그런데 우리 다른 이야기 좀 해요. 응. 유모! 이 넓으나 넓은 세상 쓸쓸한 정경에 꼭 우리 두 사람만이 서로 믿고 의지하여야 하지 안우. 응. 유모! 유모도 아들까지 버리고 나를 따라온 이상에 아무쪼록 내 뒤를 잘 보아주어야 하지안우. (유모의 얼굴을 갸웃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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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그렇고 말구요. 제가 재작년 여름에 길 가운데서 작은아씨를 뵈옵고 얼마나 놀랐던지요. 그때 어떻게 신색이 못 되셨는지 아씨께서는 설마 제가 길러드린 어른 같지는 않으셨답니다. 그러나 아씨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니 눈매 입매가 그전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망극하던지요. (역시 책을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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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아이. (좀 부끄러워하는 태도로) 저 ― 어멈이 시골 가 있는 동안에 내가 열여덟 살 나던 겨울인가 그해에 엄마는 돌아가시고 저― (음성을 낮추어서) 아버지는 실상 어멈이 알다시피 계부가 아니었었소? 그런데 엄마 돌아가시자 한 달이 못되어 저 ― 서모가 승차를 하겠나? 그러더니 들입다 별별 괴상스러운 연극이 일어나기 시작을 하는데 내 눈에서는 눈물 마를 날이 없겠지. 어머니 돌아가실 임시에는 아버지도 “너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내가 네 눈에 눈물이 흐르도록 하겠니” 하면서 어머니가 내 주머니에 넣어주시던 금붙이와 보석을 죄다 꺼내가더니 빨간 거짓말이겠지 그래서 나는 주머니에 돈 한 푼 넣지 않고 집을 나와서 저 ― (음성을 낮추어서) 헌 책장사를 해서 먹어가면서 틈 있는 대로 도서관에도 다니고 어학도 더 배우고 하였지. 그……때 나는 저 ― 회당에서 김춘영 씨를 뵈었다나. 그때 그 어른이 단정하시고 청신하여 뵈시던 일 시방은 무엇 때문인지 안 체 모른 체하시지만 그때는 무엇인지 친절도 하시었지…… 그러나 어떤 때는 눈물이 나도록 매정도 하시었어.…… 아마 지금 생각하니까 그 부인이 계신 탓이었는지…… 모르지. (역시 책을 내려서 유모에게 주며) 참 너무 놀라워서 묻지도 않았지마는 김춘영 씨 부인이라고 하면서 여기 왔더라고 하던 여자는 어떻게 생겼습디까? 유모, 아주 퍽 잘났습디까? 아마 김 선생께서는 내가 일생을 이렇게 눈물 가운데 지나갈 것도 모르실 것이요. (무엇을 한참 생각하다가) 그것이 또 당연할 일이지…… 그러니 내 ― 마음이 키 ― 잃은 배 모양으로 바람결을 따라 청교도인 김춘영 씨에게서 사회주의자인 리관주에게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요. (책을 내리다 말고 먼 산을 보며) 걷잡을 수 없는 비인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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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그렇지만 아씨께서는 단벌옷을 팔아서 밑천을 하여 가지시고 헌책 장사를 하여 근근 생활하실 때도 김 선생님 리 선생님 생각하시었습니까?…… 아씨께서는 이미 남의 귀한 댁 아씨가 되신 바에야 왜 남의 집 보금자리를 들추어버리시려는 듯이 남의 내정을 물으십니까? 그 아낙네는 아씨보다 야무지게 생겼던 걸이요. 그러니까 그 아낙네도 아씨께서 김춘영 씨가 가르치러 다니신다는 학교로 찾아다니신다는 것이 수상해서 일부러 어떤 어른인가 보러 왔던 것 아닙니까? 그런 망신을 다 당하시고 참 딱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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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아아 어멈이 나를 제법 타이르는구려. 그러나 지금 내 말이 유모를 빈정거리는 것은 아니요. 하지만 나는 내가 아주 여지없이 구차할 때부터 김 선생님을 사모하기 시작하였다가 그가 여지없이 냉정하여진 때 나는 고만 그가 언제 한 번은 몹시 칭찬하여 혜성과 같이 그의 학설을 어느 신문에 발표한 리 선생님을 숭배하기 시작한 것이요. 처음에는 단지 그의 인격으로 사상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였던 것이나 주위의 환경이 나만을 감정적으로 이상한 곳에 떨어트리었소.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 무슨 관능적 쾌락을 얻으려고 하던 것도 아니고 그들의 애처로운 보금자리를 들추려 한 것은 아니요. 그러나 그들조차 나를 바로 알지 못하는 것 같은 대도 허구 많았소. 나는 그들에게 사랑 이외에 무엇을 구하려던 것이 시련 못된 몽롱한 의식이었으나마 사실이었소. (이같이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그들은 책을 내리우고 옮기던 일을 잊어버리고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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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아이고 가엾은 작은아씨 천사 같으신 마님의 사랑을 잃으시고 무슨 구렁에 헤매이셨습니까? 어멈의 귀에는 들을수록 뼈가 저리기는 하나 무슨 말씀인지요? 아씨는 그저 쓸쓸하시던 것 같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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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그 말을 다 어찌해요? 사상의 환경으로 실제의 환경으로 목적 없는 길을 가는 무엇같이 지독히 내 생활을 쓸쓸하였소. 그래서 더 어느 편으로나 목적을 가지고 싶은 본능의 충동인지 굳세고 난처한 요구가 있기 시작한 것이요. 그래서 늘 사상 방면 신앙 방면으로 같은 사람으로의 숭배자를 구하였었소. (퍽 괴로운 듯이 가슴을 부둥켜 잡을 때 큰방으로부터 전령(電鈴) 소리가 울려나온다) 아이 전화가 왔지. 이제부터 침모 대신 내가 전화 심부름을 해야 한다 ― (큰방으로 들어가서) 어디세요…××책사입니까? 그런데 아직 정리는 안 되었지마는…… 천천히 와보시지요…… 네 안 팔 책을 추려 내놓고 한 이천 부 됩니다. ……대개 종교, 철학, 또는 신화, 예수교리 청교도적 헤브라이즘의 것들입니다…… 네 네. (다시 마루로 나와서는 교의 위로 올라서서 책을 꺼내 내리우며) 이 책은 엊그저께 사온 ××××××의 유물론적 변증법과 부하린의 ××××의 개념 등인데 내가 좀 더 보아야 할 터이니 저편으로 내어놓아요 . (혼잣소리같이 돌아서서 책을 내리우며) 이즈음에는 나만이 전부 책을 바꾸어 사야 할 것이 아니라 물론 어떤 사람이든지 고고학자가 아닌 이상 전시에 그릇된 상상과 신앙으로부터 써진 것을 전부 바꾸어서 새 시대의 실험적인 자연파의 것과 상대파의 것과 진화파의 것들 과학적 서류와 바꾸어야 하겠는데…… 나는 무엇이라고 이렇게 영구히 사람의 본능을 지니고는 지키기도 어려울 헤브라이즘의 금욕주의 책들을 함부로 사들였던가? 참 이것은 주일마다 우매한 신자들을 더욱 굳세게 한다고 강단에 서서 공상적 신화를 짓고 있는 장로나 목사들에게 필요할 것이 아닌가 ‘루터’ 가 살아서 나를 알면 좀 우스울까? 그러나 나는 김춘영씨의 일을 본받던 것이 아닌가? 그렇지마는 (무엇을 생각하다가 유모가 책을 옮겨놓다가 말고 분주히 자기 눈을 비벼서 졸린 것을 깨우는 모양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어맞은 듯이) 옳지 옳지. 그는 그 자신의 애욕을 억제하기 위하여 자기에게 맞지도 않는 서류를 사들이던 것을 나는 모르고 ××책사에 탐지하여 그가 사는 책은 다 사들인 것이 아니었던가? (대문 흔들리는 소리를 듣느라고 귀를 기울이며) 유모 대단히 졸린 모양이구려. 눈을 들입다 비빌 때는 하지만 유모는 대문을 열러 밖으로 나가야겠소. (귀를 기울여 들으며) 밖에 누가 온 모양이야 대문이 너무 멀기 때문에 행랑사람을 내보낸 것이 퍽 불편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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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대청 아래로 내려서며) 괜찮습니다. 대문 열러 나가기쯤 무엇이 불편하겠습니까? (중문 밖으로 나가서 사라진다. 때마침 큰방으로 전령소리가 다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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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황망히 큰방으로 들어가서) …… 네 어디세요? …… 네? ×× 희 누구시라고? …… 네 ― 리혜경 씨이세요? …… 네 염려 마세요.…… 마침 금명간 적지 않은 돈이 내 손으로 들어올 터이니까…… 그렇지요. 몇 십 명의 화재민쯤…… 며칠 동안 지나게 할 수가 있겠어요.…… 돈 되는 대로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찾아가 뵈옵지요…… 네 ― 네? 무엇이어요? 오 ― 우리 주인 말씀이세요? …… 그것은 왜 물으세요? …… 아니 …… 우리 사이는 남녀의 관계는 아니랍니다.…… 그저 주종간이라든지 친구간이라는 말이 맞지요.…… 그러니까 며칠 동안 집을 비우시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랍니다.…… 하지마는 나는 우리 주인을 이용하거나 모욕하거나 소홀히 여기지는 않는답니다.…… 아 ― 그런데 왜 그것을 자꾸만 물으세요? …… 네 고쳐 말하면 이름만 부부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혜경씨쯤 어떻게 우리 주인이 나가 계시는 것까지, 그렇게 잘 아세요? …… 네 네…… 그러세요? …… 그러면 혜경 씨의 친구 남편이라는 이도 나가 노는 어른이신가요? (이동안에 유모는 알지 못하는 행랑어멈을 데리고 들어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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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그래 댁은 어디 사세요? (어멈의 태도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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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멈 (생각 없는 듯이) 저 ― 태평통 리혜경 아니 저저 ― (깜짝 놀라서) 종로 류 주사 댁에 있습니다. (안방에서 들리는 전화 소리를 듣고 또 무심히) 우리 댁 아씨하고 전화를 하시나? (한눈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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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매우 유심하게 어멈의 아래위를 훑어보고) 그래 우리 댁 나리께서 그 댁에 계십디까? 네 저도 만일 보통 부부관계일 것 같으면……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런 때마다 궁금하고 미안하기도 하답니다.…… 무엇이 그렇다고 사실이 아닌 아내의 도리겠어요 어째서 ××회는 내 가정 일을 조사할 권리나 있는것 같구려…… 호호…… 아무래도 관계찮습니다.…… 그렇지요. (아내 밖으로 나오며 유모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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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아이 긴 전화도 다 받았다. 어떻게 수다스러운지 아이. (낯선 어멈의 모양을 보고)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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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의심스러운 듯이) 태평통 리혜경 씨 댁에서 오셨대나 종로 류주사 댁에서 오셨대나 하는데 이 댁 나리가 그 댁에서 어디 가신다고 양복을 보내라고 편지를 하였다나요. (비웃는 듯이 멍히 선 어멈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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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멈 (사면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다가 허리춤에서 편지를 꺼내 아내를 준다)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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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편지를 보고 종이를 뒤집어보며) 어째 ××회 종이로 편지를 쓰셨을까? (의심스러운 듯이 편지를 들여다보며) 그런데 유모 자기 양복을 다 ― 보내라고 하였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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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행랑어멈을 아래위로 훑어보고) 분명히 나리 글씹니까? (아내를 유심히 보며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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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그런 것 같아요. (말을 마치고 어멈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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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세 사람은 서로 의심스러운 얼굴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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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 역시 1장과 같은 대청 뒤 마루 위 이전 탁자가 놓였던 자리에는 침대가 놓였고 침대 머리맡 옆으로 작은 탁자 위의 청자색 꽃병에는 흰 장미꽃 묶음이 흩어질 듯이 꽂히어 있고 탁상 전화기가 놓여 있으며 북향한 연두색 벽에는 북으로 열린 미닫이를 좌우하여 두 남자의 등신상이 묵묵히 황금 체 속에 들어 침대를 굽어본다. 미닫이 밖으로 보이는 정원 화단에는 우미인초가 빨갛게 피어 있으며 장미화가 후원 담을 가리어 하늘 위까지 덩굴 벋을 형세로 피어 있고 군데군데 파초 잎이 무성하여 있다. 막이 열리면 아내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침대 위에 걸어앉았고 유모는 방금 부엌에서 진일을 하다 나온 듯이 댓돌 위에 서서 행주치마에 손을 씻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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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어디 아씨. 저 보는 데 한 번 걸어보세요. 절지 않고는 못 걸으시겠나 봅시다. 어서 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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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얼굴을 양손으로 가린 채 머리를 흔들며) 두어 달 동안이나 누워 있어서 그런지 (한편 다리를 가리키며) 이 다리에 맥이 풀려서 힘을 줄 수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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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답답한 듯이) 그래도 저 보는 데 한 번 걸어보세요. 하도 오래 누워 계셨으니까 맥도 풀리셨겠지요. 아내 (마지 못하는 듯이 얼굴의 손을 떼며 약간 귀찮은 미소를 띠고 침대위에서 일어나 걸으려고는 하나 잘 일어서지지 않는 듯이 머뭇거리다가 두 번 세 번 주저앉으며 간신히 일어나서 있는 힘을 다하여 바로 걸어보려 하나 절룩절룩 두어서너 발자국 걷다가 고만 펄썩 주저앉는다. 유모는 차마 못 보겠다는 듯이 얼굴을 돌리다가 강잉하여 태연하여진다. 아내 호소하는 듯이 유모를 바라보며) 어멈 나는 인제 병신이구려. (한마디 탄식하고는 얼굴을 두 손길에 묻고 혼잣말같이) 잃어버린 행복을 회복하려다 못하여 병신까지 되었다. (유모 얼굴을 돌리고 느껴 운다) 내가 김 선생님을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교리를 가진 하나님의 회당에서 처음 뵈었을 때 그는 손수 피운 화롯불을 가져다가 영혼까지 식어버리려는 나를 녹여주시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 세상살이가 참을 수 없이 추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 겸 마지막으로 순간만 더워본 세계의 영원한 냉각이던가? 차라리 이 괴로운 내 머리가 부서지는 편이 나을 뻔하였다. 찬 인정? 몹쓸 세상! 털끝보다 더 작은 내 소원을 이루어줄 수가 없어서 조그만 나 하나를 영영 버리는구나! 역시 이 세상도 조그마하던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분별없는 여인! 눈토 매이워서 복수를 한다고야 내게 향한 원망이 아닌 것을 나를 해하였다. (다시 얼굴을 숙이고 쓰러진다)
85
유모 (이상스럽게 말을 듣다가 눈이 휘둥그레지며 마룻바닥에 쓰러져 느껴 우는 아내를 안아 일으키며) 아씨 왜 사위스럽게 병신이 되신다고 하시어요? 어머니의 영혼이 아시면 서러워하십니다. 그런데 아씨는 다리를 다치고 돌아오신 당시는 혼수상태에 빠지셔서 말씀을 못하셨고 그 다음에는 넘어지셨다고 하시더니 시방 말씀을 들으니까 누구한테 상처를 받으신 것입니다그려. (갑자기 노여움과 원망을 품고 무서운 얼굴을 지으며) 어떤 년이 그랬습니까? 어떤 놈이 그랬습니까? 어째 아씨는 그런 말조차 없으셨습니까? (팔을 내뽑으며) 이 어멈의 팔로 그런 연놈에게 복수를 하여 드리렵니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86
아내 (괴로운 듯이 입술을 깨물고 머리를 흔들 뿐)
87
유모 (궁금한 듯이) 어째 이 어멈에게 가르쳐주시지 않으십니까? 어멈이 아씨께 불민한 일을 하여드릴 것 같으십니까? 나리께서 아시면 좀 놀라시겠어요?
88
아내 (아니라는 듯이 머리를 흔들며) 그도 자기의 행복을 찾아 나가신인데 내 불행을 염려하실리가 있을라고…… (다시 머리를 숙이고 앉았다가) 어멈 내가 ××회에 책을 팔아서 갖다 주던 날이 언제이었는지.
89
유모 그날이 아씨 발 다치던 날 아닙니까? 벌써 한 두어 달은 넘었지요.
90
아내 나는 그날 늦어서 ××회에 갔다 오는 길에 이문 안을 지나오노라니까 어떤 여자의 음성이 내 옆에서 “이년 남의 사내 잘 찾아다니는 년” 하는 것 같더니 그저 아뜩해지겠지. 그 후에는 정신이 없어 내가 넘어지고 착각을 일으켰는지 사실 남이 나를 해하였던 것인지 도무지 아득해요.
91
유모 (고만 맥을 턱 놓으며) 나리께 들어오시라고 기별이나 할까요? 아씨는 지금쯤 그 친절하시던 나리 생각이 나지 않으셔요?
92
아내 (머리를 흔들며) 불행을 생각하기에 무거운 머리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오. (밖에서 대문 여는 소리가 나자 행랑어멈이 기쁜 얼굴을 하고 중문 안으로 들어온다. 유모와 아내 하던 이야기를 그친다)
93
어멈 (댓돌 아래 와 서며) 아씨 저 나리 마님이 들어오셨는뎁쇼. 시방 들어가 아씨께 뵈어도 괜찮겠습니까? 여쭈어보라세요.
94
아내 (놀라운 표정으로 어멈과 유모를 보고 망설이다가) 당신 댁에 당신이 돌아오시는데 누가 무어라겠습니까? (말을 마치고 얼굴을 푹 수그린다)
95
유모 (기쁜 얼굴로 “어멈! 어서 들어오십사고” 말을 하면서 중문 밖으로 나가는 어멈의 뒤를 따라나간다)
96
아내 (홀로 되어) 불행한 내 몸을 숨길 내 집이 없구나. 이런 때 내 발을 자유로 옮길 수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말을 마치고 주저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나 일어서지지 않는다. 세 사람의 여섯 발 소리가 가까워올수록 일층 더 일어서려고 하나 쓰러질 뿐이다)
98
주인 (역시 인자한 얼굴로) 기정이 오래 앓으셨다고 나를 용서하시오. (주저앉아서 일어서려고 무한히 고통 받는 아내를 보고) 당신은 아직 자유로 일어서실 수가 없구려. 어떻게 그렇게 발을 다치셨소?
99
아내 (역시 일어서려고 고심하며) 나는 그동안에 병신이 되었답니다. 이 꼴까지 나리께만은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뵈옵는 것이 본의가 아니올시다. (아내의 말을 측은히 들으며 마루 위로 올라와서 아내를 일으켜주려고 손을 내밀다가 측은히 아내를 바라 보며) 일으켜드릴까요?
100
아내 (일어설 공부를 중지하고) 아니요. 혼자 일어나보지요. (유모는 슬그머니 부엌으로 들어간다)
101
남편 (유모의 뒷모양을 바라보다가) 당신은 그래도 나를 의지하여 살아 갈 마음은 없구려. 이런 때에도 나는 당신에게 소용이 없습니까
102
아내 (면목 없는 듯이 머리를 숙이고) 이날 이때껏 당신을 의지하고만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퍽 미안한 때가 많았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나리께서도 자신의 행복을 따로 찾으신 바에야 내가 더 괴로움을 끼칠 수가 있겠어요? 당신의 영원한 행복을 빌 뿐입니다.
103
남편 (애원하듯) 여보시요! 내가 세상 고생을 해온 사람이었었기 때문에 또 어느 동경을 가진 사람이었었기 때문에 당신을 잘 아는 탓으로 불행한 경우에 당신에게 마땅한 대우를 하여드렸던 데 지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 의식 있게 당신을 내 아내로 억제하려고는 마음먹지 않았었소. 어떤 때라도 당신이 내게 돌아오는 날이면 온갖 여자의 후대를 다 버리고 당신의 박대를 받으러 모든 사랑을 다 버리고 당신의 미움을 받으러 돌아올 것이요. 단지 내가 나를 앎으로 당신을 존경하여드리는 것을 잊지 마시요. 그러고 나를 오해치 마시요!
104
아내 (머리를 흔들며) 나는 어느 존경할 만한 양반을 미혹시켜가지고 최후(最後) 피난처(避難處)를 삼으려 할 만치 구구한 생활을 하여 오지도 않았고 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105
남편 그러나 역시 사람이란 이해 조건을 무시할 수 없는가 해요.
106
아내 (괴로운 듯이 두 손을 비비며) 나같이 불행한 자리에 앉아서 무엇이라겠어요.
107
남편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머뭇머뭇) 참 김춘영 군은 교회와 학교를 나와버렸다는데 월전 어느 극장에서 보니까 리혜경이의 친구인 추은난이와 나란히 앉아서 구경을 하더니 그저께 저녁에는 밤 열두 시나 지나서 역시 키 작은 여자와 동대문께로 걸어가더군. 아주 딴 사람이 된 것 같던데.
108
아내 (…… 아무 소리에도 관심치 않는 듯이 멍히 하늘을 치어다보다가 혼잣말같이) 그가 나를 몰랐던 것이니 무슨 문제가 있으랴. 그는 추은난이라는 자와 같은 품성의 남자인지도 모를 것이다! 내 눈은 무엇이라고 그렇게 어두웠던고. 역시 나는 남을 원망할 수가 없었다! 내 맘이 어두웠었기 때문에 눈까지 어두워져서 바로 볼 수가 없던 것이다! (참을 수 없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다가 남편에게) 여보세요. 나리와 같이 관대하신 어른은 사람이란다.― 눈토 매이워 있는 견지(見地)에서 나를 동정하실 수도 있겠지요. 이 헤매이는 꼴을 불행한 꼴을.
109
남편 (측은히 아내를 내려다보며 낮은 음성으로) 그렇고 말구요.
110
아내 (팔을 내밀며) 그러면 나를 좀 일으켜주세요. 무엇이든지 자기의 욕심을 못 채우면 옴두꺼비와 같이 노여워지는 속인처럼 내게 다 아무런 조건도 붙이지 마시고요. 그때 빈한에서 건져서 당신의 아내라는 좋은 이름을 빌리어주신 것과 같이요.
111
남편 (얼른 두 팔을 내밀어 아내를 일으켜 침대 위에 앉히고) 그런데 당신은 왜 다치셨소?
112
아내 책을 팔아다가 ××회에 기부하고 돌아오는 길에 넘어졌답니다.
113
남편 (한심한 듯이 사방을 둘러보고) 그런데 당신은 내 살림살이를 다 ― 어찌하셨소?
114
아내 (눈을 둥그렇게 뜨고 깜짝 놀라며) 무엇이어요? 보내라고 기별하시지 않으셨어요? 바로 맨처음 나가 주무시던 이튿날 양복 가지러 왔던 하인이 편지와 인부를 데리고 와서 다 ― 실어갔답니다. 그러면 당신이 시키지 않으셨어요?
115
남편 (깜짝 놀라며) 그러면 또 혜경이 장난이로군. 어떤 여자의 사랑은 누구의 미움…… 만도 못하게 사람을 귀찮게 하는군. (전령이 운다)
118
남편 (빈정거리지도 않고 동정하는 듯이) 리관주 씨에게서? 당신 요사이는 그와 숙친(淑親)해졌소? (아내 부끄러워하는 듯이 미소를 띠고 웃을 때) 남편은 수화기를 귀에다 대고 누구세요? 네? 혜경이요? 곧 가리다 염려 마시요 …… 그거 무슨 소리요? …… 그럴 리 없소…… 그저 위로해드릴 뿐이요…… 그저 세상 사람이라는 가엾은 견지에서…… 그런 야비한 품성을 지닌 여자는 아니오.…… 그런데 당신 내 짐은 가져다가 다― 어찌하셨소? ……모르다니 …… 그러면 그렇지.…… 뜰아랫방에 채워둔 것이 내 것이었소 …… 그럽시다…… 되는 대로 속히 가리다 ……네, 네.
119
아내 아이 어여 가보세요. 나는 염치없이 위로를 받고 있었습니다그려.
120
남편 (원망스럽게) 평생 좀 더 있으라고 졸라보구려. 그저 너는 너 하는 대로 해라 나는 나 하는대로 하겠다요? (수그러지며) 그러나 때가 아직일는지 모른다.
121
아내 (부끄러워하는 듯이) 그럼 그밖에 어떻게 해요? 각각 자기로의 이상을 품고 있으면서야 별다른 도리가 어디 있습니까? 당신은 너무 하나 빼고 하나 넣는 현실이시고…….
122
남편 (마지못하여 마루 아래로 내려서며) 자 ― 기정이 다음 뵙기까지 완연히 걷게 되시오.
123
유모 (부엌에서 나오며) 그런데 나리께서는 앓는 아씨를 두고 그렇게도 쉬 ― 가세요?
124
아내 (눈을 엄하게 떠 유모를 보며) 여보 유모! 그 좀 답답히 굴지를 마시오. 나리께는 이름뿐 아내인 나 이외에 참으로 부인되시는 이가 있다오. 나야 어디 사실이요.
125
유모 (원망스럽게 댓돌 위에서 구두 신는 남편을 바라보고 침대 위에 시름없이 앉아 있는 아내를 보며) 저 같은 늙은이는 나리 댁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126
남편 (신발을 신고) 자, 그러면 쉬 낫도록 자중하시오. 그러나 리관주씨를 삼가야 합니다. 그이들 부부야말로 사이가 좋을 뿐 아니라 옴두꺼비 같은 성질을 가진 이들이오. (남편과 유모 중문 밖으로 나간다)
127
아내 (두 손길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혜경 씨가 가시라 하거든 또 오세요. (대문 밖에서 “네―” 대답한다)
128
아내 (홀로 되어) 세상에는 유혹이 있다 못하여 불행의 유혹까지 있고나. 내가 무엇을 바랬던고?
131
무대 : 3장과 같으나 한편 사진은 바뀌어져서 황금 틀은 깨어지고 유리알이 부서진 채 여기저기 마룻바닥에 널리어 있고 댓돌 위에는 조선신이 놓여 있다.
132
아내 (얼굴과 허리를 붕대로 감고 전화기를 붕대 감은 손으로 집어 들고) 모시모시 고 ― 가몽 후다센 ― 핫백구나나주 ― 히도방 ― 부대동 입니까…… 리 선생님이세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어젯밤에 선생님 부인이 내게 오셨던 것을 모르세요…… 어젯밤에요!…… 호호 (비웃으며) …… 네…… 그러시겠지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저와의 몇 번 없는 교제와 또 저의 선생님께 대한 숭배를 어떻게 해석하시고 부인에게 말씀하여 버리신 것입니까? 그것은 정말이십니까?…… 아니 그러실 것이 아니라 선생님께서는 정녕 저를 오해하시었어요.…… 아니라니요…… 선생님 부인은 선생님과 사이도 퍽 좋으시다는데…… 그렇게까지 저를 오해하도록 내버려두시었었어요. 내가 선생님을 사모하기 시작한 동기는 단지 애욕뿐이 아닌 듯해요. 나는 그런 것 말고 다른 것을 선생님께 구하였던 것입니다. 선생님과 같이 여자를 다 ― 선생님 부인 따위의 야욕밖에 안 가진 줄로 보아서는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여자 전체에 대한 모욕입니다.…… 왜 그렇게…… 선생님은 나를 모욕하여야 합니까…… 그것이 온갖 정성을 다하여 선생님을 본받으려던인 대가(代價)이라면…… 나는 선생님께 어느 조목의 인격적 동경을 가졌었더라는 것을 선생과 같이 선생의 부인 앞에 (어음이 점점 격렬하여진다 스스로 가다듬으려고는 하나 부지중에 더 격렬하여지며) 흑백을 가리듯이 변명하게 된답니다.…… 흥분된 것이 아니랍니다.…… 흥분되지 않았을수록 반드시 나는 선생님께 나는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지요.…… 뵈옵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으면 얼마나 다행하였겠어요? 그러나 내 눈은 멀고 내 머리는 부서져 절대안정을 명령받은 이때에 영원히 잃어버린 마음의 침착 때문에 필사의 힘을 다하여 이렇게…… 이야기를 한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고요? 내가 선생님께 잘못 뵈었었기 때문에 또 선생님께 잘못 숭배를 하여 드렸었기 때문에 선생님 부인에게 선생님의 사진틀로 다치었답니다. …… 이렇게 말하면 선생께서는 곧 선생 부인의 팔 힘을 자랑도 하시고 싶을 터이지마는 선생님의 부인은 내 집에 오자 선생님의 사진이 걸린 것을 보고 허둥지둥 고만 미친 듯 달려들어서 급히 사진을 내리다가…… 가만히 드러누운 내 얼굴에다가 떨어트렸답니다.…… 그 아름다운 얼굴을 다치었느냐고요? …… 아름답게 보지 못할 사람들이…… 아름답게 보았었기 때문에…… 내 생명으로 갚았답니다. (아주 시진한 듯이 음성을 낮추어서) 내가 죽더라도 선생님 부인께 오해를 풀도록이나 하여두세요.…… 내가 선생님께 원망을 돌리겠느냐고요? …… 그러면 걷지 못하는 발로 행방불명이 되어버릴까요? …… 사람이 걷는 발걸음으로 말고 손으로 아니 앞발로 기어서 산에든지 내에든지 들어가버릴까요? …… 염려를 마세요. …… 나는 그런 변명이 듣기가 싫습니다. …… 인제 끊으세요. 다 ― 귀찮습니다. …… 아니 천만에.
133
아내 (전화를 마치고 붕대 감은 팔로 가슴을 부둥켜안고) 유모! 유모!! (불러보다가 죽은 사람같이 침대 위에 쓰러져버린다)
134
(중문 밖에서부터 방물 사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135
방물장사 (중문 안으로 들어서며) 아씨! 분이나 기름 삽쇼. …… (침대위를 미처 못 보고) 이댁에는 아무도 안 계신가? (혼잣소리를 하며 댓돌 위에 놓인 조선 신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이리저리 휘둘러보다가 침대 위에 아내가 쓰러져 고민하는 것을 보고는) 아씨! 아씨! 분이나 기름 삽시오. 아씨!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아씨! 분이나 기름 삽시오.
136
아내 (붕대 처맨 손길로 손짓을 하며) 유모! 유모!! (신음하듯 부른다)
137
방물장사 (신발을 들어보며) 아씨! 아씨…… 고 신발 얌전도 하다. (중문으로 유모와 남편 양복 입고 등장)
138
남편 (급히 댓돌 위로 올라서며) 여보시요! 기정이! 당신은 불행을 연거푸 당하시는구려.
139
아내 (머리를 들며 붕대 처맨 두 손길을 내밀며 남편을 어루만지려는 듯이) 나리, 나는 퍽 불행하답니다. 행복을 찾으려다 못하여 참혹히도 죽어버릴 수밖에 없답니다. 몇 해 동안이나 뒤를 보아주시고 보호하여주신 당신을 마지막 뵈옵건마는 내 눈은 상하고 내머리는 부서졌답니다. 그러니 어떻게 치하를 하고 뵈올 수가 있겠어요
140
유모 (침대 옆으로 얼른 가 서며 아내의 귀에) 의사가 무엇이라고 하셨기에 아씨는 이렇게 일어나서 말씀을 많이 하십니까? 아씨께서는 이때껏 전심전력하여 길러드린 유모의 말을 안 듣고 너무 몸을 함부로 가지셔서 늙은것에게 별 참혹한 정상을 다 보이시고도 그저 삼가실 줄을 모르십니까?
141
남편 (유모에게 손짓을 하며 방물장사에게) 웬 사람이요?
142
방물장사 방물장사랍니다. 좀 팔아줍시오. 하루에 몇 십 전 벌어서 근근 살아간답니다.
143
남편 (지갑에서 돈을 꺼내 방물장사에게 주며) 그저 가지고 가시오.
144
방물장사 (미안한 듯이) 분을 드릴까요? 기름을 드릴까요?
145
남편 아마 우리 집에는 분도 기름도 바를 사람이 없나보오. 머리는 터지고 얼굴은 깨여지고. (고민하듯이 두 손길로 얼굴을 가린다)
146
방물장사 (혼잣소리같이 중문 밖으로 나가며) 얼굴은 깨지고 머리는 터지고 다리팔도 다 부러지고 분 기름 소용도 없지. (다시 댓돌 위의 신발을 돌아다본다)
147
아내 (몽유병자와 같이 팔을 내저으며) 유모! 유모! (유모 그 옆으로 가서 그 손을 잡아준다) 나를 교의 위에 앉히어서 김 선생님의 사진 앞에 옮겨주어요. 마지막 청이오.
148
남편 (주저하는 유모에게) 교의를 이리로 가져오시오. 나하고 둘이 안아서 옮겨 앉힙시다. (유모는 교의 하나를 침대 앞에 갖다놓으며 아내의 바른편을 부축하매 남편은 아내의 왼편을 부축하여 옮겨앉히며) 조금도 미안히 여기지 마시오. 나만은 당신을 영 버리지 않으리다 그러나 . 당신은 나라는 장애물 때문에 당신의 그 작은 애처로운 이상을 실현치 못하신 것이요.
149
아내 (머리를 흔들며) 당신은 얼마나 나를 호화롭게 하여주시었어요 당신은 얼마나 마음까지 부유하신 어른이어요? 내가 이번에 죽어 다시 사람이 되고 또 여자로 태어나거든 꼭 당신 같은 어른에게로 정말 시집을 올 터입니다. 내 어두웠던 이야기를 마세요, 그때에는.
150
남편 (아내를 힘 있게 끌어안으며) 당신은 이때부터 영원히 내 아내요. 사람의 생각하던 모든 것이 다 열렬하면 열렬할수록 현실에 끌어내려 볼 때에는 거의 다 당신같이 상처받게 되는 것이오. 역시 당신은 아름다운 이요.
151
아내 (한편 사진틀 옆에 앉히어서 상한 손길을 내저으며) 아이고 상한 손길로 만져 알 수 없는 동경! 사람마다 칭찬하여 주시던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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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의 선물』, 회동서관, 1930년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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