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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돌아오는 사자(使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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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7
김동인
1
안 돌아오는 사자(使者)
 
 
2
“또 한 놈-.”
 
 
3
“금년에 들어서도 벌써 네 명짼가 보오이다.”
 
4
“그런 모양이다. 하하하하.”
 
5
용마루가 더릉더릉 울리는 우렁찬 웃음소리였다.
 
6
“어리석은 놈들. 무얼하러 온담.”
 
7
저편 행길에 활을 맞아 죽은 사람들, 누각에서 내려다 보며 호활하게 웃는 인물. 비록 호활한 웃음을 웃는다 하나, 그 뒤에는 어디인지 모를 적적미가 감추여 있었다. 칠십이 가까운 듯하나 그 안색의 붉고 윤택 있는 점으로든지, 자세의 바른 점으로든지, 음성의 우렁찬 점으로든지, 아직 젊은이를 능가할 만한 기운이 넉넉하여 보였다.
 
8
“인제도 또 문안사(問安使)가 오리이까?”
 
9
“또 오겠지. 옥새(玉璽)가 내 손에 있는 동안은, 연달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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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안사들이 가련하옵니다.”
 
11
“할 수 없지.”
 
 
12
함흥 본궁에 돌아와 계신, 이씨 조선의 건국자이신 태조 이성계. 지금의 위계로는 태상왕(太上王)이시었다.
 
13
태상왕께서 당신의(생존한) 맏아드님 방과(芳果-정종대왕)께 왕위를 물려 드리고, 이 함흥 본궁으로 오신 지도 이미 수개 년. 그때 위를 받으셨던 정종대왕도 이미 퇴위하시고, 태상왕께는 다섯째 아드님이요 정종대왕(인젠 상왕)께는 아우님이 되시는 방원(芳遠)이 등극하신 지도 또한 몇 해가 지났다.
 
14
함흥 본궁에 한거해 계시고 인젠 세상 잡무는 모르신다- 표면에 이렇게 되어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여러 가지의 사정이 있었다.
 
15
서울 왕에게서 함흥 계신 태상왕께 문안사가 오면, 태상왕은 만나 보시지 않고 오는 문안사마다 모두 멀리서 활로 쏘아 죽여 버렸다. 이전 고려조에 신사(臣仕)할 때부터 명궁(名弓)의 이름이 높던 태상왕의 살은, 벌써 수십 명의 왕사를 만나지도 않고 죽여 버렸다.
 
16
옥새라 하는 것은 당연히 왕이 가지셔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태상왕은 당신의 손으로 아직도 옥새를 맡아 가지고 계시고 아드님께 물려드리지를 않으셨다.
 
17
말하자면 왕위를 물려받으신 정종대왕이며 그 뒤를 또 물려받으신 태종대왕은, 왕의 위에는 오르셨다 하나 왕위를 증명하는 옥새는 그냥 태상왕의 손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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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오직 착하시기만 한 상왕(정종대왕)은, 옥새 없는 왕위를 이 년간을 그냥 지나셨지만, 패기만만한 현왕은 이런 허명의 왕위뿐에 만족할 수가 없으시기 때문에, 문안을 겸하여 옥새를 달라려 연하여 왕사를 함흥으로 아버님 태상왕께 보내셨다. 그러나 그 왕사는 함흥까지 가기는 가지만, 살아서 돌아오는 사람이 없이 모두 태상왕의 살 아래 애처로운 혼이 되었다.
 
 
19
호활하고 뇌락한 기품의 태상왕.
 
20
“하하하하.”
 
21
칠십 노인답지 않은 호활한 웃음으로 이 세상을 눈 아래로 굽어보시는 듯이 마음에 아무 구애되는 일도 없으신 양으로 지내시지만, 태상왕의 가슴 깊이는 남의 헤아리지 못할 큰 근심이 숨어 있었다.
 
22
무너져가는 고려의 사직을 둘러엎고, 여기 이씨 조선의 크나큰 기업을 세워는 놓았지만, 이 기업이 흠집이 생기지나 않을까. 아직 자리잡히지 않은 이 기업, 그 출발에 조그만 착오라도 있으면 장래에는 그것이 얼마나 벌려질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처음 출발을 바로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23
그런데 이 이씨 기업의 출발에 벌써 좋지 못한 그림자가 띠었다.
 
 
24
돌아보건대 당신 재위시의 일이었다.
 
25
진안대군, ‘정종대왕’, 익안대군, 회안대군, ‘태종대왕’, 덕안대군,- 이렇게 여섯 왕자가 초후(初后) 한씨의 탄생한 분들이었다.
 
26
무안대군, 의안대군- 이렇게 두 분이 계비(繼妃) 강씨의 탄생이었다.
 
27
여덟 분의 왕자를 거느리시고, 일국의 지존의 위에 계신 당년의 태상왕이었지만 가정적으로 매우 불쾌하고도 참담한 일을 겪으셨다.
 
28
태상왕의 전비 한씨는 태상왕이 아직 이씨 조선을 건국하시기 전에, 한낱 무장(武將)의 안해로서 세상을 떠났다. 그 뒤에 맞은 계비(繼妃) 강씨는 만고절색이 일컬을 만한 아리따운 여자였다.
 
29
태상왕은 매우 이 계비 강씨를 사랑하였다. 그러고 계비의 소생인 두 왕자, 방번 방석(즉, 무안대군과 의안대군)을 또한 유난히 사랑하셨다. 사랑하는 이의 몸에서 난 왕자며 그 위에 또 아직 어린애니까 사랑하시는 것이 당연하였다. 이 유난히 사랑하시는 점을, 좀 다른 의미로 본 사람에, 왕비 강씨와 총신 정도전(鄭道傳) 남은(南誾) 등이며 전비 탄생의 방원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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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강씨며, 정, 남, 등은 왕(지금의 태상왕)께서 계비 탄생의 두 아드님을 유난히 사랑하시는 점을 이용하여 계비 탄생인 방석(芳碩)을 세자(世子)로 책봉하게 하도록 운동을 하였다.
 
31
이 밀모가 비밀히 진행되는 동안, 눈치 빨리 이 기수를 챈 사람은, 전비 탄생의 제오 왕자 방원(후의 태종대왕)이었다.
 
32
제오 왕자 방원- 성미가 괄괄하고 그 패기며 야심이 만만한 인물인 방원은, 이씨 조선의 공에 있어서는 내부(乃父)인 태조보다도 오히려 더 많다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33
아직 고려조에 신사하던 시절의 이 시중(李時中)이 유예미결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를 격려하고 충동하여, 드디어 이씨 건국의 대사업을 성취케 한- 건국 제일 공자였다. 주저하는 아버님을 격려하여 고려 충신 정몽주를 선죽교 위에서 박살한 것도 방원이었다. 주저하는 아버님을 뒤받쳐서 수창궁에 즉위케 한 것도 방원이었다.
 
34
이만치 이씨 조선 건국에 있어서 제일 공을 가지고 있는지라, 아버님 왕만 퇴위하시면 당연히 자기가 그 위를 잇게 될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으며, 정식으로 세자의 책봉은 받지 않았지만 세자로 자처하고 있었다.
 
35
그런데 여기 의외에도 자기와는 배다른 동생되는 방석(芳碩)을 끼고 어떤 밀모가 진행되는 듯한 눈치를 볼 때에, 그는 이를 묵과할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이씨 조선 개국초에 벌써 왕족끼리의 살육이라는 불길한 사건이 일어났다. 방원은 자기를 도우려는 몇몇 신료의 무장을 인솔하고 적대편인 정도전 남은 등의 무리를 모두 죽이고 그 위에 나아가서는 자기의 이복 동생되는 방번 방석까지 죽여 버렸다.
 
36
-이것이 소위 ‘방석의 변’이라는 것이다.
 
 
37
개국 벽두에 생긴 이 참변에 태조께서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38
이씨 조선의 만년지계를 도모하려면 먼저 왕위계승의 순서를 세워야겠다.
 
39
왕위는 왕의 맏아들이 이을 것, 맏아들이 일찌기 없었으면 왕장손이 이을 것, 왕장손도 없는 경우에 한해서, 연장자의 순서로 왕자 중에서 왕위를 이을 것. 이러한 순서를 세워놓지 않으면 왕위계승 문제 때문에 이씨 자손은 대대로 다툼이 끊일 날이 없을 것이다.
 
40
왕도 사람인 이상에는 어찌, 많은 아들 중에, 특별히 귀여운 자식과 미운
 
41
자식이 없지 않으랴. 왕자들도 사람인 이상에는 반드시 맏아들이 공이 크고 작은 아들이 공이 적게는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애증의 염을 초월하여, 공의 유무를 막론하고, 출생의 순위로써 왕위를 계승한다는 철칙을 일찍부터 세워둘 필요가 있다.
 
 
42
이리하여 태조는 황황히 당신의 생존한 왕자 중의 맏되시는 방과(芳果)에게 선위를 하시고 당신은 개경으로 다시 함흥으로 피하신 것이었다.
 
43
그러면서도 그래도 마음에 걸려서 안심이 되지 않는 것은, 다섯째 아드님 방원의 너무도 큰 야심과 패기였다.
 
44
왕위를 떠나 상왕이 되셔서 함흥으로 떠나실 때에도 이것이 그냥 근심스러워서 상왕은 방원을 조용히 부르셨다. 그리고,
 
45
“형왕을 도와라. 아직 자리잡히지 않은 이 사직을 보전하기에는 형왕은 너무도 착하다. 네가 도와라. 너밖에는 도울 만한 사람이 없다.”
 
46
고 타이르셨다.
 
47
이때의 방원의 대답은 무엇이었던가?
 
48
“네….”
 
49
하고 대답은 하였다. 그러나 분명히 불쾌한 안색이었다. 형이 이 사직을 지킬 만한 능력이 없음직하면 왜 제게 물려주시지 않았읍니까 하는 듯한 태도였다.
 
50
상왕은 알아보셨다. 알아보시고 속으로 몸서리쳤다.
 
 
51
상왕이 신왕에게 옥새를 전하시지 않고 그냥 가지고 가셨다는 점을 안 것은, 상왕이 벌써 함흥에 도착하신 뒤의 일이었다.
 
52
상왕은 옥새를 가지고 가셨다. 선위를 하면 당연히 신왕께 전해야 할 옥새를 상왕은 그냥 가지고 가신 것이었다.
 
53
옥새 없이는 선위를 못하는 것- 이번에 신왕에게는 선위를 하였지만, 이 신왕은 자유로이 선위를 못하시리라 하시는 상왕의 심려였다. 당신만 함흥으로 가시면, 방원은 반드시 이 착하신 형왕을 육박하여 방원 자기를 세자로 책봉케 하고, 그 뒤에는 또 형왕을 육박하여 퇴위케 하고, 방원 당신이 설 것을 짐작하신 상왕은, 옥새를 가지고 가셔서, 이런 자유를 금하시려는 수단으로, 신왕께 전수하시지 않은 것이었다.
 
54
그러나 이 상황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다. 옥새가 없으니 정식 공문으로는 수수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실제의 왕위 수수는 옥새 없이라도 하리라는 점을 상왕은 잊으셨다.
 
55
상왕이 함흥으로 가시기가 바쁘게 서울서는 왕사가 함흥에 뒤따랐다. 그리고 방원이 세자로 책립되었다는 것을 상계하였다.
 
56
상왕은 벌컥 노염을 내셨다-.
 
57
“그런 세자는 나는 모른다. 왕 전하께는 왕자가 있지 않으냐.”
 
58
그 뒤를 연하여 세자책봉의 국서에 어새를 눌러야 할 터이니, 옥새를 보내주십샤 하는 왕사가 이르렀다.
 
59
“모른다, 몰라. 그런 세자는 나는 모른다.”
 
60
상황은 버티셨다.
 
61
그러나 이때 상왕은 분명히 직각하셨다. 이후 대대로 왕위 계쟁 때문에 유혈극이 반드시 일어날 것을….
 
62
일 년이 지난 뒤에, 왕은 퇴위하시고 세자 방원이 등극하셨다는 왕사가 함흥 본궁에 오게 되었다. 옥새 없이도 왕위는 변동이 된 것이다.
 
63
이리하여 아직껏의 상왕은 태상왕이라는 존호를 받게 되시고, 왕은 상왕이 되시고 방원이 신왕이 되셨다. 즉, 태종대왕이시다.
 
 
64
한낱 허수아비와 같은 옥새를 붙들고 혼자 버티시던 상왕(인제는 태상왕)은 이 일에 드디어 격노하셨다.
 
65
공으로 보아서, 역량으로 보아서, 인심으로 보아서, 또는 기품으로 보아서, 여러 모로 뜯어보든간, 왕의 자격에 일 점의 부족도 없는 신왕이지만, 이씨 장래의 영원지책으로 보아서 이 몸서리칠 일에 태상왕은 너무도 불쾌하시기 때문에 그 보도가 이른 뒤 한동안은 수라도 잘 받으시지 못하였다.
 
66
“고약한- 고약한-.”
 
67
연방 불쾌하신 듯이 이렇게 말씀하시며 침을 허투루 배앝으시고 하였다.
 
 
68
그 뒤부터 소위 후세에 이르는 바 함흥차사의 사건이 생겼다.
 
69
이 불충, 불효, 부제의 신왕을 좋이 볼 수가 없으신 태상왕은 신왕을 왕이라 보시지 않았다.
 
70
형왕의 위를 물려받으신 신왕은, 당신의 이 지위를 정식으로 고정케 할 필요상 옥새를 가져 와야겠으므로, 연하여 문안사를 함흥 본궁 태상왕께 보냈다. 그러나 태상왕은 그 문안사를 한 번도 만나 보시지 않았다.
 
71
멀리서 말을 달려서 오는 인물의 일행이 벌써 서울서의 문안사로 짐작되시면, 곁에 상비해 둔 활로써 쏘아서 문안사가 궁문에까지도 이르러 본 적이 없었다.
 
72
“하하하하”
 
73
문안사를 활로 쏘아서 거꾸러뜨리신 때마다 태상왕은 시신들 앞에서는 호활한 웃음으로써 그 내심뿐은 감추시고 하셨지만 벌써 칠순이 가까운 움직이기 쉬운 마음은 매우 괴로우셨다.
 
74
“또 한 놈!”
 
75
그러나 서울 계신 왕은 마치 태상왕과 경쟁을 하시자는 듯이, 돌아올 길 모르는 문안사를 그냥 연하여 보내셨다.
 
76
“-아직도 뉘우칠 줄을 모르고- 아아, 이씨도 오래 가지 못하겠구나.”
 
77
홀로 자리에 드셔서 멀리 서울 일을 생각하시며, 또는 지나간 해의 장쾌하던 기업을 회상하실 때에는, 이 늙으신 영웅의 눈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하였다.
 
78
태상왕의 이 원대하신 심사는 모르고 문안사를 없이할 때마다‘왕보다도 더 높은 이’의 직신이라고 멋없이 기뻐들하는 시신들을 보실 때에는, 더욱 적막감과 불쾌감을 금하실 수가 없었다.
 
79
이러한 가운데서 지나시는 세월은 일 년 또 일 년-.
 
80
신왕도 태상왕께는 친 아드님. 왜 부자지간의 정애야 없으랴. 더우기 이씨 조선 건국의 제일 공을 가지신 신왕이시매 신임하시는 생각인들 왜 없으랴.
 
81
그러나 오래 이 세상에 살아 계시기 때문에 얻으신 많은 경험으로 미루어, 사사로운 사랑이나 의리보다도 더 큰 곳을 바라볼 때에, 밉지 않은 사람을 밉게 안 보실 수가 없고, 싫지 않은 사람을 책하시지 않을 수가 없으셨다.
 
 
82
이렇듯 보내는 문안사마다 모두 태상왕의 노염을 차서 참변을 보고하는지라, 왕께서도 좀더 생각해 보시고 사신의 인선(人選)에 좀 유의하셔서, 태상왕의 이전 고려조 신사(臣仕)시대에 친교가 있던 성석린(成石璘)을 뽑아 보내보셨다.
 
83
성석린은 이전에 태상왕과 친교가 있더니만치 살끝의 고혼됨은 면하였지만, 태상왕의 맘을 풀게 하지는 못하였다.
 
84
이리하여, 서울 왕궁과 함흥 태상 왕궁의 새에는, 돌아올 길 없는 차사만 연하여 오고 또 오고-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도 같은 일이 헛되이 반복 또 반복될 뿐이었다.
 
 
85
판승추부사(判承樞府事) 박순(朴淳).
 
86
대궐에 있어서 태상왕과 왕의 새에 이런 불상사가 뒤를 이어서 생겨나는 것을 볼 때에, 이 의에 깊은 재상은 이 일을 그냥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왕께 자칭하여 함흥까지 사자로 가기로 하였다.
 
87
가면 십중팔구는 못 돌아올 몸임을 모르는 바가 아니로되, 임금과 나라를 위하는 적성으로 그는 늙은 몸의 마지막 봉사를 하려 억지로 왕의 윤허를 얻어가지고, 함흥으로 길을 떠났다.
 
88
육로 수로 천여 리. 함흥까지 이르러서 멀리 행재소가 보일 만한 곳에서 박순은 하인들도 모두 떨구었다. 그리고 스스로 어미말 한 마리와 새끼말 한 마리를 끄을고 행재소로 향하였다.
 
89
바라보매 멀리 행재소 누각에 앉아서 담화를 하고 있는 몇 개의 인물. 그 가운데 중심이 되어 있는 인물은, 일찌기는, 여조(麗朝)에서 동료로 지냈고, 그 뒤에는 같이 힘을 아울러서 이 나라를 개척한 뒤에, 처음에는 상감으로서 다음에는 상왕으로서 지금은 태상왕으로서, 한결같이 자기의 경애의 염을 바쳐서 마지않는 그 노우(老友)임에 틀림이 없었다.
 
90
행재소에서 이 박순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이 근처에서 보기 쉽지 않은 높은 관원을 발견한 행재소에서는 모두들 박순의 편을 주의하고 있다.
 
91
이것을 보고 박순은 길가 나무에 끌고 오던 새끼말을 비끄러 매었다. 그리고 어미말만 끄을고 행재소 정문으로 향하야 길을 더듬었다.
 
 
92
“전하!”
 
93
여러 해만에 옛날 벗의 앞에 꿇어 엎드린 박순.
 
94
‘전하’의 한 마디 밖에는 말이 막혀서 나오지를 않았다. 눈물만 비오듯 쏟아졌다.
 
95
그때에 저편에서 들리는 기괴한 소리. 돌아보니 행길에 남기고 온 새끼말이 어미를 찾느라고 부르는 애호성이었다.
 
96
행재소 안뜰에 매어둔 어미말도, 제 새끼의 애호성에 마음 안 놓이는 듯이 연방 귀를 기웃거리며 발로 땅을 긁으며 부시럭거렸다.
 
97
“원로에 어떻게 오셨소?”
 
98
옛 벗에게의 태상왕의 음성도 부드러웠다.
 
99
“네이. 전하, 승후치 못한 지 사오(四五) 성상-.”
 
100
말을 더 계속할 수가 없었다. 차차 더 요란스러워 가는 새끼말 어미말의 애호성에, 이 행재소는 때아닌 전쟁이 일어난 듯하였다.
 
101
“저게 뭐냐.”
 
102
태상왕이 이 너무나 요란한 소리에 근신들에게 이렇게 물으실 때에 박순이 대신으로 대답하였다-.
 
103
“전하, 신의 죄로소이다. 신이 끌고 오던 새끼말을 행길에 버려두었더니, 새끼는 어미를 찾느라 어미는 새끼를 찾느라, 이렇듯 요란한가 보옵니다. 미물이나마 모자지정은 인간과 다름이 없는가 보옵니다.”
 
104
힐끗 쳐다보매 태상왕의 한순간 찌푸리시는 눈살. 동시에 용안 전체를 스치고 지나가는 처량한 기색-.
 
 
105
박순은 행재소에 수일간 묵었다. 그러나 이 노련한 유세객(遊說客)은 한번도 직접 태상왕께 대하여 신왕을 관대히 보시라고는 여쭙지 않았다. 기회있는 때마다 빗걸어 두고 어버이와 자식간의 정애는 끊을 수가 없음을 내비친 뿐이었다.
 
106
태상왕은 마음으로 신왕을 밉게 보시는 것이 아니었다. 칠십 만로(晩盧)이신 태상왕이요 그 위에 그의 전후비를 통하여 여덟 분이나 두셨던 왕자 중에, 맏아드님 진안대군은 잠저(潛邸) 시에 벌써 돌아가시고, 회안 무안 의안의 삼대군은 모두 정치상 알력으로 참화를 보시고, 겨우 남아 계신 분이 세 아드님이시매, 미울 까닭이 없으셨다. 단지 순서없이 왕위에 오르신 점을 아름답지 못하게 보신 뿐이었다.
 
107
박순이 묵어 있을 동안, 태상왕은 할 수 있는 대로 박순과 단 둘이 계실 기회를 피하셨다. 이 오랜 벗을 만나시기가 괴로우셨다. 인정과 도리가 서로 어그러질 때에 어느 편을 취하실지 매우 주저하셨다.
 
 
108
수일 후에 박순은 도로 서울로 길을 떠났다. 그때는, 박순도 태상왕의 마음이 얼마만치 돌아서게 되신 것을 보았다. 자기가 이만치 마음이 돌아서시게 하였으니, 이 뒤 누구 한 사람만 더 와서 회가하시기를 청하면 넉넉히 응하실 만한 자신을 얻었다.
 
109
행재소 뜰 아래, 박순이 하직하고 떠날 때에 태상왕은 무연히 박순을 보내셨다-.
 
110
“서로 늙은 몸, 언제 다시 만날는지….”
 
111
“전하는 만수무강 하시리라. 신은 벌써 노쇠했으니깐, 앞서서 황천에 갈 밖에는 없겠읍니다.”
 
112
한때는 고려조의 친구로서 서로 손을 맞잡고 일하던 이 두 노인은 주종으로서의 마지막 하직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이것이 진실로 마지막 하직의 길이 될 줄은 태상왕도 뜻도 못하셨고 박순도 몰랐다.
 
 
113
박순이 행재소 밖으로 사라지매 태상왕의 시신들은 모두 태상왕께 박순 죽이기를 청하였다.
 
114
태상왕께서 왕사(王使)는 모두 죽여버리는 그 깊은 속사정은 모르고, 단지
 
115
‘왕사는 죽인다’하는 사실만 인식할 줄 아는 시신들은, 서로 공을 세우기 위하여 박순을 죽이기를 태상왕께 청한 것이다.
 
116
창연한 심사로써 박순을 보내신 직후에, 시신들에게 이런 청을 받으시는 태상왕은, 심중 매우 곤란하였다. 일단 세웠던 법을 이유없이 다시 거두는 것은 왕법을 흐리게 하는 일, 그렇다고 태상왕은 이 노우뿐은 결코 죽이고 싶지 않으셨다.
 
117
이 난문제에 직면해서 태상왕은 한참을 대답없이 계셨다. 그러다가 비로소 물으셨다-.
 
118
“누가 갈테냐?”
 
119
누가 박순을 죽이러 가겠느냐는 질문이셨다.
 
120
“신이.”
 
121
“신이 가겠읍니다.”
 
122
제각기 공을 세우려고 덤벼드는 시신들을 태상왕은 딱하신 듯이 보셨다.
 
123
이 근신들에게 졸리시기를 얼마-.
 
124
얼마를 졸리신 뒤에 태상왕은 부득이 이를 허락하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으로 따져 보아서 이만 때쯤이면 박순은 넉넉히 용흥강(龍興江)을 건너 갔을 때였다.
 
125
“강을 벌써 건넜거든 내버려 두어라.”
 
126
칼을 사자에게 내어 주시며 태상왕은 이렇게 명하시면서, 마음으로는, 늙은 친구여 어서 무사히 강을 건너라고 심축하여 마지 않으셨다.
 
 
127
그러나 그때까지도, 박순은 아직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도중에 갑자기 몸이 고장이 생겨서 길이 늦어지기 때문에, 칼을 받은 사신이 박순을 따라 뒤미친 때는 박순은 그 발을 겨우 나루에 옮기려 할 때였다.
 
128
“박순시 반재강중 반재선(朴淳屍 半在江中 半在船)”
 
129
이라고 개가를 부르며 사신이 돌아와서 태상왕께 복계할 때에, 태상왕은 신하들 앞에서는 그 눈치를 안 보이셨지만 곧 외딴 방으로 몸을 피하셔서 우셨다. 짧지 않은 세월을 동고동락을 하던 벗을, 당신의 손으로 죽이시지 않지 못한 그 괴상한 운명을, 목을 놓아 통곡하셨다.
 
 
130
그러나, 박순의 죽음은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니었다. 박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태상왕은 남환하실 뜻을 결하였다.
 
131
첫째로는 밉기는 밉지만 또한 당신의 몇 분 왕자 중에 가장 걸출하신 신왕의 왕자(王者)적 태도도 보고 싶으셨고,
 
132
둘째로는 당신이 세우신 이 기업이 얼마나 착착 얼마나 자리잡혔는가, 정치의 중심지인 서울에서 이 점을 관찰도 하고 싶으셨고,
 
133
넷째로는 이리하여 늙은 친구의 혼으로 하여금 원을 풀게 하여주고 싶고, - 이리한 여러 가지의 이유 아래서 인제 다시 그럴듯한 핑계만 생기면 환경하시기로 내정하셨다.
 
134
이런 때에 무학사(無學師)가 또한 왕명으로 함흥 행재소에 오게 되었다.
 
 
135
일찌기 태조 건국 초에 그 도읍하실 곳을 정치 못하여 고달산 초암(高達山草庵)에 도를 닦고 있던 고승 무학에게 정도할 땅을 선택케 하였다. 무학은 여러 곳 지형을 살펴보고, 한양을‘以仁王山作鎭面白岳南山左右龍虎[이인왕산작진면백악남산좌우용호](인왕산을 진을 삼고, 백악과 남산으로 좌우 용호를 삼는다)’하여 정도할 곳이라 하였다. 이리하여 무학의 뜻을 받아서 한양에 정도하신 이래로 신임 깊으신 무학을 왕은 태상왕께의 문안사로서 보내게가 되었다.
 
 
136
태상왕은 뜻 안한 무학대사의 내방을 반가이 맞으셨다. 그러나, 반가이 맞으시면서도 첫 번 물으신 말씀이 이것이었다-.
 
137
“대사도 또 유세(遊說)하러 왔소?”
 
138
거기 대하여 무학은 빙그레 웃었다-.
 
139
“전하를 안 지 수십 년, 지금 한거해 계시는 전하의 심심 파적이라도 해드릴까 하고 왔읍니다.”
 
 
140
수십 일간을 행재소에 묵을 동안, 무학은 태상왕에 대하여 신왕의 결점만 들추어 내었다. 여사여사하니 이도 왕의 잘못이요, 여사여사하니 이도 왕의 과실이라고, 왕의 결점만 들추어내었다. 그러면서도 태상왕의 동정만 살폈다.
 
141
그러면서 관찰한 결과로, 무학은 태상왕이 신왕의 결점만 말하는 것을 결코 좋아하시지 않는 점을 발견하였다.
 
142
십여 일간을 두고 이 점을 상세히 관찰한 뒤에 어떤날 저녁, 조용한 기회를 타서 무학은 태상왕의 앞에 꿇어엎드려 탄원하였다-.
 
143
“전하. 전하의 세우신 기업이 지금 위태롭습니다.
 
144
이제 바로 잡지 않으시면 일껏 세우신 위대한 기업이 허사로 돌아갈까 빈도는 근심하옵니다.”
 
145
“대사, 그게 무슨 말씀이오?”
 
146
이렇게 물으시는 말씀에 대하여 무학은 눈물을 흘리며 복주했다-.
 
147
“전하. 모(某-신왕을 가르킴)가 죄가 많음은 빈도도 모르는 바가 아니로소이다. 그러나, 전하는 못 살피시나이까? 전하의 제(諸)왕자는 모두 진하옵고 오직 지금 모 한 분만 남아 계시지 않습나이까? 상왕 전하(정종)께는 적출 왕자가 안 계시옵고, 익안대군은 명민치 못하시옵고, 오직 이 한분이 계시지 않으나이까? 이 분마저 전하께서 버리시면, 전하 평생신고의 대업을 장차 뉘게 부탁하려 하옵니까? 타성(他姓)에게 이 대업을 건네 주시느니보다는, 미우시지만 전하의 혈육께 전하시는 편이 옳지 않나이까? 지금 사직은 정했다 합지만 아직 기초 든든치 못한 이때, 전하의 삼사(三思)를 원하는 배옵니다.”
 
148
이 무학의 충간에 대하여, 태상왕은 아무 대답도 안 하셨다. 눈을 푹 감으시고 고요히 앉아 계신 뿐이었다.
 
149
그러나, 미리부터 환경하시기를 내심으로 작정하셨던 일이라, 무학의 청을 기회삼아 오래 떠나 계시던 한양으로 다시 돌아가시기로 하셨다.
 
150
그 뒤에도, 수일간을 무학이 두고두고 권할 때에 태상황은 마지못하시는 듯이 환경의 노부를 준비하라고 시신에게 명하셨다.
 
 
151
이리하여, 태상왕은 옥새를 친히 몸에 지니시고, 아드님 왕께 이를 전하시려, 무학대사와 함께 함흥 본궁을 떠나서 한양으로 돌아오셨다.
 
152
(〈野談〉[야담],1936.7)
【원문】안 돌아오는 사자(使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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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金東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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