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괴담 중에는 동물을 주인공이나 또 주요한 요소로 한 것이 많이 있읍니다. 이것만을 따로 떼어서 편의상으로 동물괴담이라고 제목을 붙여서 약간 소개하여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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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동물은 원시시대의 인민들에게 있어서는 우리 사람에게 비하여 賤劣[천열]하거나 우매한 존재가 아니라, 어떠한 의미로는 매우 靈異[영이]스럽게 생각도 되고, 또 사람하고의 관계로 말하여도 매우 친밀하고 深厚[심후]한 연락이 있는 줄로 믿었었읍니다. 허다한 민족이 자기네들의 조상을 동물계의 어느 것에 가져다가 붙여서, 스스로 곰의 자손이다 개의 종족이로라고 내세우는, 이른바 토템이라는 민속이 널리 행함은 대개 인류가 본래는 다른 동물들을 따로 뚝 떼어서 보지 않고, 우리네들로 더불어 넘나들면서 한통치고 사는 줄로 생각함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대인의 지식과 감정을 담은 신화 중에는 다 각기 그 지방의 사정에 맞춰서 온갖 동물이 두드러진 존재가 되어 있으며, 신화가 변통되어서 생겨난 전설ㆍ민담 내지 동화 중에 있어서도 동물들의 활동은 의연히 활발함을 나타내고 있읍니다. 본래부터 평상한 심리와 정당한 논리를 떠나서 생성하고 발달하는 점에서 원시 문학인 신화ㆍ전설들로 더불어 일맥이 서로 통한다고 하는 괴담의 종류 중에, 동물이 패차고 나서서 단단한 목을 보는 것은 도리어 당연타고 할 수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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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괴담 중에 나오는 동물은 큰 것으로 龍[용]ㆍ虎[호]ㆍ熊[웅]ㆍ豹[표]ㆍ狐[호]ㆍ狸[리]ㆍ鹿[록]ㆍ豕[시]로부터 작은 것으로 蚯蚓(구인)ㆍ蜈蚣(오공)ㆍ蟪蛄(혜고)ㆍ蚌蛤(방합) 등에 이르기까지 꽤 다수한 종류를 包羅[포라]하여 있읍니다. 그 중에는 허허바다 지새는 달빛에 진주를 눈물로 뿌리는 인어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읍니다. 이 모든 것을 모조리 들추어서 그 형태나 情味[정미]를 헤쳐낼 시간을 시방 가지지 못하였으니까, 이번에는 그 중에서 좀 생신한 재미를 느끼게 할 듯한 한두 가지 종목만을 뽑아서 말씀하고 어수선한 내용을 가진 龍[용]ㆍ虎[호]ㆍ熊[웅]ㆍ蛇[사] 등에 관한 그것은 다른 기회로 미루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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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집어내고 싶은 것은 狐[호]의 것입니다. 여우란 놈은 생김생김부터가 약고 꾀바르고 또 의심 많고 변덕스러움으로써 전세계를 통틀어 동물 설화상의 한쪽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자이거니와, 더욱 동양에서는 그 쫑긋쫑긋하는 귀와 살래살래하는 꼬리에 신비한 조화가 든 줄로 보는 탓인지, 여우에게는 신통변화하는 능력이 있어서, 이것 저것으로 형상을 바꾸어 사람도 되고 특별히 어여쁜 색시로 변화하여 가면서 갖가지 기이한 사건을 만들어 내는 괴담계의 최대 존재를 만들었읍니다. 그 중에서도 지나에서는 여우는 오래 도를 닦아서 많이 신선이 된다하여, 이른바 狐仙[호선]에 관한 전설이 거의 조건 없이 일반 민중에게 참말로 信認[신인]이 되는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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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에서 狐[호]를 妖獸[요수] 내지 神物[신물]로 생각하기는 유래가 멉니다. <說文[설문]> ── 後漢[후한] 시절에 저술된 오랜 字典[자전]에 이미 狐妖獸也[호요수야], 鬼所乘也[귀소승야], 有三德[유삼덕], 其色中和[기색중화], 小前大後[소전대후], 死則首丘[사즉수구], 謂之三德[위지삼덕]이라 하였읍니다. <玄中記[현중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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狐五十歲能變化爲婦人[호오십세능변화위부인], 百歲爲美女[백세위미녀], 爲神巫[위신무], 或爲丈夫[혹위장부], 與女子交接[여여자교접], 能知千里外事[능지천리외사], 善蠱魅使人迷惑失智[선고매사인미혹실지], 千歲即與天通爲天狐[천세즉여천통위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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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하여, 해가 묵을수록 신령하여짐을 계단적으로 정해 놓았읍니다. <搜神記[수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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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中有一書生皓首[오중유일서생호수], 稱胡博士[칭호박사], 敎授諸生[교수제생], 忽復不見[홀복부견], 九月十九日[구월십구일], 士人相與登山遊觀[사인상여등산유관], 聞講書聲[문강서성], 命僕尋之[명복심지], 見空家中群狐羅列[견공가중군호나열], 見人即走[견인즉주], 老狐獨不去[노호독불거], 是皓首書生[시호수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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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라 한 것처럼, 狐[호]가 화하여 선비가 되고 姓[성]을 胡[호]라 하면서 문학계에 출입하는 이야기도 많지요마는, 이렇게 남성으로 화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여성으로 변화하여서 남자와 교제를 한다는 투의 이야기가 가장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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狐者先古之淫婦也[호자선고지음부야], 其名四紫[기명사자], 紫化而爲狐[자화이위호], 故其名自稱阿紫[고기명자칭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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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한 것처럼, 여우 그것이 본래 옛적 淫婦(음부)가 변화하여 생긴 짐승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읍니다. <五雜爼[오잡조]>란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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狐千歲始與天通[호천세시여천통], 不爲魅矣[불위매의], 其魅人者[기매인자], 多取人精氣以成丹[다취인정기이성단], 然則其不魅婦人何也[연즉기불매부인하야], 曰狐陰類也[왈호음류야], 得陽乃成[득양내성], 故雖牡狐[고수모호], 必托之女以惑男子也[필탁지녀이혹남자야], 然不爲大害[연불위대해], 云云[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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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하여, 여우가 여성으로 화하여 남자를 호림은 그 精氣[정기]를 뺏아다가 仙道[선도] 공부에 보태기 위함이니라 하는 설명을 하였읍니다. 陳繼儒[진계유]의 <珍珠船[진주선]>에는 野狐[야호]가 밤이면 꼬리를 두드려서 불을 내어서 괴변을 부리고 髑髏(촉루)를 뒤집어쓰고 北斗[북두]를 절하면 사람이 되느니라 함을 기록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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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르기를 狐[호]의 修煉成道[수련성도]한 자는 狐仙[호선]이 되어 인가에 거주하고, 아직 성도치 못한 자는 野狐[야호]로 산림에서 산다고 합니다. 일변 「江北多狐魅[강북다호매], 江南多山魈[강남다산소]」(五雜爼[오잡조])라 하여 狐仙[호선] 관념에 약간 지리적 界限[계한]이 있는 듯도 하지마는, 대체로 화하여 세상에 허다한 풍류 艶聞[염문]을 끼치는 줄을 믿었읍니다. 그러므로 지나의 狐文學[호문학]ㆍ狐怪談[호괴담]은 고금을 통하여 그 수량이 거의 무한하여, 韻文[운문]에도 白樂天[백낙천]의 유명한 「古家狐[고가호]」 ── 「오랜 무덤에 사는 여우가 화하여 예쁜 여인이 되매 머리털은 구름 같은 쪽이 되고, 꼬리는 긴 치마가 되어 철철 끌리는데, 백만 아양을 떨고, 으스름한 저녁때 으슥한 구석으로 다니면 세상에 홀려들지 아니할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한때 허수아비 탈을 쓰고 난 가짜 미인도 이렇거든 천생 尤物(우물)로 생겨나서 주야장천 꼭 붙어 있어서 간장을 녹이고 이목을 흐려버리는 진정한 妖女[요녀]가 남의 나라를 엎지르고 생명을 앗아버림이 우연타 하랴」 하는 뜻을 읊은 것 같음이 있고, 明淸間[명천간] 소설로만 말하여도 蒲松齡[포송령]의 <聊齋志異(요재지이)>, 起昀(기균)의 <槐西雜識[괴서잡지]>, 袁枚[원매]의 <新齊諧[신제해]> 등속에 거의 車載斗量[거재두량]할 만한 여우의 괴담이 있읍니다. 이러한 책 가운데 나오는 狐仙[호선]의 類[류]는 남녀성을 물론하고 인물도 수려하고 才調[재조]도 특이하고 문학도 우월하고 성질도 대개는 온아하여 가장 컬처(Culture)에 넉넉한 점잖은 식사 숙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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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聊齋志異[요재지이]>에서 두어 개 實例[실례]를 끄집어내어 보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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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城[역성] 땅의 殷天官[은천관]이란 이는 젊어서 가난하나 膽略[담략]이 있었다. 읍중에 長者[장자] 살던 집이 있어 크기 대궐 같으나 괴이한 일이 있어 들어가 사는 이가 없으므로, 오랜 뒤에는 쑥대가 길이 덮여서 백주에도 감히 들어가는 이가 없었다. 하루는 天官[천관]이 친구로 더불어 술을 먹더니, 한 사람이 장난의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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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그 집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지내고 나오는 이가 있으면, 모두 추렴을 내어서 크게 한턱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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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천관이 댓바람 나서서 「오냐, 어려울 것 없다」 하고 자리 한 잎을 가지고 가매, 여러 친구가 함께 그 집 대문까지 가서 작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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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여기서 한참 기다릴 것이니, 만약에 보이는 것이 있거든 급히 소리를 치게」 한즉 천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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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귀신이나 여우가 있으면 붙잡아 가지고 와서 증거를 삼으리.」고 흰소리를 하였다. 들어가서 보니 풀이 우거지고 쑥대가 삼밭같이 자욱한데 마침 달빛이 울연하여 門戶[문호]를 분간할 만하므로 더듬더듬 들어가서 山亭[산정] 사랑의 층계로 올라가 보니, 훤칠하고도 깨끗하므로 거기 자리를 펴고 누워 있으되, 오래도록 아무 기척이 없으므로, 그윽이 소문이 헛됨을 웃었다. 하늘에는 北斗[북두] 자루가 거의 다 앵돌아지고 곤한 기운에 눈이 붙으려 할 즈음에, 층계 밑에서 신발 소리가 자박자박 나거늘, 자는 체하고 동정을 보매 靑衣[청의] 입은 손 하나가 올라와서 長明燈[장명등]을 켜다가 홀연 천관이 누운 것을 보고 놀라 물러나면서 뒤에 있는 자더러 하는 말이 「生人[생인]이 있읍니다」 한즉 아래서 「누구란 말이냐?」 대답하되 「모르겠읍니다」 하니, 조금 있다가 한 노옹이 층대로 올라와서 가만히 들여다 보고는 가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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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殷尙書[은상서]시군. 잠이 깊이 드신 양하니 우리 일들이나 보세. 相公[상공]께서는 대범하시매 과히 꾸지람은 아니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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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는 모든 무리가 죽 樓上[누상]으로 올라가서 모든 문과 창호를 떨꺽떨꺽 열어 젖히더니만, 이윽하여는 왔다갔다 하는 무리가 점점 많아지고, 누상에는 등촉이 휘황하여 낮과 같았다. 천관이 도지개를 켜고 돌아누우면서 기침을 칵 하니, 노옹이 깬 것을 알고 얼른 나와서 엎드려 여쭙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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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이 변변치 못한 딸이 있어 오늘 밤이 시집보내는 날이온데 뜻밖에 相公[상공]이 주무시는 것을 방해하게 되오니 황송하기 그지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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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래! 감축한 날인 줄을 미리 알지 못하여서 아무것으로도 정을 표하지 못하니 도리어 미안스러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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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이 내림하시매 모든 凶歉(흉겸)이 다 눌려 없어진 것만이 만분 다행입니다. 좀 올라오셔서 참석하여 주시면 이런 영광이 없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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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이 선뜻 그리 하리라 하고 누상으로 올라가 보매 舖陳風節[포진풍절]이 으리으리한데 나이가 四○[사공]쯤 되어 보이는 마누라가 나와 현신하면서 옹이 「제 처올시다」 하므로 천관도 친절히 答拜[답배]를 하였다. 좀 있다가 풍악 소리가 요란히 나고 「왔다!」하는 路文[노문]이 들리므로 옹이 마중을 나가고 천관도 일어서서 기다리매, 고대 여러 雙[쌍] 沙籠[사롱]이 신랑을 옹위하여 들어오는데, 나이 十七[십칠], 八[팔]은 되었음직하고 풍채가 동탕하며 먼저 귀객이라 하여 천관에게 예하고 다음翁壻(옹서)가 相遇禮[상우례]를 하더니, 이로써 혼례를 마친 양하여 무수한 여인들이 구름 떼같이 모이고 잔칫상이 벌어지는데, 음식과 器血[기혈]이 모두 놀랍놀랍하였다. 술이 몇 순 돌아간 뒤에 옹이 여하인을 불러 신부를 데려내오라 하여 하인이 들어간 지 이슥하되 소식이 없으매, 옹이 휘장을 쳐들고 친히 들어가서 재촉을 하여 수모ㆍ유모ㆍ몸하인들이 신부를 옹위하여 나오는데, 노리개 소리가 쟁그렁쟁그렁 하고 麝香(사향)ㆍ蘭香[난향] 갖은 향취가 코를 어일 듯하며 옹이 上席[상석]을 대고 배례를 시킨 뒤에 그 어머니 곁에 앉히는 것을 보니, 인물도 인물이요 꾸미기도 홀란히 하여, 인간에서는 볼 수 없는 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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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크기 탕끼 같은 황금 잔으로 술을 도르거늘, 천관이 생각한즉 이 놈을 훔쳤으면 친구들에게 증거가 될 듯한지라, 슬그머니 집어서 소매 속에 넣고 취기를 못 이기는 듯 그만 안석을 의지하고 찌그러지니 다들 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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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였다. 좀 있다가 신랑이 돌아간다 하여 풍악성이 다시 일어나고 분주하게 樓下[누하]로 내려들 가더니, 주인집 사람들이 뒷설겆이를 하느라고 그릇을 照數[조수]하는데 황금 大杯[대배]가 없어졌다 하여 사방으로 찾다가 수군거리기를 아마 손님이 의심스럽다 한즉, 노옹이 급히 입을 틀어막고 말을 못하게 하였다. 얼마 있다가 안팎이 다 괴괴해지매, 천관이 일어나 보니, 깜깜하여 등불이 없고 오직 酒香[주향]과 脂粉[지분] 냄새가 사방에 그득하며, 고대 동이 터서 환하여지므로 천천히 나오면서 소매 속을 만져 보니 금잔이 그냥 들어 있었다. 문간으로 나오니 다른 친구들이 벌써 대령하고 있다가 의심하기를, 밤에 나왔다가 일찍 들어가지 아니하였나 하거늘, 천관이 소매로서 금잔을 집어내어서 보인대, 여러 사람이 깜짝 놀라서 그냥 둘 수 없다 하여 연유를 관가에 고하기로 하고, 또 아무리 생각하여도 이러한 큰 그릇이 말라빠진 선비의 가졌던 것은 아니매 비로소 하는 말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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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진사 급제하여 肥邱[비구]란 데 원으로 간즉, 그 곳에 오랜 長者[장자]집에 朱[주]씨라는 이가 있어 잔치를 베풀고 원을 대접하는데, 주인이 큰 잔을 가져오라 한즉 오래도록 소식이 없다가 床奴[상노]가 와서 주인에게 귓속말을 하고, 주인은 노기가 뜨더니 있다가 금잔을 가져다가 손에게 권하는데 가만히 보니, 잔의 만든 모양과 무늬 새긴 것이 여우에게서 가져 온 것하고 조금도 틀림이 없거늘, 괴상스레 생각하여 그 잔의 내력을 물은 즉 주인의 대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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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께서 서울 가셔서 높은 벼슬을 사실 때에 一[일]등 匠色[장색]을 시켜 이 모양으로 잔 여덟을 만들어 오셔서 집안에 世傳之器物[세전지기물]로 간수하는 터이온데, 使道[사도]께 대접하기 위하여 오래간만에 그 잔을 끄집어내어 오라 했더니, 궤짝 속에 다만 일곱 개가 있으므로, 혹시 사람의 손을 탔나 하고 의심하되 一○[일공]년 동안 봉해 놓은 자리가 그냥 티끌에 쌓인 채 있는 것이 괴상하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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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금배에 날개가 돋친 게로구료. 그러나 세전하는 물건을 잃어 버려서야 쓰겠소. 나한테 금잔 하나가 있어 모양이 거의 근사하니 그것을 드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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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잔치를 끝막고 衙中(아중)으로 돌아와서 그 금잔을 싸서 보내었더니, 주인이 자세히 보고 깜짝 놀라서 친히 동헌으로 들어와서 사례를 말하고 어찌 된 연유를 묻거늘, 천관이 낱낱이 所從來[소종래]를 말하고 비로소 천리 밖 물건을 여우가 가져가기는 하되 끝끝내 지니지는 못하는 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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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 있읍니다. (卷一[권일] 狐嫁女[호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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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선비 노릇하는 여우의 이야기를 말씀하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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萊蕪(내무)의 張虛一[장허일]이란 이는 性[성]이 호방하여 무서움이 없더니 읍중 어느 사람의 집이 狐狸(호리)의 住接[주접]하는 곳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하루는 名啣[명함]을 가지고 가서 잠긴 문틈으로 던지니, 이윽고 문이 저절로 열리는데 문지기가 보고는 놀라서 물러섰다. 張[장]이 공경스러이 들어가서 대청에 올라가 보니 좌석과 文房[문방]이 온전한데 괴괴히 아무 기척이 없거늘 다시 예를 하면서 축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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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이 지성으로 찾아와서 이미 문에까지 들이신 바에 얼굴을 나타 내어 주시지 못할 것이 있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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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 홀연 허공 중에서 사람의 음성이 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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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찾으시니 대단히 탐탐하오. 우리 앉아서 피차 叙懷[서회]나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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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더니 곧 交椅[교의] 둘이 마주 향하므로 한 交椅[교의]에 앉으매 금세 茶盤[다반]에 湯罐(탕관)에 鍾[종]마다 차가 그득 부어지고 한옆으로 권하고 한옆으로 들이마셔서 훅훅 하는 소리까지 나는데, 마침내 형용은 보이지 아니하며, 이렇게 술이 나오고 갖은 안주와 과실이 나오고 급기 성명을 통한 즉, 胡[호]씨의 네째이므로 胡四[호사]라고 하노라 하는데, 중간에 심부름하는 하인들은 무수한 모양이었다. 배불리 먹고 차를 좀 먹었으면 하였더니, 벌써 향기로운 차가 앞에 와 놓이고, 이렇게 무릇 마음에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그냥 눈앞에 나오거늘, 張[장]이 大悅[대열]하여 잔뜩 취해서 돌아와서는 이로부터 수삼일이 멀다고 張[장]이 찾아 다니고, 胡四[호사]도 張[장]에게로 회사를 와서 주객 왕래의 예를 다하였다.(이로부터의 여러 가지 곡절은 그만두고) 이렇게 하기를 해포나 하여 더욱 胡四[호사]로 더불어 莫逆[막역]이 되매, 한 번은 연세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물은대 자기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고 다만 말하기를, 唐[당]나라 시절에 黃巢(황소)가 난리 꾸미던 일이 어저께와 같다고 하였다. 하루 저녁에는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다가 胡四[호사]더러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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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분이 우리만큼 두텁기가 쉽지 못한데 마침내 얼굴을 모르니 이런 섭섭할 데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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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히 지내면 그만이지 얼굴이야 보아서 무엇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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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더니, 하루는 술자리를 벌이고 張[장]을 청하여다가는 작별하는 말을 하거늘 「어디 가시오?」 한즉
53
「나는 본래 陜中[협중]의 태생인데 이제 돌아갈 때가 된 것이오. 당신이 하도 내 얼굴을 보지 못해 했으니 이번에나 한 번 보시고 타일 만날 때의 징험을 삼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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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장]이 사면을 둘러보아도 도무지 보이는 것이 없더니 胡[호]의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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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寢房[침방] 문을 열면 내가 거기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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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늘 張[장]이 그 문을 열뜨리니, 그 안에 표표한 미소년이 앉아서 마주 보고 웃는데, 의복이 회매하고 미목이 그림과 같으며 얼른 하자 다시 보이지 않더니, 張[장]이 몸을 돌려 걸으매 곧 저벅저벅하는 신발 소리가 뒤를 따라 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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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張[장]이 작별하기를 어려워한대 胡[호]가 가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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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헤어짐이 다 정한 수거늘 그리 조조히 할 것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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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다시 큰 잔으로 술을 권하여 실컷 취하고 밤든 뒤에야 紗燭籠(사초롱)으로써 張[장]을 데려다주더니, 새는 날 가서 찾아 본즉 빈 집이 쓸쓸히 남아 있다. 張[장]이 이후에도 늘 가난히 지내다가 아우가 지방으로 벼슬을 나가매 큰 마음을 먹고 찾아갔더니 所料[소료]와 퍽 틀려서 맥이 풀어져서 등신처럼 馬上[마상]에 앉아서 돌아오더니, 홀연 一[일]소년이 검은 말을 타고 뒤를 따르므로, 돌아다보니 의복과 차림차림이 다 얌전하거늘, 드디어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소년이 張[장]의 기색이 언짢음을 살피고 왜 그러냐고 하므로, 張[장]이 欷歔(희허)하면서 사유를 말한즉, 소년이 또한 좋은 말로 위로를 하고 한참 동행을 하다가 갈림길을 당하여는 소년이 고개를 굽혀 작별하면서 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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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가면 웬 사람이 당신 친구의 선물을 드릴 터이니 선뜻 받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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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늘 잼처 물으려 한즉, 말을 놓아 달려가므로, 張[장]이 영문을 알지 못하고 과연 二[이], 三[삼]리를 간즉, 한 남의집 하인이 작은 채롱을 지고 오다가 말 앞에 올리면서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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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胡四相公[호사상공]이 선생께 보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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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늘 그제야 張[장]이 선뜻 깨단하고 받아서 열어본 즉, 은덩어리가 하나 그득한데 하인을 돌아다보니, 벌써 간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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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 있읍니다 (卷五[권오] 胡四相公[호사상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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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첩노릇 하는 여우의 이야기를 말씀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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萊蕪[내무] 땅의 劉洞九[유동구]란 이가 汾州[분주]에 벼슬을 사는데, 혼자 동헌에 앉았노라니까 뜰 밖에서 웃고 지껄이는 소리가 차차 가까이 오더니, 대청에 올라오는 것을 보니 여자 넷이 하나는 四○[사공]살쯤, 하나는 三○[삼공]살쯤, 하나는 二四[이사], 五[오]세 간이요, 마지막은 머리 땋아 늘인 처녀 하나인데, 죽 한쪽에 늘어서서 서로 보고 웃거늘, 劉[유] 본래부터 衙中[아중]에 여우가 많음을 잘 알므로 그냥 버려두고 모르는 체한즉, 좀 있더니 머리 땋은 處子[처자]가 다홍 수건 하나를 꺼내서 장난으로 면상을 바라고 던지거늘 劉[유]가 시치미를 떼고 집어서 창 밖으로 내어던지고 여전히 알은 체하지 아니하매, 네 여인이 한 번들 웃고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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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연장자가 와서 劉[유]에게 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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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생이 당신과 연분이 있으니 과히 소박하지 마시오.」
71
하므로 劉[유]가 싱겁게 「그러마」 하였더니, 가서 여하인을 시켜 그 전에 머리 땋아 늘였던 처자를 데리고 와서 劉[유]하고 나란히 앉히고,
72
「천생 배필인지 탐탐하게도 어울리오. 잘 데리고 사시오. 나는 가오.」
73
하고 가는데, 劉[유]가 자세히 보니 예쁘고도 잘나서 그 날부터 좌우에 두고 마마라고 이르고 지내는데, 모든 범절이 죄다 출중하였다. 하루는 劉[유]의 생일을 당하며 손을 많이 청하여 交子[교자] 三○餘[삼공여] 틀을 차리노라고 熟手[숙수]를 퍽 많이 불렀는데, 앞질러 일들을 나가서 겨우 一[일], 二[이]명밖에 오지를 아니하므로 劉[유]가 화가 상투끝까지 났더니 마마가 알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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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세요. 一[일], 二[이]명 熟手[숙수]는 있으나마나니 그들도 도로 보내세요. 제가 재주는 없어도 交子[교자] 三○[삼공]틀쯤은 마감하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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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므로, 劉[유]가 기뻐서 음식감을 죄다 마마 처소로 날라가라 하였더니, 家中[가중] 사람이 도마 소리가 재우 또닥거림을 들을 뿐인데, 심부름꾼이 교자상을 벌여 놓고 언뜻 뒤를 돌아보매 벌써 음식이 그릇에 담겨 있고 십 여인이 꽁지를 대어 날라도 이루 다 가져올 겨를이 없으며, 맨 나중에 熟設間[숙설간] 차지가 湯餠[탕병](가진떡)을 찾은대 마마의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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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말씀은 없었는데 그러면 猝乍間[졸사간]에 어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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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어 「응, 할 수 없으니 좀 꾸어다 쓰지」 하더니만, 좀 있다가 湯餠[탕병]을 가져가라고 하는데, 가서 보매 三○[삼공]여 그릇에 김이 무럭무럭 올랐었다. 손들이 헤어진 뒤에 劉[유]에게 이르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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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값 얼마만을 내어서 아무데 가서 갚고 오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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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므로, 劉[유]가 사람으로 하여금 돈을 가지고 간즉, 그 집에서 만들어 놓은 湯餠[탕병]을 잃고 쩔쩔매다가 심부름꾼이 가서 말을 하여 의심이 풀어졌다. 하룻밤에는 밤에 술상을 대해 앉았다가 우연히 山東[산동]의 苦醁(고록)을 생각하니 마마가 「좀 가져오지요」 하고 門外[문외]로 나가더니 얼마만에 돌아와서 가로되,
80
「문 밖에 가져다 놓은 한 독이면 며칠은 취하시겠지요.」
81
하거늘, 나가 보니 술이 있는데 바로 자기 집 솜씨로 새로 빚은 술이었다. 며칠 뒤에 본집의 큰집 마나님이 하인 둘을 시켜 劉[유]의 임지로 심부름을 보내는데 도중에서 한 하인이 말하기를,
82
「들으니 여우마마는 하인에게 賞給[상급]을 후히 주신다니 이번에 가서 상급을 타거든 털배자 갖옷 하나를 사 입으리라.」
83
하였더니 마마가 앉아서 벌써 알고 劉[유]더러 말하기를,
84
「댁에서 사람이 옵니다. 그러나 하인 놈이 버르장이가 없으니 좀 버릇을 가르칠 밖에 없읍니다.」
85
하였다. 이튿날 하인들이 막 성중으로 들어온즉,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여 관가에 이르러서는 견딜 수가 없으므로 머리를 싸 안고 죽겠네 살겠네 하므로 여러 사람들이 약을 써야 하겠다 한즉, 劉[유]가 웃으며 가로되,
86
「치료 받을 것이 없느니라. 때가 되면 저절로 낫느니라.」
87
하였다. 사람들이 죄를 마마님께 졌나보구나 한대, 하인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제 갓 온 길에 발감기도 풀기 전부터 무슨 죄를 졌단 말인가 하면서도 하소연할 데가 없으므로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와서
88
「살려 줍시사」 한즉 발 안에서 하는 말이,
89
「네 이 놈! 마마고 마님이고 하였으면 그만인데 하필 여우니 무엇이니 하는 것은 웬 일이냐?」
91
「예, 하늘 높은 줄을 몰랐읍니다. 上德[상덕]으로 용서하여지이다.」
93
「또 이 놈! 털배자까지 얻어 입으려는 놈이 그런 무례한 데가 어디 있느냐?」
94
하고 이어서 「그만 머리가 낫느니라」 하기가 무섭게 하인의 두통이 씻은 듯 없어지거늘, 하인이 절하여 치사하고 물러나오려 하매, 홀연 발 안으로서 보퉁이 하나를 내어 던지면서,
96
하거늘, 끌러 보니 거기 배자값이 들어 있었다. 劉[유]가 家中[가중] 소식을 물은 대 하인의 말이,
97
「다른 아무 일은 없사오나 다만 어느날 밤에 술 한 독이 간데온데없이 없어졌읍니다.」
98
하는데, 그 날짜를 따져 보매 곧 술독 가져오던 날이었다. 사람들이 그 신령을 꺼려서 부르기를 聖仙[성선]이라 하였다. 이 뒤에 허다한 기적이 있지마는 이루 말할 수 없다.
99
하는 것이 있읍니다(卷六[권육] 狐妾[호첩])
100
이 밖에도 <狐諧[호해]>에는 유우머리스트한 여우의 앞에 사람이 공기처럼 놀려지는 것을 말하고 (卷五[권오]), <毛狐[모호]>에는 팔자 사나운 農軍[농군]은 여우를 만나도 박색에다가 가난뱅이를 만나서 여전히 똥거름 더미에서 허덕거리다가 마는 광경을 그리는(卷六[권육]) 등의 여우가 노는지 여우를 놀리는지 모를 각양 각색의 괴담이 지나의 설화 세계에 더러 쟁여 있읍니다.
102
지나에서도 여우를 아주 신사 숙녀로 생각하게 되기는 실상은 매우 후대의 일일 줄 압니다. 많이 文士[문사]의 붓끝에서 관념적으로 여러 번 다듬고 다듬어서 한껏 세련 精製[정제]를 치른 뒤의 산물이 근대 소설에 나오는 이른바 狐仙[호선]의 종류입니다. 고대에 있어서는 狐[호]를 일변 무던한 짐승으로 치면서도 일변 사람과 세상에 대하여 매우 妖惡[요악]한 장난을 하고 몹쓸 병과 끔찍한 재난으로써 사람을 귀찮게 하는 줄로도 생각하였읍니다. <晋書[진서]>의 韓友傳[한우전]에 道士[도사]가 오래 鬼魅[귀매]의 병에 걸린 여인을 자루 속에 넣고 흠씬 두드렸더니 여우 털이 두 觔(근)이나 나오고, 병이 나았다는 사실을 적은 것도 있거니와, 唐[당]나라 張讀[장독]의 撰[찬]한 <宣室志[선실지]>(凡[범]一○[일공]권 補遺[보유] 一[일]권)라는 괴담집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읍니다.
103
唐[당] 貞元[정원] 중에 강릉 땅에 少尹[소윤] 벼슬을 하는 裵某[배모]라는 이가 一○[일공]여 세 먹은 아들을 두어 총명하기 짝이 없으므로 裵[배]씨가 심히 사랑하더니 하루는 까닭 없는 병이 들어서 날마다 도지고 백약이 무효하매 한 옆으로 道術[도술] 있는 이를 구하여 술법으로써 낫게 하기를 생각하였다. 마침 高[고]씨로라 하고 찾아 와서 술법이 높음을 자랑하는 이가 있으므로 裵[배]씨가 맞아들여서 그 아들을 보인대 그 자가 가로되,
104
「이 아이가 다른 병이 아니라 여우의 장난에 걸린 것인데 낫게 하는 도리가 있지요.」
105
하고 부적을 붙이고 어찌어찌 하더니만 한 식경쯤 지나서 아이가 문득 일어나서 병이 나았노라 하므로, 裵[배]씨가 크게 기뻐하여 高生[고생]이 참 도술 있는 사람인 줄 알고 음식을 갖추어 대접하고 幣帛(폐백)을 후히 싸서 내었더니 高生[고생]이,
106
「이로부터 날마다 와서 보아 드리리다.」
107
하고 돌아갔다. 그 아들이 다른 병은 나았으나 얼이 빠지고 가끔 실성한 소리를 하고 울고 웃음을 억제하지 못하므로, 高生[고생]이 오게 되면 裵[배]씨가 이 병세를 좀 없애 달라고 하니 高生[고생]의 말이,
108
「이 아이의 精魄[정백]이 오래 妖魅[요매]에게 붙들려 가 있어서 아직 돌아오지 못하는 건인데, 一[일]순이 지나지 못하여 完人[완인]이 될 것이니 아무 걱정마시오.」
109
하거늘 裵[배]씨가 그럴 줄 믿고 기다렸다. 수일 후에 王[왕]씨라고 하는 사람이 요괴 쫓을 방술을 가져 병을 고친다 하고 와서 뵙자고 하므로 들어 오라 하여 만나니 裵[배]씨더러 하는 말이,
110
「영감 아드님이 병이 있어 아직 쾌차치 못하다 하니 한 번 보아 드리리다」
111
하거늘 裵[배]씨가 보인대, 보고는 크게 놀라 가로되,
112
「이 도령의 병은 여우가 붙은 것이니 속히 다스리지 아니하면 위태하리다」
113
하므로 裵[배]씨가 高生[고생]의 이야기를 한대 그가 웃어 가로되,
114
「그 高生[고생]이 여우 아닌 줄을 어찌 아시오?」
115
하였다. 한참 좌석을 만들고 술법을 하는데 高生[고생]이 홀연 와서 들어오더니만 화를 내어 나무라기를,
116
「어쩌자고 이 아이 병이 나았는데 여우를 청해 들여서 딴 짓을 하오?」
117
하니 王[왕]은 高[고]의 오는 것을 보고 욕설하기를,
118
「옳구면! 이 여우놈의 짓이로군. 당자를 만났으니 술법을 할 것 있느냐?」
119
하고 둘이 주거니 받거니 욕설을 하고 나무라므로, 裵[배]씨의 家人[가인]들이 한참 해괴스러움을 이기지 못하는 참인데, 홀연 一[일]도사가 문 밖에 와서 가만히 하인더러 하는 말이,
120
「들으니 이 댁 도련님이 여우 붙은 병으로 애를 쓴다는데 내가 그것을 일쑤 잘 떼는 터이니 들어가서 그런 말씀을 여쭈어 보게.」
121
하므로 하인이 얼른 들어와서 그 말을 하매 裵[배]씨가 나와서 지내는 일을 말한즉, 도사의 말이,
123
하고 들어가서 二[이]인을 대하매, 二[이]인이 또 꾸짖기를,
124
「네 이놈! 너도 여우인데 도사 모양으로 누구를 혹하러 드느냐?」
126
「여우란 산간 무덤 속에나 있는 것이지 남의 집안에 와서 무슨 작번이냐?」
127
고 하며 그만 문을 닫고는 세 놈이 어울려서 相辱相鬪[상욕상투]를 하고 사생을 결단하려 하므로 裵[배]씨가 더욱 惶怯(황겁)하고 家人[가인]들도 어쩔 줄을 몰라서 굿만 보다가 저녁이 되더니 괴괴히 아무 소리가 없으므로 문을 열고 보매, 여우 세 마리가 다 방바닥에 엎으러져 헐떡거리며 꼼짝 못하거늘 裵[배]씨가 죄다 휘두드려 죽이니 그 아들이 한 열흘 뒤에는 병이 나아 버렸다.
128
하는 것은 당나라 시절에 狐[호]가 사람에 붙어 병의 빌미 노릇함을 믿은 한 증거를 삼는 것입니다. <朝野僉載[조야첨재]>란 책에는,
129
唐初以來[당초이래], 百姓多事狐神[백성다사호신], 房中祭祀以乞恩[방중제사이걸은], 食飮與人同之[식음여인동지], 事者非一主[사자비일주], 當時有諺曰[당시유언왈], 無狐魅不成村[무호매불성촌].
130
이라고까지 하였으니, 그 신앙 유행의 세력이 크던 것을 대강 짐작할 것입니다.
131
지나에 있는 이러한 狐[호] 신앙은 저절로 문화적 교섭이 깊은 그 주위의 민족에게로 파급할 밖에 없었읍니다. 그네들은 대개 고유 신앙의 중에 동물 숭배의 分子[분자]를 가졌으므로, 여우 신앙이 그 속에 들어가기는 사정이 심히 편의도 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신라와 일본과 같은 당나라하고 교통이 가장 빈번한 나라에는 唐[당]나라 그대로의 狐[호] 신앙이 진작부터 수입되어, 얼마 되지 아니하는 동안에 큰 세력을 가지게 되었읍니다. 대저 반도나 일본의 고대 신앙에는 여러 가지 동물이 신앙의 대상이 되어 있으되 여우만은 그 흔적이 없더니, 唐[당]나라 이후 지나의 교통이 頻數[빈삭]하여진 뒤에 이르러 와짝 그 사실이 생겨난 것은 대개 唐[당]나라의 영향에 말미암은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읍니다.
132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마찬가지 唐[당]나라의 민간 신앙을 수입한 것이겠는데, 반도에는 그것이 일시적이요 또 매우 피상적에 그치고 말았는데, 일본에서는 그 사실이 더욱 현저하고 그 내용이 갈수록 복잡화하여 도리어 물에서 생긴 얼음이 물보다 더 찬 셈으로, 지나 본토 이상의 대발전을 이룬 것이 기이한 일입니다.
134
무엇보다도 고유 신앙에 있는 동물숭배적 경향이 더하고 덜한 데 말미암음이 큰 줄로 생각합니다. 여하간 일본에 들어와서는 어느 틈에 五[오]곡을 주재하시는 大神[대신]인 ウカノミタマノミコト(우카노미타마노미코토)(倉稻魂命[창도혼명])의 지위를 빼앗아서 開運殖産[개운식산]의 신으로 민간 신앙의 대상 중 가장 큰 존재가 되고 德川[덕천]시대의 江戶[강호]에 「伊勢屋[이세옥], 稻荷江[도하강], 大[대]の糞[분]」라는 속담이 있도록 그를 위하는 神社[신사]가 거의 발 끝에 채여 걸음을 떼어 놓을 수 없도록 다수 이었읍니다.
135
시방도 웬만한 가정과 사람 많이 모이는 백화점ㆍ극장 같은 곳에 이를 위한 작은 신사를 시설치 아니한 곳이 없으며, 저 京都[경도] 伏見[복현]의 稻荷神社[도하신사]와 東京[동경] 赤坂[적판]의 豐川稻荷[풍천도하] 같은 데를 가서 보면, 일반 치성꾼의 雜畓[잡답]함이 사람의 이목을 놀래는 것이 있읍니다. 稻荷神社[도하신사] 말고도 민간에 「狐遣[호견]イ(키쓰네쓰카이)」라 하여 여우를 신으로 모시는 무당이 있고, 옛날에는 일부 승려 중에 여우를 붙이고 떼는 것을 직업을 삼는 무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또 「狐憑[호빙]ぎ(키쓰네쓰키)」(Alopekanthropia)라 하여 여우가 붙은 줄로 착각하고 여우의 음성과 형용을 하는 일종의 정신병이 널리 행하여, 어떠한 곳에는 부락 전체가 모조리 이 병으로 애쓰기도 하며, 이 때문에 많은 가정과 인생의 비극 참변에 울게 됨은 겅성드뭇이 신문 지상에도 보도되는 바와 같읍니다. 이러한 사회 공기 중에서 狐[호]를 주인공으로 하는 괴담 기사가 많이 생김은 새삼스레 말할 것도 없는 일일지니, 이것은 일본의 소설 희곡을 섭렵한 이는 누구나 잘 아는 바와 같습니다.
136
조선 반도에 있어서도 그 고유 신앙의 중에는 狐[호] 숭배의 형적을 찾을 수 없으며, 지나 南北朝[남북조] 이후 지나 방향과의 교통이 빈번하여지면서부터 狐[호]를 높이고, 또 妖[요]가 狐魅[호매] 노릇함을 믿는 사실이 조금씩 문자상에 나타나게 되었읍니다. <三國史記[삼국사기]>를 보건대, 신라 奈解王時[내해왕시]로부터 狐[호]가 宮廟[궁묘]에 들어온 것을 괴변으로 적은 기사가 있고, 고구려 次大王時[차대왕시]에 왕이 나가 사냥을 하는데 白狐[백호]가 따라오면서 울매, 무당을 시켜 풀라 하니 하늘이 임금을 깨우쳐 몸을 닦게 하는 標信[표신]으로 보낸 것이라 하매, 왕이 그 무당을 죽여버렸다 하는 기사가 있는데, 이것을 실재의 일이라 할지라도 무론 여우 그것이 변화를 부린 것은 아닙니다. 지나의 南北朝[남북조] 末[말]로부터 隋初[수초]에 걸치는 고구려 平原王[평원왕](岡[강])의 따님을 히로인으로 하는 유명한 溫達[온달]의 전설 가운데
137
공주님이 부왕에게 쫓겨나서 온달의 오두막집으로 찾아가매, 눈 먼 온달의 어머니가 더듬더듬 만져 보고는 손길이 명주 고름 같으시고 향기가 물컹물컹 나시는 귀여운 아가씨가 어쩌다 여기를 오셨다는 말이오, 우리 놈 온달이는 배가 하도 고파서 산 속으로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러 들어갔소이다 하므로 공주가 山下[산하]까지 가서 楡皮[유피] 짊어지고 내려오는 온달을 만나 보고 전후 수말을 이르매 온달이 펄쩍 뛰며 하는 말이
138
「잔말 말고 저리 가거라. 백주 대낮에 누구를 호리려 하느냐? 窮山深峽[궁산심협] 험한 길에 귀한 색시가 찾아오시다니, 네가 이내 사람이야? 누구를 속이려고 흥 요 鬼[귀]야 썩 물러나거라.」
139
하고는 뒤도 돌아다보지 아니하고 가버렸다.
140
하는 한 대문이 있는데, 말하자면 이것이 狐[호]가 변화 作亂[작란]함을 생각한 사실의 처음 史記[사기]에 나오는 형적입니다. 다만 글 짓는 이가 글치레로 당연히 집어넣은 것이 아닐진대, 대개 이 때쯤은 지나와 비슷한 狐鬼[호귀]의 관념이 반도에도 존재하였음을 짐작할 것입니다. <三國遺事[삼국유사]>에는 신라 제二五[이오]대 眞智大王[진지대왕]의 유복자인 鼻荆(비형)이 鬼衆[귀중]을 데리고 장난을 하는데, 그 중에 吉達[길달]이란 놈이 잘났으므로 데려다가 조정에 벼슬을 시켰더니 吉達[길달]이 하루는 변하여 狐[호]가 되어 도망갔다는 전설을 적었읍니다.
141
이 신라의 眞智大王[진지대왕]은 정히 고구려의 平原王[평원왕]과 동시대의 군주입니다. 狐[호]의 변화에 관한 설화가 지나에서도 南北朝[남북조] 이후로 차차 大成[대성]하여 갔는데, 반도 남북의 고대 문헌이 일치하여 이때에 狐[호]의 변화를 나타내는 전설을 가졌음은 아마 우연한 것 아니요, 대개 지나적 狐神[호신] 관념이 반도에 전래하는 시기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삼국시대의 하엽으로 내려오면서는 狐[호]의 변화에 관한 전설이 차차 늘고 백제의 말년에는 국가 쇠약의 징조를 예고하는 데 여우가 많이 활동하였다 함은 <三國史記[삼국사기]>에 적혀 있음과 같습니다. 또 <三國遺事[삼국유사]>에 불교 비밀의 묘리를 얻은 密本法師[밀본법사]가 왕궁에 들어가서 왕녀가 狐魅[호매]에 걸려 애쓰는 것을 도력으로써 여우를 쫓아내고 병을 낫게 한 것은 前番[전번]의 소개한 것과 같습니다.
142
<高麗史[고려사]>의 첫머리에는 金寬毅[김관의]의 <編年通錄[편년통록]>에 채록된 고려 시조의 전설을 인용하였는데 거기 이러한 것이 있읍니다.
143
처음에 聖骨將軍[성골장군] 虎景[호경]이라는 이가 平䢷山神[평나산신]을 만나서 한가지 神政[신정]을 보는데 인간에 있는 舊妻[구처]를 못 잊어 몰래 와서 잠을 자고 그 몸에서 康忠[강충]이라는 이가 나서 이 이가 松岳山下[송악산하]에 집을 짓고 사는데, 아들 형제를 두었더니, 그 작은 아들 損乎述[손호술](改名[개명] 寶育[보육])이 형 伊帝建[이제건]의 딸 德周[덕주]를 장가들여 딸 둘을 낳으니, 작은 딸 辰義[진의]란 색시가 唐[당]나라 肅宗[숙종] 황제의 유람 왔던 길에 만나서 아이를 배어 作帝建[작제건]이란 이를 낳았는데 이 作帝建[작제건]이 인물이 여간 아니요, 활이 千古[천고] 名弓[명궁]이라 상선을 잡아타고 唐[당]나라로 아버지를 찾아 뵈오러 가는데, 바다 한가운데 이르러서는 운무가 자욱하여 배가 三[삼]일이나 갈 수가 없으며 船人[선인]들이 아마 고려인을 내려놓아야 하겠다 하거늘, 作帝建[작제건]이 弓矢[궁시]를 가지고 스스로 해중으로 뛰어드니 밑에 암석이 있어서 그 위에 가서 서고 안개가 걷히고 바람이 빨라서 배는 그만 살같이 가 버렸다. 좀 있다가 노옹이 나와서 作帝建[작제건]더러 말하기를,
144
「나는 서해 용왕인데 매일 저녁 때면 老狐[노호]가 熾盛光如來[치성광여래] 모양을 하고 내려와서 이 암상에서 <臃腫經[옹종경]>을 읽으면 내가 두통이 나서 견딜 수 없소. 들으니 당신이 활을 잘 쏜다 하니 나를 위하여 이 걱정을 없애주길 바라오.」
145
하거늘 作帝建[작제건]이 허락하고 기다린즉 때가 되매 공중에서 풍악성이 요란하고 서방으로 一佛[일불]이 오는데 眞佛[진불]인가 의심하여 머뭇거려서 용왕이 의심 말고 쏘라 하여 시위를 잔뜩 잡아당겨 살 한 대를 탁 쏘아 던지니, 거기 따라서 떨어지는 것이 과연 一老狐[일노호]이었다. 옹이 크게 기뻐서 용궁 중으로 맞아들여 무수히 致禮[치례]하고 그 장녀 翥旻義(저민의)로써 아내를 삼고 七寶[칠보]와 신령스러운 豚[돈]을 선물하니 作帝建[작제건]이 이것을 가지고 나와서 松岳[송악] 南麓下[남록하]에 나와서 살면서 용녀의 몸에 아들 四[사]형제를 낳았는데, 그 맏분이 龍建[용건](後改[후개] 隆[융])이라는 고려 太祖[태조]의 아버님이었다.
148
원래 <編年通錄[편년통록]>에 적은 고려 시조의 전설은 반도 고래의 여러 건국 전설을 주워 모으고 거기 약간 변통을 더한 것인데, 이 作帝建[작제건]의 용궁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一段[일단]은 우리가 다른 기회에 말씀한 일 있는 신라의 居陀知[거타지] 전설을 빌어 쓴 것입니다. 여하간 신라에는 居陁知[거타지], 고려에는 作帝建[작제건]의 무용담으로 변화 자재한 神狐[신호]를 制伏[제복]한 전설이 있읍니다. 또 고려 말련에 恭愍王[공민왕]의 신임을 받자와서 무서운 威權[위권]을 부리던 辛旽[신돈]이란 중이 그때 사람에게 老狐精[노호정]으로 믿어졌음은 史册[사책]에 전해 있음과 같습니다.
149
이렇게 狐[호]의 변화 신통을 나타내는 전설은 반도에도 결코 희소하다고 할 수 없읍니다. 그러나 이때까지 소개해 내려온 것과 같이 대개 妖惡[요악]하여 사람의 해가 되는 여우들뿐이지, 지나의 狐仙[호선]과 같이 점잖은 행동도 없고 일본의 稻荷[도하]와 같이 인생의 이익을 점지하는 위덕도 볼 수 없음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신령으로 위하거나 신선으로 친절한 대접을 받거나 하는 일이 반도에서는 생기지 아니하였읍니다. 또 오랜 문헌에서 이것저것을 들추니까 이만한 사실이 나오기는 하되, 일반으로는 이 전설도 그렇던가 하고 의심을 받을 만큼 서투르게 생각됨이 사실일 것입니다.
150
오늘 조선인이 여우에게 가지는 통념은 사람의 妖惡[요악]한 것을 九尾狐[구미호]라고 부르는 속담에 나타난 이상의 아무 것도 없읍니다. 그러고 九尾狐[구미호]를 妖惡[요악]하다고 하게 된 유래에 대한 설명조차 아무 것도 없는 터입니다. 실상 九尾狐[구미호]는 본래 동방 조선 반도쯤에서 나는 瑞獸[서수]로 고대의 지나인이 생각하던 것이요, 九尾狐[구미호] 이외 다른 여우에 妖惡[요악]한 전설이 있기 때문에 꼬리를 아홉씩이나 가진 여우는 오죽하겠느냐 함을 연상한 것이 九尾狐[구미호] 같다는 속담의 그 유래처이겠지요마는, 요긴한 狐妖[호요] 전설은 실상 민간에 많이 행하지 아니합니다.
151
이조의 문헌상에 나타난 것을 뒤지건대, 우선 <於于野談[어우야담]> 중에 이러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읍니다.
152
黃建中[황건중]이란 이는 오입장이로 이름이 화류장에 드날리는데 田庄(전장)이 철원 지방에 있어서 여기 와서 유치한 지 수 년이나 넘었다. 집을 古邑內[고읍내]의 곁에 정하고 지내는데, 하루밤에는 혼자 자노라니까 홀연 미인 하나가 문을 열고 서슴지 않고 들어오는데, 천하의 일색이요 판 차리고 앉아서 노는 품이 평생에 듣도 보도 못하던 바이므로, 建中[건중]이 心神[심신]이 황홀하여 욕심을 억제할 수 없기는 하되, 가만히 본즉 때가 눈보라 치는 엄동인데 입은 것이 다 홑것이므로 그것이 야릇하다 하여 두고 동정을 보기로 하였다. 계집은 온갖 아양을 다 떨고 사나이를 사로잡으려 하다가 못하여 날이 밝음과 함께 가더니 이로부터 새벽에는 가고 밤 되면 와서 백방으로 꺾어 넘어뜨리기를 힘쓰니 建中[건중]이 속으로 그 사람 아님을 알고 마침내 최후의 일선을 넘지 않고 아내를 불러 좌편에 누이니 계집이 우에 와 있고 계집종을 불러 우편에 있게 하니 계집이 머리맡으로 가고 다른 하인을 불러 머리맡을 차지하게 하니 계집이 발치로 가고 발치까지를 빼앗아도 구석구석 끼어서 떨어지지를 아니하였다. 하는 수 없이 무당 卜術[복술] 등을 불러 굿을 하여 쫓으니 계집이 역정내어 하는 말이,
153
「내가 그대를 괴롭게 굴자는 것 아니다. 다만 그대에게 졌던 신세를 갚자는 것인데, 이것이 너무 심하지 아니하오.」
155
「나는 철원 땅에 도읍했던 泰封國[태봉국] 弓裔王(궁예왕) 시절의 궁녀로서 나라가 망할 때에 亂兵[난병] 중에 죽었더니, 그대의 선조 黃繼尹[황계윤]이 나를 거두어서 都西[도서] 山外[산외] 數里[수리] 되는 곳에 묻어 준 은덕을 내가 잊지 못하오. 그 때는 정히 더운 철이라 홑옷을 입었으므로 시방도 그 옷을 그냥 입고 있으니 행여나 괴이쩍게 알지 마시오.」
156
하였다. 建中[건중]이 견디다 못하여 집을 떠가지고 서울로 오니, 계집이 그냥 따라와서 지근거리기를 전같이 하거늘, 建中[건중]이 거절하기를 더욱 굳게 하고 그가 개 무서워함을 이용하여 가중에 개를 수없이 기르고 목에 방울을 걸어 요란스럽게 하였더니, 수일만에 계집이 울면서 하직하여 가로되,
157
「그대가 이토록 박정하여 구박이 더욱 심하니 인제는 인연도 그만이기로 하직코 돌아가오.」
159
「그대가 나를 따른 지 오래되 대접을 禮[예]와 같이 못하여 심히 부끄럽거니와, 인제 작별하는 마당을 당하니 來頭[내두]의 길흉이나 일러주기를 바라노라.」
160
한대 다만 五言[오언] 글 한 짝을 써 주되 「金鷄屋上樑[금계옥상량]」이라 하였는데 온 집안이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 建中[건중]은 탕자라 악소년으로 더불어 閭里(여리)로 횡행하다가 옥중에 잡혀 갇혔는데, 옥중의 들보 위에 黃鷄[황계] 한 마리가 깃들었거늘 웬 것이냐고 물은즉, 久囚[구수] 죄인의 대답이,
161
「밤은 길고 때는 몰라서 갑갑하여 기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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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지라 建中[건중]이 비로소 金鷄屋上樑[금계옥상량]의 의미를 해득하였다. 그 계집이 항상 궁예 시절의 사실을 이야기함이 극히 자세하여 家人[가인]이 그대로 적어서 책 한 질을 만들었더니, 그 아비 黃璘(황린)이 이르되 妖[요]라 하여 불에 넣어버렸다. 생각컨대 그 계집이 狐精[호정]이기로 개를 무서워한 것이다. 아마 당시의 一野狐[일야호]가 궁중으로 들어가서 人形[인형]을 쓰고 장난을 하던 것일지니 그러기에 궁예 시절 일을 자세히 아는 것이다(卷四[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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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은 반도 在外[재외]의 여우 장난 이야기하고는 아주 구조와 色態[색태]를 달리 하는 딴 판의 것입니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없고 언론이 교양도 있는 것 같고 더욱 그 궁예 시절 일을 이야기함은 전에 소개한 <聊齋志異[요재지이]>의 胡四相公[호사상공]이 黃巢[황소]의 亂離[난리]를 말한 것과도 비슷하여, 지나 후세의 狐仙[호선] 설화에 무슨 맥락이 닿았음을 생각케 함이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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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남쪽에서 果川邑[과천읍]으로 통한 길에 狐峴[호현]이라는 곳이 있다. 행인 하나가 지나다가 조그만 초가집 속에서 딱딱 무엇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로 들여다본즉, 한 하얀 늙은이가 牛皮[우피]를 깔고 앉아서 나무를 깎아서 쇠머리 모양을 만들고 있거늘 한참 서서 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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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만들어 무엇에 쓰시오?」 노인이 시치미를 떼고 「소용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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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다 끝나매 행객을 내어주면서 「좀 써 보시오」 하고 또 우피를 주면서 「이것도 입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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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행인이 장난으로 생각하고 갓을 벗고 쇠머리를 쓰고, 옷을 벗고 우피를 둘렀더니 노인이 「그만 벗으오」 하는데 행인이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지지 아니하여 그만 소 한 마리가 되매 그만 외양에 매어 버렸다. 이튿날 타고 장으로 나가니, 한참 農時[농시]라 重價[중가]로 사자 하거늘 행인이 소리를 쳐서 외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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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전후 사실을 말하여도 산 임자는 알아듣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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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가 저의 집에 송아지를 두었단 말인가? 五臟[오장] 가운데 병이 들었단 말인가? 왜 이리를 버럭버럭 지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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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뿐이며 노인이 비싼 값을 불러 무명 五○[오공]필을 받고 팔면서 買主[매주]더러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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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를 데리고 다닐 때에 무우밭 가까이 가지를 마오. 무우를 먹으면 곧 죽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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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산 임자가 타고 가서는 무거운 짐을 싣고 어려운 일을 시키되 힘이 들어 헐떡거리면 채찍이 말을 하니 분하고 원통하여 임자에게 하소연을 하려 하여도 주인이 알아듣지를 못하였다. 가만히 생각하니 萬物之中[만물지중]에 最貴[최귀]한 인생으로 그만 짐승의 탈을 쓰고 이 고역을 하다니 에라, 죽어버리리라 하되 도리가 없더니, 그 집 외양간이 대문 곁인데 계집애가 무우를 개울에 가서 씻어 가지고 한 광주리 그뜩 담아 가지고 머리에 이고 앞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 늙은이의 무우를 먹으면 죽는다는 말이 생각나서 입으로 광주리를 쳐서 땅에 떨어지는 무우 몇 개를 얼른 집어먹었더니 머리에서 쇠머리가 저절로 떨어지고, 몸에서 우피가 저절로 물러나서, 그만 한 벌거숭이 몸으로 쇠 외양에 서게 되었다. 주인이 놀랍고 이상하여 웬 일이냐 하거늘, 행인이 전후 수말을 다 하고 한가지 狐峴[호현]으로 가서 찾으매, 그때 초옥이 없고 다만 바위 밑에 布[포] 數匹[수필]이 남아 있으므로 비로소 여우의 장난임을 깨달았다. 狐峴[호현]이란 이름이 여기서 생겼다(卷四[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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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지명 기원 설화가 있읍니다. 이 중에는 유우머도 있고 교훈도 있고, 또 조선 특유의 情調[정조]라 할 것도 있어서 반도에 있는 동물설화 중에서도 가위 압도적 걸작의 하나로 칠 수 있는 것이지마는, 이것도 가만히 보면 지나 仙術家[선술가]의 어느 설화에 끈이 닿은 것 같은 생각이 납니다. 더욱 狐峴[호현]의 노인이 공연한 사람을 쇠탈을 씌워서 돈 돌려 쓰는 장난을 하면서도 은근히 도로 사람될 方文[방문]을 일러 준 것은 그 철저한 악의의 없음을 나타냄이 지나 仙術家的[선술가적] 例套[예투]입니다. 통틀어 <於于野談[어우야담]>의 재료에는 풍자적 의미를 붙인 예술적 寓語[우어]가 많으매, 전의 黃建中[황건중]의 이야기고 시방 狐峴說話[호현설화]이고가 어떠면 <於于野談[어우야담]>의 작자가 다만 이 설화를 채록한 자 됨에 그치지 아니할까를 생각할 수도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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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하간에 <於于野談[어우야담]>의 두 편 이야기는 조선의 동물설화 중 특색 있는 한 그룹으로 세련 磨琢[마탁]된 지나 근세의 동물설화로 더불어 대개 무슨 연락이 있음을 생각케 하는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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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 말씀한 바로써 살피건대, 반도의 여우에 대한 관념은 대개 전후의 두 시기에 나뉘어서 다만 妖惡[요악]한 물건으로 여우를 대하던 고려까지의 한 시기와 그러한 관념은 차라리 씻은 듯이 없어지고 明淸間[명청간] 소설에서 보는 것 같은 여우의 행동을 그리게 된 조선시대가 서로 截然(절연)한 특색을 나타내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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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괴담이라는 큰 제목을 걸고 이번에는 겨우 여우에 관한 한 부분만을 말씀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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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九三八年[일구삼팔년] 四月[사월] 五日[오일]∼四月十三[사월십삼] 每日申報[매일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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