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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월 시 해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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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고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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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 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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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대 4회 시낭송회 강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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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하여 해설을 붙인다고 하는 것은 시에 대한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고 생각하며 또한 시인에 대한 참혹한 모욕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소월과 같은 고명한 시인에 대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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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소월시를 해설하라 하면 한 편의 소월시를 읊고 듣고 다시 거기에 흐르는 어떤 아늑한 감동을 각자가 마음 속에 새겨볼 수 있다면은 저절로 소월시는 이해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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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구태여 소월시를 해설해야 한다면은 한 편의 소월시가 아니라 소월의 일생을 통하여 이루어진 시작 전편에 흐르는 어떤 윤곽을 다른 말로써 비교적 알기 쉽도록 이야기 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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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은 시에 있어서 무엇을 적었으며 무엇을 적을 수 없었던가. 또한 소월은 어찌하여 그런 것을 적었으며 그런 것을 적음으로써 소월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들이 문제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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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이 이야기는 소월시와 소월과의 관계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나는 이미 발표된 몇 사람의 소월론을 중심하면서 나의 생각을 다소 절충하여 이야기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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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소월은 본명이 김정식이라고 불렀으며 1903년에 태어나 1936년에 서른셋이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한 분입니다. 이미 열여덟 되던 해에 「못잊어」라는 처녀작을 내었고 《개벽》이라는 잡지에 저 유명한 「진달래꽃」이 발표된 것은 1922년 그가 20세되던 해입니다. 그 다음 해인 1923년에 그는 「삭주귀성」이라는 시를 발표하여 점점 세상의 이목을 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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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소월은 「산유화」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들을 내었습니다. 1925년 그가 스물세살 때 쓴 것이 여러분이 앞으로 들으실 「시혼」이라는 산문이 올시다. 1920년에서 26년에 이르는 六[육]·七[칠]년간이 바로 소월시의 전성기였다고 하겠습니다. 그가 엮은 시집 「진달래꽃」 속엔 백이십칠 편이 수록되었고 다시 근간된 「소월시집」엔 백사십 육편이나 수록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으로써 소월의 전 시작을 마다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소월이 가진 시의 균형과 시인으로서의 자세는 충분히 논하여지고 남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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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은 주지하는 바와같이 동경 상과대학까지를 마친 건전한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러한 지성인이 어찌하여 . 도시문명을 떠나서 자연 속으로 은퇴하였는가. 사람들은 여기에 있어서 소월시의 출발을 구명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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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심지어는 이런 말까지 들립니다. 그때 우리 문단은 한창「백조」 중심의 낭만주의가 전성하던 시기인데 소월은 혼자서 그러한 낭만주의를 아랑곳 하지 않았다고. 그러나 나의 생각은 이것과 전적으로 배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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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우리문단의 낭만주의가 불순한 사이비한 낭만주의였는데 비하여 고고한 소월의 낭만주의는 비록 불완전하며 자연발생적이었다 할지라도 비교적 투철한 낭만주의였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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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은 세기말 시대에 있는 퇴폐한 도시중심의 서정에 반발하여 고전적이며 고유한 파묻힌 서정에 먼저 눈을 떴습니다. 소월의 낭만주의는 실로 이러한 눈을 기르며 이러한 눈을 살려 나가는데 있어서 거의 천재적인 작품들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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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영국의 워즈워스나 중국의 도연명과도 비교하여 말합니다만은 소월에겐 좀 더 특수한 서정과 낭만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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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서 소월에겐 남다른 「눈」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소월은 이 「눈」이 저절로 미치는 곳에 마지 못하는 자연을 보았습니다. 오히려 그보다도 그 자연 속에 더 깊이 묻혀서 얼굴조차 보일까 말까하는 우리의 지난 날 서정을 찾았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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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소월에 있어선 그렇게 파묻힌 자연 속의 서정이 또한 자기에게 있어선 누구보다도 다정한 「님」이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서정은 가장 멀면서도 가까운 인간의 이름으로 불리어 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소월은 남달리 이상한 「눈」을 뜨고 이상한 「님」을 불러내었습니다. 사실 소월시의 대부분은 「님」의 노래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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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님은 그대로 불러서 돌아오는 님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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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려시대의 유명한 소곡 「가시리」의 「님」과 소월시 「진달래꽃」에 나타난 「님」과를 비교하여 본다면 그 내막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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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에 있어서의 「님」은 「가시난듯 도셔오셔서」 이를테면 「훌훌히 떠나가는 것처럼 훌훌히 돌아와 주십시오」하는 보내는 사람의 애절한 기원 속에 노래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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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월시에 있어서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라」로 되어 있습니다. 소월의 「님」은 「가시리」의 「님」과 같이 훌훌리 돌아올 수 없는 「님」이올시다. 바꾸어 말하면 소월은 「님에 대한 기원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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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이는 무엇을 말하여 주는 것입니까? 「가시리」의 배경엔 윤회왕생하는 불교 사상이 밑받침되어 있었다면 「진달래꽃」에는 인간에 대한 자각 다시 말하면 인간주의가 밑받침되어 있었습니다. 참으로 소월이 가졌던 낭만주의는 이렇게 파묻힌 서정에 대하여 하나의 인간을 배합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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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소월의 「님」은 아주 돌아올 수 없는 단념 속에 잊혀진 「님」이올시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자세히 「아니 눈물 흘리우리라」하면서도 눈물만 흘리고 있었던 소월은 상상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소월은 자기의 시를 지으면서 자기를 속였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소월은 자기를 속였습니다. 소월은 속임하는 자기와 속임을 당하는 자기와의 두 가지 자기를 꼭 같이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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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시에서 발견되는 가장 중요한 의의는 실로 여기에 있습니다. 소월시엔 울고 싶어 하면서도 울지 못하며, 웃고 싶어 하면서도 웃지 못하는 「님」이 있었으니 그러한 「님」이 바로 소월 자신이었다는 것입니다. 한사코 긍정하려는 인간과 부정하려는 두 가지 인간 타입이 서로 대립하는 속에서 소월의 서정은 너무나 화려한 허무의 옷을 입기도 하였고 돌바위처럼 싸늘히 굳어지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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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소월에겐 서릿발 치는 비정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정을 없이 하면서도 정을 재촉하고 정에 불지른 소월을 생각할 때, 이러한 기막힌 부조리의 절정을 나는 「차안서 삼수갑산운」이라는 그의 훨씬 후기작에서 얻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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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水甲山[삼수갑산] 나 왜 왔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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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水甲山[삼수갑산]이 어디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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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나니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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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물도 많고 산첩첩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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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은 결코 첩첩한 삼수갑산에 들었던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첩첩한 시대와 첩첩한 역사와 그리고 첩첩한 인간 속에서 우리들의 황혼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소월시의 「눈」이 이렇게 첩첩한 시대와 역사와 인간들을 삼수갑산에 비유(比喩)한데 지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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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三水甲山[삼수갑산]이 날 가둡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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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三水甲山[삼수갑산] 못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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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소월의 「님」은 이렇게 감금되고 이렇게 절망된 「님」이었습니다. 우리는 「접동새」라는 시에서 옛날 어붓어미의 시새움에 죽어서 접동새가 되어 슬피 날아다니며 운다는 전설의 비극을 무엇 때문에 그가 시로써 적었는가를 다시 회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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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소월의 「님」은 먼 옛날에만 살았던 「님」이 아니 올시다. 소월이 지녔던 「에로스」라는 사랑의 감정도 결국은 단순한 관조나 회고로서 처리할 수 없다는 데에 문제는 더욱 복잡해 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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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소월을 고대시와 현대시의 중간에 놓고 논평하려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확실히 소월은 현대를 거역하다가 다시 현대 속으로 휩쓸려 버린 시인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그만큼 소월에겐 현대적 체취가 풍부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소월시의 한계였다 하여도 어쩔수 없는 일입니다. 자기존재를 초월하려던 소월의 피나는 자국을 우리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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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소월은 한국의 고전적이며 고유한 서정을 부활시켜 다시 우리에게 그것을 전달한 것으로만 이야기 되어 옵니다만 오히려 현대의 한국시가 지향하는 그 저항의 방법에 있어서 소월은 가장 철두철명한 선구자며 희생자였다는 것을 아울러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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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눈물 흘리우리라」고 불렀던 인간 소월에게서 우리는 한국서정의 전형을 찾음과 동시에 현대시의 첨단에까지 번져오는 저항의 요소 다시 말하자면 역설하는 정신을 속속들이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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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소월시엔 어떤 방법이 적용되었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소월은 형태상에 있어서 남다른 운율을 띠고 있었습니다. 가사가 가진, 시조가 가진 그리고 민요가 가진 3· 4조며 7· 5조며 4·4조며 하는 것들 ― 참으로 우리 시의 전시대를 통달한 것과 같은 느낌을 주리만치 그는 운율에 의한 서정의 극치를 완성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김영랑, 서정주, 박목월이니하는 분들의 시형태는 다분히 소월시의 영향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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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고 꽃이 진다는 단순한 내용에 불과한 「산유화」가 우리에게 크나큰 감동을 일으키는 까닭은 참으로 운율이라는 그 말할 수 없는 힘에 의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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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소월은 내면적으로 현대시의 방법을 거의 체득한 것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물론 소월은 가장 쉬운 말로써 썼습니다만은 결과적으로 쉬운 일이란 출발과 과정에 있어서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소월시엔 현대시가 . 노리는 역설이 그 대부분이여서 상상과 비유, 이러한 것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방법 아닌 방법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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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접동새」에 있어서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라고 있는데 여기의 「먼 뒤쪽」이라는 말과 또한 시 「산유화」에 있어서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하는 「저만치」라는 말과 또는 시 「실제」에 있어서 「두 눈을 인제 그만 감고 우리는 골짜기로 내려갑시다」에 있어서의 「골짜기로 내려갑시다」라든가 시 「초혼」에 있어서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하는 따위는 감히 우리가 침범할 수 없는 언어의 비밀을 최변조로 발휘한 것이라고 보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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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나는 시인 김소월이 자기의 스승이었던 안서 김억 선생의 역시집 『망우초』를 받고 그에게 답장한 편지 속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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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망우초는 근심을 잊어버린 망우초입니까? 잊어버리는 망우초입니까? 잊자는 망우초입니까? 저의 생각 같아서는 이 마음 둘 데 없어 잊자하니 이리 불러 망우초라 하였으면 좋겠다고 합니다」라고 적었습니다. 듣다시피 소월은 잊어버린 것도 아니며 잊어버리는 것도 아닌 「잊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의 「잊자」하는 의식이 얼마나 치열하게 그의 심장을 침식하였는가를 우리는 상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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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소월시에 있어서 숙명적인 무저항과 체험같은 것을 찾아낸다 함은 아주 부당한 일입니다. 적어도 소월에겐 우리들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자기 의식의 방법이 언제나 엄숙하게 서정의 밑바닥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소월은 가장 전형적인 대결의 인간, 모던이스트가 아니었던가 합니다. 오늘날 한국 문학은 소월시에 대한 새로운 검토와 새로운 비판을 요청해야 하겠습니다. ― 너무나 지루하고 까다로운 이야기를 드렸습니다만 한 마디로 소월은 보이지 않는 저항 속에서 시의 내용을 마련한 것과 같이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써 시의 형태를 다듬어 갔다는 것이며 나아가서 우리시의 복잡한 문제들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이 쉬우면서도 쉽지 않은 소월의 「시론」을 몇 번씩이나 느껴보고 다루어 보아야만 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원문】소월 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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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0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