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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窮)과 달(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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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3.12
홍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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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窮)과 달(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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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有馬) 유금(有金) 겸유주(兼有酒)할 제 소비친척(素非親戚)이 강위(强爲)터니 일조(一朝)에 마사(馬死) 황금진(黃金盡)하니 친척도 수위(遂爲) 노상지인(路上之人)이로다. 세상에 인사(人事) 변하니 그를 슬퍼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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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戰國) 적에 소진(蘇秦)이가 진왕(秦王)을 유세하려 열 번이나 글월을 들였었건마는 그의 포부가 마침내 행하게 되지 못하매 객지에 유랑한 지 오랬었는지라 입었던 흑초(黑貂) 감옷이 다 ⎯ 해어지고 황금 백 근의 많던 노자도 다 ⎯ 써 없어져 버리었다. 그래 하염없이 진나라를 떠나서 자기의 고향인 낙양(洛陽)으로 멋없이 돌아올 제 헌털뱅이 발갑기에 해어진 짚신짝 묵은 문서는 괴나리 봇짐으로 꾸리어 어깨에 매었으니 형체나 용모가 초조하고 건조하여 누렇게 뜬 면목은 표묵(杓墨)하게 파리하였으니 말하자면 갈 데는 없는 거지라.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집에라고 들어서니 아내는 하도 오래간만에 만났건마는 반가이 맞아주는 일도 없이 그냥 그대로 본 체 만 체 벼만 짜고 앉았고 “용불위취 부모불여언(嫆不爲炊 父母不與言)” 으로 기가 막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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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소진(蘇秦)이가 위연(喟然)히 탄식하여 가로대 “처불이아위부용불이 아위적 시개 진지죄야(妻不以我爲夫嫆不以我爲寂 是皆 秦之罪也)”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소진 자기의 죄라고만 그렇게 부질없이 자책해 버릴 것도 아니라 기실은 마음대로 “현달(顯達)을 주지 않은 밉살스러운 운명이 한 번 실없이 작희한” 죄이었을 것이다. 그 뒤에 소진이가 득의하여 다시 낙양으로 지날 적에는 “부모문지 청궁제도 장락설음 교영삼십리 처측목이시 측이이청 용사행포복 사배자궤이사 소진왈 용하 전거이후비야용일이계자위존이다금 소진왈 차호 빈궁즉 부모부자 부귀즉친척최구 인생세상 세위부후 개가이홀호재(父母聞之 淸宮除道 張樂設飮 郊迎三十里 妻側目而視 側耳而聽 嫆蛇行匍伏 四拜自跪而謝蘇秦曰 嫆何 前倨而後卑也嫆日以季子 位尊而多金 蘇秦曰 嗟乎 貧窮則 父母不子 富貴則親戚最懼 人生世上 勢位富厚 蓋可以忽乎哉)” 하고 탄식하게 되었는 것이 아마 이 세상의 시속 인심일 것이다. 맹자가 양혜왕(梁惠王)이 묻는 말에 “왕은 하필일리(何必日利) 닛고 역유인의(亦有仁議)”라고 몰박을 주었지마는 “맹자견양혜왕(孟子見梁惠王)” 이라는 그것부터가 “틀린 수작” 이라고 매월당(梅月堂)이 꾸짖은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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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년지한(七年之旱)과 구년지수(九年之水)에도 인심이 순후(淳厚)터니 시리세풍(時利歲豊)하고 국태민안(國泰民安)하되 인정을 험섭천층랑(險涉千層浪)이요 세사(世事)는 위등일척간(危登一尺竿)이로다. 고금에 인심부동(人心不同)을 못내 슬퍼하노라” 하고 눈물 지은 이도 부질없이 있기는 하지만은그러나 이(利) 끝을 좇아서 파리처럼 달리는 인심이야 어찌 고금을 가리여 다를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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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무일물(無一物)로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건마는 그래도 이 세상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돈처럼 좋은 것이 다시는 아마 없는 모양이다. “황금이 불다(不多)면 교불심(交不深)이라”고 황금의 다과(多寡)로서 교의(交誼)의 심천을 측정하게끔 된 세정(世情)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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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수성운복수우 분분경박하수수 군불견관포빈시교 차도령인기여토(飜手成雲覆手雨 紛紛輕薄何須數 君不見管鮑貧時交 此道令人棄如土)”라고 시인 두공부(杜工部)는 벌써 천여 년 전에 야박한 세정을 한숨 섞어 읊조리었다. 관중과 포숙이가 빈곤할 적에 사귀었던 정의(情誼)를 현달하여서도 한결같이 변함이 없었음은 만고에 사무쳐 흠앙하고 부러운 일이건마는 두공부 이후에 천 년인 오늘날에는 더구나 “오시곤시 상여포숙고 분재리 다여자포숙불이아위빈 지아빈야(吾始困時 嘗與鮑叔賈 分財利 多與自鮑淑 不以我爲貧知我貧也)” 하던 따위의 어수룩한 말은 들어보려고 하나 들어볼 겨를도 없거니와 도리어 형제골육 간에도 어머니의 시체가 채 더운 기운이 가시기도 전에 유산 분배로 아귀다툼에 법정에까지 나가서 으르렁대는 딱하고 한심스러운 시속 세정(時俗世情)이다. 그러나 그런들 어찌하랴. 서철(西哲)의 격언에 “부귀거나 영화거나 아무쪼록 오만하지 말고 그것을 조심스러이 맡아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만일 그것을 도로 내어놓게 될 적에는 아무 꺼림낌없이 손쉽게 내어놓도록 늘 주의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고 한 말도 있거니와 문왕자(文王子) 무왕제(武王弟)로 부귀(富貴) 쌍전(㩳全)하신 주공(周公)도 악발토포(握髮吐哺)하사 애하경근(愛下敬勤)하셨거던 어찌라 후세불초(後世不肖)는 교사자존(驕奢自尊)하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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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궁달(窮達)을 따라 야릇하게 달라지는 인심, 애당초에 자기 것이 아니었고 다만 잠깐 빌려가진 영화이언마는 그것을 가지고 애를 써 거드름을 피우는 것은 그 무슨 얄궂은 심정이랴. 또한 달(達)하던 이가 하루 아침에 영락해진다구 그리 구태여 짜부러질 것도 없건마는 별안간에 새삼스러운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훼예포폄비소의(毁譽褒貶非所意)니 개관백년평시정(蓋棺百年評始定)이라”고나 할까 아무려나 산 밑에 살자 하니 두견이도 부끄럽다. 내 집을 굽어보며 솟젓다 우는구나. 저 새야. 세상사 보다간 그도 큰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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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新報[매일신보]』 1939년 3월 12일)
【원문】궁(窮)과 달(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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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사용(洪思容) [저자]
 
  193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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