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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로(歸路) - 내 마음의 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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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9월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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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歸路) ─ 내 마음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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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밤 열한 시 반이라면 거리의 산책인들도 이미 이불 속에서 단꿈을 이루었을 시각이오, 극장 구경을 왔던 이들도 벌써 자기 집을 찾아서 계동으로 성북동으로 현저동으로 흩어져 버렸을 시각이다. 야시(夜市)의 희 포장 안도 철폐하여 싸구려를 부르는 장사꾼의 외침이 비명같이 졸고 있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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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는 요리집으로 달리는 술 취한 자동차가 거침없이 30마일의 속력을 낸다. 백화점은 문을 잠그고 가로세로 켜지고 꺼지던 전식(電飾)도 정열잃은 가로수와 함께 밤늦게 집을 찾는 두세 쌍의 행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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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 안국동서 나와서 나는 동대문 가는 전차를 잡아탄다. 대부분이 취한 사람들이다. 나는 자리에 앉을 염도 안 하고 고리를 쥐고 늘어진 채 약주 냄새에 혼탁해진 전차 속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머리는 뇌 속에 연기를 잡아넣은 것같이 몽롱하다. 아무것도 맹막(盲膜)을 자극하지 않고 청각(聽覺)을 건드리지 않는다. 어릿어릿한 추한 환영(幻影)이 눈앞을 어물거리고 궤도를 질주하는 차륜(車輪)의 음향이 무겁게 귀 밖을 스치나 하나도 강한 자극을 일으키지는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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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4정목에서 전차를 내려서 창경원 가는 차를 기다리노라고 안전지대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그곳에 기다리는 두세 사람에 섞여서 왔다갔다할 때에 비로소 길을 스치고 달아오는 바람에서 가을을 느끼고 다시 순사의 덜거덕거리는 칼소리에서 잃었던 정신을 찾은 듯이 눈앞에 붉은 등불을 바라본다. 경찰서 ─ 전깃불이 희멍덩하게 켜 있는 곳에 전화통을 붙들고 정복하나가 졸고 있는 듯이 까딱도 안 한다. 백양목 그늘에 직할힐소(直轄詰所) 그 속에 역시 정복한 사람 ─
 
6
본정(本町)서 전차가 온다. 이것을 타고 자리에 앉아서 지금 막 보고 온 경찰서를 생각하여 본다. 벌써 3개월 이상을 내가 출입하는 경찰서이다. 지금 전화를 쥐고 졸고 있는 순사는 보안계의 누구누구. 그렇게 싫은 경찰서에 지금은 제법 농말(弄말)을 걸게 되었다. 칼소리가 주는 흥분, 이상한 말씨가 주는 불쾌, 모든 것이 사라지고 지금은 ‘오하요-’‘사요나라’가 제법 유창하게 입에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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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것을 생각하노라니 전차가 종점에 닿는다. 차에서 내려서 다시 돌아가는 전차의 삑- 소리를 등뒤에 들으면서 아카시아 우거진 아스팔트를 거닐 때엔 갑자기 몸에 추위를 느끼고 홀로 가는 내 발자국 소리에서 자기자신을 찾아보고자 한다.
 
8
숲 속에서 찬 기운이 코를 스쳐서 폐에 흘러들어 온다. 그리고 풀벌레의 소리가 쏴 ─ 뼈를 에듯이 심장을 잡아뜯는다. 적막 ─ 길의 커브를 돌면서 나는 멍-하니 비추어지는 언덕길의 앞을 바라보고 비로소 나는 지금 신문사에서 조간을 준비하고 돌아오는 중이라는 스스로의 몸을 고요한 길 위, 풀벌레 울음소리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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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지금 가는 곳이 하숙방 ─ 아무도 없는 쇠 채운 채 희미한 전등이 기다리고 있을 한 간 방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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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내 나는 낡은 세탁꾸러미, 흩어진 책, 종이조각, 사발시계, 칫솔, 비누, 맥없이 걸려 있는 때묻은 여름 양복 그리고 유일의 장식인 죽은 아내의 사진 액면(額面) ─ 나는 이때에 나 자신의 생활을 생각해 본다. 긜고 언제부터 자전거와 버스의 충돌에 흥미를 가지게 되고 언제부터 나의 신경은 절도(竊盜)의 명부(名簿)를 노려보기에 여념이 없어지고 언제부터 나의 붓은 음독(飮毒)한 젊은 여자를 저열한 묘사로 갈겨쓰는 것에 취미를 가지기 시작하였던고? 그리고 언제부터 수상한 청년의 검거가 울렁거리는 흥분과 마음의 아픔 아닌 과장된 구조(口調)를 넣어서 사단(四段)을 만드는 정열로 바꾸어졌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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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이 몇 달 전과 변하여진 나를 이 길, 이 밤, 이 벌레소리 속에서 찾아보며 외로운 그림자를 교외로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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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생활이란 것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이것을 생활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하숙 문을 열고 방안에 들어서매 너저분한 신문지를 발로 밀고 이불을 막 쓴 채 숨막힐 듯한 적막을 가슴속으로 깨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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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고요하다. 내 숨소리만이 유난히 높고 벌레소리는 아직도 길옆에서 밤을 세어 울려고 한다. 귀를 막고 눈을 감아도 자꾸만 들리는 귀뚜라미의 소리 자꾸만 보이는 길 위에 선 내 몸의 외로운 그림자.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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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일보』, 1935년 9월 23일)
【원문】귀로(歸路) - 내 마음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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