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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덕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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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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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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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려서 아직 보통 학교에 다닐 적에, 우리 집에서는 부덕이라는 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개라고 해도, 이 즈음 신식 가정에서 흔히 기르는 세파트나 불독이나 뭐 그런 양견이거나, 매사냥꾼이나 총사냥군이 길들인 사냥개거나, 그런 훌륭한 개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시골 집에서들 항용 볼 수 있는 아무렇게나 마구 생긴 그런 개입니다. 도적이나 지키고, 남은 밥찌꺼기나 치우고 심하면 아이들 뒷시중까지 보아 주는 그런 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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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이 개를 퍽 좋아했습니다. 내가 까치 둥지를 내리려 커다란 황철 나무 있는 데로 가면, 부적이는 내가 나무 위에 올라가는 동안을, 나무 밑에서 내 가죽신을 지키며 꿇어앉았다가, 까치를 나무에서 떨구어도 물어 메치거나 그런 일 없이, 어디로 뛰지 못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개구리 새끼를 잡으러 갈 때에도 쫓아가고, 더풀창을 놓으러 겨울 아침 눈이 세네 자씩 쌓인 데를 갈 때에도 곧잘 앞장을 서서 따라다녔습니다. 어디 저녁을 먹고 심부름을 갔다, 밤이 지근하여도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간 집을 찾아서 대문 밖에 꿇어앉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른들 중에는 누가 나를 데려다 주려고 쫓아나오다가도, 부덕이가 꼬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내 발부리에 엉겨 도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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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덕이가 있으니 동무가 될 게다. 그럼 잘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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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안심하여 나를 돌려보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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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덕이는 이렇게 노 나와 같이 다녔습니다. 그가 나와 떨어져 있는 때는, 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뿐입니다. 아침 책보를 들고 나서면, 부르르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나오다가도, 학교 가는 골목 어귀까지만 오면, 내가 가는 걸 뻔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버리었습니다. 집을 너무 떠나다니면 집안 어른들게 꾸중을 들었으므로, 내가 학교에 간 동안은 대개 집안에 있어서 제가 맡은 일, 말하자면 낯설은 사람을 지키거나, 탁찌꺼기를 치우거나, 곡식 멍석을 지키고 앉았거나, 방앗간이나 연잣간에서 새를 쫓든가 하고 날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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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젠가는 비가 오다 개인 날, 붉은 물이 흐르는 개울을 건너서 참외막에 가느라다 개울에 걸려서 좀하드면 흙탕물에 휩쓸릴 뻔한 것을 부덕이 때문에 살아난 적조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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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시에는 퍽이나 옅은 개울이라, 나는 안심하고 건너던 터인데, 밑돌에 발을 곱짚고 물살이 센 데서 내가 그만 엎어져 버렸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물살이 거세고 물이 예상 외로 부쩍 불은 데 겁이 났던 나는, 이렇게 되고 보니 정신을 차릴 수 없어, 엎치락 뒤치락 허우적거리면서 저만큼이나 급류에 휩쓸려 흘러 가고 있었습니다. 뒤로 오던 부덕이는 곧 앞즈림을 해서, 아랫턱으로 흐르더니 나를 잡아 세우려고, 제 몸을 디딤발로 삼을 수 있도록 가로던집니다. 내가 미처 일어나지 못하니, 부덕이는 내 중의 괴침을 물고 옅은 데로 끌어내이려듭니다. 겨우 나는 큰 돌을 붙들고 옅은 데로 나와서 건등에 올랐는데, 머리가 뗑하고 앞뒤를 가눌 수 없어 한참이나 길 위에 누워었습니다. 부덕이는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내가 일어나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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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물에 빠졌다가 부덕이 덕에 살았단 말은 아예 할 염을 않았습니다. 장마물에 나가지 말라던 걸 나갔던 터이라, 어른들께 꾸중 들을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는 우리 집에서는 부덕이가 나를 몹시 따르는 줄만 알았지, 그가 내 생명의 은인이라는 건 알 턱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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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덕이도 내 나이 자라는 대로 늙어 갔습니다. 그리하여 다섯 살이 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학교에 갔다가 오는 길에 부덕이를 만나 집으로 돌아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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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아예 나이 먹도록 기를 건 아니야. 저 부덕이도 인제 흉한 짓 할 나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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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동네집 늙은이의 말을 듣고, 나는 대단히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우리 집 막간 사람이 어느 개가 팠는지 통숫간 앞에 구덩이를 팠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그래서 어머니랑 아버지랑 듣는 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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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뒷집 장손네 개가, 입으루다 흙을 파구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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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헛소리를 하여 부덕이를 변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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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그럴 망할 놈의 개가 어디 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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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개가 구덩이를 파는 건 누가 죽어서 그 속에 묻히려는 게나 같다고, 몹쓸 놈의 개라고 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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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러다가 며칠을 지나서, 내가 학교에 가서 한 시간을 공부하고 마당에 나와 따재먹기를 하며 노는데, 뜻밖에 부덕이가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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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덕이가 학교로 나를 찾아온 적은 여태까지 없는 일이므로, 나는 이상히 생각했으나 미처 다른 걸 생각지는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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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러 완. 가, 어서 가서 집에 가, 일을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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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쫓아 보냈습니다. 손으로 쫓고 발로 밀고 하니, 서너 발자국씩 물러가기는 했으나, 가기 싫은 걸음(처)럼, 몇 걸음 가서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학종이 울어서 나는 인차 교실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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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학하고 집에 돌아오니, 여느 때 같으면 마중 나오던 부덕이가 중문턱을 넘도록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나는 부덕이가 늘상 들어가 자는 마루 밑을 꺼끕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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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뒤 뜰 안을 보아도, 통수 뒤를 보아도, 연잣간을 보아도, 토골 뒤를 찾아도, 그리고 마지막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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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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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불러 보아도, 아무 기척이 없었습니다. 나는 정녕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습니다. 나는 낟가리를 얽고 있는 막간 늙은이에게 물어 봤습니다. 그랬더니 영감은 태연하니 제 일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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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긁을 석 자나 팠다구 도수장으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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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대답합니다. 나는 억 해서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아까 학교로 찾아왔던 건, 아마 기둥긁을 파고 어른에게 욕을 먹거나 매를 맞고 왔었던 걸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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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더러 변명을 해달라고 찾아왔던 것일까요. 아니 왜 그는 두 번 세 번씩 땅을 파고 기둥긁을 파고 하였던가요. 나는 부덕이의 행동도 알 수 없었고, 그것을 흉행이라고 몰아대는 어른들의 일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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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른 호박 넝쿨 밑으로 가서, 부덕이 생각을 하고 하루 종일 눈물을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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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학독본』, 1938년)
【원문】부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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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1938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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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