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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란(動亂)의 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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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11
김동인
1
동란(動亂)의 거리
 
 
2
“즉각 입내하옵시라는 전교가 곕시오.”
 
3
대궐에서의 이러한 급명을 받잡고, 황황히 의대를 갖추는 국태공 흥선대원군 이하응(國太公 興宣大院君 李昰應).
 
4
때는 고종(高宗) 십삼년 임오 유월 초아흐렛날. 봄내 여름내 비 한 방울 오지 않아서 온 천하가 타는 듯이 말라붙었던 것이 (오늘 아침까지도 비올 모양도 보이지 않던 날씨가) 갑자기 흐리기 시작하여, 하늘은 먹을 갈아 놓은 듯하고, 주먹 같은 비가 우더덕 우더덕 오기 시작하였다.
 
5
바야흐로 악수로 내려부으려고 비를 맞으면서 행차는 뜰안에 착착 정비되었다. 이 행차를 굽어보며, 오래간만에 몸에 걸치는, 대원군의 정장(正裝)을 갖추는 동안, 태공은 감회무량하였다. 현복, 사모, 옥대, 기린흉배- 그 새 사년간을 의장에 넣어둔 채 한 번도 입어 볼 기회가 없던 이 의대- 다시는 입을 기회가 없으리라고 믿었던 이 정장. 왕의 급명으로서 다시 입궐할 기회를 얻어서 몸에 걸치는 동안,(이미 사소한 감동에는 움직이지 않을 만치 늙은) 그의 마음도 공연히 설렁거렸다.
 
 
6
“자. 어서 가자.”
 
7
이윽고 준비는 끝났다. 남여에 몸을 커다랗게 올려놓으며 행차를 재촉할 때에, 늠름한 구종 별배들에게 호위된 태공의 행차는, 벽제 소리 우렁차게 교동 운현궁을 나섰다.
 
 
8
임오군란(壬午軍亂)-.
 
9
임오 유월 초아흐렛날 폭발된, 군인들의 변란, 그것은 처음에는 단순한 한 개의 군란(軍亂)에 지나지 않았다.
 
10
당시의 사정으로 보자면, 아직껏 십여 년간을 조선의 위에 커다랗게 날개를 폈던 태공이 없어지고, 왕의 친정(親政)이 시작된 지도 이미 팔 년.
 
11
명색은 비록 왕의 친정이라 하나, 사실에 있어서는 왕의 친정이 아니었다.
 
12
왕비 민씨 및 왕비의 친척 일당의 정치였다. 이렇게 민씨 일당의 정치가 시작 된 지 팔개 년간, 무섭게 뻗친 민씨 일당의 농락은, 용서없이 이 국민을 착취하였다.
 
13
조선팔도 삼백주에서 들어오는 온갖 세납들은, 모두 국고로 들어가는 것은 없이 민씨 일당의 사고(私庫)로 들어가고, 민씨 일당의 사고로 들어가기 전에 일부분은 먼저 지방 장관들의 사복으로 들어가고- 이리하여 국고는 언제든 텅비어 있었다.
 
14
이런 위에 대궐에서는 또 용이 많았다. 본시 미신(迷信)이 많은 데다가 또한 유흥을 즐겨하는 왕비는, 국고가 비었고 어떻고를 고려치 않고, 불공이며 굿이며 연희로써 세월을 보냈다. 처음부터, 이리 뜯기우고 저리 뜯기워서 국고로 들어오는 것이 적은 위에 대궐의 용이 또한 이렇게 크고 보니 당해낼 수가 없었다.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고 약간 남은 것이 겨우 국고로 들어오는데, 대궐의 용이 또한 이렇게 많고 보니, 대궐의 용까지는 겨우 어떻게 당한다 할지라도 그 밖엣 것은 돌볼 수가 없었다.
 
15
백관의 녹봉도 벌써부터 못 주었다. 삼군에게 내어주는 소위 삼봉족도 수 년째 못 주었다.
 
16
녹봉을 못 받는 관리-.
 
17
녹봉을 못 받는 군졸-.
 
18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궐의 놀이는 더욱 대규모로 더욱 호화로워 갔다. 그 해 -임오년- 정월에, 왕비는 죽동궁 민영익의 스승으로 있는 고덕로(高德魯)를 시켜서,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봉우리마다 돈 열 냥 쌀 한 섬 무명 한 필씩을 바치고 산천기도를 드렸다.
 
19
-국가의 대평.
 
20
-상감의 만수무강.
 
21
-왕비와 세자의 장수.
 
22
이런 조목으로 산천기도를 드렸다 하나, 그 실은 이것도 왕비의 유흥본능 발로의 일단인 뿐이었다.
 
 
23
이리하여 민심은 차차 동요되었다.
 
24
녹봉을 못 받는 관리.
 
25
녹봉을 못 받는 군졸.
 
26
그 반면에 호화로운 놀이에 긴밤을 짧게 보내는 세도가들.
 
27
이만만 하여도 군심이 자못 동요될 것이어늘, 군졸들에게 더욱 불쾌한 제도가 있었다.
 
28
왜별기(倭別技)의 설치였다.
 
29
즉, 신식군대가 필요하다 하여, 일본에서 육군 중위 굴본예조(堀本禮造)를 초빙하여다가 하도감(下都監)에 새 영을 이루고, 명문자제 백팔 명을 모아서 초록 군복을 입히고 신식 군사훈련을 시작하였다.
 
30
이것은 두 가지 의미로서 본시의 군졸들에게 불쾌하였다.
 
31
첫째는 그 왜별기에 대하여는 녹봉을 꼬박꼬박 내어주었다. 몇 해째 녹봉을 못 타던 재래 군졸들에게는 이것이 매우 불쾌하였다.
 
32
둘째로는 아직껏 다섯 영문-훈련(訓練) 금위(禁衛) 어영(御營) 호위(護衛) 총융(憁戎)- 이 있던 것이, 그동안 두 영문 무위(武衛)와 장어(壯禦)를 설치하고, 다른 영문을 다 폐지한 것이었다. 이러다가는 지금의 군졸들도 가까운 장래에 모두다 실직을 하고 왜별기만 남을 것이다. 생활의 협위-이것이 그들을 가슴 서늘케 하였다.
 
33
이러한 일로 극도로 가슴이 긴장되었던 군졸들에게, 드디어 폭발될 만한 화승이 다려졌다.
 
34
임오 유월 초여드렛날.
 
35
각 영문에서는 군졸들에게 전령이 내렸다.
 
36
“내일 낮전에 그 새 밀린 녹봉중에서 한달치를 내어줄터이니 선혜청(宣惠廳)으로 오라.”
 
37
기꺼운 소식이었다.
 
38
이튿날 밝기 전부터 선혜청에는 군졸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39
얼마전까지 선혜당상이던 김보현(金輔鉉)이 갈리고, 민겸호(閔謙鎬)가 지금의 선혜당상이며 민겸호의 집 청지기가 고지기로 있는 때였다.
 
 
40
“?”
 
41
썩은 쌀이었다. 그 위에 모래가 절반이었다.
 
42
수년을 밀리고 밀린 녹봉. 그 위에 그거나마 나머지 절반은 썩은 쌀.
 
43
“제기, 이게 뭐야. 이게.”
 
44
“이게 사람 먹으라는 겐가?”
 
45
“실컷 있다가 준다는 게 이게야.”
 
46
한 마디 두 마디 오가는 불평.
 
47
“뭐야 뭐야.”
 
48
“저희놈들은 이런 걸 먹고 사나?”
 
49
불평에서 전환된 반항.
 
50
이리하여 불길은 일어났다.
 
51
고지기는 민겸호의 사인. 군졸 따위는 사람으로 보지도 않는 인물이었다.
 
52
“받기 싫은 놈들은 다 그만두어라.”
 
53
불평한 군졸들에게 한마디의 호령을 하였다.
 
54
격노한 군졸들에게 이 고지기는 첫 희생이 되었다.
 
 
55
선혜당상 민겸호.
 
56
민족(閔族)의 거두요, 왕비의 총신 민겸호.
 
57
무지한 군졸들에게 자기의 청지기가 참살을 당하였다는 급보를 받은 민겸호는, 격노하였다. 그리고 포청에 명하여 주동자를 잡아서 물고를 하라 하였다.
 
58
처음에는 단지 군졸들이 민겸호의 집 청지기를 죽인, 한 작은 사건에 지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민겸호의 이 처치에 사태는 중대화하였다.
 
59
이미 죄를 지은 몸, 포청에 잡히면 물고를 당할 몸, 이럴진대 오히려 이편에서 먼저 손써서 간당들을 제하여 버리자. 우리가 살기 위하여 민족(閔族)들을 잔멸시키자.
 
60
-이리하여 처음에는 단지 한낱 폭동에 싹을 내인 이 사건이, 돌연히 변하여 정치화하게 되었다.
 
61
폭발된 분노. 격동된 군심.
 
62
아직껏 받은 학대와 멸시를 깊이 마음 속에 아로새겨 두었던 오영 군졸들은, 순식간에 모두 합심이 되었다.
 
63
부숴 버려라. 이미 저지른 일. 인젠 일로 반항과 투쟁으로 매진할 밖에는 도리가 없다. 차차 차차 수와 세력이 많아진 군졸들은 무고(武庫)로 달려가서 창고를 깨뜨리고, 각각 무기들을 꺼내가지고 폭동을 일으켰다.
 
64
어느덧 모여든 수백 명의 군졸. 그 위에 일없는 시민들까지 합류를 하여, 수천 명의 이 난민은 파괴행동을 시작하였다. 먼저 전 선혜당상(前宣惠堂上) 김보현을 잡아 죽이자고 그리로들 몰려갔으나, 김보현은 마침 입궐하여 제 집에 있지 않았으므로, 집과 가장집물만 모두 부수고, 그 다음에 민겸호의 집으로 달려갔으나, 겸호 역시 대궐에 들어가 있어서 그 집만 부수고, 거기서 갈라진 일대는 금옥으로 가서 옥을 부수고 죄수들을 놓아주었다.
 
65
장안은 뒤끓었다. 무기를 가진 난민들이 동서남북으로 횡횅을 하며, 아직껏의 세도가의 집들을 다닥치는 대로 부쉈다.
 
66
봄내 여름내 가물어서 타는 듯하던 날씨가, 이날 저녁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원(寃)을 씻는 비라 하여 난민들의 의기는 더욱 높았다.
 
 
67
“민가들을 죽여라.”
 
68
“대원군을 모셔 가자.”
 
69
함성! 함성! 동란의 군중에게서,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이 소리.
 
70
대궐에서는 지급히 어전에 중신회의를 열고 이 동란 진압책을 강구하여 보았다.
 
71
해결책은 단 한 가지.
 
72
이 국난의 때에 임하여, 격노한 군심을 진정시키고 동요된 민심을 풀 만한 유일의 인물로써, 그들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었다.
 
73
군심의 향한 바, 민심의 움직이는 바- 이 난국에 처하여 능히 이를 타개하고 진압하고 선도하고 지배할 능력과 수완이 있는 사람은, 오로지 흥선대원군 한 사람이다. 한때는 이를 꺼리어서 온갖 간악한 수단을 다 써서 대권에서 멀리하였던 인물. 그 뒤 한때는 자기네들의 유흥에 취하여 그 존재조차 잊어 버렸던 인물. 그러나 국가 다난한 이때에 임하여 난국타개의 유일의 인물로서 이 노인을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74
왕사는 급히 운현궁에 한거해 있는 태공에게로 달려갔다.
 
75
“즉각 입내하옵시라는 전교가 곕시오.”
 
76
-왕명.
 
77
이 왕명에 대하여 태공은, 늙은 머리를 숙여서 입내한다는 뜻을 나타내고, 황황히 의대를 갖추고 비를 무릅쓰고 대궐로 향한 것이었다.
 
 
78
사친(私親)되는 국태공 흥선군 이하응.
 
79
일찌기 한때는 왕족중의 기린아로서 중망을 한몸에 지니고 있던 흥선.
 
80
그 뒤 한때는 스스로 그 신분을 모호히 하기 위하여, 시정의 부량배들과 어깨를 겨루고 허튼 바탕에 출입하던 영락된 공자 흥선.
 
81
이리하여 수십 년간을 그 신분을 모호히 하다가. 선대왕(철종) 승하 때에 취한 놀라운 기략. -한번 그가 움직일 때에는 궁실의 어른인 조대비가 이 영락된 공자 흥선의 심복이 되었으며, 두 번 움직일 때에는 시정의 한 무뢰한이던 흥선의 둘째 아들 영복은. 일약 삼천리 강토의 임금의 자리에 올랐고, 세 번 움직일 때는 이 부랑자는 왕의 위의 섭정궁이 되었다. 이리하여 어젯날의 시정의 한낱 무뢰한에 지나지 못하던 흥선의 위에 씌어진 명목은, 가로되 섭정 국태공 흥선대원권 저하(國太公 大院君邸下). 천하가 이때에 그의 앞에 허리를 굽혔다. 해와 달조차 그의 앞에는 빛을 겸양하는 듯하였다.
 
82
놀라운 기략과 놀라운 패기와 놀라운 과단성으로써, 거친 강토와 피폐한 백성을 다스려 나아가던 대원군 저하.
 
83
가로되 서원철폐-.
 
84
가로되 국력양성-.
 
85
가로되 쇄국양이-.
 
86
가로되 풍속개량-.
 
87
가로되 세제확립-.
 
88
가로되 무엇, 가로되 무엇.
 
89
놀라운 그의 손 아래서 무럭무럭 자라는 조선.
 
90
이러한 가운데서 단 한 가지 그의 오산(誤算)이 있었다. 자기의 며느님 왕비 민씨의 인물을, 너무도 대수롭잖게 보았던 것-이것이 그의 건설적 위업을 파괴하지 않을 수가 없게한 유일의 원인이었다.
 
 
91
처음에는 아직 철을 모르기 때문에, 얌전코 정숙한 왕비로서 그의 인생노정을 출발하였지만, 차차 철이 들면서도 왕비는 그뿐에 만족치를 못하였다.
 
92
당신의 시아버님인 대원군이 지금 잡고 있는 놀라운 세력을, 당신의 손으로 잡아 보고 싶었다.
 
93
당신의 손으로 그 세력을 잡기 위해서는, 당면의 적대자인 대원군을 멀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94
이리하여 암중공작(暗中工作) 수년간, 태공은 나라를 주무르기에 바뻐서 안을 돌아보지 못 하는 틈에, 왕비는 어느덧 자기 일당의 세력을 비밀리에 세워놓았다.
 
95
사당의 세력을 세워놓은 뒤에는 승리는 무론 왕비의 것이었다. 이편은 국왕을 배경으로 삼은 왕비인 반면에, 상대자는 국왕의 한낱 사친에 지나지 못하였다. 이편은 궁중에 뿌리를 박은 반면에, 상대자에게는 뿌리가 없었다.
 
 
96
승부는 분명하였다. 승리는 왕비의 것이었다.
 
97
-이리하여 미끄러진 태공.
 
98
커다란 포부로써 시작한 커다란 공사를, 건설 도중에 꺽인 태공 이하응은, 울분과 분노의 날을, 오늘은 운현본궁에서 내일은 공덕리 산장에서, 사군자나 희롱하며 가야금이나 장난하며, 불쾌하고 한가한 날을 보내기 칠팔 년. 자기가 그 새 세웠던 모든 건설공사가, 민씨당의 손으로 하나씩 하나씩 꺽이어 나아갈 때에 태공은 이를 갈았다. 치를 떨었다.
 
99
그러나 나라이라는 명목을 배경 삼고 행하는 노릇이라, 인제는 (날개 잘리고 손톱 깍인) 태공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100
학정. 악정. 비정. 이 아래서 신음하는 백성들은, 일찌기 태공 자기가 그렇게 사랑하여 그들에게 복지를 빚어주고자 온갖 애를 다 쓰던 그 백성이 아닌가.
 
101
학정. 악정. 비정. 이 아래서 나날이 거칠어 가는 이 강토는, 일찌기 태공자기가 어떻게 하여서든 부강하고 기름진 땅이 되게 하려고, 있는 수단을 다쓰던 그 강토가 아닌가.
 
 
102
왕명을 받고 남여를 날려서 대궐로 가는 동안, 태공은 보았다. 손에 무기를 잡은 무리들이 좌왕우왕하는 것을. 그리고 저마다 소리를 높여서, 민씨들을 잔멸하라고 납함하는 것을.
 
103
그것은 이 백성이 민씨들에게 가질 당연한 분노이며 당연한 반역이었다.
 
104
“에-이, 비켜라 모두들 앉거라.”
 
105
우렁차게 울리는 벽제 소리에, 그것이 국태공의 남여인 줄을 알고, 경의를 표하는 난민들의 틈을 헤치며, 태공의 남여는 금위영(禁衛營)을 앞을 휙 지나서 대궐에 이르렀다.
 
106
돈화문은 왕명에 의지하여 입내하는 국태공 대원군 저하를 맞기 위하여, 넓게 열려 있었다. 돈화문 밖에는 남여를 버린 태공은 견여(肩輿)에 의지하여 일로 대조전으로 향하였다.
 
107
팔 년 만에 대궐안에 발을 들여놓게 된 태공의 마음은, 스스로 억제할 수 없이 뒤숭숭하였다.
 
 
108
대조전에는 영의정 흥인군 이최응(興寅君 李最應-태공의 형) 이하 몇몇 재상이 사색이 되어 시위하여 있고, 왕의 용안에도 수심이 가득하였다.
 
109
팔 년 만의 부자의 대면이었다. 태공은 왕의 앞에 단정히 꿇어앉았다.
 
110
“전하!”
 
111
일찌기 자기의 놀라운 모술(謀術)로써 이분을 용상의 주인으로 모실 때는, 이분은 아직 열두 살의 소년이시었다.
 
112
그 뒤, 왕비에게 밀리어서 태공 자기가 대궐(그때는 경복궁이었다)에서 떠날 때는 이분은 스물세 살의 청년이시었다.
 
113
춘풍추우 팔개성상, 태공 자기는 공덕리 산장에서 운형궁으로, 운현궁에서 다시 산장으로, 울분과 분노의 세월을 보낼 동안, 일국의 주재자로서의 여덟해를 지내신 뒤의 이분은 지금 무르익을 장년이시다.
 
114
이 완숙하신 왕자인 아드님 앞에 꿇어앉은 태공. 가슴에 불이는 천만 가지의 감회 때문에 늙은 눈가에는 어렴풋이 눈물까지 맺혔다.
 
115
“전하. 어명에 의지하여 흥선대원군이 참내하왔읍니다.”
 
116
일찌기 아버님되는 태공인 자기를 배반하시고 왕비에게로 가셨던 이분. 울분의 팔개 년을 보내면서도, 혹은 아드님께서 부르시지나 앉나 고대고대할 동안, 아버님의 존재까지 잊으셨던 이분. 그러나 그동안 잠시도 태공은 이 아드님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자식에게 향하는 어버이의 마음은, 비록 자기를 배반하신 아드님이나마, 하루 한 때도 태공의 염두에서 사라져 본 적이 없었다. 팔 년 만에 우러러보는 아드님의 용안-. 태공은 눈을 깜빡일 줄도 잊은 듯이 용안만 우러러보고 있었다.
 
117
“전하!”
 
118
아아, 귀여운 내자식아 하고 한번 등이라도 두들겨 드렸으면 얼마나 기쁘랴.
 
119
일찌기 아버님을 배반은 하셨지만, 팔 년 만에 뵙는 아버님께 대하여, 왕도 감회가 깊으신 모양이었다. 잠시를 아무 하교도 없이 안정(눈)을 생친의 위에 부웃고 계셨다.
 
 
120
-난민들을 진압합시오. 그리고 이 어지러운 국면을 태개합시오.
 
121
왕에게서 태공에게의 하명은 이것이었다.
 
122
“기로(耆老)의 힘이 자라는껏 진력해서, 성념에 다시 및지 않도록 하리이다.”
 
123
아드님께 대하여 이렇게 주상한 뒤에 태공은 어전을 물러나왔다.
 
124
빈청을 지나다가 태공은 민겸호와 마주쳤다.
 
125
“대감, 오래간만이오. 그간 무양하시오?”
 
126
명랑한 미소 아래서 던지는 태공의 인사. 이 뜻안한 인사에 낭패한 민겸호는, 낭패하여 우물쭈물 무엇이라 대답하고는 황급히 태공의 앞을 피하였다.
 
127
“가련한 인생.”
 
128
태공은 가벼이 탄식하였다.
 
 
129
왕명을 받은 태공은, 무위대장 이경하(李景夏)를 동별영으로 보내서 군졸들을 효유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실패에 돌아갔다.
 
130
예기했던 배었다.
 
131
사-ㄴ 제물. 피로 젖은 제물.
 
132
민씨 일족의 집은 몇 개 부쉈다. 그러나 그것뿐으로 어지러운 민심이 만족할 바가 아니었다. 몇 개의 피제물. 민당의 총본영의 거두 몇 사람의 생명. 이 제물이 없이는 흥분된 민심을 진정시킬 도리가 없었다.
 
133
“가련한 인생.”
 
134
아까 빈청에서 황망히 자기의 앞을 피하던 민겸호의 모양을 회상하고, 태공은 다시 한번 탄식하였다.
 
135
그 날의 동란은 꽤 넓게 자리잡았다.
 
136
저녁 때쯤은 격앙한 군졸들은 세 대로 나누여서, 한 대는 하도감으로 가서 왜별기의 근거를 잔멸시키고, 교관 일본 육군 중위 굴본예조를 죽이고, 또한 대는 일본 공사관으로 달려가서 공사관원 몇 명을 박살하고 공사를 도망시키고-.
 
137
나머지의 일대는 대궐로 가서. 민씨 일당을 소탕할 것과 대원권 섭정을 직소하였다.
 
138
이러한 난리통에서도 훈련대장 조영하(趙寧夏)의 집뿐은 이 액화에서 벗어났다. 난군들에게 파괴당한 민겸호의 집과 이웃이면서도, 조영하는 부하 장졸들을 자기 사재(私財)로서 녹봉을 지급하여 오던 덕에, 난민들의 손이 안 및은 뿐 아니라, 군졸들이 그의 집을 호위까지 하여주었다.
 
139
밤에 대궐을 물러나와 운현궁으로 돌아와서, 오늘 일어난 동란의 경과의 보고를 들을 때에, 태공은 인(因)에 대한 과(果)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선인(善因)에 선과(善果)가 있을진대 악인(惡因)에 악과(惡果)도 또한 반드시 있을 것이다.
 
140
억수로 쏟아지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태공은 자리에 들 생각도 않고 선후책 강구에 노심하였다.
 
141
왕비- 민겸호- 김보현- 이최응- 그 밖 누구 누구-.
 
142
흥분된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하여서는 몇 개의 제물이 필요하다.
 
143
“아아, 악인에 대한 악과로다. 누구를 원망하랴. 원망하려면-.”
 
144
낮에 그렇게 무서운 소란이 있었던 듯싶지도 않게, 비에 젖은 장안은 고스란히 잠들었다.
 
 
145
“대감. 군졸 몇 명이 대감께 뵙겠다고 궁문 밖에 왔읍니다.”
 
146
이튿날 아침이 아직 밝기도 전이었다.
 
147
인제 다시 사기의 거대한 손아귀 속으로 들어오려는 정권에 대하여, 노인답지 않은 흥분과 긴장 때문에 태공은 한잠도 못 잤다. 민씨의 악정 때문에 일단 쓰러졌던 기둥을 다시 바로잡을 영광의 날.
 
148
“군졸들이?”
 
149
“네.”
 
150
담배를 담아들고 군졸들을 만나러 피곤한 몸을 일으켰다.
 
151
대감의 만일을 염려하여 뒤따라오는 청지기와 그 밖 궁인들을 도로 들여보내고, 태공은 몸소 궁문 밖에 나섰다. 군졸 백여 명이 문 밖에 태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152
“무에냐.”
 
153
“대감!”
 
154
경애의 눈자위!-.
 
155
태공은 자기의 몸에 모이는 이 수백의 경애하는 눈자위에 향하여, 고요히 고요히 머리를 끄덕이었다.
 
 
156
고스란히 밝는 날. 동란의 제이일이었다.
 
157
밤 때문에 중지되었던 동란은, 날이 밝자 다시 계속되었다.
 
158
이 날 동란의 첫 제물로서 영의정 흥인근 이최응(태공의 친형)이 참살을 당하였다. 탐욕이 너무 심하여 비리의 취재를 많이 한 때문이었다.
 
159
각곳으로 헤쳐놓은 궁인들에게서, 각각으로 들어오는 동란의 보고를 들으면서, 이 대책을 강구하고 있을 동안 뜻밖dpt 보고가 태공을 경악케 하였다.
 
160
“난민들이 대궐을 침범했읍니다.”
 
161
“무얼? 대궐을 침범하단?”
 
162
언제든 달릴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던 남여에, 태공은 순시를 유예치 않고 몸을 실었다.
 
163
돈하문으로 인정문으로, 남여를 내릴 시간도 바뻐서 남여채 대궐안으로 들여달린 태공은, 대조전 앞, 난민들의 복판 가운데로 뛰쳐들었다. 거기서 그냥 닫는 남여에서 뛰쳐내린 태공.
 
164
“이게 무슨 짓이냐!”
 
165
난민들의 어지러운 소리 위로, 울리어나가는 우렁찬 태공의 호통-.
 
166
난민들은 이 우렁찬 호령에, 모두 이쪽으로 돌아섰다. 그 위를 두 번째의 호령이 내렸다-.
 
167
“여기가 어디라고 외람되이!”
 
168
수백의 난민들이 잠시는 이 위엄에 쥐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169
“대궐을 침범한 죄는-.”
 
170
세 번째의 호령이 내릴 때야, 군중 가운데서 처음으로 입을 여는 사람이 있었다-.
 
171
“중궁을 찾습니다.”
 
172
“민겸호를 잡아내려고 그럽니다.”
 
173
“중전마마며 민 판서는 왜 찾느냐.”
 
174
“원수를 갚겠읍니다.”
 
175
원수? 아아, 이 난민이 대궐을 침범한 것은 결코 반역의 뜻으로 나온 바가 아니었다. 단지 당면의 원수들이 대궐의 품에 숨어 있는지라, 그 원수를 잡아 내고자 대궐을 침범한 것이었다.
 
176
“난 모른다. 좌우간 성념을 번거롭게 해서는 안될 테니 물러들 가거라.”
 
177
대역이 아닌 것을 알고 비로소 안심의 숨을 내어쉬고, 태공은 난민들의 틈을 헤치면서 대조전으로 올라갔다.
 
178
서인이 감히 보지도 못할 대조전 안까지도, 난군들의 진흙 발자리가 어지러이 났다.
 
 
179
난민은 드디어 목적하였던 바 김보현과 민겸호를 발견하여, 대조전 뜰앞에 끌어다가 박살을 하였다.
 
180
인제 대궐안에서 찾아내야 할 사람은 왕비뿐.
 
181
“중궁을- 중궁을!”
 
182
대궐 각 모퉁이에서 울리는 이 난민들의 포함성은 처참하였다.
 
183
난군들이 이렇듯 찾는 왕비는, 벌써 대궐을 벗어난 뒤였다. 마침 편복(便服)이었기 때문에, 꾀많은 왕비는 궁녀 행세를 하고, 중궁을 찾는 난군들의 포함성을 비웃으면서, 포수 김중현과 무예별감 홍재희의 조력을 받아서, 단봉문(丹鳳門)으로 빠져나와서 화개동 윤태준의 집으로 몸을 감춘 것이었다.
 
184
난군들이 한번 다녀간 뒤에, 송장 두 개(김보현, 민겸호)만 쓸쓸히 비를 맞고 있는 뜰을 잠시 내려다보고 있다가, 태공은 내시를 불렸다. 그리고 그 내시에게 명하여 꾸역꾸역 숨어 있는 대신들을 불러내었다.
 
185
왕비 한 사람이 몸을 피한 밖에는, 난민들이 당면의적으로 생각하던 다른 재상들은 다 참살을 당하였다. 이만하였으면 인젠 진무하면 진무도 넉넉히 되리라고 믿었으므로….
 
186
그리고, 정원(政院)에 명하여 국상을 반포케 하였다. 중전은 난군중에 화를 보셨고 그 옥체까지 잃었으므로 의관장(衣冠)을 한다 하는 것이었다. 승지 조병호(趙秉鎬)며 김학진(金鶴鎭) 등은, 거짓 국상은 반포할 수 없다고 강경히 반대하였으나, 이때의 국태공의 명령은 뉘라서 어길 수가 없었다.
 
187
이리하여, 왕비는 일단 숨었던 화개동에서 충주 장호원 민응식의 집으로 피신(避身)의 길을 재는 동안, 정부에서는 그에게 대한 국상을 반포하였다.
 
 
188
팔 년 간을 울분한 생활을 계속하던 국태공 흥선대원군은, 다시 섭정의 자리에 올라서게가 되었다.
 
189
국상을 반포하여, 난군들을 진무한 뒤에, 피곤한 몸을 남여에 싣고 도로 운현궁으로 돌아올 때에, 그의 입에서 새어나온 기다란 한숨.-그것은 단순한 안심뿐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자기가 다시 지어야 할 이 국민에게 대한 크나큰 의무감에서 한숨도 다분히 섞이어 있었다.
 
 
190
(〈月刊每申〉[월간매신], 1934. 11)
【원문】동란(動亂)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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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金東仁) [저자]
 
  1934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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