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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를 쓰는 요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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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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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쓰는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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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미심차시(謹未審此時)로 시작하여 여불비상서(餘不備上書)로 끝을 맺게 되어야 편지로서 그 격식을 갖추었다고 보는 낡아빠진 투를 버리고, 서로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듯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하면 되는 것이라고 하는 데 이의는 없겠지마는 역시 형식상의 제약은 받게 되어 있는 것이 편지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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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문장은 어떤 특정(特定)한 대상이 없이 사회인(社會人) 전체를 상대로 하고 쓰는 것이기 때문에 요모조모 재어 가며 신경을 써야 할 그런 제약(制約)을 받을 필요는 없게 되지마는, 편지글에 이르면 그 상대자가 분명 해지기 때문에 지위(地位)나 친불친(親不親)를 따져야 하게 되고, 남녀간의 성별도 구별을 하여야 되는 제약이 자연히 생기게 되므로 편지글이라면 상대의 얼굴이 빤히 들여다보여서 짐짓 붓끝이 무겁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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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란 원래 만나서 하여야 할 이야기를 거리의 원격이라든가 그 밖의 특수한 사정으로 부득이 이야기를 종이에 적어서 그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상대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때와 조금도 틀림이 없이 그러한 인상 (印象)이 모든 면에서 전달되어야, 내지는 몸짓, 손짓, 얼굴이 표정까지도 그 문면이 완전히 전달해 주어야 그 편지는 편지로서의 소임이 충분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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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에게 할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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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그 상대가 윗사람이라면 윗사람을 찾아가서는 외투를 벗고 정중히 대좌를 해야 하는 것과 같이 편지에서도 외투를 벗는 거와 같은 예의를 잃지 않아야 할 것이요, 또 그 상대가 친한 친구라면 악수서부터 느낄 수 있던 친밀한 감정이 편지에서도 나타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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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이니 곱게 보일수록 이로울 것이 아닐까 해서 정도가 지나치게 존경을 한다든가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해서 환심을 보다 더 사려고 해도 안될 것이요, 친한 친구이니 아무렇게나 말을 해도 괜찮으리라는 생각에서 수하자(手下者)에게 말을 하듯 예를 잃어도 안 될 것이다. 사람이란, 자기가 받을 대접보다 그것이 소홀하여도 감정이 좋지 않고 지나쳐도 이상한 감정 을 갖게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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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상대가 윗사람이건 친한 친구이건 수하자이건 그 어떤 상대 임을 물론하고 편지에는 그 상대에 적응한 예의를 잃지 않는 정도에서 조금도 거짓이 없는 진정이 발로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종류의 문장에 있어서 나 진정만이 오직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는 것이지마는 편지글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니 어떻게 생각하면 편지에서는 이러한 면이 좀더 강요되어야 할는지 모른다. 직접적인 사고에 있어서 이해가 따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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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주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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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소홀히 하였다가 도리어 그것이 하지 않았던 것만 못한 역효과를 가져오게 되는 일이 세상에는 허다하게 있을 줄 안다. 필자 자신으로 말하 더라도 편지 때문에 어떤 친구로부터 시비를 톡톡히 받아 본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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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대인 친구는 필자와 사이가 멀다고 볼 수 없는 그러한 처지였다. 하도 여러 달 동안 만나지 못해서 궁금한 나머지 편지를 한 장 띄웠던 것인 데, 그 편지 허두에서 “네가 찾지 않으니까 만날 수가 없구려.”로 시작하 였던 것이 말썽이었다. 그 문구가 그의 감정을 불쾌하게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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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는 나를 찾아서는 안 되고 내가 저를 찾아야 되는 것인가. 건방진 자식” 하고 그 친구는 필자를 향하여 욕설에 가까운 감정을 퍼붓더라고 제삼자의 입을 거쳐 내 귀에 흘러 들어올 때 나는 너무나 의외에 깜짝 놀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 문구를 씹어서 읽어보았다. 문구가 그 친구를 수하자처 럼 대한 것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문구이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나는 친구 사이에서도 편지에서는 친하니만한 그만한 예의는 반드시 잃지 않기로 조심해야 될 것이라는 것을 실제로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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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와 비슷한 예를 나는 딴 사람의 경우에서 본 일이 있다. 그들 서로 의 사이는 그리 친하다고는 볼 수 없는 처지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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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형(貴兄)께서는 ○○○씨의 주소를 아실 듯 싶사오니 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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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문안(問安)도 없고, 미안하다는 인사말도 없는 이런 요건만의 부탁 엽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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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엽서를 받은 친구는 예의는 모르는 자식이라고 불쾌하여 감정상 그도 일부러 자기가 받았다고 아는 모욕을 응수하기 위하여 꼭 같은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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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의 주소는 ○○동 ○○번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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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엽서에다 써서 보내고 그 후부터 부득이한 경우에서 직접 대좌를 하게 되지 않는 때에는 외면을 하고 지나면서 그 사이는 전에 보다도 소원해 가는 것이 현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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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란, 자칫하면 이렇게 상대방의 감정을 타의 없이 사게 된다. 그리하여 사교에 있어 적지 않은 영향이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편지를 쓸 때에는 무엇보다도 그 지위 여하에 따라 그에 상응한 예의를 잃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해야 할 것이 첫째 조건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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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할 이야기를 글로 전달하는 것이 편지인 것임을 안다면 편지에도그 상대를 만난 것처럼 처음 인사가 있어야 마땅할 것이요, 그리고 나서 하여야 할 이야기를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여야 할 이야기가 끝이 나면또 작별 인사를 해야 할 것이 역시 예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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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게 보낸 한 친구의 서신을 실례로 들어 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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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신 줄 믿습니다. 이력서는 받았는데 양잠과라고 해서 이학부장(理 學部長)이 좀 꺼리는군요. 될 수 있는 대로 고려하라고 말은 하고 있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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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형에게 하나 부탁하올 것은 그때 『신문학 사조사』내실 때에 찍은 《청춘》등의 표지 사진, 형이 가지신 것 며칠 동안만 좀 빌려 주셔야 하겠습니다. 쓰고서 곧 반환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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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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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일 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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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용묵 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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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편을 위하여 호감을 갖게 하려는 그런 수식어(修飾語)나 그 밖의 필 요치 않은 말은 한 마디도 없고, 안녕하신 줄 믿는다는 인사와 한번 만나자는 인사 한 마디씩으로 요건만을 이야기한 간결한 편지다. 그러면서도 그 요건만을 이야기하는 문면이 친구로서 조금도 예의를 잃지 않고 그에 상응한 경어로 대했을 뿐 아니라 요건을 말하는 문면이 또한 다정한 맛을 풍겨 주기도 하고 있다. 더욱이 이 편지가 다방의 전언판(傳言板)에 꽂혔던 것임을 안다면 다방에 앉아서 잠깐 동안 쓴 그러한 성질의 편지로서 그 얼마나 정중하게 친구를 대하려고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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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편지란 수식도 군말도 필요가 없이 오직 예의를 갖추어 할 이야기만을 간결하게, 그리고 명료하게 하여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머리를 복잡하게 하지 않고 일견에 그 사실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일급(第一級)의 편지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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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편지에는 그 내용에 있어서만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겉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제약을 받게 된다. 그 상대의 지위와 친소(親疎) 관계, 혹은 남녀간의 성별에 있어서 써야 하는 경칭들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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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어야 할 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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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보통으로 대하는 윗사람과 은사(恩師), 혹은 부모 에게 있어서나 친구라고 하더라도 보통으로 사귀는 친구와 절친한 친구, 또는 여성에게 있어서 미혼과 기혼에 따라 그 경칭이 달라야 하고, 다르면서 도 그것이 또한 지나치거나 부족하거나 하지 않고 그에 상부하는 것이어야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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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에게는 일반적으로 ‘씨(氏)’ 를 써 내려오던 것인데, 해방 후 일본식의 보통 존칭 ‘양(樣)’대신으로 우리말을 쓴다고 ‘씨’를 쓰게 되어 그것이 ‘양’과 같이 일반화되므로 수하자를 부를 때에도 이름은 없이 성에다 그저 씨자를 놓아 ‘이씨’ 혹은 ‘김씨’ 하고 부르게 되어 급이 좀 낮아진 감이 있으나, 氏[씨]자 그 본래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니 역시 씨 (氏)나 귀하(貴下)로 써서 실례 될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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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氏[씨]가 이렇게 일반화되므로 씨보다 좀더 높은 존칭 ‘선생’ 을 요 즘에는 흔히 쓴다. 그러나 사무적인 편지에 이르면 상하(上下) 남녀의 성별을 불문하고 그저 무난하게 ‘선생’으로 쓰이는 경향이 있어 이 또한 급이 떨어지므로 좀더 대접을 하여야 될 상대에게는 ‘선생’ 에다 ‘님’ 을 놓아 석교(石橋) 돌다리 식으로 이중(二重)의 존칭을 겹쳐 놓은 기현상이 생겼 다. 그리하여 ‘선생’ 두 자만 받고 ‘님’ 을 겹쳐서 못 받게 되면 홀대를 받은 것 같아서 불쾌한 감정을 가지는 사람이 없지 않아 있는 것이 사실이니 편지 쓰기도 참 힘들게 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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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전(尊前), 존좌(尊座)를 선생에다 받쳐 쓰든가 그대로 씀도 좋을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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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존칭은 극진히 대할 윗사람이나 은사에게나 다 써서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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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편지할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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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는 부모의 이름을 쓰는 것조차도 그것이 예가 아니라고 하여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편지를 할 때에는 이름을 쓰지 아니하고 자기의 이름을 쓰고 그 밑에다가 본제입납(本第入納)이라고 써서 보내는 것이 부모에게 가장 예의를 갖추는 투였으나 이름을 쓰고 존전이나 좌하(座下)를 놓아도 좋 을 것이다. 부모가 집에 있지 아니하고 객지(客地)에 있을 때에는 또 직성명을 밝히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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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친구에 대한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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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간에는 형(兄), 대형(大兄), 인형(仁兄), 아형(雅兄) 등 친소를 불문하고 써서 좋을 것이고, 문우(文友) 사이라면 학형(學兄)이라는 존칭 한마디가 더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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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있어서 미혼이면 양(孃)이 흔히 쓰이나 대학 정도를 나온 사람이 라면 아무리 미혼이라고 하더라도 그저 이름을 부를 때와는 달라서 서식상 으로는 여사(女士)로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기혼에는 여사 (女史)로 쓰이는 것이 무난히 되어 있고 윗사람이라면 역시 ‘존전’ 등의 존칭을 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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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여성이라고 해서 굳이 여(女)자를 놓아서 여사 (女士)니 여사(女史)니 하고 반드시 여자임을 따집어서 써야 할 것이 없이 남성이나 마찬가지로 같은 칭호로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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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성은 처녀성을 극히 존중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 미혼, 기혼의 구별을 분명히 하여 사(士)와 사(史)가 잘못되지 않도록 꼬집어서 쓰기를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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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끝으로 한 가지 첨가해서 말할 것은 겉봉 글씨인데 이 겉봉의 글씨는 더욱이 상대방의 성명 석 자는 해서(楷書)로 쓰는 것이 존경의 표시가 되는 것이고, 성은 이름과 붙여 쓰지 말고 한 자 떼어서 쓰는 것이 존경하 는 의미로 옛날부터 써 내려오는 식이거니와 이것은 지금도 낡은 투라고만은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예의는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로 갖추어서 나쁜 것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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