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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운대(海雲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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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10.
최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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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 雲 臺 [해 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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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서 내린 나는 海雲樓[해운루] 문전에서 한참 망설이다가 해안을 향하고 발을 옮겼다. 때는 오후 5시 반, 여섯시 반에 해운루 문전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김군은 자전차로 벌써 와서 해안으로 통한 길 옆 어떤 일본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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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군이 기다리는 곳을 돌아보면서 그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나갔다. 온천이든지 놀이처의 시설은 별로 보잘것없으나 청산과 바다 소리는 시들은 마음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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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논판을 지나 백사장에 나섰다. 일기가 흐리고 바람이 고약하여 물결은 한껏 거치르다. 따라서 해수욕하는 손들도 볼 수 없이 쓸쓸하다. 그러나 물결이 물결을 밀고 들어와 흰거품을 지우고 沙緖[사서]에 죽 퍼졌다가는 도로 밀려들어가는 것이 바닷가에 나서 바닷가에서 이십 년이나 자라난 나에게는 그리 신기롭게 보일 것은 없으나 망망 수평에 눈을 던질 때 상쾌한 맛은 걷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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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끝에 흐트러진 오륙도를 바라보고 멀리 수평선 끝으로 그림같이 떠 있는 孤帆[고범]을 볼 때 城津[성진]의 望洋亭[망양정]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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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도 인물과 틀림없다. 시대와 환경을 잘 만나야 그 이름이 사람들의 이야깃 거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洞庭湖[동정호]와 蛾眉山[아미산]을 대동강이나 금강산보다 더 동경하던 것이 이 까닭이다. 성진의 자랑이요 勝地[승지]인 망양정도 교통이 좋은 곳에 놓였더면 해운대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았을 것이다. 암만 보아도 내 눈에 비치는 해운대는 망양정에 비길수 없다. 그러나 오래 두고 동경하던 곳을 처음으로 밟게 되고 타관에 유리하여 팔칠년이나 멀어졌던 바다를 보니 자연 가슴에 넘치는 흥감을 이길 수 없다. 백사장에 옷을 훨훨 벗어 버리고 창랑에 첨부덩 뛰어들어 발로 밀고 팔로 끌어당기면서 이 몸을 물 위에 泛泛[범범]히 띄웠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일기가 쌀쌀한 데다가 병몸이 되니 그것도 자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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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위에 늘어놓은 어망과 후릿배 사이를 지나 해운대 아래에 산재한 바위 위에 궁둥이를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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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장에서 바로 남쪽 바닷가에 머리를 바다에 잠그고 붕긋이 솟아 있는 조그마한 뫼가 있다. 靑草[청초]에 온몸을 싸고 군데군데 어린 솔이 어설긋게 자라서 그리 奇觀[기관]할 것 없으나 빠진 데 없이 복스럽게는 보인다. 이뫼가 이름높은 해운대다. 옛적 崔海雲[최해운]이 이곳에 臺[대]를 짓고 자기의 아호로 臺[대]를 명명한 것이 지금은 이곳의 名詞[명사]가 되었다고 전한다. 臺[대]의 남편으로 멀리 보이는 바다 가운데 책상머리에 집어다가 놓기 좋을이만큼 보이는 작은 섬 여섯이 있다. 그것이 부산서 보면 다섯이 뵈이고 여기서 보면 여섯이 뵈이며 또는 어떤 때는 운무에 그 중 작은 섬이 묻히면 다섯만 뵈는 까닭에 그 이름이 오륙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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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야 죽든가 살든가 산수간에 잠겨 홀로 詩酒[시주]로 세월을 보낸 海雲[해운]의 생애가 어찌 생각하면 게으르고 미웁기도 하나 온천에 몸을 씻고 청풍에 옷소매를 날리면서 앞으로 煙波渺茫[연파묘망]한 바다를 바라보고 뒤로 청산을 우러러 마음껏 맛보던 그 淸樂[청악]이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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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에게서 들으니 연전에 어떤 일본 남녀가 東萊溫井[동래온정]에서 며칠 묵고 이곳 와서 우리가 지금 앉았는 해운대 앞바다에서 정사를 하였다. 과연 그것이 정사던지 그렇다 하면 그 동기가 나변에 있는 것을 구태여 알려고 애쓸바가 아니건만 어쩐지 그 사실이 내 가슴을 꾹꾹 찌른다. 정열에 타오르는 두 청춘이 뜨거운 가슴을 맞부둥켜안고 양양한 푸른 물에 풍덩실 몸을 던질 때 그 가슴속이 어떠하였을까. 바위에 부딪히고 바위새에 밀려들어 흰 꽃을 이루는 이 물결은 그때에도 있었으련만 而今[이금]에 말없이 들락날락하니 그 비밀을 알 사람이 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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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녁을 먹으려고 집마을로 돌아들었다. 흐렸던 일기가 서천이 방긋이 개었다. 서산에 뉘엿뉘엿 넘는 해는 바다와 청산에 붉은 빛을 던졌다. 사양에 빗겨 흐르는 어촌의 밥짓는 연기는 정산의 밑둥을 살짝 가리고 멀리 수평선 안개 위에 꿈같이 떠 있는 孤帆[고범]은 오륙도새에 돌아든다. 「滿山風光一帆中[만산풍광일범중]」은 바로 이런 景[경]을 읊은 시던가. 해면에 흐르던 안개는 오륙도의 허리를 잠그고 다시 슬금슬금 기어오르더니 해운대의 밑둥을 싸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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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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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하늘에 두서너의 별만 가물가물할 뿐 바다와 섬과 산 들은 황혼빛 속에 잠겼다. 고요한 어촌의 한두 개 漁火[어화]가 반짝거리는데 옷소매를 날리는 바람 소리와 은은한 바다 소리만 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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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의 진경은 청랑한 달밤에 있다 하나 나는 그것을 볼 행운을 못 가졌다. 오늘 구 7월 17일, 정히 달보기 좋은 때다. 그러나 날이 흐려서 맑은 달빛은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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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후 온천에 몸을 씻고 서늘한 해풍을 받으면서 컴컴한 길을 더듬어 해변으로 나오니 상쾌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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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서 해수욕 온 일파가 해변에 천막을 치고 露營[노영]을 한다. 김군의 소개와 그이들 후의로 우리도 그 천막에서 밤을 새기로 하였다. 그러나 모기가 어떻게 심한지 앉아 견딜 수 없다. 각각 거적자리를 끌고 불빛을 피하여 沙緖[사서]에 나갔으나 거기도 모기가 달라붙는다. 모기장 밖에서 앵앵거리는 모기 소리에는 신경이 띡금띡금하는 나는 견딜 수 없었다. 김군과 함께 물에 밀려나온 마른 해초를 집어다가 불을 살라 연기를 피었으나 그것도 소용없다. 홧김에 일어서 돌아다니면서 밤을 새우기로 하였다. 모기 덕분에 잠을 못 자니 해운대의 밤景[경]은 싫도록 보게 되었구나 하고 김군과 둘이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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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솟는다. 등( ) 바다 위에 험한 산같이 척 가린 검은 구름봉오리 넘어서 달은 우리를 방긋이 넘겨다본다. 아담한 소녀가 무대의 장막을 방긋이 열고 나타나듯이 구름이 점점 밀림을 따라 달은 뚜렷이 나타났다. 좋다─ 소리와 같이 장단 소리 청아한 女唱[여창]이 해변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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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무칙칙하던 바다에는 굵은 은파가 일렁거린다. 바로 우리 앉은 앞으로부터 저편 달 아래 바다까지 水晶簾[수정렴]이나 늘인 듯이 一字[일자]로 아글자글 끓는 물결! 엷은 밤안개에 잠긴 청산! 모두 그럴듯한 맛이 있다. 내게 만일 詩才[시재]가 있었던들 이 좋은 미경을 어찌 그저 두었으랴. 이때를 당하여 시 쓰는 벗들이 간절히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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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구름에 달은 자태를 다시 감추었다. 강산은 다시 으슥한 속에 잠겼다. 구름이 지나 달이 다시 나타날 때면 청산과 바다는 의연히 빛난다. 그러나 밤이 깊어서는 구름이 온하늘을 차지하여 달몸은 볼 수 없었다. 후리를 놓는 삼사의 어선은 수묵을 풀어 놓은 듯한 저편 해운대 앞바다에서 꿈같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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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이 당기는 후리를 당겨주고 고기를 얻어다가 회치고 국 끓이고 밥과 술을 마시는 풍미는 더욱 좋다. 김군은 벌써 여러 번이라 후리 당기는 법이 묘하다. 나는 별에 그을고 물에 鍊鍛[연단]되어 검고 굳은 어부의 벗은 몸이 부러웠다. 나도 언제 그러한 건강을 얻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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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오전 네시가 지났다. 모기는 그저 심하다. 모두 酒氣[주기]가 몽롱하여 꿈이 무르녹는데 혼자 밤을 샐려니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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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아가는 새벽빛에 사면은 푸르스름하다. 바다 낯에는 안개가 한 벌 죽, 가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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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커니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섰으니 알 수 없는 애수가 가슴을 찌른다. 따라서 정든 벗들과 고향이 생각난다. 나는 나로도 모르게 北天[북천]으로 머리를 돌렸다. 역시 눈에 뵈는 것은 흐릿한 하늘과 으스름한 청산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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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도 피곤하여 김군의 곁에 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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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새에 잠들었던가 김군이 깨우는 바람에 눈을 뜨니 여섯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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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먼저 가니 오전차로 東萊[동래]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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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김군의 말을 얼프름이 들으면서 나는 졸음이 그득한 눈을 다시 감았다. 다시 눈 떴을 때는 일곱시 반이 지났다. 모래 위에 이리저리 누웠던 사람들은 어느새 천막 속에 모여서 因睡[곤수]가 무르녹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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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일기는 개이지 않았다. 잿빛 하늘 아래 紺碧[감벽]한 바다에는 벌써 바람을 배인 돛들이 이리저리 떠 있다. 水邊[수변]에 물새들은 물결을 따라 드나 들고 해운대와 오륙도 밑둥을 싸고 흐르는 안개는 그 저편 청산골로 소리 없이 올리닫는다. 밤잠을 변변히 못 잔 나는 피곤한 다리를 집마을을 향하고 떼어놓았다. 萇山[장산] 머리에 쉬어넘는 검은 구름은 암만해도 무엇이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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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오늘에 쾌청만 얻었으면 멀리 수평선 위에 솟은 찬란한 朝日[조일]에 타오르는 장미빛 구름과 끓어넘치는 金波[금파]를 보았을 것인데 날이 흐려서 음울한 海景[해경]만 보게 된 것은 퍽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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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흐린 해운대는 흐린 특색을 갖추었다. 나는 그로써 만족하련다.
【원문】해운대(海雲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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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서해(崔曙海)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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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