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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小說)의 운명(運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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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11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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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소설]의運命[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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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소설(長篇小說)에 관한 형태적 장르사적 관심이 있어 오기는 벌써 오래 전부터의 일이었다. 우리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소설 문학에 대한 새로운 반성과 음미가 요구될 때부터, 장편 소설을 역사적으로 형태적으로 생각해보려는 비교적 높은 습관이 있어왔으니까, 우리가 그것과 관련시켜서 의식적으로 생각해오기 이럭저럭 3,4년이 되지 않았는가 믿어진다. 그동안 논의를 통해서 얻은 결론이나 지식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여러 사람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도 일치하지 않는 것도 많은 중에서 예컨대 장편 소설이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적 문학형식이라는 문제만은 거의 확정적으로 의견의 일치를 본 것 같다. 그러니까 단촐한 각서식(覺書式)으로초草)하기시작하는적은 기록의 서두에서 그러한 기본적인 점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언급할 까닭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야기가 지엽(枝葉)에이르면 언제나 망각하기 쉬운 것은 문제의 근간이 아닐까. 지금 우리들이 손쉽게 구경할 수 있는 소설론의 대부분이 이러한 과오를 범하고 있다. 또 우리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많은 소설들이 이러한 자각으로부터 작가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비평가는 그의 소설의 미학을 고대나 중세기의 서사시·전설·이야기에서구하여다가현대의소설을다스리려고하는까닭에절망론에 도달하는 결과를 보였고, 작가는 소설의 운명(소설의 장래를 말하려고 하면서 내가 이곳에 운명이란 말을 사용한 것은, 소설의 당면한 문제가 주체를 초월하여 외부적으로‘부여’된문제이면서 동시에내재적욕구에 의하여 주체에‘부과’된문제인것을진심으로자각하고자생각한때문이었다. 소설의 장래를 자기 자신의 문제로서, 운명으로서 초극하려는 데 의하여서만 문학은 그의 정신을 유지, 신장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때문이었다)을 깊이 깨닫지 못한 탓에 개인 취미를 무제한으로 개방하고, 불건강한 정신으로부터 문학을 지키려는 노력에 인색하여, 자의(恣意)의범람에몸을 잡치고 있다. 이리하여 우리는 한가지로 장편 소설이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적 문학 형식 이란 것을 망각하여버린 것이다. 이러한 점은 좀더 명백히 천명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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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소설이 권위 있는 미학에 의하여 고급한 문학 형식으로 인정된 것은 독일 고전 철학으로써 처음을 삼는다. 시민 이념의 정정한 건설자인 헤겔이 장편 소설을 시민 사회의 서사시라고 말한 것을 우리는 특히 다음과 같은 두 측면에 있어서 상기할 필요가 있다. ① 고대의서사시는시민문명의산문성과 화합할 수 없다는 것을 통하여 고대와 시민 사회를 역사적으로 정당히 구분한 것 ② 시민사회의장편소설이다른시대의그것── 서사시·전설·이야기등── 과본질적으로다르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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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의측면에서우리는고대희랍의시적성질이시민사회에와서그의번성할 발판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서사시의 형성은 인류 발전의‘유년시대’인영웅들의시대 다시말하면영웅적인개인이 그가소속되어 있는 도덕적 전체와 본질적 일치에 있어서 자기를 의식할 수 있던 원시적 단계에서만 가능하였다. 그러나 시민 사회에 와서 개인과 사회와의 이 같은 원시적인 직접 관계는 양기(揚棄)되었다 개인은개인적인힘으로 자기 개인을 위하여 행동하고, 그가 소속되어 있는‘본질적전체’와는관계 없이 자기 개인의 행동만의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태를 그는 무조건으로 진보라고 말하였으나, 그가 이것을 시민 문명의 산문성이라 표현하고, 시성(詩性)은이곳에번영할객관적기초를잃어버렸다고말한것은 명심할 만하다. 진보의 반면에 인간이 자동성을 잃고 퇴화할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헤겔은 시와 문명과의 이 같은 모순을 제거치는 못하지만 경감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서사시가 고대에서 연출한 역할을 장편 소설이 시민 사회를 위해서 연출하는 데 의하여 그것은 성취되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일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그것이부여된전제안에서 가능한 한, 장편 소설은 시를 위하여 그가 상실한 권리를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그러나이것은결코고대적서사시의인위적인부활을 꾀하라는 말은 아니었다. 산문적 현실의 묘사를 영웅의 창조와 대신해서 설정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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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의측면으로부터는 우리는 상술한바고대서사시는물론 외모상으로 시민 장편 소설과 유사한 중세기적인 기사 로맨스나 담류(譚流)로부터 장편소설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배울 수가 있을 것이다. 즉, 서사시나 전설이나 로맨스는 자기의 역사적 과거나 정치적 현재를 영웅화하고, 그것 가운데 자기의 운명의 최고의 설계를 인정코자 하는 인종이나 종족의 예술적 지향으로서 생겨났으나, 시민적 장편 소설은 별개의 사회적 자각 밑에 별개의 사상적 요구에 대답하기 위하여 생겨난 것이다. 즉, 시민의 사상적 표현 수단으로서 시민적 환경 밑에 생겨난 것이다. 그러한 환경, 그러한 사상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인식된 . 개인주의였다. 이것이 장편 소설을 장르로서 또는 양식으로서 형성시킨 본질적인 것이었다.(내가 특히 헤겔의 명제를 이렇게 두 측면으로부터 보고자 한 것은, 최근의 우리 소설론자간에 왕왕 이것을 혼동하여, 헤겔 이전의 소설 미학을 가지고 ── 실상은헤겔이전에는 진정한 장편 소설의 이론도 없었지만 ── 소설문학의현재를다스리려고 하는 문학 이론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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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인식된 개인주의가 만들어내는 상태란 어떠한 것을 이름일런가. 시가 번영하기 불편하여 장편 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를 요구하는 헤겔의 소위 시민 문명의 산문성이란 어떠한 상태를 이름하는 것이었을까. 만약 시민층의 사회적 자각이 중세기에서부터 양성되어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면, 동일한 논조로 하여 시민 장편 소설의 맹아가 싹트기 비롯한 것도 또한 중세기 상업 시민의 환경 가운데서였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봉건 귀족의 세도 밑에 깔려서 은연히 실력(金力[금력)만길러오던그들에게는견고한 종족적 전통이거나 영웅적 과거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개인적인 기업심, 개인주의, 봉건귀족에 대한 은연한 적의가 숨어 있는 상인의 집이나, 상품의 판로개척에 분주한 사매여각(卸賣旅閣)이나물산객주집에는영웅적 서사시보다는 다른 일련의 문학 형식이 절실하였을 것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소잡(素雜)한해학 재미나는색정치화色情痴話), 유쾌한 골계소설(滑稽小說), 장편소설등이그들의생활속에뿌리를박았다 이리하여 중세기 상인 시민이 사회의 실권을 잡고 개성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발흥기를 맞이할 때에 장편 소설은 완전히 그들의 사상적 요구에 대답하는 문학 형식으로서 체모를 갖추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곳까지 이르는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산문적이고 부산하였을 것임은 이루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 사회가 산업자본주의를 맞이하여 점차 그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모순이 심화하기 시작하면, 시민 문명이 가지는 산문성은 일층 뚜렷한 상모(相貌)를띠고 시와는화和)할수없고장편소설의광대한 묘사만이 포용할 수 있는 상태를 나타내게 되었을 것이다. 개인적 의식의 심각한 모순과 갈등이 장편 소설의 본질을 결정하기 시작한다. 개인적인 이해의 충돌과 자기의 생존과 생활을 옹호하려는 경쟁의 묘사가 드디어 심각한 사회적 갈등의 표현으로서 제시됨에 이른다. 장편 소설은 이렇게 해서 시민 사회의 서사시가 되는 것이었다. 인식된 개인주의가 시민 사회의 모순의 표현으로서 나타남에 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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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소설의 양식상 본질이 이상과 같을 때에 소설의 미학은 장편소설에 대하여 어떠한 형식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시민 이념의 이론가들에게 있어서는 상술한 바, 장편 소설은 고대의 서사시를 시민 사회에게 대행하는 문학 형식이었다. 그러므로 헤겔에 있어서는 고대적 대서사시가 가지는 일반적인 미학적 특징을 시민적 장편소설도 가졌으면 하는 것을 희망하였을 것이다. 시대 장경(時代場景)의광대한기념비적인재현── 이것은 서사시로부터 장편 소설에 인계되었다. 그러나 이여(爾餘)의시험이나 기도는, 시민 사회의 기초위에서 고대적 서사시를 부활시켜보려는 다른 노력과 함께 모두 성공치 못하였었다. 그러므로 시민 사회를 인류 발전의 최후의 단계라고 생각하였던 고전적 관념론의 대표자들은 왕왕 딜레마에 직면하였다. 헤겔은 시민 사회의 모순을 경감시키려고 애썼고, 셸링은 원시적 신화적 영웅 시대를 낭만적으로 찬미하여 과거로 복귀하는 가운데서 인간의 퇴화를 건져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모순을 묘파하려고 하지 않고 중간의 타협을 의식한 아이디얼리스틱한 모든 노력은 언제나 현실을 왜곡하였다. 주인공을 영웅으로 만들어서 모순을 은폐하려는 노력, 구성을 극의 미학에 준거하여 서사성을 구속하려는 기도가, 한가지로 실패하였다는 것은《소설의 미학》의저자인알베르티보데도식정識定)하고있다‘소설은기성의 특권적 형식 즉, 혼돈과 무질서를 용서치 않고 통일과 구성을 원리로 하는 연극, 비극 또는 희극과 대립하는 것으로서 자신을 정의한다’고말하면서 그는 구성 대신에‘총화’라는산문적인술어를내세우고있다 이러한상태에 있어서는 영웅을 그리라든지, 적극적 주인공을 창조하라든지, 구성을 가지라든지 하는 것이, 장편 소설의 형식적 원리와 배치되는 요구가 될 뿐 아니라, 시민 사회의 모순을 호도하든지 회피하라든지 하는 요망까지를 겸하게 된다는 것을 특히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빌헬름 마이스터와 같은 인물을 창조하려고 애썼던 괴테도‘장편소설의주인공은소극적이아니면안된다’고술회하였다하지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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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장편 소설의 형성이 시민 사회의 형성과 환경을 같이한다고 보아질 때에 대체 장편 소설의 생명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우선 상술한 장편 소설의 본질에 즉(卽…)해서 우리는이렇게대답할수있을것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개인주의적 자의식에 살아 있는 동안 그것은 생명을 가지고 나갈 것이다라고. 시민적인 개인 의식이 남아 있고, 개인의 운명이나, 개인의 생활이나, 개인적 요구와 생활권을 옹호하려는 경쟁과 승강이에 대한 관심이 존재하고 있는 동안 그것은 그의 본질을 상실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를 생성케 한 이러한 모든 발판과 개인주의적 자각이나 의식이 소멸하는 날이 올 수 있다면 그때에는 장편 소설의 본질은 변할 것이다. 양식을 달리하는 새로운 형태의 서사시적 형식의 문학 장르가 생겨날는지도 생겨나지 않을는 지도 기할 수 없는 바이나, 그러나 장르를 결정하는 것이 언제나 그 사회의 역사적 본질이라는 점만은 변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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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소설의 성장과 발전과 쇠퇴의 노선을 시민 사회의 역사적 발전에 맞추어서 이야기할 수가 있다면, 우리는 나라와 민족에 따라 시민 사회의 형성이 불균형하듯이 장편 소설의 생성·발전·쇠퇴의상모도나라와민족의 형편에 따라 불균형적이고 각자 각색일 것을 상상함에 곤란치 않을 것이다. 서양과 동양이 다르고 같은 구라파 안에서도 그 과정은 일치하지 않는다. 역사의 행진이 서로서로 다를 뿐 아니라, 문화의 전통이나 민족 생활의 방식에 차이가 있어서, 어떤 나라에 있어서 100년 전에 치른 과정을 훨씬 뒤떨어져서 건성건성 단시일에 치러 나가는 지역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본주의의 진행의 코스를 공식화할 수 있듯이, 장편 소설의 연대별의 공식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간단히 그 공식만을 여기에 옮겨놓으면 다음과 같이 된다. ① 시민사회의발흥기 라브레와세르반테스의 시대. 리얼리스틱한 공상성. ② 최초의축적의시대 디포 필딩 스몰넷으로 대표된다. 시민 사회의 진보적 적극적 원리의 강조. 적극적 주인공을 창조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③ 시민사회의모순이전개되었으나부정적 요소가 자립적 행진을 시작하지는 못하는 시대. 낭만주의의 뒤를 이어 발자크가 장편 소설의 중심을 완성 하는 시대. 괴테, 스탕달이 동시기에 취급한다. ④ 시민의식이몰락되고자연주의와시민의식의옹호가시험되는 시대. 공허한 객관주의와 황폐한 주관주의가 내용 없는 대립을 보인 채 경화하는 시대. 에밀 졸라로 대표된다. ⑤ 장편소설의형식의붕괴의시대 조이스와 프루스트가 활약하는 시대. 그러면서 한편 고리키가 마지막 활동을 남기고 죽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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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장편 소설이 이상과 같은 단계를 밟아서 붕괴되어간다면 종차로 이러한 대산문 문학 (大散文文學)의형식은어떻게자기의변모를거쳐서새로운 양식을 획득하여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하나의 의견이 있다. 그것은 예컨대 게오르그 루카치에 있어 대표되는 이론이다. 그에 의하면 시민 장편 소설은 졸라의 시대를 전환점으로 하고 두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하나는 조이스에까지 이르는 소설형식의 붕괴의 방향이고, 하나는 고리키를 통하여 고대적 서사시와의 형식적 접근에 이르려는 발전적 방향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점은 지역에 따라 다른 것으로 구라파에 있어서는 대체로 1848년이라 볼 수 있으나 러시아에 있어서는 1905년이 될 것이라 한다 ── 이러한의견은물론하나의역사적견지에서는예견밑에이루어진것임을 곧 이해할 수가 있다. 루카치가 전환점으로 보는 시대는 시민 사회 내에서 배양되던 부정적 요소가 자립하여 나아갈 능력을 가졌다고 보는 시기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리키가 획득한 새로운 양식이 고대적 서사시와의 근접을 지향한 것이라고 말할 때에 그것은, 인식된 개인주의가 그의 문학을 통하여 완전히 청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당래(當來)할신문학장르의 지반이 될 역사적 내용이 고대적 서사시를 가능케 한 고대 사회를 지향한다는 것까지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리키의 문학에는 과연 고대 서사시가 창조한 것과 같은 완미(完美)한인간성이들어있다고볼수 있을 것인가. 그는 오히려 인간성의 해방을 통하여 새로운 양식을 획득하려 애쓰지는 않았을까. 만일 그렇다면 인간성의 해방을 지향하는 곳에 왜곡된 인간성, 다시 말하면 개인주의의 타락된 의식이 없을 리 만무하다. 그가 즐겨서 창조한 것은 도리어 개인주의의 망령들이었다. 그러므로 고리키의 창작적 의욕을 관류하는 이지러진 인간성에 대한 증오만을 가지고, 그것을 곧 고대적 서사시에다 비준(比準)해보는데는다소간의아전인수가없지않다 할 것이다. 더구나 한번 사라진 문학의 장르가 역사성을 무시하고 두번 다시 부활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고대사회가 두번 다시 인류의 발전 단계을 찾아올 수 있을까 하는 문제와 함께 신중한 검토를 요할 바이다. 하여튼 고리키의 뒤를 계승하는 파제프, 팡표로푸, 소로호프 등이 만들어낸 인물이나 사회 장경은 고대 서사시에의 접근을 증명하기에는 적지 않은 부족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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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누구나도 말하듯이 전환기란 낡은 사회적·경제적·문화적질서의 몰락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것과 대신할 만한 새로운 질서의 계단으로 세계사가 비약하려는 것도 의미하는 시기였다. 아메리카의 뉴딜,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즘 소련의 시험(試驗)── 이러한모든것은자본주의의 황혼에 처하여 각 민족이 새로운 역사의 계단으로 넘어서려는 간과치 못할 몸 자세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낡은 차안(此岸)으로 부터 새로운 피안(彼岸)으로넘어뛰려고할때에우리가상망想望)할수있는새로운질서의 구상은 어떤 것일까. 세계를 통하여 우리 인류가 한가지로 그려볼 수 있는 피안의 세계는 어떠한 것일까. 구라파를 석권한 나치즘도 그것에 대한 명백한 구상을 표명하고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표방하던 혈통 이론은 이제 수정되지 않으면 아니 될 처지에 섰다고 한다. 구라파를, 아니 전세계를 통일할 이념은 우리의 앞에 아직 나타나 있지 아니한 것이다. 차안의 몰락은 확실하지만 건너뛰어야 할 피안의 세계는 나타나있지 아니하다. 전환기가 가지고 있는 위기의 하나는 이 피안의 결여에 있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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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나치스 독일에서 장편 소설이 장차 어떠한 운명을 지게 될는지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에스파냐에서는, 아니 지금 국가의 모든 조직을 독일의 지도 밑에 새롭게 꾸미고 있는 불란서에서는 종차로 소설이 어떠한 걸음을 걸어 나가며 그의 양식과 형태를 바꾸어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시민 장편 소설은 이제 그가 생존할 만한 발판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가 새로운 양식을 획득할 만한 피안의 사상은 결여된 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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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세계사의 섭리는 적당한 시기가 오면 모든 문화의 문제를 해결하여 줄 것이다. 시민 장편 소설을 인계하는 새로운 산문 문학의 커다란 형식도 양식을 획득함에 이를 것이다. 우리 소설은 그때가 오기를 손 결고 앉아서 기다려야 할 것인가. 그러나 사람의 노력을 기다리지 않고 저 혼자서 찾아오는 역사의 필연성이란 있지 아니하다. 여기의 전환기를 맞이하는 우리 소설이 짊어져야 할 간과치 못할 운명이 있지 않으면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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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 소설이 위기를 극복하여 새로운 세계 문화에 공헌할 길은 어디 있는 것일까. 지리멸렬한 소설의 현상을 가지고 그러한 것을 생각해보는 것은 한낱 부질없는 일일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고전적 서사시와의 접근을 지향하면서 우리의 장편 소설을 개조해본다든지 하는 등사(等事)는 당돌한 구상임을 면키어려울 것이다. 우리에게 가당한 그리고 가능한 일은 개인주의가 남겨놓은 모든 부패한 잔재를 소탕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왜곡된 인간성과 인간 의식의 청소, 이것을 통하여서만 종차로 우리는 완미한 인간성을 창조할 새로운 양식의 문학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안에 대한 뚜렷한 구상을 가지고 있지 못한 우리가 무엇으로써 이것을 행할 수 있을 것인가. 작가의 사상이나 주관 여하에 불구하고 나타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 리얼리즘을 배우는 데 의하여서만 그것은 가능하리라고 나는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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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식 씨의〈문학과논리〉가전환기에사는작가의부재의식에대해서 언급한 귀절을 나는 주의하여 읽었다. 서씨에 의하면 윤리의 지터(Sitte;관습)과 거뮈트(Gemüt;심정가분리상극하는것은한사회가불안과동요의 계단에 도달한 표징인데, 작가의 심정과 사회의 관습이 이처럼 일치하지 않은 시대에서는 작가가 진(眞)을그리기가곤란하다는것을말하고 있는 것이다. 서씨가 이곳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도 역시 전환기에 처한 작가가 어떻게 하면 진실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속하는 것이었다. 씨가 도달한 결론은 반드시 나와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여기에서도 한가지로 리얼리즘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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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가지의 예를 알고 있다. 가령 오노레 드 발자크를 생각해보자. 그는 귀족 생활의 부흥을 희망하였다. 그의 심정은 언제나 고리 대금의 채귀(債鬼)속에서 빠져 나와서 공작 부인의 교양있는 요설(饒舌)과 복욱(馥郁)한 화장 냄새가 가득찬 살롱에 살고 있었다. 그의사상은 왕통파였다. 그는 그 자신이 귀족 세계의 중심 인물이기를 무한히 갈망하고 있었다. 그의 심정은 야비한 시민 사회의 습속 가운데는 살고 있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는 귀족 계급이 당연히 몰락할 것과 신흥 시민이 세계의 패자가 되어 융흥할 것을 조금도 용서 없이 그의《인간 희곡》에 묘파할 수 있었다 그는 진실을 그렸을 뿐 아니라 진리까지를 표시하였다.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은 그의 왕통파 사상이었을까. 아니었다. 그의 고루한 사상을 넘어서 위력을 나타낸 리얼리즘 이외에 그로 하여금 진을 그리게 한 것은 있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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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왕 리얼리즘엔 이상이 결여되었다고 말한다. 좋은 경고이다. 그러나 정당한 이론은 아니다. 문학이 이상을 가지는 길은 이상을 표방하는 데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그리고 진리를 표상화하는 데 열려 있었다. 하느님을 찾는 자가 모두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현실에 발을 붙이지 않은 어떠한 문학이 진실의 문을 두드릴 수 있을 것인가. 전환기를 감시하지 못하고 시민 사회가 , 남겨놓은 가지 각색의 왜곡된 인간성과, 인간 의식과, 인간 생활에 눈을 가리면서 어떠한 천국의 문을 그는 두드리려 하는 것일까. 자기 고발에 침잠했던 전환기의 한 작가가, 안티테제로서 관찰 문학(觀察文學)을가지려하였다고하여도 그가상망코자한것은의연히소설의 운명을 지니고 감람산(橄欖山)으로향하려는것임에다름없었던것이다. 소설은 리얼리즘을 거쳐서만 자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나아가 전환기의 초극에도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장편 소설의 양식의 획득도 이 길을 허술히 하고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원문】소설(小說)의 운명(運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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