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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소를 팔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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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채만식
1930~1년작 ; 집, 1943
1
암소를 팔아서
 
 
2
그날 아침……
 
3
해가 뜨느라고 갈모봉 마루턱이 불그레니 붉어오른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고 차갑게 푸르렀다.
 
4
지붕이랑 마당에는 된서리가 뽀얗게 내렸다. 마당 한가운데로 멍석과 가마니 폭을 여러 닢 이물려 펴고 볏단을 수북이 져다 부렸다.
 
5
외양간에서 중소는 되는 암소가 김이 무럭무럭 나는 쇠물통에다 주둥이를 처박고 식식거리면서 맛있게 먹는다. 닭이 덤벼들어서 쇠물에 섞인 수수알 맹이를 개평 떼느라고 등쌀이다. 소 닭보듯 한다더니 저 먹을 것을 마냥 개평 들려도 소는 본숭만숭이다.
 
6
소를 저렇게 밥을 주고서 나는 왜 안 주느냐고 외양간 옆 도야지울에서 도야지란 놈이 몸뚱이를 반이나 울 너머로 내놓고 일어서서 소리소리 지르면서 생떼를 쓴다. 그러는 것을 바둑강아지가, 자식 쌍통 묘하다는 듯이 빈들 빈들 바라다보고 앉아서 웃어쌓는다.
 
7
“그샐 못 참아서!……”
 
8
마침 장손(長孫) 네가 혼잣말로 그러면서 동네집에서 쏟아오는 뜨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사립문 안으로 들어선다. 바둑이가 냉큼 달려나가 가로 뛰고 모로 뛰고 하면서 좋아한다. 도야지란 놈은, 응 인제는 되었다고, 어서 인제는 일러로 가져오라고, 꿀꿀꿀 점잖이 재촉하면서 연방 코를 벌씸거린다.
 
9
밥이 제풀에 잦혀지다 못해 밥탄 내가 흥건히 풍긴다. 곧 구미가 당기게 하는 구수한 밥탄 내다. 장손네는 질겁을 하여 뜨물동이를 아무데나 내려놓고 부리나케 부엌으로 쫓아들어간다. 그만 졸 뻔하다 말고 도야지란 놈이 도로 또 씨악을 질러댄다. 해가 미소를 하면서 갈모봉 마루턱으로 방긋이 솟아오른다.
 
10
장손네가 부뚜막에 꾸부리고 서서 밥을 푼다. 입쌀과 좁쌀이 반반씩이요 깜장 굵은콩이 다문다문 섞인 밥이다. 그런 밥을 푸되, 한바탕 흐벅지게 푼다. 착착 주걱으로 여러 번 이겨서는, 퍼서 사발에다 담고 퍼서 담고 퍼억퍽 한정없이 퍼담는다. 삼층집만큼 높게 퍼담는다. 그래가지고는 주걱을 놓고 손끝에 물을 묻혀가면서 곱게 고른다. 마침내 두렷하고 키 큰 한 사발의 밥이 되어 부뚜막에 가 처억 놓인다. 실로 어마어마한 밥사발이다. 도회지 사람한테 안겼으면 넉넉 하루 종일을 먹고도 남겠다.
 
11
마악 그렇게 한 사발을 푸고 났을 때 그 밥 주인공 장손이가 볏단을 집채 더미처럼 해 지고 들어온다. 아마 여느 일꾼 갑절을 졌나보다. 삼층집만큼 높게 푼 밥을 먹음직도 하다.
 
12
볏단 부리는 소리를 듣고 장손네가 마당을 돌려다보면서
 
13
“밥 먹어라?”
 
14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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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이는 잠자코 볏단에 깔린 지게꼬리를 주르륵 뽑아 사리사리 사리고 섰다가 불쑥
 
16
“오남인 어떡허는 심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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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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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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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마나 간밤으 또 술이나 퍼먹구섬 술병이 나 앓구 자빠졌을 테지!”
 
20
“밥 해먹을 곡식두 모자라 야단이라문서 그 제밀 술은 어쨌다구 해 팔게 마련인구!”
 
21
씹어배앝듯 그러면서 장손이는 지게를 걸멘 채 사립문께로 걸어나간다.
 
22
“아, 밥 안 먹니?”
 
23
아들의 등 뒤에다 대고 장손네가 역정스럽게 소리를 지른다. 장손이는 무어라고 코대답을 하는지 마는지 하면서 그대로 어슬렁어슬렁 걸어나가 버린다.
 
24
“자식녀석이 고집이 천생 소란깐! 소허구두 어디서 꼭……”
 
25
장손네가 혼자 이런 푸념을 하면서 밥 푸고 난 솥에다 숭늉을 붓고 있는데 “솔 낳아놓구서 소라구 탓을 헌담?”
 
26
하고 합죽한 소리가 바로 부엌문 밖에서 말참견을 한다. 언제 왔는지, 하얀 점순(點順) 할머니가 뒷짐을 지고 부엌 문지방에 가 지어서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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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네는 반기면서 일변 소댕을 덮고 마주 나서면서
 
28
“난 누구시라구!…… 어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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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전새벽버틈 모재 웬 싸움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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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두 고집두 하두우 유난헌깐 고만……”
 
31
“아따 사내자식이 고집두 좀 있어야 헌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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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밤새 볏단이 수얼찮이 축이 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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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볏단이?…… 을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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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십 단이나 축났대나 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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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절 으쩌우? 애탄가탄 농살 져가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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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게 말이죠!…… 그래 글쎄, 저두 속이 잔뜩 아픈 참인데, 이 오남인지 여섯남인진 또 오늘 타작 거달아 주기루 기껏 일 맞추어 놓구섬 실며시 자빠져버리죠! 그래저래 자식이 환 나구 헌깐, 식전내내 날만 가지구 성활 멕히는군요!”
 
37
“그게 다아 장가 어서 들여달랏 말이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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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그리잖어두 내가 좀 건너간다문서두 가을걷이에 몰려 오늘낼 오늘낼 미루기만 허군…… 그래 옥봉(玉峰) 네선 무어래죠?”
 
39
“나두 그리잖어두 그 얘길 좀 헐 영으루…… 옥봉네가 간밤에 넘어왔구 먼!……”
 
40
“그래서요?”
 
41
“궁합두 잘 맞구, 옥봉아범두 마땅헌 양으루 말을 헌다구…… 허기야 참입에 붙은 말이 아니라, 장손이놈만헌 신랑감이 어디 그리 쉬우?”
 
42
“쉬우나마나 무뚝뚝허구, 재미라군 한푼에치두 없구 그렇죠 머!…… 속에든 것두 없구……”
 
43
“땅 파먹구 사는 농사꾼이 속에 든 건 없으면 좀 어떠우?”
 
44
“몸 하나 실허구, 소처럼 꿍꿍 일 잘 허구 헌깐, 쯧, 제 가속 밴 안 곯릴 테지만서두……”
 
45
“아 시굴 농사꾼으로 게서 더 덮을 게 어딨수? 그거 하난다치면 천하 보배지!”
 
46
“제일에 그리구, 말은 아니해두, 가만 볼라치문 저두 퍽 옥봉이가 맘에 있는 눈치구 해서……”
 
47
“아따 그게 시체 연애라구 허는 거 아니우?…… 옥봉네두 그리는데, 옥봉 이년두 머 여간 좋알 허잖는대는구랴! 호호호!”
 
48
둘이는 어우러져서 한참 웃고 나서 점순할머니가 다시
 
49
“그래 다아 참 그렇게 양가가 부모네두 합의가 되구, 또오 저이끼리두 뜻이 맞구 해서 천생 연분은 연분인가 본데, 꼬옥 한가지 딱헌 사정이 있드구면 그랴!”
 
50
“그럼 저어……”
 
51
“옥봉네 말이, 지끔 성편에 혼인을 허자구 와락 나설 수가 없대는 게야! 아 번연히 속내 다아 아는 배, 우리가 농사 한톨을 지우? 따루 모아둔 성세가 있소? 겨우 거저 하루 벌어 하루 먹구 사는 터에 무얼 가지구 딸자식 혼인을 헐 엄두가 나느냐구, 날더러 답답헌 하소연을 허드구랴! 부꾸런 말루 딸자식이 나이 열여덟이나 먹두룩 여태 농지기루 옷은커녕 보선 한 켜레 못꼬매 뒀노라문서……”
 
52
“그런깐 납채루다 돈을 을마 좀 받아야 혼인을 허겠단 그 말일 테죠?”
 
53
“그렇지! …… 딱 잘라 을마라군, 아니해두, 눈치가 거저 돈 백 환이나 받았으면 허는 눈치야. 무슨 딸자식 납채 받아 호강허잔 노릇두 아니요, 인조루나마 옷벌이나 해 입히구 혼인날 동네 사람 청해다 장국이나 대접허구 허재두 아주아주 적게 잡아 백 환 하난 들어야 헐 테니, 당장 우리 터수에백 환이 어디서 나느냐구……”
 
54
“쯧, 많이 던 몰라두, 한 백 환 돈이래문……”
 
55
“백 환이면 해요! 장손네가 무슨 그대지 부자장자라구 며누리 하나 얻는데 납챌 백 원으서 더 주우?”
 
56
“그러문요! 우린들 남의 논 몇 말지기 붙인다구 붙인대지만 옥봉네 보담 또 나을 건 그리 있어요? 천행으루 참 송아지 저거 한 마리가 있어서…… 저건 또 생길래 생겼나요? 작년 정월에 즈이 외할머니가 임종허시문서, 애비없이 설리 자란 자식이 이십이 넘두룩 장가두 못 가 가엾다구, 당신이 길르시던 암소가 새낄 낳아 마침 젖이 떨어지게 된 걸, 너 가지구 가 길러서 장가 밑천 해라, 그리시문서 주신 거랍니다!”
 
57
“홀애비 살림엔 이가 서 말이요, 홀에미 살림엔 곡식이 서 말이래드니 아뭏든 희한헌 노릇야!…… 그래 저걸 지끔 팔면 한 이백 환 받나?”
 
58
“한 삼백 환 받는데나 바요!”
 
59
“저거 보겠지…… 삼백 환이면 아주 썼다 벗었다 허겠구려? 백 환 저집에 떼주구, 나머지 이백 환 가지구 혼인 못 치러?”
 
60
“잘허자문 한정이 없지만서두……”
 
61
“그럼! 시집 장가 호강으루 가구서 후분 존 사람 별루 못 구경했으니!”
 
62
“난 그렇게라두 했으면 허지만, 제 소견은 또 어떨는지……”
 
63
“제 눈에 든 색신데 설마 마대지야 않겠지!”
 
64
“이따가 저녁이구, 앉어 의론을 해보구섬 낼 아침이래두 건너가께요!”
 
65
“그럭허구랴! 모재 잘 상의해서……”
 
66
“좀 올라가세요! 무우국해 진지나 좀 잡수시게……”
 
67
“밥은 먹어 무얼 허우? 이댐에 술 석 잔이나 자알 낼 도리 허우!”
 
68
“호호호! 술이야 석 잔만 드려요? 다아 참 노이신네가 이렇게 앨 써 주시는데……”
 
 
69
그날 석양……
 
70
턴 벼를 장손이가 고무래를 가지고 수북하게 긁어모으고 있다. 우선 이렇게 긁어모아 멍석으로든 덮어두었다 내일 나머지를 마저 털어서 같이 강정을 해가지고 가마니에다 말로 닷 말씩 되어서 담을 참이었다.
 
71
아직 강정을 아니해서 북더기가 섞이고 거칠어 보여도 벼알은 까치눈알처럼 굵고 쭉정이도 별로이 없다. 전고에 드문 가뭄이었지만 장손네 모자의 부지런과 정성으로 버젓이 천재를 이겨내고 이만큼 좋은 결실을 보았던 것이다.
 
72
“죄외 털문 이럭저럭 스물댓 섬 날까 보우?”
 
73
장손이가 짚단을 묶고 있는 모친더러, 소처럼 벌씸 웃으면서 하는 말이다. 벼가 많이 나고 하여 아침나절에 부르텄던 속이 풀리고 기분이 매우 좋았다.
 
74
“스물닷 섬 나구말구! ……”
 
75
장손네는 그러면서 한옆으로 아직도 많이 쌓인 볏단을 돌아다보다가
 
76
“반 조금 더 털었지?”
 
77
“반이 다 무어유! 한 거저 삼분지 일이나?……”
 
78
“그렇다문 얘야 스물닷 섬두 더 날까 보다?”
 
79
“작년이 그게 몇 섬이우?”
 
80
“도지 열 섬 물구서 떨어진 게 모두 해 열일곱 섬허구 두어 말……”
 
81
“잘허문 작년만친 먹겠수!……”
 
82
모자는 한가지로 만족한 얼굴이면서 잠자코 각기 하던 일을 한다. 이윽고 그러다 장손이가
 
83
“올에두 열일곱 섬이 떨어지거들랑 닷 섬만 양식으루 냉기구서 열두섬일랑 죄외 쓸어냅시다? 내문 이백 한 오십 환 잡힐 텐깐 윤칠(允七)네 밭 그거 삽시다?”
 
84
“명년 농사돈은 무얼루다 댈늬?”
 
85
“빚 좀 쓰구서 명년 농사 져 갚우문 고만 아니우?”
 
86
“양식두 그리구 올엔 닷 섬만 냉겼단 모자란다?”
 
87
“무어가 모자라우?”
 
88
“식구가 하내 늘잖니?”
 
89
“식구가……” “올 갈엔 서둘어 혼인을 해여지 아니해?”
 
90
“!……”
 
91
장손이는 그 말에야 벌씸하고 소처럼 또 웃고 나서 한참 있다가
 
92
“보리 좀 더 보태 먹으문 그 턱이 그 턱 아니우?”
 
93
“아까 참, 저 건너 점순할머니가 오셌드라?……”
 
94
“………”
 
95
“옥봉네서두 다아 가합헌 양으로 말을 헌다구……”
 
96
“………”
 
97
“그래두 성편이 하두 어려서 와락 혼인을 헐 엄둘 못내 헌다구……”
 
98
 
99
“그럼 돈을 내란 말 아니우?”
 
100
장손이는 단박 볼먹은 소리다.
 
101
장손네는 아들을 더치지 아니하려고, 다독거리듯 좋은 말로
 
102
“가난허니 어떡허느냐?”
 
103
“누가 가난허랬나?”
 
104
“많이두 말구, 한 백 환 납채 보내문 헐까 보드라?”
 
105
“백 환이 어딨수?”
 
106
“저 송아지 있지 않니?”
 
107
“일없어요!”
 
108
“일없긴 무어가 일이 없니?”
 
109
“암소 팔아 기집애 사오는 놈이 어딨수?”
 
110
“내 온, 듣다듣다 벨 따그랑이 같은 소리두 다 듣겠구나! 걸 다 말 이라구 허궀니?”
 
111
“저 손 그리구 암소래두 소가 좋아서 두구 부리문 십 년 하난 부릴 솔 무어가 답답해 팔우?”
 
112
“드끄러! 손 제마다 부리는 줄 아나베!”
 
113
“걱정 마시우!”
 
114
“괜히 고집 쓰지 말구, 나 허는 대루 보구만 있어요!”
 
115
“대갈통이 깨져두 암소 팔아 기집앤 안 사와요.”
 
116
“네가 정녕 에미 속을 이렇게 태워 줄 테냐?”
 
 
117
닷새가 지나서 낮때만 하여……
 
118
장손이가 산모롱이 밭에서 보리씨 뿌린 것을 쇠스랑으로 긁어 덮고 있는데등 뒤에서
 
119
“장손이냐?”
 
120
하고 부른다. 음성만 들어도 벌써 오남이다. 장손이는 속으로, 게으름뱅이가 어떡허다 산에 가서 땔나무나 괴나리봇짐만큼 한 짐 해서 지고 내려오는 거동이실 테지야고쯤 돌려다보려고도 않고 대답도 않는다.
 
121
오남이는 장손이가 못 알아들은 줄 알고서 재우쳐 커다랗게 “장손이여?”
 
122
“아마 그런가 보에!”
 
123
“담배 가졌니?”
 
124
“미안허이!”
 
125
“증말?”
 
 
126
“증말 미안헐 건 없구……”
 
127
“자식 승겁긴!”
 
128
“담배 가지구 있다 선뜻 한 개 줬으문 짭짭헐 뻔했지?”
 
129
“말허는 뻔새가 승겁단 말야, 자식아!…… 자식이 저렇게 승겁구 멋대가 리가 없은깐 옥봉이 기집애두 절 마대구서 바람 잡으러 실 뽑는 공장으루 간대지!”
 
130
“자반고등언 기집애가 줄레줄레 따라 죽을 지경이겠네?”
 
131
장손이는 말은 그렇게 태연히 하면서도 속으로는, 옥봉이가 저허구 혼인을 못하게 된 김에 실뽑는 공장으로 뽑혀가리 어쩌리 한다드니, 노상 빈말은 아닌가 보다 하였다. 화가 더럭더럭 나나 마치 중이 장엘 왔다 소나기를 맞구서 난 화 같아서 얻다 대고 부르댈 곳조차 없는 화였다.
 
 
132
바로 그날 석양때……
 
133
옥봉이가 길 옆 목화밭에서 따고 남은 목화대를 꺾고 있다. 장손이가 빈지게에다 빈 옹퉁이와 쇠스랑을 얹어서 지고 흐느적흐느적 그 옆길로 걸어 오고 있다. 장손이는 조용히 만난 김에 부디 할 이야기가 있기는 있는데, 전과 달라 어쩐지 섬뻑 말이 붙여지지 아니하려고 하였다. 옥봉이가 보고도 짐짓 못본 체하는 것 같아서 더구나 주몃주몃하고 오갈이 들었다.
 
134
털썩, 옹퉁이를 일부러 떨어뜨렸다. 안 보는 체하면서도 죄다 보고 있었든 지, 옥봉이가 뾰로통한 소리로
 
135
“옹퉁이가 요술허든감!”
 
136
이렇게 튼다.
 
137
장손이는 할 수 없이 히죽 웃고는, 지게를 받쳐 세우면서
 
138
“너 바람 잡으러 간다문서?”
 
139
“바람을, 잡으러 가거나 놓치러 가거나 무슨 상관이여?”
 
140
“어째 상관이 아니어?”
 
141
“앞자락두 넓기두 허네!”
 
142
“목화대 내 다아 걷어서, 져다 주께시니, 실 뽑는 공장 가지 마라, 응?”
 
143
그러면서 장손이는 밭으로 내려가더니 우직우직 목화대를 잡아뽑기 시작한다.
 
144
옥봉이는 물끄러미 바라다보면서
 
145
“그러는 새, 나 같으믄 어여 가서, 그 잘난 암소, 봉양이래두 허겠네!”
 
146
“허긴, 네 따위가 암소 한 마리만 허다듸?”
 
147
“누가 아니래? 제발 그 암소 조상처럼 위해 앉혀두구서 한평생 살겠지!”
 
148
“너 입잣 그렇게 함부루 놀리는 법 아니다?”
 
149
“흥, 나두 공장 가서, 돈 좀 벌어서, 누구 보아란 드끼, 난 큰 황솔한 바리 사놀걸!”
 
150
“그래, 황소 사서, 황소헌티루 시집 갈늬?”
 
151
“이 수언!……”
 
152
소리와 함께 큰 흙덩이를 단 채, 목화대 한 포기가 휙 날아와 장손이의 꾸부린 옆구리를 털썩 갈긴다. 옥봉이는 그러고는, 아마 우는지, 한편 손으로 눈을 우디고 마을을 향해 허둥거리며 달린다.
 
153
집으로 돌아온 장손이는, 외양간 앞에 가 뒷짐을 지고 서서, 곰곰이 소를 바라다본다. 밀끔한 게 털은 윤이 치르르 흐르고, 통통히 살이 졌다.
 
154
마당에서 조를 토드락토드락 털고 있던 장손네가 마침 생각이 나서
 
155
“음전(音全)네서, 낼 보리 묻는다구, 일 하루 해달라구 왔드라?”
 
156
한다. 장손이는 그대로 섰는 채, 한참만에
 
157
“낼 일 못가요!”
 
158
“무엇허게 못 가니?”
 
159
“장에 가요!”
 
160
“장엔 무엇하러 가니?”
 
161
“소 팔러 가요!”
 
162
“?……”
 
163
장손네는 의아스러이, 아들의 등 뒤를 바라다본다. 그러다 문득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빙긋 혼자서 웃는다. 그러나 이내 시침하고
 
164
“손 무얼 허게 파니?”
 
165
“낼 아침이나 일찍 해주시우!”
 
166
그러면서 장손이는, 모친하데 얼굴을 돌리지 못하고 슬금슬금 사립문으로 걸어나간다.
 
167
“암소 팔아 기집애 사오는 놈두 있다듸?”
 
168
“박장손이요!”
 
169
“대갈통이 깨져두, 암소 팔아 기집앤 안 사온대드니?”
 
170
“갈비뼐 부러질 뻔했다우!”
 
171
조금 있다 장손네는, 일하던 것도 팽개치고서, 중매 서는 점순할머니한테를 건너가기에, 치마꼬리에서 사뭇 바람이 인다.
 
 
172
〈1930~1년작 ; 집, 1943〉
【원문】암소를 팔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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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소를 팔아서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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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4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