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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적 양심이 결여한 우리 문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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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5
이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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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양심이 결여한 우리 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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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願目)을 이와 같이 정하고 고(稿)를 기(起)하려고 붓을 들음에 당하여 이러한 기억이 절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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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리나라에 있을 때에 나의 벗 K는 자기의 엄격한 가정의 간섭과 제재로 말미암아 자유로운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엄격하다는 것보다도 차라리 완고(頑固)라 하는 편이 더욱 적절한 말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K는 자기 부친의 너무 완명(頑冥) 고루(固陋)한 것을 민연(憫然)히 여기는 동시에 우리 조선 부로(父老)들에게 큰 반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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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은 여러 친구가 모여서 우리 청년들이 어느 때에든지 말하는 바와 같이 현금 우리 사회의 모든 불평에 대하여 호상(互相) 만장(萬丈)의 기염을 토할 때에 K는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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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로(父老)들의 완고한 행동에 대하여는 소위 언론기관이란 것들이 너무 침묵을 지키고 무신경한 듯해요. 꼭 남의 일 보듯이 해요. 나는 한번 신문이나 잡지의 지면을 빌어서 우리 부로(父老)네의 완명(頑冥)한 행동에 일대 통봉(痛棒)을 주려 하였더니 일전 모(某) 신문의 사설에 내가 말하려는 바 같은 논조로 그것을 통리(痛詈) 하였습디다. 나는 참으로 통쾌히 여겼습니다.”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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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가 자기의 느낀 바를 능히 써서 신문이나 잡지에 언론다운 언론으로 발표할 만한 두뇌의 소유자인지 또는 부로(父老)들이 그 언론에 감명되어 금후(今後)로는 행동을 고치어야 되겠다는 그 효과는 별 문제로 하고 나는 K의 말에 한 비소(鼻笑)로 답을 대하였을 뿐이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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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와 같은 비소가 나의 코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나의 자신이 또 다른 사람에게 비소받을 것도 불고(不顧)하고 이 붓을 잡게 된 것은 무슨 인과에 관계가 없지나 아니한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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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문단(文壇)(무슨 문단이라고 크게 말할 것도 없지마는 무엇이라 이름 할 수 없으니 그저 문단이라 불러둡시다)에서 활동하시는 문사(文士)들, 잡지 광고에 화형문사(花形文士) 화형(花形)이니 일류 사상가니 천재시인이니 하는 여러 문사들에게 우리 민족의 장래와 예술의 귀추(歸趨)를 위하여 적지 않은 불만을 가졌었습니다. 불만하다는 것보다 민연(憫然)하고 가석(可惜)하다 할는지 어쨌든지 그대로 가서는 아니되겠다, 묵과(默過)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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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의 벗 K가 신문이나 잡지의 일우(一隅)를 빌어가지고 우리 부로(父老)들에게 간(諫)하려던 것처럼 나는 문사 여러분께 의견을 드리고 그들의 예술적 양심을 물어보려고 하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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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금번(今番) 문예잡지 ≪창조≫ 신년호에서 우리 문단에 오랫동안 적적하던 춘원(春園) 군(君)의 붓으로 쓴 바 〈조선(朝鮮) 문사(文士)와 수양(修養)〉이란 논문을 읽고 K가 우리 부로들을 통리(痛詈)한 사설을 읽고 통쾌히 생각한 것과 같이 나 역시 ‘쾌재(快哉)’라는 부르짖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평소에 불량한 행동을 기탄(忌憚) 없이 하던 사람이 또 불량한 행동을 맘대로 하려다가 남에게 뺨을 얻어맞았다는 것 같은 말을 들을 때에 감동하던 바와 같은 시원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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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春園) 군의 열정이 뭉친 그 글이 우리 문단에 날뛰는 문사 여러분에게 참고가 되고 경성(警醒)이 됨에 족할 것은 내가 확실히 믿는 바외다. 그러면 누구시든지 나에게 “너는 우리 문단에 대하여 어떠한 불만을 품고 있었더냐”고 물으시면 나는 “춘원군이 창조(創造) 신년호에 발표한 그것과 대동(大同)합니다. 나더러 지금 다시 말하라 하더래도 역시 그러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여기에 이르러 먼저 말한 바 나의 벗 K가 하던 말과 내가 비소하던 것을 생각하고 내가 하던 바 비소와 같은 비소가 지금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에게서도 자연히 나오리라고 생각하매 그러면 그만둘까하는 생각도 없지 않지마는 조선 문단에서 현금 활동하는 문사(文士)로 문사려니와 춘원군의 손에서 그와 같은 사자후(獅子吼)하고 풍자하는 글이 써졌다 함을 더욱 희괴(稀怪)한 현상이라 생각하는 고(故)로 비소는 비소하는 여러분의 임의(任意)으로 하고 나의 미숙한 붓을 들게 된 까닭이외다. 이것이 동요를 만들어 준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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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우리나라에 문학열(文學熱)이 팽배하려는 것은 사실이외다. 문학이라는 것보다도 문예열(文藝熱)이라는 것이 더욱 적절할는지 알 수 없으나 하여튼지 ≪문(文)≫이란 말이 청년 학생 간에 큰 흥미와 자격을 주는 듯 하외다. 그러면 이와 같은 문예의 열(熱)이 고조에 달하려는 것이 불호(不好)한 경향은 물론 아니외다. 차라리 크게 환영하고 지도할만한 호(好) 경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문 이외에는 문(文)이란 것이 다시없는 줄로만 믿던 우리의 완고한 노인네나 소위 신풍조에 목욕하고 신교육을 받았다면서도 연문학(軟文學)파이니 경문학(硬文學)파이니 문예란 것은 일개 오락물이요 소일거리라 한인(閑人) 무사자(無事者)의 탐닉할 바라고 멸시하는 시대착오의 사상을 가진 사이비 신인들에게는 이것이 참으로 우려 할만한 경향이라 할는지 알 수 없으나 조금이라도 예술을 이해하고 그것이 인생과 어떠한 관계를 가진 것을 아는 이는 도리어 회심의 미소를 금치 못할 것이외다. 카펜타 ─ 의 “생활이 곧 예술이라” 말이 이것을 갈파(喝破)함이 아닌가요. 우리가 참으로 인간성에 눈뜨고 진(眞)의 감정에 살려고 할 것 같으면 예술에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나라 청년들이 문예를 애호하게 된다함은 인간으로서 생활하자는 제 일성(一聲)인가 합니다. 이것은 우리 사상 발달에 큰 원동력이 될 뿐 아니라 결국은 우리 전 생활을 지배하게 되어야 우리는 참생활을 할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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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러시아’ 의 소년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성서(聖書)처럼 애독(愛讀)하던 청년들이 장성한 금일에 그들이 우리 인류의 불합리한 생활을 위하여 노력함이 어떠하며 희생을 바침이 어떻게 큰 것을 우리가 목도(目睹)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나라 청년들이 금일에 발기(勃起)한 바 문예의 취미가 어떠한 방면으로 기울어질는지 기울어지며 있는 것을 보건대 내가 이상에 말한 바와는 배치하려는 경향이 없지 아니한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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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문단에 대한 요구가 춘원군과 대동(大同)하다는 것을 제언(提言)하였으므로 다시 사족을 가할 필요도 없겠고 또한 예술론이나 문학론을 들어서 우리 현금 문단의 문사(文士)의 작품을 조준(照準)하고 그 가치를 비평할만한가 하는 것도 의문에 지나지 못합니다. 이러한 비평을 받을 만한 자격도 결여한가 합니다. 이것은 마치 벼룩같이 작은 동물을 해부함에 소나 말의 해부에 쓰는 ‘메스’를 사용할 수 없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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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제 일의적(一義的)으로 우리 진(眞) 인생의 참 감정의 유로(流露)가 아닌가요. 이러므로 그 시대의 진실한 감정의 표현이야말로 그 시대의 예술이라 할 것이외다. 그런데 현금 우리 문사들의 작품에 표현된 바 감정이 그와 같은 진실한 시대고(時代苦)나 인생의 번뇌를 표현하였는지 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나의 가슴에 순화(醇化)될 만한 감정이 발랄한 작품에 접한 일이 없습니다. 나는 문사 여러분의 가슴에 타오르는 인간고(人間苦)가 있는가 인간성에 하소연할 만한 감정의 유무를 의심치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작가 여러분의 예술적 양심에 물어 보는 수밖에 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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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創造) 신년호에 〈조선 문사(文士)와 수양(修養)〉이란 글의 필자(筆者) 춘원(春園) 군은 우리 문단을 건설한 일원(一員)이요 우리 문단에서는 잊을 수 없는 유공(有功)한 이요 또한 우리가 군에게 다대(多大)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군에게서 더 절실한 고백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군은 이와 같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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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십여 년 내로 논문 혹은 소설하고 분량으로는 삼천여 혈(頁)을 썼거니와 우리나라에 신문체를 보급시키는데 일조(一助)가 된 외에 다소간 무슨 자격이나 주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십의 칠팔은 아니 썼더면 하는 것이요 그 무지하고 천박한 문(文)이 사랑하는 우리 청년 형제자매에게 해독을 끼쳤으리라고 생각하면 이 붓대 잡은 손을 끊어 버리고 싶도록 죄송하고 가슴이 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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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꽃 같이 타오르는 열렬한 회한(悔恨)의 고백으로 보면 군의 우리 동포를 사랑함이 어떻게 열정적이요 절대적인 것을 누구나 알 수가 있습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금일 우리 문사들 중에는 춘원군의 본 바와 같은 경향이 확실히 있고 군이 끼친 바와 같은 해독을 끼치며 있는 것도 사실이외다, 우리 민족은 여러 세기 동안을 두고 구윤리(舊倫理) 구도덕(舊道德) 하에서 무한한 압박을 받았고 또한 정치적으로도 자유로운 세계를 본 적이 소(少)하였습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해 본 일이 적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슴에는 울분한 것과 고뇌한 피의 덩어리가 뭉쳐있을 것이요 사지(四肢)에는 반항적의 피 조수(潮水)가 물결쳐야 할 것이외다. 이러한 것이 전통적으로 있어야 할 것이외다. 이러한 기분과 정서가 어느 나라 국민보다도 민족보다도 강렬하게 있을 것은 누구나 사색적 두뇌의 소유자면은 인지할 수 있을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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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문예는 감정의 표현이요 고민의 상징으로서 되었다 하면 우리 문단에는 피가 끓는 듯한 사람에게 감격한 기분을 주지 않고는 말지 아니할 작품이 다산(多産)할 것이요 바늘처럼 살을 찌를 듯한 인간성에 하소연하는 예술이 발흥(勃興)할 것이외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유탕적(遊蕩的) 기분이 물결치는 경향이 문사들에게 있음은 참으로 괴상한 현상이외다. 따라서 우리네에게도 참으로 인간성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재료로 삼아 그렇게 만든 바와 되어온 바 원인을 탐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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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군의 말한 바와 같이 신문체가 일어난 당시의 우리나라의 민도(民度)와 시세(時勢)를 말하여 봅시다. 갑오경장 이후에 문약(文弱)이란 표어가 우리 민족의 과거 역사를 통괄하여 말하였습니다. 과문(科文)을 폐지하고 인재를 등용한다는 반면에는 불식문맹(不識文盲)이라도 운수 좋으면 일조(一朝)에 고관대작(高官大爵)이 되며 권모술수로 출서(出書)하는 유일(唯一)의 건약(鍵鑰을 삼으며 조정(朝廷)에는 매관매직(賣官賣職)하는 위조충신(僞造忠信)이 만하였고 지방에는 탐관오리가 의연히 도량(跳梁) 하였었습니다. 그들은 결국은 자기들의 양심으로 이러한 것을 고치지 못하고 타(他) 민족이나 타국(他國)의 세력에 눌려서 이러한 짓을 중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결국에 자각한 민중의 반항운동이 일어났었습니다. 자강회(自彊會)니 국민협회(國民協會)니 일진회(一進會)니 대한협회(大韓協會)니 하는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습니다. 매관매직하던 대관의 퇴물(退物)과 탐관오리의 말류배(末流輩)들이 하등의 자각도 없고 심오한 학식도 없이 군중의 암매(暗昧)한 것과 시대의 약점을 이용하며 고명조예(沽名釣譽)하는 것으로 유일한 목적을 삼았었습니다. 그래서 허명지사(虛名志士)와 위조 애국자가 배출하였었습니다. (기중(其中)에는 진정의 열렬한 애국자도 없지는 않으나) 그들은 사려없이 뻔뻔한 것으로 무기를 삼아 비분강개(悲憤慷慨)한 소리로 책상을 두드리며 ‘여러분’하는 말을 수차 계속하면 그래도 지사(志士)나 명사(名士)가 되고 말았나이다. 그들의 성문(聲聞)은 여항(閭巷)에 자자하게 되고 군우(群遇)는 울어보고 이망(羡望)에 타오르는 찬성을 그들에게 드렸습니다. 그들은 의기가 양양하고 자기네의 인격이 참으로 고상하고 식견이 월등하여 군중에게 숭배 받을 자격이 확유(確有)한 줄로 자만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시대의 죄인지 오인(吾人)이 자작(自作)함인지 알 수 없으나 우리 민족처럼 심한 이는 없었습니다. 그 피상적의 명예심이 우리 민족을 어떻게 해(害)하였는지 이것은 조선의 현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너무 탈선이나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나는 현금 우리 문단을 논하려니까 이러한 것을 자연히 말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너무 과격한 말이요 피상(皮相)의 관찰에 불과할는지 알 수 없으나 소위 명사(名士)들은 그 영예에 대한 동경이 우리 민족의 문화를 위함보다 무엇보다도 강렬하였던 것은 사실이외다. 국가나 민족이 무저(無底)의 나락에 떨어지는 것보다도 자기의 명예가 추실(墜失) 할까 유공(唯恐)하던 명사나 유지들은 자기들의 지위와 명예를 위하여 호상(互相) 질투하고 쟁투(爭鬪)하게 된 것도 세(勢)의 자연이외다. 웅변술을 독습(獨習)하고 명사(名士)를 추종하던 청년들의 가슴에 충만한 것도 자기의 영예심이었습니다. 나는 이상에 누누히 말한 바와 같은 경향이 현금 우리 신흥하려는 문단에도 불무(不無)한가 합니다. 영예심(榮譽心)이라든지 공명심(功名心)이라든지가 무슨 일을 발흥(勃興)케 하고 창시(創始)하려는 동기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그러나 이것을 그 전체로 볼 수도 없고 더욱이 최고한 목적으로는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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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조선에 문예를 애독하는 사람들은 노인도 아니요 장년도 아니요 혈기(血氣)가 미정(未定)한 중등(中等)정도 학교의 남녀 학생이나 역경에서 방황하는 청년이외다. 신문학의 세례를 그들보다 먼저 수(受)한 이들 근일(近日) 신문이나 잡지에 황망(慌忙)하게 붓을 휘두른 여러 문사들도 역시 청년들이외다. 우리들의 혈관에는 과도한 공명(功名)과 영예욕이 전통적으로 창일(漲溢)한 듯하외다. 그래서 문예의 본질인 창조 창작의 감정, 내부 생명력의 진전하려는 자기의 표현이라든지의 진실하고 염(焰)○한 광휘(光輝)를 발(發)하려는 자기의 예술의 충동보다도 그 천박하고 가증한 영예나 공명을 요구함이 더욱 간절치나 아니한가 합니다. 우리 현금의 처지를 한 번 살펴봅시다. 필사(必死)의 경(境)에 빈(瀕)한 이의 규호(叫呼)와 같은 열렬히 생을 요구하는 문예가 번뇌에 타오른 우리 머리에서 창조되어야 할 것이요 감상자에게도 우리가 느낀 바와 같은 감격한 기회를 그들의 가슴에 던져야 할 것이외다. 독자도 그와 같은 작품을 요구하여야 할 것이외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향락이나 유희의 기분이 충일(充溢)한 작품, 오인(吾人)에게 하등의 감격을 주지 못하고 독자의 호신심(好新心)이나 호기심에 영합하는 예술적 가치가 핍(乏)한 추상적 작품뿐이 있다하면 이것은 예술의 최고한 표준과는 요원(遼遠)한 거리에서 방황함이 아닌가 합니다. 직정(直正)한 생명의 오저(奧底)에서 우러나온 예술이야말로 창작자나 또는 이것을 감상하는 우리 독자로 하여금 그 편협하고 저열한 공명과 영예를 요망(要望)하는 소아(小我)를 망각하고 광대하고 고원한 대아(大我)에 눈뜨는 것이외다. 그러면 너는 예술을 “우리사회의 개량에나 도덕의 일개 수단으로 생각하느냐”고 반문할 듯하외다. 또한 예술을 무시하고 이해치 못한 폭론(暴論)으로만 인정할는지 알 수 없으나 나도 예술은 예술로의 독특한 생명이 있을 것이요 다만 우리 사회적 생활을 보조하는 일개 수단이라고는 결코 생각치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상한 예술일지라도 우리 인생을 떠나고 사회를 떠나서는 그 광휘(光輝)를 발(發)한다는 것이 의문이외다. 노방(路傍)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사력(砂礫)이나 차를 헐떡거리며 끄는 우마(牛馬)가 요구할 것이 아니요 특수한 생명력과 이성을 가진 우리 인생사회에서만 광휘가 있을 것이요 열렬한 요구가 있을 것이외다. 우리 인생이 이 사회를 떠나서는 생존이란 것이 무의미한 데서 마칠 것이요 또한 얻지도 못할 것과 같이 예술이란 것도 우리 인생과 떠나서는 그 가치가 엷어질 것이요 우리 인생과 빈틈없이 부합(符合)하는 데에서 비로소 유의의(有意義)한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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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우리 문단의 경향으로 보아서는 우리들의 혈관에도 무한히 진전하려는 생명력이 내재한가를 의심하게 됩니다. 이것이 곧 문사들의 사회적 의식과 자기의 내부요구의 여하(如何)함을 구안자(具眼者)이면 누구나 알 것이외다 봅시다. 문사연(文士然)하고 대 예술가연(藝術家然)하는 그들이 내적 생명의 요구가 없이 호기심이나 일시의 충동으로 남도 하니 나도 하겠다는 것 같으면 결코 오인(吾人)의 요구하는 바의 예술가나 문사가 되지 못할 것이외다. 환언하면 자기가 예술가나 문사로 자인(自認)하는 것보다도 먼저 자신이 예술에 대한 요구가 여하한 것을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의 생명의 오저(奧底)에서 타서 오려는 요구와 그에 대한 오뇌(懊惱)가 어떠한 것을 한 번 탐구하여 볼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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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춘원군은 우리 문사들을 일본제(日本製)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금일 실제가 그러합니다. 우리가 일본에서 배우고 일본에서 얻은 것이 있은 이상에는 모든 제도와 사상의 귀추(歸趨)가 자연히 우리의 보고들은 바 그것을 모방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 듯하외다. 그러므로 우리 문사들도 자국(自國)의 독특한 문예가 없는 이상에는 타국(他國) 문단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도 세(勢)의 자연함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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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우리 민족에게 있는 바 모든 것이 향상하려는 과도기이므로 제 현상이 모방과 추종에 자연히 흐르게 되는 것이외다. 이것이 동서나 고금을 불문하고 사상이나 문화의 유동하는 원칙인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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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춘원군은 우리 문사를 사랑하고 민족을 걱정함으로 ‘십의 칠팔이나 아니 썼더면’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해독(害毒)끼친 것을 생각하면 붓대 잡았던 이 손을 끊어 버릴 생각이 나옵니다’하고 그 허위(虛僞)없는 회한(悔恨)을 하게 된 듯합니다. 이와 같이 참회하는 춘원에게 “우리 문단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장본인은 군(君)이다”하고 다시 책(責)하려는 것은 너무나 무자비하지 않은가 하나 나의 춘원군에 대한 기대가 크고 또한 군을 생각함이 열렬함으로 수언(數言)을 가(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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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의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아니할 만큼 애독하여 왔었고 지금도 애독하는 한 사람이외다. 나는 향촌(鄕村)에서 신문이나 잡지로 오락을 삼아 시일을 보낼 때에 춘원군의 작품처럼 나를 기쁘게 한 것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여 보면 그때의 신문이나 잡지라 하면 총계(總計) 삼사종(三四種)에 불과하였고 또한 그 내용의 빈약함도 그 수효에 같았었습니다. 그때 붓을 잡고 글을 쓴다는 이도 극히 소수이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이 구식 인물로 그 내용이 전통적이요 인습의 전형을 거쳐 나온 것으로 고루하고 산취(酸臭)나는 것이 많았습니다. 기중(其中)에 이런 한 반동으로 부르짖기 시작한 것은 생기가 발랄한 춘원군의 글월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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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신생활론을 써서 완고(頑固) 간에 물의를 일으켰고 〈개척자〉나 <윤광호(尹光浩)와 같 소설을 써서 도덕가와 종교가의 반감을 샀었고 〈무정〉을 쓸 때에 조선어와 일어의 반 섞기를 써서 애국지사들에게 빈축(嚬蹙)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의연히 청년과 남녀 학생 간에 흠모(欽慕)하는 목표가 되고 존경을 받게 된 것은 우연함이 아니라 합니다. 그때에 군의 〈오도답파기(吾道踏破記)〉란 기행문을 절발(切拔)하라고 학생 간에 신문 쟁탈이 유행한다는 것을 내가 향촌에서 들었습니다. 이러한 것으로만 보아도 당시 청년들의 신문예에 대한 동경이 여하한 것과 춘원군의 새로 부르짖는 일언일구가 새 것에 동경한 그들에게 영향을 줌이 어떻게 크고 깊은 것을 우리가 능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여 보면 그때의 우리들에게 춘원군이 붓대 잡았던 손을 끊을 생각이 나도록 후회할 만한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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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확실히 단언합니다. 지금 우리 문단에 활동하는 문사들이 춘원군의 본 바와 같이 아무 소양(素養)도 없고 발달도 못된 일개 문사의 ‘씨’로 군다 하면 이것은 춘원군에게도 사피(辭避) 할 수 없는 책임의 문제가 있을 것이외다. 이 책임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로 추궁코자 아니합니다. 그것은 군이 자기가 사랑하는 우리 청년들에게 해독을 주었다 자백하였고 자기가 밟은 바와 같은 길을 밟을까 두려워서 후진을 경계하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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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지 고요한 바다에 물결을 일으켰던 춘원군이요 금일 퇴폐적 경향을 유기(誘起)한 이도 그들 중의 일원(日員)인 춘원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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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장래를 염려하는 춘원군으로서 이러한 경향을 고쳐보려고 그와 같은 추상적 단평(短評)으로 문사들은 매도(罵倒)하다시피 하였으나 만일 자신에 하등의 회한이 없었다면 이것은 일시의 구슬림에 불과하고 그 효력이 희박하겠지마는 그 후회의 열렬함이 인(人)으로 하여금 감격을 일으킴에 족한 줄로 나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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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의 문사의 씨 될 만한 문사들이 씨 그대로 문단에 활동하게 되는 원인을 좀 말할까 합니다. 군의 항상 그 결과를 논하여 이상(理想)에 돌진(突進)하는 용기에는 물론 수긍하나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른바 현실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는가 하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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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시대의 자격을 받아서 언론기관 기타 학술이나 문예잡지가 현금 발행하는 것이 기(幾) 십종에 달하였으나 그 경영자나 편집자들의 말을 들으면 경제상에도 물론 곤란이 다대(多大)하거니와 또한 극히 곤란을 감하는 것은 원고의 수집이라 합니다. 즉 지면에 붓을 잡을만한 사람이 적다 함이외다. 월간(月刊)으로 발행한다는 것이 수개월 내지 반년 만에 발행하게 되는 것이요 이것은 물론 원고뿐만의 관계는 아니지마는 잡지다운 잡지와 언론다운 언론을 선택하여 내용의 충실을 도(圖)하려면 이상(以上)의 곤란이 있다 합니다. 그래서 정한 혈수(頁數)를 전충(塡充) 하려고 조제일작(粗製溢作)한 악문(惡文)이라도 무의식(無意識)이나 유의식(有意識)으로 기재하게 된다 합니다. 그러면 철없는 소년문사들 즉 춘원군이 주의한 바와 같은 미학이나 수사학이나 논리학이나 사회학이나 기외형이상(形而上)이나 형이하(形而下)의 과학을 좀 더 배우고 학교를 졸업하여야 할 문사들의 악질(惡質)의 문(文)을 다량으로 착출(搾出)하게 되는 까닭이외다. 질의 양부(良否)를 고려하고 탐구할 여가 없이 활자로 변하여 세간에 나오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이렇게 쓰려면 나도 쓰겠다는 생각이 다른 단견(短見)이요 천려(淺慮)인 문사(文士)씨들에게 공명(功名)이나 영예에 대한 충동을 더욱 일으킴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이 삼문(三文) 문사(文士)들이 배출(輩出)하게 된 까닭이라 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모든 문화 발전기에 자연히 있을 것이나 자기의 글이 활자로 변하여 옴을 명예로 알던 그들은 결국에 문사연(文士然)하고 예술가연(藝術家然)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결과는 극히 저급이요 음탕적(淫蕩的)인 것이 청년남녀의 약점을 영합하게 되는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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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비평적 태도를 가지고 사상 문제들을 이야기한다 하여도 필자 자신에 독특한 주의(主義)의 심오한 견식(見識)이 적음으로 논의한 바 그것은 흡사히 비단쪽이나 포목쪽으로 얻어 만들은 보자(褓子)와 같이 보이고 그 내용이 빈약하고 형식의 통일을 결(缺)하게 되는 이유인 듯하외다. 따라서 독자에게 하등의 감격한 기분을 일으키지 못하고 오리무중에서 방황하는 듯한 몽롱한 생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외다. 만일 여사(如斯)한 저급하고 부조리하고 불철저한 문(文)이 우리들에게 감격한 기분을 준다 하면 이것은 반드시 허위일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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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우리 문단의 수확을 봅시다. 모두 어떠한 일종의 정화이외다. 소설을 창작하려고 그 제재를 선택할 때에 누구를 물론하고 연애문제를 중심을 삼는 듯하외다. 지금 우리 문사들의 작품을 손가락 꼽아 세더라도 내용이 거개 연애의 발전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실연자의 부르짖음이나 연애에 승리한 이의 환호에 불외(不外)한 듯하외다. 소설에 연애문제를 취급하여 이성(異性) 사이에 나오던 모든 갈등과 고뇌와 비애와 모순과 질투 등을 구상화하고 이에 대한 인생관이라든지 작품에 표현된 개성들이 우리 인생의 오저(奧底)에 잠재한 모든 의식과 합하고 이것에 대하여 감격한 기분을 얻을 때에는 이만한 것 같은 재료가 없을 것이나 이러한 것을 결여한 소설은 우리 혈기(血氣) 미정(未定)한 청년독자에게 주는 것이 해독(害毒)뿐인가 합니다. 천박한 성적(性的) 문제만을 저급한 독자의 호기심을 위하여서만 취택(取擇)한다 하면 예술을 오욕(汚辱)함이 이에 더함이 없습니다. 나는 연애소설 중에서 ‘우리 문사의 손에서 된 것’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을 지금껏 읽지 못한 것은 참으로 유감이외다. 이러한 작품이 유행할수록 작가나 감상자를 물론하고 유탕(遊蕩)의 기분으로 문예를 오락(娛樂)하자는 경향이 농후하여 갈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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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억하여야 할 것이요 우리가 문예품(文藝品)을 창작할 때에 반드시 연애를 중심으로 한 제재를 취하여야만 웅편걸작(雄篇傑作)이 되는 이유가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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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제재를 발견하기에 우리가 일생을 두고 쓰지 못할 만큼의 대상이 있는 것이외다. 오인(吾人) 생활의 전 노정(路程)과 환경에 매일 환멸하는 사상이 모두 제재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연애문제라야만 창작의 제재될 것이라는 이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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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으로 걱정합니다. 이상(以上)에 누진(縷陳)한 바와 같이 우리 민족의 부르짖는 바 모든 소리는 수만 근(斤)의 중(重)으로 눌린 강압 하에서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비명과 절규가 아니면 아니 될 것이외다. 따라서 시대사조의 반영이오 내부 생명력의 진전하려는 고민의 상징인 문예에도 반항적 색채가 부지중에 표현되어 있어야만 자연함이요. 진(眞)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혁명 전 ‘러시아’ 문예의 경향이 어떠하였습니다. 민정파(民情派)와 ‘니체’ 의 강력(强力)을 이상화(理想化)한 ‘고리키’의 작품이 생을 요구하는 청년들의 가슴에서 물결치는 울적한 혈조(血朝)에 용감한 힘을 던진 것도 우연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것을 보며 생각할 때에 손과 발을 매인 우리들이 금일 처지에서 연애를 구가(謳歌)하며 향락에 도취하려는 것을 참으로 가증하고 한심치 않다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현대의 사조(思潮)가 우리 민족에게 반동을 주고 우리가 글로 고뇌한다는 것도 그만두고 자기의 살을 버이고 소금을 넣더라도 그 고통을 감각할 만한 신경의 소유자인가를 나는 의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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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말이 아직 움나려는 우리 문예에 과중한 기대인지 알 수 없으나 또 한편으로 보면 방금 움나려고 하고 출발하려는 기회이므로 더욱 간절히 바라는 바이외다. 지금 방향을 정하기에 그 도착점이 따라서 있을 것이외다. 우리는 결코 서양사조의 말류(末流)에서 헤엄치는 일본문단을 그대로 본 뜰 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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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떠한 이는 말하시겠지요. “예술은 결코 다른 사람을 위하여서 얻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기뻐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이 상상치도 못 할 무아(無我)의 경(境)에서 기뻐하면 그만이라고.” 만일 우리들에게 사회와는 아무 교섭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만의 예술이 있다하면 과연 그것이 사회의식이 발달한 금일에 성립될까요. 이것은 수세기 전의 사회적 의식이 없는 퇴패파(頹敗派)의 예어(囈語)에 불과하고 말 것이외다. 우리들은 절대의 자유를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 사회를 배경으로 삼고 우리 인생이나 기타 시시각각으로 환멸하는 현상을 제재로 삼는 예술도 우리 사회나 인생을 몰각(沒却)하고 몰교섭(沒交涉)하고는 성립치 못할 듯합니다. 이것이 인간 사회와 씨가 다른 신이나 유령의 사회, 금수(禽獸)의 사회의 창조가 아닌 이상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외다. 그러므로 예술은 예술로의 독특한 존재의 상대성은 용허(容許)할 수 있으나 우리 인생과 사회를 몰각(沒却)하고 까지라도의 절대성이 있다 하면 나는 그것을 긍정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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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일 흔히 주의(主義)를 말합니다. 예술지상주의란 것도 절대적의 의미로는 성립할 수 없는가 합니다. 또한 사조(思潮)라는 것은 결코 정적(靜的)이 아니요 일상 유동(流動)하여 쉬지 않는 동적(動的)이외다. 문학사조(文學思潮)라든지 철학사상(哲學思想)이라든지 기타 일반 사조가 사회와 시대를 따라 변천(變遷)하는 것은 다언(多言)을 부대(不待)할 것이외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어느 주의(主義)나 사조(思潮)를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추종자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외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에 내재한 독특한 광휘(光輝)를 발휘하여야 할 것이오. 남의 밟은 바 그 발자취만 따라가려고 하면 그것이 무슨 독특한 가치가 있다 하겠습니까. 추종하지 않으려도 인간의 내부생명에는 공통의 고민이라든지 시대고(時代苦)가 있어서 자연히 어떠한 주의(主義)나 류를 이루고 또는 부합하게 되는 것이외다. 처음부터 부수(付隨) 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애처로운 일은 다시 없겠습니다. 어린아이가 연극을 구경하고 그것을 흉내 내었다 하면 그것도 예술이라 하며 그 아이를 예술가라 할 수 있을까요. 연극을 흉내 내인 그 아이를 예술가라 이를 수 없는 것 같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주의(主義)를 모방만을 시무(始務)한다하면 그것도 예술가나 예술이라고 이를 수 없습니다. 남도 하니 나도 하겠다는 것은 천박한 사려(思慮)에서 나온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는 유미주의(唯美主義)이니 예술지상주의이니 표방(標榜)을 먼저 하는 것도 예술에 대한 근저(根柢)가 박약함인가 합니다. (우리 문사들 중에는 물론 없겠지마는 또한 비평가로 어떠한 ) 작품을 비평할 때에 우리는 자연주의의 문학을 반드시 거치어 간다는 뜻으로 평론한 것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것은 문예나 일반 사조의 진전하는 취향에 그렇게 되어온 바 내력을 사적(史的)으로 설명함이요 금후라도 신흥하는 어느 나라의 문학이라도 이러한 경로를 밟아야만 된다는 것은 아니외다. 전자(前者) 비평의 말이 이로 보면 너무 숙명론적 고찰이 아닌가 합니다. 어떠한 문사가 처음에 창작할 때에는 반드시 고전주의(古典主義)로부터 ‘로맨티시즘’─ 자연주의 ─ 신(新) ‘로맨티시즘’을 경유한다는 것은 너무 우스운 일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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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는 문학사로서의 연구할 필요는 크게 있겠지요 마는 우리 신흥하려는 문단에도 그것을 반드시 겪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난해의 점이 다(多)하외다. 문제가 너무 지엽(枝葉)으로 나아가서 지리(支離)하게 되었지마는 이것이 근일의 나의 우리 문단에 대한 말하고자 하던 바의 하나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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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春園)군은 말하기를 “나는 우리 문단에 지금 문사가 되도록 공부하면 될 듯한 천재(天才) 가진 문사의 씨를 보았지마는 이미 장성(長成)한 문사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고 심히 슬퍼하는 것은 이 문사의 씨 되는 이들이 촌음(寸陰)을 시경(是競)하여 각고(刻苦)하는 빛이 아니 보임이외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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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군의 주관적 관찰일는지도 알 수 없으나 이밖에 속성(速成)한 문사가 있다합시다. 이러한 문사의 씨와 급성문사(急性文士)(말이 좀 우스우나 수양(修養)과 천품(天稟)이 없이 어찌어찌 하다가 뛰어나온 문사)들에게만 우리의 신문화의 선구(先驅)요 모(母)되는 문예를 맡기고 매독균(梅毒菌)과 결핵균(結核菌) 같은 것을 무난히 산포(散布)함을 수수방관하는 기성 문사가 있다하면 그의 심사야말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철모르고 자기의 미숙한 예술의 충동이나 공명심에 빠져서 아무 의식 없이 해독(害毒)을 주는 것보다도 그 죄악이 천 배나 만 배나 중하다 하겠습니다. 왜? 수수방관하는가. 왜? 우리 민족의 문예 감상안(感想眼)을 높이도록 노력하지 않는가. 왜? 불순한 문사들을 한편에서 치워버리지 않는가. 왜? 발행하는 잡지의 지면을 문사의 씨나 급성문사(急性文士)들에게 방임하는가. 어찌했든지 보고만 앉았는 기성 문사네의 죄가 더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민족을 위한다 하면 위선(爲先) ‘괴테’나 ‘세익스피어’를 꿈꾸지 말고 자기의 힘 자라는 대로 우리 문단을 인도하여야 할 것이외다. 매독균이나 결핵균과 같은 병독 (病毒)에 감염되지 않을 만큼 한 항독소(抗毒素)가 우리의 체질에 발생하도록 하는 것이 기성문사 제씨(諸氏)의 사명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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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白晝)에는 형광(螢光)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태양의 앞에서는 군성(群星)이 광(光)을 잃은 것과 같이 위대한 인격자의 앞에는 소인(小人)이 용납 할 수 없는 것 같이 실력이 있고 천품(天品)이 풍부한 문사의 작품 앞에는 문사 될 만한 씨나 급조(急造) 문사들의 작품은 용인을 받을 수 없을 것이외다. 나는 선진문사(先進文士) 제언(諸彦)의 특히 노력 분기(奮起)함을 열망하는 동시에 문사될 만한 소질을 가진 제씨(諸氏)도 완전한 발육을 얻기를 바랍니다. 어서 우리 문단에도 소양(素養)이 부풍(富豊)한 천재의 문사가 배출하여야 할 것 이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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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문사들께 열렬한 충고를 드린 춘원군도 질이 양호한 작품을 다량으로 제공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천백 번 불량한 문사를 매도하는 것보다 문단을 혁신함에는 그 효과가 위대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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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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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11호, 1921. 5.
【원문】예술적 양심이 결여한 우리 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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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상(李益相) [저자]
 
  개벽(開闢) [출처]
 
  1921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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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4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