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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두막의 밤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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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7
채만식
1
원두막의 밤 이야기
 
 
2
(1) 원두막에서 들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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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형님을 따라 원두막에 갔다가 들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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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첨지는 박생원 그리고 원두막에는 근처에서 김을 매다가 쉬러 온 농군 두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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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원두서리로부터 시작되었다. 서리라는 것은 훔친단 말이다. 닭서리 감자서리 콩서리 모두 장난꾼들이 밤중에 훔쳐다가 장난삼아 먹는 것이다.
 
6
그것이 의식이 그리운 사람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한 것이면 도적질이라고 하겠지만, 다 내노라는 글방서방님 도령님들이 장난삼아 하는 것이라 따로이 그러한 말이 생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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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개명을 해서 그런지 원두서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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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농군이 이렇게 하는 말을 받아가지고 또 한 농군이 대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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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밝어져서…… 허기야 지금은 남의 원두밭에 가서 봉퉁이 하나만 따먹어도 주재소에 잽혀가서 경을 치는 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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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시절이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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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서리야 우리가 한바탕 재미있게 해먹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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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첨지 박생원이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옛 기억을 좇아 이야기를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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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첨지가 원두서리를 해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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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군 하나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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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야 지금 와서 내가 원두첨지 노릇을 해먹고 살 줄은 몰랐지……허허……내가 열여덟 살 되던 해든가 얻다 저 백××씨가 이 골 군수로 와 계실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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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년도 더 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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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그때 나는 통인(通人)을 다녔느니…… 그때 통인들이야 밤마다 하는 일이 서리밖에 더 있나…… 그런데 어데서 굴러들어왔는지 웬 영감 하나가 재 넘에다 원두를 놓았는데 퍽 잘 되었단말이어…… 그래 하루 저녁에 우리 멫 사람이 서리를 하러 가잖았겠나……그런데 원두밭 근처에를 가니까 어쩐지 무서워서 원두밭에 발을 들여놀 수가 없단 말이지.”
 
18
“근처가 가장사괴(옛 공동묘지)였든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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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그렇잖어…… 그런데 모다들 머리끝이 쭈삣쭈삣하고 등어리에서 식은땀이 나고 해서 필경 서리를 못하고 오잖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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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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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들어보게…… 그래 이 이튿날 밤에 또 간 게 역시 그렇게 무섭단 말이야……한 댓새나 그렇게 다녔지만 뭣 참외 봉퉁이 하나 못 먹었지.”
 
22
“그놈의 원두첨지가 무슨 요술을 부려놓았든 게지.”
 
23
“응…… 그러니 이거 원 분해서 견델 수가 있나…… 그러느라니 그 이야기가 동헌(군청) 안에 좍 퍼졌을밖에……그런데 하로는 백××씨가, 원님 말이야! 우리들을 보고 싱그레니 웃으면서 에끼 못생긴 놈들. 그래 원두서리를 갔다가 무서워서 못하고 온단 말이냐? 하겠지. 그래 우리가 사실 이야기를 다 하니까 허허 웃으면서 종이쪽에다 무슨 부작을 적어주더라니…… 어떻게 꼬불꼬불 쓴 글씬데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고…… 그래 이것을 가지고 가서 원두밭에다 돌멩이에 싸서 집어던지고 들어가라고 한단 말이야…… 그래서 우리는 허실삼아 그놈을 가지고 가잖았겠나……가서 시킨 대로 하니까 아니나다를까 그새까지 그렇게 무섭든 것이 뭐 씻은 듯이 없어진단 말이야.”
 
24
“팔문(八門)검사진을 쳐놓았든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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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원…… 그래 이놈의 원두밭을 와 몰려들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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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원두첨지도 없었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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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지…… 그렇게 조화를 부려놓았으니까 지키지도 않는단 말이야…… 그래 그저 모조리 다 따서 짊어지고 왔지…… 봉퉁이 하나 아니 남기고 그저 다 따서 못 가지고 오게 생긴 건 근처 논에다 집어 내던지고……”
 
28
앉았던 사람들은 모두 한바탕 웃었다. 그것은 그 심술궂은 통인들을 생각하고 웃은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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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아무 말도 없었어요” 하고 농군이 묻는 말을 받아 박생원은 다시 말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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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야…… 거참 이상해……
 
31
그 이튿날 동헌 마당에 삿갓 쓰고 구럭을 걸멘 영감 하나가 ─ 그 원두첨지야 ─ 척 들어서더니 백××씨를 보고 “에끼 실없는 사람, 늙은 사람이 소일삼아 해논 것을 자네는 어린아이들 데리고 거 무슨 장난이란 말인가? 엥.” 하고 나무라더라나. 그러니 명색없는 원두첨지가 무어길래 동헌에 들어서서 일읍의 군수를 나무라느냔 말이야…… 옆에 있던 이속들이, 이놈 어데서 목숨 둘 가지고 다니는 놈이 났나 보다고 가슴이 서늘해서 있는데 또 놀란 것은 백××씨의 하는 말이야. 허허…… 영감님도 점잔찮으시지…… 멀 그런 장난을 해놓고 젊은애들을 시달리면서 허허허허…… 이리 올라와서 약주나 한잔 자시고 가시요.” 한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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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술객(術客)이던 게지요.”
 
33
“나중에 들으니까 둘 다 정술(正術)이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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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어떻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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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한날 한시에 어데로 가버렸는데 신선이 되였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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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마치고 박생원은 구럭을 걸머지고 원두밭으로 내려가 참외를 딴다. 나는 이 박생원이 그 술하는 노인인 것만 같아 언제 신선이 되어가나 하고 그 뒤에도 늘 유심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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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원두서리하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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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나 지금이나 20년이 다 못된 동안이니 네것 내것 하고 소유를 따지기야 일반이지만 그래도 그때는 서리를 한 재미있는 장난으로 묵인하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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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열오륙 세 지금으로부터 십사오 년 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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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학교를 마치고 일이 년 집에서 한문공부를 합노라고 놀던 때니 한참 장난에 맛을 들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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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새그물 들고 촌으로 나가서 닭서리 해먹기, 가을이면 무서리 콩서리 그리고 여름이면 참외서리.
 
42
여름의 참외 시절에는 하루 틈도 그냥은 자지 못하고 기어이 남의 원두밭을 한바탕 짓밟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43
그러기 때문에 원두첨지의 명각한 사람을 만나 똥벼락도 맞았고 십여리길을 쫓기어도 보았으나 괴로운 것은 당할 때뿐이요 그 당장만 지내면 다시 서리…… 서리…… 서리.
 
44
서리도 하는 법이 여러가지가 있으나 가장 좋기는 소낙비가 내리고 뇌성벽력이 있던 밤이, 장(市日[시일]) 안날 밤이면 더우기 좋다. 이튿날 장에 팔려고 원두밭고랑에는 익은 참외를 수북이 따놓았으니까.
 
 
45
뜰 앞 나뭇가지에서 참개구리가 요란하게 연애곡을 아뢰자 비가 솨 하고 쏟아진다.
 
46
밤은 지금으로 하면 자정이 지난다. 오륙 명 둘러앉은 글방도령들은 모두 졸리는 소리로 흥얼흥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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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그만들 자거라 하는 소리에 모두들 잠이 번쩍 깬다.
 
48
자지 말고 글을 읽으라는 때는 졸리고, 자라고 하면 되레 잠이 깨니 이상한 일이다.
 
49
모두들 출출한 눈치다. 그리고 모두들 그렇게 하자는 눈치다.
 
50
선생님한테 노골적으로 알리지 아니하도록 글방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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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끔 도롱이와 삿갓을 준비하여 가지고 들 가운데로 묵묵히 행군을 한다.
 
52
우르릉 딱 하고 뇌성이 요란하다. 비는 눈코를 뜰 수 없이 내려쏟는다.
 
53
찬스는 좋다. 더구나 내일이 장날이니 물건은 풍부하다.
 
54
읍에서 오리 상거(相距)나 되는 원두밭에 당도하였을 때는 아무리 성벽이 많은 군들이라도 모두들 찬비에 젖어 달달 떤다. 그러나 목적을 변경하지는 아니한다.
 
55
예에 의하여 그중 한 사람이 처량한 목소리로 귀곡성(鬼哭聲)을 내어 한바탕 섧게 운다.
 
56
이 귀곡성은 참 우리 서리꾼에게 보물이다.
 
57
번연히 옆에서 같은 동무가 하는 것이지만 소름끼치게 무섭다.
 
58
하물며 뇌성벽력을 하고 비 내리는 밤중에 들 가운데 원두밭을 지키는 사람이 들을 때에는 참외를 훔쳐가기는 고사하고 원두밭을 통으로 떠간단대도 꼼짝하지 못할 것이다.
 
59
불도 켜지 못한 원두밭은 죽은 듯이 고요하다.
 
60
목적한 대로 원두밭 고랑에 쌓여 있는 참외를 두어 구럭 넣어 각기 양편에서 걸머지고 무언의 개선가를 부르며 우중(雨中)의 회군을 하였다.
 
 
61
(3) 원두막에서 놀던 이야기 (묵은 일기의 일절에서)
 
 
62
×월 ×일
 
63
폭양에 온종일 정구를 했더니 몹시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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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목욕을 하고 나니 아직도 해가 많이 남아 있다.
 
65
P군과 S군이 참외를 먹으러 가자고 찾아왔다. 마침으로 맥주병에 소주를 넣어가지고.
 
66
큼직한 밀짚벙거지에 동저고리 바람으로 풀대님으로 단장을 끌고 나섰다.
 
67
심은 모는 벌써 뿌리가 잡혀 제법 검은 기운이 돋는다.
 
68
석양에 산을 돌아넘는 뻐꾹새 소리는 언제 들어도 그윽하고 한가하다.
 
69
돌아오는 낚시질꾼을 만나 깔다구(농어새끼) 두 마리를 토색했다.
 
70
S군이 고추장과 초를 가지러 뛰어가는 것을 아주 생선까지 주어 보냈다.
 
71
원두첨지 조서방은 막 위에서 잠을 자고 있다.
 
72
원두밭에서는 물큰 익은 참외 냄새가 구미당기게 코로 솔솔 들어온다.
 
73
김마까를 한 스무 개 따다가 놓고 위선 먹었다. 한 볼퉁이도 아니 되게 조그마한 게 노란 껍질을 벗겨내면 뱃속같이 하얗고 연하고 단맛이란 그저 한자리에 앉아 한 접은 먹을 것 같다.
 
74
실컷 먹고 담배를 피우고 하느라니까 S군이 안주를 장만해 가지고 헐떡거리며 올라온다.
 
75
소주는 60도나 되고 독한 놈이 가슴을 훑이고 내려간다.
 
76
생선회는 혀가 짜르르하게 매우면서도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
 
77
삼돌이가 나뭇짐을 지고 앞산 기슭을 돌아오며 초금을 분다.
 
78
청승맞고 요염하기란 부는 놈의 주둥이를 싹싹 비벼주고 싶게 가슴에 울린다.
 
79
동리가 멀고 또 젊은 과부가 없기에 말이지 큰일 낼 놈이다.
 
80
취한 김에 드러누운 것이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달이 벌써 한 길이나 올라오고 제법 산득거린다. P군과 S군은 세상을 모르고 잠을 잔다. 조서방은 벌써 저녁을 먹고 와서 모깃불을 피운다. 태고로 역려(逆旅)해 온 느낌이 있다. (이상 衆望[중망]에 不依[불의]코 再上映[재상영])
 
 
81
<新東亞[신동아] 1933년 7월호>
【원문】원두막의 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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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 신동아 [출처]
 
  1933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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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5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