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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날은 기쁘기도 하지만 또한 우울한 날인 것은 어느 졸자 월급쟁이한테나 일반이지만 상권이한테는 더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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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꼬리만한 월급에 원천 과세다, 상조회비다, 친목회비, 무슨 환송회에 무슨 전별금이다, 요리 떼고 조리 떼고 나면 삼분의 일이나 떨어져나가는 데다가 양복 와이셔츠 심지어 양말까지도 외상이요, 월부로 살아오는 터고 보니, 말이 월급날이지 손에 들어오는 것은 삼분의 일이 못되는 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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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날은 정해놀 것이 아니라 수시로 슬쩍 주면 좋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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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리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외상이고 월부고를 좀 미뤄보자는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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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따분하니까 하는 소리였을 것이다. 한 달 죽도록 일을 해서 남의 좋은 일만 한것 같은 억울함에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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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중에도 상권은 정말 억울했다. 한번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이십만환이나 물어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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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빚보증하는 자식은 아예 낳지도 말랬다는데, 상권은 정에 못이겨 같은 동료한테 도장 한번 빌려주고 이십만환을 꼬바기 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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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회 돈을 쓴 것까지도 또 좋았는데 공금 쓴 것이 탄로가 되어, 지금 복역중에 있고 보니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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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만환뿐이면 또 좋았다. 상조회 돈에는 오부 이자가 붙게 마련이었다. 이십환씩 또 일년을 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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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봉투를 때마다 상권은 보지도 않고 북북 찢어버리는 것이 보통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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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항목을 보기만 해도 울화가 치민다. 직무 수당, 야근비까지 합쳐야만 오만팔천환밖에 안 되는 월급에서 일금 이만환이 뚝 떨어져나가고 보니 울화가 치밀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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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짓을 일년을 해야 한다? 일년 열두 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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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이란 상권에게 있어서는 영원이나 진배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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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를 받을 때의 울분은 또 둘째다. 월급날이면 반드시 아내의 구박을 받아야 했다. 명색 대학을 다녔다면서도 아내는 어느 편이냐 하면 거센 편이어서, 그야말로 구멍 뚫린 창문처럼 마구 지껄여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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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알아? 어떤 년 밑에다 쓸어넣구서 할말이 없으니까 그런 핑계를 대는지 알께 뭐람… 내가 집에만 처박혔으니까 귀두 막구 사는 줄 알지? 어림없어요. 다 듣고 있어! 타이피스튼지 뭔지 하는 년이지 뭐야! 내 그년 그냥 둘 줄 알구! 가랑머릴 찢어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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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것이 인제 못할 소리가 없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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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어 하는 말에 아내는 더 기승을 부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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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서러운 년이 아무렇게나 울지, 모양 봐가며 울까! 못할 소린 뭐가 못할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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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끝에는 반드시 욕지거리가 나가고 밥상이 둔갑을 하고 한다. 아내의 발악도 발악이었지만 윤주식에게 대한 화풀이가 아내한테 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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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잘못을 했기로니 잘못을 했거들랑 위로는 못할망정 되레 어쩌란거냐 그래! 나두 공금을 쓰구서 콩밭을 먹어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거야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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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소리 안된소리 막 퍼부으면서도 자기 자신 억지니라 했다. 자기 잘못을 뒤집어씌우자니까 자연 생트집을 잡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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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냐, 그렇게도 나 콩밥 먹이기가 소원이라면 낼 당장 돈백만환이나 들구 나오마! 그걸루 실컷 호강두 하구 다이아두 사구 갖은 것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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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당신보구서 공금 훔쳐내랬어요! 남의 빚 물꾸리하지 말랬지! 어쩌자구 도장을 내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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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친구지 뭐야!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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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알뜰한 친구 많이 가졌구려! 왜 그렇게 정다운 친구 대신 감옥엔 안갔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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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날 저녁치고서 좋은 낯으로 부부가 대한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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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월급날이 또 온 것이다. 오늘이 월급날이라 생각하니 아침 눈이 뜨일 때부터 상권은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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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봉투를 받았을 때의 그 불쾌도 불쾌였지만 아내와 또 트적여야 할 일을 생각하니 정말 싫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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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되도록이면 월급날이라는 것을 잊으려 하고 있는데 기어코 아내가 한마디 귀띔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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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일찍 들어오세요. 모두 오늘루 미루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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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졸리는 날이지…”하면서도 동료들은 역시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상권은 말대꾸도 하기가 싫었다. 월급 생각조차도 하기가 싫었다. 퇴사 시간이 거의 되자 모두들 조바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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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기왕 줄 것 딱 준비했다가 척척 둘라줌 좋잖아! 맨 제 돈을 주는건가! 그동안 붙들고 있음 이자가 더 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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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평을 들으면서도 상권은 며칠 후에 주었으면 좋겠다고 혼자 엇나가 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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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간이 되자 월급 찾아가라는 방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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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앞을 다투어 경리과로 달려갔지만, 상권은 아이한테 도장을 주어보내고 주겠으면 주고 말겠으면 말라는 배짱으로 앉아 있자니 계집아이가 월급 봉투를 갖다준다. 언제나 하듯 상권은 봉투째 주머니에다 넣고 일어섰다. 일어서 문밖으로 나가다가 문득 이상한 감촉이 손끝에 닿아 있음을 깨달았다. 평시보다도 훨씬 부피가 두터웠던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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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없다고는 생각되면서도 상권은 되돌아와서 봉투를 꺼내 보았다. 희한한 일이었다.‘상조회 윤주식 조’난이 비어 있지 않은가! 상권은 눈을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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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란 별명으로 불리어지는 회계과장이 옹졸한 얼굴이 눈앞에 떠오른다. 십환 한장을 갖고 발발 떠는 친구이기도 해서 온 사원들의 밉상으로 돌려세우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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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악바리를 곯려먹은 것이 무엇보다도 통쾌했다. 제 실수로 그랬으니까 나중에 딴 소리를 한대도 소용이 없느니라 했다. 주기에 썼다. 다음달에 제하면 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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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댈 작정을 하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오려니 동료 하나가 어깨를 툭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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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날의 우울을 고스란히 집으로 가지고 갈 순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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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트고 지내는 사이기도 했다. 이만환을 고스란히 타고 나니 마치 공돈 같았다. 기분이 좋아서 친구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가며 막걸리를 맥주로 크라운장으로 호기있게 발전을 한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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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한테도 잠자코 있으면 그만이었다. 상권은 상조회비 난에 이만환을 기입하는 것도 물론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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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통쾌하다! 주판두 그런 실술 할 때가 있거든! 나중에 발견하구서 콩 튀듯 할 께라! 뙤약볕에 콩 튀듯 하라지 ! 오늘이면 다 똥이 될 걸 되뱉으라겠나 뱉으라면 ! 뱉어주지! 정말 신난다! 신나! 고 생쥐녀석 콩 튀듯 할 생각을 하니 통쾌해! 통쾌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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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이만환 때문에 월급날도 막걸리 한번 마음놓고 먹지 못해온 울분을 푸는 데는 이만환도 오히려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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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맞장구를 쳐주는 바람에 정말 이만환을 거의 다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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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환 뭉치에서 남은 돈은 슬쩍 딴 주머니에 집어넣고 늦게야 집으로 돌아왔건만 상권은 통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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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또 많이 자셨구만? 얼마나 썼수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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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긴, 내 돈 한푼두 안 썼어, 얻어먹었지? 헤어보면 알것 아냐?” 하고 큰소리를 치며 월급 봉투째 썩 내주면서도 통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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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아내는 오늘은 암말도 없이 봉투를 받아들고 고개를 기웃거리더니 돈을 헤어보기도 하고 또 봉투를 들여다보더니만 남편 앞으로 바짝 다가앉으면서 하는 소리가 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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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글쎄, 그 빚을 지난달까지 다 끊어줬는데, 이달 또 이만환을 제했으니 웬일이어요? 이놈들이 우리가 모를 줄 알고 그랬나보오. 어김없이 내가 월급 봉투를 차곡차곡 남겨두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더라면 꼼짝없이 또 물 뻔하잖었어? 내 당장 내일 아침에 월급 봉투를 모조리 갖고 가서 망신을 톡톡히 주어야지! 아이, 날도둑들야, 날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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