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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사(恩師)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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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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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恩師)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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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라고 하더라도 동성 사이라면 편지에 다만 예의를 갖추는 것만으로 하고 싶은 말을 마음놓고 다 쏟아 놓아도 별로 실례 될 일은 없을 것이나 그것이 남성일 경우이면 여간 조심스러워져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아직 학교를 나와서 미혼 그대로 있는 몸이거나 주부가 된 몸이거나를 물론하고 마찬가지 경우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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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교제에 아무런 구애도 없이 친구의 남편이나 혹은 전연 아지도 못하는 남성과 서로 팔을 걸고 춤을 추어도 흠이 없다는, 아니 교제상 그것이 있어야 한다는 이런 풍속을 가진 그러한 나라라면 그야 이성간의 편지도 그리 조심스러울 것이 아니겠지만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 고 해서 남녀가 칠세(七歲)면 동석(同席)을 같이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예의의 하나로 지켜 내려오는 전통을 가졌기 때문에 이 뿌리가 아직껏 빠지지 않은 우리 나라에서는 남녀의 교제가 참으로 까다로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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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만 하더라도 산촌으로 가면 젊지 않은 도학자들은 겨울에도 길을 떠날 때면 부채를 들고 떠납니다. 그것은 여인을 만나면 얼굴이 서로 보여 질까 보아 부채로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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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남녀 사이는 멀리해야 되는 것으로 교육을 받아 온 것이 이 나라 백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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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로운 교육을 받은 신여성들은 이러한 말을 들으면 그것을 무슨 귀신의 놀음 같게 들어 넘기는지 모르나 이런 습관은 지금 당신네들 신여성들도 저도 모르게 잘 본받아 지키고 있습니다. 여름이면 태양을 빙자해서 양 산을 받습니다. 여기에는 사람의 얼굴을 그 양산으로 피하겠다는 심리가 저도 모르는 가운데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실지의 행동 면이 그것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옛날의 꺼풀을 깡그리 벗고 20세기 후반기를 대표하는 여성이라고 자칭하고 나서지만 그것은 그 의상과 화장에서뿐이고, 마음은 역시 한국 여성입니다. 중학교 2학년쯤만 되면 벌써 남선생일 경우 이면 그 선생님의 해동만 살피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떤 학생에게 질문이 두 번만 곱잡아 가도 이상한 눈으로 대하고 하학 시간이면 친한 아이들끼리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다고 쑥덕이는 일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리고 일 단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사제의 관계는 행동 면에서 없어집니다. 거리에서 은사를 혹 만나더라도 못 본 척하고 지나가기가 일쑤입니다. 더욱이 결혼을 하여 남편을 섬기는 한 가정의 주부로 되었을 때에는 그 정도가 더 한층 노골적으로 냉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 남성과 인사를 하는 것을 딴 제삼자의 눈이 보는 것은 아닌가, 보고 이상히 여길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의 소치일 것입니다. 이 의구심의 소치가 은사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만일 그 여자가 거리에서 옛날의 은사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고 그동안 막혔던 심회를 그 노상에서 푸는 장면을 어떤 제삼자가 보고 그사실을 외이게 됨으로 그 사실이 어쩌다 남편의 귀에 들어갔다고 가정한다면 그 남편은 사제지간으로서 오래간만에 만났으니 참 반가웠을 게라고 어이없는 아량으로 얼마나 반가웠느냐고 묻고 그리고 점심이나 대접하였느냐고 아내의 인사가 무디지나 않았는가를 따져 볼 것일까. 이러한 남편이 모 름지기 우리의 가정에는 없다고 해서 과언이 아닐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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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자연히 사제 관계의 사이라도 그것이 이성일 때에는 멀어지지 않을 수 없게 마련입니다. 결코 은사에게 외면을 하는 그 여자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남편에게 오해를 일체 피하고 원만한 가정, 단란한 가정을 가지 자면 은사도 몰라보아야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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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실정이니까 아무리 재학 시대에 사랑(타의 없는 순진한 은사로서 의)을 받던, 그리고 지도를 받던 은사라고 하더라도 그 내용 문구에 조심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령, 재학 시대에 그리던 한갓 아름답던 처 녀의 마음이 한 가정의 주부의 책임을 지게 되자 그것은 그 아름답던 꿈의 절반의 실현도 되지 않는 것 같아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마음에는 뭔지 모르게 그리워지는 것이 있어 이런 때이면 사랑을 받고 지도를 받던 은사 생각이 나게도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성인 그 은사에게 자기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쏟아 놓지 않고는 넋이 풀릴 것 같지 않아서 “저는 뭔지 모르게 그리운 것이 있어요. 그것이 무엇인지 이것을 선생님에게 묻고 싶어 요.” 라든가, “선생님 밑에서 지도를 받으며 학창에서 그리던 아름답던 이상을 이 가정 생활에서 다시는 찾을 수가 없을까요.”라든가, 혹은 “저의 집 사람은 그저 술이에요. 날마다 통금 시간이 가까워서야 들어오는걸요.” 라든가 하는 문구는 타심 없는 순진한 마음의 고백이라고 하더라도 삼가야할 것입니다. 편지를 받는 상대자인 은사도 이런 문구의 뜻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이 생각에 따라서는 오해도 받을 염려가 있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미혼 여성으로서의 편지에 있어서야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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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편지란 그런 식으로 미사 여구(美辭麗句)를 늘어놓아 감상문(感想 文)을 만드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거짓 없는 마음으로 실감이 나도록 그 뜻을 충분히 전달함으로써 편지의 목적은 달해지는 것입니다. 편지를 잘써 보겠다는 생각에서 이 잘 쓴다는 것이 그런 미사여구로 글을 장식해야 되는 것인 줄 아는 데서 이런 폐단이 생깁니다. 동창생끼리라면 그야 아니 동성 사이라면 그야 젊어서 한 시절 한때에는 으레 찾아오는 그 감상적인 마음을 시원스럽게 표현하는 데 그런 미사 여구로 감상적인 편지를 드렸댔자 거리끼는 데가 없겠지만, 이성 사이에서는 더욱이 젊은 이성 사이에서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하더라도 아니 가까울수록 그런 감상적인 문구의 나열은 피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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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심정으로 은사에게 편지를 하자면 그런 감상적인 문구는 조금도 넣지 않고도 이렇게 쓸 수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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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제가 선생님의 문하를 떠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편이 있을 때마다 선생님의 안부는 듣자옵고 안녕하시다는 소식에 늘 반가워했습 니다. 요사이는 어떠시온지오. 금년에는 3학년을 맡으셨다니 선생님의 말을 제일 잘 안 듣고 말썽만 일으키는 그 반에서 무척 속이 썩으셨을 거에요. 저는 한 반년 전부터 시부모네와 분리해서 딴 가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것도 제 욕심이었습니다만, 지금은 도리어 후회가 납니다. 모든 것에 불편 만 느끼게 되니까요. 이상과 실제는 그렇게도 거리가 멀다는 것을 저는 가 정 생활에서 실제로 느꼈습니다. 학창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저만이 느끼는 심정이겠습니까. 선생님.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가정이 싫어서는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들어올 데로 들어왔다고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러나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인가 할 때에 학창에서 그리던 꿈만이 그저 그립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때면 난처한 처지에 있어서 고명한 말씀으로 우리들의 앞길을 밝혀 주시던 선생님 생각이 아니 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번 선생님을 찾아뵈고 여러 가지로 제 신상에 대한 지도를 받고자 별러 옵니다만, 역시 가정에 얽매인 몸이라 그렇게 쉽사리 겨를이 생기질 안 사와 편지로 이런 문의를 사뢰게 되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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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인생의 아름다움이란 머릿속에서 그리기만 하여야 되는 것일까 요. 왜 그 저희들이 졸업하기 몇 달 전인가 함박눈이 끊임없이 유리창을 때리던 날 자살까지 하려던 이명숙의 목숨이 선생님의 단 한마디의 말씀으로 빛을 내고 용기를 내어 인생의 길을 씩씩하게 걷게 만드셨던 일을 잊지 못합니다. 선생님, 물론 바쁘실 줄 아옵니다만 부디 하서를 주시기 바라옵니 다. (제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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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투로 흥분하지 않고 조용하게 쓰면 될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 나 편지란, 자기가 실제로 느낌이 없이 남의 마음을 대변해서 그 마음을 표현하자면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못하게 되고 어색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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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위의 예문은 한 참고로 보아 주실 것이요, 정식의 편지로 이래 야 되는 것이라고 알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원문】은사(恩師)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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