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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주의(全體主義)의 문학론(文學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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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2.26~
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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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體主義[전체주의]의 文學論[문학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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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體主義[전체주의]는 본시 정치의 理論[이론]으로 형성된 것이지 결코 문화의 이론으로 탄생한 것은 아니다. 그만치 문화의 영역에 있어 全體主義[전체주의]란 심히 생소한 外來者[외래자]다. 그러나 全體主義[전체주의]가 정치의 영역, 문화의 영역에 있어서보다 더 센세이셔널한 論題[논제]가 되는 것은 먼저 전체주의적인 政治實踐[정치실천]이 문화의 영역에 던진 커다란 영향의 파문때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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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이래 서구의 문화(혹은 세계의 문화)는 주지와 같이 ‘전체’라는 것과는 인연이 먼 ‘個體[개체]’란 개념 위에서 成育[성육]되어 왔다. 더구나 이 개체란 개체의 자유란 것을 그 정신적 내용으로 삼아 온 맘큼 개체 대신 전체를 거기에 따라, 개체의 자유 대신 전체에의 개성의 종속을 정신 내용으로 한 ‘이즘’의 출현은 全體主義者[전체주의자]의 言說[언설]을 빌지 않더라도 하나의 혁명적 의의를 갖기에 충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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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이러한 획기적인 ‘이즘’이 문화의 圏內[권내]에서 제출된 것이 아니고 외부에서 정치적 사건으로서 문화에게 투여될 때, 그 영향의 정도는 상상에 남음이 있다. 문화에 있어 全體主義[전체주의]는 이론으로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행위로서, 힘으로서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문화에겐 全體主義[전체주의]를 수용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채택의 결정권이 주어지지 않었다. 이론과 ‘이즘’을 수용하고 안하는 것은 自由意思[자유의사]로서 가능하나 정치는 불가능하다. 정치는 언제나 구속력을 相伴[상반]한다. 정치는 권력이다. 권력은 언제나 강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에 대한 태도는 복종과 반발 양자중의 하나를 택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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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文化[문화]는, 더구나 18世紀[세기] 이래의 市民[시민]의 文化[문화]는 이러한 것을 즐기지 않고, 또한 거기에 그리 능숙치도 못하였다. 자율적인 것으로 문화는 언제나 정치와는 멀리 떠러저 생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933년 1월 독일 國民社會主義[국민사회주의] 勞動黨[노동당]의 정권 파악은 世界大戰[세계대전]보다도 더 큰 사건으로 문화 위에 막대한 파문을 던진 것이다. 불란서 대혁명도 문화 위에 이만한 충동을 주지는 않었다. 宗敎裁判[종교재판] 이래 정치가 문화 위에 이만치 제 권력을 노골하게 행사해 본 일은 없었다. 문화에 있어 이 사건은 실로 未曾有[미증유]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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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정치의 혁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보다 더 문화에 있어서 혁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정치상의 변혁을 坐視[좌시] 傍觀[방관]해 오던 문화의 낡은 전통으로서는 더욱 그러치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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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상은 결코 어느 시대의 정치적 변혁에나 다소간 따르던 문화상의 자기 肅淸[숙청]과는 대단히 성질을 달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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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래 극히 소수의 예외를 除[제]한 혁명이 挫折[좌절]한 것은 그 지도자들이 혁명의 본질적인 것은 권력의 장악이 아니고, 인간의 교육이란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고 돌격대 지도자에게 연설한 ‘히틀러’ 의 教說[교설]에서도 우리는 國民革命[국민혁명]의 文化政策[문화정책]이 凡常[범상]한 정치 행동의 附隨現象[부수현상]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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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국민 혁명적인 인간의 재교육 혹은 문화의 재건설이란 어떠한 것인가? 이 企圖[기도]는 뒤에 여러 사람의 손으로 全體主義[전체주의]라는 이론적 外裝[외장]으로 시공된 19世紀[세기] 문화에의 대담한 반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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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용은 현대 독일 樂壇[악단]의 거장 ‘풀트부엥글러’가 ‘라인할트’와 ‘브르더 봘터’의 옹호를 위하여 ‘꾀벨스’ 宣傳相[선전상]에게 보낸 공개장에 대한 ‘꾀벨스’자신의 회답에서 그 일단을 엿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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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도 하나의 예술이다. 아마도 최고이면서 종합적인 예술일 것이다. 현대 독일의 정치를 형성하는 우리는 大衆[대중]이란 소재를 국민에까지 만들어 가는 예술가다. 그것을 위하여 障害[장해]가 되는 非國民的[비국민적] 요소를 배제하는 것으로 우리는 비로소 純粹[순수]한 국민이란 예술품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이러한 藝術的[예술적] 勞作[노작]에 있어선 예술은 훌륭하면서도 국민적이어야 한다. 아니 순수한 국민성에의 뿌리를 박은 예술만이 비로소 훌륭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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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할트’ 나 ‘봘터’ 가 받었다고 칭하는 압박도 이런 의미의 국민적 예술가가 戰後[전후] 14년 간 받은 박해에 비하면 극히 輕[경]하고 극히 자연스런 반동에 불과하다. 나는 진실한 의미의 예술가의 활동을 저해하지는 않는다. 오직 自由民主主義[자유민주주의]가 생각하는 절대적인 의미의 예술은 존재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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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직접으로는 패전 후 나치스의 정권 장악에 이르기까지 14년간의 獨逸文學[독일문학]에 대한 반항이고, 간접으로 19世紀[세기] 獨逸文學[독일문학]에 대한 비판이다. 延[연]하여는 啓蒙時代[계몽시대] 독일 문화가 의존하고 있던 서구 문화에의 단호한 결별의 辭[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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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제3제국적인 文藝政策[문예정책]은 정치에 있어서 민주주의와의 결별의 하나의 자연스런 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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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과 독일 文壇[문단] 及[급] 文化[문화] 전반에 亘[긍]한 人員[인원]의 國民主義的[국민주의적]인 재편성이 단행되고 아카데미 지도부 내지 構成員[구성원]의 철저한 改造[개조]가 수행되었다. 이러한 人的攻擊[인적공격]과 더불어 국민혁명의 文學征伐[문학 정벌]은 다시 더 광범위에 미처 宣傳省[선전성] 管下[관하]의 著作局[저작국]은 非[비] 獨逸的[독일적]인 저서의 리스트를 작성하여 이러한 책들의 보급을 금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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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書籍[서적] 禁制[금제]는 그 당시 외국에 전파된 것처럼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焚書[분서]에 値[치]하는 것(‘레마르크’와 같은 사람의 소설), 도서관만의 장서를 許[허]하는 것(‘맑스’‘레닌’의 저서가 이 속에 들었다), 即決[즉결]에 疑義[의의]가 있는 것 등의 3계단으로 정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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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치스가 국민의 독서에 어떤 합리적인 한계를 생각했던 것을 窺知[규지]할 수 있는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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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계로부터 左便[좌편]을 일괄하여 아스팔트文化[문화]라고 부른 것으로 그 속엔 유태인文學[문학], 콤뮤니즘文學[문학], 社會民主主義[사회민주주의] 文學[문학], 自由主義的[자유주의적] 文學[문학] 등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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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데 이른바 非獨逸的[비독일적] 문학이란 그들에게 있어 아스팔트 문학이라 불러진 것으로 심히 독단적인 형용이나, 그 개념 가운덴 또한 現代文學[현대문학]의 오래된 병폐의 一端[일단]을 摘發[적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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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란 그 말이 스스로 의미하고 있듯이 무엇보다 都市[도시]의 文學[문학], 假頭[가두]의 文學[문학]이다. 나치스는 文學[문학]의 이 都市性[도시성]과 街頭性[가두성] 가운데 獨逸文化[독일문화]를 잠식하는 ‘빠치르스’를 발견한 것이다. 都市精神[도시정신]이란 농민과 달라 향토에 대한 애착을 갖지 않은 보헤미안이고 환경에 대한 100% 기회주의자다. 이것은 시민의 정신이고 상인의 기질이다. 요컨대 利害[이해]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향토도 민족도 국가도 그들의 이익의 대변자일 때만 그들은 향토의 人[인]이고, 민족의 일원이며 국가의 구성원이다. 일단 經濟上[경제상]의 利害[이해]가 그들을 몰아 세우게 되면 향토이고 민족이고 조국이고 부모이고 간에 그들은 헌신짝같이 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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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19세기 말의 近代[근대] 西歐文化[서구문화]의 國際性[국제성]이 민족적으로 반성될 때 자연스러이 느껴지는 측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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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이 하나의 單位[단위]로서 행위의 장면으로 진출할 것이 요청될 때 문화의 이러한 國際性[국제성]은 또한 당연히 정신적 桎梏[질곡]이 아니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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敗戰[패전]한 독일 국민에게 세계가 專[전]혀 ‘베르사이유’의 鐵鎻[철쇄]로서 구속할 때, 그러한 文化[문화] 精神[정신]의 가장 전형적인 體現者[체험자]로 나치스는 유태인을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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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분열을 민족이란 형식으로 단속할 필요가 생길 때 排外主義[배외주의]는 필수물이나, 나치스가 특히 유태인을 고른 이유는 이와 같이 타산적 국제주의를 獨逸民族[독일민족]의 정신적 우월성과 對比[대비]할 필요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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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꾸어 말하면 타산적 개인주의는 본질에 있어 無國籍[무국적]의 世界性[세계성]과 동일한 것이요, 국가와 민족과 향토에 대한 연대성과 책임감을 아니 가진 것이며, 따라서 문명의 表面[표면]인 물질세계에 흥미를 집중하고 유행과 더불어 轉轉[전전]하는 문학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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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명이란 근본에 있어 정신이고, 그 정신적 가치는 향토와 민족과 국가에 대한 不可離[불가리]의 책임 의식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향토와 민족과 국가에 뿌리를 박지 않을 뿐 아니라, 目前[목전]의 利害[이해]에 따라 無時[무시]로 변화될 수 있는 문학이 國民主義[국민주의]에 의하여 一國[일국]의 문화의 敵[적]으로 간주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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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國民主義[국민주의]에 의하여 民主主義[민주주의]가 敵[적]인 것처럼 第[제]3帝國[제국]의 문학에 있어 이 민주성 위에 선 문화는 不俱戴天[불구대천]의 仇敵[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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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다스ㆍ인네르ㆍ라이히」권두에 게재된 ‘우리는 모든 나쁜 작품을 죄악과 같이 증오할 것을 배워야 한다’는 괴테의 말은 나치스 문화에 있어 언제나 하나의 夜光[야광]처럼 煌煌[황황]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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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하나의 白熱[백열]한 倫理[윤리]다. 요컨대 예술 가운데 요구하는 행위적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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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윤리적 실천의 주체란 필연적으로 民族[민족]이 되지 아니할 수 없다. 국민이라든가 국가라든가는 많은 全體主義[전체주의]의 문화정책이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정신적 實體[실체]일 수는 없다. 국민과 국가, 그것은 하나의 구조에 불과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형태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有機體[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독일과 이태리 혹은 다른 全體主義的[전체주의적] 국가와 독일과의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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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주체란 것은 언제나 내용의 순수성을 요구한다. 그것은 血[혈]의 連帶[연대], 지방과 향토의 자연스런 결과로서의 인간 상호간의 不可分[불가분]한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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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자연 독일의 문화정책이 愛[애]와 憎[증]이란 윤리적 표준을 세우는 것이며, 미워해야 할 문화의 一切[일체]의 성질을 그 아스팔트性[성] 가운데 바꾸어 말하면 都市性[도시성], 街頭性[가두성] 혹은 民主性[민주성]과 實證性[실증성] 가운데 발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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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非民族的[비민족적]이란 말은 곧 非獨逸的[비독일적]── 이 말은 국가의 성원으로서의 국민이란 말과 엄격이 구별될 필요가 있다 ── 이란 의미로서, 非獨逸的[비독일적]이란 말은 단순한 비평이 아니라 하나의 烙印[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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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은 한번 찍힌 이상 다시 더 의논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일적 비평이란 곧 하나의 征伐[정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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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이래 계속하는 일련의 작가에 대한 독일 정부의 행동은 곧 독일적 文藝批評[문예비평]의 簡明[간명]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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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예술적으로는 필연적인 일체의 자연주의적 문학의 總驅逐[총구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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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또한 현대 독일문학은 技巧文學[기교문학]의 敵[적]이다. 일체의 행위적 見地[견지]는 技巧化[기교화] 가운데서 행위의 기피를, 정신의 퇴폐를 맛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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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비평이 특히 유태인 文學[문학]을 잡아 내는 것은 유태인이 독일의 역사 가운데서 商人[상인]으로 도회에 살아 오지 아니 할 수 없으며, ‘하이네’ 에 있어서와 같이 불가불 서구의 견지에서 독일을 아니 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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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高名[고명]한 유태계 작가보다도 미미하나마 성실한 독일 시인들이 정확하고 함축성 있는 독일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유태인 문학 배척의 한 이유를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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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콤뮤니즘’ 문학이 나치스의 문학에 의하여 排擊[배격]되는 것은 世界觀上[세계관상]으로 보아 당연한 일로서 呶呶노노]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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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기성의 작가로서는 자연 카롯서, 헷츠, 쇼오르츠, 슈페엘, 요오스트, 헬더린, 릴케 같은 사람이 前面[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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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방언과 전통과 풍토와 전설과 낡은 ‘켈만’풍의 촌락과 市街[시가], 이런 것들의 ‘에칭’畵[화]와 같은 再生産[재생산]이 이들의 예술이다.
 
43
그러나 나치스의 예술정책은 이러한 한적한 세계에의 沈潛[침잠]을 企圖[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나치스의 문학이 건설될 한마당 토양에 지내지 않는다. 나치스의 문학이 과거의 獨逸文學史[독일문학사]에서 재산으로 찾아 내는 것은 고대 ‘겔만’의 문화이며, 그 다음엔 浪漫主義[낭만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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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겔만族[족]의 神活[신활]를 현대에 재현한다는 것이 나치스 문화의 思想[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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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젠벅’ 의 意圖[의도]와 같이 20世紀[세기]의 세계 신화를 창조한다는 것이 나치스의 文學理想[문학이상]이다. 이것이 세계문학 가운데 무엇을 가져오느냐는 것은 물론 역사만이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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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2)
【원문】전체주의(全體主義)의 문학론(文學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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