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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나뭇잎 떨어지는 가을……. 공연히 마음이 쓸쓸해지는 가을날 저녁 때……, 상천이는 울고 싶은 가슴을 억지로 참으면서 오늘도 언덕 위 풀밭에 앉아서 쓸쓸히 바다만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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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바다 물 건너 저물어가는 절영도 섬에는 저녁밥 짓는 연기가 보랏빛으로 피어오르고 배도 없는 바다에는 햇빛만 붉게 비치는데 하얀 물새들이 청승스럽게 날개를 저으면서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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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아아 저 새들은 그래도 형이며 아우가 갖추어 있는가보다……, 생각을 할 때 어린 상천이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슬픈 생각이 더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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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천이는 아버지 어머니 얼굴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몇 살 때에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 그것도 알지 못하고 어리고 외로운 몸이 오직 단 한 사람뿐인 언니하고 단 둘이 외삼촌 댁에 붙어 있으면서 쓸쓸스럽게 자란 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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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천이가 어머니 아버지의 생각이 나기 시작하기는 일곱 살 되던 해 가을부터였습니다. 그 때에 언니는 열두 살이었는데 언니는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을 알기나 하는지……. 상천이는 얼굴을 몰라서 생각이나 해 보려도 머리에 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더욱 서러워서 밥마다 아침마다 남모르게 눈물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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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 댁에는 상천이와 나이가 어상반한 외삼촌의 아들과 딸이 있어서 늘 상천이를 업신여기고 심부름만 시키곤 하였습니다. 일곱 살이 되기까지는 철 모르는 마음에 맞붙어 싸우기도 하였지만 그 후부터는 아무 일을 시켜도 잠자코 하였고 아무 욕을 하여도 혼자 돌아서서 울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어머니 아버지 없는 설움이 어린 뼈에 사무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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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마다 어린 상천이는 언니의 손목에 매어달려서 어떻게 어떻게 슬프게 울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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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천아, 울지 마라. 아주머니에게 들키면 또 야단맞는다…….우리가 복이 없어서 그런데 어떻게 하니. 이 다음에 어머니 산소에 가거든 거기서나 실컨 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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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말 소리도 울음에 떨리면서 상천이의 숙인 머리 위에 언니의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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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 켜지 아니한 어두운 방에서 어린 형제가 애처롭게 울면서 사는 생활도 한 해 두 해 쓸쓸히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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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천이가 열한 살 되는 해 이른 봄에 불행히 외삼촌이 병환으로 돌아가신 후로는 그 집의 살림이 곤란하여졌고 상천이의 형제를 불쌍하게 여겨 줄 사람도 없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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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이 어려워져서 너의 형제를 전처럼 먹이고 입혀 줄 수 없으니 아무 데로라도 먹을 곳을 찾아가거라고 성화같이 박대하는 아주머니 말씀에 어린 두 형제는 또 얼마나 가슴을 태우며 울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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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청산은 있다 하지만 의지가지없는 외로운 몸이 외가에서 쫓겨나면 단 한 걸음을 내어디딜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견디다 견디다 못하여 그 봄에 언니는 상천이를 남겨 놓고 열여섯 살의 어린 몸으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아무런 고생이라도 하여 돈을 벌어 보낼 터이니 상천이 하나만 길러 달라고 애걸애걸하며 맡겨 놓고 외로운 먼 길을 떠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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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영도 저 너머 바다를 건너가는 몸이 이불 하나 옷 하나 가진 것이 없이 맨주먹 맨몸으로 부두에서 배를 탈 때 아! 춥고 외롭고 슬퍼서 그는 소리쳐 울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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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나 그것보다도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형 하나만 부모같이 믿고 있던 어린 상천이를 반가워하지 않는 외갓집에 외롭게 남겨 두고 가는 생각을 할 때 그는 눈이 캄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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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무슨 말인지 하려다 못하고 매달려 우는 상천의 손목을 잡을 때 언니의 몸은 소름이 쪽 끼치고 추위에 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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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이렇게 부르짖고 싶었으나 그것도 안 될 일이고……. 그는 이를 악물고 흑흑 느껴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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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 ─’하고 기적 소리가 처량스럽게 들리더니 배는 차츰 차츰 부산 항구, 조선 땅을 떠나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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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게 외롭게 혼자 떨어지는 상천이가 마지막으로 우는 소리로 부르면서 쫓아올 것처럼 날뛰는 것을 보고 언니는 그만 뱃머리에 퍼덕 쓰러져 엉엉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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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꿎은 울음을 싣고 커다란 기선은 검은 연기만 남겨 놓고 절영도 섬을 휘돌아 일본으로 달아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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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혼자 남아서 상천이가 어떻게 미움을 받으면서 구박 받는 살림을 하고 있는지 그것도 너무도 슬픈 일이어서 말씀도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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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큰일 난 일이 있었습니다 . 일본으로 건너간 언니는 동경에 가서 자전거 만드는 회사에 가서 심부름을 하고 있다고 한 달에 편지 한 장과 돈 5 원씩을 꼭꼭 붙여 보내더니 웬일인지 그 해 가을부터 편지가 뚝 그친 후로 한 달 두 달 아무 소식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지진이 나서 사람이 많이 죽었으니까 아마 상천이 언니도 필경 죽은 것이라고 동네 어른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상천이는 미칠 듯이 울면서 날뛰었으나 아무리 알아보아도 아는 수가 없이 그냥그냥 소식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편지마다 편지마다 상천이 생각을 하고 운다 하던 언니가 살아 있고는 편지를 아니할 리가 없는데 싶어서 어린 상천이는 그 때부터 넋을 잃고 밥도 잘 안 먹고 미친 사람같이 눈물만 흘리면서 바닷가에 나가서는 언니가 떠나가던 절영도 저 너머를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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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혹시나 꿈결같이 언니가 배를 타고 절영도 저편으로 돌아오지나 않는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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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슬픈 일로는 몇 달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밤이면 외로운 자리에 혼자 누워서 울기만 하다가 날이 밝으면 바닷가에 나와서 절영도 너머를 바라보기만 하는 생활이 한 달 또 두 달 겨울이 지나가고 봄철이 되도록……, 그 봄이 지나가고 또 가을이 오도록 금년까지 벌써 삼 년째 가을이 또 왔건마는 언니의 소식은 도무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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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가을날이 저물기 시작하였건마는 언니마저 잃어버린 외로운 상천이가 파랗게 마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면서 절영도 섬 너머 저물어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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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도 친척도 없는 몸이 언니마저 돌아오지 아니하면 누구와 울고 누구를 믿고 살겠습니까……. 외롭게 외롭게 울면서 삼 년째 바다만 바라보고 살아온 슬픈 신세를 생각하면 상천이는 그냥 언니 언니 소리치면서 울고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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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팔월 보름 추석날입니다. 남들은 형제가 손목잡고 부모님 산소에 가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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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어머님 산소에 가거든 같이 놀자 하던 언니는 왜 아니 돌아옵니까. 저물어가는 바다는 말이 없이 잠잠할 뿐인데 상천이의 마음은 있는 대로 녹아 나오는 것처럼 하염없이 눈물이 샘솟듯 흘릴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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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천이는 한숨을 쉬면서 기운없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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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바라보면서 허청대고 슬픈 소리로 불러 보았으나 바다에서는 바람 소리밖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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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3권 10호, 1925년 10월호, 몽견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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