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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송영호 군이 마악 하숙집 문앞을 나서는데, 마침 그의 단짝 강선필 군이 딸딸거리고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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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좋은 송영호 군은, 속으로 이렇게 걱정스러웠다. 그렇다고 송영호 군은 친구 강선필 군이 싫거나 미운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반가왔을지언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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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필 군이 빙긋 웃으면서 건네는 인사다. 비금속(非金屬)이란, 돈이 없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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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호 군은 그의 호인으로 넓주욱한 얼굴을 벌쭉 헤트리면서 잠깐 하늘을 올려다본다. 강선필 군도 같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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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오월, 하늘은 새파랗게 맑고, 하늘의 눈부신 햇살이 아낌없이 쏟아져내린다. 바람은 있는 듯 마는 듯 거볍고, 혼혼하고. 정히 좋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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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는 이내 천천한 걸음으로 나란히 서서 걷는다. 그러면서 강선필군은 의미 있이 송영호 군의 얼굴을 말긋말긋 보아쌓는다. 송영호 군의 얼굴에는 아까의 그 화기로운 미소가 지워질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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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강선필 군은 다시금 송영호 군의, 이번에는 옷맵시를 위아래로 씩 한번 훑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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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누차 전당국허구 세탁집허구 신센 졌어두, 말쑥한 제철 양복은 제 철 양복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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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필 씨란 특지가가 있어, 칠월 금지령 즉전 찰나에, 일금 삼십이원을 주구 사서 선살 하지 않었나! 그분 참, 천당 갈 양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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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오적녀석!…… 그때 일을 생각하면 시방두 짜다! 내 돈 내구 사믄서, 난 십구 원짜릴 사굴랑. 개평꾼한테 삼십이 원짜릴 멕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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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필 군도 같이서 허허 웃고는 몇 걸음 잠자코 걸어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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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너에게 지서엉으로 묻노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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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너란 도령은 무엇이 그리 좋아서, 응? 삼백예순다섯 날을 두구 보아야 근심기라군 하나투 없구, 육장 저렇게 맘속 편안한 얼굴이니! 대체 무엇이 그리두 질거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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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질거우냐구? ……으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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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호 군은 고개를 깨웃깨웃 참스럽게 생각을 하면서, 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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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으면, 무어 세상 한 오래기두 질걸 것 없겠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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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충분히 질거울 내력이 있지!…… 자아 돈이 있어, 젊어…… 건강해…… 가정이 있어…… 마누라가 정다워…… 일이 처억척 잘 돼 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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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옳아! …… 나두 젊구 건강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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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젊운 게 무슨 소용야? 삼십이 넘두룩…… 올에 셋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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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설흔셋이 되두룩 여편네 천신두 못하는 거 젊으면 무슨 소용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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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장갈 자알 갈 자격을 보유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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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필 군은 어이가 없다고, 지성으로 송영호 군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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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가 늦어가두룩 장갈 못간 주제에…… 불원 사십 소리가 나게 된 노총각 녀석이, 좋은 장갈 그래두 갈 상부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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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현실능력을 혼동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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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보다두 더 중대한 일이 있질 않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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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 요새날 영화란 것에 대해서 크게 멸실 하는 사람일세마는, 건가령 고사하구…… 그래 영화감독 칠판 년에 겨우 영화 한개 만들구서두? 자네 도령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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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이사람아, 다아 그렇게 우울할 재료밖에 없으니깐 일부러라두 웃구 살어야지 어떡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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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요행이 아니라, 자네겐 큰 불행일세! 자넨 지끔이래두 영화감독 작파하구서, 정말 꼭 한가지 좋은 직업이 있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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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직업이라면 임시 전업을 해두 무방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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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금광의 덕대나 하나 시켜 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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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낼 줄 모르는 전차차장, 아주 적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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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요새 같아선 하두 궁하니깐, 허기야 벌이만 두둑하다면 아무꺼라도 할 것 같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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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는 어느덧, 화신을 향해 공원 앞을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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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안의 새로이 엄돋은 수목과 꽃포기들은 오월의 맑은 햇빛 아래서 눈이 반짝 뜨이게 신선하다. 가로수 입사귀도 제법 나풋나풋 퍼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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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호 군은, 오던 졸음이라도 깨겠다고, 공원 돌려다보면서 생각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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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틋한 초록이 아름답지 않어? 눈에 질겁지 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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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은 비금속더러 질거우란 자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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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사람아! 난 그럼 어떡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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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나 낮이나 어엉엉 울구만 살란 말야? 본 걸 보구두 울구, 궂인 걸 보구두 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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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호 군은 말을 가로막으면서 턱으로 저만치 전면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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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물두셋은 되었을까말까, 배젊은 여인 하나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인물도 아담스럽게 잘 생겼거니와, 그의 차림새가가 더욱 운치 있었다. 머리는 가리마 없이 빗어넘긴 것이 낭자가 아니라 틀었을 게고, 그러니 신여성이자 가정부인인 듯. 다듬이 윤이 치르르 흐르는 모시 적삼에 연옥색 같은 모시 치마를 푹신 쌔게 두르고는, 한 자락 잡아 팔꿈치로 가볍게 누르고, 하얀 솜버선에 깜장 마른신을 신은 발길을, 가뿐가뿐 옮겨 디디며 걸어 오고 있는 그 맵시 그 태가, 족히 이 종로 복판에서 모든 것을 압두할 만큼 아름답고도 단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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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는 그 여인을 지나쳐 놓고도 두세 번 돌려다보고 나서야, 죽였던 숨을 내쉬면서 한마디씩 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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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그렇지만, 저런 걸 아름다워할 자격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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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것두 포켓 속에 백원짜릴 뿌듯이 넣구서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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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생전 죽었다 깨야 저런 색시한텐 장가들기 글렀으니깐 화중지병이요, 근천스런 감탄이구…… 그두 그렇거니와, 넌 명색이 예술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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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도련님, 지금 그 여인의 아름다운 거, 영화루다가 살릴 자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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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그 정서!…… 걸, 정신적으루 포착해서 필림 위다가 살릴, 형화화할 자신 있어? 그런 재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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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익이 김선달, 대동강 팔아먹드끼, 밤낮 그 잘난 장승만 팔아먹느라구, 들!…… 그러나마, 오십 년 전버틈 그림엽서 장수가 실컷 울거먹구 난 찌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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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은 주변에, 너 같은 둔감으룬 글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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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필 군은 마침 길 옆의 담배 진열창으로 다가서서 담배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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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필 군이 돌려다보면서 묻는 것을, 송영호 군은 독특한 그의 벌쭉 웃음을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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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민이란 헐 수 없어! 보태서 하숙비를 치를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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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난 저기, 우리 이뿐이한테 가서 살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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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는 다시 나란히 걸으면서, 강선필 군이 바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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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연히 또, 햇대리나 잡구 나가자빠질걸,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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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그러나저러나, 연앤 아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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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가자! 내가 선을 좀 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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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호 군은 모리나가 앞을 당도하자, 주춤거리고 멈춰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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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그리구, 미쓰꼬시루 가서 모갈 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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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커필 먹을려거든 커피다운 걸 좀 먹구 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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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필 군이 팔을 잡아끌어서, 송영호 군은 하릴없이 딸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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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호 군에겐 이 모리나가나 또 저편짝 아세아 앞을 그냥 지나기란, 밤마다 마을을 가던 동네 사랑을 그냥 지나기처럼 섭섭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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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둘이는 화신의 담배 매장 앞으로 나란히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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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필 군은, 하는 양을 보고 있고, 송영호 군이 일원 한 장을 꺼내 놓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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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둘이 왔으니깐 세 곽만 주시요?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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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기둥에 가 기대어 아무런 내색도 없이 서서 있던 여점원은 역기 아무런 내색이 없이, 그러니까 항용 그저 다름 손님한테나 마찬가지 사무적인 그런 태도로 하도 두 곽과 거스름돈을 내놓는다. 그러고서야 순간 배깃이 웃을 듯하다간 도로 천연하고 물러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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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호 군은 담배와 거슴름돈을 집어, 한 곽은 강선필 군을 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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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네!…… 그리구, 잠깐 기두루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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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짐짓 이르고는, 휘적휘적 저펀짝을 향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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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몇 발짝은 가서 도로 또 휘적휘적 걸어오더디, 주먹에 쥐었던 거스름돈 받은 것에서 오십전짜리 지페를 내놓고는 시침 뚜욱 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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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점원은 그제서는 입을 오믈뜨리다 못해 손바닥으로 가리면서, 다시 하도한 곽과 거스름돈을 내주고, 얼른 저리로 몸을 돌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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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는 밖으로 나와서 다시금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는 씨익 웃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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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택이 있나! 구태라 알아선 또 무얼 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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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 타구난 농판이라군 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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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그런 게 아니라, 말야…… 한 두어 달 전인데…… 허긴 그저언 그 전 버틈두 거기 있었구, 그래서 나두 가끔 담배두 사구 했어. 그래두 거저 심상했지…… 아, 그런데 그날은 보니깐 섬뻑 눈에 고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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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가 있겠지!…… 그래, 어떡허나 보느라구, 한 곽 더 주시우, 그랬지. 조르드끼…… 그랬더니 한 곽씩밖엔 안 드리기루 됐습니다아, 그래. 상냥하게…… 그래, 오늘처럼 절러루 가는 척하다간 도루 와서, 담배 주시우 그럤더니, 웃어 죽겠나 바! 입을 틀어막으믄서, 한 곽 더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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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튿날은 미리서, 두 곽만 주시우, 그랬지. 말꼬로옴이 쳐다보야! 방긋 웃으믄서…… 그리군, 암말두 않구 두 곽을 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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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댐버틈은 위정 들러서 담밸 사는 거야, 날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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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팔려서, 오는 줄 모르게 어느덧 종각 앞을 지나 광교를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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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 앞 네거리까지가 송영호 군에겐 거주구역이고, 게서부터 남쪽으로 본정을 둘러 명치정 골목을 돌아 내려오는 건, 이를테면 여행을 하는 셈이다. 간혹, 네거리에서 다시 서쪽으로 약 이백 미터 가량 더 가서, ××영화의 사무실로 친구를 찾는 수도 있으나, 그 역시 두고 먹는 골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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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필 군이 빈들거리면서 하는 말이고, 송영호 군은 자못 강경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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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일 검사라면 말야…… 즈이 여편넬 둬두구서 연애하는 놈, 그런 놈들만 그런 놈들만 붙잡아다간, 어쨌든지, 백 년씩! 늙어 죽두룩 백 년씩만, 전중일 박을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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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게 그래, 남의 집 처녀들을 베려줘야 옳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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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기루서니, 걸, 네가 그대지 분개할 건 무어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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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노총각의 히포코테리로 생기는 강짜다! 처녀가 늙으면 히스테리가 생겨가지구, 괜히 강짤 하듯이…… 여학교 선생으루 올드 미스가 제자들 연애하는 거 밝히구 금하구 하는게, 다아 알구 보면 훈계심리가 아니라 강짜루다 그리는 거야! 샘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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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이건 강짜건, 내가 검사가 못 된 게 한일세!…… 우선 강선필이 버틈, 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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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난 백 년 전중이 살까 무서니 작파하구서, 널 중매나 서주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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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뿐이한테 말이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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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이 쌍놈 눈이 돼서 그렇지, 이뿐 거하군 거리가 상당히 멀드라 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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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덕은 좋게 생겼드라! 사람이 시언스러 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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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이 둘이 만나놨으면 워너니 천생 연분이겠드라!…… 넌 소한테 물린 놈처럼 용하디용하구, 저편은 보아허니 순하디순하게 생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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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따위 주변에, 적극적으루 공작을 하진 못할 테구…… 정말 중매 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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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뿐이한테루, 장갈 간다?…… 쯧! 해롭지 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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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우리 이뿐이가 나한테루 시집을 온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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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래서 거기 반해 오면 어떡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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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밑천은?…… ×× 두쪽만 가지구서야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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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송영호 결혼기성회 모우지 않으리? 내가 위선 돈장이나 보내 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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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력으루 장갈 간다?…… 쯧! 구차하나따나…… 그리구, 결혼을 하구 나선? 무얼 먹구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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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 갈 염을 내지 말아야 하나?…… 그 수가 제일 상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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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한 노릇야! 내가 생각을 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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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우편국 앞인데 벌써, 고소한 커피 냄새가 흥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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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꼬시로 올라가서 한잔씩 먹고. 내려와서는 본정통을 어귀에서부터 천천히 더듬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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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문당을 거쳐, 대판옥을 들러, 가네보오로 다리 마루젱까지. 마루젱에서는 강선필 군이 신간을 한 권 사는데 얹혀서 송영호 군도, 마침 눈에 뜨인, 모랑의 『밤이 열리다』를 샀다. 심히 관능적이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어떤가 하고 읽어보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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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정을 빠져나오다가는 ×××에 들앉아서 덴뿌라로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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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에 들러서는, 커피와 음악으로 기름지게 먹은 점심을 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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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남부일주의 여행을 마치고 둘이가 정자옥 앞에서, 다시 종로를 향하여 걷기 시작한 것이 그럭저럭 오후 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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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일기에, 길은 물결치듯 사람이 넘치고 그 사람 사태로, 둘이는 오늘이 일요일인 것을 비로소 깨쳤다. 오후 네시라지만, 햇살은 한낮과 같이 축질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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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말없이 걸어가고 있다가, 송영호 군이 날이 그렇게 유장한 데 흥이 일었던지 중얼중얼 혼자서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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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 사태고요, 일장 여소년이라드니, 참 그렇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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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필 군은 낄낄 혀를 차면서 송영호 군을 돌려다보더니, 지천 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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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그리 진부하기까지 하냐? 감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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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이 진부하다는 데는 송영호 군도 깜짝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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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진부하잖구?…… 제엔장, 강철이 사람을 잡어먹을 드끼 포효를 하구, 쫓겨가는 것처럼 신경이 바뿐 대도시 복판에 가 서서 그래 무엇이 산정 사태고요, 일장여소년이냐? 이 되련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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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어! 거 참 그렇군!…… 짧운 한문 밑천으루 한다는 한다는 게 망신 밑천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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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호 군의 감성이 진부하다는 건 어느 정도로 근리한 말일 것이다. 가령 ××전문을 다닙네 하는 멋장이 시악시네가 접근을 하고 싶어하고, 편지질을 하고, 찾아다니고 하는 것을 질색으로 못마땅해하며 흥미를 가지지 못하고 하는 것도 성질이 소극적인 관계도 있겠지만, 역시 사람이 일종 진부한 소치가 아니랄 수 없는 것이다.
237
둘이가 종로의 모리나기엘 들어서자, 저편 안쪽 구석자리에서 S가 손짓을 한다. 영화 관계자로 송영호 군과는 물론이지만, 강선필 군과도 알고 지내는 사람이다.
238
“내, 그리잖어두 찾아다니던 참인데……”
239
세 사람이 테이블 한 모씩을 차고 앉기를 기다려서 S가 송영호 군을 마주 건너다보면서 개두를 하던 것이다.
242
“흐응! 바라질 말아요! 그잘랑은 인전.…… 송이 너무 낙담할까 바서 아직 이야긴 안했소마는 난 들은 소식이 있어서 버얼써 단념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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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자 한고향 친구가 이번에 내려갔었는데, 누가 밑지는 장사에 돈 내겠능가구 하드래!”
245
S는 관북 태생이라 오랫동안 서울서 지내면서도 사투리가 죄다는 가시지 않는다.
247
송영호 군은 한다디 뱉고는, 턱을 두 손으로 괴고 앉아서 우두커니 한눈을 판다.
248
그 모양을 강선필 군이 물끄러미 돌려다보면서
249
“끙!…… 양복 잽혀서 교젯술 멕이구 적공 들인 것이, 나무아미타불이루구나?”
251
“말두 마우! 난 그놈의 노름에 빗을 얼마를 졌길래!”
253
“세상 인심을 뉘 아오!…… 참. 강선필 씨 그러지 말구 당신이 돈 좀 내오! 만 원만, 우선…… 친구 구제되구, 좋지 않소?”
256
잠깐 이야기가 끊기고 서로 덤덤히 앉았다가 S가 문득 송영호 군을 만나려고 하던 소간이 다시 생각이 나서
257
“송, 그 대신 조그만 거래두 일거리가 하나 생겼소!”
259
“××일보서, 한 권짜리루 「인조견이 되기까지」란 걸 만들겠다구 특히 송영호 선생더러 수골 해주시라구……”
263
“곧 준빌 해가지구, 낼 모리 새라두 떠나게 해달라구……”
267
“좀 만나바야 않겠소?…… 지끔 글러루 갈까?”
270
그러자 강선필 군이, 여태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무얼 또 지분거리느라고
275
“아, 말똥거리란 놈이…… 말똥거리라껀 솔개미의 일종이야…… 그 말똥거리란 놈이, 아침 일찌감치 공중에 가 뚜둥뚱 떠선 한닷 소리가, 꽁이나! 까투리나! 꽁이나 까두리나!……”
277
S가 묻던 것이고, 강선필 군은 고개를 끄떡
278
“아므렴!…… 그렇지만 제가 어데, 꽁을 잡을 재주가 있나!…… 그래 오 때가 되자 속은 출출하구, 하니깐 이번엔 한닷 소리가, 까지나! 참새나! 까치나! 참새나! 아, 그렇지만 제 재주에 까치나 참샌 또 잡나?…… 해가 그만 저물었다…… 해가 저무니깐 그땐 한닷 소리가 내 주제에 무슨!…… 인전 가서 말똥구이나 허부적거리지!…… 그러면서 말똥을 찾어가드란다. 그래서 그 짐승이 이름이 말똥거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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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는 간간 대소를 하고 송영호 군도 웃지 않질 못한다.
280
“그래, 네가 널 고옴곰 보구 있자니깐 그 말똥거리 생각이 나서, 맘이 처량하구나!”
282
울적한 김이리라, 송영호 군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성을 낸 것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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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대관절 바눌장수가 죽은 넋이란 말이냐아? 어쩌면 고로케두 입이 뾰죽하구, 가시 같구, 또오 거얼구, 또오 더럽구 한 거냐? 으응?”
286
“사람이 거 좀 후하구 그래야지, 너처럼 박절한 인간한테 돈이 붙들 않는 법인데…… 아, 그래두 부자루 사니, 참 모를 일이드라!”
289
S가 시작을 내어, 셋이는 한동안 어우러져서 웃는다.
292
송영호 군은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하숙집을 나와서, 천천히 종로 네거리를 향해 공원 앞을 걸어가고 있다. 시간도 꼬옥 어제 고맘때, 날씨도 어제처럼 맑고 상쾌하다. 송영호 군의 얼굴은, 그도 역시 어제나 일반으로 화기롭다. 험구장이 강선필 군이 오늘은 옆에 딸지 않았을 뿐이다.
293
이윽고 송영호 군은 모리나가엘 들어가서 커피를 한잔 먹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는 사람을 몇이고 만나서 한담도 하고 까십도 듣고 했다.
294
훨씬 그러고 나서는, 이쁜이한테 담배를 사려고 화신 앞으로 나왔다. 그러나 오늘이 백화점의 정기휴일인 줄은 문이 닫긴 걸 보고서야 알았다.
295
내친 길이라,××영화의 사무실로 가서 두어 시간 놀았다. 점심도 여럿과 거기서 모리소바를 대접받았다.
296
웬만큼 다시, 종로 네거리로. 문 닫힌 화신 앞에 서서 잠깐, 어떡할까 하고 망설이다가 향을 남쪽으로 잡아 명치좌로.
297
아래층을 거쳐 이층으로 올라갔어도 역시 빈 좌석은 보이지 않았다. 만원은 아니니, 있기야 있겠지만 영사중에 지벅거리고 다니기란 신사의 체면상 주접이라서 넌지시 뒤곁으로 물러서서 그 프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298
미구에 불이 켜지고, 웅긋쭝긋 동요가 일면서 약간이 자리를 일어서고 한다.
299
송영호 군도 인하여 몇 줄 앞에서 맨 가로 앉았던 중년 여인이, 프로그램을 손에 쥔 채 나가는 것을 보았다. 프로그램까지 가지고 나가니, 자리는 비는 자리다.
300
송영호 군은 천천히 그리로 내려갔다. 가는데…… 가면서 보니, 그 옆자리에 앉은 신여성차림의 조선 색시 하나가, 앞으로 가지고 있던 파라솔을, 방금 비는 그 자리에다가 비껴 놓는 것이었다.
301
되돌아설까 했으나, 그 둘이가 행색이 아무래도 동행은 아닌 것 같아서 그대로 옆으로 다가가서
304
해끗 돌려다보는데, 뜻밖에도 바로 그 이쁜이었다.
305
순간, 그새까지의 이쁜이와의 거리가 한꺼번에 바싹 가까와진 듯 반갑고 일변 신기하고 했음은 물론이었으나 그렇다고서 허겁스럽게 그런 내색이야 할 법이 없는 것, 무심코 조금 웃어졌을 뿐이고.
306
이쁜이도 송영호 군을 알아보고는 눈이 반짝했으나 웃기는 얼른 고개를 돌리면서고.
307
그동안 파라솔은 벌써 치워져서, 송영호 군의 좌석으로 들어가 앉았다. 이내 불이 다시 꺼지면서, 다음 프로가 영사되었다.
308
중간쯤 해서 이쁜이는 자리를 일어섰다.
309
송영호 군은 무릎을 피할 수 있는껏 피했고, 이쁜이도 조심을 하는 모양이었으나 원체가 좁은 틈바구니라 놔서, 약간의 접촉은 면할 길이 없었다.
310
이쁜이의 옆자리에는 늙은 일본 사람 부처가 여전히 앉아 있고, 이쁜이는, 최초에 그렇게 짐작한 대로 역시 혼자 왔던 듯싶어, 혼자 돌아가고 있었다.
311
이미 혼자 온 줄까지 알았겠다, 그러니 아까 처음 선뜻만 하더라도
315
“모초름 오늘이 쉬시는 날이군요? 아마 영화를 좋아하시죠?”
317
“늘 그렇게 장난을 해서 미안합니다!”
320
라든가, 이런 등속의 투로 말을 붙여보지 못할 건 아니었다. 마음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321
그러나, 우리 송영호 군은 도저히 그런 숫기가 없었다. 가령 어떤 엉큼스런 배포가 아니요, 그저 담담한 마음이더라도 막상 그와 같이 반죽 좋고 유들유들할 수 있는 송영호 군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는, 그만큼 소심하던 것이다.
322
한 시간 가까이 이쁜이와 침침한 속에서 나란히 앉았는 동안, 송영호 군은 정말이지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가슴만 두근거리고 얼굴만 화틋거렸다.
323
이쁜이가 가버리자 그만 섭섭하고, 후회가 나고 했으나 소용 없는 말, 한갓 무릎에다가 남겨준 접촉의 여운이 길이 즐거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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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역시 맑은 하늘에, 눈부신 햇살을 받으면서 송영호 군은 하숙집을 나와 공원 앞을 지나 모리나가엘 들러 차를 마시며 아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까십도 듣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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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이쁜이한테로 가서 담배를 샀다. 전과 다름없이 돈을 내놓으면서 비죽 웃는 것을, 이쁜이는 전보다 조금 더 웃으면서, 하도 두 곽을 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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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이튿날도 그렇게 했다. 이쁜이는 그러나 어저께처럼, 전보다 조금 더 웃지는 않고, 그저 그전처럼 조금 웃을 듯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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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서 밤차로 전라도 전주를 향해 떠났다. 푸달지나따나, 그것도 일이라고 「인조견이 되기까지」라는, 한 권짜리 문화영화를 만들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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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만에 송영호군은 일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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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차로 내려, 곧 하숙집으로 들어가서는 조반을 마친 후에 밤에 차에서 시달린 피로를 풀 겸, 푹신 한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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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나서, 다시 목간을 하고, 그럭저럭 석양이 되었다. 좀 늦은 시각이었지만 송영호 군은 종로가 궁금하여 그런 대로 하숙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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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는 사람은 없어도 꼭이 볼 일은 없어도, 가고 싶은 것이 종로였다. 더구나 며칠 여행으로 일참을 번진 차이니 한결 마음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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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보고 싶었다. 그러나 특별히, 이쁜이만 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이쁜이, 모리나가, 커피, S 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이 아는 친구들, 이렇게들이 있는 종로…… 그 종로가 궁금한 것이고, 이쁜이가 보고 싶은 것도 그러한 종로가 궁금함의 일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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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집을 나선 송영호 군은 그새와 한가지 모양으로 천천히, 한눈도 팔아가며, 공원 앞을 지나 네거리를 향해 걸었다. 여전히 오월의 맑고 좋은 날씨요, 오후라지만(진주하나마 송영호 군 그 자신의 감각대로) 소년같이 장한(長閑)한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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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고 시골을 다녀온 때면 그러하듯이, 종로는 송영호 군에게 새삼스러이 반가왔다. 모든 것이 다 눈에 익은 그대로요, 차악 안기었다. 사실이지 송영호 군은, 그의 하숙집을 나와서 공원 앞을 지나 네거리까지 이르는 그동안이, 가령 장인(匠人)으로 치면 수십 년 가지고 쓰던 연장과 같은 것이었다. 하나도 생소하고 어색함이 없이 가늠이 잘 들어맞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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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는 무슨 가게가 있고, 어떤 가게는 몇층이고, 진열창은 어떻게 생기고, 간판은 어떻고, 점원은, 주임은 어떻게 생긴 사람이고, 가로수는 어떤 포기가 어떻게 생기고, 포도는 어디께가 상하고, 어디쯤엔 무얼 파는 노점 상인이 앉았고…… 이렇게 눈을 감아도 횅하기 알아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모두가, 잘 맞는 낡은 구두처럼 임의롭고 정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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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호 군은 맘껏 종로를 정다와하면서, 이윽고 모리나가까지 와서, 우선 전화를 했다. 마침 S도 있고 하여, 시골 가서 지난 이야기도 하고, 그동안의 서울 소식도 듣고 하면서 모처럼의 커피를 마셨다. 또 다른 여러 사람과도 이야기도 하고, 시골 다녀온 인사도 받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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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간히 모리나가를 나와서 화신으로 이쁜이를 보러 갔다.
342
생각 밖에 그러나 이쁜이는 없었다. 이쁜이 대신 다른 색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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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하여, 담배를 살 생각도 잊고 도로 나왔다. 병이 났든지 해서 결근을 했는지도 몰랐다. 아니, 다른 매장으로 자리를 옮았는지도 몰랐다. 옳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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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들어가서, 아래층부터 시작하여 6층까지 대강 둘러보았다. 혹시 못 보았는지, 있지를 않은지, 아뭏든 눈에 뜨이지 않았다.
346
오늘도 송영호 군은 오때만하여 하숙집을 나왔다가 모리나가엘 들러서는, 화신으로 이쁜이를 찾아갔다. 오늘은 와 있을 테지 하고 생각하면서.
348
막상 몰라, 어제처럼 아래층부터 시작하여 6층까지 한 바퀴 둘러보았다.
351
이렇듯, 수고로운 날과 날이, 궁금한 가운데 어언 일 주일이 지나갔다.
353
오늘은 강선필 군에게 꺼들려 온종일 본정과 명치정 일대에서 맴돌이를 하다가, 다 저녁때 전등이 켜지고, 뉘엿이 땅거미가 내릴 무렵에야 종로로 돌아왔다.
354
송영호 군이 앞을 서고, 강선필 군이 뒤를 따르고 둘이는 화신의 남쪽 현관으로 들어섰다.
355
마악 그렇게 들어서는데, 그러다가 송영호 군이 주춤 발길을 멈추었다.
358
그러나 이쁜이는 역시 그 이쁜이라도, 십여 일 전까지 담배 매장의 한 여점원이던 이쁜이는 아니었다.
359
의복을 날아갈 듯 화려하게 입고, 곱게 단장을 하고, 그리고 옆에는 멀끔하니 좋게 생긴 청년 하나가 바싹 붙어 섰고, 이렇게 자웅을 지어 얼굴을 맞댈 듯 서로 보면서 무어라곤지 즐겁게 이야기를 하며 걸어오는 그 둘은, 장님더러 만져보라고 해도 신혼한 쌍의 부부였지, 갈데없었다.
360
이쁜이는 간간이 매장의 옛 동무들과 얼굴이 마주치는족족 미소도 보내고 고개도 끄덕이고 하면서 그럴 때마다 남편인 동행의 청년도 안해의 옛동무에게 점잖스레 미소로써 경의를 보내면서, 이윽고 둘이는 저쪽을 향해 꺾이어 가더니, 마침내 서편 현관 밖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여러 옛 동무들의 흠망스런 눈이 그 뒤를 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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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필 군도 진작 동정을 알아채고는 송영호 군과 나란히 서서 보기를 마지 않다가, 이쁜이네가 드디어 사라지고 말자, 푸뜩 흘러져 나오는 말이었다. 하되 여느때처럼 꼬집거나 조롱이 아니고.
364
송영호 군의 입에서도 무심코 같은 말이 흘러져 나왔다.
367
잠깐 침묵이 지난 후, 강선필 군이 다시 아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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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호 군은 휘적휘적 담배 매장으로 걸어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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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곽 내세요! 그리구, 한 곽밖엔 안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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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이 대신 와 있는, 뺀질뺀질하게 생긴 여점원의 대응이었다.
383
송영호 군은 두말 않고, 돈을 도로 집어넣으면서 돌아선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중얼중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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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그랬담 바라? 얼른 시집 못 가느라! 조오은 신랑한테루, 얼른 시집 못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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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필 군은, 비깃이 미소가 떠도는 송영호 군의 얼굴을 거듭 보고 또 보고 한다. 그러다가, 역시 아까처럼 꼬집거나 조롱을 하는 게 아니고 곰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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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뿐이가 얼른 그렇게, 좋은 신랑한테루 시집 간 거 좋지 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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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송영호군의 얼굴을 짯짯이 들여다보는 강선필 군은, 송영호 군이 종시 미소는 하면서도 눈이 살폿 젖는 것을 아니 보지 않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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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장 핀잔을 하고 조롱하고 하기는 하면서도, 강선필 군은 한갓 입이 그렇게 박절한 것이지, 역시 다정할 수 있는 친구였던 것이다.
400
송영호 군은, 응 좋지 하고 건성 대답을 하면서, 문득 뒤를 돌려다본다. 자옥한 황혼이 내리는 종로 복판에는, 보아야,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만 들끓고 있을 따름이었다. (1941.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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