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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교정(校正)과 오식(誤植), 사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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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3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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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校正, 誤植,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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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원고 하나를 모사에 주었다가 그 사에서 발행치 못할 사정이 있어 도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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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에 붙일 요량으로 한글 전문가에게 한글 교정을 시켰노라고 하기에 어떻게 손을 대었나 싶어 장장이 넘겨가면서 보았더니, 미상불 1949년형의 한글을 많이 터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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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동안까지 알고 있던 한글은 가령 ‘같이’는 동(同)이요 ‘가치’ 는 공(共)이요 하였다. 그런데 1949년형에는 동도 ‘같이’요 공도 ‘같이’로 즉 통일이 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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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국토의 통일이 하도 아쉰 때라 통일이란 글자만 보아도 눈 번쩍 뜨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같이와 가치의 통일은 와락 반가운 줄을 모르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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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두 개의 사물에 대하여는 각기 다른 글자로써 표현되는 것이 원칙이요 이상적이요 따라서 상식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같이와 가치만 하더라도 동은 같이로 공은 가치로 구별한 제정이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한 것을 무슨 필요가 있어 동도 같이로 공도 가치로 통일을 하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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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이 어긋짐이 없다면 최초에는 동도 같이로 공도 같이로 제정을 하였다가 그 뒤에 동은 같이로 공은 가치로 구별을 하였던 듯싶다.그랬다가 어느 겨를에 또다시 같이 하나로 통일을 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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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년쯤 가서는 또 한번 번복을 하여 동은 같이로 공은 가치로 구별 제정이 되지 아니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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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시옷㈆도 어느 겨를인지 없어진 모양이어서 나의 원고에도 안ㅅ방이 전부 안방으로 교정이 되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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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중간시옷을 거절하고 안ㅅ방을 안방으로 써놓고 발음은 안빵으로 발음하기를 요구할 바이면 문제의 중간히읗도 없애버려야 할 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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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분간ㅎ기 어렵다를 분간기 어렵다로 써놓고서 발음만 분간키 어렵다로 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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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고한 학자가 책상머리에 앉아 조변모개(朝變暮改)로 뜯어 고치기만 일삼고 있으면서 생각하기보다는 그 조변모개로 인하여 인민(人民)이 받는 불편과 폐해란 지대한 것임을 제발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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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교정 선생이 나의 원고를 가치를 같이로 안ㅅ방을 안방으로 교정한 것은 아무려나 제정(制定)에 충실함이었으니 허물이 적다고 하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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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한글 교정에 그치지 않고 말과 문장까지를 교정하여 논 데는 그러나 일경(一驚)을 금키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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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스러하고 토록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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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스러하기 까지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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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진 단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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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으러진 단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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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스렀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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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했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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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이 수고스러운 교정을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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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매거(枚擧)키 어렵거니와 특히 “목숨을 앗기다……”를 즉 목숨을 빼앗기다의 뜻으로 저자 나는 쓴 것을 선생은 천연덕스럽게 “목숨을 아끼다……”로 즉 석(惜)의 뜻으로 고쳐논 것 같은 것에 이르러서는 한바탕 얼굴에 땀이 밸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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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중 다행히 그 원고가 도로 나의 손으로 돌아와서 내 손으로 또 한번 수정을 하였기 망정이지 예의 한글 교정 선생이 교정을 한 대로 그대로 인쇄 발행이 되었더라면 뜻 아니한 조그마한 망발을 할 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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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맡겨두면 으례껏 망발스런 혹은 창피스런 오식(誤植)이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교정은 재교 한번만은 내가 보기로 방침을 하였고, 서울이나 서울 가까이 살 때는 실행을 하여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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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5백 리 상거의 시골에 있고 보니 그것이 늘 여의치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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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某誌)에 발표한 어느 단편에“……그 아이들의 학교의 성적은 그대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라고 똑똑히 원고에는 썼었는데 막상 잡지에는 “……그 아이들의 학교의 선생은 그대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로 인쇄가 되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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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과 선생…… 발음도 근사하거니와 그 위에 바로 ‘학교의’가 있어 놓으니 미상불 그런 틀림이 생김직도 한 노릇은 노릇이었다. 그러나 의미는 물론 동에도 닿지를 않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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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다음 가서는 “눈에 고인다……”를 “눈에 보인다……”로 꽂아논 것이 있었다. 이것 역시 착오가 생기기 쉬움직하기는 한 것이나, 보인다와 고인다는 얼쩍지근도 않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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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일본의 어떤 대신문에서는 그날 하루치 신문에서 오식이나 오자를 잡아내는 독자가 있으면 한 자에 암만씩의 상금을 준다고까지 한 말이 있었다. 그만큼 그래서 그네는 간행물의 제작에 있어서 오식(誤植)과 오자(誤字)가 없기를 기하였고 아울러 오식과 오자가 없을 자신을 가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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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대조하여 이런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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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서울서 오식과 오자 많고 기사(記事)의 문치(文致)가 우스꽝스럽기로 유명한 ×××보라는 신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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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관계도 있고 하여 인텔리층에서는 치어다보지도 않는 신문인데, 어떤 의사 한 분이 그 ×××보를 열심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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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친구라더냐 친척이라더냐가 이상히 여겨 “하필 ×××보노?” 하고 물었더니 의사씨 대답하되 “오자 많은 재미로……”라고 하더라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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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나 오식을 잡아내면 한 자에 암만씩의 상금을 낸다는 것과 이것 과를 비교할 때에 요즈음 우리 간행물 제(諸)를 당사자의 생각이 어떠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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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살인주사약(殺人注射藥), 살인주(殺人酒)도 만들어내는 세상이라면 신문이나 잡지의 오식 ‧ 오자쯤 아무 부끄럴 것도 없는 것이기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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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언을 많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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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인 줄 알고 쓰는 것도 있고 방언인 줄 모르고 쓰는 것도 있고 표준어로는 몰라서 할 수 없이 방언을 그대로 쓰는 것도 있고 아뭏든 많이 쓰기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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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언 쓰기를 정리하려고 노력은 하나 일조일석(一朝一夕)에는 되지를 않아서 민망할 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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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방언을 그렇게 잘 쓰기 때문에 방언 아닌 말이 피해를 당하는 수가 종종 있다. 먼저 이야기한 “……눈에 고인다……”의 고인다도 정녕 문선공씨(文選工氏)나 교정씨에게 방언의 인정을 받고 보인다고 우정 고쳐진 것이나 아닌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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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조선어사전에 보면 ‘죽는다’가 다음과 같이 설명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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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다 ① 숨이 끊어지다. ② 불이 꺼지다. ③ 생생한 기운이 없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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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다 풀기가 없어 휘주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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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두 종목에 나누어 도합 네 가지 뜻이 있음을 보였을 뿐이다. 내가 알기에는 노름판에서 끗수가 낮아 지는 것도 죽는다고 한다. 가령 “애기패가 죽었다” “물주가 죽었다”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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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에 그 모 조선어사전에만 의거하는 사람에게는 애기패가 죽었다, 물주가 죽었다의 ‘죽었다’ 는 결국 뜻을 모를 말이거나 방언일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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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람의 얼굴이 복판이면 복판이 조금 낮은 것을 말할 때에 “얼굴이 복판이 조금 죽었다”라는 말로써 한다. 여기에서 ‘죽었다’ 는 함(陷)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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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복판이 죽다니 무슨 소릴까” 그러면서 궁금히 그 모 조선어사전을 찾아보다가 “얼굴이 복판이 숨이 끊어졌다? 얼굴이 복판이 불이 꺼졌다? 얼굴이 복판이 생생한 기운이 없어졌다? 얼굴이 복판이 풀기가 없어 휘주근하다?…… 대체 이건 무슨 소리야?……정녕 이건 사투린 게로군……” 하고 만다면 이것은 희극을 지나쳐 일종의 비극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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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치기를 하는 5,6세짜리 어린애도 졌다는 뜻으로 죽었다는 말을 쓸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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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두던에 모인 여인네들도 “ 그 색시 좋게는 생겼다만서도 얼굴이 복판이 조금 죽은 게 흠이다!” 하면서 함(陷)의 의미로 ‘죽었다’라는 말을 쓸 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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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흔히 쓰는 어휘조차 수록이 되지 못한 사전을 겨우 사전으로 가져야 하는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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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 간행중에 있는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 편찬의 사전이 어떤 모양을 하여가지고 나올는지는 모르나 ‘차하다’ ‘끗수’ 같은 말도 수록치 못한 것일 터이거든 차라리 우리는 4천 년의 문화민족이란 말을 사전 한 권쯤을 완선하는 날까지 겸손스럽게 보류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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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조상은 해적이었다고 역사서에다 까놓고 나서는 영국도, 건국 2백 년이 못되는 미국도 사전은 사전다운 것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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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와 ‘가치’를 가지고 세 번씩 뜯어고치고 앉았기보다는 어휘 한 개를 더 사전에 넣기 위하여 한 장의 카드를 더 꾸미는 노력이 얼마나 생색 있을 것인지.
【원문】한글 교정(校正)과 오식(誤植),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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