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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신(屍身)과의 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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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3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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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屍身)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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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죽어서 병원 문을 나오던 장 교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꿈이 아닌가 해서다. 간밤 꿈에도 병원 문밖을 나오려니까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젯밤 꿈처럼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소나기는 아니었지만 눈이 쏟아진대도 망발이 아닐 섣달에 비가 오고 있는 것이다. 순간 장 교수는 간밤 꿈의 연장인 것처럼 느끼어졌다. 그러기를 바라서 일지도 모른다. 사실 꿈이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그는 병원 간판을 다시 한번 돌아다보았다. 역시 틀림없는 김 내과다. 꿈에도 그랬었다. 암이라니, 너무도 뜻밖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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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서였다. 그럴 수가 있으랴, 시체와 삼 년을 산 자기한테 또 하나의 시체가 안겨질 수는 없다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악한 사람은 아니니라 했다.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은 한 선량한 인간한테 그런 가혹한 운명이란 주어질 리가 없느니라 했었다. "하느님은 그렇게 공평 치 않은 어른이 아니니라!"그러다가 깼었다. 역시 꿈이었다. 꿈에서 깨이니 몸이 흠씬 젖어 있다. 꿈이란 정말 고마운 존재라고 눈물이 나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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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간밤 꿈의 연장이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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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꿈이기에는 모두가 너무 선명하다. 거리의 풍경도 정녕 꿈은 아니었다. 여름처럼 기약없이 내리는 비에 모두들 갈팡댄다. 힐끔힐끔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치만 보고 다니던 택시들도 몸이 달아하는 성장의 여자를 거들 떠보지도 않고 신바람이 나서 달린다. 정말 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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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교수는 때묻은 바바리 깃을 세우고 천천히 담배를 붙여 물었다. 담배한 개가 다 탄 때는 좀 뜨음해졌다. 그렇건만 그는 역시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움직인대도 소용은 없었다. 갈 곳이 없는 지금의 장 교수 였다. 그를 맞아줄 곳은 오직 열두 평짜리 후생주택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삼 년간 시체가 누웠던 그 자리에 또 하나의 시체로 화한 아내가 그 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대로 아내한테로 갈 수는 없다 했다. 단 몇 시간이라도 연장하고 싶은 심정이다. 장 교수는 담배를 또 한 개 붙였다. 두세 모금인가 빨더니 그대로 홱 내어던지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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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돌팔이가 뭘 안답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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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간판을 울부라려 보고는 거리로 홱 나섰다. 물론 진심은 아니다. 김성호 박사라면 내과로는 권위였다. 특히 암에 대해서는 이 나라에서 겨룰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장 교수도 아니다. 오직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이 꿈이기를 바랐듯이 오진이기를 바랐을 따름이었다. 김성호도 인간이다. 인간인 이상 신은 아니다. 신도 불행한 인간을 얼마든지 만들어냈는데 인간한테 잘못이 없을 수도 없지 않으냐? 물론 희망적인 생각에 서다. 고명하다는 내과의사의 네 사람이 다 그렇다 했고 김 박사는 더욱이 위액 검사도 했고 바륨 엑스레이도 찍어보아 간에까지 침범한 사실을 눈으로 보고 하는 소리였다. 아니 그 자신 눈으로 보기까지 했었다. 암이 불치의 병이란 상식화한 이야기다. 그것도 초기가 아니고 이미 간에까지 전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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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렇도록 어떻게 치료를 않으셨던가요? 여기까지 진전이 되자면 적어도 이삼 년은 걸렸을 겐데요? 이만 것은 아실 만하신 분들이… "처음 김 박사를 찾아갔을 때 그는 이렇게 타박을 주고는 아무래도 암 같으니 수술을 하자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암이란 생각은 내외가 다 해본 적이 없었다. 암을 앓는 사람은 따로이 있거니 했었다. 김 박사의 설명을 듣고도 장 교수는 믿지 않았다. 의사란 으레 한번 그렇게 짱 을러 놓는 버릇이 있느니라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몇 의사를 쫓아다니어 보았더니 역시 암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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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그자가 순 엉터리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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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장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까지 위궤양으로만 치료를 해온 단골 의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장 교수도 한번 그 의사한테 그런 귀띔을 한 적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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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라구요? 암은 아닙니다. 위가 좀 헌 것 같습니다. 위산과다증이 있으시구요. 암이었다면 부인께서 그만한 살을 유지하실 수가 있습니까? 암까지 되게 되자면 환자는 뼈만 앙상하니 남습니다요. 조금도 그런 염련 마시구 치료를 받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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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의사는 이렇게 장담했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럴 것 같다. 사실 그 의 아내는 일년넘어 위를 앓은 사람치고는 비교적 건강을 유지해오고 있기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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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로 암이란 판정을 내린 김 박사도 그런 말을 하기는 했었다. 장 교수가 S 의사의 하던 말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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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을 처음 뵈었을 땐 사실 나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암 환자 치구는 아주 건강해 보였거든요. 체질이겠지요. 이런 땐 아주 반갑지 않은 체질 입니다만… 대체루 우리 나라 사람들은 위병을 경시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그저 소금이나 먹으면 체는 뚫린다구 생각하기가 쉽지요. 그렇잖으면 영 신 환이나 활명수 병으로 날 수 있는 병이라 구… " 암인 것이 재미가 나기나 한 것처럼 조금도 힘을 안 들이고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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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소리에도 장 교수는 공연히 불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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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 불치의 병임은 모르지도 않을 김 박사다. 한 인간한테 사형을 언도하면서도 이렇게 태연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의 감정이 아니니라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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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교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치미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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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가망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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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가망이 없기야, 수술을 하면 납니다. 지금이야 약이 원근 발달된 것이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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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만 간에까지 전이가 되었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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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는 김 박사도 낭패를 느낀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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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허지만 간에 전이되었다 해도 극히 초기니까요. 가급적 속히 서두르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암인 것이 판명된 이상 한 시간도 늦출 필요는 없지요. 그만큼 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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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까지 들을 필요도 없는 상식화한 이야기다. 문제는 돈 주선이었다. 학문도 교양도 이런 데는 아무런 소용이 되지 않았다. 수술비가 십오만 환에 수혈을 해야 하니까 사오만환 더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약값, 주사 값, 잡비, 옴니암니 다 치면 하불하 이십오만환은 마련이 되어야 했다. 병원에 다니는 몇 백환도 없을 때가 있어서 거르는 요새의 경제였다. 이십오만 환이란 장 교수한테 있어서는 글자 그대로의 천문학적 숫자다. 그렇다고 늦출 수도 없는 일이었고 비용이 없다 말을 할 계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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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경제가 어려우시면 대학병원이나 여의대 부속병원으로 가보시지요, 거기 선 약 반액이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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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만 들어도 좀 마음이 후련하다. 그렇다고 십오만환은 있다는 것도 아니다. 우선 이십오만환보다는 숫자적으로 줄어든 것을 고마워하고 있는 것을 눈치채기나 한 것처럼 김 박사는 이런 귀띔까지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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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병원은 개업의와 달라서 좀 불편한 점두 있을지 모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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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고 나니 값이 싸대야 싼 것도 아니다. 거기다가 주치의 한 번만 보재도 엔간히나 힘이 들 것을 고려에 넣는다면 싸기는커녕 도리어 비싼 값 일는지 모른다. 지난 이른봄 장 교수는 맹장염 수술을 한 동료 교수를 병원으로 위문갔을 때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북악산의 눈이 다 녹지도 않은 절기에 스팀도 넣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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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살 보기가 힘이 들어서… 어린애들처럼 보챌 수도 없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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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불평이 많았었다. 결론은 비싸도 개업의사가 낫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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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제값은 제가 짊어지고 있는 거야. 간호원들도 기름을 치지 않으면 차지거든. 하기는 매장 허가 내는 데도 양담배가 드는 세상이니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환자는 이런 말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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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교수는 찬 비를 마냥 맞아가며 이런 생각을 하고 걸었다. 종로 통으로나 왔었다. 어디로 가겠다는 방향도 없었다. 집으로 가자면 정반대 방향으로가 야만 하는 장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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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걱정!" 하고 중얼거려본다.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다. 비싸고 싸고간에 수술은 해야 한다 했다. 간호원이 친절하고 말고도 지금 해야 할 걱정은 아니다. 요는 입원을 시키는 일이다. 입원비, 수술비를 마련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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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입원을 시켜놓고야 볼 일이지… "장 교수는 이렇게 입밖에 내어 중얼거려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기가 지금 완전히 정상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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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선무는 입원을 시키는 일이다! 수술을 시키는 일… "뜨음 직해 가던 비가 다시 드세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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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후 신촌 종점에서 내린 장 교수는 집과는 반대 길인 시장 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지금 처지에 단돈 백환인들 헛되이 쓰랴 싶기도 했지만 정말 맹맹하니 집으로 들어가지지가 않는다. 긴장이 확 풀리자 녹진한 피로가 온다. 몹시 땀을 흘린 후의 갈증처럼 피로 끝에 오는 한잔 술에 대한 연연한 정을 참기가 힘들었다. 무던히도 즐겨하는 술이면서도 또 무던히도 주리고 사는 장 교수이기도 했다. 집에 들어가면 소주잔이라도 있거니 할 때는 피로도 잊을 수 있었다. 젖은 솜처럼 피로한 끝에 세수를 하고 발을 씻고 양치를 하면서도 한잔 소주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는 장 교수기도 했다. 그러나 칠순이 넘은 어머님에 칠 남매니 똠방 열 식구다. 원천과세다 경 조비다 후생 적립비다를 제하고 나면 겨우 사(四)자가 붙는 정도다. 어쩌다 연구 했다는 것이 괴팍한 지질학이어서 여기저기 시간을 맡을 수도 없거니와 또 남들처럼 덥적대는 성격도 못 된다. 사만환으로 대학에 고등학교, 중학, 소 학, 마치 학생 전람회처럼 늘어선 아이들의 학비도 주어야 했고 쌀도 팔 아야 했고, 성냥도 사야 했다. 개성토박이라 그렇다고 평북 출신인 아내는 구 박도 주지만 오르내림이 없는 것도 그의 천성이었다. 남한테 신세도 안지는 대신 지우지도 않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고 또 고집이다. 그 즐기는 술에 술친구조차 없는 것도 이때문이다. 남의 술을 얻어먹었으면 갚아 야했다. 얻어먹을 때는 공인 것 같지만 갚으려 들면 그의 경제로 보아서는 구멍이 너무 커지는 것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사홉들이 소주 한 병이 그의 낙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장 교수이기도 했다. 소주면 한 컵, 약주면 대포 두 사발이면 족하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오늘만은 좀 취하고 싶었다. 석 잔째를 마시고도 그는 또 컵을 할머니한테 내어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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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가 한 잔에 오십환 , 빈대떡이 삼십 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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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계산을 하는 것도 그의 습성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런 계산도 해보지 않는다. 지금의 그의 머릿속은 오직 수술비를 마련할 궁리만으로 차 있었다. 학교 생각도 해보았다. 학교는 또 돈만환의 가불에도 거절할 만한 구실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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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때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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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었다. 장 교수는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들어보는 것이다. K, P, S… 누구나 다 그와 똑같은 처지였지만 여유가 있기로니 그렇게 큰돈을 빌려줄 리도 만무다. 아니 그런 대금을 빌리려고 개구를 할 만큼 그는 비상식 적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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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지! 집을 바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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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잔째 컵을 입에서 떼면서 장 교수는 벌떡 일어서서 나왔다. 이만 한 궁리가 섰으면 더 앉았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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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야 후생주택을 본뜬 열두 평짜리다. 아내의 동창생이 다노 모시〔契[계]〕라는 것을 해서 신당동으로 큰 집을 사가고 팔려고 내놓은 것을 차고앉은 것이다. 오십만환 전세다. 물론 그 동창생이 삼십만환짜리 삼 번을 하나 주어서 일곱 달째 물고 있는 터다. 앞으로 세 번만 더 물면 한숨은 돌린다고 아내가 (장 교수도 그랬지만) 유일한 낙으로 삼고 있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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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집으루 옮겨 앉지…’ 장 교수는 낡은 커다란 책가방을 어깨에다 둘러메고 걸으며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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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디딤도 정확지 않았지만 생각도 그랬다. 수술은 시간을 다투는데 그런 작자가 밤 사이에 나타나 줄 리가 만무다. 정말 그것은 무모한 계획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것도 한참을 걷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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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야지… 이런 때일수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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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교수는 다릿목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며칠 전 아내가 병원에 갔다 오 다가 이 다릿목에서 하던 말이 문득 생각났었기 때문이다. 암인 것이 사실이라면 자기한테는 따로이 생각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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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이 생각이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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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서 물은 것도 아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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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으로 치료해본단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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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냉큼 이렇게 둘러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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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말하는 딴생각이란 것이 한약 치료가 아님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자살을 의미하는 말일 것이다. 그때도 장 교수는 그 말에 서먹했었지만 정말로 암인 것이 판명되고 나니 벌써 서먹할 정도가 아니다. 술이 버쩍 깨인다. 그날도 그런 생각을 했었지만 자기 아내란 족히 그럴 수 있는 사람 이니라. 족히가 아니다. 응당 그렇게 할 여자다. 6ᐧ25 때도 그랬었다. 망우 리 방위선이 무너지자 아내는 집안에 있던 전재산인 만환을 주면서 남편을 남하 시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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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반동 학자라구 할지 모르지만 여자가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다행히 사내아이들이 큰것이 없으니 병정을 뽑아 가겠어요. 어서 떠나슈. 당신이 집에 있다간 모든 화가 전 가족한테 미쳐요. 나도 손발이 붙들어 매 이구. 어서 떠나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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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가 났다는데 가족을 적지에 남겨놓고 혼자만이 안전 지대로 떠난다는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는 필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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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기야 하겠어요? 길어야 한 달이지! 뭐 미국놈들은 손 잡아매었대요? 대폰 뒀다 뭣하구, 비행긴 뭣에 쓰라구? 길어야 한 달예요. 당진으루 가시구려. 당진까지야 밀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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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은 아내의 처형이 사는 곳이었다. 남편은 어업조합 이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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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두 자시구, 그 좋아하는 소주도 자시구, 어서 떠나요, 저 대포 소리! 어서 서둘러요… 당신이 집에 있으면 전 가족이 반동분자가 된다니까 그래. 본인이 없으면야 너 왜 그런 사람의 아내가 됐느냐고 그러겠수. 왜 그런 반동분자의 자식으로 태어났느냐고 따지겠소. 어서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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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생각하면 그도 그럼직했다. 며칠만 피한다면 모면할 수 있을 화를 질 펀히 앉아서 받을 필요는 없지 싶었다. 또 지금까지의 예로 보아 아내의 판단은 가장 정확하기도 했었다. 팔일오 전 일황(日皇)의 방송만 해도 그랬다. 팔월에 접어들면서 중대 방송 소리가 들리자 아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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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손을 드나보우." 했었다. 외국 방송을 들은 것도 아니다. 일종의 영감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건을 당했을 때도 장 교수는 당황하기만 했지만 그의 아내는 태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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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히 앉았다가 딱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것이 또 요행스럽게도 딱 딱 들어맞던 것이다. 그날만 해도 그랬었다. 장 교수는 친구 몇몇과 토론을 하고 돌아왔었다. 셋이 소련에 대한 선전포고일 것이라 했다. 하나만이 혹 손을 들잖나 했을 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자신없이 하던 말투다. 그러나 그 의아 내는 첫마디에 '항복’이라고 단정을 내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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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닐 거야. 그 독종들이 그렇게 쉽사리 손을 들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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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보세요. 일본은 손 들어요. 내 말이 맞을 게니 두고 보시라고요. 소련한테 선전포고를 하면 했지 중대 방송이 있으니 국민들은 그리 알아라 할 턱이 없잖아요? 때릴 테면 때렸지, 때린다고 방 돌리고 때리는 사람도 있답디 까? 치구 보는 거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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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이면 항복도 마찬가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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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천황이 항복을 한대두 군대나 백성이 말을 안 들으면 돼요? 그러니까 앞조심 하자는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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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내의 예언은 들어맞았었다. 민청이 생기고 과학자 동맹이 생기고 했을 때도 그랬었다. 아예 발걸음도 말라는 것이었다. 미국이 없어지지 않는 한 소련 천지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들어맞았었다. 며칠만 간다는 아내의 말은 다급해진 장 교수한테는 신의 말처럼 권위가 있었다. 다른 여자 같으면 혼자 떠나는 남편을 잡고 늘어지는 것이 보통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대담에는 놀랐었지만, 구이팔에 돌아와서 장 교수는 아내한테 경건한 마음까지 들었던 것이다. 아내가 동리에서 여성동맹 부위원장으로 임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거부했었다. 두 번 세 번 거부하자 따발총 구멍을 가슴에 대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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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반항할 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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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닦달질이 시작되었을 때도 아내는 태연하게 할말을 다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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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동맹에 나오라고 하기보다도 당신네가 먼저 할일이 있지요. 자기네 할 일은 않고서 나오라기만 한다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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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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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오. 이것이 난 지 넉 달입니다. 북한에서는 어린것의 생명은 무시 되어도 좋도록 국법이 되어 있던가요? 먼저 어미로 하여금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놔야 하지 않을까요? 나를 죽여야겠으면 죽이시오. 당신네 목적은 나한테 일을 시키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날 죽여서 무슨 소득이 있습니까? 죽일 테면 이 어린것을 죽이시오. 그러면 나두 마음놓구서 동맹에 나갈 수 있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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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끝내 모면을 했다는 것이다. 생각만 할 때도 아슬아슬한 장면 이었다. 역시 혁명가의 피를 받은 때문이었으리라. 그가 결혼을 할 때는 장인은 옥사를 한 지도 십 년이나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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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한 번 죽을 각오를 하구 나니까 되레 마음이 편합디다. 탄환 이 가슴을 뚫구 나간대도 난 죽지 않으리라는 생각까지 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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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내였다. 이 아내가 딴생각이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술기가 아주 걷히어 버렸다. 아내의 판단은 그대로 신념이었다. 행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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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한 번 수술할 필요가 없다는 단정을 내린다면 아내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수술대에 가서 드러눕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런다면 아내는 역시 죽은 사람이다. 아니 아내는 이미 죽을 사람이었다. 수술을 않아도 안한 대로 죽지 수술을 않기 위한 딴 생각을 한대도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다. 요는 수술 비가 준비될 때까지 아내한테 일체를 숨기는 길밖에는 없었다. 아내가 자 기류의 단정을 내리기까지의 시간을 연장하자는 것이다. 아내가 한번 단정을 내린다는 것은 곧 행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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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시체인 양 누워 있었다. 두 달 전까지도 끝놈이 삼 년간을 누워 있던 바로 그 자리다. 장 교수한테는 나서부터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누워 있던 끝놈이 삼 년을 두고 사뭇 시체로만 보였듯이 지금 아내도 시체 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잠이 들었을 리도 만무인데 정말 시체처럼 반듯이 누워 있다. 두 손은 배꼽 자리에 단정히 모아져 있고 다리는 쭉 뻗쳤다. 옷도 입은 채다. 스웨터도 벗지 않았다. 버선도 코가 가지런히 천장을 향하여 갖추어졌다. 눈도 감기었다. 일곱 매끼가 묶여져 있지 않을 뿐이지 그대로 시신 이었다. 그래 보아서 그런지 얼굴이 몹시 희다. 끝으로 세 아이가 어미 옆에서 벌써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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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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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교수는 가만히 불러본다. 정말 잠이 들었다면 깨우고 싶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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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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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잠이 든 게다 했다. 잠이 들지 않고도 대답을 하기 싫어한대도 그대로 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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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교수는 조심조심 옷을 벗어 걸고 이불을 끌어 아내를 덮어주었다. 아무런 반응도 없다. 그대로 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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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간을 시체와 살았는데 그것도 부족했던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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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러고 보니 그것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시 신 틈에 끼여서 삼 년을 산 셈이다. 아내가 소화불량병을 얻은 것도 운을 낳고 서다. 1ᐧ4 후퇴로 부산 피란생활에서 얻은 아이다. 조산아였다. 전혀 예 기 치도 않았는데 아이가 나와 있다. 따져보니 팔 개월이었다. 아침은 명색 이 밥 이었지만 저녁은 반드시 멀건 죽 생활이었으니, 모체도 건강할 리 없는데다 이 개월이나 조산을 했으니 태아가 건실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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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잘 자랄까?"
 
86
삼칠일이 되도록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이삼분에야 한 번씩 모 들뜨기 숨을 '카아’ 하고 쉰다. 저 자신보다도 옆에서 보는 사람이 더 안타깝다. 어떤 때는 사오분씩이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한 번 숨을 쉬는 동안 어린것은 허리를 밟힌 뱀처럼 고개를 내어젓는 것이다. 목을 졸리고서 나대는 형상이다. 젖꼭지를 물고는 잡는 소리를 한다. 그나마 숨이 통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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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이 저러구 살아내는 재간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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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한탄 끝에는 반드시 "죽일 놈들!"소리가 나왔다. 피란살이 삼 년에 장 교수는 이 한 가지 욕을 배웠었다. 직장도 만만치 않았다. 쌀값이 끽이다. 그러니 언제나 비명을 올리고 있다. 고기니 생선국이니 하는 소리를 장 교수는 몇 번이고 귓결에 듣고 있으면서도 이 고기 한칼이 마음대로 사지지 않던 삼 년간이었다. 바로 옆집이 중학동창인 모 고관의 집이었다. 입성, 먹성 할 것 없이 그것은 하늘과 땅과의 차이였다. 인간과 신과의 거리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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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진순넨 고깃국이 쉬어서 다 내다 버렸대! 진순이가 그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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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먹은 딸년은 보고 듣는 대로 이렇게 전갈을 했다. 그럴 때마다 장 교수는 속이 왈칵 뒤집히던 것이다. 임신중에도 그랬지만 산후 조섭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아이까지 그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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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가 영양을 취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옛날부터 구삭동이는 못 살아도 팔삭동이는 산다는 말두 있으니 낙심 말고 영양을 섭취 시키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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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섭취는 그들의 자전에는 없는 말이었다. 석 달이 지났다. 아이는 매일반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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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이름을 모두 헤식게 지어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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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못 쉬고 하부닥대는 어린것을 달래다 달래다 못하면 아내가 으레 하는 소리다.
 
95
"왜 아이들 이름 하나두 남들처럼 세우차게 못 짓는다죠? 한, 운, 숭… 그게 다 뭐라우. 헤식디헤식게시리. 왜 좀 거센 소리루 못 지어요. 한 이라기보다는 탁이라든지, 운이기보다는 철… 이렇게 좀 짓질 못하구 그저 이름부터가 남의 밑에 눌려노니… 비싯비싯할밖에… "
 
96
이름만은 순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아내가 아이들의 이름을 잘못 지었다고 탓하는 이면에는 그의 무기력에 대한 항거였다. 언제나 남한테 깔리고 밀리는 핏기 없는 그의 성격이 북도 출신인 아내한테는 늘 불만 이었다. 남과 맞서기를 싫어 해가지고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생존 경쟁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97
"사람이 살아가자면 필요할 땐 모략두 할 줄 알아야 하구, 아첨두 할 줄 알아야 해요. 지금이 요순시댄 줄 아시우? 왜 옆집 진순 아버지 좀 못 찾아보우? 종이쪽 한 장만 얻어내두 몇 백만환씩 머리를 싸매구 덤빈다는데… "
 
98
"입 못 닥쳐!"
 
99
말이 궁해지면 이렇게 나가는 것이 그의 유일한 방패이었다.
 
100
그럴라치면 그의 아내도 멈칫해지던 것이다. 남편의 성미를 잘 알기 때문 이었다.
 
101
"나한테 거세듯이 남한테도 좀 그랬으면… "
 
102
끽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물러앉는 것이다. 아이들의 이름만 해도 그랬다. 사람의 이름이 강하면 못쓴다고 아내가 세우는 것을 억눌러서 운이라고 지었던 것이다. 극도의 자유주의자인 장 교수는 청장년기의 대부분을 이 비 민주적인 독재정치 밑에서 숨도 크게 못 쉬면서 지내왔었다. 또 공교 롭게 도 그 를 괴롭힌 모든 정치가의 이름들이 강하게 들리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103
아라끼가 그랬고, 뭇솔리니, 아돌프 히틀러, 소련의 스탈린 ─ 어느 것 하나 음악적인 이름이 없는 데서 그 자신 무의식적으로 그런 부드러운 이름을 택하게 되었던지도 몰랐었다.
 
104
환도를 한 후로는 그래도 피란생활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역시 지질 구질한 생이다. 남들은 다같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그래도 처자를 헐벗기고 굶주리게 하지도 않으며 제철에 옷도 챙겨 입건만 환도한 지 삼 년에 아직도 바바리로 겨울을 나는 남편의 꼴이 적이 보기 싫기도 했을 것이었다. 장 교수 또한 군복바지 하나로 겨울을 나는 아내가 결코 보기 좋은 꼴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장 교수 자신 허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메뚜기도 오뉴월이 한철이라고 입학 대목을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없지도 않았다. 다만 소심해서였다.
 
105
처음에는 입학철이 되면 뭐다뭐다 구실을 붙여가지고 접근하는 사람이 없지도 않았지만 이 소심이 뱀이나 떠넘기듯 접근도 못하게 하는 바람에 인제는 누구 하나 입학 브로커를 가지고 오는 사람도 없다. 오늘 하루, 금년 일 년 깨끗이 살았느니라 ─ 이 한마디에 홀로 취해서 살 수 있는 장 교수 였다.
 
106
장 교수는 시신과 다름이 없는 ─ 아니 삼 년 전에 이미 시신이 된 아내의 하이 얀 얼굴을 언제까지나 내려다보고 앉았었다. 아내는 분명 잠이 든 것은 아닌 성싶은데 무료할 만큼 표정이 없다.
 
107
'아내는 자기가 시신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게지…’
 
108
장 교수는 아내의 손을 가만히 잡아본다.
 
109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다.
 
 
110
3
 
 
111
아내가 드디어 따로이 가졌다던 생각을 실천에 옮기었다. 약의 분량도 엄청났다. 아내다운 짓이었다. 데면데면하게 소동만 일으킬 아내가 아니다. 장 교수는 아내의 시체를 끌어안고 무료하니 앉아만 있었다. 이상할 만큼 눈물이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 친구들이 둘러서 있었다. 체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억지로라도 울어야 한다고 슬픔을 모느라고 애를 쓰노라니 정말 눈 속이 뜨끈해온다. 그러나 눈에서 쏟아진 것은 눈물이 아니다. 피였었다. 묽은 기라고는 한 점도 없는 오직 새빨간 피였다. 걷잡을 수가 없다. 장 교수는 손으로 받았다. 두 손도 모자랐다. 손수건을 대었다. 손수건도 당할 수가 없었다. 타월을 갖다 대었다. 큰 폭의 미국 타월이었다 ─ 그러다 깨었다.
 
112
그것이 꿈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기까지에도 한참이 걸렸다. '아내는?’ 하고 머리맡 불을 켜고 보니 아까 누웠던 고대로다. 옆 얼굴이 유난히도 희다.
 
113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114
아내가 잠이 든 것이 아닌 것은 신경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긴 속눈썹으로 짐작이 갔다. 그러나 잠이 들지 않았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두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리라 싶어 눈을 감고 누웠으려니까,
 
115
"깨셨수?" 하고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었을 만큼 다정스러운 음성으로 아내가 말을 건네는 것이다.
 
116
"응."
 
117
"병원엔?"
 
118
"갔댔어. 공연히 쓸데없는 걱정을 했었구려. 암은 아니래. 암 기운이 좀 있기는 하나 치료만 성실히 받으면 절대루 안심이 된다는 거야."
 
119
"의사들이 으레껏 하는 소리지 뭐."
 
120
"아니야." 하고 장 교수는 옆으로 돌아누웠다. 아내는 아까 고대로의 자세로 반듯이 누운 채였다.
 
121
"첨엔 나두 그런 것이 아닌가 했었어. 그랬더니 이야기하는 품이 진정 우리를 위로 하느라구 하는 소리가 아닙디다. 단순히 암이기만 하면 지 금은 약이 발달되고 수술법이 발달되구 해서 암 수술도 간단하다더군. 간이나 췌장에만 침투하지 않으면 조금두 겁낼 것이 없대. 그런데 당신은 간과 췌장에 아무런 이상이 없거든!"
 
122
장 교수는 거짓말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것인가 했다. 입에 침도 안 바르느니, 누워 떡 먹기라느니 하는 말이 있기에 거짓말이란 정말 입술에 침을 바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노릇이거니 했던 것이다. 자기딴에는 그럴듯하게 꾸며대노라고 했건만 자기 귀에 들려오는 요량으로도 조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황차 아내가 그 말을 곧이듣겠는지 불안해진다.
 
123
세상에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많고, 제 본심으로 살지 않는 사람도 많거니와 그 사람들의 고충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장 교수는 새삼스럽게 생각 해보면서,
 
124
"우선 며칠 동안 응급치료를 해보다가 정 악화될 위험성이 있다면 그 흠집 난 자리를 떼어버리면 된다구 그럽디다. 음식만은 각별히 조심하라 구… "가만히 누워 듣고만 있던 아내는 그저 간단히,
 
125
"그래요? 거 다행이군요." 할 뿐이다.
 
126
이 한마디로서 장 교수는 자기가 거짓말을 했듯이 아내도 거짓말을 하고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가 아내 말소리에서 거짓말임을 알아챌 수 있듯이 아내도 자기의 거짓말을 눈치챈 것이 분명하다.
 
127
"그만 주무십시다."
 
128
아내는 역시 고개도 돌리지 않고서,
 
129
"불 끄시지."
 
130
"잘라우?"
 
131
"자겠어요." 하는 수 없이 장 교수는 불을 끄고 다시 누웠다.
 
132
"오늘은 좀 덜 아프우?"
 
133
"그만 자요."
 
134
시신에서 풍기는 찬 기운 그대로의 말소리다.
 
135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올 리가 없다.
 
136
두어 시간 가량 눈을 붙이기도 했다지만, 꿈만 내리 꾸었었다. 그래도 자는 체하는 수밖에 없다. 괴로운 일이었다.
 
137
날이 밝기 시작했다. 무던히도 지루한 밤이었다.
 
138
날이 밝자 그래도 아내는 부스스 일어난다. 대학에 든 큰딸이 아침을 끓이느라고 달그락댄다. 굴신을 못하면서도 기어이 부엌에는 내려가 보지 않고는 못견디는 성미인 줄 아는지라 말리지도 못했다.
 
139
조반을 먹고 학기 시험 답안지를 펴놓고 앉았으려니까 설거지를 마친 딸이,
 
140
"아버지, 오늘 열두시에 김 선생님이 종로 살롱에서 좀 만나뵙자구 다녀가셨어요." 하고 일깨워준다. 학교에서도 가장 무관하게 지내는 김 교수였다.
 
141
"열두시에?"
 
142
"네."
 
143
"뭔고."
 
144
혼잣말을 하며 시계를 보니 열한시가 되었다. 어차피 집주인인 혜련이를 찾아가 보아야 할 참인지라 옷을 갈아입고 시내로 들어왔다. 오분쯤 내놓고 다방에 들어섰다. 정각이 되어도 김 교수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가 시간만은 절대로 지키는 성질인 줄 아는 터라 김 교수는 시간을 어기는 일은 없었는데 싶어 두리번거리려니까, 뜻밖에도 딸년이 빼꼼히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장 교수는 가슴이 서먹해졌다. 진숙이가 여기까지 달려올 때는 일이 벌써 벌어진 모양이다.
 
145
"아, 네가 어떻게!" 하고 벌떡 일어나서 뛰어가려니까 진 숙이는,
 
146
"아까것 거짓말이에요. 제가 아버지 뵙구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요."
 
147
"원. 아이두. 난 깜짝 놀랐구나."
 
148
"집에선 어머니가 계시니까 말씀을 드릴 수가 있어야죠."
 
149
장 교수는 딸을 데리고 마주앉았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몹시도 붐빈다. 하는 수 없이 진숙이를 옆으로 오게 해서 자리를 내어주다가 기왕 그럴 바에야 점심은 먹여 보내리라구 데리고 나와버렸다.
 
150
"어머니 얘기냐?"
 
151
"네."
 
152
"벌써 그런 예감이 들더라."
 
153
부녀는 가까운 빵집으로 들어갔다.
 
154
"아버진 그래, 모처럼 대학생 딸 점심 사주시는 게 겨우 빵이시우?"
 
155
딸은 멋대가리 없는 아비를 놀리면서도 소담스럽게 샌드위치 빵을 먹으며,
 
156
"병원에선 뭐라구 그래요?"
 
157
묻는 투부터가 의젓하다. 장 교수는 잠시 망설이었다. 진숙이한테만은 이야기 해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가급적 절망적인 표현만을 피해서 대충 증세를 이야기해 들리고서,
 
158
"어머니 한텐 절대루 그런 내색을 해선 안 된다. 어머니는 성격이 별난 어른이니까… "하고 뒤를 다지니까, 어머니도 벌써 다 알고 계시다는 것이다.
 
159
"뭐? 어떻게? 어제 어디 밖에 나가시던?"
 
160
"아뇨."
 
161
"그럼 알긴 어떻게 알았을까? 혼자 짐작이겠지."
 
162
"짐작 정도가 아니신 것 같아요. 어제 아버지가 나가신 뒤에 왼 장 안을 말끔히 들거우르시더니 한 가지 한 가지 이것은 누구 것, 이건 뉘 것, 따루 따루 챙겨주셔요. 그러구는 오늘부터 이 장은 네가 쓰라구 하시면서 당 신 옷을 채곡채곡 따로이 챙기어 고리짝에다 따루 넣으시겠죠. 돌아가신 다음에라 두 께름찍할까봐 하는 노릇이신 것 같아요."
 
163
"……"
 
164
장 교수는 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그 날카로운 이성으로 벌써 판단을 내린 것이 분명했다. 아내의 판단이란 곧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도 지체없는 행동을…
 
165
"그래, 따로이 다른 말씀은 없으시던?"
 
166
"어쩌면 네가 살림을 맡아야 할지두 모른다. 어미가 이렇게 병객이니까 이제부턴 네가 모든 것을 잘 알아서 하도록 해라 ─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 하면 동생들의 장래를 일일이 걱정하시겠지요. 더욱이 한이 걱정을… ""무슨 결심을 한 모양이지?"
 
167
"그런 것 같아요."
 
168
부녀는 한 시간 가까이나 이야기를 했으나 이렇다 할 묘안이 나서지가 않는다.
 
169
"어쨌든 급선무는 수술비를 마련하는 것이니까 난 혜련 아주머닐 만나러가겠다. 혜련 아주머니만은 이런 사정 이야기를 하면 한 이십만환 둘러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만… "
 
170
지금까지 그럭저럭 삼십만환 돈을 문 셈이니까 삼십만환을 찾기로 하고 새달부터는 월세로 정해서 들도록 졸라볼 생각이었다.
 
171
"그 아주머니야말루 자기한테 이익이 된다는 판단이 서야만 아버지 말씀에 응할 게니까 되도록은 그 아주머니한테 이롭도록 말씀을 하셔요."
 
172
"그건 내게 맡기구 어서 집으로 들어가거라. 그러구 좀 어머니 옆을 떠나지 마라."
 
173
부녀는 이렇게 헤어졌다.
 
174
장 교수는 혜련이 집으로 가는 길에 그래도 미심쩍어서 김 박사를 또 찾았다. 역시 수술을 서두는 도리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간에 침범이 되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을는지 모른다는 말투가 어제와는 또 좀 다르다. 장 교수는 박사의 말을 어떻게 해석했으면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의사 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싶기도 하다. 어느 친구가 의사만은 '불가근 불가원’이라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의사는 참말은 하지 않는다고도 그 친구는 말하던 것이다. "의사한테는 진찰을 하게 하고 판단은 환자가 해야하는 거야 ―"그 친구는 이런 말을 했었다. 장 교수는 그 말이 오늘은 실감으로 받아들여진다. 역시 절망은 없다는 판단을 장 교수는 내리고 아내가 올 지도 모르니까 오거든 절대로 사실대로 이야기해주지 말아달라는 당부 를하고 혜련이를 찾아 갔다. 예측한 대로 혜련은 없었다. 아침 아홉시에 나갔다는 것이다.
 
175
"그럼 이따 저녁때쯤 다시 오마."
 
176
집 보는 아이한테 이렇게 이르려니까, 밤에도 늦으신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혜련이가 요새 벼락부자가 되었는지 날마다 마작으로 밤을 새운다던 이야기를 들은 법도 하다. 그렇다면 천생 아침 일찍이 와보는 도리밖에는 없다. 학교에도 들러 보았다. 사무총장이 나오지 않아서 집을 물어서 찾아갔다. 대답이 역시 예측한 대로였다.
 
177
장 교수가 늘어논 사정보다도 갑절이나 되게 학교 사정을 이야기하는 통에 장 교수는 진을 빼고 돌아와버렸다.
 
178
집에 돌아오니 뜻밖에도 아내의 기분이 명랑하다. 근래 아니 근년에 없던 일 이었다. 운이를 배어서부터 운이가 죽기까지의 사 년간이란 아내는 어느 날 하루 명랑한 기분이 되어보지 못했다. 장 교수는 아내의 명랑 앞에 되 레 서먹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집안에 들어서니 고기 굽는 내가 확 풍긴다. 장 교수가 좋아하는 콩팥에 소주 한 병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가.
 
179
"시장하셨지? 뮛 좀 요기나 하셨수."
 
180
아내가 소주를 따라주며 하는 말이었다. 장 교수는 눈시울이 시큰해 옴을 깨닫고 있었다. 그대로 있으면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서 얼른 잔을 받아 단숨에 쭉 들이키고 말았다. 어떤 편이냐면 아내는 여성치고는 무뚝뚝한 편이었다. 해방 전 장 교수가 일본 경찰에 끌려간 일이 있었을 때는 덤덤히 서서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할 수 있는 아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애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체질이었다. 그 아내의 명랑과 아기자기한 서비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장 교수는 잘 알 수 있었다.
 
181
그날 밤 아이들이 잠든 후다. 자는 체하던 아내가,
 
182
"주무시우?" 하고 돌아눕는다.
 
183
"아니."
 
184
"우리 이야기 좀 하십시다."
 
185
"나두 하고 싶었소."
 
186
장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187
"인저 당신 짐이 무거워지셨구려."
 
188
밑도끝도없이 하는 말이다.
 
189
"건 무슨 소리지?"
 
190
"나 결심했어요."
 
191
"그랬수!"
 
192
장 교수는 반색을 했다. 수술을 하겠다는 말로 들려진 것이었다. 물론 그런 근거가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도 이상할 만큼 그 순간 장 교수는 단순해졌던 것이다.
 
193
"참 잘 생각했수. 난 그러지 않아도… ""나 수술 않기루 결심했어요."
 
194
"뭣이라구? 거 쓸데없는 고집 부리지 말아요. 생각해보우. 뭣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죽겠단 말요?"
 
195
"자기 병은 의사보다두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 수 있는 거야요. 의사가 뭘 안대요? 환자가 다 이야기하니까 비로소 아는 것이지."
 
196
"그래, 당신이 당신 내장 속까지두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요? 쓸데없는 소리. 그런 이기주의가 어디 있소? 당신은 벌써 당신 한 사람의 존재만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해. 당신은 남편이 있는 사람이고 일곱이나 되는 아이의 어머니야. 당신만의 고집으루 ─ 그것두 지극히 비상식적인 판단에서 생긴고 집으 루 그래, 죄없는 아이들한테 어미 없는 자식 소리를 들리겠다는 거요? 참 답답도 하오."
 
197
"난 되레 당신이 답답해요. 이런 땔수록에 사람은 냉정해야 해요. 당신두 과학자 면서 어째서 과학을 무시하려 드세요? 혹시라는 건 요행야요. 요행을 바라는 것처럼 비과학적인 이야기가 어딨대요."
 
198
"내가 비과학적이라?"
 
199
아내는 연방 손을 가슴 밑으로 가져간다. 위통이 또 오는 모양이다.
 
200
위통이 올라치면 아내는 아래윗니를 자그시 옥무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다섯 살 하나는 더 늙어 보인다. 그래도 입밖에 내어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삼 년을 견디어 온 아내이기도 하다.
 
201
"몹시 아프오?"
 
202
"아뇨." 하고 아내는 연방 위에다 손을 대고 상을 찌푸린 채,
 
203
"여보세요. 좀 냉철해지세요."
 
204
"당신이야말루 냉철해지오."
 
205
"아니야요. 생각해보세요. 내가 수술을 한다구 합시다. 수술을 해서 낫는다면 해야죠."
 
206
"그럼 낫지… ""글쎄, 그러지 마시래두. 내 얘길 좀 끝까지 들으세요. 난 삼 년간이나 내 몸을 진찰해온 의삽니다. 내 병은 내가 제일 잘 알아요. 다만 의사한테 그것을 확인받았을 뿐이지. 난 의사 면허가 없으니까요. 암이 간이나 췌장으로 갔다면 그때는 이미 모든 것이 다 끝난 때야요. 의사들은 가망이 있다구 하는 것이 의무니까요. 도덕이구요. 직책이구."
 
207
"아니, 누가 간까지 갔다구 그러며 암이라구 그러던가 말요!"
 
208
"글쎄, 환자 자신이 의사래두 그러셔. 난 당신보다두 먼저 알구 있었어요. 김 박사가 내 엑스레이를 보기 전에 벌써 난 보구 있어요. 당신이 날 속이는 게 아니라면 김 박사가 당신을 속인 게지. 속인 게 아니라 의산 으레 껏 그렇게 말하도록 되어 있는 겝니다."
 
209
장 교수는 모든 것이 끝장이 났느니라 싶어졌다. 김 박사만 닦달을 할 생각을 했지 엑스레이 집까지는 생각지도 못한 장 교수였다.
 
210
"과학을 믿지 않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어딨어요? 당신두 아이들 얘길 했지만 내가 수술을 않기로 단념한 것두 그것들을 위해서입니다. 뻐언하죠. 우리한테 무슨 돈이 있어요. 이 집 전셋돈 빼서 내는 길밖에 없잖아요. 그담엔 어떻게 되죠? 아홉 식구가 거리루 나앉아야 합니다. 어미 없는 자식 소리 듣기는 것두 뼈가 아픈 노릇인데 저것들을 다리 밑으루야 보낼수 있어요? 그러구라두 내가 산다면 몰라요. 혹 살 수 있을지도 모르죠. 백의 하나쯤? 허지만 백의 하나나 둘을 바란다는 것은 비과학적이야요. 우리가 ─ 이성도 지성도 가졌구 한 우리가 뭣때문에 그런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믿어야 하던가요? 난 그런 요행을 위해서 아이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어요. 이게 과학이야요."
 
211
"백의 일이 될지 십이 될지 구십구가 될지 당신이 어떻게 안단 말요."
 
212
"정말 당신이란 이렇게두 답답한 사람이댔수?"
 
213
장 교수는 벌써 진 씨름이라고 생각했다. 반 이상, 아닌 거의 다 기울어진 씨름 이었다.
 
214
"난 어제부터 약도 먹지 않고 있어요."
 
215
아내는 이렇게까지 나오는 것이다.
 
216
"시체가 약을 먹을 필요가 뭡니까. 내가 먹는 그 약값으루 어린것이 나 죽은 다음 빵 한 쪽씩이라두 나누어 먹게 하는 것이 어미의 도리가 아니겠어요? 허욕을 부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또 어딨어요? 더욱이 생에 대해서… ""당신은 과대망상증에 걸린 사람 이오… "하고 장 교수는 아내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217
"정말 당신은 변하셨구려? 운이 때는 당신이 되레 옳았어요. 운이를 그렇게 오래 두는 것이 아니었지요. 그 괴로워서 못견디어하는 것을 하루도 아니구 삼 년씩이나. 그대루 싸구돈 것은 역시 내가 잘못이었지요."
 
218
숨을 못 쉬고 바둥대는 어린것을 보다보다 못한 장 교수는 몇 번이고 차라리 일찍 가게 하는 것이 운을 사랑하는 부모의 애정이니라 했던 것이다.
 
219
"정말, 정말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운이 때처럼 이 고통을 한 시간이라도 빨리 걷게 해주셔야지 않아요. 내가 워낙 질겨먹은 여자라 그렇지, 위통처럼 아픈 게 있는 줄 아우. 더욱이 요 두어 달 내루는 못견디겠어요. 내가아 파보니까 알겠어요. 그 어린 것이 얼마나 아팠으면 그렇게 괴로워했을까. 그것도 삼 년을 내리… "
 
220
정말 지금 생각해보려니까 그렇게 아파하는 그 괴로워하는 꼴이란 사람으로서는 십분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숨을 쉴 때마다 목을 졸린 사람처럼 허 부덕 댄다. 팔은 뒤로 틀려 돌아가고 눈이 까뒤집히었다. 이것이 거의 이삼분만큼씩 오는 고통이다. 아니 하루 이십사 시간 그대로 지속되던 것이다. 운은 잠이라는 것을 거의 몰랐다. 그러고도 생명이 붙어 있다는 것은 과학으로도 설명할 도리가 없다. 일종의 불가사의로 돌리는 도리밖에는 없었다.
 
221
"치매증 조산아는 대체로 잠을 많이 자는 법인데요? 이 아인 참 특별하군요."
 
222
소아과 중에서도 김영수 박사는 조산아를 전문으로 연구한 사람이었다. 유일한 치료방법이란 척추에 주사를 놓는 것이었다. 격일해서 두어 달을 다니었다. 하룬 장 교수 자신이 데리고 갔다 와서는 아내를 마구 윽박아댔던 것이다. 정말 못 볼 광경이었다. 상식이 없는지라 척추에 주사를 준다기에 페니실린 맞는 정도거니 했던 것이다. 주사의 분량도 많았거니와 침도 엄청나게 굵었다. 아이는 사뭇 잡는 소리를 하던 것이다. 십분이나 걸렸다. 아이를 잡은 장 교수의 손에는 땀이 흥건히 괴었었다. 흡사 목욕탕에서 갓 꺼낸아이다.
 
223
"의사란 도적 같은 인간들이야. 그래, 그걸 보구두 두 달 동안을 다녔 단말요."
 
224
이튿날로 운은 주사를 그만하고 말았었다. 이쯤 되면 불치라는 것이 상식 이었다. 이 상식을 무시하고 그 무서운 주사를 놓는다는 것은 애정이 아니라 일종의 죄악이라고까지 장 교수는 생각한 것이다.
 
225
이때부터 장 교수는 무서운 고뇌에 빠졌었다. 부모의 애정이라든가 윤리, 죄에 대한 개념 ─ 이런 것이 머릿속에서 뒤범벅이 된 것이었다. 어린 것한테 그 무서운 ─ 뼈를 깎는 듯싶은 그 무서운 고통을 연장하도록 강요 한다는 것은 애정이 아니요 죄악이라 했다. 운의 그 무서운 고통에 종지부를 찍어주는 것은 악이 아니라 선이라 했다. 사실 장 교수는 몇 번이나 아내가 잠든 틈에 목에 손을 대어보기도 했던 것이다. 그것은 긴 시간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오분이면 족했다. 그러나 그는 역시 어린것의 그나마의 생명이나마 뺏는다는 것은 죄라는 과거의 관념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정말 한번은 약까지 사가지고 들어온 적도 있다.
 
226
자기 남매를 죽이고 자기도 자살을 하려다가 실패를 한 어떤 노동자의 재판을 보고 오던 날이었다. 우연히 신문에서 그런 재판이 있다는 기사를 보고 장 교수는 학교까지 결강을 하고 방청을 했던 것이다.
 
227
뜻밖에도 방청석은 텅 비었었다. 장 교수는 여기에서도 사회상의 심각한 일면을 본 것처럼 슬퍼졌었다. 이 사회, 인간의 감정은 벌써 자기 자식을 둘씩이나 죽였다는 이런 재판에도 흥미를 잃었을 만큼 마비되었느니라 한 것이다. 그 사나이는 농군이었다. 말은 농지개혁을 했다지만 불과 삼 년간에 도로 소작인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단일세 제도는 완전해 무시 되어 육십여 종의 잡부금을 물다 보니 땅을 팔아도 고리대금이 청산되지 않아서 새로 생긴 지주 계급한테 그나마 사정을 해서 동리를 떠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도 그의 낙원은 아니었다. 지게품을 파는 동안, 아내는 굶다 굶다 어디로 자취를 감추고 만 것이라고 한다. 다섯 살에 세 살짜리 사내아이 였다. 주인공은 드디어 환장을 하고 말았다. 이 이상 어린것을 굶기는 것은 죄악이라는 결론에 사로잡히어 어린것들한테 최후로 찐빵을 사서 주었다는것이다.
 
228
"전 그것들을 죽이는 것이 아비의 도리라구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마침 오백환을 벌었기에 목욕도 시키고 저녁에는 찐빵도 사서 먹였습니다.
 
229
세 살 난 놈이 장난감 자동차를 그렇게두 가져보자구 했기에 사서 들려 주었습니다. 잘 적에 제 어미 생각이 났던지 칭얼대기에 이것을 먹으면 엄마한테 갈 수 있다구 하니까 그것들은 정말인지 알구 마지막 빵을 먹었습니다 요."
 
230
그 빵 속에 약을 넣었다는 것이었다. 죄수는 검사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는 그대로 울어버렸다. 구형이 내리었다. 십 년이었다. 그것도 정상을 참작 해서라고 재판장이 설명을 하자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는 죽어야 마땅하다고 순순히 죄를 받자던 주인공은 갑자기 발악을 시작했던 것이다.
 
231
"십 년요? 십 년? 그건 너무도 억울합니다. 차라리 죽여주십시오! 재판 장님이 내 자식들을 더 사랑합니까, 이 아비가 더 사랑합니까? 아닙니다. 제가 더 사랑합니다. 제가 더 사랑했습니다. 나는 죽어야 마땅합니다. 살구 싶어서 가 아닙니다. 왜 제가 내 자식들이 살았을 땐 굶어죽건 말건 못 본체 하다가 지금 와서 나한테 죄를 준다는 겝니까, 네? 난 당신들한테선 죌못 받겠습니다. 못 받아요! 내가 내 손으로 죽게 해주시오. 내 손으로 죽게요!"
 
232
이 재판을 보고서 역시 그 아버지의 말은 옳으니라 한 장 교수였다. 무식해서 표현을 잘 못하여 보였지만, 정말 자식들을 사랑한 것은 그 아버 지니라 했다. 그 농군은 죄의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했었다. 굶어서 빼빼 말라가는 어린것들을 기어이 굶어죽을 때까지 시간을 연장시켜준다는 것은 선이 아니라 악이니라 했었다. 장 교수는 그날 밤 약을 샀었다. 물론 술 기운이기도 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는 역시 과거 관념인 죄의식을 극복하지 못 했었다. 어린것의 생명을 뺏는 대신 바싹 품에 안고서 어린것과 같이 울어 버렸던 것이다.
 
233
아내가 말하는 것도 그날 밤 이야기를 후에 들은 데서다. 운의 말을 꺼내면 장 교수도 할말이 없었다.
 
234
그날 밤도 장 교수는 시신 옆에 누워서 밤을 밝히었다.
 
235
아내야 제가 어떻게 결정했든 장 교수는 이튿날 아침 조반 전에 혜련이를 찾아 나섰다. 곗돈을 잘라먹은 년이 있어서 받으러 간다고 막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혜련이를 문간에서 만날 수 있었다.
 
236
혜련이한테는 학교 사무총장한테보다도 짧은 설명으로 족했다. 전세 문서를 잡히기로 하고 친구한테 우선 십오만환을 얻어보겠다는 것이었다.
 
237
"기한은 석 달밖에 안해 줄 겁니다. 이자는 일할 삼부구. 그것두 특별 일 겝니다. 그렇게 들을라는지는 몰라두 마침 잘됐군요. 그렇잖아두 걔가 그 집 을 살 생각두 가지구 있어요."
 
238
석 달에 그런 큰돈이 나올 길은 물론 막연했다. 돈만 갖다 쓰는 날이면 석 달 후에 집을 내쫓길 것은 빠안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런 것을 따지고있을 때는 아니다.
 
239
"그럼 내 가볼 테니 오후 한시쯤 종로 다방으루 나오시지요 될진 모르겠어두… "한시까지는 수술할 병원 원장한테 소개를 받는 데 허비했다. 김 박사를 찾아가서 사정을 하니까 불쾌해하는 눈치도 없이 소개장을 써주던 것이다. 김 박사는 역시 좋은 사람이다 싶었다.
 
240
한시 십분 전부터 두시가 지나도록 종로 다방에 앉아 있으려니 정말 몸 이 비비 꼬인다. 사람이 드나들 때마다 문간을 쳐다보기에 인제는 고개도 아팠다. 한 시간 이상이 늦었으니 안 오는 게거니 싶어 일어날까말까 하는 판에 혜련이가 들어왔다.
 
241
"기다리셨죠? 미안합니다. 걔가 어딜 가서 통 들어와야죠."
 
242
그래도 만나고 왔다는 것이다. 지금은 현금이 없고 모레는 들어올 돈이 있으니 모레 한시 다시 나오라는 것이다.
 
243
"이자는 억지루 삼부에 뗐어요. 역시 기한은 석 달이랍니다. 독사 같은 사람이니까 기한은 딱 지켜야 할 겁니다 "
 
244
"글쎄, 모레는 꼭 되기나 할까요?"
 
245
장 교수는 맥이 탁 풀렸다.
 
246
"모렌 될 겁니다. 걔가 돈 나올 데를 내가 알구 있으니까요. 만일에 그날 안 된다면 나라두 해다 드리지요. 걔하구 나하구 어차피 셈조가 있으니까 요."
 
247
"그분보다두 난 혜련 씰 믿습니다." 하려니까 혜련이는 펄쩍뛴다.
 
248
"아니야요. 모레 제가 해다 드린대두 그 돈은 제가 또 걔한테 받아야 해요."
 
249
"아, 그야 물론 그렇죠. 난 실기가 될까봐서 하는 소리지요."
 
250
걔란 인물이 따로이 있는 것이 아닌 것도 짐작이 갔으나 그런 내색을 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석 달 후면 집을 쫓겨나는 것으로 알고 있어야만 했다. 어쨌든 고마웠다.
 
251
"그날 나오실 제 전세 계약서 갖구 나오셔요. 차용증서하구요."
 
252
"네, 그렇게 하지요."
 
253
이렇게 혜련이와 헤어져서 처적처적 서대문 쪽으로 올라왔다. 진눈깨비가 풀풀 날리고 있었다. 울고 싶도록 서글픈 심정이었다. 바바리 깃을 무심코 세우다가 그까짓것 세운들 별수 있으랴 싶어 되눕히고 버스를 기다리려니 통 오지를 않는다. 십분 이상이나 기다려 차를 타고 서대문 네거리를 지날 때다. 우연히 내다 보이는 우체국 앞에서 영천 쪽으로 꼬부라지는 아내를 발견하고 차에서 내렸다. 부리나케 뒤를 쫓아도 보이지가 않는다. 영천 쪽으로는 아내가 아는 집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거의 독립문 근방까지나 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한 상점을 들여다보는데 아내가 거기 섰는 것이다. 죽었던 사람이나 살아난 것처럼 반가웠다.
 
254
"난 저 독립문까지 쫓아갔댔지!"
 
255
"화장터 갈 때두 걸어갔겠수? 그때야 타구 가야지."
 
256
아내는 이런 소리를 태연하게 한다. 포목전이었다.
 
257
"이거 마에 얼마죠?"
 
258
아내가 펴 들고 있는 것은 순인이었다.
 
259
"겨울에 순인은 뭣하러."
 
260
"뭣 좀 할려고."
 
261
장 교수는 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내의 고집을 아는 터라 내버려 두었더니, 순인 다섯 마를 끊어가지고 나오면서,
 
262
"점심 자셨수?"
 
263
"아니."
 
264
"그럼 가십시다. 뜨끈한 설렁탕 국물이 마시구 싶군."
 
265
아내는 국물을 좀 마시고 장 교수는 대포 두 잔을 하고 나왔다.
 
266
"집으루 가지?"
 
267
"가십시다. 당신도 볼일 없지."
 
268
"돌아가던 길야. 버스에서 보구 내렸지."
 
269
집에 오기까지 둘은 단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집에 와서다 .장 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270
"숙!"
 
271
아내는 깜짝 놀란 눈치다. 장 교수가 현숙이라는 이름을 숙 한자로만 부른지가 하도 오랬기 때문이었다.
 
272
"거 뭐할 꺼지?"
 
273
"어떻게 될지 알아요. 수술을 한대두 그렇구, 않는대두 그렇구. 당신 혼자서 일을 당한다면 남 보기 숭업게 입던 옷 그대루 입구 갈 수도 없을 게구."
 
274
"아니, 당신 정말 미쳤나보구려?"
 
275
"정말 당신이란 양반이 몰라졌어요. 왜 그렇게 냉철하지 못하실까."
 
276
"냉철 냉철 하니 그래, 당신이 냉철하단 말요?"
 
277
"참 딱하셔."
 
278
아내는 나글나글한 웃음기까지 띠는 것이다.
 
279
"그럼 누가 냉철한 거야요. 내가 시신이란 것은 당신두 알고 계시잖아요? 사람이 일을 당할 땐 정말 냉철해야만 해요. 차근차근히 해두 잘못이 생기는 법인데… 그러니까 내가 모두 챙기자는 거야요. 당신은 보통 땐 반드시 그렇지두 않은데 무슨 일을 당하면 아주 갈필 못 차리시거든요. 6ᐧ25 때 만해두 그렇지. 그냥 갈팡질팡하기만 했지, 이런 땐 어떻게 해야 한다는 요량이 없으시거든. 그때 끌려갔더라면 어떻게 됐겠는가 상상이라두 해… "하는데 또 위통이 오는 모양이다.
 
280
장 교수는 아내가 못견디어하는 고비를 넘기기를 기다리어,
 
281
"그래,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하겠다는 게요?"
 
282
"수술만은 않겠어요."
 
283
인정없이 자른다.
 
284
"아니, 이 사람이 정말 정신에 이상이 생겼는가?"
 
285
"글쎄, 당신이란 양반이 이렇게두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인 줄 몰랐군요. 내 일은 내게 맡겨두어요. 내가 이런 땐 당신보다는 아무래두 요량이 있으니까 요. 당신 생각엔 죽을 때 죽더라두 그래두 수술이나 해보구 싶으실 게요. 그 심정을 모르는 나두 아니우. 고맙게두 생각하구. 허지만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라든가 기분이라든가 판단에만 사로잡혀선 안 돼요. 당신 욕심두 그렇지만 낸들 왜 욕심이 없는 사람이우. 나두 더 살구 싶은 욕망이 있어요. 아니, 당신보다 더할지두 모르지요. 그렇지만 욕심과 허욕과는 다르잖아요? 수술을 하구서 죽으나, 않구 죽으나 죽는 건 죽는 것인데 그 불쌍한 것들한테 그 몹쓸 노릇까지 하면서 허욕을 부려야 하우? 나두 당신이 웬 만만 한다면 이런 생각두 않아요.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남들처럼 차 치구 포 치구, 어떤 땐 포가 포두 넘구 ─ 이런 사람이라면 또 무슨 도리가 나설지두 모르니까 모험두 해보겠어요. 전봇대에 오줌 누는 사람이 무슨 요행을 바라는 거요? 이 집 전세나마 까먹고 나면 그나마두 떼거지지 뭐요. 대학교수의 아들 딸들을 수표다리 밑으로 보내겠수, 어쩌겠수? 날만 나무라지 말구서 정말 좀 냉정해져요. 헤엄두 못 치는 사람이 걸어서 한강을 건너겠다는 당신이 답답하우, 내가 답답하우?"
 
286
"어쨌든, 좀 머리를 쉬오."
 
287
장 교수는 이렇게 말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이 이상 더 이야기해보았자 아내를 흥분시킬 뿐이다. 좀더 푹 쉬인 다음이면 심경도 달라지려니 한 것이다.
 
288
그러나 이런 기대도 무너지고 말았다. 그날 밤, 자다 깨어 보니 아내는 일어나 앉아서 옷을 감치고 있던 것이다. 보나 안 보나 수의였다. 장 교수가 놀란 것은 수의를 짓는다는 그 사실에보다도 아내의 표정이었다. 슬픈 기운이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수의 ─ 그것도 저 자신이 입을 수의라기보다도 나들이에 입고 갈 옷을 꿰매는 듯한 그런 흥겨움이었다. 장 교수는 아내의 모습에서 인간을 느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목석으로 만든 조각과도 같았다. 신이 아니라면 그것은 유령일지도 모른다 싶다. 그는 아내한테 일종의 공허와 경건을 동시에 느끼는 순간도 있었다. 성자에 대 한 경건 이었다.
 
289
"신…"
 
290
장 교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자신은 그것을 울음이라고 생각 지도 않았다, 울어도 울어도 울음은 그치지 않는다.
 
291
시신은, 아니 성자는 침선을 놓는다. 그리고 우자(愚者)를 어루만지듯, 한 손으로는 그의 손을 잡고 한 팔로는 그의 목을 안아 자기 입술에다 대어주며,
 
292
"아빠! 진정해요! 나보다도 침착해야 할 양반이 그러시면 돼요? 당신은 나보다 짐이 무거운 사람입니다. 내가 살아서 하던 일까지를 당신이 도 맡아주어야 할 사람이야요. 난 당신이 남들처럼 내 일주기도 전에 아이들한테 새어머니를 맞아들일 사람으로는 생각지 않아요.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당신의 의사를 미리 막자는 심사에서두 아닙니다. 다만, 당신이 그럴 수 없는 성격이란 것뿐이죠. 만일에 그래야 할 필요가 생기건… 생기겠지요. 그땐 사람을 잘 보아 하세요. 사람만 착실하다면 내가 와서 뒷바라지라 두 해드릴 수 있을 겝니다. 당신은 나의 목석 같은 성격에 질려서 착착 부니는 요사한 사람한테 맘이 쏠릴지두 모릅니다만, 그건 역시 행복하지 못할 겝니다. 되도록은 참으세요. 참았다가 늙바탕에 시중이 아쉬워질 때나 사람을 구 하시구려. 어린것들이 철이 좀 나거들랑… 자, 그만 그치셔요? 죽어가는나두 이렇게 웃고 있지 않아요? 당신이 그런다면 난 어떻게 하겠어요. 약 한 아버지! 약한 아버지가 돼선 안 돼요. 굳센 아버지가 되셔야죠. 그래야 어린것 들이 당신을 의지하구 살지 않겠어요. 자, 그만 웃고 날 보내주세요. 웃으며…"
 
293
이렇게 말하는 아내도 실상은 웃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294
이튿날은 아내한테 끌리어 극장에를 갔었다. 「미녀와 야수」라는 영화 였다. 그 미녀가 장 교수한테는 자꾸만 아내의 얼굴로 변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점심도 같이 했다. 아내는 오트밀을 좀 마시었을 뿐이었다. 비프 스테이크에 술까지 시키어 아내는 찬찬하니 앉아서 따라준다. 장 교수는 술을 마시면서도 울었었다. 일찍이 이렇게나 아내한테 애정을 느껴본 일이 없던 것 같았다.
 
295
오후에는 아내도 몹시 피로해 보이어 차를 세웠더니 기어이 사진을 한 장 찍겠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296
"아빠! 난 마지막 가는 사람이니까, 내가 청하는 건 다 들어줘야 해요. 죽은 사람 소원두 풀어준다지 않아요. 죽어가는 사람 소원이야 못 풀어줄것 있어요. 그러시죠?"
 
297
"갑시다."
 
298
장 교수는 앞장을 서서 사진관으로 갔었다. '오냐, 돈이 손에 쥐어질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든간에 아내의 비위를 상하지 않으리라’ 했다.
 
299
그날 밤도 장 교수는 혹시나 싶어 꼬바기 새웠다. 두 번이나 아내가 포시시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장 교수는,
 
300
"괴로워?" 하고 따라 일어났다.
 
301
"아뇨."
 
302
아내는 또 사르르 눕던 것이다.
 
303
이튿날 열두시에 교수는 아내와 집을 나왔다. 진숙이한테는 입원할 준비를 해가지고 두시까지 적십자병원 앞으로 오라고 귀띔을 해놓았었다. 종로서 잠깐 누구를 만나고 오겠노라고 신신 양식부에 아내를 두고 종로 다방으로 건너가니 정각 한시다. 오분, 또 오분… 두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혜련이는 나타났었다.
 
304
"참 돈이 째이는군요. 연말이 돼서 그런가봐요."
 
305
혜련은 이렇게 말하면서 수표 한 장을 내어주던 것이다. 보증수표다. 십만 환 이었다.
 
306
"오만환은 모레쯤 되겠어요. 우선 오만환이면 수속은 된답니다."
 
307
"좀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지금 신신에 앉아 있습니다. 죽어도 수술을 않겠다니까 좀 속여서라두 병원까지만 데리구 가게 해주시지요."
 
308
혜련이도 아무 말 없이 따라 서 주었었다.
 
309
아내는 저쪽 구석 테이블에 조각인 양 앉아 있었다.
 
310
"너의 집에 가자던 길인데 마침 선생님을 만났구나. 좋은 일이 있으니 느집으로 가자꾸나."
 
311
"좋은 일?"
 
312
"그래."
 
313
"아주 좋은 일이 있어. 여기선 말할 수 없구… "이렇게 능하게 엉너리를 쳐서 간신히 아내를 차에 태웠다. 차는 살처럼 달리어 적십자병원 현관 앞에 와 닿았다.
 
314
"아니, 날 왜… "
 
315
"가만히 있으라구, 현숙이. 이 선생님이 불쌍하지 않아? 아이들이? 웬 고집야. 이주일이면 퇴원할 수 있대요! 자, 내리라구."
 
316
"난 싫어 "
 
317
"입원 비 걱정은 말아요. 내게 그만 돈은 있어. 나중에 잘살건 갚으면 되잖아."
 
318
"아냐, 그래 그러는 건 아냐."
 
319
"어머니! 우리가 불쌍치 않으세요? 어머니가 고집을 세우시면 제가 먼저 죽어버리겠어요. 어머니 마음씰 잘 알아요. 저희들 때문에 그러시죠? 그렇다면 저희들 일곱 남매가 오늘 다 죽어버리겠어요. 우리가 다 죽더라도 어머 닌 살으셔야 해요. 어머니만은 살으셔야 해요… "진 숙이 뒤에도 세 어린것들이 울고 있었다. 어쨌든 아내를 차에서 끌어내릴 수 있었다. 다섯 사람이 포위를 한 채 병원 안으로 끌어들였다.
 
320
그래도 아내는 끝끝내 앙탈을 하는 것이었다. 진찰실까지 끌어넣기에 겨우 성공을 했다.
 
321
"위암 환자루 이만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면 염려할 것 없습니다. 어쨌든, 한번 보십시다. 보고 수술을 하게 되면 하고… "
 
322
의사의 이 말에 환자도 어느 정도 희망을 가진 것 같은 표정이 보인다. 엑스레이 찍은 것을 보았으면 하는 의사의 말이어서 장 교수는 아이들한테 어머니를 맡기고 병원을 뛰쳐나왔다.
 
323
일이 잘되려는지 나서기가 무섭게 빈 택시가 지나가다가 딱 멈추어주는 것이었다.
 
 
324
<「문학예술」23호, 1957년 3월>
【원문】시신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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