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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식례, 술멕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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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9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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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식례, 술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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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中伏)날 가을 수필을 쓰라는 기별을 받고 하도 걱정스럽더니, 오늘은 신문이 마침 오늘이 입추(立秋)라고 알려주어서 한시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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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七夕) 무렵 은하수머리가 넌지시 서쪽으로 기울면 논에서는 벼목이 차차로 숙기 시작한다. 그러나 백중(百中)이 건듯 지나고 나면 벼알은 제법 여물이 여물어 손끝으로 으끄려도 뜨물이 나지 않는다. 그만 때쯤 벼를 베어서 털어서 시루에다 쪄서 장만한 쌀이‘오리쌀’이다. 7분도미(七分搗米)처럼 빛깔은 누르나, 한번 찐 것이라 맛이 고소하다. 아이들이 곧잘 주먹주먹이 움켜서 군입으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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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일찍 장만한 쌀‘오리쌀’로 밥을 짓고 하여 집집이‘오리식례’를 지낸다. 신명(神明)과 조상께 올리는 신곡감사제 같은 것이다. 남방(南方) 우리 고장의 가을 풍속이었는데 시방은 아마 없어졌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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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쌀, 오리식례 하는‘오리’는 새 것(新)이라는 뜻인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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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이서 하는 오리식례와 전후하여 농군들은‘술멕이’를 한다. 추석의 기(旗)맞이와 아울러 농군들의 큰 잔치의 하나다.
 
7
7월 백중을‘백종(白踵)’이라고도 한다. 뜻인즉은 백중을 지나면 논의 김매기가 너끔하여 농군들은 봄과 여름 논에 들어서서 일하던 발을 일단 씻고 올라오기 때문에 발꿈치가 희어진 데서 왈 백종이라는 것이다.
 
8
백종을 지나 발꿈치가 희어지고 추수까지에 소한(小閑)을 얻은 농군들은 ‘두레’에서‘궁굴’을 인다.
 
9
두레라는 건 한 동네 한 동네를 단위로 머슴, 상일꾼(농업노동자), 소작인 이런 하층농민으로 결합되는 자연발생적인 원시적 공동체다. 공원(公員)이니 각총(角總)이니 기임(其任) 몇가지의 소임이 있어 가지고 규율이 썩 엄하다. 종종 모여서‘사발통문’을 하고 또 두레의 법을 어기는 자는 붙잡아다 볼기를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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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에는 으례 한 벌씩의‘풍장’(농악)과 기(旗)가 있다. 그 기가 실로 어마어마하게 크다. 깃대(旗竿[기간]) 높이가 여섯 발 일곱 발에 굵기는 세 뼘 네 뼘이 넘는다. 20여 척에 15, 6척의 장방형의 기폭은 흰바탕에다 청(靑)으로 지네발을 두르고, 또 청· 홍의 동정을 단다. 깃대 꼭대기에 단 꿩깃으로 만든 장목을 꽂고 그 밑에다 바싹 붉은 관음(觀音)매듭을 치렁치렁 늘어트린 쌍룡을 꽂고 그 다음으로 기폭을 단다. 그 전중량이 20관은 실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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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가 행동을 할 때면 기가 반드시 앞을 선다. 두레에서 기운 제일 센 장정이 기를 두 손으로 앞에다 꼿꼿이 받들어 받고 앞을 간다. 결코 어깨에다 메는 법도 아니거니와, 메고 싶어도 원체 커놔서 멜 수도 없다. 기 받는 자가 실수건 고의건 기를 쓰러트리든지 함부로 다루면 그 자리에서 곧 징벌을 당한다. 대개 볼기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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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어마어마하고 홀란스런 기가 앞을 서고, 그 뒤엔 두 동자(童子)가 한 쌍의 작은 영기(令旗)를 들고 따르고, 다시 그 뒤엔 울긋불긋 고깔 쓴 악수(樂手?)가 긴 나발, 꽹과리, 징, 장고, 북, 소고의 순서로 따르고, 또 그 뒤엔 어깨에다 제각기 호미를 건 농군이 수십 명 따르고, 이러고서 풍장을 요란히 치면서 나아가는 모양은 한 장관이요 일변 기관(奇觀)이요, 겸하여 위풍 늠름한 바가 있다. 새수빠진 촌여자가 있어 이 행진이나 기를 세워논 길을 전면으로 가로 건너가든지 했단 보아? 당장 잡혀와서 성문을 맞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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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의 전원이 나와서 며칠 동안 공동작업을 하는 것이‘궁굴’이다. 논일은 거진 끝났을 때므로 흔히 콩밭을 매지만, 더러는 논의‘피사리’도 한다. 피(稗) 뽑는 것을‘피사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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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굴을 일어서 번 돈으로 술을 빚고 소를 잡고(작은 두레에서는 도야지를 잡는다) 좋은 하루를 택하여 크게 먹고 노는 것이‘술멕이’다. 기를 내다 세우고 그 주위에 모여 술과 고기를 실컨 먹고 풍장 치고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맘껏 뛰논다. 먼저의‘오리식례’가 신곡감사제라면 이‘술멕이’는 풍년제(豐年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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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時代[신시대] 1942년 9월호〉
【원문】오리식례, 술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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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식례, 술멕이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 신시대 [출처]
 
  1942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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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8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