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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교파(技巧派)와 조선시단(朝鮮詩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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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4월
임화
1
技巧派[기교파]와 朝鮮詩壇[조선시단]
 
 
2
去年[거년]「新東亞」[신동아]지(12월호)에 게재한 拙稿[졸고]〈詩壇一年[시단일년]>이 遭遇[조우]한 저항은 朝鮮詩壇[조선시단]이란 것의 근황을 이해함에 좋은 表徴[표징]의 하나일가 한다.
 
3
朴龍喆[박용철씨]는 東亞誌[동아지]에 실린 논문〈乙亥詩壇總評〉[을해시단총평]의 대부분을, 金起林[김기림]씨는 朝鮮誌[조선지]에 논문〈詩人[시인]으로서 現實[현실]에 積極關心[적극관심]〉의 일부분을 拙論[졸론]을 위하여 割與[할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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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두분의 拙論[졸론]에 대한 태도에 있어 가진 바 상당히 거리가 먼 차이를 발견키는 그리 곤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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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이란 물론 시에 대한 근본 입장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우선 朝鮮詩壇[조선시단]의 技巧派[기교파]라고 불려지는 경향이 단일한 完全性[완전성]을 가진 무엇이 아님을 독자로 하여금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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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非單一性[비단일성]을 가장 명료히 보여 주는 이는 역시 金起林[김기림]씨로서 去年[거년]중에 발표한〈詩[시]에 있어 技巧主義[기교주의]의 反省[반성]과 發展[발전]〉〈午前[오전]의 詩論[시론]〉등의 勞作[노작]으로 부터 비롯하여 氏[씨]의 기교주의에 대한 반성은 부단한 摸索[모색] 過程[과정]을 통하야 금번의 논문〈詩人[시인]으로서 現實[현실]에 積極關心[적극관심]〉에서 보는 바와 같은 상당히 명확한 현실적 자각에 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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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는 詩[시]에 있어 현실적 관심의 새로운 태도를‘全體主義’[전체주의]라는 개념으로 命名[명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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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體主義’[전체주의]라는 氏[씨]의 개념 가운데는 내용과 형식을 同列[동렬]에 놓는 等價的[등가적] 均衡論[균형론]의 餘薫[여훈]이 적지 않음에 불구하고 詩[시] 가운데 생활 현실이 차지할 중요한 자리를 작만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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技巧[기교]를 가지고 詩[시]의 전체를 삼음으로서의 현실로부터 완전히 도피하는 技巧主義[기교주의]에 비하여 이것은 하나의 瞠目[당목]할 전환이라고 평가함은 지나친 과장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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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완성을 바라기엔 먼 道程[도정]에 있고 그 길은 심히 迂廻的[우회적]이나, 現實[현실] ── 詩的[시적] 내용의 重要點[중요점] ── 에 대한 접근의 이러한 점진적인 반성의 노선은 기교주의에서 성장한 성실한 시인이 自己完成[자기완성]의 길 위에서 걷는 바 거의 전형적인‘코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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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的[시인적] 발전의 이러한 특이성은, 곧 개개의 작가의 예술적 발전과정을 가지고 劃[획]할 수 없는 하나의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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昨今[작금] 年間[연간]에 보히고 있는 起林氏[기림씨]의 이러한 특이한 行程[행정]은, 먼저 말한 기교파의 不統一[불통일], 非單一性[비단일성]을 이야기하는 사실일 뿐 아니라. 기교파의 현재라는 것이 한개의 격렬한 動搖[동요] 가운데 놓여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더우기 氏[씨]가 과거 기교파 시인들 가운데서 점유하고 있던 바, 지도적 지위에 비쳐 볼 때 그 중요성은 개인적 사건의 범위를 훨신 초월하는 것일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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起林氏[기림씨]의 이러한 발전적인 전진에 비하여 우리는 한개의 對蹠的[대척적]인 예를 朴龍喆氏[박용철씨]가 이론적으로 변호하고 있는 보수적인 기교파에서 찾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정확히 말하자면 起林氏[기림씨]가 우리와 논의하고 있는 대신 朴龍喆[박용철]은 우리들에게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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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항의 배후에는 곧 氏[씨] 등이 현대의 桂冠詩人[계관시인]으로 만들고 있는 鄭芝溶氏[정지용씨]를 비롯하여 그 뒤에 많은 有象無象[유상무상]의 기교주의적 亞流[아류]들의 초라한 표정을 엿보기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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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 있는 대로 계속하여 기교주의 詩人[시인]들과 이야기 하려는 나의 企圖[기도]는 결코 朴龍喆氏[박용철씨]가 얼굴을 붉히고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무슨‘문단 헤게모니를 유일한 목표로 삼는 비열한 徒輩[도배]’의 心思[심사]로서가 아님을 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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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우리나라 詩文學[시문학]의 찬란한 새벽을 맞기 위하여 성실한 협동을 논의하고 그 가운데서 바르고 옳은 길을 찾으려는 것이 나의 의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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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왕 우리나라의 순수예술의 옹호자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이들은 비평이란 것을 한 개의 閑逸[한일]한 讀後感[독후감]이나, 印象[인상]의 說話[설화]로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비평이 詩人[시인]을 원조하는 것이 결코 단순한 찬사에 있지 않고, 때로는 詩人[시인]의 그릇됨을 지적하여 是正[시정]의 길을 지시하고, 나아가서는 個個[개개]의 詩人[시인] 뿐만 아니라 모든 詩人[시인]이 개척해야 할 일반적 방향을 가르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시인과 비평이 그것의 발전을 위하여 협동하는 형태인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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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현명한 작가, 시인은 결코 찬사를 즐겨 하지 않으며 성실한 비평은 반대로 장점보다도 그 단점을 指示[지시]함으로써 문학의 전진을 도웁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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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劣[우열]한 詩人[시인]만이 비평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항상 평가에는 비평할 의무가 隨伴[수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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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詩壇[시단]에 있어 詩[시]의 기교적 一面[일면]에의 偏向[편향]을 주요한 논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詩[시]의 발전을 위하여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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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기 現在[현재]에 보는 바와 같이 시를 언어적인 技巧化[기교화]의 邪途[사도]로 이끌려는 潮流[조류]가 詩壇[시단]을 압도하고 있을 때 건전한 詩文學[시문학]의 건설자일려는 의지가 때로 守舊的[수구적]인 技巧詩[기교시]에의 敵意[적의]로 표시됨은 역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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技巧主義[기교주의]에 대하여 결별을 고하는 성실한 詩人[시인]이 낡은 동료들에게‘現實[현실]로의 도라 우편 앞으로!’의 軍號[군호]를 부르는 열성과 우리들의 감정은 그 質[질]에 있어 矛盾[모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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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朴龍喆氏[박용철씨] 등의 방향은 일찌기 기교파의 성실한 詩人[시인]까지가 抛棄[포기]한 이미 부정되어 버린 입장에서 拙稿[졸고]에 대하여 敵意[적의]에 가까운 격렬한 어조로써 비난을 가한 것이 정히 이 守舊的[수구적] 技巧主義[기교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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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새삼스러웁게도 技巧主義[기교주의]라고 불려지는 詩壇[시단]의 幽靈[유령]은 사실은 拙稿[졸고]〈詩壇一年[시단일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낡은〈藝術[예술]을 爲[위]한 藝術[예술]〉사상이란 前世紀[전세기]의 遺物[유물]의 부활로서 현대시 가운데 至上主義的[지상주의적] 詩歌[시가]를 통 털어서 부른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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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起林氏[기림씨]가 말한 것과 같이 藝術至上主義[예술지상주의]라는 것이 汎博[범박]한 倫理[윤리] ── 思想[사상] ── 上[상]의 개념인 대신 기교주의란 美學上[미학상]의 개념으로, 그 가운데는‘이마지즘’‘슈르레아리즘’‘포르마리즘’‘모더니즘’기타가 雜居[잡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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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그들은 잡다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詩[시]로부터 일체의 현실적 내용을 捨象[사상]하고 기교적 완성을 가지고 詩[시]의 목적을 삼는 데서 一致[일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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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詩[시]란 생활하고 존재하는 무엇을 표현하고, 그러함으로써 詩[시]가 인간의 광범한 생활의 하나가 되는 대신, 詩[시]란 그 자신을 위하여 노래되는 것으로 美學的[미학적] 완성을 그 終局[종국]의 이상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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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낡은 용어를 빌면 修辭學[수사학]의 理想[이상]으로부터 一歩[일보] 더 앞으로 나갈 것을 기피하는 것이다. 무엇이고 생활적, 현실적인 것으로 말미아마 그들의 예술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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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文學上[시문학상]의 예술지상주의가 금일의‘榮華’[영화]를 누리기까지에는 고난에 찬 몇개의 고비를 지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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技巧主義[기교주의]란 始原的[시원적]으로는 20년대 전후에 발족한 조선의 市民的[시민적] 詩歌[시가]의 성격 가운데 胚胎[배태]된 것으로, 新詩[신시]의 진보적인 생명을 단축케 한 最重要[최중요]의 성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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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初[태초]로부터 사회적 입장에 있어 과분히 折衷的[절충적]이었던 조선의 新詩[신시], 한번도 市民的[시민적] 階級[계급]의 본래의 욕구를 혁신적인 언어로써 노래해 보지 못한 新詩[신시]가 겨우 최초의 發展期[발전기]를 맞이한 것은 小市民的[소시민적] 혼란의 형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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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詩史[신시사] 최초의 隆盛期[융성기]가 1922, 3년경,‘白潮’[백조] 기타의 世紀末的[세기말적] 詠嘆[영탄] 가운데서 자기의 花環[화환]을 받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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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시대가 대표하는 露雀[노작], 月灘[월탄], 岸曙[안서], 尙火[상화], 懐月[회월] 등의 詩人[시인]이 현실로부터 도망하는‘포즈’는 결코 금일의 기교주의 詩人[시인]들이 취하고 있는 바와 같은 비겁하고 소극적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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起林氏[기림씨]가 기교주의의 시조라고 보는‘뽀드레르’같은 사람의 태도 즉 현실이란 친밀하기엔 너무나 추악하기 때문에 아주 현실을 떠난 곳에 詩[시]의 세계를 건설하려고 하였던 그것과 近似[근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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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현실로부터 떠나가는 태도 속에는 추악한 현실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격앙된 증오의 火焰[화염]이 숨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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散文[산문]의 세계에서 현실의 惡[악]을 폭로할려는 자연주의와 그들은 직접의 관계를 맺고 있어 惡[악]을 노래하는 것으로 惡[악]에 대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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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얼마가지 않어‘力 [역]의 詩[시]’‘力[역]의 藝術[예술]’(白潮[백조])을 갈망하며 자연주의에까지 반대하면서 독특한 낭만주의의 방법을 가지고 新世紀[신세기]의 詩[시]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新傾向詩[신경향시] 발전에 있어 그 직접의 藝術的[예술적] 産母[산모]의 하나가 된 것이다.이 격렬한 変異[변이]의 과정에서 낙오한 一群[일군]의 詩人[시인]과 새로운‘에피고넨’이 혹은 傳統主義[전통주의]에 떠러지고, 혹은 詩[시]를 버리고 하면서 갈수록 자기의 예술을 발전하는 現實[현실]로 부터 격리시키면서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이들 20년대에 출발한 詩人[시인]들이 그 뒤에 하나도 우수한 작품을 보여 주지 못함은 교훈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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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5년대로부터 6, 7년에 亘[긍]한 오랜 동안에 至上主義[지상주의][시]는 갈수록 현실과의 거리를 멀리하여 사상과 의지와 생활의 감정으로 시를 만드는 대신 언어적 기교와 개인의 푸념으로, 詩[시]를 만들기에 열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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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들의 오늘날의‘榮華’[영화]는 과연 오랫동안 耐久的[내구적]인 刻苦精進[각고정진]의 자연의 果報[과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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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마다! 이것은 朴龍喆氏[박용철씨] 등의 대답이다. 그러나 前期[전기 拙稿[졸고]에도 말한 바와 같이 이‘榮華’[영화]의 기초에는 다른 한개의 커다란 자유가 따르고 있음을 어찌 부정하랴.
 
41
이것은 단지 詩壇[시단]의 流派盛衰[유파성쇠]를 현상적으로, 또는 자기의 한개 주관을 가지고 관찰하려는 故意[고의]도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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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현상의 變移[변이], 交替[교체]에는 순수한 예술적 이유 외에 그것을 제약하는 社會史[사회사]의 법칙이 따름을 필자는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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技巧派[기교파] 금일의‘榮華’[영화]를 하나의 아름다운‘詩 ’[시]적 이유로 돌리려는 者[자]만이‘傾向文學’[경향문학]의 불행과 기교파의 榮華[영화]가 동시에 존재하는 이상하고 야릇한 현상의 사실대로의 지적을‘不謹愼[불근신]한 誣告[무고]’와 ‘사실인식의 착오’로 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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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기교파의 번영을 결코 사회적인 이유로서만 설명하지 않었다. 傾向詩[경향시]가 宿痾[숙아]로 갖고 있던 지나친 內容偏重主義[내용편중주의] 그것이 결과하는 언어상의 약점이, 또한 詩[시]의 기교적 완성을 목표로 하는 기교파의 詩[시]가, 독자나 문학 청년들 가운데 이러한 외적 정세와 아울러 일시적으로 수용될 가능성을 가젔음을 잊지 않고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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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等[차등]의‘가능성’이 사실에 있어 1931년 이후 점진적으로 현실화 되어 이상하고 우연하게도 傾向詩[경향시]의 불행의 度[도]가 증가할수록 기교파의 번영의 度[도]는 반대로 増長[증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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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세의 변화가 神秘主義[신비주의], 象徴主義[상징주의], 至上主義[지상주의]의 발전을 조장하리라는 豫斷[예단]을 말한 咸大勳氏[함대훈씨]의 所論[소론]은 이러한 의미에서 수긍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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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進歩的[진보적] 詩歌[시가]에 대한 부자유한 客觀的[객관적] 분위기의 확대는 그들의 활동에 있어 自由[자유]의 天地[천지]에 展開[전개]’라는 나의 지적이 어디의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지 나는 알고 싶다.
 
48
한편의 詩歌[시가]가 저렇게도 통렬히 추구되는데, 기교주의가 갈수록 安在[안재]하고, 번영함을 그럼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49
이러한 아픈 사실 때문에 나는 기교파 시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시인인 起林氏[기림씨]와 더불어 오랜동안 이야기하고저 한 것이다.
 
50
유감된 일이나 朴龍喆氏[박용철씨]는 기교파에 대한 나의 일반적 논란을 起林氏[기림씨]의 머리에 던지는 나의 敵意[적의]로 誣告[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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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광범한 의미에 있어 조선의 기교파에 대한 논란은 起林氏[기림씨] 자신에 있어서도 적용됨은 면치 못할 것이다.
 
52
그러나 起林氏[기림씨]에 대한 현재의 불만은 근본적으로 보면 氏[씨]의 이론에서 보는 바 현실에 대한 증대하는 관심과 技巧主義[기교주의] 否定[부정]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氏[씨]의 近作[근작]은 심히 그 곳에 미치지 못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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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氏[씨]가 금번 논문을 보여 주기 전까지의 諸勞作[제노작]에 있어 近代詩[근대시]의 발전에 대해 심히 일방적인 史的[사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그것에 向[향]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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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抒情詩[서정시]로부터 19세기 말의‘데카당스’를 지나 금일에 이른 詩[시]의 발전사상‘프로’詩[시]의 道程[도정]을 무시한 일점을 論難[논란]한 것은 起林氏[기림씨] 자신도 긍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결코 나의 誣告[무고]가 아니다.
 
55
이곳은 분명히 무엇이고 正常[정상]치 않은 사태에 의한 나의 所說[소설]의 왜곡이 있는 듯 싶다.
 
56
이 외에도 朴氏[박씨]의 논문을 비평으로서 경청하기에는 너무나 지내치는 흥분이 논리의 명확성을 가리고 있어 독자에게 유쾌치 못한 所感[소감]을 주는 것으로, 나의 이론적 태도를 비평함에 있어 拙作詩[졸작시]에 대한 장황한 비난으로부터 출발하는 등, 비평의 禮儀[예의]로서는 그 배울 바 되는 듯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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拙作[졸작]이 문자대로 졸렬한‘詩’[시]임은 오래 전부터 스스로 느끼고 부끄러워 하는 바이다.그러나 또 그와 마찬가지로 氏[씨]가‘拙劣[졸렬]’에 대한 對蹠的[대척적]‘우월’로 해설의 勞[노]를 애끼지 않은 鄭芝溶氏[정지용씨]의 諸作[제작]을 나는 鄭氏[정씨] 개인과 작품에 대한 年來[연래]의 敬意[경의]에 불구하고 그다지 높이 평가치 못하는 者[자]의 한사람이다.
 
58
우리들을 울리고, 괴롭히고, 때리고, 노하게 하는 헤일 수 없는 많은 현실의 大海[대해] 가운데서‘미사’의 촛불을 밝히고, 천국을 빌며 하나의 어린 자식의 죽엄을 萬[만]사람의 동포의 死[사]와 불행보다도 아프게 정감하는‘영혼’과‘感性[감성]’에 대하여 나는 금할 수 없는 敵意[적의]를 느낀다.
 
59
芝溶氏[지용씨]의 작품 가운데서‘鄕愁[향수]’와 같이 슬픈 노래를 나는 버리는 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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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深奥[심오]에 徹[철]하는‘슬픔’을 보복의 뜨거운 불길로 고치지 못하는 詩人[시인]을 나는 조선 사람에게 猶太人[유태인]의 운명을 권함이라고 생각한다.
 
61
나는 抒情詩[서정시]라는 것이‘靈魂[영혼]의 感動[감동]’을 노래하는 것이라든가, ‘感情[감정]은 다만 하나의 온전한 狀態[상태]’이라든가, ‘그 自體[자체]는 말을 갖지 않었다’든가, ‘狀態感情[상태감정]은 반드시 어떠한 形體[형체]에 태어난 그 表現[표현]을 達成[달성]한다’든가 하는 신비적이고, 啓示的[계시적]인 靈感[영감]에 의한 詩作設[시작설]을 믿을 수는 없다.
 
62
[씨]에 의하면, 詩[시]는‘高貴[고귀]한 靈魂[영혼]’만이 감지할 수 있는 세계이고, 詩[시]란 한개의 ‘魔術[마술]’이라 한다.
 
63
‘靈魂說’[영혼설]이란 천주교도와 더불어 의논할 것이고 우리들 俗輩[속배]의 關知[관지]할 배 아니나,‘感情[감정]은 하나의 온전한 狀態[상태]’이라는 것은 낡은 말로‘本能說[본능설]’ 요새 말로 하면 生物學主義[생물학주의]이다.
 
64
[시]는 (서정시도!), 감정에 의하여서만 노래되고, 감정을 통해서만 독자에게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두개의 이유에 의하는 것으로 하나는 感情[감정], 情緖[정서]와 더불어 理智[이지]를 가지고 있고, 이 양자로써 독자에게 호소하는 것이며, 감정이란 동물에 있는 것과 같은 온전한 생물적 본능의 發現[발현]이 아니라, 인간에게만 고유한 思惟[사유]와 知性[지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65
感情[감정](혹은 感覺[감각])이란 認識[인식]과 판단의 端初[단초]이면서 또 그것에 의하여 확인되고 강화되며 자체를 현실화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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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보고 본능적으로 손을 떼는 중추신경(뇌에 達[달]치 않은)의 반사작용을 우리는 감정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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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사랑하는 애인이 죽어 슬픈 것은 우리들의 지성의 감각으로부터 思惟[사유]를 통하여 명확히 그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판단, 확인키 때문에 정말 슬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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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잃은 어린아이가 한참 울고 가다가 엄벙덤벙 동무들과 장난하는 통에 슬픈 것도 잊고 웃고 하다가 별안간 몹시 울고 하는 것은, 다시 생각하니 어머니가 분명히 죽었다는 것을 理性[이성]은 일층 확실한 자태로 그 아이에게 확신케 하는 때문이다.
 
69
‘靈魂[영혼]의 感動[감동]’ ‘그 自體[자체]는 말을 갖지 않었다는 것’은‘영혼’이란 것을 내가 무엇인지를 이해치 못함으로 무어라 말할 수 없으나, 만일‘영혼의 움직임’을 인간적 思惟[사유]의 일종이라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언어와 함께 있는 것이다.
 
70
금일의 人類史[인류사], 言語史[언어사]는 思惟[사유]가 언어와 함께 있음을 말할 뿐더러, 日常[일상]으로 경험으로서 우리는 言語[언어] 없이 思惟[사유]를 영위할 수는 없다.
 
71
‘狀態感情[상태감정]’은 내버려 두어도 자발적 표현을 달성한다는 것은 創作道程[창작도정]을 신비적으로 흐려 버리는 것으로, 우리가 배고픈 감정을 밥을 달란다든지, 집어 먹는다든지 하는 말이나 행위로 표시하지 않는 한, 그것은 목구녕에 침만 넘기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72
표현의 달성이란, 생각의 容觀化[용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침을 생키는 것은 결코 배고픈 감정의‘達成[달성]’은 아니다. 지내치게 言句[언구]에 拘碍[구애]한 것 같으나, 실은 그의 試論[시론]의 奥地[오지]를 밝히고 싶었음으로이다.
 
73
요컨대 詩[시]는 마술이고 그 製作道程[제작도정]은 과학적으로 不可解[불가해]의 것이며, 서정시란 지성이나 판단에 오르지 않는 低度感覺[저도감각]에 머물 것이고, 허잘 것 없는 감정을 고흔 말로 씨워 놓으면 훌륭한 詩[시]가 되는 것이며, 詩[시]란 생활이나 현실의 문제를 건드리지 말 것이라는 것이다.
 
74
‘아름다운 辯說[변설], 적절한 辯說[변설]을 누가 사랑치 않으랴 그것은 우리 인생의 기쁨’이라는, 소위‘辯說詩[변설시]’에 대한 氏[씨]의 돌연의 수긍은 곧 생활의, 현실의 문제의 辯說[변설]이 아니라 감정의 辯說[변설]을 의미하는 것이다.
 
75
우리는 생활의 좋은 辯說者[변설자], 나아가서는 새로운 세계의 창조적 夢想[몽상]의 辯說者[변설자]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76
守舊的[수구적] 기교주의란 천주교를 노래한 어느 詩篇[시편]에서 보는 바와 같이 詩[시] 그것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實人間[실인간]의 그 무엇을 위하여 있는 것을 은폐하는 一方便[일방편]이다.
 
77
그리하여 이러한 詩篇[시편]들이 가진 언어, ‘리듬’의 특징은 평화롭고 牧歌的[목가적]이며 참새의 지저귐 같이 고요하고 얕다.
 
78
新時代[신시대]의 詩[시]는 생명을 표현하고 죽은 자연까지도 산 말로 노래하는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79
‘일보를 讓[양]하야 예술상의 技巧主義者[기교주의자]가 曇天下[담천하]에 특별한 건축물을 설계하고 人工的[인공적]으로 太陽燈[태양등]을 設計[설계]한다고 하자, 이것으로 그들이 曇天下[담천하]의 주민이 아니 될 이유는 조곰도 없는 것이며, 또 그들이 이 人工的[인공적] 架論[가론]를 유지하는 데는 우리의 想像[상상] 이상의 否定的[부정적] 力量[역량]을 필요로 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 (朴氏[박씨])
 
80
아마도 이 말은 모든 傾向[경향]의 기교주의적 혹은 전통주의적인 詩歌[시가]까지가 자기의 위치를 사회적으로 유효하게 설명하는 한개의 푸념일 것이다.
 
81
요컨대 너희 만 曇天下[담천하]의 고난을 격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적지 않은 괴로움이 있다는 것인데, 문제를 技巧主義[기교주의] 一方[일방]에 한정한다면, 上記[상기] 인용의 하반부가 말하는 바와 같이 소위‘부정적인 노력’그것을 일컬음인 듯 싶다.
 
82
19세기 말의‘데카당스’가 현실은 추악하기 때문에 그곳으로부터 遊離[유리]하고 도망한다는 태도를 본받음인 듯 싶은데 물론 이러한 일반적 공통성을 인정하는 것이나, 첫째 이러한 현실 도피, 절망 자체가 우리들의 생존을 위하여 有害無益[유해무익]한 것이고, 다음으로 이런 동일한 非現實性[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갖는 바 역사적 차이를 간과치 말어야 한다.
 
83
살려고 하는 인간이 생활하는 것이 곤란하다고 절망하고, 도피하고, 단지 부정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그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84
다음에, 양자간의 내용적 차이란 곧 우리 20년대의 낭만파 시인들과 이들 현재의 기교파의 諸[제] 성질을 비교하는 것으로 용이하게 그 해답을 찾을 수가 있다.
 
85
相和[상화], 懐月[회월], 月灘[월탄]은 비탄하고 절망하고 현실을 부정만한 것이 아니고, 自然主義[자연주의]에서까지 그들을 구별하는 最重要[최중요]한 요인은 그들이 격렬한 현실에 대한 증오로 충만하였고 그 一隅[일우]에는 부단히 초조하면서도 암흑 가운데서 모색하는 정신이 숨어 있었던 때문에 그들의 詩[시]는 활줄같이 우렁찼다.
 
86
그러나 금일의 寫像主義的[사상주의적] 詩人[시인]들이나 芝溶氏[지용씨] 등과 같은 이, 혹은 起林氏[기림씨] 같은 이의 諸作[제작]에서는 기운 없는 言句[언구]로 3이란 字[자]가 數[수] 셋을 의미하듯이 事物[사물]의 말단을 그리는 데 만족하고, 개인의 불행을 노래하는 抒情詩[서정시]나, 성모 ‘마리아’를 그리는 종교적 감정이라든가, 혹은 겨우 胚胎[배태]된 비판적 의지가 詩人[시인]이 갖는 器物[기물]에 대한 소비자적 執愛[집애]라든가, 언어의 기교주의적 구사에 의하여 무디어지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87
금일의 조선에서 기교파라고 볼 수 있는 시인 가운데 起林氏[기림씨]의 약간의 近作[근작]을 除[제]한다면 유감된 일이나, 아무 곳에서도 朴龍喆氏[박용철씨]가 말씀한 바 우리가 상상키도 難[난]한 부정적 정신은 발견할 수가 없다.
 
88
이러한 허무한 노력에 대하여 金起林氏[김기림씨]가 던진 言句[언구]는 심히 示唆[시사] 깊은 것이다.
 
89
[씨]는 기교파 詩[시]가 금일에 낡은 기교파 詩人[시인]들에게‘現實[현실]에의 積極關心[적극관심]’을 제의하는 이유가 다름 아니라, 실로 그것은 ‘기교의 詩[시]’인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90
만일 朴氏[박씨]의 말과 같이 나의 관찰이 사실을 正視[정시]하지 못하고, 인식을 그릇했다 하더라도 조선 기교파 詩[시]의 지도적 詩人[시인]이었던 이 詩人[시인]의 고백까지를 안 믿어야 할까?
 
91
자기의 오랫동안의 信條[신조]이었고, 일찌기 스스로 그 擁護[옹호], 主張者[주장자]의 1인이었던 이 詩人[시인]이 기교주의에 대하여 반대한 것은 정히 기교주의에 대한 경멸적, 부정적 의지의 표현이 아니고 무엇일까?
 
92
최후로 起林氏[기림씨]와 더불어 이야기할 것은 拙論[졸론]에 대한 氏[씨]의 약간 誤認[오인]으로 나의 논고에서‘傾向詩[경향시]’의 역사적 지위와, 近代詩[근대시]의 발전 道程[도정]에 대한 素描[소묘]는 氏[씨]가 이해한 그러한 것이 아니다.
 
93
물론 조선의‘傾向詩[경향시]’가 氏[씨]가 말하는 바 근대시의 전체적 과정을 완전히 졸업했다는 의미는 아니며, 1930년 이전의‘傾向詩[경향시]’가 내용 편중의 공식주의 가운데 있었다는 氏[씨]의 지적은 정당한 것이요, 그것의 완성이 今後[금후]에 있다는 것은 우리들 자신과 함께 긍정할 바 진실이다.
 
94
그러나‘傾向詩’[경향시]가 갖는 近代詩史上[근대시사상]의 지위와 성질은 그것이 창작적으로 자기를 아직 완성치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전주의 詩[시]로부터 근대 낭만주의‘데카다니즘’등의 역사적 발전의 일정한 달성과 그 과정 가운데서 필연적으로 生成[생성]한 것이라는 말이다.
 
95
이 모든 流派[유파]가 각기 그 先人[선인]의 詩[시]로부터 받아내려 온 적극적인(藝術的[예술적], 思想的[사상적]으로!)것의 必然的[필연적]인, 接續的[접속적]인 계승자로서 자기의 출발점을 삼은 것이다.
 
96
물론 拙稿[졸고]에 있어 이것은 국제적인, 세계사적인 의미에서 말해 진 것으로, 起林氏[기림씨]가‘내가 詩[시]를 쓰고, 또 생각하기 시작한 때는 벌써 프로 詩[시]가 왕성하지 못했고, 따라서 내 思考[사고] 속에 강렬하게 압박해 오지 않았던 까닭에 그 일은 극히 자연스러웠다’는 고백은 우리 傾向詩史[경향시사]의 事情[사정]을 정확히 반영한 말이다.
 
97
그러나 우리 朝鮮詩史[조선시사]의 이러한 특수성을 가지고 그 역사적인성질은 물론 부정될 것이 아니며, 오히려‘앙드레지드’가 파리작가 회의에서 아직 미숙한 쏘비엣 문학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협력할 것이고, 또한‘가치 있는 문학이란 금일에 있어 아마도 이 사회에 대립하는 문학 이외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없다’는 그러한 아량을 나는 우리 성실한 詩人[시인]에게 기대하고 싶다.
 
98
그러나 이러한 觀念的[관념적] 自矜[자긍]을 가지고 자기의 예술적 완성을 게을리함은 어리석은 일인 동시에 그 결함때문에 가치 있는 반면을 몰각함은 현명한 자의 취할 바 태도가 아닐가 한다.
 
99
우리들의 詩[시]가 그 결함을 극복하는 긴 道程[도정]을 통하여 도달하는 지점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起林氏[기림씨]는 全體主義[전제주의]의 詩[시]라고 하였다.
 
100
물론 이 상태는 詩[시]의 理想的[이상적] 상태로서‘내용과 기교를 통일한 한 全體[전체]로서의 詩[시]’일게 틀림이 없으나 그것을 全體主義[전체주의]라고 이름 하는 것보다는 가장 완성된 詩[시], 다시 말하면 明日[명일]에 있어 유일한 완성된 詩[시]라고 봄이 명확한 槪念[개념]으로 결코 我田引水的[아전인수적]인 主見[주견]이 아닐까 한다. 이 완성된 詩[시]의 입장에서 볼 때 나는 오늘과 같은‘傾向詩[경향시]’를 그 幼年時代[유년시대]라고 생각하며 오히려‘傾向詩[경향시]’라고 부름을 부끄러히 생각되는 것이다.
 
101
오직 이‘內容[내용]과 技巧[기교]의 統一[통일]’가운데는 양자가 等價的[등가적]으로 균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통일은 우선 전체로서의 兩者[양자]를 가능케 하는 물질적, 현실적 조건으로 성립하고 그것에 의존하며, 동시에 내용의 優位性[우위성] 가운데서 양자가 스스로 形式論理學的[형식논리학적]이 아니라 辨證法的[변증법적]으로 통일되는 것이다.
 
102
이‘統一[통일]’과‘全體[전체]’에 변증법적 이해를 缺[결]할 때 均衡論[균형론], 形式論理[형식논리]가 군림하는 것이며, 起林氏[기림씨]의 全[전] 論文[논문]을 통하여 이것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한 것임으로, ‘全體’[전체]라는 개념이 形式論理的[형식논리적] 餘薫[여훈]을 傳[전]한다고 나는 말한 것이다.
 
103
(1926.4)
【원문】기교파(技巧派)와 조선시단(朝鮮詩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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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화(林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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