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浪漫的[낭만적] 精神[정신]의 現實的[현실적] 構造[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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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新創作[신창작] 理論[이론]의 政堂[정당]한 理解[이해]를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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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문학, 예술을 일층 높은 발전의 계단으로 높이어 나가고 진실로 풍부하고 위대한 예술적 달성의 수준으로 그것을 이끌어 나아갈 새로운 창작이론은 한번 이 땅에 수입되자 진실로 유해한 형태로 왜곡되면서 유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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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에 있어서는 形式主義[형식주의]의 부활에, 혹은 藝術至上主義[예술지상주의]에의 복귀를 위하여, 혹은 市民文學[시민문학]으로의 일직선적인 轉回[전회]를 은폐키 위하여, 혹은 불성실한 자기의 과거를 위한 辨解[변해] 등등 실로 헤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방면에 이 이론은 귀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이론적으로 체계화 함에 역시 그들은 이 이론에다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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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어느때 또 누구의 所爲[소위]인지도 모르게 이 이론을 막연한 ‘리얼리즘의 實踐[실천]’이란 간소한 개념으로 바꾸어 놓아버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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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있는 그대로를 그려라!’ 과거의 문학의 諸[제] 實踐 [실천]은 이데올로기만 중시하고 형식의 특수성을 무시하였기 때문에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다.’그러므로 이데올로기를 문학으로부터 떼어버리고 예술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동시에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증류수와 같은 순수한 예술 위에 서야 한다는 절규가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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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설명과 주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누구의 눈에도 명확히 이해될 수 있는 한개의 특별한 사상으로, 한편으로는 예술문학의 당파성의 완전한 부정이고, 문학적으로는 낡은 18世紀[세기]의 소위‘絶對[절대]客觀的[객관적] 沒我[몰아]의 寫實主義[사실주의]’에로의 복귀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의 문학은 한 백년 전의 과거로 퇴각해야 한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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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간이나 자연의 諸[제] 歷史[역사] 가운데 있어 동일한 것이 반복하는 예는 없다. 그들은 문학이 현실을 반영하는 성질, 한계에 대하여 전혀 추상적인 객관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리얼리즘을 마치 맑은 호수가 하늘의 별을 반영하는 것같이 絶代沒我[절대몰아]의 사실로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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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사실주의적 방법만 가지면 호수도, 날으는 새도, 지나가는 구름도, 공허한 하늘도, 모두 있는 그대로 무엇이고 반영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문학은 현실의 전부를 그 가운데 반영할 수 있으며, 반대로 현실이면 아무 것을 그려도 훌륭한 문학이 될 수 있다는 기괴한 견해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리얼리즘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상가는 한개의 最重要[최중요]의 사실 앞에 맹목이라는 것을 곧 폭로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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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문학은 호수의 물과 같이 無意志[무의지]한 자연의 산물이 아니고 인간의 정신적 활동의 소산이라는 점을……. 왜 이것이 중요하냐 하는 것은 긴 설명을 요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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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인간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식성, 주관이 전면에 서 있는 문학적 조류인 낭만주의 문학은 물론이어니와 우리들이 즐겨 예드는 발자크, 스탕탈의 寫實主義[사실주의]도 결코 완전한 沒我主義[몰아주의]요 절대적 객관성 위에 서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론을 위한 논리가 아니라 실제로 과거에 寫實主義[사실주의] 문학을 면밀히 연구한 결과 도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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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 스탕달, 톨스토이의 寫實主義[사실주의] 문학은 湖水[호수]에 의하여 쓰여지지 않고, 인간인 작가의 머리를 통해서 씌여졌다. 이러한 의미에서 과거의 寫實主義[사실주의] 문학은 주관과 자아로부터 眞空[진공]을 사이에 두고 격리되어 있지 않다. 즉 낭만주의 문학으로부터 절대적으로 절연되어 있지 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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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文學史[문학사] 가운데에서 절대적으로 순수한 寫實主義[사실주의]와 조금도 사실적이 아닌 낭만주의를 구별하는 것은 오직 抽象界[추상계]에 있어서만 가능한 것이고, 현실적으로 양자가 다 상대적인 한에 사실적이고 낭만적이다. 그러나 이 상대적이란 것은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양자가 가지고 있는 엄밀한 불가침의 특수성은 결코 부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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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이 특수성의 강조 없이는 모든 것이 혼돈하고 역사에 있어 평가가 불가능케 된다. 문학 가운데는 보다 사실적인 시대, 보다 낭만적인 시대가 있으며, 작품과 작가에 있어서도 사실적인 것이 낭만적인 것에 비해 지배적인 수가 있으며, 또 그 반대의 경우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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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학의 역사 위에서 이러한 사실적, 낭만적인 것은 지배적인 2대 경향으로 표현되어 문학사의 현실은 이 양대 조류의 상호 浸透[침투], 대립, 상충의 복잡한 작용으로 각각 그 특수화 된 성격을 구현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문학상에서 주관적인 것으로 표현되는 모든 것을 낭만적인 것이라고 부르며, 그것이 사실적인 것의 객관성에 대하여 주관적인 것으로 現顯[현현]하는 의미에서 ‘浪漫的[낭만적] 精神[정신]’이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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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곳에서 부르는 낭만적 정신이란 개념은 어떤 특정의 시대, 특정의 문학상의 경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개의 원리적인 범주로서 칭호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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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것을 원리적인 범주라고 부르느냐 하면 먼저도 잠간 말했지만 문학이라는 것은 자연, 인간 그 어느 것이나 혼자가 고립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생활적 관계 가운데서 형성되는 것이고, 직접적으로는 인간의 의식적 활동의 一所産[일소산]인 문학적 현실이란,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낭만적인 것의 상호관계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적 현실의 세계라는 것은 객관과 주관의 相剋的[상극적] 운동에서 현실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의 모순되는 관계 가운데서 형성되며, 반대로 문학적 현실은 현실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으로 전부가 환원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학에 있어 寫實的[사실적]=敍事的[서사적]인 것과 浪漫的[낭만적]=抒情的[서정적]인 것은 진실로 原理的[원리적]인 兩大[양대]의 범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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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文學史上[문학사상]의 명멸한 數多[수다]의 경향의 문학적 조류도 이 兩大[양대] 범주의 역사적인 운동 형태로 볼 수가 있다. 이것은 문학사의 평가에 있어 극히 중요한 계기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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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두개의 개념의 역사적 활동은 단지 시간적일 뿐만 아니라, 역사 자체가 그러한 것과 같이 공간적인 것, 즉 역사 그것의 각 시대가 되고 있는 사회적 내용에 의해 다시 제약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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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역사적 시대 가운데에 생활하는 인간들의 사회적 諸關係[제관계]가 오히려 문학의 역사에 있어서는 역사의 自然史的[자연사적] 방면보다도 지배적인 힘(力[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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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회의 생활적 諸關係[제관계]는 그 시대의 인간이 자연과 관계하는 정도, 바꾸어 말하면 사회적 생산력의 발달 수준에 의존하는 것으로 이 생산력의 발전과 생산관계, 그 위에 서는 사회적 諸關係[제관계]가 모순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조건으로 말미암아 일층 더 문학적 성격은 좌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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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가운데서 사실과 낭만, 두개의 운동을 어떻게 제약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큰 논문을 하나 필요로 하는 것이나, 이곳에서 간략한 윤곽을 그리면 대체 이렇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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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문학이란 관념적 산물이 모두가 그러한 것과 같이 항상 그 시대, 그 사회를 경제적,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계급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그 계급에 의하여 지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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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略[략]) 過渡的[과도적] 시대의 문학은 대단히 복잡한 형태를 띠우는 것으로 전자가 내용적으로 과거와 결부되어 가는 대신 형식적인 完美[완미]를 추구하여 공허한 스타일의 均齊[균제]만이 남어서 일종의 형식주의가 지배적 경향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후자에 있어서는 거래에 대한 뜨거운 정열과, 커다란 空想[공상]이 앞을서서 형식, 스타일에 대한 배려는 第二義的[제이의적]인 위치에 있게 되어 내용의 偏重主義[편중주의]가 지배적으로 문학 위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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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순전히 새로운 문학의 역사적 담당자가 아직도 물질적으로 성숙치 못하고 문화적으로는 과거의 문화에 대하여 아직 자기 문화의 독특한 형식을 획득하기 전의 문학적 경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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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18세기의 최후 30년과 19세기의 최초 2,30년간을 통하여 구라파 문학사상에 출현한 문학적 경향으로서 浪漫主義[낭만주의]에서 그 가장 적당한 예를 찾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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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중세적 고전주의에 대하여 대두한 이 沒我主義[몰아주의]는 단일적 개념으로서의 낭만주의가 아니라, 국민적 ── 英[영], 獨[독], 佛[불] 등등의 특수적 낭만주의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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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이것은 단지 각국의 문학의 전통이나 사회 정치적 조건이 틀린다는 데서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古典主義[고전주의]가 世界主義[세계주의] ── 超民族的[초민족적] 인류애를 염두에 둔 기독교적 세계관의 기초 위에서 있는 대신 낭만주의는 國民主義[국민주의] ── 신흥 부르조아지의 민족 통일과 국민적 국가 형성의 세계관 위에 서 있는데 그 핵심적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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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더욱이 고전주의가 전사회의 공통한 논리를 대전제로 한 대신 낭만주의가 개인적인 생활 감촉, 태도 등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고전주의적 문학에 있어 성격의 논리적 보편화가 지배적인 대신에 낭만주의적 문학은 극단의 개성화를 對置[대치]하였다. 그들은 그때의 세계관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낭만주의 문학은 近代 市民社會[근대 시민사회] 고유한 예술인 리얼리즘을 실현하기 위한 一前提[일전제]로서 고전적 문학을 ‘否定[부정]’하고‘批判[비판]한 대신 새것을 구체적으로 명확히 제시치 못한 것으로 역시 과도적 경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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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낭만주의는 명확히 사회적 진화의 노선상에서 貴族[귀족], 資産家[자산가]의 문화로부터 공업 자본가의 문화로의 推移期[추이기]인 사회적 전환기에 대응하는 경향이었다. 그러므로 19세기 후반의 귀족적 낭만주의가 신흥하는 사실주의에 대하여 반항을 試[시]한 것에 대하여 이 시대의 낭만주의는 歷史主義的[역사주의적]인 다시 말하면 진보적 낭만주의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첫째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역사를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실주의, 낭만주의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것, 주로 르네상스를 중심으로 구라파 문학상에 나타났던 고전주의로부터 낭만주의를 거쳐 사실주의에 이르는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이것의 역사적, 사회적 구체성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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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는 문학이 대체로 객관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 그리고 그 반영을 가장 객관적으로 실행하는 사실주의 문학이란 어느 정도의 한계하에 있는가, 하는 이 두개의 사실을 해명해야 한다. 우선 일반적, 기초적인 테마로서 후자의 것부터 이야기하자면 문학이란 그 정도나 한계에 다소간 相距[상거]가 있을지언정 그것이 어떤 의미로서이고 객관적 현실세계를 내용으로 하지 않고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그리스 시대의 옛날로부터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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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詩學[시학]」에서부터 예술은 ‘自然[자연]의 模倣[모방]’이라고 불러왔고, 또 사실 서정적, 낭만적인 것에 비하여 서사적, 사실적인 것이 본원적인 것은 다음의 사실에 의하여 진리가 아니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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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문학은 그 원시적 형태에서부터 叙情時[서정시]로서보다는 敍事時[서사시]로서 발전해 왔고, 혹은 敍事時的[서사시적] 요소를 점점 더 많이 가해가면서 叙情時[서정시]로서의 발전을 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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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문학이 본래 언어적 형상을 통한 감정이나 정서의 전달이기 때문에 그 감정, 정서를 생생한 힘으로 남에게 전하려면 그러한 감정 내지 정서를 일으키지 아니치 못한 일정한 상태의 사실적 형상을 제시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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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시 그것은 언어적 수단에 의한 사실적 형상의 구성이란 의미에서 한개의 한정을 갖는 것이다. 즉 언어는 인간이 말하는 언어이며, 동시에 그것은 인간의 認識[인식], 思惟[사유] 등의 객관적 과정을 통과하는 것이므로 비자연적, 정신적인 요소가 숙명적으로 가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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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이 주관은 작자가 현실 가운데서 어떠한 대상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과, 그 대상을 어떻게 형상화 하느냐 하는, 두가지 영역에서 표현되어 결국 리얼리티란 한정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즉 리얼리즘의 理想[이상]은 자연이나 현실 생활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해하는 범위에서 최대한의 실감을 주게 하는 방법, 그것을 말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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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결국 어떠한 문학에 있어서든 주관은 불가분의 것이며, 문학의 사실적 理想[이상]의 실현이란 것은 작자가 인식하고 思惟[사유]한 객관적 현실과 독자가 그 작품을 통해서 인식하고 思惟[사유]한 현실이 近似[근사]하고, 접근하고, 조화될 때 비로소 그 상태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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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고전주의로부터 낭만주의, 사실주의의 과정은 앞에 절에서 약간 말한 바도 있으므로 간략하게 말하면 대개 다음과 같을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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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로 古典[고전], 浪漫[낭만], 寫實[사실]에, 그리고 사실로부터의 自然主義[자연주의] 文學[문학]이 勃興[발흥]하는 과정은 봉건적 중세에 대한 시민계급의 충돌과 전사회생활에 있어서 평민계급에 지배권 확립의 諸過程[제과정]의 반영이며, 사상적으로는 시민적 세계관과 봉건적인 그것과의 사이에 세계관상의 충돌의 一表現[일표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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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古典主義[고전주의]에 대한 ‘안티 테제’로서 낭만주의가 성립하였고, 진정한 개인주의와 實證的[실증적] 世界觀上[세계관상]에 선 寫實主義的[사실주의적] 문학의 성립과 함께 반과거적이고, 반미래적이며 현실적인 것을 관념적 외피 가운데에 쌓던 과도적 様式[양식]으로서의 낭만주의는 부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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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實主義[사실주의] 문학의 성립과 함께 사회생활에 있어 자본주의 체제는 승리적으로 확립되고, 르네상스 이래로 不絶[부절]히 인간적 생활 위에 쓰여졌던 종교적, 敎勸的[교권적]인 일체의 정신적 우상은 제거된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상의 리얼리즘적 정신은 생산력의 발전, 자연과학의 興隆[흥융]과 함께 生誕[생탄]한 實證的[실증적] 사상과 個人主義[개인주의]의 문학상 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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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寫實主義[사실주의]와 自然主義[자연주의]가 구별되는 것은 전자가 긍정적인 대신, 후자가 부정적인 데 있다. 즉 전자는 지배적 시민이 확립된 체제에 대한 평화적 긍정과 만족에 서 있는 대신, 후자는 그 사회 확립 후에 얼마 안 가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선 小市民[소시민]의 불평불만의 反映[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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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自然主義[자연주의]는 小市民[소시민]이 어떠한 사회 조직을 만들었나 하는 것을 과학적인 정밀성을 가지고 描出[묘출]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이 傾向[경향]내에 졸라, 입센 등 많은 구라파 문학의 거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현실로부터 아주 눈을 감어버리는 부정적인 것의 하나로 ‘藝術[예술]을 위한 藝術[예술]’의 사상이 또한 머리를 들고 발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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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 스탕달, 메리메 등 寫實主義[사실주의] 작가의 ‘没我[몰아]’적 태도란 한계적인 것이어서 결국 그들 리얼리스트에게 있어 공통적인 것은 개인주의적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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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의 에고이즘, 메리메의 객관주의적 狹隘性[협애성], 발자크의 해부학적 방법, 부분에 대한 편애 등에 있어 주관은 빠짐없이 작용하였다. 그러나 스탕달과는 반대로 외면적 현실을 통하여 내부 현실을 파악하려는 발자크는 細目[세목]의 선택에 그치지 않고, 능히 世界[세계]寫實主義[사실주의] 文學[문학], 아니 문학적 불란서의 首領[수령]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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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것은 市民 社會的[시민 사회적] 興隆期[흥융기]의 대표적 사상가인 콘트가 그의 철학 가운데서 힘찬 전진의 윤리를 발전시킨‘進歩[진보]’의 개념과 더불어 곧‘秩序[질서]’의 개념을 대립시킨 것과 동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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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이러한 諸寫實的[제사실적]인 것 가운데 내포된 낭만적 정신은 발전 개념의 반대의 것으로서 19세기 문학상에 작용하였고, 18세기에서 그와 반대로 낭만주의는 과거로 부터 발을 빼자는 미래에의 이상으로 특징화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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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18세기 낭만주의 문학의 낭만적 정신은 사실적인 것과 일치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과 모순되면서 그것의 否定者[부정자], 對立者[대립자]로서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까지의 문학에 있어서는 사실적인 것과 낭만적 정신은 통일되지 않고 항상 서로 모순되고 대립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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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兩者[양자]의 분리는 이때까지 문학이 생산된 사회의 성질에 의존하는 것으로 간단히 말하면 내적으로 분열된 사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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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가를 한마디로 말하면 이때까지의 사회에서는 진보와 질서라는 것이 대부분 일치하지 않고, 서로 반발하였기 때문에 사실적인 것과 낭만적 정신은 항상 背馳[배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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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현실에 만족하려면 일체의 진보를 부정해야 되고, 그 진보의 입장에서 서자면 현실을 부정해야만 하였으며, 그것은 또다시 역사적으로 등장하는 새 주인에 의하여 부정되었기 때문에 현실성과 의식성을 문학상의 完美[완미]한 형태로 통일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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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전혀 인류의 사회생활의 내적 대립과 분열의 사실이 문학을 制約[제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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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들은 完美[완미]한 歴史主義[역사주의]와 진보의 입장에 설 수가 없고, 일시적으로 그것을 실현하는 체하다가 곧 그 반대자의 입장, 즉 그들이 일찌기 투쟁의 대상으로 삼었던 낡은 세대와 近似[근사]한 反歴史主義的[반역사주의적]인 질서 옹호자로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회적 사실이 문학상에 반영된 최대의 사실은 西歐[서구] 自然主義[자연주의] 文學[문학]에 있어서의 부정적 리얼리즘의 발생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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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일정한 한정 내에 있던 寫實主義[사실주의]까지도 주관적, 낭만적인 小市民[소시민]의 리얼리즘에 의하여 다시 사실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이 尤甚[우심]한 상충의 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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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양자의 범주가 최대한의 명확성을 가지고 대립된 것도 시민의 문학이며, 양자를 다같이 그 독자적 특성 위에서 실현해 본 것도 시민의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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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시대의 문학 이외에 어떠한 시대의 문학도 이만큼 명확히 사실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이 對位的[대위적]으로 최대한도에서 대립된 예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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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神話[신화], 口碑[구비]의 원시적 문학에서 볼 수 있는 사실과 낭만의 불분명한 상호관계로부터 18,9세기의 낭만주의적, 사실주의적 문학이 도달한 과정은 의심할 것도 없이 문학의 발전과 자기 완성의 오랜 과정이다. 이 기초에는 고대사회로부터 자본주의 사회로 이르기까지에 全進化[전진화]의 역사가 가로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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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이러한 역사적 발전의 全道程[전도정]은 다음의 특징적 사실을 명확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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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는 콘트의 사회의 진보와 질서의 개념 가운데 내포하고 있고, 칸트에 있어 이성의 실천성과 순수성의 대립으로 表式化[표식화]되었던 基幹的[기간적]인 것인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대립이 가로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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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순은 周知[주지]와 같이 階級社會[계급사회]에 고유한 것이며, 市民社會[시민사회]에 와서 최대한도로 확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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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리얼리즘은 현실의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현실이란 固定[고정]한 것이 아니라 不絶[부절]히 변하고 발전하며 소멸하는 긴 과정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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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의‘寫實主義[사실주의]’는 과거의 것이 고정적 静力學的[정역학적]이었음에 반하여 그것은 動的[동적] 다이나믹한 것이다. 따라서 현실에 만족치 않고 明日[명일]과 未來[미래]에로의 부단한 전진을 위하여 활동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길포친’의 용어를 빌면 現實的[현실적]인 夢想[몽상], 현실을 위한 意志[의지], 그것이 이 낭만적 정신의 기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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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중요한 것은 과거의 리얼리즘이 沒我的[몰아적] 客觀主義[객관주의]로 말미암아 도달치 못한 객관적 현실의 진실한 자태를 파악할 수 있다. 고정된 표면적인 것만을 묘사하는게 아니라, 현실을 그 발전에 있어서 본질적인 諸關係[제관계]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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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진실한 낭만적 정신 ── 역사주의적 입장에서 인류사회를 廣大[광대]한 미래로 인도하는 정신이 없이는 진정한 사실주의도 또한 불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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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주관과 객관을 진실로 통일하고, 현실 가운데서 非本質的[비본질적]인 日常性[일상성]의 俗惡[속악]한 第二義的[제이의적] 瑣事[쇄사]에만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거하고 혹은 그것을 뚫고 들어가 그 가운데 움직이는 본질적 성격의 諸特徵[제특징]을 파악하는 것이, 우리들의 새로운 창작 이론과 문학의 理想[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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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으면 일상성의 俗惡[속악]한 實在[실재]에 만족하고 본질을 빼어놓고 비본질적 瑣事[쇄사]에만 종사하는 표면적인 공허한 리얼리즘에 트리비얼리즘에 그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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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新文學[신문학]을 낡은 문학 이하의 수준으로 몰아넣는 허위의 寫實主義[사실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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