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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꽃과 병정(兵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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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7월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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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꽃과 兵丁[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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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事變) 제 3 주년! …… 대화(大和)민족의 역사적 오래고 오랜 숙망이요, 그 필연한 귀결로서 일억 총의의 세기적 경륜인 대륙건설이 드디어 그날 그 시각에 북지(北支)의 일각 노구교(盧溝橋)에서 일어난 한방 총소리를 신호삼아 마침내 실제행동의 제일보를 내디딘지도 어느덧 만 3년에 네번째의 제돌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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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의 천지에 새로운 질서가 퍼질 전주곡이요, 따라서 역사의 웅장한 분류(奔流)이었었다. 그리고 시방도 그는 같은 방향으로 힘차게 흐르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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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 4년 동안에 상하로 국민적 노력과 희생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었다. 또 앞으로도 완전히 사변 처리가 종료되는 날까지 그것이 계속하여 요구되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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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곳을 물론하고 거민족적인 큰 경륜에는 부득불 어느만한 희생이 따르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사변도 이제는 왕정위(汪精衛) 씨를 수반으로 한 신국민정부가 탄생이 됨으로써 제 3 기에로 들어가, 소기턴 이상과 더불어 그 효과도 한걸음 한걸음 현현(顯現)이 되어오고 있는 터이다. 즉 대일본제국을 맹주(盟主)로 신흥(新興) 만주국과 신생 중화민국이 같이서 일체가 되어, 경제적으로 동일 블럭을 결성하여 상부상조, 대외적으로는 구미의 착취와 침노를 물리치고 사상적으로는 방공(防共)·배적(排赤), 써 공존공영의 우의적 연계 아래 새로운 질서가 동아 천지에 확립이 될 날이 바야흐로 멀지 않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이야말로 여지껏 치른바 일본국민의 민족적 희생이 영예스러이 갚아질 광휘의 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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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역사적인 위대한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다시 네번째 사변의 제돌을 당한 총후(銃後)의 국민 일반은 더욱 새로운 각오와 긴장이 필요함은 물론 특히 조국의 영광을 등에 지고 제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 )병이며 또는 전몰한 여러 호국의 영령에 깊은 감사를 드리지 않으면 (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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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이 일자 인하여 북으로 북으로 제일선을 향해 많은 장병이 수송되고 당시 내가 거첩(居接)을 하던 개성의 우거가 마침 정거장 건너편 언덕바지 위에 있었던 관계상 역으로 환송영을 나가지 않는 때에도 바투 가까이 그를 바라다볼 수가 있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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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던 어느날, 백일홍이 한창 피었었으니 8월경인 듯싶고, 석양 무렵인데 그날도 아침부터 부절히 와서는 떠나고 하는 군용열차가 또 한대 들이닿더니 정차시간이 오랜 모양인지 각 찻간의 병정들이 모두 풀려나와 우선 패패이 간단한 체조를 시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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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조가 끝나자 병정들은 무더기 무더기로 갈려 혹은 중소 각학교 생도와 여러 단체의 환송영이 번화한 가운데 다과의 대접도 받고, 혹은 소학생들과 얼려 일장기를 두르면서 ‘덴니가와리떼……’도 부르고, 혹은 가설무대 앞으로 모여 기생들의 가무를 구경하고, 그러면서 누구는 “하야이도꼬, 아리랑 부떼 쯔떼구레요!” (빠르게, 아리랑은 집어치워라!) 하고 농삼아 재촉을 하는 꾼도 있고, 그리고 그중 몇몇이 이편 개천의 풀언덕을 찾아오더니, 누구는 벌떡 사지를 뻗치고 누워 딩굴기도 하고, 누구는 근처에 모여 섰는 동네 어린아이들을 손짓해 불러서 무어라곤지 이야기도 하고, 참으로 출정 군인답잖이 유한스런 풍경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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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그때 내 옆에 앉아서 놀고 있던 칠세동이 조카놈이 그걸 보고는 저도 간다면서 부리나케 일장기를 집어들고 나서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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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데 푸뜩 나는 생각이 나서 그애더러 기다리라고 하고는 뜰앞에 만발해 있는 백일홍을 이 색 저 색 섞어 한 묶음 잘라다가 손에 쥐어주면서 “너 이 꽃 가지구 가서 저기 있는 병정 아무한테구 너 주구 싶은 이한테 주어 보아?” 하고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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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더니, 이놈이 더욱 신이 나서 꽃을 움켜쥐고 줄달음질을 쳐 쫓아가서는 여러 병정들을 잠깐 둘러보다간 무슨 생각인지 그중 하나에게 척 내밀면서 절까지 한 자리 너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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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소리도 들려올 거리는 아니었고, 따라서 기색을 알아볼 바이 없었으나, 그렇더라도 어떠한 표정을 하느니란 짐작은 넉넉히 할 수가 있도록, 꽃을 받은 병정 그는 아이를 끌어당겨 하마 껴안는 듯, 그리고 머리를 쓸어주면서 얼굴을 들여다보고 무슨 말을 묻다가 연방 내 집께를 바라다보며 고개를 끄덱끄덱 또 동료를 돌려다보기도 하고 하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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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내가 받은 바 가슴 이상하게 저릿한 감명은 두고두고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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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그 이름도 성도 얼굴조차 어떻게 생겼던지도 알지 못하는 병정의 일을 생각하고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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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방도 전지에서 용감히 싸우고 있으면서 때로는 그때에 어떤 어린아이에게 꽃을 받던 일을 두고 고요히 회상을 즐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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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어쩌면 벌써 영광스런 개선을 하여 고향에서 처자로 더불어 지내면서 그런 이야기를 가끔 하곤 하는지도 모르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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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또 불행하여 이미 전선에서 호국의 영령으로 스러진지도 모르고,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나는 부지중에 가슴이 뭉클함을 어찌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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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전지의 제일선을 한번 가보고 싶었고, 그러고 나서 나의 ‘백일홍과 병정’을 테마하여 한편의 소설도 엮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하기야 전선이면 보다 더 감격적이요 다이나믹한 테마가 많이많이 쌓여 있기는 한 것이지만, 그러므로 하필 그것만이 전선을 가고 싶은 동기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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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文評論[인문평론] 1940년 7월호〉
【원문】나의 ‘꽃과 병정(兵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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