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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창영양(南窓迎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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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4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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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영양(南窓迎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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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렷한 봄의 실마리를 시절의 제목을 찾지 못해서 이 짧은 글을 작정된 기한의 마지막 날인 오늘까지 붓을 대지 못하고 있을 제, 우연히 문하의 학생 오륙 인의 방문을 받았다. 이렇게 한꺼번에 오륙 인씩이나 대거함은 드문 일이다. 지향없는 젊은 이야기에 활기를 느끼고 있는 사이에 총중의 한 사람이 슬며시 자리를 떠서 밖으로 나가더니 얼마 안되어 거리의 사진사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함께들 사진을 박자는 것이 일행의 중요한 목적임을 알고 예측치 아니한 그 갸륵한 청을 나는 고맙게 또한 반갑게 여겨 현관과 창을 배경으로 복판에 둘러싸여 섰다. 뜰 한편 구석에 카메라를 세우고 집을 배경으로 두 장, 멀리 원경의 모란대를 배경으로 한 장, 이해의 첫 사진을 박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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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후에 온다. 박고 나서 사진 속에 새겨 넣을 글자를 생각하노라고 한참들이나 머리를 모고 의론에 잠기더니 드디어 그 난산의 제목을 나에게 고하였으니 가로되, 「이른봄」 운운이었다. 이른봄 ─ 나는 여기서 문득 홀연히 기한된 이 짧은 글의 착상과 아울러 우연히 봄 생각의 실마리를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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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봄과 사진 ─ 그 사이에야 무슨 관련이 있으랴마는 이른봄의 반날을 젊은 문과생들의 문학담과 즐거운 웃음소리를 듣고 상호간의 두터운 우의를 옆에서 목격하게 된 것에 한 줄기의 감동이 솟은 것이다. 이른봄 ─ 듣고 보니 짜장 벌써 이른봄이 신변에 가까워 왔음을 느낄 수 있으며 젊은이들의 정과 뜻과 열정에서 봄은 한층 활기와 의미를 더하여 가는 듯하다. 봄은 물론 청춘의 시절이니 청춘의 하루에서 봄이 열린 것이 즐거운 암시이며 활기있는 분위기 속에서 우연히 봄을 맞이하게 된 것을 더없이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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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들을 보내고 장지를 활짝 열고 남쪽 창 넓은 기슭에 올라앉으니 전폭의 벽으로 흘러드는 따뜻한 햇빛이 전신을 싸고 방안에 새어 들고도 오히려 남는다. 기지개라도 펴고 싶은 모없는 부드러운 햇빛이다. 창을 열어도 벌써 찬 기운이 얼굴을 찌르는 법 없이 둥글게 몸을 스칠 뿐이요, 하늘은 푸르기는 푸르면서도 가령 가을 하늘같이 새파랗지는 않고 푸른 물에 우유를 섞은 모양으로 희미하고 부드러운 빛이다. 하루도 삔 적 없는 비행기가 가까운 허공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아직도 수뭇수뭇 무춧거리는 그 어디인지 숨어 눈에 보이지 않는 봄의 생명을 속히 뽑아 내려는 듯이 성급스럽게 성화하고 재촉하는 소리가 바로 비행기의 폭음인 듯하다. 그것이 지나간 후에는 그와는 아주 성격이 다른 기차의 기적소리가 가까운 교외에서 길게한가하게 울려온다. 그것은 봄을 재촉하는 소리가 아니고 봄을 이미 맞이하여 버린 봄 속에서의 유창한 노래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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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곳이 솟아오른 양지쪽의 흙 속에는 수많은 생명의 무리가 새 기운을 한껏 준비하여 가지고 한마디 호령만 나면 비집고 솟으려고 일제히 등대하고 섰음이 완연하다. 나뭇가지의 눈 봉오리는 날이 새롭게 불어가는 듯하며 오랫동안 자취 멀던 새의 무리가 가지 위에 펏질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늘 푸른 한 포기의 황양목이 새삼스럽게 눈을 끈다. 버드나무의 드리운 가지 끝이 푸른 물을 머금었음이 확실하고 먼 과수원의 자줏빛이 더한층 짙었음이 분명하다. 집안의 봄은 새달 잡지의 지나쳐 민첩한 시절의 사진에서 오고, 거리의 봄은 화초 가지와 과물점에서 재빨리 느낄 수 있었으나, 이제는 벌써 눈에 띠는 모든 것에서 봄의 기색을 살필 수가 있게 되었다. 화초가게 유리창 안에 간직한 시네라리아, 프리뮬러, 시크라멘, 프리지어의 아름다움 색채의 화분은 벌써 창밖에 해방하여도 좋을 법하며 과실점을 빛나게 하는 감귤류의 향기와 가제 수입한 바나나의 설익은 푸른빛같이 봄의 조미(朝味)를 느끼게 하는 것도 드물다. 닥쳐오는 봄은 붙들 수 없는 힘이며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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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오는 봄, 올 때 되면 꼭 오는 봄, 그까짓 얼른 오건말건 하는 생각은 없어지고 봄이 점점 절실히 기다려지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얼른 봄이 짙어 풀이 나고 꽃이 피고 나무가 우거지고 그 속에 새가 모이고 나비가 날고 벌레가 울게 되었으면 하는 원이 나날이 해마다 늘어갈 뿐이다. 자연의 짜장 좋음이 뼈에 사무쳐서 알려지는 까닭인가 한다. 너무도 흔하고 당연하기 때문에 무관하게 지내던 것이 차차 그 아름다움을 철저하게 깨닫게 된 까닭인가 한다. 아무때 생각해야 자연같이 아름다운 것은 없다. 나는 이 심정을 결코 설운 참말을 들려줌이 시인이라면, ‘셸리’의 시는 무엇을 의미할꼬…
【원문】남창영양(南窓迎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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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1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