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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과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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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3
오장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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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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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시의 성립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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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시의 성립! 이것은 물론 우리 인류가 원시사회에서 농경 생활로 정착하였을 때부터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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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논을 갈고 밭을 이루며,씨 뿌리고 가꾸는 것을 전업으로 하는 일정한 층이 생기었을 때 이들의 시 감정을 표현하기에 절대 조건인 언어조차 벌써 그들의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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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있었으며,말씀이 곧 하느님이었다,” (요한복음 1장) 여기에 이 말을 끌어올 필요도 없이 우리 인류사회에 계급제도가 확립되었을 때,그때부터 언어는 벌써 근로자의 복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지배를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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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몇천 년을 내려오며 그들의 울음 울은 바 웃음 웃은 바의 정서는 한편 민요의 형식으로 누가 지었는지 또는 누가 불렀는지도 모르며 그들의 기슴속을 흘러오다가 변형되기도 하고 잊혀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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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이 사람으로서의 대우를 받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선진 구라파에 있어서도 시민계급이 눈을 뜨기 시작하여 비로소 르네상스의 자아의 발견에까지 이르렀으나 이것은 도시의 상공업자나 시민들이 눈을 뜬 것이지 농민이 예까지 이른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지배계급이 그들의 문학작품 속에서 농민을 하나의 사람으로서 다룬 것은 아주 최근 19세기 낭만파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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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과 농민을 그린 작품은 적잖이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이무리 진취적인 것을 썼다 하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방관자의 감정이요 붓 끝이지 실지로 호미를 쥐고 팽이를 메는 농민들의 감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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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하는 사람들은 그 근로함에서 오는 땀의 기꺼움과 즐거움을 노래하기는커녕 부당하게 억눌리는 사역(使投)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괴로움과 억울함조차 감정으로 표시할 시간의 여유와 마음의 준비조차 없었으므로 여기에 농민시의 성립이란 가능한 듯하면서도 기실 엄밀한 의미에서는 불가능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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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이 밝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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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지리 우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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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치는 아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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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아니 일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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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너머 사래 긴 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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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갈려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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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얼핏 들으면 참으로 평화롭고 이름다운 전원의 풍경과 생활을 읊조린 시조를 우리들은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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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시조는 숙종조의 영상(領相)까지 지내인 남구만(南九萬)의 소직(所作)이다. 봉건사회에서 인신(人臣)으로 할 것 다하고 늙어 고향에 돌아가 읊조린 안락한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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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는 지팡이 짚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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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는 봇짐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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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망산이 어디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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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 산이 바로 북망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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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민요와 대비하여 볼 때 얼마나 현격한 감정의 차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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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시는 원칙적으로 농민이 쓴 시라야 될 것이요 또 농민 출신의 시인의 작품이라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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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건너 갈미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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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묻어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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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을 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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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심을 밸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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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얼럴럴 상사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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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뒤여 상사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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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한 이십 년 전까지도 각 시골에서 모를 낼 적 같은 때에 농민들이 풍장을 치며 즐겨 부르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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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에서 농민들의 근로하는 즐거움을 엿볼 수 있다. 백제시대부터 전하여 왔다는 이 노래도,이마적에는 요릿집에서 기생이나 선술집에서 갈보가 악을 쓰고 부르면 주색잡기에 골몰한 천하 잡놈들이 화창하는 이외에 별로 들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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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볼 때 상업자본주의사회와 제국주의 밑에서 신음하는 농민들의 생활이 오히려 봉건사회보다도 얼마나 가혹한 것이냐는 것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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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파 문학에 있어서도 천대받은 농민이 등장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농민 자신이 자아를 찾을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러시아에 있어서만이 1861년 농노해방의 시기를 전후하여 농민 출신의 시인과 농노 출신의 시인이 문단에 등장하여 농민시의 성립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이것 또한 러시아 사회의 후진성에도 연유한 것이겠으나 그보다는 전 세계의 유례 없이 광대한 면적이 거의 농경지라는 데에서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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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문학에 있어서의 농민시는 그동안 여러 가지 우여독절을 거치었으나 1917년 시월혁명의 완전한 승리로 말미암아 농민도 처음으로 인류사회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게 되어 여기에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게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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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것들은 그대로 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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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꼭두를 지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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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쓰려는 사람만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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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앞길은 구습 먼저 깨뜨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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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밤을,그리고 해는 낮을 돌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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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깃발을 높이 날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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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열(戰列)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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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은 너무도 오래 우리를 잠재웠고 농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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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소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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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은 매에 못 이겨 황천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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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밤을,그리고 해는 낮을 돌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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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깃발을 높이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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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열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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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빨던 세월은 지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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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농민은 쇠사슬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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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도 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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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에는 이엉조차 새롭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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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밤을,그리고 해는 낮을 돌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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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깃발을 높이 날리며
54
우리는 전열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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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의 진군」이란 이 시는 혁명 직후에 디에브 곰야코브스키의 부른 노래다. 이 시는 확실히 희망에 넘치고 환희에 념쳤으며 이를 읽음으로 인하여 그 당시의 사회성이며 시대성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아직도 농민의 안락한 생활 감정이라든가 여기에서 오는 아름다운 세계는 그려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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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 땅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으나 참으로 눈부시고 찬란한 농민의 시는 혁명 이후에 자라난 러시아 농민의 청년들,그리고 콜호스를 겪어낸 그들이 보는 농촌과 자연과 그들의 생활의 노래에서만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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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 땅의 시인들에게 있어서는 농촌을 어떻게 그렸으며,또 혹시라도 농민 시인이 있었는가. 조선에 신문학이 들어온 것은 이 땅이 벌써 후진제국주의 국가 일본에게 정복을 당한 후였으며,그나마라도 전문적인 시인이 시민으로서 처음 눈을 떴을 때는 벌써 1920년이 훨씬 넘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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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도 제일 훌륭한 시인 이상화 씨가 처음으로 자아에 눈을 떠 만들어진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우연히도 농촌을 배경으로 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은 상화 씨가 다만 그 출신 계급이 농촌 지주였다는 데에 기인한 것이고 조선에는 아직도 봉건 잔재가 뿌리깊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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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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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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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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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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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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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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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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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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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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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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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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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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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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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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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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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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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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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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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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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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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 나옹 아이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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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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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찾느냐 어데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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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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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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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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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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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절창을 부른 뒤에 그는「비 갠 아침」이란 시밖에 아무런 농촌 시를 쓴 일은 없다. 빼앗긴 고향 빼앗긴 조국을 생각할 때 뼈에 저리게 읊조리고 외치는 그였으나 그도 역시 소시민의 테두리를 온전히 벗어버리지는 못하였으며 또 소시민이란 이무리 코딱지 같은 곳이라도 도시를 의거하고 생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시는 저절로 농촌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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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경향은 상화 씨뿐만 아니라 시집『봄 잔디밭에서』를 내인 포석(抱石) 조명희(趙明熙) 씨에게서도 볼 수 있는 일이며,우리 시단에 가장 풍부한 소재만을 보여준 소월에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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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두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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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높이 가득 자란 보리밭 밭고랑이 위에 앉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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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필(畢)하고 쉬이는 동안의 기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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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꽃이 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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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빛나는 태양은 내려쪼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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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무리들도 즐거운 노래,노래 불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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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은혜여! 살아 있는 폼에는 넘치는 은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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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은근스러움이 우리의 맘속을 차지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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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은 어디? 자애의 하늘은 넓게도 덮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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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두 사람은 일하며 살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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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태양을 바라보아라. 날마다 날마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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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라새로운 환희를 지어내며, 늘 같은 땅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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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활기 있게 웃고 나서 우리 두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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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일리우는 보리밭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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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들고 들어갔어라 가즈런히 가즈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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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나아기는 기쁨이여! 오오 생명의 향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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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밭 고랑 위에서」라는 소월의 시로서 시집 『진달래꽃』 안에 있는 것이다. 이 시집 안에 있는 시는 대개가 그의 학창 시절에 쓴 것이라 하나 그때의 정세로 보면 이 시는 도피의 정신으로밖에는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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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기만 보았지 미처 자기의 주위를 형성하고 있는 사회에 눈이 어두웠으며 또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어찌 되었든지, 나 혼자만 깨끗하면 그만이라든가 하는 생각은 유태교의 바리새 적부터 있는 일이지만 이것은 순전히 적에게 자기를 굽히고 들어가는 피난처이다. 정복자들은 이것을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농민을 위하여 부른 노래도 아니요 이 땅 농민의 현실적인 생활 감정은 더군다나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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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뒤 1930년대에 박아지(朴芽枝) 씨가 처음으로 계급적인 처지에서 농민시를 썼으나 별로이 특기할 작품이 없는 것은 섭섭한 일이었고 이것도 중일전쟁의 파문으로 전연 그 발전의 여지조차 갖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나 8월 15일 이후에 다시 언론에 소강(小康)을 얻어 권환(權煥) 씨 같은 분도 농민시에 관심을 두고「이서방두, 김첨지두 잘사는 주의」라는 시를 써서 농민의 의사를 대신하였으나 이 또한 확연한 농민시로 보기에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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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말할 것도 없이 조선에 있어서의 진정한 의미의 농민시의 성립은 우선 그들로 하여금,정당한 인간적인 대우를 줌에 있고 또 이 인간적인 대우라는 것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고 각자가 싸워서 찾아야 하는 것이므로 아직도 전도가 있다고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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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농민시,이것은 앞으로 가능한 것이며 당연히 있을 것이며 또한 우리의 역사와 사회적 환경으로 보더라도 찬연히 빛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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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농민에게 토지를 주어라,이것은 적국 일본뿐 아니라 구라파의 후진 제 약소국에 있어서도 이미 이번 대전으로 인하여 토지개혁이 실시된 것이요 또 북조선에도 금년부터 시작된 것이니 어서 이쪽에도 토지의 무상분배가 실시되어 역사가 있은 이래로 빨리고 눌려오기만 하던 이 땅의 농민들로 하여금 처음 허리를 펴게 하고 다시 그들로 하여금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여 근로하는 농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감정과 정서를 서슴없이 노래 부르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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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시의 성립! 그것은 농민의 완전한 해방에서 비로소 자리가 잡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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